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탈당으로 박근혜 운신 폭 넓어져
⊙ 손학규 앞세워 反盧-호남-통합세력 규합하면 안철수 신당 가능
金亨俊
⊙ 59세.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 손학규 앞세워 反盧-호남-통합세력 규합하면 안철수 신당 가능
金亨俊
⊙ 59세.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 現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저서: 《젠더 폴리시스》.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는 2015년 12월 13일 새정연 탈당을 선언했다. 사진=조선일보
안철수(安哲秀) 의원이 1년 9개월 전 자신이 공동 창업주로 참여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을 탈당(脫黨)했다. 자신이 제안한 문재인(文在寅) 대표 사퇴를 전제로 한 혁신 전당대회를 문 대표가 거부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안 의원은 2015년 11월 29일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며 ‘혁신 전당대회’를 제안한 데 이어 12월 6일에는 “저와 함께 우리 당을 바꿔 나갈 생각이 없다면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라며 문 대표에게 최후 통첩을 했다. 문 대표가 이를 거부하자 안 의원은 12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야당으론 희망이 없다”며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 만들겠다”면서 탈당을 공식 선언했다.
이로써 지난 2012년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 이후 만들어졌던 문재인·안철수의 3년간 애증관계는 끝이 났다. 안철수 의원은 왜 탈당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선택했을까. ‘간철수’가 아닌 ‘강(强)철수’의 길을 걷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세 가지 가설(假說)이 존재한다.
안철수의 트라우마
첫째, 문재인 대표 개인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감정적 앙금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감정은 적어도 지난 2012년 대선(大選) 후보 단일화 과정부터 시작되었다. 단일화 최종 단계에서 안 의원은 문 대표와 담판하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악마의 얼굴’을 봤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세력도 없고, 조직도 없던 안 의원은 ‘정권교체’라는 대의(大義)를 주장하는 문 대표의 회유와 압박에 무릎을 꿇었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2012년의 ‘아름답지 못했던 후보 단일화’는 안 의원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안 의원은 2014년 3월 2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어 공동대표 직을 맡았지만 친노(親盧) 비(非)주류는 안 의원을 끊임없이 흔들어 댔다. 급기야 작년 7·29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안 의원은 공동대표 직에서 물러났고 문재인 대표 체제가 출범했다. 그 이후 문 대표가 보여 준 독단과 독선, 그리고 새정연의 4·29 재·보궐 참패에 대한 문 대표의 황당한 책임회피 등을 바라보면서 ‘이 사람과 함께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여기에 우선 새정연의 세력 판도가 바뀐 것도 탈당 결행의 이유로 보인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2주 전 안 의원이 ‘문·안·박 연대’를 거부하고 ‘혁신 전당대회’를 주장할 때만 해도 ‘발목 그만 잡고 웬만하면 합쳐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안 의원이 깃발을 굳게 부여잡자 구당(救黨) 모임과 호남파 등 비노(非盧) 진영들이 모여들었다〉고 보도했다. 어느새 안 의원이 ‘독불장군에서 비주류의 구심점으로 부상’한 것이 탈당을 강행한 동기가 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둘째, 2012년 손학규(孫鶴圭) 대표가 겪었던 실패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작용한 것 같다. 지난 2012년 민주당의 총선 과정과 대선후보 경선 과정을 복기해 보면 왜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해답이 나온다.
2011년 11월 3일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는 2012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의 승리를 위해서 민주진보 진영 연석회의를 열었다. 그 이후 민주당, 혁신과 통합, 한국노총과 진보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민주통합당이 창당됐다.
2012년 1월에는 모바일·지역현장 투표와 대의원 투표를 통해 친노의 대모 격인 한명숙(韓明淑)이 24.05%(25만2986표)를 얻어 민주당의 초대 당대표에 선출됐다. 한 대표는 손 전 대표를 철저하게 배제한 채 친노 이해찬(李海讚)·문재인과 손을 잡고 2012년 총선 공천을 완전 장악했다. 개혁공천이라는 이름하에 친노 인사들을 대거 공천했고, 이들은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자 한명숙 대표는 물러났지만 강성 원조 친노인 이해찬 의원이 김한길 의원을 누르고 새 대표가 됐다. 두 번이나 당권(黨權)을 장악한 친노 세력은 의도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치 초년생인 문재인 의원을 대선후보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손 전 대표는 야권이 통합되면 정치 경험과 경륜이 압도적으로 많은 자신이 대선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착각 속에서 친노 당 대표 체제 출범을 방조·묵인했다. 그러나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손 대표는 참패했다.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완전국민경선으로 치러진 가운데 선거인단 108만5004명이 신청했다. 문재인 후보는 전국 순회투표에서 13연승을 기록하면서 전승(全勝)을 거두었고, 누적 득표에서 34만7183표(56.5%)로 과반을 얻어 결선투표 없이 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2위는 13만6205표(22.2%)를 얻은 손학규 후보가 차지했다.
문재인 대표가 안철수 의원이 주장하는 혁신 전대를 왜 그토록 반대했는지 이유가 여기에 숨어 있다. 문 대표는 당권을 장악해야 공천에서 친노 세력으로 물갈이를 할 수 있고 20대 국회에 입성하는 친노 의원들의 적극적 도움을 받아 자신이 대선후보가 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사퇴를 전제로 한 혁신 전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문 대표는 뻔히 예고된 파국을 못 막은 것이 아니라 막지 않은 것이다. 안 의원이 나간 것이 아니라 문 대표가 내쫓은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안 의원은 정치학습을 통해 문 대표와 친노의 이런 숨은 의도를 간파하고 ‘제2의 손학규’가 되지 않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문재인의 들러리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봐야 한다.
문재인의 안이한 상황판단
셋째, 대선주자로서 정치적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안철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안 의원은 대선이 있던 지난 2012년 7월에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 책의 부제(副題)는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로 되어 있다.
2015년 9월 초부터 낡은 진보 청산·부패척결·인재영입 등 10대 혁신안을 제시하며 당의 혁신을 주문했다. 그런데 문 대표는 안 의원에게 ‘문·안·박 연대’를 제안했다. 수도권 의원들은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이 사실상의 공동 대표로서 공천권 등 전권을 행사하라는 내용이 담긴 ‘문·안 공동 비대위(非對委) 체제’라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이런 중재안에 수도권 의원 64명 중 40여 명이 서명을 했다.
그러나 안 의원은 “문·안·박의 변형에 불과하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런 제안들은 해법이 아니라 반드시 혁신되어야 할 ‘지분 나눠 먹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문 대표의 통찰력과 판단력에 심한 의문이 제기된다. 문 대표는 ‘새정연 공동 창업주인 안철수는 결코 당을 떠날 수 없다’고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 그만큼 문 대표가 어느 사이에 권력의 괴물이 되어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한 것이 입증됐다.
그런데 안 의원의 생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는 혁신하기 위해 탈당한 것이다. 이런 해석은 안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에서 잘 묻어나 있다. 그는 “이제 당 안에서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좀 더 크게 보면 안 의원은 통합하기 위해 탈당한다는 역설도 가능하다. 안 의원은 “그대로 머물러 안주하려는 힘은 너무도 강하고 저의 능력이, 힘이 부족했다”면서 “안에서 도저히 안 된다면, 밖에서라도 강한 충격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꼭 음모론적 시각에서 볼 필요는 없어
이제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말대로 허허발판에 혈혈단신으로 나섰다. 안 의원의 탈당은 단순한 의원 한 명이 야당을 떠났다는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 안 의원은 평소 새정연을 ‘친노, 운동권 정당’으로 규정하고 낡은 진보 청산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안 의원의 탈당으로 야당은 ‘친노 진보 야당’과 ‘중도 야당’으로 분화되는 분위기다. 탈당과 신당 창당, 그리고 합당과 같은 행태는 정당정치의 측면에서 볼 때 퇴행(退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현실이고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탈당을 나쁘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새누리당은 안철수 전 대표가 탈당한 데 대해 “20대 총선을 겨냥한 야권 단일화를 위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야권은 항상 보면 선거를 앞두고 분열했다 드라마틱한 야권 단일화를 통해 뭔가 유권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상기시켰다.
이런 시각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민생을 챙기고 경제를 살리는 입법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집안싸움만 하는 야당의 지긋지긋한 상황을 끝낼 수만 있다면 안철수 의원의 탈당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야당 분당 성공 사례
안철수의 탈당이 2011년 때와 같이 ‘안철수 바람(安風)’을 몰고 와서 야권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가 최대 관심사이다.
안 의원의 탈당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은 과거에도 야권 내에서 여러 차례 신당(新黨) 실험과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있었지만,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새정연 주류 세력의 집요한 만류와 방해로 안 의원을 따를 인사들의 수가 기대에 못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특히, 안 의원이 분당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경륜과 카리스마, 지역 조직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시 못할 이유라고 지적한다.
한국 정당사에서 제1야당에서 뛰쳐나와 창당해서 성공을 이룬 사례는 딱 두 번뿐이다. 1987년 5월 김영삼(YS)과 김대중(DJ)은 합심해 당시 제1야당이던 신한민주당을 쪼개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신한민주당이 이른바 ‘이민우(李敏雨) 구상’과 이철승(李哲承) 등의 내각제 개헌 주장으로 내분에 빠지자, YS와 DJ가 새로운 야당을 만들기로 합의하고 자신의 지지파 의원(상도동계, 동교동계)들을 탈당시켜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73명의 의원이 동반 탈당했다. 통일민주당은 6월 민주항쟁을 주도하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시켰다.
또 다른 사례는 1995년 9월 정계에 복귀한 DJ가 제1야당인 민주당을 깨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경우이다. YS 집권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외국으로 나갔던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은 1995년 지방선거를 측면 지원해 승리한 후, 그해 7월 18일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그해 9월 5일에는 제1야당이던 민주당을 깨고 새정치국민회의라는 신당을 창당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 95명 중 65명이 탈당해 국민회의는 제1야당이 되었다. 1996년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회의는 79석을 얻어 원내 제1당이 되었다. DJ는 새로 창당한 국민회의를 토대로 1997년 대선에서 김종필(JP)과 연대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 냈다.
독자 창당 가능성은?
안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이 끝난 뒤 “새로운 정당을 창당할 것인지, 다른 당에 합류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다음 기회에 말씀 드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이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독자적인 신당 창당이다.
안 의원은 일단 새정연 탈당파, 과거 신당을 함께 추진했던 정치권 인사들과 함께 신당 창당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역적으로는 호남과 수도권, 이념적으로는 중도 성향, 정치적으로는 양당(兩黨) 구도에 실망감을 느낀 무당층(無黨層)을 흡수하려고 할 것이다.
차기 대선과 권력에 민감한 현역 의원들은 유력 대권후보가 존재하는 신당과는 정치적 모험을 할 사람도 있기 때문에 신당 창당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런데 총선이 4개월 앞으로 다가와 당을 새로 만들기엔 시일이 촉박한 편이다. 정당법상 신당을 창당하기 위해서는 5개 이상의 시·도당(당원 1000명 이상)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난 1985년 2·12 총선에서 YS가 주도한 신한민주당은 총선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창당되어 관제(官製) 야당인 민한당을 제치고 제1야당이 됐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이명박(李明博) 정부 시절 친이(親李)계가 친박(親朴) 인사들에 대한 공천학살을 자행하자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 살아서 돌아오라”는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에 힘입어 친박연대라는 정당이 탄생했다. 총선을 불과 20여 일 앞둔 상태에서 물리적으로 신당 창당이 어렵게 되자, 방치돼 있던 작은 정당에 입당해 당명을 친박연대로 바꾼 것이다. 친박연대는 14명의 의원이 당선되어 제3당의 지위를 얻었다.
여하튼 동반 탈당 의원의 규모가 신당 창당 성공을 결정짓는 요인임에 틀림없다. 특히, 탈당 세력이 현역 의원 20명을 넘느냐가 관건이다. 국회의원이 20명 넘어야 원내교섭단체를 만들 수 있고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의원 비서실장 출신인 문병호 의원은 1차에 10여 명, 그리고 최대 30여 명의 의원이 동반 탈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권에서는 안 의원 탈당 이후 1~2주일 이내 대규모 동반 탈당이 이뤄지지 않으면 분당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그런데 탈당 규모와 상관없이 안 의원은 당분간 제3지대에 머물면서 정치 세력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집권 4년차 대통령들
2016년은 박근혜 대통령 집권 4년차를 맞이하는 해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야 레임덕을 막을 수 있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표〉에서 보듯이,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사를 보면, 대통령 집권 4년차에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집권 3년차 4분기 대통령 지지도에서 보수(保守) 정권 대통령들이 진보 정권 대통령들보다 평가가 더 좋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유일하게 긍정이 부정 평가보다 높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긍정(43%)과 부정(46%)의 비율이 비슷했다.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 성장률이 2.6%(KDI 전망치)로 역대 정권과 비교해 가장 낮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아마도 무기력한 야당에 의한 반사이익이 작용한 측면이 있다.
둘째,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김영삼 대통령 집권 4년차인 1996년과 박근혜 대통령 집권 4년차인 2016년 상황이 상당히 유사하다. 무엇보다 4년차에 총선이 치러지고,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분열되었다는 것이다. 야당의 분열은 결국 총선에서 여당의 승리로 이어지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셋째, 집권 4년차에 많은 정치지형의 변화가 일어났다. 가령,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6년에는 총선 이후 신3김 시대가 도래했다. 정계에서 은퇴했던 DJ가 제1야당(새정치국민회의) 총재로 화려하게 복귀하고, 집권 여당을 탈당해서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자민련을 창당한 JP는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총선에서 존재감 있는 제3정당의 총재로 부상했다.
김대중 정부 4년차에는 DJP(김대중·김종필) 공조가 붕괴되면서 이회창(李會昌)이 이끄는 한나라당과 JP의 자민련이 연대하는 신 여소야대(新與小野大) 상황이 만들어졌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시절에는 열린우리당 창당 멤버인 정동영(鄭東泳) 전 당의장과 김근태(金槿泰) 전 당의장이 노 대통령을 배제한 신당을 추진함으로써 여권 지형에 큰 지각변동이 있었다. 현직 대통령들이 퇴임 후 자신을 안전하게 보살펴 줄 집권당 후보를 지원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 대선 과정에 종종 개입했다. 그러나 대선과 퇴임 이후 결과는 현직 대통령의 뜻대로 된 적이 별로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년 총선을 ‘박근혜 없는 박근혜 선거’로 치르려고 할지도 모른다. 핵심은 공천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겠다.
김무성(金武星) 새누리당 대표는 평소 “공천권을 권력자가 절대로 손 못 대게 하겠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 주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들은 허언(虛言)으로 끝날 개연성이 크다.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접고 당헌·당규에 따라 공천하면 된다고 발을 뺐기 때문이다.
필자는 야권이 분열되면 여권도 분열될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해,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서 현 정부 장관 출신 및 청와대 출신 인사들을 대거 공천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내년 선거에서 여권 내 차기 대선후보 경선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박심(朴心)을 관철시킬 역할을 하고 퇴임 후에도 박 대통령을 적극 보좌할 ‘호위무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현재로선 전략공천 이외는 없다.
김무성 대표는 현역 의원 ‘컷오프(cut off·예비 심사)’와 전략공천에 대해 “나를 밟고 가라”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가 끝까지 반대하면 박 대통령이 결심을 할 수도 있다. 김무성 대표 체제를 무너뜨리고 비상대책위를 만들어 공천을 주도하거나, 대통령에게 ‘진실한 사람’들만을 모아 신당을 만들고 4당 체제(새누리당·박근혜 신당·새정연·안철수 신당)로 총선을 치르려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신당보다 비대위 체제가 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김한길을 보면 안철수가 보인다
여하튼 안철수 탈당은 박근혜 대통령으로 하여금 운신의 폭을 넓히고 여차하면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유인(誘因)을 제공했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 탈당의 최대 수혜자는 여당인 것이 맞지만 김 대표가 아니라 박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정치감각이 뛰어난 김무성 대표는 막판에 총선 룰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절충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요구하는 전략공천을 받아들이면서 당헌·당규에 규정된 경선 룰을 바꾸는 것이다. 기존의 ‘당원 50%, 국민여론조사 50%’ 경선 방식을 ‘당원 30%, 국민여론조사 70%’ 방식으로 바꾸는 빅딜을 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는 김 대표의 약속이 조금이나마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빅딜 과정에서 대통령과 김 대표 간에 간극이 심화되어 갈등이 증폭되면 안철수 의원에게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새누리당도 싫고 새정연도 싫다는 분위기기 확산되면 될수록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의 말대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절벽 앞에서” “국민의 삶을 돌보는 새로운 정치”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안철수 의원의 정치력이다. 그가 힘겨운 결단을 했어도 소수(少數)의 탈당으로 끝나느냐, 야권 재편으로 이어질 분당으로 확대되느냐는 전적으로 안 의원의 정치력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126명의 새정연 의원 중 몇 명이 탈당해 안철수 진영에 합류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거물급 비주류 핵심 인사들을 얼마나 끌어 오느냐가 분당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요인이 될 것이다.
수도권 출신이 많은 비주류의 중심인 김한길계의 탈당 여부가 탈당 규모와 파급력의 1차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김한길 의원은 “야권 통합을 위해 어렵사리 모셔온 안철수 의원을 막무가내 패권(覇權)정치가 기어코 내몰고 말았다”고 밝혔다. 김한길계인 주승용 전 최고위원은 “악마가 활개를 치는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모두 떠날 것이다”고 했다.
김한길 의원이 보여준 그동안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당장 탈당은 하지 않겠지만 결국 안 의원과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 김한길 의원을 보면 안철수 의원이 보인다.
김 의원은 2006년에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됐으나 이듬해 2007년 2월에 국회의원 23명과 함께 탈당했다. 탈당 배경에 대해, 당시 김 의원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이 하는 일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이 틀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모래알처럼 흩어진 우리 편을 한 그릇에 담아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안철수, 기득권 버려야
그 후 2007년 5월에 김한길 의원은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해 대표로 취임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08년 1월 6일 대선 패배로 노무현 프레임 극복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치가 실패한 데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제18대 총선 불출마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김한길 의원은 누구보다도 탈당→창당→합당의 과정을 몸소 경험해 본 사람이고, 원초적으로 ‘노무현의 사람’들과는 정치를 같이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번 안철수 의원의 탈당에는 김한길 의원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개연성이 있다. 그런데 안 의원의 정치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김한길 의원과의 연대(連帶)만으로는 부족하다. 안 의원이 주장한 대로 정권 교체를 위한 더 큰 통합과 더 큰 혁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최고의 선택은 정계 은퇴를 선언한 손학규 전 대표의 협조와 연대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손 전 대표는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접하면서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말대로 청산별곡(靑山別曲)을 다시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철수 의원이 손 전 대표를 영입하려면 정치를 멀리 그리고 길게 보면서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려야 손 전 대표를 얻을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 국회의원이 처음 되어 대통령이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노무현 대통령은 13대 국회인 1988년 총선에서 처음 당선되어 2002년에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이명박 대통령(1992~2007년)은 15년, 천하의 박근혜 대통령(1998~2012년)도 14년 걸렸다.
만약 안철수 의원이 손 전 대표를 만나 자신이 추진하는 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손학규 전 대표를 추대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면 손 전 대표를 움직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안철수 의원이 2017년 대권에 연연하지 말아야 정치력을 발휘해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안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에서 “스스로가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 세력을 만들고,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했다. 먼저 손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차기에 자신이 대통령 되겠다는 각오로 임하면 두렵고 무서울 것이 없다. 이것이 국민을 열광시키고 감동을 주는 정치이다.
안철수, 호남신당 구심점 되나?
안철수 의원이 손 전 대표를 모시는 데 성공하면 박영선, 김한길, 천정배, 김부겸 등 모든 반노(反盧) 중도 통합 세력을 모을 수 있다. 여기에 호남 민심이 안철수 신당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면 문재인 대표는 완전히 고립될 수밖에 없다.
그런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리얼미터의 차기 대권여론조사(12월 7~9일)에 따르면, ‘혁신전대’ 재고 요청 후 칩거에 들어간 안철수 의원의 지지율이 호남 지역에서 2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의원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28.5%로 지난주 13.9%에 비해 2배 이상 높아졌다. 반면 지난주 이 지역에서 24.3%로 가장 높았던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지지율은 15.8%로 8.5%포인트 하락했다. 박원순 시장의 지지율이 고스란히 안철수 전 대표에게 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안철수 의원이 호남신당에서 구심점 역할을 할 수가 있다는 호남 민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호남 지지도 상승에 힘입어 안 의원은 전국 지지율에서도 문 대표와의 격차를 줄였다. 문 대표의 지지율은 16.1%로 나타났고, 안철수 전 대표는 11.1%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주 여론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문재인 대표는 2.5%포인트 하락했고, 안철수 전 대표는 2.8%포인트 상승한 결과였다.
호남 민심이 이미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안철수 의원은 당분간 무소속 천정배 의원, 박준영 전 지사 등 야권 호남신당 세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자 행보를 할 것이다. 지역주의 타파를 외쳤던 안 의원이 호남신당 세력과 손을 잡는 것은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혁신이나 새정치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文·安의 경쟁은 사람 경쟁
안 의원의 입장에서 보면, 호남 의원들의 동반 탈당도 중요하지만 정운찬(鄭雲燦) 전 국무총리와 같은 중도 개혁 성향 인사들의 영입이 더 중요하다. 안 의원과 만난 정 전 총리가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여지를 남긴 만큼 십고초려(十顧草廬)를 해서라도 정 전 총리와 정치적 동행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만 안 의원은 호남을 넘어 중도·전국화라는 외연(外延)을 확대할 수 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안 의원의 탈당과 관련해 “안철수는 ‘중도’의 길로 가고, 문재인은 ‘진보’의 길로 가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제 세력과 세력, 당 대 당으로 노선 경쟁과 혁신 경쟁을 하는 것만 남았다”며 “(이는) 안철수는 과거 통합 전 ‘새정치’ 재건에 나서면서 새 인물을 모아 여전히 내용을 알 수 없는 ‘새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문재인은 민생복지노선-간단히 말하면 ‘을지로위원회’ 노선-을 강화하면서 대대적 인적 혁신과 통 큰 야권 연대에 나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교수의 주문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시야가 너무 좁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노선 경쟁이 아니라 사람 경쟁을 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이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서 손학규 전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야당 신당이 만들어지면 분명 신당 바람이 세차게 불 것이다.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를 토대로 수도권에서 신당 바람이 세차게 불면 새정연이 초토화되고 철저하게 고립될 수 있다. 무엇보다 신당은 새정연으로부터 야당의 정통성을 빼앗아 올 수 있다. 지난 1985년 2·12 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이 민한당을 제압해서 명실상부한 제1야당이 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가 단순한 정치적 상상력으로 끝날지 아니면 현실화될지는 전적으로 안철수 의원의 결심과 추진력에 달려 있다. 정치 경험이 적고 리더십이 없으며 그동안 결정적인 순간에 철수를 많이 했기 때문에 안 의원의 탈당 실험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안철수, 자신의 생각부터 정리해야
김영삼 전 대통령은 평소 “정치인은 오늘 사는 것보다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해야 한다”고 했다. 허허벌판에 선 안철수 의원이 깊이 음미하고 마음속 깊이 담아야 할 조언이다. 안 의원은 탈당 심경을 토로하면서 “저는 힘든 길을 선택했을 때가 타협할 때보다 결과가 좋았다”면서 “이번에도 잘될 것이다”라고 했다.
단순한 바람은 결과를 장담하지 못한다. 정치 입문 전 안 의원은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에서 〈내게 기대를 거는 분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고, 내가 가진 생각이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것인지, 또 내가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이야말로 안철수 의원이 초심으로 돌아가 ‘안철수의 생각’을 다시 면밀히 정리할 때다. 그리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정치는 기교나 운이 아니라 실력만큼 승부가 결정되는 아주 정직한 게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안 의원은 2015년 11월 29일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며 ‘혁신 전당대회’를 제안한 데 이어 12월 6일에는 “저와 함께 우리 당을 바꿔 나갈 생각이 없다면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라며 문 대표에게 최후 통첩을 했다. 문 대표가 이를 거부하자 안 의원은 12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야당으론 희망이 없다”며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 만들겠다”면서 탈당을 공식 선언했다.
이로써 지난 2012년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 이후 만들어졌던 문재인·안철수의 3년간 애증관계는 끝이 났다. 안철수 의원은 왜 탈당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선택했을까. ‘간철수’가 아닌 ‘강(强)철수’의 길을 걷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세 가지 가설(假說)이 존재한다.
안철수의 트라우마
첫째, 문재인 대표 개인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감정적 앙금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감정은 적어도 지난 2012년 대선(大選) 후보 단일화 과정부터 시작되었다. 단일화 최종 단계에서 안 의원은 문 대표와 담판하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악마의 얼굴’을 봤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세력도 없고, 조직도 없던 안 의원은 ‘정권교체’라는 대의(大義)를 주장하는 문 대표의 회유와 압박에 무릎을 꿇었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2012년의 ‘아름답지 못했던 후보 단일화’는 안 의원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안 의원은 2014년 3월 2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어 공동대표 직을 맡았지만 친노(親盧) 비(非)주류는 안 의원을 끊임없이 흔들어 댔다. 급기야 작년 7·29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안 의원은 공동대표 직에서 물러났고 문재인 대표 체제가 출범했다. 그 이후 문 대표가 보여 준 독단과 독선, 그리고 새정연의 4·29 재·보궐 참패에 대한 문 대표의 황당한 책임회피 등을 바라보면서 ‘이 사람과 함께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여기에 우선 새정연의 세력 판도가 바뀐 것도 탈당 결행의 이유로 보인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2주 전 안 의원이 ‘문·안·박 연대’를 거부하고 ‘혁신 전당대회’를 주장할 때만 해도 ‘발목 그만 잡고 웬만하면 합쳐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안 의원이 깃발을 굳게 부여잡자 구당(救黨) 모임과 호남파 등 비노(非盧) 진영들이 모여들었다〉고 보도했다. 어느새 안 의원이 ‘독불장군에서 비주류의 구심점으로 부상’한 것이 탈당을 강행한 동기가 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둘째, 2012년 손학규(孫鶴圭) 대표가 겪었던 실패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작용한 것 같다. 지난 2012년 민주당의 총선 과정과 대선후보 경선 과정을 복기해 보면 왜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해답이 나온다.
2011년 11월 3일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는 2012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의 승리를 위해서 민주진보 진영 연석회의를 열었다. 그 이후 민주당, 혁신과 통합, 한국노총과 진보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민주통합당이 창당됐다.
2012년 1월에는 모바일·지역현장 투표와 대의원 투표를 통해 친노의 대모 격인 한명숙(韓明淑)이 24.05%(25만2986표)를 얻어 민주당의 초대 당대표에 선출됐다. 한 대표는 손 전 대표를 철저하게 배제한 채 친노 이해찬(李海讚)·문재인과 손을 잡고 2012년 총선 공천을 완전 장악했다. 개혁공천이라는 이름하에 친노 인사들을 대거 공천했고, 이들은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자 한명숙 대표는 물러났지만 강성 원조 친노인 이해찬 의원이 김한길 의원을 누르고 새 대표가 됐다. 두 번이나 당권(黨權)을 장악한 친노 세력은 의도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치 초년생인 문재인 의원을 대선후보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손 전 대표는 야권이 통합되면 정치 경험과 경륜이 압도적으로 많은 자신이 대선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착각 속에서 친노 당 대표 체제 출범을 방조·묵인했다. 그러나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손 대표는 참패했다.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완전국민경선으로 치러진 가운데 선거인단 108만5004명이 신청했다. 문재인 후보는 전국 순회투표에서 13연승을 기록하면서 전승(全勝)을 거두었고, 누적 득표에서 34만7183표(56.5%)로 과반을 얻어 결선투표 없이 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2위는 13만6205표(22.2%)를 얻은 손학규 후보가 차지했다.
문재인 대표가 안철수 의원이 주장하는 혁신 전대를 왜 그토록 반대했는지 이유가 여기에 숨어 있다. 문 대표는 당권을 장악해야 공천에서 친노 세력으로 물갈이를 할 수 있고 20대 국회에 입성하는 친노 의원들의 적극적 도움을 받아 자신이 대선후보가 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사퇴를 전제로 한 혁신 전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문 대표는 뻔히 예고된 파국을 못 막은 것이 아니라 막지 않은 것이다. 안 의원이 나간 것이 아니라 문 대표가 내쫓은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안 의원은 정치학습을 통해 문 대표와 친노의 이런 숨은 의도를 간파하고 ‘제2의 손학규’가 되지 않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문재인의 들러리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봐야 한다.
문재인의 안이한 상황판단
셋째, 대선주자로서 정치적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안철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안 의원은 대선이 있던 지난 2012년 7월에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 책의 부제(副題)는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로 되어 있다.
2015년 9월 초부터 낡은 진보 청산·부패척결·인재영입 등 10대 혁신안을 제시하며 당의 혁신을 주문했다. 그런데 문 대표는 안 의원에게 ‘문·안·박 연대’를 제안했다. 수도권 의원들은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이 사실상의 공동 대표로서 공천권 등 전권을 행사하라는 내용이 담긴 ‘문·안 공동 비대위(非對委) 체제’라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이런 중재안에 수도권 의원 64명 중 40여 명이 서명을 했다.
그러나 안 의원은 “문·안·박의 변형에 불과하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런 제안들은 해법이 아니라 반드시 혁신되어야 할 ‘지분 나눠 먹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문 대표의 통찰력과 판단력에 심한 의문이 제기된다. 문 대표는 ‘새정연 공동 창업주인 안철수는 결코 당을 떠날 수 없다’고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 그만큼 문 대표가 어느 사이에 권력의 괴물이 되어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한 것이 입증됐다.
그런데 안 의원의 생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는 혁신하기 위해 탈당한 것이다. 이런 해석은 안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에서 잘 묻어나 있다. 그는 “이제 당 안에서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좀 더 크게 보면 안 의원은 통합하기 위해 탈당한다는 역설도 가능하다. 안 의원은 “그대로 머물러 안주하려는 힘은 너무도 강하고 저의 능력이, 힘이 부족했다”면서 “안에서 도저히 안 된다면, 밖에서라도 강한 충격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꼭 음모론적 시각에서 볼 필요는 없어
이제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말대로 허허발판에 혈혈단신으로 나섰다. 안 의원의 탈당은 단순한 의원 한 명이 야당을 떠났다는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 안 의원은 평소 새정연을 ‘친노, 운동권 정당’으로 규정하고 낡은 진보 청산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안 의원의 탈당으로 야당은 ‘친노 진보 야당’과 ‘중도 야당’으로 분화되는 분위기다. 탈당과 신당 창당, 그리고 합당과 같은 행태는 정당정치의 측면에서 볼 때 퇴행(退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현실이고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탈당을 나쁘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새누리당은 안철수 전 대표가 탈당한 데 대해 “20대 총선을 겨냥한 야권 단일화를 위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야권은 항상 보면 선거를 앞두고 분열했다 드라마틱한 야권 단일화를 통해 뭔가 유권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상기시켰다.
이런 시각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민생을 챙기고 경제를 살리는 입법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집안싸움만 하는 야당의 지긋지긋한 상황을 끝낼 수만 있다면 안철수 의원의 탈당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야당 분당 성공 사례
안철수의 탈당이 2011년 때와 같이 ‘안철수 바람(安風)’을 몰고 와서 야권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가 최대 관심사이다.
안 의원의 탈당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은 과거에도 야권 내에서 여러 차례 신당(新黨) 실험과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있었지만,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새정연 주류 세력의 집요한 만류와 방해로 안 의원을 따를 인사들의 수가 기대에 못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특히, 안 의원이 분당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경륜과 카리스마, 지역 조직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시 못할 이유라고 지적한다.
한국 정당사에서 제1야당에서 뛰쳐나와 창당해서 성공을 이룬 사례는 딱 두 번뿐이다. 1987년 5월 김영삼(YS)과 김대중(DJ)은 합심해 당시 제1야당이던 신한민주당을 쪼개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신한민주당이 이른바 ‘이민우(李敏雨) 구상’과 이철승(李哲承) 등의 내각제 개헌 주장으로 내분에 빠지자, YS와 DJ가 새로운 야당을 만들기로 합의하고 자신의 지지파 의원(상도동계, 동교동계)들을 탈당시켜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73명의 의원이 동반 탈당했다. 통일민주당은 6월 민주항쟁을 주도하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시켰다.
또 다른 사례는 1995년 9월 정계에 복귀한 DJ가 제1야당인 민주당을 깨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경우이다. YS 집권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외국으로 나갔던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은 1995년 지방선거를 측면 지원해 승리한 후, 그해 7월 18일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그해 9월 5일에는 제1야당이던 민주당을 깨고 새정치국민회의라는 신당을 창당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 95명 중 65명이 탈당해 국민회의는 제1야당이 되었다. 1996년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회의는 79석을 얻어 원내 제1당이 되었다. DJ는 새로 창당한 국민회의를 토대로 1997년 대선에서 김종필(JP)과 연대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 냈다.
독자 창당 가능성은?
안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이 끝난 뒤 “새로운 정당을 창당할 것인지, 다른 당에 합류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다음 기회에 말씀 드리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이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독자적인 신당 창당이다.
안 의원은 일단 새정연 탈당파, 과거 신당을 함께 추진했던 정치권 인사들과 함께 신당 창당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역적으로는 호남과 수도권, 이념적으로는 중도 성향, 정치적으로는 양당(兩黨) 구도에 실망감을 느낀 무당층(無黨層)을 흡수하려고 할 것이다.
차기 대선과 권력에 민감한 현역 의원들은 유력 대권후보가 존재하는 신당과는 정치적 모험을 할 사람도 있기 때문에 신당 창당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런데 총선이 4개월 앞으로 다가와 당을 새로 만들기엔 시일이 촉박한 편이다. 정당법상 신당을 창당하기 위해서는 5개 이상의 시·도당(당원 1000명 이상)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난 1985년 2·12 총선에서 YS가 주도한 신한민주당은 총선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창당되어 관제(官製) 야당인 민한당을 제치고 제1야당이 됐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이명박(李明博) 정부 시절 친이(親李)계가 친박(親朴) 인사들에 대한 공천학살을 자행하자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 살아서 돌아오라”는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에 힘입어 친박연대라는 정당이 탄생했다. 총선을 불과 20여 일 앞둔 상태에서 물리적으로 신당 창당이 어렵게 되자, 방치돼 있던 작은 정당에 입당해 당명을 친박연대로 바꾼 것이다. 친박연대는 14명의 의원이 당선되어 제3당의 지위를 얻었다.
여하튼 동반 탈당 의원의 규모가 신당 창당 성공을 결정짓는 요인임에 틀림없다. 특히, 탈당 세력이 현역 의원 20명을 넘느냐가 관건이다. 국회의원이 20명 넘어야 원내교섭단체를 만들 수 있고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의원 비서실장 출신인 문병호 의원은 1차에 10여 명, 그리고 최대 30여 명의 의원이 동반 탈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권에서는 안 의원 탈당 이후 1~2주일 이내 대규모 동반 탈당이 이뤄지지 않으면 분당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그런데 탈당 규모와 상관없이 안 의원은 당분간 제3지대에 머물면서 정치 세력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집권 4년차 대통령들
2016년은 박근혜 대통령 집권 4년차를 맞이하는 해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야 레임덕을 막을 수 있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표〉에서 보듯이,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사를 보면, 대통령 집권 4년차에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집권 3년차 4분기 대통령 지지도에서 보수(保守) 정권 대통령들이 진보 정권 대통령들보다 평가가 더 좋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유일하게 긍정이 부정 평가보다 높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긍정(43%)과 부정(46%)의 비율이 비슷했다.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 성장률이 2.6%(KDI 전망치)로 역대 정권과 비교해 가장 낮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아마도 무기력한 야당에 의한 반사이익이 작용한 측면이 있다.
둘째,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김영삼 대통령 집권 4년차인 1996년과 박근혜 대통령 집권 4년차인 2016년 상황이 상당히 유사하다. 무엇보다 4년차에 총선이 치러지고,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분열되었다는 것이다. 야당의 분열은 결국 총선에서 여당의 승리로 이어지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셋째, 집권 4년차에 많은 정치지형의 변화가 일어났다. 가령,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6년에는 총선 이후 신3김 시대가 도래했다. 정계에서 은퇴했던 DJ가 제1야당(새정치국민회의) 총재로 화려하게 복귀하고, 집권 여당을 탈당해서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자민련을 창당한 JP는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총선에서 존재감 있는 제3정당의 총재로 부상했다.
김대중 정부 4년차에는 DJP(김대중·김종필) 공조가 붕괴되면서 이회창(李會昌)이 이끄는 한나라당과 JP의 자민련이 연대하는 신 여소야대(新與小野大) 상황이 만들어졌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시절에는 열린우리당 창당 멤버인 정동영(鄭東泳) 전 당의장과 김근태(金槿泰) 전 당의장이 노 대통령을 배제한 신당을 추진함으로써 여권 지형에 큰 지각변동이 있었다. 현직 대통령들이 퇴임 후 자신을 안전하게 보살펴 줄 집권당 후보를 지원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 대선 과정에 종종 개입했다. 그러나 대선과 퇴임 이후 결과는 현직 대통령의 뜻대로 된 적이 별로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년 총선을 ‘박근혜 없는 박근혜 선거’로 치르려고 할지도 모른다. 핵심은 공천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겠다.
김무성(金武星) 새누리당 대표는 평소 “공천권을 권력자가 절대로 손 못 대게 하겠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 주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들은 허언(虛言)으로 끝날 개연성이 크다.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접고 당헌·당규에 따라 공천하면 된다고 발을 뺐기 때문이다.
필자는 야권이 분열되면 여권도 분열될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해,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서 현 정부 장관 출신 및 청와대 출신 인사들을 대거 공천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내년 선거에서 여권 내 차기 대선후보 경선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박심(朴心)을 관철시킬 역할을 하고 퇴임 후에도 박 대통령을 적극 보좌할 ‘호위무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현재로선 전략공천 이외는 없다.
김무성 대표는 현역 의원 ‘컷오프(cut off·예비 심사)’와 전략공천에 대해 “나를 밟고 가라”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가 끝까지 반대하면 박 대통령이 결심을 할 수도 있다. 김무성 대표 체제를 무너뜨리고 비상대책위를 만들어 공천을 주도하거나, 대통령에게 ‘진실한 사람’들만을 모아 신당을 만들고 4당 체제(새누리당·박근혜 신당·새정연·안철수 신당)로 총선을 치르려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신당보다 비대위 체제가 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김한길을 보면 안철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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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3월 26일 새정연 창당대회에서 안철수 김한길 공동대표가 대표 선출직후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
정치감각이 뛰어난 김무성 대표는 막판에 총선 룰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절충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요구하는 전략공천을 받아들이면서 당헌·당규에 규정된 경선 룰을 바꾸는 것이다. 기존의 ‘당원 50%, 국민여론조사 50%’ 경선 방식을 ‘당원 30%, 국민여론조사 70%’ 방식으로 바꾸는 빅딜을 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는 김 대표의 약속이 조금이나마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빅딜 과정에서 대통령과 김 대표 간에 간극이 심화되어 갈등이 증폭되면 안철수 의원에게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새누리당도 싫고 새정연도 싫다는 분위기기 확산되면 될수록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의 말대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절벽 앞에서” “국민의 삶을 돌보는 새로운 정치”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안철수 의원의 정치력이다. 그가 힘겨운 결단을 했어도 소수(少數)의 탈당으로 끝나느냐, 야권 재편으로 이어질 분당으로 확대되느냐는 전적으로 안 의원의 정치력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126명의 새정연 의원 중 몇 명이 탈당해 안철수 진영에 합류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거물급 비주류 핵심 인사들을 얼마나 끌어 오느냐가 분당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요인이 될 것이다.
수도권 출신이 많은 비주류의 중심인 김한길계의 탈당 여부가 탈당 규모와 파급력의 1차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김한길 의원은 “야권 통합을 위해 어렵사리 모셔온 안철수 의원을 막무가내 패권(覇權)정치가 기어코 내몰고 말았다”고 밝혔다. 김한길계인 주승용 전 최고위원은 “악마가 활개를 치는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모두 떠날 것이다”고 했다.
김한길 의원이 보여준 그동안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당장 탈당은 하지 않겠지만 결국 안 의원과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 김한길 의원을 보면 안철수 의원이 보인다.
김 의원은 2006년에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됐으나 이듬해 2007년 2월에 국회의원 23명과 함께 탈당했다. 탈당 배경에 대해, 당시 김 의원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이 하는 일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이 틀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모래알처럼 흩어진 우리 편을 한 그릇에 담아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안철수, 기득권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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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전 대표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잡아야 정치적 진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2013년 12월 5일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3주년 기념행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왼쪽)과 안철수 의원. 사진=조선일보 |
따라서 이번 안철수 의원의 탈당에는 김한길 의원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개연성이 있다. 그런데 안 의원의 정치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김한길 의원과의 연대(連帶)만으로는 부족하다. 안 의원이 주장한 대로 정권 교체를 위한 더 큰 통합과 더 큰 혁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최고의 선택은 정계 은퇴를 선언한 손학규 전 대표의 협조와 연대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손 전 대표는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접하면서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말대로 청산별곡(靑山別曲)을 다시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철수 의원이 손 전 대표를 영입하려면 정치를 멀리 그리고 길게 보면서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려야 손 전 대표를 얻을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 국회의원이 처음 되어 대통령이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노무현 대통령은 13대 국회인 1988년 총선에서 처음 당선되어 2002년에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이명박 대통령(1992~2007년)은 15년, 천하의 박근혜 대통령(1998~2012년)도 14년 걸렸다.
만약 안철수 의원이 손 전 대표를 만나 자신이 추진하는 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손학규 전 대표를 추대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면 손 전 대표를 움직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안철수 의원이 2017년 대권에 연연하지 말아야 정치력을 발휘해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안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에서 “스스로가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 세력을 만들고, 그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했다. 먼저 손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차기에 자신이 대통령 되겠다는 각오로 임하면 두렵고 무서울 것이 없다. 이것이 국민을 열광시키고 감동을 주는 정치이다.
안철수, 호남신당 구심점 되나?
안철수 의원이 손 전 대표를 모시는 데 성공하면 박영선, 김한길, 천정배, 김부겸 등 모든 반노(反盧) 중도 통합 세력을 모을 수 있다. 여기에 호남 민심이 안철수 신당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면 문재인 대표는 완전히 고립될 수밖에 없다.
그런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리얼미터의 차기 대권여론조사(12월 7~9일)에 따르면, ‘혁신전대’ 재고 요청 후 칩거에 들어간 안철수 의원의 지지율이 호남 지역에서 2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의원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28.5%로 지난주 13.9%에 비해 2배 이상 높아졌다. 반면 지난주 이 지역에서 24.3%로 가장 높았던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지지율은 15.8%로 8.5%포인트 하락했다. 박원순 시장의 지지율이 고스란히 안철수 전 대표에게 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안철수 의원이 호남신당에서 구심점 역할을 할 수가 있다는 호남 민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호남 지지도 상승에 힘입어 안 의원은 전국 지지율에서도 문 대표와의 격차를 줄였다. 문 대표의 지지율은 16.1%로 나타났고, 안철수 전 대표는 11.1%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주 여론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문재인 대표는 2.5%포인트 하락했고, 안철수 전 대표는 2.8%포인트 상승한 결과였다.
호남 민심이 이미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안철수 의원은 당분간 무소속 천정배 의원, 박준영 전 지사 등 야권 호남신당 세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자 행보를 할 것이다. 지역주의 타파를 외쳤던 안 의원이 호남신당 세력과 손을 잡는 것은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혁신이나 새정치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文·安의 경쟁은 사람 경쟁
안 의원의 입장에서 보면, 호남 의원들의 동반 탈당도 중요하지만 정운찬(鄭雲燦) 전 국무총리와 같은 중도 개혁 성향 인사들의 영입이 더 중요하다. 안 의원과 만난 정 전 총리가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여지를 남긴 만큼 십고초려(十顧草廬)를 해서라도 정 전 총리와 정치적 동행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만 안 의원은 호남을 넘어 중도·전국화라는 외연(外延)을 확대할 수 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안 의원의 탈당과 관련해 “안철수는 ‘중도’의 길로 가고, 문재인은 ‘진보’의 길로 가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제 세력과 세력, 당 대 당으로 노선 경쟁과 혁신 경쟁을 하는 것만 남았다”며 “(이는) 안철수는 과거 통합 전 ‘새정치’ 재건에 나서면서 새 인물을 모아 여전히 내용을 알 수 없는 ‘새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문재인은 민생복지노선-간단히 말하면 ‘을지로위원회’ 노선-을 강화하면서 대대적 인적 혁신과 통 큰 야권 연대에 나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교수의 주문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시야가 너무 좁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노선 경쟁이 아니라 사람 경쟁을 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이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서 손학규 전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야당 신당이 만들어지면 분명 신당 바람이 세차게 불 것이다.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를 토대로 수도권에서 신당 바람이 세차게 불면 새정연이 초토화되고 철저하게 고립될 수 있다. 무엇보다 신당은 새정연으로부터 야당의 정통성을 빼앗아 올 수 있다. 지난 1985년 2·12 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이 민한당을 제압해서 명실상부한 제1야당이 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가 단순한 정치적 상상력으로 끝날지 아니면 현실화될지는 전적으로 안철수 의원의 결심과 추진력에 달려 있다. 정치 경험이 적고 리더십이 없으며 그동안 결정적인 순간에 철수를 많이 했기 때문에 안 의원의 탈당 실험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안철수, 자신의 생각부터 정리해야
김영삼 전 대통령은 평소 “정치인은 오늘 사는 것보다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해야 한다”고 했다. 허허벌판에 선 안철수 의원이 깊이 음미하고 마음속 깊이 담아야 할 조언이다. 안 의원은 탈당 심경을 토로하면서 “저는 힘든 길을 선택했을 때가 타협할 때보다 결과가 좋았다”면서 “이번에도 잘될 것이다”라고 했다.
단순한 바람은 결과를 장담하지 못한다. 정치 입문 전 안 의원은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에서 〈내게 기대를 거는 분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고, 내가 가진 생각이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것인지, 또 내가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이야말로 안철수 의원이 초심으로 돌아가 ‘안철수의 생각’을 다시 면밀히 정리할 때다. 그리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정치는 기교나 운이 아니라 실력만큼 승부가 결정되는 아주 정직한 게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