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재정법 시행령·FTA피해보전규칙·학교보건법 장관훈령 등 30여건, 母法 위배
⊙ “국회입법 실질화 위해 하위법령에 대한 국회 통제권 보장 필요”(《헌법학원론》정종섭 著)
⊙ “국회입법 실질화 위해 하위법령에 대한 국회 통제권 보장 필요”(《헌법학원론》정종섭 著)
- 2015년 7월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투표’라고 적힌 종이를 들어 보이며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결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투표 불성립’이 선언돼 국회법 개정안은 사실상 자동 폐기됐다.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국회법(國會法) 개정안이 사실상 폐기됐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이어 여당의 원내대표 사퇴로까지 확대된 이번 국회법 개정안 파동은 출발부터 ‘정치적’이었다.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 적자구조 개선을 위해 야당의 협조가 필요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진상조사위원회의 인사를 ‘원하는 대로’ 임명하기 위해 국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우리 헌법은 정부의 행정입법(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에 대한 국회의 수정요청권 범위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만든 법령 중에는 모법(母法)의 입법취지에 반(反)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6월 ‘왜 국회는 행정입법의 수정·변경을 요청하는가’라는 자료를 통해 상위법을 위반한 시행령·시행규칙 사례를 공개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이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새누리당 유승민(劉承旼) 원내대표의 사퇴 여부에 집중하고 있을 때여서 이 같은 위반 사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행정편의주의적 발상?
자료에 따르면, 주요 시행령들 중에서 모법이 정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거나 또는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것들이 30여 건에 달한다.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 따른 행정입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예를 들어 누리과정에 대한 교부금 지원과 관련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 ‘유아교육법 시행령’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지방재정법 시행령’ 등은 모법의 입법목적을 위배하거나 위임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정부가 법적 근거 없이 해당 시행령을 만들어 누리과정에 대한 교부금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립대학 교직원에 대한 교육·연구비 지급과 관련해서는, ‘국립대학의 회계설치 및 재정운영에 관한 법률’이 해당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국립대학의 교원과 직원 모두에게 경비 지급). 그런데 교육부가 만든 ‘시행규칙’에는 교원(직원 제외)에게만 경비를 지급하도록 돼 있다. 모법이 정한 범위를 축소한 사례이다.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지원에 관한 법률’은 FTA 체결에 따라 피해를 입은 농어업인에게 피해 보전금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농식품부)가 ‘FTA피해보전규칙’을 만들면서 모법에 없는 ‘수입기여도(해외 수입으로 인한 피해 비중을 적용)’를 적용, 피해보상금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학교 주변에 호텔을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경기활성화와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는 관광진흥법을 개정해 학교 주변에도 호텔을 건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정부는 관광진흥법 개정이 여의치 않자, 학교보건법 하위 훈령(장관 훈령)을 개정해 해당 정책을 추진 중이다. 법률 정비가 시급한 대표적 사례이다.
이밖에 ‘의료법 시행규칙(의료법인의 부대사업 확대 관련)’ ‘근로기준법 시행령(평균임금 관련)’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외국인 카지노 공모제 관련)’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시험 시행·관리·채점 업무 등 재위탁 관련)’ 등이 모법과 상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성엽(柳成葉) 의원은 “국회법 개정은 물 건너 갔지만 상위법을 위반하는 하위법령을 추가로 모아 당 차원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이는 법치주의와 대의민주주의 구현에 직결되는 문제다. 하위법령에 대한 국회와 행정부의 입장을 반드시 정리하고 가야 한다”고 했다.
유 의원은 행정부가 제정한 하위법령이 법률에 위배된 경우 국회가 수정을 강제하는 것은 위헌(違憲)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행정입법이 상위법의 수권(授權)에 의해 허용된 것인 만큼 모법에 위반하는 내용이 있을 경우 이를 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학계 일부에서는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심판할 권한을 갖는다(이른바 대법원 전속권한)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입법권한이 강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국회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해 이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물론 국회와 정부의 헌법적 권한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합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국회는 이와 관련해 몇 차례 국회법 개정안을 내놓은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1998년 15대 국회의원 시절 ‘국회법 개정안(安商守 의원 대표 발의)’을 공동 발의(發議)했다. 당시 의원들은 개정안(改正案) 제안 이유로 “국회가 법률로 행정부에 위임한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의 행정입법이 대폭 증대하고 있으며 국민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한 실정인바, 국회가 이에 대한 통제를 강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히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는 행정입법에 대해 해당 중앙부처의 장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중앙부처의 장은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에 위배되거나 법률의 위임범위를 일탈한다는 의견이 제시된 때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이에 따른다고 돼 있다. 행정부가 국회의 명령을 따르도록 한 강제조항을 둔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된 국회법 개정안보다 강력하다. 유승민 사태의 빌미가 된 것은 “국회는 수정을 요구하고, 정부는 이를 처리해야 한다’는 정도다. 굳이 따지자면 국회의 수정 요구를 받은 정부가 받아주지 않아도 된다. ‘처리’는 행정적인 마무리를 뜻하는 것이지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이 개정안은 2000년 15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헌법학자 정종섭의 입장
재미있는 사실은 현재 행정자치부 수장(首長)으로 있는 정종섭(鄭宗燮) 장관의 입장이다. 헌법(憲法) 전문가인 정 장관은 자신의 대표 저서 《헌법학원론(2006년 초판·올해 초 10판 발행)》에서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책의 몇몇 대목을 인용한다.
〈국회는 원칙적으로 법률을 제정하고 대통령과 행정부는 법률을 집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중략) 집행명령도 그 내용과 효력의 발생·상실에서 모법인 근거 법률에 종속된다. 단지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세부 시행사항을 정하는 것이므로 법률에 없는 내용을 정할 수 없다. 따라서 근거 법률인 모법의 내용을 변경하거나 보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중략) 법률에 위반하는 내용을 정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권한의 남용은 통제할 필요가 있다. (중략) 대통령이 이에 필요한 위임명령을 발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의 책임을 질 뿐 아니라 탄핵사유에 해당한다. (중략) 대통령이 위헌 또는 위법인 대통령령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경우에 국회는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를 할 수도 있다. (중략) 법률에 대한 국회입법의 독점을 보다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위임입법의 경우에 하위법령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두 번 다시 국회법 개정안 얘기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은 국민을 대신해 각 부처를 잘 이끌어 주셔야 한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행로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나와 생각을 같이하라’고 한 만큼 부하가 쓴 책을 읽어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우리 헌법은 정부의 행정입법(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에 대한 국회의 수정요청권 범위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만든 법령 중에는 모법(母法)의 입법취지에 반(反)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6월 ‘왜 국회는 행정입법의 수정·변경을 요청하는가’라는 자료를 통해 상위법을 위반한 시행령·시행규칙 사례를 공개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이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새누리당 유승민(劉承旼) 원내대표의 사퇴 여부에 집중하고 있을 때여서 이 같은 위반 사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행정편의주의적 발상?
자료에 따르면, 주요 시행령들 중에서 모법이 정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거나 또는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것들이 30여 건에 달한다.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 따른 행정입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예를 들어 누리과정에 대한 교부금 지원과 관련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 ‘유아교육법 시행령’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지방재정법 시행령’ 등은 모법의 입법목적을 위배하거나 위임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정부가 법적 근거 없이 해당 시행령을 만들어 누리과정에 대한 교부금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립대학 교직원에 대한 교육·연구비 지급과 관련해서는, ‘국립대학의 회계설치 및 재정운영에 관한 법률’이 해당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국립대학의 교원과 직원 모두에게 경비 지급). 그런데 교육부가 만든 ‘시행규칙’에는 교원(직원 제외)에게만 경비를 지급하도록 돼 있다. 모법이 정한 범위를 축소한 사례이다.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지원에 관한 법률’은 FTA 체결에 따라 피해를 입은 농어업인에게 피해 보전금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농식품부)가 ‘FTA피해보전규칙’을 만들면서 모법에 없는 ‘수입기여도(해외 수입으로 인한 피해 비중을 적용)’를 적용, 피해보상금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학교 주변에 호텔을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경기활성화와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는 관광진흥법을 개정해 학교 주변에도 호텔을 건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정부는 관광진흥법 개정이 여의치 않자, 학교보건법 하위 훈령(장관 훈령)을 개정해 해당 정책을 추진 중이다. 법률 정비가 시급한 대표적 사례이다.
이밖에 ‘의료법 시행규칙(의료법인의 부대사업 확대 관련)’ ‘근로기준법 시행령(평균임금 관련)’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외국인 카지노 공모제 관련)’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시험 시행·관리·채점 업무 등 재위탁 관련)’ 등이 모법과 상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성엽(柳成葉) 의원은 “국회법 개정은 물 건너 갔지만 상위법을 위반하는 하위법령을 추가로 모아 당 차원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이는 법치주의와 대의민주주의 구현에 직결되는 문제다. 하위법령에 대한 국회와 행정부의 입장을 반드시 정리하고 가야 한다”고 했다.
유 의원은 행정부가 제정한 하위법령이 법률에 위배된 경우 국회가 수정을 강제하는 것은 위헌(違憲)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행정입법이 상위법의 수권(授權)에 의해 허용된 것인 만큼 모법에 위반하는 내용이 있을 경우 이를 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학계 일부에서는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심판할 권한을 갖는다(이른바 대법원 전속권한)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입법권한이 강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국회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해 이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물론 국회와 정부의 헌법적 권한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합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국회는 이와 관련해 몇 차례 국회법 개정안을 내놓은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1998년 15대 국회의원 시절 ‘국회법 개정안(安商守 의원 대표 발의)’을 공동 발의(發議)했다. 당시 의원들은 개정안(改正案) 제안 이유로 “국회가 법률로 행정부에 위임한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의 행정입법이 대폭 증대하고 있으며 국민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한 실정인바, 국회가 이에 대한 통제를 강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히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는 행정입법에 대해 해당 중앙부처의 장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중앙부처의 장은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에 위배되거나 법률의 위임범위를 일탈한다는 의견이 제시된 때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이에 따른다고 돼 있다. 행정부가 국회의 명령을 따르도록 한 강제조항을 둔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된 국회법 개정안보다 강력하다. 유승민 사태의 빌미가 된 것은 “국회는 수정을 요구하고, 정부는 이를 처리해야 한다’는 정도다. 굳이 따지자면 국회의 수정 요구를 받은 정부가 받아주지 않아도 된다. ‘처리’는 행정적인 마무리를 뜻하는 것이지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이 개정안은 2000년 15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헌법학자 정종섭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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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섭 현 행정자치부 장관이 쓴 《헌법학원론》. 헌법학자인 정 장관은 책에서 “국회입법의 실질화를 위해 하위법령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국회는 원칙적으로 법률을 제정하고 대통령과 행정부는 법률을 집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중략) 집행명령도 그 내용과 효력의 발생·상실에서 모법인 근거 법률에 종속된다. 단지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세부 시행사항을 정하는 것이므로 법률에 없는 내용을 정할 수 없다. 따라서 근거 법률인 모법의 내용을 변경하거나 보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중략) 법률에 위반하는 내용을 정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권한의 남용은 통제할 필요가 있다. (중략) 대통령이 이에 필요한 위임명령을 발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의 책임을 질 뿐 아니라 탄핵사유에 해당한다. (중략) 대통령이 위헌 또는 위법인 대통령령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경우에 국회는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를 할 수도 있다. (중략) 법률에 대한 국회입법의 독점을 보다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위임입법의 경우에 하위법령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두 번 다시 국회법 개정안 얘기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은 국민을 대신해 각 부처를 잘 이끌어 주셔야 한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행로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나와 생각을 같이하라’고 한 만큼 부하가 쓴 책을 읽어볼 일도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