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반기문 총장이 적극 챙기는 ‘백소회(百笑會)’는 어떤 단체인가? : 월간조선

5월 말 방한(訪韓)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백소회’ 회원 및 지인들과 저녁 약속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은 5월 25~27일 제주에서 열리는 ‘제주포럼’에 참석한다. 반 총장의 방한 일정표에는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유엔 DPI(공보국) NGO 콘퍼런스’ 참석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반 총장은 2015년 말 뉴욕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송년 간담회에서 방한 계획에 대해 “아직 계획은 없지만, 6월쯤 유엔 주최 NGO 회의가 (한국에서)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전직 다선의원 출신의 백소회 회원은 “반 총장으로부터 한국에 오면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 자세한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나 이외에도 몇몇이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다”며 “누가 초대받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도 아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보를 자제해 온 반 총장이 정치권 인사들과 개인적인 식사 자리를 갖는 것은 이례적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반 총장이 만나는 인사 중 한 명이 ‘백소회’ 회원이라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밀려났던 반 총장이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 외교보좌관, 외교부 장관으로 부활하는 데 물밑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인사들도 ‘백소회’ 멤버였다. 과연 ‘백소회’는 어떤 모임일까.

충청도 지도자 사랑방

백소회는 2014년 12월 18일 저녁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송년회를 가졌다. 류수희 한화그룹 고문이 자리를 마련한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덕담을 나누고, 충청권과 나라의 발전을 기원했다.
사진=디플로머시

백소회는 충청 출신 명사(名士)들의 친목모임이다. 1992년 국민당 소속으로 11대 국회의원을 지낸 임덕규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이 주축이 돼 만들었다. 임 회장은 “충청도 지도자 사랑방을 만들자고 해서 몇몇 분과 함께 창립한 것”이라고 했다.

‘백소(百笑)’라는 이름은 서산 마애불상에서 볼 수 있는 ‘백제(百濟)’의 ‘미소(微笑)’에서 따왔다.

창립멤버는 임 회장(충남 논산 출신)을 비롯하여 주돈식 전 정무수석(충남 천안), 고흥길 전 특임장관(충남 청양), 《대전일보》 회장인 남재두 전 의원(대전), 정진태 전 비상기획위원장(충남 예산), 송자 전 연대 총장(대전), 김현욱 전 민정당 의원(충남 당진), 류근창 전 임광토건 회장(충남 공주),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충남 공주), 송석구 전 동국대 총장(대전), 곽정현 충청향우회 중앙회 명예총재(충남 예산)다.

초기 백소회는 대전·충남 지역구 국회의원, 대전·충남 출신 국회의원, 시·도지사, 장·차관, 총장, 장군, 언론사 간부, 대기업 사장·회장, 국영 기업체장 등으로 이뤄졌다. 2000년 중반 ‘백소회’를 충청 전체 모임으로 발전시키자는 데 의견을 함께하고 충북 출신 인사들도 회원으로 받았다. 충청도 출신이 아닌 회원도 극소수지만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회창 전 총재다. 이 전 총재는 황해도 서흥 출신이다. 본가(本家)는 충남 예산이다. 이 전 총재는 1992년 감사원장으로 임명됐다. 본가를 고려한 인사였다.

대법관 재직 때부터 이 전 총재와 가깝게 지낸 임 회장은 “(임명권자가) 능력을 보고 판단했겠지만, 본가도 (감사원장으로 임명되는 데) 영향을 미쳤으니 앞으로 ‘백소회’에 나오라”고 권유했다.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 마애여래삼존상(磨崖如來三尊像).

이 전 총재가 ‘백소회’ 멤버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20대 총선에서 4선 고지에 오른 나경원, 3선에 성공한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도 충청도가 고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백소회’ 회원인 것은 부친의 고향이 충청도이기 때문이다. 나 의원의 부친은 충북 영동, 이 의원의 아버지는 충북 제천 출신이다.

백소회가 정치권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97년 대선 때다. 당시 신한국당 대표였던 이 전 총재의 수석 특보는 고흥길 전 의원이었다. 정치부 기자들은 이 전 총재와 고 전 의원의 연결점을 찾지 못했다. 이 전 총재가 고 전 의원을 어떤 이유로 수석 특보로 임명했는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기자들로부터 관련 질문이 쏟아지자, 이 전 총재는 “작년(1996년) 말 충청권 인사들의 모임인 백소회에서 고 전 의원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다.

백소회는 26년째 매월 셋째 금요일 오전 7시 조찬 모임을 갖고 있다. 회비는 없다. 임 회장은 “조찬회 경비를 ‘기쁜 마음으로 후원하겠다’는 회원분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백소회의 큰손은 충청에 연고가 있는 한화그룹이다. 지난 2년간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 루비홀에서 열린 송년회는 한화그룹의 류수희 고문(충남 공주)이 후원했다.

앞서 소개한 창립 멤버는 모임에 잘 나오지 않는다. 건강 등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다. 임 회장은 “조찬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탈퇴한 것은 아니다”며 “잠깐 (명단에서) 이름을 빼놨다가 나오면 다시 넣곤 한다”고 했다.

모임에 꾸준히 나오는 인사는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신경식 헌정회(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 회장, 조부영 전 국회부의장,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다.

이 밖의 회원으로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 박병석, 양승조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청원, 정진석, 정우택, 홍문표, 홍일표,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 이인제, 김현욱 전 의원, 권선택 대전시장, 안상수 무소속 의원, 강영훈 전 총리,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조영제 한국금융연수원장,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임종건 전 《서울경제》 부회장, 박성규 전 1군사령관, 정태익 전 대사, 유문상 전 EBS 부사장, 국제구호단체인 아이러브아프리카 이창욱 이사장, 임남순 한국전통문화연구원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송인준 전 헌법재판관, 김종구 전 법무부 장관, 김시중 전 과학기술처 장관 등이 있다.

백소회 회장 총선 직후 반기문과 통화

백소회를 이끌고 있는 임덕규 《디플로머시》 회장은 반기문 총장과 가까운 사이다. 그는 20대 총선 직후 반 총장과 통화를 했다.

반 총장은 백소회 회원이 아니다. 대외 활동을 활발히 하는 반 총장의 동생 반기상씨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반 총장과 ‘백소회’가 깊은 관련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백소회를 이끄는 임덕규 회장에게 있다.

반 총장과 임 회장은 아주 가까운 사이다. 임 회장과 반 총장의 인연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 회장은 한국·인도 친선협회 간사로, 반 총장은 인도대사관 3등 사무관으로 첫 만남을 가진 이후 37년간 끈끈한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4년 1월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던 반 총장에게 유엔사무총장 출마를 권유한 것도 임 회장이다. 당시 반 총장의 반응은 “어떻게 제가 합니까”라며 그냥 웃었다고 한다.

임 회장은 “반 총장의 출마를 설득한 이후 선거운동을 하면서 외국 대사들을 만나 인사를 할 때 한국말로 ‘반사모！’를 복창시켰다”면서 “수십 년간 외교 잡지를 발간하면서 직접 인터뷰를 한 330여 명의 외국 왕·총리·대통령 등 전 세계 인적 네트워크를 풀가동했다”고 했다.

반 총장은 지난 2008년 7월 4일 임 회장이 마련한 반 총장 방한 환영 조찬회에서 임 회장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임 회장과는 《디플로머시》 창간 이후 제가 외교관 초년병 시절부터 친구처럼 지내왔습니다. 사람들이 왜 임 회장이 주최하는 환영 조찬에 가느냐고 묻는데, 국내외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 중 임 회장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디플로머시》는 영문 외교 전문 월간지다. 임 회장은 지난 1975년 8월부터 《디플로머시》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전화를 잡혀 당시 돈 300만원을 빌려 사무실을 내고, 집을 잡혀 ‘한·미 관계’를 커버스토리로 한 창간호를 발간했다. 그 후로 30여 년간 《디플로머시》에는 대처 전 영국 수상, 장쩌민 전 중국 주석,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등 약 380명의 각국 정상이 표지인물로 등장했다.

임 회장은 반 총장의 일정을 정확히 꿰고 있다. 유엔으로부터 반 총장의 일정표를 받는데다가, 전화통화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임 회장은 총선 직후에도 반 총장과 통화를 했다.

“5월 초에 반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반 총장 이름 팔아서 정치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했죠. 있으면 큰일 나잖아요. 제 이야기를 듣더니 반 총장이 웃더라고요. 본인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지난 4·13총선을 앞두고 반 총장을 내세운 정당들이 등장했다. 친반평화통일당, 친반국민대통합, 친반통일당, 친반연대가 그것이다. 반 총장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생겨난 ‘친반’ 정당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임 회장 외에도 ‘백소회’에는 반 총장과 가까운 인물이 많다.

초대 이집트 대사(외무고시 2회)를 역임한 정태익 한국외교협회장은 반 총장과 50년 넘는 인연을 자랑한다. 정 전 대사가 반 총장을 처음 만난 것은 1964년이다. 국제학생회의(ISA) 주최로 한국에서 제1회 아시아 대회를 개최했는데, 당시 반 총장은 서울대 문리대 대표로 대회에 참석했다. 서울대 법대생이었던 정 전 대사는 ISA 회장이었다. 정 전 대사는 “서울법대에서 국제법외교학회의 회장직을 맡은 경험으로 ISA 회장도 역임했었다”며 “그때 반 총장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주제로 외국 학생들과 영어로 토론했는데, 너무 잘해서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정태익 전 대사는 반 총장과 외무부 입부(入部) 동기이기도 하다. 정 전 대사는 외무고시 2회, 반 총장은 3회지만 1970년에 같이 입부했다. 그의 이야기다.

“제가 현역 장교인 상태에서 시험에 합격해 바로 입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기수 후배인 반 총장과 같이 입부하게 된 것이지요. 동향이고, 학생 때부터 알았기 때문에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도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만나곤 합니다.”

임 회장은 “(회원 중에) 반 총장을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회원 모두와 가깝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백소회, 반기문의 사조직 역할 하나?

윤상현 무소속 의원은 충청포럼의 제2대 회장이다. 충청포럼은 충청 출신 주요 인사들이 주축이 돼 지난 2000년 11월 창립한 비영리·비정치 연구모임이다. 반기문 총장도 회원이다.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다. 새누리당 내 대권주자들이 총선 패배로 존재감이 사라지면서 더욱 그렇다. ‘정치는 생물’이지만 나올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경북의 3선 의원의 이야기다.

“흔히 반 총장은 권력의지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권력의지가 부족한 사람이 유엔 총장 자리에 오른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그가 외교통상부 장관까지는 관료였을지 몰라도, 선거운동을 하고 총장을 지낸 지난 10년은 정치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인데, 반 총장은 한번 마음을 먹으면 끝까지 간다고 합니다. 유엔사무총장 선거를 하면서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을 수십 번 만나 자신이 유엔사무총장이 돼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합니다. 충청도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며 뭉치고 있습니다. 반 총장이 이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택수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대표도 “반기문 총장이 대선 관련 질문에 ‘노코멘트’를 한 것은 조심스럽게 차기 대선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정치권에서 통상적으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 사실상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본다”고 했다.

실제 뉴욕에서 전해지는 기류 변화도 있다. 전기(前期) 때만 해도 반 총장은 대망론에 대해 철저히 선을 그었다. 측근들은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연임 임기를 마치는 2016년 말부터 대선이 끝날 때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했다. 요즘은 다르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직업’이라지만, 드물게 시간이 났을 때 가까운 사람들과 한잔하며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찮다. 뉴욕에서 그와 접촉했던 한 인사는 “반 총장은 지금도 누구보다 건강하고 부지런하다. 무엇보다 공적인 일에 헌신하려는 열망이 강하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에게 구순(九旬) 축하 편지를 보냈다. ‘족적(足跡) 예찬’과 ‘건안(健安) 기원’에 멈추지 않고 ‘향후 지도 편달’까지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JP는 반 총장에게 금의환향하라는 답장을 보냈다. ‘충청권 대망론’의 신구(新舊) 간판이 주고받은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 총장이 대선 상륙작전에 나설 경우 ‘백소회’는 가장 큰 지원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임 회장은 “우린 정치적인 모임이 아니다”고 선을 긋지만, 반 총장이 대선에 나서면 대동단결해 도울 것이란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공무원 출신 백소회 회원은 “야당 성향 인사 몇몇을 빼고는 대부분의 백소회 회원이 반 총장을 돕고 나설 것”이라며 “대선주자의 몸은 하나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만나야 할 사람은 수천만이다. 이른바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 꾸려진 ‘백소회’는 반 총장을 대신해 사람들을 만나 지지를 넓히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백소회가 반 총장의 외곽 조직 역할을 할 것이란 이야기다.

역대 대통령은 대선주자 시절 사조직을 유지했다. 이명박 대통령에겐 ‘선진국민연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노사모’,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는 ‘민주산악회’가 있었다.

충청포럼, 청명회, 반존사 등 존재

반기문 총장의 최측근인 윤여철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은 친구 사이다.

반 총장과 관련이 있는 단체는 ‘백소회’ 외에도 여럿이다. 대표적인 게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이 되기 전 자주 참석한 충청포럼이다. 충청포럼은 고 성완종 회장이 만들었다. ‘충청포럼’은 충청 출신 주요 인사들이 주축이 돼 지난 2000년 11월 창립한 비영리·비정치 연구모임이다. 반 총장은 창립 때부터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충청포럼은 2015년 반 총장을 대선 후보로 영입하자면서 ‘반기문 대망론’을 제기해 주목받기도 했다. 충청포럼의 현 회장은 친박 핵심인 윤상현 무소속 의원이다. 윤 의원은 김무성 전 대표를 겨냥해 “죽여버리게” 등의 막말을 퍼부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20대 총선 공천에서 배제, 탈당했다. 윤 의원은 무소속으로 인천 남을에서 당선됐다.

윤 의원은 2016년 1월 24일 충청포럼 회장 자리에 올랐다. 충청포럼은 이날 열린 전국총회에서 윤 의원을 2대 회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해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윤 의원은 반 총장의 최측근인 윤여철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각별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의원은 “서울대학교 81학번 동기”라며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라고 했다. 윤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 윤 비서관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외교부 의전장이었던 윤여철 비서관은 2016년 2월 24일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같은 1급(실장) 자리이긴 하지만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외교부 의전장으로 오는 경우는 있어도 반대인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윤 비서관의 청와대행은 외교가에서 화제가 됐다. 반 총장의 가족과도 막역한 윤 비서관이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하게 되자 정치권과 외교가에선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나왔다.

익명을 원한 새누리당 인사는 “박 대통령은 논란이 일 수 있는 일은 아예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윤 비서관을 받아들인 것을 보면 반 총장에 대해 관대한 것으로 봐도 될 것”이라고 했다.

2012년 8월 14일 반기문 UN사무총장 연임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청명회. 가운뎃줄 왼쪽에서 5번째가 이시종 지사, 6번째가 반기문 총장. 사진=청명회

충청포럼에는 반 총장을 비롯해 정운찬 전 국무총리, 최수현 전 금융감독원장, 서영제 전 대구고검장,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신각수 전 주일본 대사(9회), 황우석 박사와 김현일 충북언론인연합회장, 윤종웅 전 진로 대표이사, 송현승 전 ‘연합뉴스’ 사장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정·관계 주요 인사들만 줄잡아 100명 가까이 포진해 있다.

‘청명회’는 반 총장이 애정을 보이는 모임이다. 유엔의 수장에 오른 뒤 한국적인 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에서 초·중·고·대학 동창회 등, 관련 모임에 불참해 온 반 총장은 2012년 8월 14일 ‘청명회’가 마련한 연임축하 모임에는 참석했다. 청명회 관계자는 “반기문 총장이 방한했을 때 바쁜 일정 관계로 다른 모임에는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청명회 모임만큼은 웬만해서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청명회는 1980년대 정종택 전 환경부 장관 주도로 만들어진 친목·봉사 모임이다. 박재갑 초대 국립암센터 원장, 김호일 전 의원, 임병준 전 감사원 서기관, 김만기 전 청주 부시장을 비롯해 전·현직 충북도지사와 충북 출신 단체장이 회원으로 있다.

반존사 김동성 사무총장(왼쪽)은 “반존사는 정치적인 모임이 아니라 반 총장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친목모임”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총장과 반 총장 부부. 사진=반존사

‘반존사’도 있다. 충주고등학교 시절 반 총장의 RCY단장 직속 후배인 김동성씨가 2013년 창립한 단체로 국회의원, 경영인, 문화인, 교육계, 사회단체장, 연예인 등 각계 인사 292명의 회원으로 구성됐다.

‘반기문 대망론’이 나오면서 주목받았는데, 지난 2012년 10월 29일 반 총장이 서울평화상을 받을 당시 반존사 회원 125명이 조직위원회로부터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 총장은 2013년 8월 25일 음성군 반기문 기념관에서 ‘반존사’ 회장단을 접견하기도 했다.

반존사 사무총장인 김동성씨는 “정치적인 모임이 아니라 총장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친목모임”이라고 했다.

이필용 음성군수,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 이인영 더민주 의원, 이영하 전 레바논 대사, 최성원 백강그룹 회장, 고길호 신안군수, 주광남 금강철강 회장, 이상면 전 서울대 법대 교수, 최충경 창원상공회의소 회장, 변봉덕 경기도 성남상공회의소 회장, 이준배 충북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 탤런트 김수미씨, 정서율, 김하정 아나운서, 가수 설운도씨 등이 회원으로 있다.

1988년 만들어진 비서실장 모임인 ‘청심회(靑心會)’도 반 총장이 신경 쓰는 모임이다. 국무총리실 의전비서관 때 모임에 가입했다. 당시 검찰총장, 경찰청장, 감사원장, 국세청장, 각 부처 장관의 비서실장이었던 인사가 회원이다. 회원 수가 적어(15~16명) 유대감이 높다고 한다. 청심회 관계자는 “유엔사무총장이 되고 나서는 참석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안부는 꾸준히 메일로 주고받는다”고 덧붙였다.

반기문의 사적모임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왼쪽)가 2015년 9월 20일(현지시각) 뉴욕 유엔(UN)본부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환담을 가졌다. 사진=세계태권도연맹

관우회(寬祐會)도 있다. 회원은 20명 정도다. 1994년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안청시 서울대 명예교수, 민준기 전 경희대 교수가 만들었다. 초대 회장은 조 총재였다. “관용을 베푸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관우회라고 했다”며 “반 총장은 창립멤버는 아니지만, 모임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고 했다. 그는 “반 총장이 2007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바쁜 시간을 쪼개 모임에 나왔다”며 “재미있는 추억이 많다. 지금도 (반 총장과)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관우회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조 총재는 모임을 만들기 전부터 반 총장과 알고 지냈다.

“1980년 초였어요. 하루는 선친(경희대 설립자 조영식 박사)께서 유엔에 평화의 날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셨어요. 당시 우리는 유엔 가맹국이 아니었어요. 물어물어 평화의 날이 지정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냈죠. 선친께서 세계대학총장회의에서 평화의 날 제정을 제안하셨어요. 만장일치로 통과됐죠. 통과된 안을 유엔에 제안해야 하는데 우리가 유엔 가맹국이 아니다 보니 전달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때 만난 게 유엔과장이던 반 총장이었죠. 반 총장 덕분에 유엔에 평화의 날 지정을 제안할 수 있었죠. 그게 받아들여져서 유엔은 1981년부터 매년 9월 21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지정했어요.”

그는 “반 총장이 오스트리아 대사직을 수행한 1998년에 오스트리아에서 등산했던 게 가장 생각이 난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제가 오스트리아 가기 전에 등산할 수 있는 산을 좀 알아봐 달라고 했거든요. 그때 반 총장이, ‘골프장 예약을 부탁하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등산 코스 알아봐 달라고 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라며 ‘한승수 총리도 등산을 좋아하는데 잘 맞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등산 이후 폭탄주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관우회 창립멤버인 안청시 서울대 교수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오랜 친구다.

관우회 창립멤버인 안청시 교수는 반 총장의 오랜 벗이다. 안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반 총장과의 인연을 이같이 밝혔다.

“우린 생각이 같고 환경이 비슷한 처지라 대학에 입학(서울대 외교학과 63학번)하면서부터 마음이 통했습니다. 그는 충주(忠州) 나는 상주(尙州), 다 같이 ‘주(州)’자 고을 출신에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꿈도 애초에는 유엔사무총장으로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꿈이 불가능하다 생각했습니다. 반 총장과 ‘외교관 해봤자 총장은 틀렸어’라고 나눈 말이 기억납니다. 그는 재학 중 군 복무를 하고 외무고시를 택해 외교관의 길을 갔고, 저는 대학원 재학 중 해군장교 시험을 거쳐 해군대학에서 교수 요원으로 복무하고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났습니다.”

반 총장을 다룬 책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충주에선 유명인사에 속하는 편이었는데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해서 보니 시골에서 올라온 그저 촌놈일 뿐이었다. 같이 공부도 할 수 있는 마음 맞는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눈에 띄었다. 깔끔한 교복을 입었지만, 왠지 어색해 보이는 몸짓을 보니 시골 촌놈 냄새가 풍겨 왔다. 한눈에 자신과 같은 처지임을 알 수 있었다. 반기문이 먼저 말을 건넸다. “나는 충주에서 온 반기문이야.” “그래? 난 김천에서 왔어. 안청시라고 한다.” 촌놈 출신이어서인지 둘은 기질이 비슷했다. 더불어 소주도 많이 마셨지만, 도서관이 더 잘 어울리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회원으로는 반 총장, 조정원 총재, 안청시 교수, 민준기 전 교수 외에 성낙인 서울대 총장, 송복 연세대 교수, 김희중 《경향신문》 감사, 광주고검장을 역임한 원정일 변호사, 윤홍선 전 총리실 정무비서관(정책), 조건호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