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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대선(大選)

안철수 傳奇 - 55개 장면으로 본 그의 55년 인생 (1/3)

“외가도 부자, 처가도 부자 … 1등 인생만 질주해 온 그가 이번에도 1등 할 수 있을까?”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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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이 경남 양산 … 양산서 사는 문재인과 ‘양산(梁山)혈투’
⊙ 아버지는 ‘범천동 슈바이처’, 어머니는 갑부의 딸로 이화여대 출신
⊙ “결혼전까지 양말 아무 데나 던지고 이불 한 번 개 본 적 없어”
⊙ 어릴 적부터 독서광 … 초·중학교 때 성적 하위권이 고교 진학 후 급상승
⊙ 원래 공대 가려다 아버지 가업 이으려 의대로 전환
⊙ 1982년 친구 집에서 처음 컴퓨터 본 후 독학으로 공부
⊙ 서울의대 대학원 나온 뒤 안철수연구소 차려 창업
⊙ 오래전부터 언론 활용, 좋은 이미지 장기적으로 심어
⊙ 무상급식 논쟁 때 정치입문 결심 … 서울시장-대권후보 잇달아 양보
⊙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즉각 재개 … 개성공단 형태 북에 더 세워야”
⊙ “대미(對美)-대중(對中)외교 균형론”, 노무현의 외교 인식과 비슷
사진=뉴시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이 급등하고 있다. 3월 초까지만 해도 한자릿수에 머물렀지만 3월 말부터 두자릿수에 진입했고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의 1대1 가상 대결에서는 문 후보를 앞지르는 결과도 나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3자·4자·5자 대결에서도 문 후보와 양강(兩强) 구도다.
 
  안철수 후보는 서울대 출신 의사에서 컴퓨터 백신 회사 CEO로 변신했다가 교단(敎壇)으로 돌아가는 듯하더니 정계에 입문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박원순 서울시장, 대권후보로 발돋움했다가는 문재인씨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그의 55년 삶을 55개 장면으로 풀어 보기로 한다(문재인 후보의 삶을 살펴보는 《문재인전기》는 《월간조선》 2월호에 게재).
 
 
  1. 출생
 
  1962년 2월 26일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상가 1길10에서 안영모-박귀남의 2남1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안 후보의 부친은 당시 밀양에서 군의관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안 후보가 태어난 집은 현재 갈비집으로 변했다고 한다.
 
 
  2. 안철수의 부모
 
  안 후보의 아버지 안영모(87)씨는 의사다. 원래 공고를 나왔지만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으며 1963년부터 부산의 판자촌이었던 범천동에 병원을 열어 최근까지 운영했다. ‘범천동 슈바이처’라는 별명도 얻었다.
 
  안씨의 집안은 경남 양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양산 서창에서 태어난 그의 할아버지는 목수 일을 했으며 안영모씨의 아버지, 즉 안 후보의 증조부는 부산상업학교를 나와 농협지점장을 지냈다.
 
  안철수의 어머니 박귀남(83)은 부잣집 셋째 딸로 이화여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안철수 외가는 상당히 유력한 집안이었는데 당시 ‘부산에서는 외할아버지 함자만 대면 통하지 못할 것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안철수 부모는 중매를 통해 결혼했고 안철수는 어머니에 대해 “부잣집 딸로 귀염만 받다가 시집을 가셨다”고 했다. 박귀남은 대학을 졸업했으나 사회생활을 한 것 같지는 않고 결혼 후에는 살림과 육아에만 전념한 듯하다. 박귀남은 그 유명한 ‘자녀에게 높임말을 하는 어머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어떤 교육철학이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박귀남은 자녀들에게 자립심과 사회성을 키워 주는 양육과정을 보이지 못했다. 그래서 안철수는 결혼 전까지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 던지곤 했다. 그리고 한 번도 자신의 이불을 개 본 적이 없었다.
 
 
  3. 안철수라는 이름
 
  “안철수라는 이름은 저희 부친이 지으셨어요. 돌림자나 호를 쓴 건 아니고, 부친이 아는 분 중에 이름을 지으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께 찾아가 만든 이름이에요. 그래서 저희 아이들 이름은 다 달라요. 둘째는 안상욱, 셋째는 안선영. 부친이 아이들을 참 예뻐하셨어요.”(안철수의 부친 안영모씨, 2001년 《여성조선》과의 인터뷰에서)
 
 
  4. 안철수의 외가 - 부산의 최고 부자
 
  안 후보의 외조부는 박덕봉(朴德奉·1906~1993)씨다. 안 후보의 외조부와 그의 딸이자 안 후보의 어머니인 박귀남씨는 부산시 동구 수정동 232번지에 살았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수정동 일대에서는 우체부에게 박덕봉 이름 석 자만 대면 바로 그 집을 찾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수정동은 조선시대부터 왜관이 설치된 곳으로 일제시대 일본 거류민이 가장 많았던 곳이다. 특히 대마도 출신이 많았다고 한다.
 
  이 집은 일제시대 조선인을 착취하던 거부 고미야 만지로(小宮萬次郞)가 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고미야는 대마도 출신으로 1877년 조선에 건너와 각종 사업을 벌여 부를 축적했는데 그중에서도 해녀들을 착취하는 조선해조주식회사(朝鮮海藻株式會社)와 흑연광업소 사장 등을 지냈다.
 
  안 후보의 부친 안영모씨의 친구에 따르면, 안 후보의 외조부 박덕봉은 동구의 유명한 재력가로 수정동 일대(현 부산은행 수정동지점 주변)의 많은 일본주택과 상가를 소유했으며 이를 임대하고 임대료를 수금하러 다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고 한다. 박덕봉이 엄청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사망하기 오래 전부터 자식들에게 부동산을 나누어 줬다.
 
 
  5. 부산 동성국민학교 시절
 
  안 후보는 2009년 6월 17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을 직접 말한 바 있다. 학창 시절 반 60명 중 30등을 할 정도로 평범했으며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는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대담집에서도 안 후보는 “초등학교를 한 살 빨리 입학했으며 공부를 아주 못했다. 키도 제일 작았다. ‘앞으로 나란히’라는 구령에 맞춰 손을 앞으로 뻗어 보는 게 소원이었다. 한글도 초등학교 들어가서 익혔는데 공부도 영 못 따라갔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내내 공부를 못했는데요, 성적표에 ‘수’, ‘우’가 별로 없었어요. 옛날 MBC에서 〈성공시대〉를 찍을 때 PD분께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부산 가서 성적표를 직접 촬영해 와서 TV에 방영한 적이 있어요. 그때 보니 성적표에 ‘수’가 보이긴 하더군요. 제 이름 철수예요.”
 
  독서는 매우 좋아했다. 국민학교 재학 시절 학교 도서관의 책을 매일 몇 권씩 읽어 결국 도서관에 있는 책을 거의 다 읽었다. 당시 도서관 사서는 매일 몇 권씩 대출과 반납을 하는 안철수가 장난친다고 생각해서 책 대출을 거부할 정도였다. 안철수는 “당시 책의 페이지 수, 발행 연월일, 저자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교과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과학책이나 소설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린 철수는 숫기 없는 아이였다고 한다. 알을 품으면 부화한다는 말에 메추리알을 품고 자기도 했으며 동네 친구들과 밖에서 어울리기보다 병아리나 토끼와 놀기를 즐겼다. 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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