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기마중물협동조합에 노무현 정부 핵심인사 대거 加入
⊙ 바보주막이란 명칭부터 盧武鉉 전 대통령 연상
⊙ 전국적, 20개 이상 바보주막협동조합 설립 목표
⊙ “조합원 중 현역의원 있는데 정치적 중립이 가능하겠나”(협동조합법 개정안 발의한 鄭熙秀 의원)
취재지원 : 孔聖閏 月刊朝鮮 기자
⊙ 바보주막이란 명칭부터 盧武鉉 전 대통령 연상
⊙ 전국적, 20개 이상 바보주막협동조합 설립 목표
⊙ “조합원 중 현역의원 있는데 정치적 중립이 가능하겠나”(협동조합법 개정안 발의한 鄭熙秀 의원)
취재지원 : 孔聖閏 月刊朝鮮 기자
- 지난 10월 6일 친노 핵심 다수가 조합원으로 가입한 ‘바보주막’ 해운대점을 직접 찾았다.
2009년 12월. ‘협동조합’이 정치권의 관심사로 떠오른 시점이다. 유엔(UN)이 2009년 12월 총회에서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 협동조합 발전을 위한 법·제도를 정비할 것을 권고해서다. 유엔은 국제사회의 특정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와 관련한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해마다 특별한 이름을 정한다. 올해(2013년)는 ‘세계 물 협력의 해’다.
정치권은 2012년에 맞춰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하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7년 ‘농업협동조합법’ 제정 이후 1차산업 위주로 협동조합 활동이 시작됐지만, 민간 주도의 자생적이고 자율적인 발전을 충분히 이루지 못했고, 협동조합으로서의 법인격(法人格)을 요구하는 많은 관련 단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었다.
협동조합법 탄생 내막
가장 먼저 협동조합기본법을 내놓은 정치인은 민주당 대표였던 손학규(孫鶴圭) 전 의원이었다. 그는 2011년 10월 12일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해 4·27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손 전 의원은 ‘의원배지’를 달자마자 협동조합기본법 제정(制定)에 집중했다. 이후(2011년 11월 2일)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던 김성식(金成植) 전 안철수 대선캠프 공동선거대책본부장도 협동조합기본법을 발의했다. 같은 날 시민단체인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연대회의도 당시 민주노동당 현직 의원이자 현 통합진보당 이정희(李正姬) 대표를 통해 제정 청원을 했다.
이 세 가지 법안을 심사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법안을 병합(倂合)하여 위원회 대안으로 제안하기로 의결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이야기다.
“당시 손학규 의원 안은 경제활동 중심의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단일구조로 편제되어 있는 반면, 이정희 의원이 소개한 청원은 협동조합을 비영리법인으로 규정하면서 공익성을 강조하는 단일체제로 돼 있었습니다. 김성식 의원 안은 경제활동 중심의 협동조합과 비영리법인의 성격을 갖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별도로 도입해, 손학규 의원 안의 협동조합 개념과 이정희 의원의 협동조합 개념을 포괄하는 다중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논의 끝에 두 가지 유형을 포괄할 수 있는 다중구조의 입법체계를 도입하는 것으로 합의를 이뤘습니다.”
이렇게 완성한 협동조합기본법은 2011년 12월 29일 본회의에 참석했던 여야 국회의원 176명 전원의 찬성표를 얻어 가결됐다. 당시 기획재정위원회는 협동조합기본법안 검토보고서에서 기본법 시행 전망을 낙관했다.
협동조합기본법안이 시행되면 ▲영세상인·소상공인의 협력사업 확대로 경쟁력 강화 ▲자활공동체, 돌봄 사업 등의 자생력 강화 ▲낙후지역 사회안전망 구축과 지역개발 활성화 등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 협동조합법 개정에 나선 이유
2013년 10월 17일 현재를 기준으로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2012년 12월 1일)된 것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개정안은 지속적으로 발의되고 있다. 기존 협동조합기본법의 허점을 손보려는 움직임이다. 허술한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된 데에는 만장일치로 법안을 처리한 여야 모두에 책임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 3선 의원은 “솔직히 의원 대부분이 내용을 모른 채 찬성을 한 것은 맞다”며 “문제점을 꼼꼼히 따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다수의 의원이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면 사회통합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할 것이란 이야기만 믿고 찬성 버튼을 눌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회에 발의된 협동조합기본법 개정안은 4건이다. 협동조합기본법으로 인해 발의된 중소기업협동조합법 개정안, 수산업협동조합법 개정안,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개정안,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까지 더하면 2013년에만 20개가 넘는다.
이 중 지난 9월 4일 새누리당 정희수(鄭熙秀) 의원이 정문헌(鄭文憲) 이만우(李萬雨) 김성찬(金盛贊) 이명수(李明洙) 조명철(趙明哲) 김무성(金武星) 이한성(李翰成) 윤명희(尹明凞) 김종태(金鍾泰) 정우택(鄭宇澤) 의원과 함께 낸 개정안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의 정치세력화를 우려한 첫 개정안이기 때문이다. 개정안의 골자는 ‘협동조합 및 사회적 협동조합은 정치에 관여하는 모든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한다’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정 의원은 “협동조합이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만큼 제재(制裁)장치를 마련했다”고 개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정치인이 협동조합을 이용한다고 봅니까.
“그렇습니다.”
—정 의원은 조합원으로 가입한 협동조합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법안을 살펴보면 정치에 관여하는 모든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한다고 했는데 기준이 좀 애매합니다. 기준이 불명확하면 법집행 기관의 자의적(恣意的) 판단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현역의원이 가입한 협동조합이나, 정치 또는 정치인을 연상시키는 사업을 하는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법을 개정했다고 보면 됩니다.”
정 의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도 협동조합기본법 개정 추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기획재정부 담당 부서 관계자에게 문의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협동조합법이 시행되고 협동조합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지만 본래 취지와 다르게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협동조합 활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협동조합이 정치적 세력화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조항을 넣을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협동조합의 정치적 중립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의원 또는 지방의원의 협동조합 임직원 겸직 불허 조항을 넣을 계획”이라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11월 안에 개정안 완성,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한다는 입장이다. 현 협동조합기본법에는 ‘협동조합 및 사회적 협동조합은 공직선거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 반대하는 행위 또는 특정인을 당선되도록 하거나 당선되지 아니하도록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는 항목(제9조)만 있다.
정치색 강한 협동조합은 존재할까?
여기서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정부 여당의 우려처럼 정치색을 띤 협동조합이 실제 존재할까다. 지난 1월 국내 처음으로 협동조합 연합체인 한국협동조합연대를 만든 주역 중 한 명인 임헌조 이사는 “실제 존재한다. 협동조합에 대해 잘 모르는 우파보다 좌파 쪽은 협동조합을 선거조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좌파 인사들은 ‘협동조합을 잘 운영하면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닙니다. 민주당은 법안 통과 후 1년의 유예기간 동안 각 지구당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의 재정 기반이나 조직 운영에 대한 교육을 시행한 것으로 압니다.”
협동조합 관련 단체에 몸담은 인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국회의원이든 지자체장이든 선거로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선거는 ‘조직’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조직’을 관리하려면 자금도 꽤 많이 듭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과 협동조합을 만들면 그게 자동으로 조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에겐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아직 사업이 제대로 시작된 곳도 많지 않은데,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은 너무 민감한 반응”(이수연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란 견해도 있다.
해기마중물협동조합원 명단 보니
정치색을 띤 협동조합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을 시점에 기자는 협동조합 관련 세미나가 열린 현장에서 흥미 있는 이야기를 접했다.
‘친노(親盧)’가 중심이 된 협동조합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5명 이상 모이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만큼 법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주체가 정치적 성향이 분명한 ‘친노’ 인사들인 것은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정치색을 띤 협동조합이라는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에 관계한 여러 사람을 취재한 끝에 ‘친노’가 중심이 됐다는 협동조합을 찾을 수 있었다. ‘해기마중물협동조합’이 그것이다. ‘해기’는 해운대・기장의 줄임말이다. 마중물의 사전적 뜻은 펌프질할 때 물을 쉽게 끌어올리기 위해 부어 주는 한 바가지 정도의 물로, 희생이나 귀중한 존재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다.
지난 4월 17일 창립총회를 갖고 본격 활동에 나선 해기마중물협동조합에는 민주당 문재인(文在寅) 의원, 노무현 정부 때 민정수석을 지낸 이호철(李鎬喆)씨, 친노 핵심으로 꼽히는 문성근(文盛瑾)씨 등이 조합원으로 등록돼 있었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해기마중물 조합원 명단에 따르면 이들 외에도 노무현 정부 때 민정수석이었던 민주당 전해철(全海澈) 의원, 비슷한 시기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역임한 양정철(楊正哲) 현(現) 노무현시민학교 교장,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했던 김만복(金萬福) 전 국정원장, 한국노총 출신의 민주당 한정애 의원(비례대표), 야권 성향의 조국(曺國) 교수, 민주당 윤준호 해운대 기장갑 지역위원장 등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었다.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노무현재단)’에 소속된 인물도 10명 이상 됐다. 노무현재단은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사업(▲기록물 보존 및 기념관 건립 ▲추모를 위한 제반 문화사업 ▲묘역화 지원사업 ▲연구·출판사업 ▲교육사업 및 연수프로그램사업) 추진을 위해 2009년 9월 23일 출범했다. 문 의원은 2010년 8월부터 2012년 5월까지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역임했다.
《주간경향》 1027호에 실린 ‘바보 노무현’이 그리워 만든 ‘바보주막’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조합원 중에는 진보신당이나 진보정의당 당원도 있다고 한다.
물론 해기마중물협동조합 외에도 정치인이 참여한 협동조합(미들클래스소사이어티-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참여, 정치소비자협동조합 울림-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참여, 제주비전협동조합-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참여)은 여럿 존재한다. 하지만 한 정부의 요직을 맡았던 핵심 인사 다수가 대거 조합원으로 가입된 해기마중물협동조합과는 무게감 자체에서 비교 대상이 되기 어렵다.
왜 친노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느냐는 물음에 해기마중물협동조합 관계자는 “저희 협동조합은 자주적·자립적·자치적인 협동조합 활동을 통해 구성원의 복리증진과 마을도서관, 마을카페, 유통업, 식당, 주점 등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해운대구와 기장군 지역 경제와 마을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됐다. 여의도 정치와는 아무 상관 없다. 조합원들 대다수도 평범한 부산시민”이라고 했다.
이호철 전 민정수석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보통사람들이 모여 만든 막걸리 집이다. 선거에서도 지고 ‘멘붕’인데 우리가 뭐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바보주막’을 협동조합으로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협동조합 공부도 같이 하고 봉하막걸리도 대놓고 먹자고 해서 보통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해기마중물조합의 핵심 사업은?
그렇다면 해기마중물협동조합은 어떤 사업을 주로 할까. 지난 5월 16일 자 《내일신문》 보도 내용이다.
<노무현재단의 해운대구·기장군에 거주하는 후원회원들이 주축이 되어서 설립한 해기마중물협동조합은 15일 제1호 사업으로 봉하막걸리전문점 바보주막 해운대점을 열었다.>
‘바보주막’은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영농법인 ㈜봉하마을이 설립한 민속주점이다. ㈜봉하마을은 사회적기업을 지향하는 협동조합에만 노무현재단 지역위원회의 협의를 거쳐 바보주막을 열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각 지역별 바보주막 컨설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0개 이상의 바보주막을 협동조합 형식으로 설립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바보’라는 이름은 노 전 대통령의 애칭에서 따왔다. 과거 양지(陽地)를 마다하고 사지(死地)인 줄 알면서도 부산에 출마해 네 번 낙선한 이후 노 전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었다.
문 의원은 해기마중물협동조합의 1호 사업장인 바보주막 해운대점이 문을 연(5월 15일) 직후인 5월 30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진 ‘해운대 바보주막’에 가면 봉하마을 유기농 햅쌀로 만든 봉하막걸리를 마실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 주막답게 회의실도 하나 있어서 막걸리 한잔하면서 회의나 세미나도 할 수 있죠. 언제나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건 덤이고요.>
굵직한 친노 인사가 포함된 해기마중물협동조합원들이 운영하는 바보주막 해운대점을 방문하기 위해 지난 10월 6일 KTX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역에서 내려 곧바로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역보다 두 정거장 뒤에 있는 장산역에서 하차했다. 그곳에서 10분 정도 걸으니 바보주막 해운대점이 보였다. 2층에 자리한 주막에 가기 위해 건물에 들어서니 경비원이 “오늘은 공사 때문에 영업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시각은 오후 8시. 다음 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親盧 사랑방 느낌의 인테리어
7일 오후 5시 다시 가게를 찾았다. 들어가 보니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줬다. 가격은 일반 막걸리 집과 비슷했다. 대충 주문을 하고 가게 이리저리를 살폈다. 우선 가게 벽에 걸린 큰 걸개그림이 눈에 띄었다. 그림 안에는 ‘당신은 내가 살았던 가장 따뜻한 계절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답이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옆에는 이곳을 방문한 손님이 붙여 놓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대부분 ‘붙이는 메모지’에 글을 써서 붙여 놓은 것이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여럿이 함께 동반자로 길을 갑시다’ ‘깨어 있는 시민의 장이 되길’ ‘그분의 추모식에 가진 못하지만 이곳에서 그리운 그분 한 번 더 떠올려 봅니다’ 등의 글이 쓰여 있었다. TV 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액자 사진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문 의원이 트위터를 통해 거론했던 세미나실도 보였다. 세미나실 옆에는 사무실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책들이 많이 꽂혀 있었다. 문이 닫혀 있어 무슨 책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지난 6월 2일 이곳에서는 이호철 비서관이 자신의 부인과 함께 쓴 《지구와 연애하는 법》 출판기념회가 열렸었다.
부산 사투리를 쓰지 않는 사람이 가게 내부에 관심이 많았던 게 신기했는지 서빙을 하던 종업원이 “부산국제영화제 보러 오셨느냐”고 말을 걸었다. “여행을 왔다”고 했다.
이윽고 주문한 안주와 봉하막걸리가 나왔다. 봉하막걸리를 잔에 따라 한모금 마셔 보니 알려진 대로 단맛이 났다. 안주와 밑반찬도 정갈했다. 일하는 사람들도 친절했다.
가게에 온 지 30분이 지났을까. 손님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손님이 꽤 됐다. 이들은 단골인 듯 대부분 가게 사람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뒤 테이블에 앉은 일행 중 한 명이 취기가 오른 듯 “난 여자지만 같은 박근혜 대통령을 대선 때 안 뽑았다”며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듣지 않으려 해도 목소리가 커서 대화 내용이 들렸다. 그 일행의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상당 시간 이어졌다.
9시 가까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면서 “인터넷을 보니 이곳에는 유명한 조합원들이 많던데요”라며 종업원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계산대 뒤에 있는 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문 의원을 비롯하여 그의 부인인 김정숙씨, 양정철 전 비서관, 조국 교수, 문성근씨 등 유명인사의 사인이 붙어 있었다. 그 옆에는 해당 날짜의 《경향신문》 3부가 놓여 있었다. 과거 이곳을 방문했던 손님이 블로그에 올린 사진에는 신문이 놓인 공간 주변에 문 의원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이 비치돼 있었지만 이날은 보이지 않았다.
—유명한 조합원들이 자주 방문합니까.
“바쁘시니까. 자주는 못 오시죠.”
—문 의원님은 지역구가 부산인데 어떻습니까.
“가게 오픈식에 한 번, 그 뒤에 또 한 번 해서 총 두 번 오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셔서 막걸리는 안 드시고 그냥 잠깐 들렀다 가셨어요.”
—그래도 대부분의 조합원이 유명한 분들이 같은 조합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렇지요.”
—장사는 잘되는 편인가요.
“그럭저럭, 안 되는 편은 아니에요.”
—매출이 괜찮겠습니다.
“매출의 일부분을 지역에 환원하고 있습니다.”
바보주막 해운대점 초기 월 매출 및 지출 계획에 따르면 하루 목표 매출은 100만원이다. 그래야 월세 및 관리비(300만원), 인건비(1000만원), 음식재료비(910만원)를 제외하고 한 달에 390만원 정도의 수익이 난다는 계산이다.
몇 마디 나누고 나가려 하자 종업원이 “이번 달 말에는 조합원 강의를 위해 조국 교수님이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게를 나서는데 30대 초반의 남성 두 명이 바보주막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바보주막에 가는 이유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조합원의 면면이 화려해서인가고 묻자 일행 중 한 명인 박모(27세)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솔직히 가게에 노 전 대통령 사진 몇 개와 유명한 조합원 사인 몇 장 있는데 이것을 보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없던 호감이 생길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다만 원래부터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거나, 야권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한잔하는 게 다른 곳보다는 편할 수 있겠지요.”
마중물고파협동조합
취재 과정에서 《월간조선》은 해기마중물협동조합과 비슷한 또 다른 협동조합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마중물고파’라는 이름의 협동조합인데 ‘고파’는 경기도 고양・파주의 줄임말이다.
지난 8월 1일 창립총회를 가지고 본격 활동에 나선 마중물고파협동조합의 1호 사업 역시 바보주막 사업이었다. 지난 9월 28일 문을 연 바보주막 일산점이 마중물고파협동조합의 첫 작품이다. 이 협동조합의 발기인 대표는 해기마중물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한 문성근씨다. 문재인 의원도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었다. 문 의원 역시 해기마중물협동조합원이다. 이 협동조합에도 해기마중물협동조합처럼 친노 인사들이 대거 가입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관계자에게 물었다. 관계자는 “문성근씨와 문재인 유은혜 의원이 가장 잘 알려진 조합원”이라고 했다.
바보주막 일산점의 모습은 해운대점과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내부를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것들로 꾸며 놓은 것이다. 바보주막 일산점 대표는 정효진씨였다. 정씨는 ‘백만송이국민의명령’에서 조직업무를 맡았던 인물이다. 백만송이국민의명령은 지난 2010년 야권 단일정당 추진을 목표로 문성근씨가 결성한 단체다.
백만송이국민의명령 상임운영위원회는 8월 12일 회원들에게 이러한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시민 정치 활동가들이 ‘마중물고파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있습니다. 첫 사업으로 ‘바보주막’을 운영하고 앞으로 ‘자동차정비협동조합’, ‘그린카협동조합’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조합은 이익이 나면 최우선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님 추도식은 우리 비용으로 우리가 주최한다”고 정관에 못 박았습니다.>
“언제까지 그분을 팔 겁니까”
두 개의 협동조합 취재를 마친 뒤 범 친노로 분류되는 민주당 의원에게 바보주막협동조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이야기다.
“저는 협동조합의 순수성이 훼손되면 안 된다고 봅니다. 협동조합이 정치세력화되면 성공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두 개의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저도 우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저는 청와대에서 높은 권력층이었던 그분들이 왜 나서는지 모르겠습니다. 전국적으로 바보주막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것을 보니 뭔가 의도가 있을 법도 한데…, 그런데 이름이 바보주막이 뭡니까. 돌아가신 지가 언제인데 아직 그분을 팝니까.”
민주당 초선 의원실에 있는 비서관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조합원들의 면면도 그렇고, 바보주막 사업도 그렇고, 정치행위를 위해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딱 봐도 그렇잖아요.” 일부지만 친정에서도 바보주막협동조합의 정치색에 우려를 표시한 셈이다. 친노의 좌장이자 두 협동조합 모두에 조합원으로 등록된 문 의원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다음은 문 의원 측 관계자와의 문답이다.
—해기마중물, 마중물고파협동조합의 정치색이 강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두 조합 모두 지역의 경제와 마을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한다는 게 설립 목적입니다. 정치적인 목적은 전혀 없다고 봅니다.”
—혹시 문 의원께서 두 조합 외에 가입한 조합이 있나요.
“네.”
—알려주실 순 없나요.
“알려드릴 순 없고, 의원님께서는 예전부터 사회적 협동조합에 관심이 많습니다.”
양정철 노무현시민학교 교장의 입장도 비슷했다. 그는 “사회에 공헌한다는 협동조합의 본래 취지가 마음에 들었고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해기마중물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한 것”이라며 “바보주막 해운대점은 봉하마을에서 막걸리나 농산물을 가져와서 파는 곳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했다.⊙
정치권은 2012년에 맞춰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하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7년 ‘농업협동조합법’ 제정 이후 1차산업 위주로 협동조합 활동이 시작됐지만, 민간 주도의 자생적이고 자율적인 발전을 충분히 이루지 못했고, 협동조합으로서의 법인격(法人格)을 요구하는 많은 관련 단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었다.
협동조합법 탄생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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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는 2011년 12월 29일 만장일치로 협동조합기본법을 가결했다. |
이 세 가지 법안을 심사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법안을 병합(倂合)하여 위원회 대안으로 제안하기로 의결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이야기다.
“당시 손학규 의원 안은 경제활동 중심의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단일구조로 편제되어 있는 반면, 이정희 의원이 소개한 청원은 협동조합을 비영리법인으로 규정하면서 공익성을 강조하는 단일체제로 돼 있었습니다. 김성식 의원 안은 경제활동 중심의 협동조합과 비영리법인의 성격을 갖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별도로 도입해, 손학규 의원 안의 협동조합 개념과 이정희 의원의 협동조합 개념을 포괄하는 다중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논의 끝에 두 가지 유형을 포괄할 수 있는 다중구조의 입법체계를 도입하는 것으로 합의를 이뤘습니다.”
이렇게 완성한 협동조합기본법은 2011년 12월 29일 본회의에 참석했던 여야 국회의원 176명 전원의 찬성표를 얻어 가결됐다. 당시 기획재정위원회는 협동조합기본법안 검토보고서에서 기본법 시행 전망을 낙관했다.
협동조합기본법안이 시행되면 ▲영세상인·소상공인의 협력사업 확대로 경쟁력 강화 ▲자활공동체, 돌봄 사업 등의 자생력 강화 ▲낙후지역 사회안전망 구축과 지역개발 활성화 등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 협동조합법 개정에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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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수 새누리당 의원. |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 3선 의원은 “솔직히 의원 대부분이 내용을 모른 채 찬성을 한 것은 맞다”며 “문제점을 꼼꼼히 따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다수의 의원이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면 사회통합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할 것이란 이야기만 믿고 찬성 버튼을 눌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회에 발의된 협동조합기본법 개정안은 4건이다. 협동조합기본법으로 인해 발의된 중소기업협동조합법 개정안, 수산업협동조합법 개정안,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개정안,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까지 더하면 2013년에만 20개가 넘는다.
이 중 지난 9월 4일 새누리당 정희수(鄭熙秀) 의원이 정문헌(鄭文憲) 이만우(李萬雨) 김성찬(金盛贊) 이명수(李明洙) 조명철(趙明哲) 김무성(金武星) 이한성(李翰成) 윤명희(尹明凞) 김종태(金鍾泰) 정우택(鄭宇澤) 의원과 함께 낸 개정안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의 정치세력화를 우려한 첫 개정안이기 때문이다. 개정안의 골자는 ‘협동조합 및 사회적 협동조합은 정치에 관여하는 모든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한다’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정 의원은 “협동조합이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만큼 제재(制裁)장치를 마련했다”고 개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정치인이 협동조합을 이용한다고 봅니까.
“그렇습니다.”
—정 의원은 조합원으로 가입한 협동조합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법안을 살펴보면 정치에 관여하는 모든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한다고 했는데 기준이 좀 애매합니다. 기준이 불명확하면 법집행 기관의 자의적(恣意的) 판단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현역의원이 가입한 협동조합이나, 정치 또는 정치인을 연상시키는 사업을 하는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법을 개정했다고 보면 됩니다.”
정 의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도 협동조합기본법 개정 추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기획재정부 담당 부서 관계자에게 문의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협동조합법이 시행되고 협동조합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지만 본래 취지와 다르게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협동조합 활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협동조합이 정치적 세력화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조항을 넣을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협동조합의 정치적 중립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의원 또는 지방의원의 협동조합 임직원 겸직 불허 조항을 넣을 계획”이라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11월 안에 개정안 완성,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한다는 입장이다. 현 협동조합기본법에는 ‘협동조합 및 사회적 협동조합은 공직선거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 반대하는 행위 또는 특정인을 당선되도록 하거나 당선되지 아니하도록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는 항목(제9조)만 있다.
정치색 강한 협동조합은 존재할까?
여기서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정부 여당의 우려처럼 정치색을 띤 협동조합이 실제 존재할까다. 지난 1월 국내 처음으로 협동조합 연합체인 한국협동조합연대를 만든 주역 중 한 명인 임헌조 이사는 “실제 존재한다. 협동조합에 대해 잘 모르는 우파보다 좌파 쪽은 협동조합을 선거조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좌파 인사들은 ‘협동조합을 잘 운영하면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닙니다. 민주당은 법안 통과 후 1년의 유예기간 동안 각 지구당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의 재정 기반이나 조직 운영에 대한 교육을 시행한 것으로 압니다.”
협동조합 관련 단체에 몸담은 인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국회의원이든 지자체장이든 선거로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선거는 ‘조직’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조직’을 관리하려면 자금도 꽤 많이 듭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과 협동조합을 만들면 그게 자동으로 조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에겐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아직 사업이 제대로 시작된 곳도 많지 않은데,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은 너무 민감한 반응”(이수연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란 견해도 있다.
해기마중물협동조합원 명단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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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기마중물협동조합에는 문재인, 전해철 의원을 비롯 김만복 전 국정원장 이호철 전 민정수석, 양정철 노무현시민학교 교장 등 친노 핵심 세력이 다수 조합원으로 등록했다. 2009년 5월 26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문-전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친노(親盧)’가 중심이 된 협동조합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5명 이상 모이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만큼 법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주체가 정치적 성향이 분명한 ‘친노’ 인사들인 것은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정치색을 띤 협동조합이라는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에 관계한 여러 사람을 취재한 끝에 ‘친노’가 중심이 됐다는 협동조합을 찾을 수 있었다. ‘해기마중물협동조합’이 그것이다. ‘해기’는 해운대・기장의 줄임말이다. 마중물의 사전적 뜻은 펌프질할 때 물을 쉽게 끌어올리기 위해 부어 주는 한 바가지 정도의 물로, 희생이나 귀중한 존재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다.
지난 4월 17일 창립총회를 갖고 본격 활동에 나선 해기마중물협동조합에는 민주당 문재인(文在寅) 의원, 노무현 정부 때 민정수석을 지낸 이호철(李鎬喆)씨, 친노 핵심으로 꼽히는 문성근(文盛瑾)씨 등이 조합원으로 등록돼 있었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해기마중물 조합원 명단에 따르면 이들 외에도 노무현 정부 때 민정수석이었던 민주당 전해철(全海澈) 의원, 비슷한 시기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역임한 양정철(楊正哲) 현(現) 노무현시민학교 교장,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했던 김만복(金萬福) 전 국정원장, 한국노총 출신의 민주당 한정애 의원(비례대표), 야권 성향의 조국(曺國) 교수, 민주당 윤준호 해운대 기장갑 지역위원장 등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었다.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노무현재단)’에 소속된 인물도 10명 이상 됐다. 노무현재단은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사업(▲기록물 보존 및 기념관 건립 ▲추모를 위한 제반 문화사업 ▲묘역화 지원사업 ▲연구·출판사업 ▲교육사업 및 연수프로그램사업) 추진을 위해 2009년 9월 23일 출범했다. 문 의원은 2010년 8월부터 2012년 5월까지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역임했다.
《주간경향》 1027호에 실린 ‘바보 노무현’이 그리워 만든 ‘바보주막’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조합원 중에는 진보신당이나 진보정의당 당원도 있다고 한다.
물론 해기마중물협동조합 외에도 정치인이 참여한 협동조합(미들클래스소사이어티-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참여, 정치소비자협동조합 울림-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참여, 제주비전협동조합-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참여)은 여럿 존재한다. 하지만 한 정부의 요직을 맡았던 핵심 인사 다수가 대거 조합원으로 가입된 해기마중물협동조합과는 무게감 자체에서 비교 대상이 되기 어렵다.
왜 친노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느냐는 물음에 해기마중물협동조합 관계자는 “저희 협동조합은 자주적·자립적·자치적인 협동조합 활동을 통해 구성원의 복리증진과 마을도서관, 마을카페, 유통업, 식당, 주점 등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해운대구와 기장군 지역 경제와 마을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됐다. 여의도 정치와는 아무 상관 없다. 조합원들 대다수도 평범한 부산시민”이라고 했다.
이호철 전 민정수석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보통사람들이 모여 만든 막걸리 집이다. 선거에서도 지고 ‘멘붕’인데 우리가 뭐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바보주막’을 협동조합으로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협동조합 공부도 같이 하고 봉하막걸리도 대놓고 먹자고 해서 보통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해기마중물조합의 핵심 사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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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기마중물협동조합은 제1호 사업으로 봉하막걸리전문점 바보주막 해운대점을 열었다. 바보주막 홍보 포스터. |
<노무현재단의 해운대구·기장군에 거주하는 후원회원들이 주축이 되어서 설립한 해기마중물협동조합은 15일 제1호 사업으로 봉하막걸리전문점 바보주막 해운대점을 열었다.>
‘바보주막’은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영농법인 ㈜봉하마을이 설립한 민속주점이다. ㈜봉하마을은 사회적기업을 지향하는 협동조합에만 노무현재단 지역위원회의 협의를 거쳐 바보주막을 열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각 지역별 바보주막 컨설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0개 이상의 바보주막을 협동조합 형식으로 설립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바보’라는 이름은 노 전 대통령의 애칭에서 따왔다. 과거 양지(陽地)를 마다하고 사지(死地)인 줄 알면서도 부산에 출마해 네 번 낙선한 이후 노 전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었다.
문 의원은 해기마중물협동조합의 1호 사업장인 바보주막 해운대점이 문을 연(5월 15일) 직후인 5월 30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진 ‘해운대 바보주막’에 가면 봉하마을 유기농 햅쌀로 만든 봉하막걸리를 마실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 주막답게 회의실도 하나 있어서 막걸리 한잔하면서 회의나 세미나도 할 수 있죠. 언제나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건 덤이고요.>
굵직한 친노 인사가 포함된 해기마중물협동조합원들이 운영하는 바보주막 해운대점을 방문하기 위해 지난 10월 6일 KTX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역에서 내려 곧바로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역보다 두 정거장 뒤에 있는 장산역에서 하차했다. 그곳에서 10분 정도 걸으니 바보주막 해운대점이 보였다. 2층에 자리한 주막에 가기 위해 건물에 들어서니 경비원이 “오늘은 공사 때문에 영업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시각은 오후 8시. 다음 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親盧 사랑방 느낌의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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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주막 해운대점 내부 벽.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글이 접착메모지에 적혀 붙어 있었다. |
그 옆에는 이곳을 방문한 손님이 붙여 놓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대부분 ‘붙이는 메모지’에 글을 써서 붙여 놓은 것이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여럿이 함께 동반자로 길을 갑시다’ ‘깨어 있는 시민의 장이 되길’ ‘그분의 추모식에 가진 못하지만 이곳에서 그리운 그분 한 번 더 떠올려 봅니다’ 등의 글이 쓰여 있었다. TV 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액자 사진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문 의원이 트위터를 통해 거론했던 세미나실도 보였다. 세미나실 옆에는 사무실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책들이 많이 꽂혀 있었다. 문이 닫혀 있어 무슨 책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지난 6월 2일 이곳에서는 이호철 비서관이 자신의 부인과 함께 쓴 《지구와 연애하는 법》 출판기념회가 열렸었다.
부산 사투리를 쓰지 않는 사람이 가게 내부에 관심이 많았던 게 신기했는지 서빙을 하던 종업원이 “부산국제영화제 보러 오셨느냐”고 말을 걸었다. “여행을 왔다”고 했다.
이윽고 주문한 안주와 봉하막걸리가 나왔다. 봉하막걸리를 잔에 따라 한모금 마셔 보니 알려진 대로 단맛이 났다. 안주와 밑반찬도 정갈했다. 일하는 사람들도 친절했다.
가게에 온 지 30분이 지났을까. 손님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손님이 꽤 됐다. 이들은 단골인 듯 대부분 가게 사람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뒤 테이블에 앉은 일행 중 한 명이 취기가 오른 듯 “난 여자지만 같은 박근혜 대통령을 대선 때 안 뽑았다”며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듣지 않으려 해도 목소리가 커서 대화 내용이 들렸다. 그 일행의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상당 시간 이어졌다.
9시 가까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면서 “인터넷을 보니 이곳에는 유명한 조합원들이 많던데요”라며 종업원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계산대 뒤에 있는 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문 의원을 비롯하여 그의 부인인 김정숙씨, 양정철 전 비서관, 조국 교수, 문성근씨 등 유명인사의 사인이 붙어 있었다. 그 옆에는 해당 날짜의 《경향신문》 3부가 놓여 있었다. 과거 이곳을 방문했던 손님이 블로그에 올린 사진에는 신문이 놓인 공간 주변에 문 의원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이 비치돼 있었지만 이날은 보이지 않았다.
—유명한 조합원들이 자주 방문합니까.
“바쁘시니까. 자주는 못 오시죠.”
—문 의원님은 지역구가 부산인데 어떻습니까.
“가게 오픈식에 한 번, 그 뒤에 또 한 번 해서 총 두 번 오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셔서 막걸리는 안 드시고 그냥 잠깐 들렀다 가셨어요.”
—그래도 대부분의 조합원이 유명한 분들이 같은 조합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렇지요.”
—장사는 잘되는 편인가요.
“그럭저럭, 안 되는 편은 아니에요.”
—매출이 괜찮겠습니다.
“매출의 일부분을 지역에 환원하고 있습니다.”
바보주막 해운대점 초기 월 매출 및 지출 계획에 따르면 하루 목표 매출은 100만원이다. 그래야 월세 및 관리비(300만원), 인건비(1000만원), 음식재료비(910만원)를 제외하고 한 달에 390만원 정도의 수익이 난다는 계산이다.
몇 마디 나누고 나가려 하자 종업원이 “이번 달 말에는 조합원 강의를 위해 조국 교수님이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게를 나서는데 30대 초반의 남성 두 명이 바보주막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바보주막에 가는 이유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조합원의 면면이 화려해서인가고 묻자 일행 중 한 명인 박모(27세)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솔직히 가게에 노 전 대통령 사진 몇 개와 유명한 조합원 사인 몇 장 있는데 이것을 보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없던 호감이 생길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다만 원래부터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거나, 야권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한잔하는 게 다른 곳보다는 편할 수 있겠지요.”
마중물고파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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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중물고파협동조합의 제1호 사업인 바보주막 일산점 제안설명회 포스터. |
지난 8월 1일 창립총회를 가지고 본격 활동에 나선 마중물고파협동조합의 1호 사업 역시 바보주막 사업이었다. 지난 9월 28일 문을 연 바보주막 일산점이 마중물고파협동조합의 첫 작품이다. 이 협동조합의 발기인 대표는 해기마중물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한 문성근씨다. 문재인 의원도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었다. 문 의원 역시 해기마중물협동조합원이다. 이 협동조합에도 해기마중물협동조합처럼 친노 인사들이 대거 가입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관계자에게 물었다. 관계자는 “문성근씨와 문재인 유은혜 의원이 가장 잘 알려진 조합원”이라고 했다.
바보주막 일산점의 모습은 해운대점과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내부를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것들로 꾸며 놓은 것이다. 바보주막 일산점 대표는 정효진씨였다. 정씨는 ‘백만송이국민의명령’에서 조직업무를 맡았던 인물이다. 백만송이국민의명령은 지난 2010년 야권 단일정당 추진을 목표로 문성근씨가 결성한 단체다.
백만송이국민의명령 상임운영위원회는 8월 12일 회원들에게 이러한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시민 정치 활동가들이 ‘마중물고파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있습니다. 첫 사업으로 ‘바보주막’을 운영하고 앞으로 ‘자동차정비협동조합’, ‘그린카협동조합’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조합은 이익이 나면 최우선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님 추도식은 우리 비용으로 우리가 주최한다”고 정관에 못 박았습니다.>
“언제까지 그분을 팔 겁니까”
두 개의 협동조합 취재를 마친 뒤 범 친노로 분류되는 민주당 의원에게 바보주막협동조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이야기다.
“저는 협동조합의 순수성이 훼손되면 안 된다고 봅니다. 협동조합이 정치세력화되면 성공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두 개의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저도 우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저는 청와대에서 높은 권력층이었던 그분들이 왜 나서는지 모르겠습니다. 전국적으로 바보주막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것을 보니 뭔가 의도가 있을 법도 한데…, 그런데 이름이 바보주막이 뭡니까. 돌아가신 지가 언제인데 아직 그분을 팝니까.”
민주당 초선 의원실에 있는 비서관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조합원들의 면면도 그렇고, 바보주막 사업도 그렇고, 정치행위를 위해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딱 봐도 그렇잖아요.” 일부지만 친정에서도 바보주막협동조합의 정치색에 우려를 표시한 셈이다. 친노의 좌장이자 두 협동조합 모두에 조합원으로 등록된 문 의원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다음은 문 의원 측 관계자와의 문답이다.
—해기마중물, 마중물고파협동조합의 정치색이 강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두 조합 모두 지역의 경제와 마을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한다는 게 설립 목적입니다. 정치적인 목적은 전혀 없다고 봅니다.”
—혹시 문 의원께서 두 조합 외에 가입한 조합이 있나요.
“네.”
—알려주실 순 없나요.
“알려드릴 순 없고, 의원님께서는 예전부터 사회적 협동조합에 관심이 많습니다.”
양정철 노무현시민학교 교장의 입장도 비슷했다. 그는 “사회에 공헌한다는 협동조합의 본래 취지가 마음에 들었고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해기마중물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한 것”이라며 “바보주막 해운대점은 봉하마을에서 막걸리나 농산물을 가져와서 파는 곳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