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점검] ‘安哲秀 돌풍 진원지’ 전북의 민심 : 월간조선

여론조사 기관인 ‘큐리서치’가 지난해 9월 11일~10월 21일 전북 지역 거주자 1만1307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안철수(安哲秀) 의원이 신당을 창당한다면 지지하겠는가’의 조사에서 ‘안 의원이 신당을 창당한다면 지지하겠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34.4%, ‘민주당을 지지하겠다’는 27.6%였다(표본오차 95% 수준 ±0.92%). 이런 결과가 나오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주당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이라는 전북의 정치 지형이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으로 재편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들이 나왔다. ‘안철수 신당’이 출범할 경우 전북이 가장 큰 지지세력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정치권에서 나왔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만에 상황은 역전됐다.

‘휴먼리서치’가 지난 1월 27일 전북 지역 성인 10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겠다’는 전체의 30.1%, ‘민주당을 지지하겠다’는 42%로 조사됐다(표본오차 95% 수준 ±2.94%). 넉 달 만에 전북의 민심(民心)이 안철수 신당에서 민주당으로 유턴한 것이다.

같은 날 또 다른 여론조사 기관인 ‘코리아리서치’는 전북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유권자 1200명에게 ‘현재 전북도지사 선거 출마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중 누가 가장 나은가’를 물었다. 정동영(鄭東泳) 민주당 상임고문이 전체의 24.7%, 송하진(宋河珍) 현(現) 전주시장 23.2%, 유성엽(柳成葉) 무소속 국회의원(전북 정읍) 10.6%, 정운천(鄭雲天) 전(前)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10.5%, 강봉균(康奉均) 전 재정경제부 장관 7%였다(오차범위 전주시 95% 수준 ±4.4%포인트, 전북지역 95% 수준 ±2.8%포인트). 강봉균 전 장관은 오는 3월에 출범한다는 안철수 신당이 6월 지방선거에서 전북도지사 후보로 낼 사람으로 거론된다. 단순 선호도라고는 하지만, 강 전 장관에 대한 전북의 지지가 새누리당 정운천 전 장관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북 유권자들의 진심은 무엇일까. 왜 이들은 출범조차 하지 않은 ‘안철수 신당’에 높은 지지를 보냈다가, 몇 달 만에 민주당 지지로 마음을 바꾸었을까. 지난 2월 6~8일까지 전북의 대표 도시인 전주·익산·군산에 다녀왔다.

“정당 보곤 안 찍는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2012년 10월 5일, 전주시 우석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강연을 하는 모습.

서울보다는 다소 따뜻했지만 전주의 기온은 낮았다. 그리고 그 싸늘함 만큼이나 거리는 한산했다. 전주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만난 40대 택시기사는 “전주에 먹고살 것이 없다”고 했다. 전주에서 나고 자라 민주당을 지지했던 그는 지난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난생처음으로 비(非) 민주당 후보인 정운천(당시 한나라당 전북도지사 후보) 전 장관을 찍었다. 정운천 전 장관은 당시 전북에서 총 18.2%의 득표율을 얻었다.

“20년 넘게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이제 달라졌습니다. 민주당 찍어줘 봐야 우리한테 돌아오는 것이 없었습니다. 전주의 자랑이라는 ‘전주한옥마을’에 가보세요. 주말에나 사람이 있지 평일에는 한산합니다. 민주당이든 새누리당이든 당 보고는 안 찍습니다. 기업 유치해 온다는 사람을 찍을 겁니다. 후보들도 전주의 문제를 파악해 매번 공약에 기업 유치를 넣겠지요. 기업 끌어온다는 얘기를 안 하는 사람보다야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 있는 후보가 낫지 않습니까.”

익산시 중앙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C씨는 10여 년 전만 해도 7명의 미용기술 직원을 뒀었다. 몇 해 전부터는 혼자 운영을 한다. C씨는 “경기가 너무 안 좋다. 하루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이 있다”고 말했다. C씨는 오는 6월에 지방선거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누가 나오는지 큰 관심이 없다. 그에게는 민주당이든, 안철수 신당이든 다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일 뿐이다.

전주 시내 한 병원장 S씨의 말이다.

“전주는 지금 속으로 부글부글합니다. 산업이 전무(全無)해요. 전주 사람들 기질이 보드랍고, 양반스러워서 겉으로 드러내놓고 표현은 못 합니다. 하지만 속은 까맣습니다. 회사가 없어 돈이 안 돌아 먹고살기 빠듯한데, 박근혜(朴槿惠) 정부는 드러내놓고 홀대까지 하니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어떤 식으로 홀대를 한다는 겁니까.

“전북 출신 장관이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 지역 출신의 장관이 몇 명이냐가 정권이 그 지역을 바라보는 바로미터 아닙니까. 박근혜 정부에는 단 한 명이 없어요. 김관진(金寬鎭) 장관이 전주 사람이라지만 MB정권 때 뽑힌 사람이고, 이경옥(李京玉) 안전행정부 차관이 유일합니다. 자연스럽게 우리(전북)는 뭐냐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새누리 엎을 당이면 누구라도 좋다”

‘민주당 텃밭’인 전북에서 민주당을 바라보는 시각은 싸늘했다. 만나는 이들마다 얘기하는 ‘우리는 뭐냐’는 말은 푸념을 넘어서 민주당에 대한 배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전북도민일보》 박기홍 정치부장의 얘기다.

“전북은 지금 민주당에 대한 배신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과거 영남 정권하에서 느낀 소외감은 그렇다 치더라도, 김대중(金大中), 노무현(盧武鉉) 시절을 지나면서 얻은 것이 없다는 패배감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북 사람들은 ‘우리는 팽 당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지난 18대 대선(大選) 때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13.2%였습니다. 전남 10%, 광주 7.8%보다 높습니다. 전북 사람들이 과거처럼 민주당에 대해 무조건적 사랑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민주당에 지칠 만큼 지쳤고, 새로운 세력에 대해 끊임없이 갈망합니다. 민주당을 대체할 수 있으면서 새누리당에 맞설 수 있는 ‘그 누군가’ ‘그 무엇’에 대한 기대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해 ‘안철수 신당’에 대한 지지도가 민주당보다 높게 나온 이유가 이 때문입니까.

“그렇다고 봅니다. 전북 입장에서 민주당 말고 반(反)영남 정당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안철수였던 거죠.”

익명을 요구한 전북 소재 일간지의 K기자도 비슷한 분석이었다.

“민주당이 30년 독주했지만 달라진 게 없습니다. 모든 수혜는 광주가 받았고, 전북은 호남 내에서도 가장 소외당했다고 느낍니다. 전북이 유치할 것이라던 LH공사는 충청도가 가져가고, 프로야구 구단은 수원에 뺏겼습니다. 유일하게 전북 몫인 새만금 사업은 20년째 진척이 없습니다. 전북에서는 민주당을 두고 ‘무능(無能) 정당’이라고 합니다. 민주당에 대한 배신과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안철수라는 신(新)상품이 돌연 지난 대선 때 등장한 겁니다.”

―굳이 안철수가 아니라도 반새누리, 민주당 대체 인물이면 되는군요.

“그렇죠. 무능 민주당을 제치고, 새누리를 엎을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구라도 앞으로 전북은 지지할 겁니다.”

전북 소재 한 대학의 C교수는 ‘안철수 지지자’다. 그는 오는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신당이 어떤 후보를 내든지 간에 그에게 투표를 할 생각이다.

“안철수 의원이 보여주는 성실성, 진정성이 마음에 듭니다. 기존의 정치인이 갖지 못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현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반드시 안철수가 필요합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처럼 민주당은 끝났습니다. 김완주(金完柱) 전북도지사가 이번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하니까 벌써 민주당 소속의 시장, 국회의원이 자리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이 만만하니까 자기들끼리 나눠 먹기를 하는 거죠. 민주당의 그런 모습에 지쳤습니다. 안철수가 답이죠.”

취재를 하면서 만난 전북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인 인상을 받았다. 질문에 대해 즉답을 하기보다 에둘러 표현하는 이가 많았고, 단어 표현이나 어투가 상당히 점잖았다. 대화를 할 때 흥분하기보다는 차분하고 다소 말이 느릿한 것이 충청도 사람과 얘기하는 느낌이었다. 굳이 진보, 보수를 따지자면 대다수의 성향은 ‘보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문(愚問)이겠지만,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으로 새누리당을 지지할 가능성은 없을까. 모 일간지 전북 주재 K기자의 얘기다.

“전북 사람들의 기질은 충청도에 가깝고,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은 반드시 반박(反朴)이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한마디로 경상도가 싫으니까요. 1960년대 전라도 인구가 전체의 25%였는데 오늘날 전주 인구가 고작 60만명이에요. 대전이 180만명인데 말입니다. 경상도 정권에 밀렸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됐다는 생각이 뼛속 깊이 박혀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죽어도 지지할 수가 없죠.”

―전북 사람은 딱히 지지할 정당이 없는 거군요.

“경상도 정당은 절대 안 되죠. 그래서 DJ를 시켰더니 호남(전남)이 다 가져갔죠. 결국 친노(親盧) 세력이 되어 노무현을 지지했지만 차이가 없었죠. 안철수에 또 한 번 기대를 걸어보는 겁니다. 재작년 문재인 대(對) 안철수의 대결에서 전북은 안철수 지지율이 문재인의 2배였습니다.”

전북 젊은층, 安哲秀에 대해 싸늘

전주시 풍남동에 위치한 전주한옥마을 전경.(전주시 제공)

전주를 걸으면서 든 또 다른 생각은 젊은이들을 통 찾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평균을 내기는 어렵지만 거리를 걷는 대다수는 50대 이상의 중년층으로 보였다. 전주시 완산구에 위치한 ‘홈플러스’에 가서야 20~30대가 여럿 눈에 띄었다.

최근 몇 년의 선거를 두고, 서울 및 수도권에서는 ‘세대 간 갈등’을 선거 결과의 한 축으로 삼았다. 안철수 의원,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 등을 떠받치는 축을 30~40대로 분석하는 시각이 많았다. 전북 역시 젊은 유권자가 ‘안철수 지지세력’이 아닐까 싶어서 물었다. 두 아이와 함께 ‘홈플러스’에 온 김혜진(35·가정주부)씨는 “안철수 신당이 뭐를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새 정치를 한다는데 뭐가 새 정치인지 모르겠고, 신중한 건지 모르겠지만 답답할 정도로 속도가 늦습니다. 인터넷에서 ‘간철수’라고 비꼬는 얘기들이 많잖아요. 딱 그런 느낌이죠. 뭐를 하겠다는데 할 듯 말 듯, 보여줄 듯 말 듯 뭐 하는 건가 싶습니다. 뭔가를 바꾸겠다고 하는 진심은 알겠는데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에 대한 답이 없습니다. 안철수 이미지가 좋으니까 대통령 선거에 나오면 한 표를 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철수가 한 정당을 이끄는 대표가 될 만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마트를 찾은 20대 신혼부부 역시 “지방선거 날짜가 정확히 언제인지 모른다. 쉬는 날이면 놀러갈 계획”이라고 했다.

수도권에서 있었던 ‘세대 간 갈등’이 이 지역에서는 확실히 덜해 보였다. ‘코리아리서치’는 지난 1월 27일 ‘전북도지사 선거에서 정당을 기준으로 투표를 한다면, 어느 정당에 투표를 할 것인가’를 물었다.

20대 중 27.6%가 안철수 신당 지지, 48.2%가 민주당 지지를 꼽았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안철수 신당보다 2배 가까이 된다. 30대에서는 안철수 신당 지지율이 37.1%, 민주당 46%였다. 40대에서는 안철수 신당 지지율이 28.7%, 민주당 41.3%였다. 50대에서는 안철수 신당 지지율 29.1%, 민주당 41.6%, 60대 이상은 안철수 신당 지지율 18.4%, 민주당 48.2%였다. 이 결과에 따르면, 전북에서 민주당에 대해 여전히 지지를 보내는 연령층은 20대와 60대 이상이었다. 박기홍 《전북도민일보》 정치부장은 “전북에서 세대 간 다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군산에서 칼국숫집을 운영하는 한 시민은 “TV조선을 틀었다가 20대에게 한소리를 들었다”며 말을 시작했다. 군산 출신인 그는 충남 서천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장사가 안 돼 다시 군산으로 귀향했다. 오늘날 서천이 인구 3만 도시로 전락한 것은 ‘자민련에 대한 외사랑’ 때문이었다고 믿기에, 그는 군산에 둥지를 튼 이후 줄곧 이 지역에서 야당지인 《조선일보》를 구독했다고 한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새누리당 정운천 후보를 밀었다.

“식당에서 별 생각 없이 TV조선을 틀어놨는데 식당에 온 젊은 손님이 펄펄 뛰었습니다. 신문을 보면 젊은이들이 기성 정당에 대해 실망했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싶었죠. 여기는 좀 반대더군요. 젊은 친구들 중에 민주당 골수팬이 많습니다. ‘군산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미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었습니다. 국정원을 앞세워서 부정선거를 치른 정당을 옹호하는 TV조선을 어떻게 틀어놓느냐고 따지듯이 묻데요. 가게에 손님이 있을 때는 MBN 틀어놓습니다.”

“지난 대선이 부정선거라고 생각해”

전북 사람들 입에서는 ‘국정원 대선 개입’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전주한옥마을에서 민박집을 하는 K대표는 “전북 사람 중에서 지난 대선이 적법하게 치러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북 사람들이 그토록 정권 교체를 원했는데 또 영남 정권이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국정원이 개입하고, 경찰이 막고 모든 불법적인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처음에 뉴스가 나왔을 때는 믿지 않았습니다. 국정원이 무슨 그런 일을 하느냐 싶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훨씬 조직적으로 일이 전개됐다는 것을 알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전북 사람들, 그런 일 없었으면 당연히 문재인이 대통령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부를 인정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래도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죠. 지금은 우리가 힘이 없으니까 아무 소리 못하는 것뿐입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김도형씨의 얘기도 비슷했다. 김씨는 자신의 말이 기사화될 경우 반드시 실명으로 해달라고 했다. 자신의 신념을 알리고 싶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불법으로 치르는 나라에 산다는 것이 참 창피하죠. 국정원이 선거 개입 안 했다고 나라에서 발표한다고 해도 절대 믿을 수 없습니다. 어린애들도 다 아는 일 아닙니까. 다음에 정권 바뀌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겁니다. 그때 그 젊은 여자 의원(장하나 민주당 의원을 지칭)이 박근혜 대통령 사퇴하라고 했잖습니까. 그분 참 용기 있더라고요. 입 밖에 내지는 못하지만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이날 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를 축소시킨 혐의를 받고 있는 김용판(金用判)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오늘 밤 이곳 사람들은 또 한바탕 성토대회를 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철수 신당에 새로운 인물 없더라”

전북 군산~변산반도 사이 바다를 국토에 편입시키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전북 도민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가력갑문을 통해 새만금 내해의 담수가 서해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가력도 상공에서 촬영했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뼛속 깊은 반새누리 정서로 안철수 의원에 열광했던 전북의 민심은 불과 몇 달 만에 식었다. 앞서 언급한 지난 1월 27일자 두 여론조사기관의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박기홍 정치부장의 얘기다.

“안철수에 기대를 했지만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신당’에서 내세우는 후보가 없고, 정책도 없습니다. ‘안신당’행(行)을 택한 사람의 면면 역시 허무합니다. 민주당에서 탈락된 사람들이 ‘안신당’에 후보가 된다는 둥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당이나 ‘안신당’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안신당’의 참신성이 떨어지고, 실체도 없기 때문에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민주당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주한옥마을에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K대표는 전통예절을 가르치는 ‘전주향교’의 일을 10년 넘게 봐오고 있다. 업(業)의 특성상 70대 이상의 연령층과 만나는 일이 잦다.

“나이 드신 분들이 민주당이 독식해 봐야 지역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를 먼저 합니다. 안철수가 반짝 떴을 때 전통 민주당 보수라는 이 양반들도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안철수에게 간다는 사람들 면면이 허망한 수준입니다. 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야 그렇다 쳐도, 시장, 도의원 등 밑으로 내려가면 한심한 수준입니다. 전주나 군산이나 서로 빤해서 한 다리 건너면 뭐하는지 다 압니다. 안철수 이미지가 좋더라도, 어르신들이 볼 때 도저히 깜냥이 되지 않는 후보에게 한 표를 줄 수는 없는 겁니다. 안철수가 새 정치를 한다고 해도 안철수 당에 가겠다는 사람들이 헌 사람들인데 무슨 새 정치를 합니까.”

전주시 중앙동 상가에서 스포츠의류점을 하는 최모 대표는 지지정당이 없다. 그는 선거 때 후보자 프로필을 꼼꼼히 살피는 편이다.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이나 다 잘 못합니다. 딱히 정 줄 생각이 없어요. 특히 지방선거야 정당보다는 인물 보고 뽑아야죠. 후보자 나오면 경력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그 사람 인물 됨됨이가 어떤지 물어보고 그러고는 찍는 편입니다. 안철수가 신선하다고 해서 무조건 안철수 당 사람을 밀 생각도 없고, 누구를 내보내느냐를 봐야죠. 안철수 인기로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면 유권자를 너무 무시하는 거죠.”

익산시 영등동에서 약국을 하는 K약사 역시 후보자를 보고 투표를 할 생각이다. K씨는 “안철수 당이 민주당과 안 맞아서 나온 사람들을 섭외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안철수 신당 전북도지사 후보로 강봉균씨가 얘기된다고 하대요. 강봉균씨가 중앙에서 거물급 정치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자기하고 민주당이 안 맞는다고 뛰쳐나온 사람 아닙니까. 또 거론되는 조배숙(趙培淑)씨는 익산에서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새로운 인물이 안 가는데, 무슨 새 정치를 합니까.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새로운 대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안철수 신당이 그 부분을 메워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여전히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익산에서 무소속으로 세 번 당선된 한 시의원은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후보를 내는 과정에서 패거리 문화를 보여줄 가능성이 짙다.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되풀이되는 과정을 지켜본다면, 시민들이 안철수 신당 후보를 지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안철수 신당이 인물난에 시달리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로 보였다. 안철수 신당 일을 돕고 있다는 C씨와 인터뷰 도중 그의 전화기가 울렸다. 그는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더니, 전화 상대방에게 학력과 대표 약력 세 가지만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전화기 넘어 상대방이 말한 약력은 ‘XXX협회장’ 등 딱히 내세울 것이 없어 보이는 이력 두 가지뿐이었다. C씨가 요청한 ‘대표 약력 세 가지’조차 채우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C씨는 민망했던지, “요즘은 사람 찾으러 다니느라 차 마시는 것이 하루 일과”라며 웃었다.

안철수 의원에 대한 개인 인기 역시 지난해와 상당히 달라 보였다. 기자가 전주를 방문한 바로 전날인 지난 2월 5일, 안철수 의원이 윤여준(尹汝寯) 자칭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과 함께 전주 덕진예술회관을 찾았다고 한다. 지난해 7월 이후 두 번째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안철수를 보려는 사람들로 회관이 넘쳐났는데, 어제는 빈자리가 많았다”고 말했다.

“안철수, 갈수록 똑같은 정치만 한다”

전북도지사 가상 대결에서 1위를 달리는 정동영 민주당 고문. 지난 2007년 12월 7일, 전주시청 앞 광장에서 유세를 하는 모습.

오히려 일부에서는 안철수를 반대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전주시 완산구 교동에 있는 H민박 K대표의 얘기다.

“일부에서는 안철수가 경상도에서 도저히 게임이 안 되니까 애꿎은 전북에 와서 기웃거린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신당이 정말 파괴력 있고 자신 있으면, 자신의 본거지인 부산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겁니다. 괜히 붕 떠 있는 전북 사람들의 마음을 갖고 노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안철수 반대세력이군요.

“전북 사람들이 원하는 건 정권 교체예요. 민주냐, 안철수냐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그런데 안철수가 신당을 만들면 애매하게 야당 표를 갈라 먹을 것 아닙니까. 전북에서야 야당 표를 갈라 먹어봐야 민주당이 이기겠지만, 수도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이 이기면 결국 안철수가 도와준 것으로밖에 안 보이는 겁니다. 설령 전북이 지더라도 반새누리 현상이 전국적이어야 하는데, 안철수가 그걸 막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입니다. 안철수 신당이 오는 6월 이후에 없어지거나, 결국 자민련처럼 될 것이라고 보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취재차 이동 중에 만난 60대 택시기사는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부산 사람이 자꾸 여기는 왜 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주 중앙동에서 스포츠의류점을 하는 최모씨는 “안철수는 영남 가서 놀았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산뜻하더니 갈수록 똑같은 정치만 하는데 왜 전북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아냥거렸다.

안철수 신당에 대해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이들은 안철수 의원에 대해 ‘부산 사람’이라고 철저히 규정하고 있었다. 전북에서 만난 사람들은 의외로 이정현(李貞鉉)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기자, 병원장, 기업인 등 이른바 ‘식자층’들이 유독 이 수석 얘기를 많이 했다. 이 수석은 전남 곡성 출신으로 철저히 친박(親朴)으로 분류되는 이다.

군산에서 지역 체험연구소를 운영하는 조모 대표는 “더 이상 전라도는 없다”고 했다.

“전북은 지금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DJ의 정치적 영향력 안에서 늘 민주당에 몰표를 줬던 때와는 다릅니다. 전남에 박지원(朴智元·민주당 전남 목포 의원)이 있듯이, 이제는 우리도 새로운 인물이 필요합니다. 전북 사람들이 전남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습니다. 이제는 전라도가 아니라 전북·전남으로 따로 생각해야 합니다.”

전북의 한 일간지 기자는 “전북 입장에서는 이정현 수석이 그나마 기댈 수 있고, 정권과 통할 수 있는 통로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왜 저런 사람을 갖지 못할까 싶은 시샘과 부러움이 공존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전북 사람들이 정동영(전북 순창 출신)에 대해 기대가 컸습니다. DJ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 지역 인재이고 큰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어마어마한 표 차이로 졌고, 서울 국회의원 선거에서조차 낙선했습니다. 전북 사람들로서는 창피하고 놀라고 그런 겁니다. 정동영이 킹메이커가 될지는 모르지만 정권 교체용 인물은 아니라는 걸 이제 다 압니다.”

“鄭東泳은 일종의 고향 향수”

안철수 신당의 유력한 전북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지난 2008년 3월 27일, 전북 군산시의 한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인사를 나누는 당시 통합민주당 강봉균 후보.

‘코리아리서치’의 지난 1월 27일자 가상 전북도지사 후보에서 정동영 민주당 고문은 전체의 24.7%의 지지를 받아 1위였다. 송하진 전주시장, 유성엽 의원이 뒤를 이었다. 물론 민주당 내에서 정동영 고문을 전북도지사 후보로 전략공천하겠다는 분위기는 아직 없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여전히 정동영 고문의 인지도, 지지도가 높다.

익산의 가장 번화가인 영등동에서 분식집을 하는 60대 한 아주머니는 “정동영이 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얘기다.

“그래도 정동영이라고 하면 서울에서도 다 알고 그러잖아요. 여기 출신 중에 그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또 있나요. 대선 때 좀 차이가 많이 나기는 했지만, 그때는 누가 나갔어도 그랬을 거라는 사람들이 있데요. 그냥 뭐 얼굴 아는 사람이 나오면 찍어줄라고요.”

박기홍 정치부장의 얘기다.

“식자층들은 정동영 고문에 대해 ‘국회의원 때 우리 지역에 한 것이 뭐 있느냐’며 비판을 합니다. 하지만 전북 사람들은 새로운 정치인에 대한 기대와 함께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습니다. 향수의 정점이라고 하면 정동영 고문일 겁니다.”

―정동영 고문이 후보가 될 경우, ‘미워도 다시 한 번 민주당’이 분명하겠군요.

“가장 확실할 겁니다. 전북 지역에서 안철수를 지지하는 쪽이 전주, 익산, 군산 등 대도시라면, 고창, 부안 등 농촌 전북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입니다. 농촌은 정(情)의 문화가 있습니다. 정동영이 나온다면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질 겁니다.”

전주향교 일을 맡고 있는 K대표 역시 “나이 드신 분들이 민주당을 드러내놓고 욕하더라도 막상 정동영 얘기가 나오면 한풀 꺾이는 경우가 있다. 이곳 사람들에게 정동영은 향수다”고 했다.

‘안철수 신당’은 ‘새 정치, 새 인물’을 거론하고 있다. 이들이 내놓은 유력한 전북도지사 후보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거론된다. 강 전 장관의 이름이 거론되자,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안철수 신당이 제법 큰 대어(大魚)를 낚았다는 식(式)의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현지에 내려가 보니, 강봉균 전 장관에 대한 지지도는 서울에서 생각했을 때보다 많이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강 전 장관 이름을 댔을 때, “어디서 이름은 들어봤는데…”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강봉균이 누구야?”

익산에서 미용실을 하는 C씨는 미용실협회 일을 함께 한다. 그는 선거 때 협회 일원으로 강 전 장관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별로 인상적인 분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강봉균에 대한 인지도’를 강약 수준으로 표현하자면 익산<전주<군산 순(順)이었다. 강봉균 전 장관이 전북 군산 출신이다 보니, 군산 지역에서는 그에 대해 모르는 이가 거의 없었다. 전북의 한 일간지 군산 주재 정모 기자의 얘기다.

“강봉균 전 장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강 전 장관이 군산 출신이지만 고향을 살뜰히 챙기지는 않았습니다. 군산 사람들 입장에서는 강 전 장관이 새로운 인물도 아니고, 전북 경제에 도움을 준 사람도 아닙니다. ‘이 사람 군산 사람이야’라고 자랑은 할 수 있지만 딱히 군산과의 친밀도를 찾기는 어려운 인물입니다.”

―중앙에서는 강봉균 정도면 ‘빅카드’라는 생각을 합니다.

“군산이 배출한 몇 안 되는 천재 중 한 명은 맞습니다. 하지만 중앙에서 잘한 것과 지방 민심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신당의 후보가 되기에는 난관이 많을 거라는 얘기도 솔솔 나옵니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기 어렵다는 정도로 말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일간지 김모 기자는 “현재 거론되는 민주당 후보인 송하진 시장, 유성엽 의원이 민심을 얻겠다고 바닥을 일일이 닦은 스타일이라면, 강봉균 전 장관은 전북이 낳은 입신양명한 관료의 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코리아리서치’의 지난 1월 27일자 조사에서 ‘강봉균 전 장관이 전북도지사로 가장 낫다’는 대답은 군산시 26.5%, 남원·순창군 5.9%, 전주 5%, 고창·부안 3.7%, 익산 1.8%뿐이었다.

전북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취재차 이동 중에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전주에서 익산시청까지의 거리는 불과 21km 남짓했지만, 울퉁불퉁한 도로와 불필요한 신호등 때문에 자동차로 40분 이상이 걸렸다. 그리고 곳곳에서 버려진 듯 휑한 공터,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는 한산한 거리가 눈에 띄었다. 전북 인구는 지난 2013년 12월을 기준으로 전주 65만, 익산 30만, 군산 28만 등 187만2000명 정도다. 광주시 148만명, 대전 153만명, 충남 204만명과 비교된다. “전북은 DJ에게 일방적인 짝사랑을 보내다가 노무현으로 옮겨가고, 정동영을 거쳐 문재인으로, 그리고 또다시 방황을 시작했다”는 한 시민의 얘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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