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 의원, 술 취해 일어나면서 옆자리에 앉은 男女 기자의 무릎 짚고 일어난 게 전부
⊙ 金 의원이 자기 무릎에 앉으라고 했다는 女기자도 “그런 말 전혀 안 했다”
⊙ 金 의원이 자기 무릎에 앉으라고 했다는 女기자도 “그런 말 전혀 안 했다”
지난 10월 2일 《미디어오늘》 사이트에는 ‘[단독] 김무성, 새누리 연찬회에서 여기자 신체접촉 등 추태’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의 일부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8월 여성 기자들을 상대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김 의원은 접촉 당사자인 기자에게 공식사과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러 매체 정치부 기자들의 증언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지난 8월 29일 강원도 홍천 비발디파크(리조트)에서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가 끝나고 저녁시간 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김 의원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리에는 황우여 대표를 포함해 정몽준 전 대표, 이혜훈 최고위원, 김성태 의원,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한 종합일간지는 술이 취한 상태인 김 의원이 술자리에서 자사 기자에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에 김 의원 측에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해당 종합일간지의 관계자에 따르면, 김 의원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기자의 허벅지를 짚는 상황이 발생했으며, 기자들 사이에서 공론화가 돼,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회사 차원에서 공식사과를 요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뒷부분 생략)”
‘性추행’ 등 자극적인 제목 단 일부 언론
기사가 실린 직후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은 <김무성 ‘女기자 성추행 논란’에 “만취 상태여서…”> 등의 제목으로 《미디어오늘》 기사를 인용보도했다. 과거 강용석 전 의원이 했던 여성 아나운서 폄하 발언 등 새누리당 의원들의 ‘전력’을 다시 들추기도 했다. 성추행 의혹을 기정사실처럼 쓴 것이다.
같은 날 민주당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언론브리핑을 했다. “‘성희롱’보다 직접적 신체 접촉이 있었던 ‘성추행’이 더 사안이 중함을 모르진 않을 텐데, 설마하니 실세 의원은 그래도 된다는 묵인이 아니길 바란다”며 “술자리에서는 그 정도쯤 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는 새누리당의 실세로, 차기 대권 도전 운운할 수 있는 자격조차 없다”는 게 요지였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김무성 의원을 비난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현재도 포털 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에 ‘김무성’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여기자 추행’이라는 검색어가 뜬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민주당 이 원내대변인의 브리핑대로라면 ‘실세 대선 주자’의 성추행 사건인데 언론계가 좀 조용했다. 《미디어오늘》의 기사를 아예 인용보도하지 않은 언론사도 많았다.
게다가 ‘성추행’당한 것으로 지목된 A 기자가 오히려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대해 화를 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사건의 전말이 궁금했다.
김 의원 측과 A 기자,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정치부 기자들에게 연락해 그날의 일을 물었다. 기사를 작성한 《미디어오늘》의 이재진 기자에게도 취재 배경 등을 물었다.
관련인들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이렇다.
지난 8월 29일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가 열렸다. 홍천의 비발디파크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열린 행사였다.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이 참석했고, 각 언론사의 정치부 여당 출입기자들도 함께했다. 주로 연차가 낮은 기자들이었다. 강의와 간담회 등의 공식 식순이 끝나고 의원들과 기자들이 함께 어울린 술자리가 열렸다. 장소는 비발디파크 지하에 있는 술집이었다. 술자리는 꽤 규모가 컸다고 한다. 이 자리에 있었던 방송기자 B씨의 말이다.
“술집에는 영감(국회의원을 지칭)들이랑 기자밖에 없었어요. 사람이 많았고 의원들 기자들 모두 다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정확히 누구누구가 있었는지는 기억 못 해요. 친한 기자들끼리 여기 한 팀 저기 한 팀 이런 식으로 흩어져 있었어요. 영감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했고요.”
C 기자는 다른 곳에서 몇몇 의원과 술을 마시다 뒤늦게 합류했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친분이 있는 몇몇 의원과 일부 기자가 따로 숙소에서 술을 마셨어요. 그러다가 밤 10시가 넘어서 지하로 내려가 보니 다 취해 있고 아주 아수라장이더라고요. 거기에 있는 사람 다 취해 있는 것 같았어요.”
金 의원이 먼저 연락해 사과
연찬회에 참석한 기자는 약 180여 명. 새누리당 대변인실에 문의해 보니 대략 40~50곳의 언론사에서 각 회사당 서너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대개 이런 자리에서는 친분이 있는 기자들, 의원들끼리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당시 김무성 의원은 많이 취해 있었다고 한다. 기자 D씨의 말이다.
“‘무대’는 상당히 많이 취해 있었어요.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어요. 그야말로 만취해 있었죠.”
‘무대’는 김무성 의원의 별칭이다. ‘김무성 대장’을 줄인 말이다. 기자들 한 무리와 어울려 있던 김 의원은 어딘가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제의 사건은 이때 발생했다. 김 의원이 어딘가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당시 양쪽에 앉은 사람들의 허벅지(혹은 무릎)를 짚고 일어났다고 한다. 김 의원의 양옆에는 각각 여자 기자와 남자 기자가 앉아 있었다. 그 여자 기자가 《미디어오늘》 기사에서 추행 피해자로 명시된 A 기자다. 이 자리에서 해당 기자들이 김 의원에게 직접 사과를 요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연찬회가 끝나고 며칠 후 그 자리에 있던 E 기자가 김 의원의 보좌관에게 연락을 했다. E 기자는 ‘김 의원이 A 기자를 짚고 일어났다’는 설명을 하며 “A 기자에게 사과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 의원 측은 A 기자에게 연락해 ‘사과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A 기자는 소속 언론사의 여당출입팀 반장, 부반장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의 김 의원 사무실로 찾아갔다. 김 의원은 이들에게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고 김 의원실 관계자는 말했다. A 기자는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때가 9월 12일 오후 6시 즈음이었다.
이로부터 3주 후인 10월 2일 《미디어오늘》에 이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의 근거는 ‘여러 기자의 발언과 녹취록’이라고 기사 내에 적혀 있다. 갑자기 기사가 나온 배경은 무엇일까. 기사를 쓴 이재진 기자에게 직접 물었다. 이 기자는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정보보고 형식으로 기자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며 “복수의 기자들에게 확인하고 기사를 썼다”고 했다.
이 기자는 기사가 나가기 전, A 기자에게 전화해 기사가 나간다는 말을 하며 사실 확인을 했다고 한다. 이때 A 기자는 ‘이미 끝난 일인데, 기사가 안 나갔으면 한다. 회사에서도 기사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했다. 기사는 A 기자가 예상했던 수준보다 선정적이었고, A 기자는 이 기자에게 항의했다. 그 후 기사의 표현 등이 일부 수정됐다고 한다.
“술자리 녹취는 녹취 아닌 도청”
해당 기사에는 A 기자의 소속사가 김 의원 측에 ‘공식사과’를 요청했다고 되어 있다. 사실일까? 사실은 이러했다. 김 의원 측이 사과하겠다고 먼저 A 기자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 시기 A 기자는 회사 내에서 마침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A 기자 측에서 먼저 전화하진 않았지만 마침 전화가 와서 공식으로 사과 요청을 했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 새누리당을 출입하는 반장과 부반장이 배석하는 형태로 ‘공식사과’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기사에는 ‘김 의원이 다른 여자 기자(F 기자)에게 자신의 무릎에 앉으라고 했다’는 내용도 있다. 이 자리에 있었다는 다른 기자의 말을 빌려 한 말이다. 이것도 사실일까? 무릎에 앉히려는 기자로 지목된 당사자에게 사실 여부를 직접 물었다. F 기자의 말이다.
“당시 그 테이블에는 사람이 30명 정도 앉아 있었어요. 그곳에 있던 기자들은 거의 다 20대 중후반의 어린 기자들이었어요. 제가 거의 유일하게 김무성 의원과 안면이 있었던 기자였고요. 저를 보자 김 의원이 반가워하며 이리 와서 앉으라는 손짓을 했어요. 옆자리에 와서 앉으라는 거였죠.
근데 공교롭게도 김 의원 옆에 의자가 없었어요. 김 의원은 계속 와서 앉으라고 손짓을 했고요. 무릎에 앉으라거나 이런 말은 전혀 안 했어요. 사실 그때 김 의원이 술에 많이 취해 있었어요. 저는 ‘앉아야 되는데 자리가 없어서 어떡하나’ 이런 말을 농담삼아 하면서 옆쪽에 앉는 척을 하다가 다른 자리로 갔지요. 저는 전체 맥락을 아니까 기분 나쁘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 자리가 조명이 어두침침하거나 음습한 분위기도 아니었고요. 칸막이도 없이 뻥 뚫려 있는 곳이었어요. 그렇지만 다른 기자들이 멀리 떨어져서 이 광경을 봤다면 다른 생각을 했을 수 있겠다고는 생각해요.”
녹취록은 또 무엇일까. 이날의 술자리를 녹음한 다음 글로 옮긴 녹취록이 몇몇 기자 사이에서 돌았다고 한다. 녹취록에 혹시 해당 부분이 등장하는지 묻자 이 기자는 “녹취록에는 신체 접촉에 관한 부분은 없다”고 답했다.
이상이 일명 ‘김무성 의원 성추행’ 의혹의 전말이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스펙트럼에서 볼 수 있다. 《미디어오늘》의 기사가 과연 기사 요건을 갖췄느냐, 기사에 어떤 오류가 있느냐 하는 차원의 문제와는 별개다. 바로 정치인과 정치부 기자의 관계에서 어떤 부분은 변했고, 어떤 부분은 변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힌트다.
먼저 미디어 환경의 변화다. 《중앙일보》의 이정민 정치부장은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들의 연령이 전반적으로 낮아졌다”고 했다. 이 부장은 1990년대부터 정치부 기자로 활동한 많지 않은 여자 기자 중 한명이다. 그의 말이다.
“예전에는 정치부 기자들이 전반적으로 연차가 지금보다 높았어요. 다른 부서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능력과 실력이 입증된 기자가 정치부로 가곤 했으니까요. 지금은 심지어 수습들도 정치부로 가기도 합니다. 나이 어린 기자가 여당이나 야당의 거물 정치인을 상대하기도 하는 거예요. 나이 차이가 30년 이상 나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러면 여기서 일단 ‘세대차’가 발생하는 겁니다. 정치인들이 이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알아야 해요. 본인들과 취재기자 사이에 문화적 배경, 가치의 기준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요.”
이 부장은 녹취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예전에 정치부 취재에서 술자리 녹취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 경우는 있었지요. 간담회나 기자회견 같은 공식 행사를 할 때 내용을 왜곡 없이 반영하고 정확하게 쓰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녹음을 하기도 했지요. 이 경우처럼 공식 일정도 아닌 뒤풀이 자리를 녹음하는 건 녹음이 아니라 도청이지요. 금도(襟度)라는 게 있습니다.”
1400명이 넘는 국회 출입기자
정치부 기자들의 세계에 매체별로 혹은 성별에 따라 끼리끼리 어울리며 정보를 공유하는 문화가 퍼진 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국회 출입기자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그 경향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국회를 출입하지 않더라도 정치 부문을 다루는 기자의 수도 많다.
지난 1월 18대 인수위원회가 출범했을 때, 인수위에 정식 등록한 출입기자 수는 228개 언론사 983명이었다. 언론사별로 출입기자 수를 제한했음에도 1천명에 육박했다.
국회 출입기자는 더 많다. 장·단기 출입기자를 포함하면 420여 개 언론사 소속의 1400명 이상의 기자들이 ‘국회 출입’으로 이름을 걸어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마음이 맞는 기자들 사이에서 SNS, 메신저 등을 통해 기삿거리, 나아가 이번처럼 술자리 녹취 등을 공유하는 일도 심심치 않다고 한다. 언론 간의 경쟁이 심화하다 보니, 사소한 일이 중대한 이슈로 순식간에 변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이다. 정작 심층적으로 다뤄져야 할 뉴스는 사소하고 흥미로운 뉴스에 가려버린다.
미디어 환경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춰 변해야 했지만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정치계의 술 마시는 관행이다. 한국 정치계에서는 ‘XXX 의원이 원내대표가 됐으니 그 기념으로 각 언론사 정치부 출입기자들과 단체회식을 한다’는 등의 일이 일반적이다.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당을 넘어서서 정치계 전반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다른 나라 정치계는 어떨까.
익명을 요구한 기자 F는 “미국 정치계에서는 우리처럼 밤늦게까지 단체로 기자와 정치인이 어울려 술을 마시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F 기자는 미국 워싱턴에서 특파원으로 있다가 최근에 돌아왔다. F 기자의 설명이다.
“일단 회사 차원의 회식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관계가 우리보다는 많이 공적이고요. 맥주 한잔 정도는 할 수 있고, 또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는 당연히 있을 수 있지요. 그렇지만 대규모로 앉아서 폭탄주를 돌리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럴 시간 있으면 다들 집에 가기 바쁘죠. 다음 날 일찍 일을 시작해야 하니까요.”
미국에서는 이를테면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의장 취임 기념으로 《뉴욕타임스》 정치부와 단체 회식을 하는 식의 일’은 좀처럼 없다는 말이다. 미국의 매체와 기자 수가 많은 까닭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국회 출입기자는 1만2천명이 넘는다.
아직도 후진적인 정치계 술자리 문화
한국과 정치 문화가 비슷한 일본은 어떨까. 《마이니치신문》 서울지국의 오누키 도모코 기자는 “일본에서도 아직 술은 마시지만, 점점 변하고 있다”고 했다. 오누키 기자는 2년 전까지 《마이니치신문》 정치부 소속으로 일본 민주당과 외무성 등을 출입했다. 오누키 기자의 설명이다.
“일본의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도 정치인과 술을 마신다거나 하는 일은 있습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술을 안 마셔요. 지금은 술 안 마시는 정치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총리, 장관은 물론이고 당대표, 원내대표 이런 주요 직급의 정치인에게 ‘번(番)기자’라고, 하루종일 따라다니며 전담마크를 하는 기자가 붙습니다. 만약 이시바 간사장을 담당하는 번기자라면 오늘 이시바는 누구를 만났는가, 지금 이시바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이것만 하루종일 취재합니다.”
정치인과 기자 사이의 ‘스킨십’이 한국과 비교하면 개인적이라는 말이다.
어느 나라의 풍토가 옳은지, 혹은 그른지 판단할 순 없다. 술자리 문화에 관해서는 좀 다르다. 기자는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의원 연찬회 뒤풀이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 제대로 아는 인사가 없다는 데 놀랐다. 강원도 홍천에서 콘도를 빌려 1박2일로 연 공식 행사였던 만큼, 안전 문제 때문에라도 그 자리에 사무처 관계자 등이 참석했을 거라 짐작했다. 더구나 이 자리에는 당대표부터 최고위원들을 비롯한 중진 의원이 총출동했다.
수소문했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무처 직원이나, 당직자는 만나지 못했다. 심지어 김무성 의원의 보좌진 중에서도 동행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다른 기자를 통해 들었다.
김 의원은 차기 대권을 도모하는 대선 주자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하고 있다. 만약 그가 바라던 대로 대선 후보가 되었는데 선거 한 달 전이나 일주일 전쯤에 이런 일이 터진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가벼워 보이는 실수 뒤에 무거운 책임이 뒤따라오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걸, 그와 새누리당은 아직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번 일 같은 경우는 실제보다 과장됐거나 왜곡된 것이긴 하지만.⊙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8월 여성 기자들을 상대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김 의원은 접촉 당사자인 기자에게 공식사과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러 매체 정치부 기자들의 증언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지난 8월 29일 강원도 홍천 비발디파크(리조트)에서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가 끝나고 저녁시간 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김 의원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리에는 황우여 대표를 포함해 정몽준 전 대표, 이혜훈 최고위원, 김성태 의원,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한 종합일간지는 술이 취한 상태인 김 의원이 술자리에서 자사 기자에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에 김 의원 측에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해당 종합일간지의 관계자에 따르면, 김 의원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기자의 허벅지를 짚는 상황이 발생했으며, 기자들 사이에서 공론화가 돼,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회사 차원에서 공식사과를 요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뒷부분 생략)”
‘性추행’ 등 자극적인 제목 단 일부 언론
기사가 실린 직후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은 <김무성 ‘女기자 성추행 논란’에 “만취 상태여서…”> 등의 제목으로 《미디어오늘》 기사를 인용보도했다. 과거 강용석 전 의원이 했던 여성 아나운서 폄하 발언 등 새누리당 의원들의 ‘전력’을 다시 들추기도 했다. 성추행 의혹을 기정사실처럼 쓴 것이다.
같은 날 민주당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언론브리핑을 했다. “‘성희롱’보다 직접적 신체 접촉이 있었던 ‘성추행’이 더 사안이 중함을 모르진 않을 텐데, 설마하니 실세 의원은 그래도 된다는 묵인이 아니길 바란다”며 “술자리에서는 그 정도쯤 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는 새누리당의 실세로, 차기 대권 도전 운운할 수 있는 자격조차 없다”는 게 요지였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김무성 의원을 비난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현재도 포털 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에 ‘김무성’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여기자 추행’이라는 검색어가 뜬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민주당 이 원내대변인의 브리핑대로라면 ‘실세 대선 주자’의 성추행 사건인데 언론계가 좀 조용했다. 《미디어오늘》의 기사를 아예 인용보도하지 않은 언론사도 많았다.
게다가 ‘성추행’당한 것으로 지목된 A 기자가 오히려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대해 화를 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사건의 전말이 궁금했다.
김 의원 측과 A 기자,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정치부 기자들에게 연락해 그날의 일을 물었다. 기사를 작성한 《미디어오늘》의 이재진 기자에게도 취재 배경 등을 물었다.
관련인들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이렇다.
지난 8월 29일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가 열렸다. 홍천의 비발디파크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열린 행사였다.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이 참석했고, 각 언론사의 정치부 여당 출입기자들도 함께했다. 주로 연차가 낮은 기자들이었다. 강의와 간담회 등의 공식 식순이 끝나고 의원들과 기자들이 함께 어울린 술자리가 열렸다. 장소는 비발디파크 지하에 있는 술집이었다. 술자리는 꽤 규모가 컸다고 한다. 이 자리에 있었던 방송기자 B씨의 말이다.
“술집에는 영감(국회의원을 지칭)들이랑 기자밖에 없었어요. 사람이 많았고 의원들 기자들 모두 다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정확히 누구누구가 있었는지는 기억 못 해요. 친한 기자들끼리 여기 한 팀 저기 한 팀 이런 식으로 흩어져 있었어요. 영감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했고요.”
C 기자는 다른 곳에서 몇몇 의원과 술을 마시다 뒤늦게 합류했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친분이 있는 몇몇 의원과 일부 기자가 따로 숙소에서 술을 마셨어요. 그러다가 밤 10시가 넘어서 지하로 내려가 보니 다 취해 있고 아주 아수라장이더라고요. 거기에 있는 사람 다 취해 있는 것 같았어요.”
金 의원이 먼저 연락해 사과
 |
| 김무성 의원이 주도해 발족한 ‘새누리당 근현대사 역사교실’이 지난 9월 4일 첫 모임을 열었다. 김 의원이 차기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행보를 떼고 있다는 정치권의 분석이다. |
당시 김무성 의원은 많이 취해 있었다고 한다. 기자 D씨의 말이다.
“‘무대’는 상당히 많이 취해 있었어요.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어요. 그야말로 만취해 있었죠.”
‘무대’는 김무성 의원의 별칭이다. ‘김무성 대장’을 줄인 말이다. 기자들 한 무리와 어울려 있던 김 의원은 어딘가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제의 사건은 이때 발생했다. 김 의원이 어딘가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당시 양쪽에 앉은 사람들의 허벅지(혹은 무릎)를 짚고 일어났다고 한다. 김 의원의 양옆에는 각각 여자 기자와 남자 기자가 앉아 있었다. 그 여자 기자가 《미디어오늘》 기사에서 추행 피해자로 명시된 A 기자다. 이 자리에서 해당 기자들이 김 의원에게 직접 사과를 요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연찬회가 끝나고 며칠 후 그 자리에 있던 E 기자가 김 의원의 보좌관에게 연락을 했다. E 기자는 ‘김 의원이 A 기자를 짚고 일어났다’는 설명을 하며 “A 기자에게 사과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 의원 측은 A 기자에게 연락해 ‘사과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A 기자는 소속 언론사의 여당출입팀 반장, 부반장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의 김 의원 사무실로 찾아갔다. 김 의원은 이들에게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고 김 의원실 관계자는 말했다. A 기자는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때가 9월 12일 오후 6시 즈음이었다.
이로부터 3주 후인 10월 2일 《미디어오늘》에 이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의 근거는 ‘여러 기자의 발언과 녹취록’이라고 기사 내에 적혀 있다. 갑자기 기사가 나온 배경은 무엇일까. 기사를 쓴 이재진 기자에게 직접 물었다. 이 기자는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정보보고 형식으로 기자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며 “복수의 기자들에게 확인하고 기사를 썼다”고 했다.
이 기자는 기사가 나가기 전, A 기자에게 전화해 기사가 나간다는 말을 하며 사실 확인을 했다고 한다. 이때 A 기자는 ‘이미 끝난 일인데, 기사가 안 나갔으면 한다. 회사에서도 기사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했다. 기사는 A 기자가 예상했던 수준보다 선정적이었고, A 기자는 이 기자에게 항의했다. 그 후 기사의 표현 등이 일부 수정됐다고 한다.
“술자리 녹취는 녹취 아닌 도청”
 |
| 18대 인수위원회 출입기자들이 줄을 지어 인수위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이번 인수위에는 228개사 983명의 기자가 출입기자로 등록했다. 역대 최다 인원이다. |
기사에는 ‘김 의원이 다른 여자 기자(F 기자)에게 자신의 무릎에 앉으라고 했다’는 내용도 있다. 이 자리에 있었다는 다른 기자의 말을 빌려 한 말이다. 이것도 사실일까? 무릎에 앉히려는 기자로 지목된 당사자에게 사실 여부를 직접 물었다. F 기자의 말이다.
“당시 그 테이블에는 사람이 30명 정도 앉아 있었어요. 그곳에 있던 기자들은 거의 다 20대 중후반의 어린 기자들이었어요. 제가 거의 유일하게 김무성 의원과 안면이 있었던 기자였고요. 저를 보자 김 의원이 반가워하며 이리 와서 앉으라는 손짓을 했어요. 옆자리에 와서 앉으라는 거였죠.
근데 공교롭게도 김 의원 옆에 의자가 없었어요. 김 의원은 계속 와서 앉으라고 손짓을 했고요. 무릎에 앉으라거나 이런 말은 전혀 안 했어요. 사실 그때 김 의원이 술에 많이 취해 있었어요. 저는 ‘앉아야 되는데 자리가 없어서 어떡하나’ 이런 말을 농담삼아 하면서 옆쪽에 앉는 척을 하다가 다른 자리로 갔지요. 저는 전체 맥락을 아니까 기분 나쁘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 자리가 조명이 어두침침하거나 음습한 분위기도 아니었고요. 칸막이도 없이 뻥 뚫려 있는 곳이었어요. 그렇지만 다른 기자들이 멀리 떨어져서 이 광경을 봤다면 다른 생각을 했을 수 있겠다고는 생각해요.”
녹취록은 또 무엇일까. 이날의 술자리를 녹음한 다음 글로 옮긴 녹취록이 몇몇 기자 사이에서 돌았다고 한다. 녹취록에 혹시 해당 부분이 등장하는지 묻자 이 기자는 “녹취록에는 신체 접촉에 관한 부분은 없다”고 답했다.
이상이 일명 ‘김무성 의원 성추행’ 의혹의 전말이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스펙트럼에서 볼 수 있다. 《미디어오늘》의 기사가 과연 기사 요건을 갖췄느냐, 기사에 어떤 오류가 있느냐 하는 차원의 문제와는 별개다. 바로 정치인과 정치부 기자의 관계에서 어떤 부분은 변했고, 어떤 부분은 변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힌트다.
먼저 미디어 환경의 변화다. 《중앙일보》의 이정민 정치부장은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들의 연령이 전반적으로 낮아졌다”고 했다. 이 부장은 1990년대부터 정치부 기자로 활동한 많지 않은 여자 기자 중 한명이다. 그의 말이다.
“예전에는 정치부 기자들이 전반적으로 연차가 지금보다 높았어요. 다른 부서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능력과 실력이 입증된 기자가 정치부로 가곤 했으니까요. 지금은 심지어 수습들도 정치부로 가기도 합니다. 나이 어린 기자가 여당이나 야당의 거물 정치인을 상대하기도 하는 거예요. 나이 차이가 30년 이상 나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러면 여기서 일단 ‘세대차’가 발생하는 겁니다. 정치인들이 이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알아야 해요. 본인들과 취재기자 사이에 문화적 배경, 가치의 기준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요.”
이 부장은 녹취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예전에 정치부 취재에서 술자리 녹취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 경우는 있었지요. 간담회나 기자회견 같은 공식 행사를 할 때 내용을 왜곡 없이 반영하고 정확하게 쓰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녹음을 하기도 했지요. 이 경우처럼 공식 일정도 아닌 뒤풀이 자리를 녹음하는 건 녹음이 아니라 도청이지요. 금도(襟度)라는 게 있습니다.”
1400명이 넘는 국회 출입기자
정치부 기자들의 세계에 매체별로 혹은 성별에 따라 끼리끼리 어울리며 정보를 공유하는 문화가 퍼진 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국회 출입기자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그 경향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국회를 출입하지 않더라도 정치 부문을 다루는 기자의 수도 많다.
지난 1월 18대 인수위원회가 출범했을 때, 인수위에 정식 등록한 출입기자 수는 228개 언론사 983명이었다. 언론사별로 출입기자 수를 제한했음에도 1천명에 육박했다.
국회 출입기자는 더 많다. 장·단기 출입기자를 포함하면 420여 개 언론사 소속의 1400명 이상의 기자들이 ‘국회 출입’으로 이름을 걸어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마음이 맞는 기자들 사이에서 SNS, 메신저 등을 통해 기삿거리, 나아가 이번처럼 술자리 녹취 등을 공유하는 일도 심심치 않다고 한다. 언론 간의 경쟁이 심화하다 보니, 사소한 일이 중대한 이슈로 순식간에 변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이다. 정작 심층적으로 다뤄져야 할 뉴스는 사소하고 흥미로운 뉴스에 가려버린다.
미디어 환경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춰 변해야 했지만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정치계의 술 마시는 관행이다. 한국 정치계에서는 ‘XXX 의원이 원내대표가 됐으니 그 기념으로 각 언론사 정치부 출입기자들과 단체회식을 한다’는 등의 일이 일반적이다.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당을 넘어서서 정치계 전반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다른 나라 정치계는 어떨까.
익명을 요구한 기자 F는 “미국 정치계에서는 우리처럼 밤늦게까지 단체로 기자와 정치인이 어울려 술을 마시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F 기자는 미국 워싱턴에서 특파원으로 있다가 최근에 돌아왔다. F 기자의 설명이다.
“일단 회사 차원의 회식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관계가 우리보다는 많이 공적이고요. 맥주 한잔 정도는 할 수 있고, 또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는 당연히 있을 수 있지요. 그렇지만 대규모로 앉아서 폭탄주를 돌리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럴 시간 있으면 다들 집에 가기 바쁘죠. 다음 날 일찍 일을 시작해야 하니까요.”
미국에서는 이를테면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의장 취임 기념으로 《뉴욕타임스》 정치부와 단체 회식을 하는 식의 일’은 좀처럼 없다는 말이다. 미국의 매체와 기자 수가 많은 까닭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국회 출입기자는 1만2천명이 넘는다.
아직도 후진적인 정치계 술자리 문화
한국과 정치 문화가 비슷한 일본은 어떨까. 《마이니치신문》 서울지국의 오누키 도모코 기자는 “일본에서도 아직 술은 마시지만, 점점 변하고 있다”고 했다. 오누키 기자는 2년 전까지 《마이니치신문》 정치부 소속으로 일본 민주당과 외무성 등을 출입했다. 오누키 기자의 설명이다.
“일본의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도 정치인과 술을 마신다거나 하는 일은 있습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술을 안 마셔요. 지금은 술 안 마시는 정치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총리, 장관은 물론이고 당대표, 원내대표 이런 주요 직급의 정치인에게 ‘번(番)기자’라고, 하루종일 따라다니며 전담마크를 하는 기자가 붙습니다. 만약 이시바 간사장을 담당하는 번기자라면 오늘 이시바는 누구를 만났는가, 지금 이시바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이것만 하루종일 취재합니다.”
정치인과 기자 사이의 ‘스킨십’이 한국과 비교하면 개인적이라는 말이다.
어느 나라의 풍토가 옳은지, 혹은 그른지 판단할 순 없다. 술자리 문화에 관해서는 좀 다르다. 기자는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의원 연찬회 뒤풀이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 제대로 아는 인사가 없다는 데 놀랐다. 강원도 홍천에서 콘도를 빌려 1박2일로 연 공식 행사였던 만큼, 안전 문제 때문에라도 그 자리에 사무처 관계자 등이 참석했을 거라 짐작했다. 더구나 이 자리에는 당대표부터 최고위원들을 비롯한 중진 의원이 총출동했다.
수소문했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무처 직원이나, 당직자는 만나지 못했다. 심지어 김무성 의원의 보좌진 중에서도 동행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다른 기자를 통해 들었다.
김 의원은 차기 대권을 도모하는 대선 주자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하고 있다. 만약 그가 바라던 대로 대선 후보가 되었는데 선거 한 달 전이나 일주일 전쯤에 이런 일이 터진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가벼워 보이는 실수 뒤에 무거운 책임이 뒤따라오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걸, 그와 새누리당은 아직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번 일 같은 경우는 실제보다 과장됐거나 왜곡된 것이긴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