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당 대표 전당대회 승리 2주년’ 행사에선 무슨 일이 : 월간조선

7월 14일 당산동 그랜드컨벤션센터 2층에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당 대표 당선’ 2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정확히 2년 전 김 전 대표는 친박 맏형인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을 이기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행사에는 원외 당협위원장, 핵심당원과 지지자 1500여 명이 참석했다. 초청 대상자는 김 전 대표의 최측근인 권오을·김성수·안형환 전 의원이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초청장만 1380명한테 보냈는데 더 오신 것 같다”고 했다.

김 전 대표는 행사에 대해 “그간 핵심 조직과 1년에 한두 번 만나 서로 정을 나누는 자리”라며 “더 이상 (의미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전 대표의 측근인 권 전 의원도 “김 전 대표는 (행사 개최를) 극구 말렸다”며 “측근들이 얼굴은 보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겨우 설득해 만든 자리”라고 했다. 일반적인 친목 모임 그 이상 이하도 아니란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이날 행사가 그냥 밥이나 먹는 자리가 아니란 단서는 여러 군데서 찾을 수 있다. 첫째, 행사 시점이다. 7월 14일. 꼭 차기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8월 9일)를 염두에 둔 모임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는 비박 대주주다. 친박·비박 후보가 난립한 이번 전당대회는 ‘고정표’가 있는 김 전 대표(비박)와 최경환 의원(친박)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차기 지도부는 내년 대선 경선을 관리한다. 친박이 당권을 거머쥘 경우 김 전 대표의 대권행보는 가시밭길이 될 수밖에 없다. 김 전 대표 입장에서는 본인의 의중을 지지세력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 김 전 의원은 행사 이틀 전인 7월 12일 비박(비 박근혜)계 당권 주자들에 대해 “당선되기 위해선 당연히 (후보) 단일화가 돼야 한다”고 했다. 비박계 지지세력 결집을 강조한 셈이다. 그동안 전당대회를 비롯해 당내 정치 현안에 대해 말을 아끼던 것과 달라진 모습이었다.

김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비박계 당권 주자 대부분은 김 전 대표와 출마 선언 전부터 긴밀히 상의해 왔다”며 “최근에도 비박계 정병국 의원이 김 전 대표와 30분 가까이 논의했다. 김 전 대표는 비박 단일 후보가 나오면 조직까지 다 동원해 정당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행사 시점과 관련 김 전 대표 측은 “7월 14일이 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오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모임을 제외하고 지지자 모임을 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2014년 12월(송년회), 대표 취임 1주년인 2015년 7월 14일, 2015년 12월(송년회)까지 총 세 번 가졌다. 정치권에서 대표직에서 물러난 전직 대표가 ‘대표 당선’ 2주년 행사를 여는 것은 이례적이다. 당 대표 경선에 영향력을 미칠 의도가 전혀 없었다면 매년 해왔던 대로 올 12월에 송년회를 겸한 모임을 가졌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지난 7월 14일 오후 서울 당산동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7·14 전당대회 2주년 만찬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둘째, 비박 당권 주자의 행사 참석이다. 김 전 대표 측은 “모임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현역 의원, 당권 주자 분들에게 불참해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고 했다. 비박 대주주인 김 전 대표가 개최하는 모임에 얼굴을 내밀지 않을 비박계 당권 주자는 없다. 실제 이날 행사에는 정병국·한선교·강석호 의원 등 주요 당권 후보들이 대거 방문해 눈도장 찍기에 나섰다. 김 전 대표는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왔다”고 했다.

셋째, 김 전 대표의 지지율이다. 김 전 대표는 총선 이튿날인 4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조용한 행보를 이어갔다. 현안 논의를 위해 만나 왔던 핵심 측근과의 모임도 중단했다고 한다. 김 전 대표의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 총선 패배 책임이라고 보기에는 지지율이 너무 낮았다. 한국갤럽이 6월 10일 발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지난 6월 7~9일 전국 성인 1002명 대상의 휴대전화 RDD(임의 번호 걸기) 방식, 표본 오차 95% 신뢰 수준 ±3.1%포인트)를 보면 김 전 대표의 지지율은 2%였다. 올해 초만 해도 김 전 대표의 지지율은 두 자리였다. ‘총선패배→잠행→지지율 폭락’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자 김 전 대표 진영은 동요했다.

핵심 측근의 이야기다.

“김 전 대표는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총선 패배 책임이 본인한테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반성의 의미로 조용한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언론 노출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지지율이 바닥을 쳤지요. 활동도 중단한데다 지지율도 떨어지니 측근들 사이에 김 대표의 ‘권력 의지’가 약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런 이유로 다른 쪽 진영으로 넘어간 사람도 있고요. 이번 행사는 그런 사람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 의미죠. ‘나의 권력 의지는 변함이 없다. 믿고 따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겁니다.”

김 대표의 핵심 측근들은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측근 몇 명이 빠져나간 직후인 6월 중순쯤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김 전 대표는 극구 만류했지만, 더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측근들의 설득에 행사 개최를 허락했다. 이날 행사는 사실상 대선 출정식과 같은 분위기였다.

개헌 관련 이야기도

만찬에 참석한 정운천·정병국·한선교·강석호 의원.

당초 참석자 다수는 수도권 출신일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권 전 의원은 이렇게 얘기했다.

“당 대표 경선 당시 우리를 도운 TK 핵심은 저를 포함, 박승호 전 포항시장, 공원식 전 경북관광공사사장, 김좌열 전 특임장관 제1조정관이었습니다. 이 중 박 전 시장은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서 지역구(포항북)가 여성 우선 추천 지역으로 선정된 것에 반발, 탈당했습니다. 공 전 사장은 2014년 6·4지방선거 과정에서 금품을 뿌린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구속됐고요. TK 당원들은 많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상은 빗나갔다. 전국 각지에서 지지자들이 모인 것이다.

4시에 시작한 행사는 ▲국민의례, 각 시도 주요 지지자 소개 ▲박성중 의원(당 대표 경선 당시 지방자치본부장·행사에 초청받은 유일한 국회의원)·권오을 전 의원(당 대표 경선 당시 선대본부장) 인사말 ▲토크콘서트(김무성을 디스하라) ▲동영상 상영 ▲김무성 전 대표 인사말 ▲만찬 순으로 진행됐다. 만찬은 비공개였다. 비공개 자리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김 전 대표는 주변을 의식, 민감한 이야기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친박이 친노보다 훨씬 심하다는 하소연이 많았다.

한 참석자는 “지금 친박이 하는 것을 보면 친노는 저리 가라”라며 “우리를 다 내보내려 하는 것 같다. 해도해도 너무한다. 친박계는 그들끼리 이원집정제 개헌을 내세워 ‘반기문 대통령-친박 국무총리’ 구상을 현실화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친박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2015년 ‘반기문 대통령-친박 국무총리’ 가능성을 언급하며 “20대 국회에서는 개헌을 해 권력구조를 이원집정부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7·14 전당대회 2주년 만찬에서 “이 나라 지도자가 누구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참석자들이 “김무성”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정병국 의원, 한선교 의원, 권오을 전 의원,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김 전 대표는 행사에서 “여야 간 골육상쟁과 같은 극한 대립의 정치를 끝내야 할 때가 됐다”면서 “제왕적 대통령 권력 체계를 바꿔야 한다. 권력을 나누고 협치, 여야 간 연정을 할 수 있는 그런 권력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전 대표 관계자는 “이날 하이라이트는 김 전 대표가 연설문에는 없던 개헌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대표의 개헌 구상은 친박과는 다르다. 김 전 대표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지지한다. 지금과 같은 승자독식의 ‘All or Nothing’ 게임으로는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형태를 말한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에서 대통령은 조약체결, 국방통수권, 국회해산, 정당해산 제소, 계엄선포, 긴급명령권을 갖는다. 총리는 행정부 통할, 법률안 제출권, 예산편성권, 행정입법권 등을 행사한다. 참여정부 이후 한때 실현됐거나 강조된 책임총리제 역시 ‘대통령-총리 분담 모델’이지만,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는 내각제적 요인을 중심으로 한 모델인 셈이다.

“‘세상 앞일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김 전 대표와 함께하자’ ‘총선 공천 과정에서 옥새 파동 등의 논란이 있었지만 큰 용기와 큰 지혜를 가진 행동’”이라는 이야기도 오갔다. 비공개 만찬을 취재한 기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측근의 “총선 과정에서 ‘무대’(무성대장)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김 전 대표가 이날 행사를 계기로 대선 무대로 나아가는 ‘무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당초 김 전 대표는 행사 이후 핵심 측근들과 2차(맥주)를 가려고 했지만 분위기가 너무 달아올라 생각보다 많은 술을 마셔,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