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의 민주당, 국정원 일부 직원의 일탈행위를 조직적 부정선거인 양 공격하며 장외투쟁
⊙ 2012 대선후 인터넷과 SNS에서 떠돈 부정선거 의혹은 모두 사실무근으로 판명
⊙ 1987년 컴퓨터 조작설과 구로구청 사건도 근거 없음으로 결론
⊙ 2002년 한나라당 대선무효소송은 전자개표의 정확성만 입증해 준 격
⊙ 2002년 《한겨레》, “기술의 발전을 ‘의식’이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정신적 지체현상을
오롯이 보여준 사태”라고 논평
⊙ 2012 대선후 인터넷과 SNS에서 떠돈 부정선거 의혹은 모두 사실무근으로 판명
⊙ 1987년 컴퓨터 조작설과 구로구청 사건도 근거 없음으로 결론
⊙ 2002년 한나라당 대선무효소송은 전자개표의 정확성만 입증해 준 격
⊙ 2002년 《한겨레》, “기술의 발전을 ‘의식’이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정신적 지체현상을
오롯이 보여준 사태”라고 논평
- 김한길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8월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6차 범국민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우기(雨期)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긴 장마가 끝나고 연일 열대야(熱帶夜)에 시달리던 2013년 8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정치인들이 차지했다. ‘민주주의회복과 국정원개혁국민운동본부’라는 민주당의 장외투쟁 본부가 들어선 것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국가정보원이 대선에 개입했다며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국민이 다 아는 진실을 박근혜 대통령만 모르고 있는 것인가. 박 대통령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8월 3일 청계광장, 8월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도 참석했다. 이 촛불집회를 민주당이 주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참석했다. 아무리 주최(진보좌파 성향의 시민사회단체) 측의 주장에 100% 공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그들에 심정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에 이의를 달기 어렵게 됐다.
민주당은 장외집회를 사실상 이끌면서 줄곧 대선 불복(不服)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 등장한 피켓 중에는 ‘박근혜 OUT’ ‘박근혜 하야하라’ ‘12·19 부정선거 박근혜는 물러가라’는 등이 있었다. 촛불집회 참석자들의 ‘속마음’을 이처럼 잘 요약한 구호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작년 대선은 부정선거이니 선거를 다시 하자’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김한길 대표가 집회에서 대선 불복을 암시하는 어떤 구호도 나오지 않게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설훈(薛勳) 의원은 민주당 집회에서 “새누리당이 국정조사를 안 하겠다는 요체는 박 대통령의 정통성 문제가 국정조사로 인해 드러나 국민적 열기로 옮아붙을까 두려워서 그런 것”이라고 외쳤다. 대통령의 정통성 문제라면 결국은 부정선거로 당선됐다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명확히 기억하고 있는 2012년 12월의 대통령선거는 정말 부정선거였을까.
이 문제를 여기서 본격적으로 다룰 생각은 없다. 장외집회를 결정하면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부정선거의 근거는 하나다. 국정원 대북심리전단 요원이 종북(從北)세력 색출 활동의 일환이라며 종북세력들이 자주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오늘의 유머, 보배드림 등)에 들어갔다가 정치성 댓글을 몇십 개 달았다는 것. 그들이 말하는 인터넷사이트에 자주 접속하는 사람들 중 박근혜(朴槿惠) 후보 지지자는 추정컨대 거의 없을 것이다. 원래 새누리당 성향과는 거리가 먼 인터넷사이트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할 목적이었다면 네이버나 다음 등 메이저 포털을 이용했을 것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민주당이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싶으면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메이저 포털에서 국정원이 ‘여론조작’을 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2012 대선무효’ 주장하고 싶은 민주당
그럼에도 민주당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부정선거의 증거들을 찾아낼 생각은 않고 ‘2012 대선은 부정선거’라 우기고 있다. 이는 결국 ‘부정선거였으면 좋겠다’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걸 외부로 표출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걸 공개적으로 외부에 드러내고, 생각이 같지 않은 다른 사람들까지 설득하려 하고 있다.
민주당의 장외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보면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지가 입증된다. 민주당과 일부 진보좌파 인터넷매체들은 1만5000명이 모였네, 2만명이 모였네, 심지어 4만여 명이 모였네 등을 얘기하지만 실제 1만명을 넘은 경우는 없었다. 총동원령속에 치른 8월 10일 촛불집회도 2만명(경찰추산 1만 6000명)을 넘지 못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부정선거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인터넷 등에서는 각종 부정선거 주장이 판을 쳤다. 전자개표기의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검증되지 않았다는 전자개표기를 처음 쓴 것은 2002년 6월 지방선거부터였다. 그해 대선 개표도 같은 도구로 했다. 바로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눌렀을 때부터다. 대선에는 수많은 야당 측 참관인들도 다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부정선거 운운의 주장은 참관인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이렇듯 황당한 주장이 난무하자 올해 1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서 전자개표 시연회(試演會)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연회도 ‘전자개표는 불법’이라고 외치는 몇몇 참관인들 때문에 아수라장이 됐다.
중앙선관위의 백승훈 주무관은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투표기의 작동원리에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가 보내 온 개표시연 참관기를 보면 ‘전자개표기 사용은 불법’, ‘전자개표기의 검증되지 않은 성능과 조작 가능성’, ‘수(手)검표가 실시되지 않았다’, ‘개표가 너무 빨리 끝났다’는 등의 주장은 모두 억측에 불과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는 2003년도에 우리나라의 투표지 분류기가 성능 미달로 필리핀 대법원에서 사용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필리핀에서 사용한 분류기는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것이 맞지만 그쪽 선거환경에 맞게 별도 제작한 OMR 방식의 전자개표 시스템으로서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투표지 분류기와는 작동원리나 구조, 외양 면에서 전혀 다른 기계”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쉽게 말해 OMR 카드 판독깁니다. 국내 제작업체에서 따로 만들어 수출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기계 자체의 결함 때문이 아닙니다. 공급업체가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는데도 필리핀선거위원회가 일방적으로 공급계약을 체결한 점, 자체적으로 정한 기술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계약을 강행한 점, 그리고 입찰업체들이 기술검사를 통과하지 않았는데도 입찰기각을 거부한 점 때문에 법원이 필리핀선거위원회의 재량권 남용으로 판단, 절차상 하자를 인정한 것입니다.”
1987년 구로구청 사건의 경우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진영(陣營)의 논리는 비단 이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지는 쪽은 거의 매번 그래 왔다. 선거가 치열할수록 그랬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의혹이라기보다는 ‘후유증’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 좀 더 객관적인 표현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생겨 나고 있다. 민주화한 이후에도 이런 갈등이 없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갈등은 거의 항상 제도권 정당의 장외집회 형태로 나타난다. 그 역사를 살펴보자.
권위주의 정부에서 민주화가 이뤄진 가운데 치른 선거 중 가장 치열했던 때는 1987년이었다. 1노(盧) 3김(金), 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김대중(金大中)·김종필(金鍾泌)씨가 맞붙은 선거였다. 총 유권자 수 2587만3624명 가운데 2306만6419명이 투표했다. 89.2%의 투표율이다.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역대 최고의 투표율이다. 이 가운데 노태우 후보가 828만2738표(득표율 36.6%)를 얻어 633만7581표(득표율 28%)를 얻은 김영삼 후보를 제치고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당일 오전 11시경, 서울 구로구청에서 농성 사태가 벌어졌다. 농성은 투표가 종료되기 전에 구청 밖으로 옮겨지는 부재자 투표함을 한 시민이 보고 제보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투표함이 실린 봉고차에는 과자 상자와 식빵 상자도 함께 실려 있었다.
이에 흥분한 시민과 학생들은 오후 1시30분쯤 3층의 선관위 사무실로 몰려가 부정투표 여부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곳에서 투표함 1개, 붓뚜껑 60개, 새 인주 70개, 정당대리인 도장 인주가 묻어 있는 장갑 6켤레, 백지투표용지 1506장이 발견됐다. 붓뚜껑에서는 인주가 선명하게 묻어 나와 시민과 학생들은 방금 사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오후 4시부터 5000여 명의 시민은 문제된 투표함을 공개적으로 개봉할 것을 요구하며 항의, 농성에 돌입했다.
이틀 뒤인 18일에는 경찰의 투입으로 1050여 명이 연행되었고, 그 가운데 105명이 구속되는 것으로 농성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문제의 투표함에 대해서는 선관위와 여야 정치권의 합의하에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개봉할 이유가 없다’고 하여 지금까지 선관위 기록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그 후 12월 29일, 검찰이 구로구의 선관위원 등 17명과 구로구청 점거 농성자들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구로구에서는 선거부정이 없었다”는 것이 그 결론이었다. 부재자투표함이 사전 운반된 것은 선관위원들의 개표준비가 미흡하여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행해진 조치로 밝혀졌다. 또한 현장에서 발견된 투표용지, 인주, 붓뚜껑 등은 일반인들이 사무실 내의 책상과 캐비닛을 뒤져 끄집어낸 것이고, 백지투표용지는 투표용지 훼손에 대비해 예비로 보관 중인 것이었다 한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사망자가 백 명에 이른다’, ‘분신자살자가 있다’는 소문은 모두 유언비어라고 말하며 연행자 중 행방불명된 자는 한 명도 없다고 밝혔다.
선관위, “구로乙 투표함 옮기려던 사람은 야당 측 위원”
<대한민국 선거사 제4집>이란 이름으로 선거사를 발간한 선관위의 한 사무관은 구로구청 사건에 대해 “당시 투표함을 옮기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오해가 있었던 것이지 결코 부정선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당시에는 투표함을 이송하는 과정과 관련해 합법적으로 정해진 매뉴얼이 없었습니다. 투표함을 옮기는 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관례적인 절차에 따라 투표함을 옮기는 과정에서 주변에 같이 산재해 있던 과자와 식빵 상자를 보고 몇몇 시민들이 오해하여 항쟁을 벌인 것입니다.”
그는 “투표함을 이송할 당시 선관위 직원과 민주당의 참관위가 함께 투표함을 옮겼다. 차에 실을 때까지 야당이 동행하여 투표상황을 관리했다. 만일 투표함이 부정선거와 관련되어 있었다면 왜 야당 직원들이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2001년 이 사건이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됐을 때 선관위 측에서는 투표함의 이송 과정이 통상적이고 정당한 절차였음을 분명히 밝혔다. 일부 근현대 역사서에는 구로구청 사건과 관련해 선관위가 선거부정을 저지른 것처럼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분명 사실과 다르다”며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을 일축했다.
그는 투표함을 왜 개봉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투표함 개봉 여부에 대해선 내부에서도 그렇고 외부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배하다. 하지만 이미 부재자신고인명부, 부재자신고서 등의 관련 서류가 방화로 소멸된 이상 투표함을 개봉한다고 해도 부정선거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개봉된 표만 가지고 부정선거라고 확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는 “투표함 개봉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부정선거가 아니라면 개봉해도 상관 없다고 주장하며 개봉해서 입장을 확실히 하자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당시 여당의 득표율이 월등히 높았기 때문에 투표함 개봉은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정치적 논란을 가중시켜 또 다른 역사 왜곡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관위 측에서는 이런 논란이 증폭되고 선거 때마다 이와 관련된 문제가 제기될 바에야 그냥 묵혀 두자는 취지에서 선거함을 개봉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7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문상부 선관위 사무총장은 구로을(乙) 투표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절대 부정투표함이 아니다. 당시 투표함을 들고 구로구청을 나서려 한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에서 추천한 선거관리위원이었다. 투표함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선거관리위원이 왜 옮기려고 했겠나. 분명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뒤이어 문 사무총장은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과거 구로을 투표함을 개봉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솔직히 공개할 생각이 있었지만 이번 대선 이후 몇몇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아직 멀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선이 끝난 지 열흘 가까이 흘렀는데 SNS와 인터넷에선 ‘대선 불복론’이 사그라지지 않더군요.
적법하지 않은 전자개표기 사용과 개표결과 조작 가능성, 투표지분류기에서 문재인 후보의 표를 무효표(미분류 표)로 분류했다는 주장, 일부 지역의 투표자 수와 개표결과 투표수의 불일치, 개표시작부터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득표비율이 일정하게 진행된 것은 사전에 기획된 개표조작 등 제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의혹들을 제기하고, 재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개표 부정을 한단 말입니까. 이렇게 선관위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투표함을 공개해도 논란만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김대중의 ‘컴퓨터 조작설’과 천주교사제단의 의혹 제기
의혹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선거 바로 다음 날인 12월 17일 오전, 김대중 후보는 재야(在野) 인사들과의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부재자투표는 물론 일반투표의 개표 과정에서도 온갖 부정이 저질러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원천적인 부정선거’라고 했는데, 전남·북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에서 열세를 면치 못한 것은 어떻게 보는가”라는 외신기자들의 질문에 “71년에도 전남과 서울에서 이기게 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부정조작을 저질렀다. 발표과정을 봐도 71년에도 약한 지역부터 개표해 참패를 했다고 느끼게 하고 사기를 떨어뜨렸고 참관인을 매수해서 부정을 저질렀다. 따라서 서울에서 (투표)함을 바꾸지 않았다면 내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그날 오후에는 김영삼 후보가 기자회견을 통해 “노태우 후보가 얻은 득표 내용은 누구도 납득할 수 없다”며 정권타도 투쟁을 선언했다. 그는 “국내외 모든 여론조사 기관, 심지어 정부의 여론조사에서도 15일까지 내가 10%를 이기고 있었다. 선거 결과는 200만표 이상 조작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닷새 후인 87년 12월 21일, 평민당 측은 《동아일보》를 비롯한 몇몇 일간지에 광고를 게재하여 대선결과가 컴퓨터로 조작됐다는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광고에서 부정선거의 이유로 제기한 8가지 조항을 살펴보면 ▲각처에서 야당참관인 축출 ▲유령 유권자 조작 최소 93만명 추정 ▲야당표의 무효표 작전 ▲전경 투입과 투표함 바꿔치기의 관계 ▲고정표도 안 나온 엉터리 숫자 ▲날로 심증이 굳어지는 컴퓨터 조작설 ▲3단계로 부재자표 85만을 요리 ▲기타(광범위한 릴레이투표를 포함한 매표행위) 등이 기재되어 있다.
광고내용에 대해 검찰은 8개 항목 중 5개항에 유언비어 유포 혐의가 있다고 판단, 사실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내사(內査)에 들어갔다. 그리고 인천지검은 “투표업무에는 이상이 없다”고 밝히며 “‘경기도 부천시에서 야당참관인 200명 중 100명이 행방불명됐다’는 주장에 대해 진위여부를 수사한 결과 사실 무근이다”고 결론을 내렸다.
87년 12월 22일 《경향신문》은 선거부정 사례로 제시된 컴퓨터 조작설과 유령유권자 조작, 투표함 바꿔치기 등에 관해 선관위 등 관련 기관들이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정면 반박하자 평민당 관계자들이 근거를 대지 못한 채 다소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고 보도했다.
한편 12월 23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미국 인권법률단은 “한국정부가 투개표 과정에서 광범위한 부정을 저질렀다는 야당 측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뒤이어 “일부 부정선거 사례를 입증할 수는 있으나 참관인들이 지켜본 선거절차는 잘 조직되고 효율적이었다”고 말했다.
與小野大의 국회도 부정선거 의혹 조사해 사실무근 결론
야당 측에서도 부정선거 규탄운동이 별 호응을 얻지 못하자 여당과의 대립각을 접었다. 부정선거 무효화와 구로구청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87년 12월 23일부터 단식을 벌여 오던 민통련의 문익환(文益煥) 의장도 다음 해 1월 7일 자로 16일간의 단식투쟁을 끝내고 “국민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입은 상처와 좌절감을 빨리 씻고 민주화라는 민족사의 지상과제를 성취하기 위해 대동단결해야 한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선거가 끝난 지 한 달 후인 1988년 1월 16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 대표인 김승훈 신부와 천주교 공정선거 감시단 오태순 신부가 대법원에 대통령선거가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두 대표는 당시 제주 MBC 개표방송에서 후보들의 득표 집계와 선거관리위원회의 개표상황이 다르다고 자료를 제출하며 컴퓨터 조작설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월간조선》의 2002년 1월호 기사를 통해 사제단의 컴퓨터 부정개표 주장이 ‘근거 없는 허위 폭로’임이 드러났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근거자료로 제출된 상황은 단순히 속보경쟁으로 인해 초래된 상황이라고 한다. 선관위가 표를 검산하는 동안 방송사들이 채 검산되지 않은 집계 결과를 방송사로 송고하면서 빚어진 해프닝으로서, 이는 요즘도 선거개표 방송에서 범할 수 있는 해프닝이다. 대법원은 89년 5월 11일 자로 원고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 후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출발한 13대 국회가 88년 7월 8일 ‘양대선거 부정조사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켜 1990년 7월 14일까지 2년여 동안 부정선거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또한 컴퓨터 조작설이 사실무근으로 공식 발표되었다. 구로구청 사건 또한 시민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항쟁이었던 것으로 결론 났다.
“87년 검표는 手작업으로 진행”
김호열 전 선관위 상임위원은 《월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명확한 근거가 있는데 일부 시민단체와 정당의 편협한 주장들로 인해 역사가 왜곡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제단과 DJ 측에서는 개표를 컴퓨터에 의존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근거로 필리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선거조작을 제시했습니다. 86년 2월 7일 선거에서 개표할 때 컴퓨터를 사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개표결과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죠.
당시 전국자유선거시민운동단체인 남프렐이 개표결과에 대해 항의하며 규탄시위를 벌였습니다. 결국 마르코스는 대통령에서 물러났죠.
하지만 이는 컴퓨터의 문제가 아닙니다. 합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개표결과를 의회에 넘긴 마르코스 개인의 악의가 문제인 것입니다. 마르코스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것을 예로 들어 컴퓨터 조작설을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그는 “당시 필리핀 사태가 컴퓨터 조작과 관련이 없다는 자료는 선관위에 무수히 많다”며 “87년 선거 당시 개표결과와 상황이 수시로 집계되어 보고됐다. 게다가 각 정당의 참관인이 개표 내내 철저히 감시하며 역시 수시로 소속 정당에 상황을 보고했다. 그런데 어떻게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있겠나”고 반문했다. 그리고 컴퓨터 조작설이 명백한 허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 한마디를 던졌다. “당시 선거에서는 애초부터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수(手)작업으로 검표했습니다.”
당시 제주 MBC 보도국장이었던 이문교 현 제주언론인클럽 회장은 “나를 포함해 김기주 사장 등 관련자 10명이 제주지검으로부터 수사를 받았다”며 “하지만 제주 MBC의 총선거개표 방송은 기술적 확인과 진행상의 소홀로 빚어진 고의성이 없는 단순한 방송사고로 판명 났다. 그래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뜬금없는 선거무효 소송 제기
부정선거 의혹은 김영삼·김대중이 상징하는 전통 야당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전통 여당도 선거에서 지자 부정선거 의혹을 들고나왔다. 바로 2002년 선거에서였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맞붙은 선거다. 그해 대선은 월드컵 열기가 끌어낸 젊은 층의 폭발적인 정치참여가 한 특징이었다.
16대 대선 나흘 후인 2002년 12월 23일, 한나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전자개표 조작설이 흘러나왔다. 한나라당 당원과 이회창을 지지하는 ‘창사랑’ 회원 등 200여 명은 여의도 당사에서 중앙선대위 해단식장을 점거하고 재검표를 촉구했다. 이로 인해 선대본부 해단식은 무기연기됐다.
《한겨레》는 당시 몇몇 관계자들의 발언을 토대로 한나라당 측이 지지자들의 원성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청원(徐淸源)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21일부터 당사 앞에서 개표조작 의혹에 분노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당에서는 이 문제에 매우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고 전자개표 문제를 언급했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전자개표 부정을 주장하는 이들은 주로 ‘창사랑’ 회원들과 일반시민들로, 당과는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다음 날인 24일, 한나라당은 태도를 돌연 바꾸어 시중에 퍼지고 있는 개표조작 의혹을 해소하겠다는 목적으로 대법원에 중앙선관위원장을 상대로 당선무효 소송을 냈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부정선거방지본부장을 맡고 있던 안상수(安商守)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재검표를 하기 위해서는 당선무효 소송을 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소송을 제기한 것이며, 투표함 및 전자개표기 등 투표용구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도 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그 근거자료로서 경기 안성·고양·일산과 충남 천안, 제주 남제주 등 7개 지역에서 이회창 후보를 찍은 투표용지가 전자개표함을 통과하자 노 당선자의 표로 분류되는 등 전자개표기 작동에 오류가 있었다며 이것이 개표 조작의 사례라고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 같은 선거 불복(不服)성 문제 제기는 당내 일부 의원들로부터조차 반발을 샀다. 김부겸, 안영근 등 소장파(少壯派) 의원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소송제기는) 한나라당을 또 다시 민심을 거스르는 결정적 패배자로 만든다”며 즉각 취소를 요구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번 대선은 박빙이고, 방송사 예측에서 노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한나라당 참관인들이 한 표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꼼꼼히 지켜봤다”면서 “21세기에 좋은 선거를 마무리해 놓고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한나라당의 소송제기에 유감을 표명했다.
전자개표기 신뢰성만 확인시켜 준 再검표
12월 27일 오전 10시, 당선무효 소송에 따른 재검표가 한나라당이 의혹을 제기한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80개 개표구에 대해서 수(手)검표 방식으로 일제히 실시되었다. 대법원은 만약 재검표에서 당락을 미칠 만큼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온다면 나머지 164개 개표구로 재검표를 확대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재검표 결과에서 ‘반전’은 없었다. 전자개표 결과와 근소한 차이밖에 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재검표 결과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노무현 당선자의 표는 734표 줄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50표가 늘었으며, 무효표는 143표가 나온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노 당선자의 표가 줄어든 것은 대부분 재검표에서 판정보류로 분류됐기 때문으로 실제 감소분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잘못 집계된 투표용지들은 전자개표기가 판독하지 못해 개표인들의 손으로 재분류한 투표용지 가운데 나타나 한나라당이 문제 삼은 전자개표기의 성능은 실제 개표과정에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선관위 측은 말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소송을 주도했던 서청원 대표는 재검표 결과와 관련, “겸허하게 결과에 승복하며 일부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신 정부 출범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야당으로서 국정의 동반자이자 견제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것”이라며 당선무효 소송 취하를 약속했다. 그 다음 날 서 대표는 대선 패배와 재검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오마이뉴스》, “전자개표 조작 불가능”
《한겨레》는 2002년 12월 23일, 기사를 통해 “기술의 발전을 ‘의식’이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정신적 지체현상을 오롯이 보여준 사태이다. 자발적 참여민주주의가 극복해야 할 숙제다”라고 밝혔다.
같은 날 《오마이뉴스》는 “전자개표 조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서 대선 이전의 지방선거와 재·보선 후 일부 문제제기 지역의 재검표 과정에서 한 표의 착오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또한 전자개표의 원리를 설명하며, 수동으로 점검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완전 자동화라는 사람들의 인식은 틀렸다고 했다. 자동 분류된 투표용지를 개표종사원이 다시 한 번 일괄적으로 육안으로 점검하고 계수오류를 정정하기 때문에 오차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도 전자개표의 신뢰성을 수긍했다. 2003년 1월 27일의 기사를 보면 재검표 당시 동작구의 표를 검토하는 자리에서 후보별로 분류된 백 장짜리 투표용지에서 다른 후보의 표가 섞인 사례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본 한나라당 참관인들이 “전자개표기의 분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탄복했다는 후문을 전했다. 그 다음 날인 28일에는 사설을 통해 “대통령선거 사상 처음으로 재검표까지 간 개표부정 시비는 전자개표의 높은 신뢰성만 재확인한 채 일단락됐다”고 밝혔다. 뒤이어 2003년 1월 29일에는 《한겨레》가 사설을 통해 “의혹의 합리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이회창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들에 떠밀려 당내 혼란 수습용으로 소송을 냈다는 느낌을 주었다”고 당선무효 소송을 최종적으로 평가했다.
부산대 컴퓨터 전자공학과의 한 교수는 “전자개표기는 은행에서 사용하는 지폐계수기랑 사실상 원리가 같다. 그런데 지폐계수기에 대한 논란은 일절 없는 반면 전자개표기만 가지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2011년 선관위 디도스 공격과 같은 사건으로 인해 선관위가 국민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전자개표는 수검표보다 오류 가능성이 현저히 낮을 뿐만 아니라 조작을 한다 해도 소스 코드에 증거가 다 남는다. 전자개표와 선거조작을 연관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8월 3일 청계광장, 8월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도 참석했다. 이 촛불집회를 민주당이 주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참석했다. 아무리 주최(진보좌파 성향의 시민사회단체) 측의 주장에 100% 공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그들에 심정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에 이의를 달기 어렵게 됐다.
민주당은 장외집회를 사실상 이끌면서 줄곧 대선 불복(不服)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 등장한 피켓 중에는 ‘박근혜 OUT’ ‘박근혜 하야하라’ ‘12·19 부정선거 박근혜는 물러가라’는 등이 있었다. 촛불집회 참석자들의 ‘속마음’을 이처럼 잘 요약한 구호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작년 대선은 부정선거이니 선거를 다시 하자’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김한길 대표가 집회에서 대선 불복을 암시하는 어떤 구호도 나오지 않게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설훈(薛勳) 의원은 민주당 집회에서 “새누리당이 국정조사를 안 하겠다는 요체는 박 대통령의 정통성 문제가 국정조사로 인해 드러나 국민적 열기로 옮아붙을까 두려워서 그런 것”이라고 외쳤다. 대통령의 정통성 문제라면 결국은 부정선거로 당선됐다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명확히 기억하고 있는 2012년 12월의 대통령선거는 정말 부정선거였을까.
이 문제를 여기서 본격적으로 다룰 생각은 없다. 장외집회를 결정하면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부정선거의 근거는 하나다. 국정원 대북심리전단 요원이 종북(從北)세력 색출 활동의 일환이라며 종북세력들이 자주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오늘의 유머, 보배드림 등)에 들어갔다가 정치성 댓글을 몇십 개 달았다는 것. 그들이 말하는 인터넷사이트에 자주 접속하는 사람들 중 박근혜(朴槿惠) 후보 지지자는 추정컨대 거의 없을 것이다. 원래 새누리당 성향과는 거리가 먼 인터넷사이트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할 목적이었다면 네이버나 다음 등 메이저 포털을 이용했을 것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민주당이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싶으면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메이저 포털에서 국정원이 ‘여론조작’을 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2012 대선무효’ 주장하고 싶은 민주당
그럼에도 민주당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부정선거의 증거들을 찾아낼 생각은 않고 ‘2012 대선은 부정선거’라 우기고 있다. 이는 결국 ‘부정선거였으면 좋겠다’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걸 외부로 표출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걸 공개적으로 외부에 드러내고, 생각이 같지 않은 다른 사람들까지 설득하려 하고 있다.
민주당의 장외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보면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지가 입증된다. 민주당과 일부 진보좌파 인터넷매체들은 1만5000명이 모였네, 2만명이 모였네, 심지어 4만여 명이 모였네 등을 얘기하지만 실제 1만명을 넘은 경우는 없었다. 총동원령속에 치른 8월 10일 촛불집회도 2만명(경찰추산 1만 6000명)을 넘지 못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부정선거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인터넷 등에서는 각종 부정선거 주장이 판을 쳤다. 전자개표기의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검증되지 않았다는 전자개표기를 처음 쓴 것은 2002년 6월 지방선거부터였다. 그해 대선 개표도 같은 도구로 했다. 바로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눌렀을 때부터다. 대선에는 수많은 야당 측 참관인들도 다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부정선거 운운의 주장은 참관인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이렇듯 황당한 주장이 난무하자 올해 1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서 전자개표 시연회(試演會)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연회도 ‘전자개표는 불법’이라고 외치는 몇몇 참관인들 때문에 아수라장이 됐다.
중앙선관위의 백승훈 주무관은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투표기의 작동원리에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가 보내 온 개표시연 참관기를 보면 ‘전자개표기 사용은 불법’, ‘전자개표기의 검증되지 않은 성능과 조작 가능성’, ‘수(手)검표가 실시되지 않았다’, ‘개표가 너무 빨리 끝났다’는 등의 주장은 모두 억측에 불과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는 2003년도에 우리나라의 투표지 분류기가 성능 미달로 필리핀 대법원에서 사용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필리핀에서 사용한 분류기는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것이 맞지만 그쪽 선거환경에 맞게 별도 제작한 OMR 방식의 전자개표 시스템으로서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투표지 분류기와는 작동원리나 구조, 외양 면에서 전혀 다른 기계”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쉽게 말해 OMR 카드 판독깁니다. 국내 제작업체에서 따로 만들어 수출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기계 자체의 결함 때문이 아닙니다. 공급업체가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는데도 필리핀선거위원회가 일방적으로 공급계약을 체결한 점, 자체적으로 정한 기술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계약을 강행한 점, 그리고 입찰업체들이 기술검사를 통과하지 않았는데도 입찰기각을 거부한 점 때문에 법원이 필리핀선거위원회의 재량권 남용으로 판단, 절차상 하자를 인정한 것입니다.”
1987년 구로구청 사건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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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제13대 대선 개표과정에서 발생한 구로구청 농성사태는 투표함을 옮기는 과정에서 있었던 오해가 발단이 됐다. |
권위주의 정부에서 민주화가 이뤄진 가운데 치른 선거 중 가장 치열했던 때는 1987년이었다. 1노(盧) 3김(金), 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김대중(金大中)·김종필(金鍾泌)씨가 맞붙은 선거였다. 총 유권자 수 2587만3624명 가운데 2306만6419명이 투표했다. 89.2%의 투표율이다.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역대 최고의 투표율이다. 이 가운데 노태우 후보가 828만2738표(득표율 36.6%)를 얻어 633만7581표(득표율 28%)를 얻은 김영삼 후보를 제치고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당일 오전 11시경, 서울 구로구청에서 농성 사태가 벌어졌다. 농성은 투표가 종료되기 전에 구청 밖으로 옮겨지는 부재자 투표함을 한 시민이 보고 제보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투표함이 실린 봉고차에는 과자 상자와 식빵 상자도 함께 실려 있었다.
이에 흥분한 시민과 학생들은 오후 1시30분쯤 3층의 선관위 사무실로 몰려가 부정투표 여부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곳에서 투표함 1개, 붓뚜껑 60개, 새 인주 70개, 정당대리인 도장 인주가 묻어 있는 장갑 6켤레, 백지투표용지 1506장이 발견됐다. 붓뚜껑에서는 인주가 선명하게 묻어 나와 시민과 학생들은 방금 사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오후 4시부터 5000여 명의 시민은 문제된 투표함을 공개적으로 개봉할 것을 요구하며 항의, 농성에 돌입했다.
이틀 뒤인 18일에는 경찰의 투입으로 1050여 명이 연행되었고, 그 가운데 105명이 구속되는 것으로 농성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문제의 투표함에 대해서는 선관위와 여야 정치권의 합의하에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개봉할 이유가 없다’고 하여 지금까지 선관위 기록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그 후 12월 29일, 검찰이 구로구의 선관위원 등 17명과 구로구청 점거 농성자들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구로구에서는 선거부정이 없었다”는 것이 그 결론이었다. 부재자투표함이 사전 운반된 것은 선관위원들의 개표준비가 미흡하여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행해진 조치로 밝혀졌다. 또한 현장에서 발견된 투표용지, 인주, 붓뚜껑 등은 일반인들이 사무실 내의 책상과 캐비닛을 뒤져 끄집어낸 것이고, 백지투표용지는 투표용지 훼손에 대비해 예비로 보관 중인 것이었다 한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사망자가 백 명에 이른다’, ‘분신자살자가 있다’는 소문은 모두 유언비어라고 말하며 연행자 중 행방불명된 자는 한 명도 없다고 밝혔다.
선관위, “구로乙 투표함 옮기려던 사람은 야당 측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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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상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
“당시에는 투표함을 이송하는 과정과 관련해 합법적으로 정해진 매뉴얼이 없었습니다. 투표함을 옮기는 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관례적인 절차에 따라 투표함을 옮기는 과정에서 주변에 같이 산재해 있던 과자와 식빵 상자를 보고 몇몇 시민들이 오해하여 항쟁을 벌인 것입니다.”
그는 “투표함을 이송할 당시 선관위 직원과 민주당의 참관위가 함께 투표함을 옮겼다. 차에 실을 때까지 야당이 동행하여 투표상황을 관리했다. 만일 투표함이 부정선거와 관련되어 있었다면 왜 야당 직원들이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2001년 이 사건이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됐을 때 선관위 측에서는 투표함의 이송 과정이 통상적이고 정당한 절차였음을 분명히 밝혔다. 일부 근현대 역사서에는 구로구청 사건과 관련해 선관위가 선거부정을 저지른 것처럼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분명 사실과 다르다”며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을 일축했다.
그는 투표함을 왜 개봉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투표함 개봉 여부에 대해선 내부에서도 그렇고 외부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배하다. 하지만 이미 부재자신고인명부, 부재자신고서 등의 관련 서류가 방화로 소멸된 이상 투표함을 개봉한다고 해도 부정선거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개봉된 표만 가지고 부정선거라고 확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는 “투표함 개봉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부정선거가 아니라면 개봉해도 상관 없다고 주장하며 개봉해서 입장을 확실히 하자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당시 여당의 득표율이 월등히 높았기 때문에 투표함 개봉은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정치적 논란을 가중시켜 또 다른 역사 왜곡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관위 측에서는 이런 논란이 증폭되고 선거 때마다 이와 관련된 문제가 제기될 바에야 그냥 묵혀 두자는 취지에서 선거함을 개봉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7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문상부 선관위 사무총장은 구로을(乙) 투표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절대 부정투표함이 아니다. 당시 투표함을 들고 구로구청을 나서려 한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에서 추천한 선거관리위원이었다. 투표함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선거관리위원이 왜 옮기려고 했겠나. 분명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뒤이어 문 사무총장은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과거 구로을 투표함을 개봉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솔직히 공개할 생각이 있었지만 이번 대선 이후 몇몇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아직 멀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선이 끝난 지 열흘 가까이 흘렀는데 SNS와 인터넷에선 ‘대선 불복론’이 사그라지지 않더군요.
적법하지 않은 전자개표기 사용과 개표결과 조작 가능성, 투표지분류기에서 문재인 후보의 표를 무효표(미분류 표)로 분류했다는 주장, 일부 지역의 투표자 수와 개표결과 투표수의 불일치, 개표시작부터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득표비율이 일정하게 진행된 것은 사전에 기획된 개표조작 등 제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의혹들을 제기하고, 재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개표 부정을 한단 말입니까. 이렇게 선관위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투표함을 공개해도 논란만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김대중의 ‘컴퓨터 조작설’과 천주교사제단의 의혹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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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12월 21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평화민주당의 컴퓨터 개표 조작 의혹 광고. |
그리고 닷새 후인 87년 12월 21일, 평민당 측은 《동아일보》를 비롯한 몇몇 일간지에 광고를 게재하여 대선결과가 컴퓨터로 조작됐다는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광고에서 부정선거의 이유로 제기한 8가지 조항을 살펴보면 ▲각처에서 야당참관인 축출 ▲유령 유권자 조작 최소 93만명 추정 ▲야당표의 무효표 작전 ▲전경 투입과 투표함 바꿔치기의 관계 ▲고정표도 안 나온 엉터리 숫자 ▲날로 심증이 굳어지는 컴퓨터 조작설 ▲3단계로 부재자표 85만을 요리 ▲기타(광범위한 릴레이투표를 포함한 매표행위) 등이 기재되어 있다.
광고내용에 대해 검찰은 8개 항목 중 5개항에 유언비어 유포 혐의가 있다고 판단, 사실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내사(內査)에 들어갔다. 그리고 인천지검은 “투표업무에는 이상이 없다”고 밝히며 “‘경기도 부천시에서 야당참관인 200명 중 100명이 행방불명됐다’는 주장에 대해 진위여부를 수사한 결과 사실 무근이다”고 결론을 내렸다.
87년 12월 22일 《경향신문》은 선거부정 사례로 제시된 컴퓨터 조작설과 유령유권자 조작, 투표함 바꿔치기 등에 관해 선관위 등 관련 기관들이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정면 반박하자 평민당 관계자들이 근거를 대지 못한 채 다소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고 보도했다.
한편 12월 23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미국 인권법률단은 “한국정부가 투개표 과정에서 광범위한 부정을 저질렀다는 야당 측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뒤이어 “일부 부정선거 사례를 입증할 수는 있으나 참관인들이 지켜본 선거절차는 잘 조직되고 효율적이었다”고 말했다.
與小野大의 국회도 부정선거 의혹 조사해 사실무근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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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대 대선 후 컴퓨터 개표조작을 이유로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했던 김승훈 신부. |
선거가 끝난 지 한 달 후인 1988년 1월 16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 대표인 김승훈 신부와 천주교 공정선거 감시단 오태순 신부가 대법원에 대통령선거가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두 대표는 당시 제주 MBC 개표방송에서 후보들의 득표 집계와 선거관리위원회의 개표상황이 다르다고 자료를 제출하며 컴퓨터 조작설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월간조선》의 2002년 1월호 기사를 통해 사제단의 컴퓨터 부정개표 주장이 ‘근거 없는 허위 폭로’임이 드러났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근거자료로 제출된 상황은 단순히 속보경쟁으로 인해 초래된 상황이라고 한다. 선관위가 표를 검산하는 동안 방송사들이 채 검산되지 않은 집계 결과를 방송사로 송고하면서 빚어진 해프닝으로서, 이는 요즘도 선거개표 방송에서 범할 수 있는 해프닝이다. 대법원은 89년 5월 11일 자로 원고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 후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출발한 13대 국회가 88년 7월 8일 ‘양대선거 부정조사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켜 1990년 7월 14일까지 2년여 동안 부정선거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또한 컴퓨터 조작설이 사실무근으로 공식 발표되었다. 구로구청 사건 또한 시민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항쟁이었던 것으로 결론 났다.
“87년 검표는 手작업으로 진행”
김호열 전 선관위 상임위원은 《월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명확한 근거가 있는데 일부 시민단체와 정당의 편협한 주장들로 인해 역사가 왜곡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제단과 DJ 측에서는 개표를 컴퓨터에 의존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근거로 필리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선거조작을 제시했습니다. 86년 2월 7일 선거에서 개표할 때 컴퓨터를 사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개표결과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죠.
당시 전국자유선거시민운동단체인 남프렐이 개표결과에 대해 항의하며 규탄시위를 벌였습니다. 결국 마르코스는 대통령에서 물러났죠.
하지만 이는 컴퓨터의 문제가 아닙니다. 합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개표결과를 의회에 넘긴 마르코스 개인의 악의가 문제인 것입니다. 마르코스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것을 예로 들어 컴퓨터 조작설을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그는 “당시 필리핀 사태가 컴퓨터 조작과 관련이 없다는 자료는 선관위에 무수히 많다”며 “87년 선거 당시 개표결과와 상황이 수시로 집계되어 보고됐다. 게다가 각 정당의 참관인이 개표 내내 철저히 감시하며 역시 수시로 소속 정당에 상황을 보고했다. 그런데 어떻게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있겠나”고 반문했다. 그리고 컴퓨터 조작설이 명백한 허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 한마디를 던졌다. “당시 선거에서는 애초부터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수(手)작업으로 검표했습니다.”
당시 제주 MBC 보도국장이었던 이문교 현 제주언론인클럽 회장은 “나를 포함해 김기주 사장 등 관련자 10명이 제주지검으로부터 수사를 받았다”며 “하지만 제주 MBC의 총선거개표 방송은 기술적 확인과 진행상의 소홀로 빚어진 고의성이 없는 단순한 방송사고로 판명 났다. 그래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뜬금없는 선거무효 소송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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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2월 24일 안상수 한나라당 부정선거방지본부장은 16대 대선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
16대 대선 나흘 후인 2002년 12월 23일, 한나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전자개표 조작설이 흘러나왔다. 한나라당 당원과 이회창을 지지하는 ‘창사랑’ 회원 등 200여 명은 여의도 당사에서 중앙선대위 해단식장을 점거하고 재검표를 촉구했다. 이로 인해 선대본부 해단식은 무기연기됐다.
《한겨레》는 당시 몇몇 관계자들의 발언을 토대로 한나라당 측이 지지자들의 원성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청원(徐淸源)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21일부터 당사 앞에서 개표조작 의혹에 분노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당에서는 이 문제에 매우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고 전자개표 문제를 언급했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전자개표 부정을 주장하는 이들은 주로 ‘창사랑’ 회원들과 일반시민들로, 당과는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다음 날인 24일, 한나라당은 태도를 돌연 바꾸어 시중에 퍼지고 있는 개표조작 의혹을 해소하겠다는 목적으로 대법원에 중앙선관위원장을 상대로 당선무효 소송을 냈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부정선거방지본부장을 맡고 있던 안상수(安商守)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재검표를 하기 위해서는 당선무효 소송을 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소송을 제기한 것이며, 투표함 및 전자개표기 등 투표용구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도 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그 근거자료로서 경기 안성·고양·일산과 충남 천안, 제주 남제주 등 7개 지역에서 이회창 후보를 찍은 투표용지가 전자개표함을 통과하자 노 당선자의 표로 분류되는 등 전자개표기 작동에 오류가 있었다며 이것이 개표 조작의 사례라고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 같은 선거 불복(不服)성 문제 제기는 당내 일부 의원들로부터조차 반발을 샀다. 김부겸, 안영근 등 소장파(少壯派) 의원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소송제기는) 한나라당을 또 다시 민심을 거스르는 결정적 패배자로 만든다”며 즉각 취소를 요구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번 대선은 박빙이고, 방송사 예측에서 노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한나라당 참관인들이 한 표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꼼꼼히 지켜봤다”면서 “21세기에 좋은 선거를 마무리해 놓고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한나라당의 소송제기에 유감을 표명했다.
전자개표기 신뢰성만 확인시켜 준 再검표
12월 27일 오전 10시, 당선무효 소송에 따른 재검표가 한나라당이 의혹을 제기한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80개 개표구에 대해서 수(手)검표 방식으로 일제히 실시되었다. 대법원은 만약 재검표에서 당락을 미칠 만큼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온다면 나머지 164개 개표구로 재검표를 확대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재검표 결과에서 ‘반전’은 없었다. 전자개표 결과와 근소한 차이밖에 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재검표 결과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노무현 당선자의 표는 734표 줄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50표가 늘었으며, 무효표는 143표가 나온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노 당선자의 표가 줄어든 것은 대부분 재검표에서 판정보류로 분류됐기 때문으로 실제 감소분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잘못 집계된 투표용지들은 전자개표기가 판독하지 못해 개표인들의 손으로 재분류한 투표용지 가운데 나타나 한나라당이 문제 삼은 전자개표기의 성능은 실제 개표과정에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선관위 측은 말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소송을 주도했던 서청원 대표는 재검표 결과와 관련, “겸허하게 결과에 승복하며 일부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신 정부 출범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야당으로서 국정의 동반자이자 견제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것”이라며 당선무효 소송 취하를 약속했다. 그 다음 날 서 대표는 대선 패배와 재검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오마이뉴스》, “전자개표 조작 불가능”
《한겨레》는 2002년 12월 23일, 기사를 통해 “기술의 발전을 ‘의식’이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정신적 지체현상을 오롯이 보여준 사태이다. 자발적 참여민주주의가 극복해야 할 숙제다”라고 밝혔다.
같은 날 《오마이뉴스》는 “전자개표 조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서 대선 이전의 지방선거와 재·보선 후 일부 문제제기 지역의 재검표 과정에서 한 표의 착오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또한 전자개표의 원리를 설명하며, 수동으로 점검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완전 자동화라는 사람들의 인식은 틀렸다고 했다. 자동 분류된 투표용지를 개표종사원이 다시 한 번 일괄적으로 육안으로 점검하고 계수오류를 정정하기 때문에 오차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도 전자개표의 신뢰성을 수긍했다. 2003년 1월 27일의 기사를 보면 재검표 당시 동작구의 표를 검토하는 자리에서 후보별로 분류된 백 장짜리 투표용지에서 다른 후보의 표가 섞인 사례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본 한나라당 참관인들이 “전자개표기의 분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탄복했다는 후문을 전했다. 그 다음 날인 28일에는 사설을 통해 “대통령선거 사상 처음으로 재검표까지 간 개표부정 시비는 전자개표의 높은 신뢰성만 재확인한 채 일단락됐다”고 밝혔다. 뒤이어 2003년 1월 29일에는 《한겨레》가 사설을 통해 “의혹의 합리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이회창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들에 떠밀려 당내 혼란 수습용으로 소송을 냈다는 느낌을 주었다”고 당선무효 소송을 최종적으로 평가했다.
부산대 컴퓨터 전자공학과의 한 교수는 “전자개표기는 은행에서 사용하는 지폐계수기랑 사실상 원리가 같다. 그런데 지폐계수기에 대한 논란은 일절 없는 반면 전자개표기만 가지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2011년 선관위 디도스 공격과 같은 사건으로 인해 선관위가 국민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전자개표는 수검표보다 오류 가능성이 현저히 낮을 뿐만 아니라 조작을 한다 해도 소스 코드에 증거가 다 남는다. 전자개표와 선거조작을 연관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