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관 - 기억력·친화력 뛰어나… 아직 비전 제시 못해
⊙ 문재인 - 개인보다 팀의 중요성 알지만, 권력의지 약한 게 흠
⊙ 손학규 - 수도권 출신으로 큰 敵 없지만, 잦은 변신이 약점
⊙ 안철수 - 理想 추구하는 메시아 이미지, 禪문답식 화법으로 피로감 주기 시작
黃泰舜
⊙ 53세. 서울대 영문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 국회의원 보좌관 역임.
⊙ 現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정치평론가(mbn-tv 정치평론 출연).
⊙ 문재인 - 개인보다 팀의 중요성 알지만, 권력의지 약한 게 흠
⊙ 손학규 - 수도권 출신으로 큰 敵 없지만, 잦은 변신이 약점
⊙ 안철수 - 理想 추구하는 메시아 이미지, 禪문답식 화법으로 피로감 주기 시작
黃泰舜
⊙ 53세. 서울대 영문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 국회의원 보좌관 역임.
⊙ 現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정치평론가(mbn-tv 정치평론 출연).
올해 12월 19일에 있을 대통령선거의 오픈프라이머리(예비선거) 성격인 4·11 총선은 새누리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새누리당의 승리는 ‘박근혜(朴槿惠)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선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여권에서는 그 누구도 박근혜의 아성에 도전할 주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반면 지난 1월 15일에 창당한 제1야당 민주통합당은 큰 혼란에 빠졌다. 액면으로는 당선인이 4년 전인 18대 총선 당시 81명에서 이번에 127명으로 57%나 늘었으나, 기대가 컸던 만큼 허탈감도 크다.
불과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두고 민주통합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요즘 유행하는 말마따나 ‘그렇지, (현재 주자로는) 안 되겠지? 사람 불러야 되겠지’라는 볼멘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진다.
안철수(安哲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조기에 등판시켜야 한다는 구원 요청이 있는가 하면, 이번 총선 과정을 통해 보여준 안 원장의 애매모호한 행보를 떨떠름하게 여기는 시각도 엄존한다.
야권 일각에서는 크게 보면 이번 총선이 절묘한 무승부니 그리 기죽을 일이 아니라며, 정체성이 같은 야권 내부에서 대통령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4·11 총선은 사실상 무승부
총선의 막은 내려졌다.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서는 먼저 총선 과정을 복기(復棋)해 보는 것이 제대로 된 수순이다. 선거 결과를 보면, 새누리당에 과반을 준 국민의 선택이 절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진영의 후보자들이 얻은 표수를 계산해 보면 그 절묘한 선택의 속살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역구 후보자들의 득표수를 보면 보수 진영의 새누리당(43.3%)과 자유선진당(2.2%)이 45.5%를 얻어 진보 진영의 민주통합당(37.9%)과 통합진보당(6%)의 43.9%에 1.6%포인트 앞서고 있을 뿐이다.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정당투표를 보면 보수 진영이 48.24%인 반면 진보 진영은 48.53%로 진보 진영이 오히려 0.29%포인트 앞선다. 유권자들은 어느 누구의 손도 번쩍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당초 과반 의석을 호언장담했던 민주통합당의 실책은 크게 4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구도를 잘못 잡은 것이다. 통합진보당과 선거연대를 함으로써 지나치게 좌경화 인상을 주었다.
선거는 자기 진영을 공고히 한 가운데 중도계층을 파고들어야 하는데, 중원을 포기한 채 한미FTA 폐기,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중단 등 통합진보당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중도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둘째, 정권심판이라는 네거티브 전략에만 매달렸다.
물론 선거는 현 정권을 심판하는 성격이 우선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야권은 과거에 대한 증오와 분노만 있었지, 하다못해 보랏빛 꿈이라도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21세기 우리 수준은 자유당 시절 야당의 단골메뉴인 ‘못 살겠다 갈아보자’의 구호가 먹힐 정도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총선에 곧이어 대선이 있는 해인 데도 말이다.
셋째, 리더십의 부재다. 친노(親盧)세력인 ‘혁신과 통합’ 그리고 좌파성향의 시민사회단체가 대거 합류해 몸집을 키운 민주당은 그야말로 ‘한 지붕 세 가족’의 모습이다. 웬만한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아닌 다음에야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다.
공천 파열음이 특히 심했다. 선거운동 개시일을 목전에 두고 사무총장을 경질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선거 중반에 나꼼수 멤버 김용민 후보(서울 노원구갑)의 막말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국민적 지탄 대상이 됐는데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넷째, 이슈를 선점하고 관리하는 데 실패했다.
총선과 대선에서 이기면 ‘다 갈아엎겠다’면서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국 대통령에게 한미FTA 중단을 촉구하는 편지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바로 여권의 역공이 들어왔다. 말 바꾸기 세력으로 몰린 것이다.
이에 궁색해진 처지를 모면하기 위해 통합진보당과 연대를 성사시켰다. 그러자 이정희 후보 측의 ‘나이를 속여서 답변하라’는 여론조사 조작 사실이 드러났다.
그 다음 선거운동 개시일에 맞춰 2619건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제기했으나, 바로 이틀 후에 그중 80%인 2200여 건이 노무현 정부 시절 이루어졌다는 되치기를 당했다. 어젠다의 설정부터 관리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
위의 4가지 전략적 실책 외에 외부 환경도 야권을 도와주지 않았다. 3월 말 서울에서 열린 2012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북한은 광명성3호 로켓 발사계획을 밝혔다. 국제사회는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우리 내부에서도 ‘침묵하는 다수’의 안보불안 심리에 불을 지폈다. ‘김정은발(發) 북풍(北風)’이 보수층과 보수적 중도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지나간 모든 것은 序幕에 불과
‘지나간 모든 것은 서막(序幕)에 불과하다(What’s past is prelude).’ 셰익스피어의 <폭풍>(Tempest)에 나오는 명대사다. 그렇다. 4·11 총선은 12월 대선을 향한 출발점에 불과할 뿐이다. 총선을 통해 확인한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보수 대 진보’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는 구조라는 사실이다. 예선에서 이겼다고 환호할 일도, 졌다고 좌절할 일도 아니다. 이제 동등한 조건 아래 출발점에 서서 스타트를 알리는 총성을 들었을 뿐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근저에는 기득권층에 대한 적대감이 흐르고 있다. 현실에 불만을 가진 사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IMF 환란위기 이전에는 그래도 국가가 사회가 회사가 나와 내 자식과 나의 노후를 책임져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바로 그런 믿음이 보수 진영이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그러나 환란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신자유주의, 탐욕적인 국제금융자본주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극심한 ‘사회 양극화’를 초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세계적인 외환위기는 빈곤의 악순환 구조를 고착화시켜 놓고 말았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사문(死文)이 된 지 오래다.
암울한 현실에 좌절한 사람들, 내일의 꿈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이 사회가 나를 위해 그 무엇도 해줄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혁명을 꿈꾼다. 차라리 세상이 뒤집히기를 바란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데 비해 사회안전망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들이 조기 퇴출의 아픔을 겪고 있지만 재취업은 언감생심이고, 그나마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하는 군자가 없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이들 또한 자연스럽게 혁명의 깃발 밑으로 모이게 마련이다.
소통의 정치인에 대한 기대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린다. 메시아가 나타나 새로운 복음(福音)을 설파해 주기를 기대한다.
현실 정치에서 복음은 시대정신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한두 마디로 꿰어 민초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이는 소통이다. 지난해 초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시작으로 안철수 교수의 청춘콘서트 그리고 10·26 서울시장 보선을 전후로 폭발했던 ‘안철수 신드롬’ 모두가 바로 이 같은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야권은 총선 후폭풍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어떻게 하면 경쟁력 있는 후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몸부림이다.
앞으로 민주통합당 내에서는 김두관(金斗官) 경남지사, 문재인(文在寅) 상임고문, 손학규(孫鶴圭) 전 대표, 이해찬(李海瓚) 전 국무총리 그리고 정세균(丁世均) 전 대표 등(가나다 순)이 대선레이스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서울 강남에서 낙선했으나 지난 대선에 후보로 출마했던 정동영(鄭東泳) 전 장관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을 노리고 있다. 당 밖의 인물로는 안철수 교수가 단연 돋보인다. 이들이 가깝게는 추석 전인 9월 말까지, 늦어도 10월 말까지는 치열하게 경쟁을 벌일 것이다.
일본의 노정객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는 시대를 초월해 정치리더에게 요구되는 조건을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통찰력, 사태의 추이를 예측하고 자신이 내린 판단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고, 어떻게 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둘째는 설득력이다. 문자 그대로 조직 안팎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셋째는 결합력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통합력이다. 뛰어난 인재와 정보 그리고 자금을 모아 결합시키는 능력이다.
끝으로 인간적 매력이다. 이는 협력해 주는 사람들을 움직여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키는 힘이다.
이 네 가지 외에 하나의 덕목을 추가한다면 독일의 아데나워 수상이 강조했던 ‘용기’다. 이런 관점에서 야권의 잠룡(潛龍)들을 관찰해 보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리틀 노무현’ 金斗官
김두관 경남지사는 전국적 지명도가 아직은 미약하다. 차기 대선주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5% 안팎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김두관 지사를 주목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우선 상품성이 좋다는 것이다. 나이도 딱이다. 1959년생이니 53세다. 패기도 있고 경륜도 있어 보인다(참고로 박정희 46세, 전두환 49세, 노태우 56세, 노무현 57세에 취임). 전문대를 졸업한 후 야간에 대학을 다녔다. 고향에서 마을 이장부터 시작해 두 차례 민선 군수를 거쳐 행정자치부장관에도 올랐다. 이후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도전해 여권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문재인 상임고문을 ‘노무현의 그림자’라고 한다. 반면 김두관 지사를 일러 ‘리틀 노무현’이라고 한다. 문 고문이 노무현의 운명을 따라가는 순종적인 자세를 보이는 반면, 김 지사는 인생의 행적은 노무현과 비슷하나 노무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노력한다. 김 지사 본인도 “참여정부의 지분을 2% 정도 갖고 있을 뿐”이라며 자신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늘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두관 지사는 올해 1월 28일에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광주지역위원회’ 초청을 받아 무등산에 함께 올랐다. 이날 김 지사는 “4월 총선에서 지역 패권주의를 극복하고 민주통합당이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시·도민의 염원을 응원하면서 함께할 것”이라며 대권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리고 보름 후 김 지사는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하지만 총선 결과 경남에서 민주통합당이 1석에 머무르면서 김 지사의 주가도 조금 내려앉는 분위기다.
국가경영 청사진은 미지수
대권을 거머쥐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명지대 신율(申律) 교수(정치학)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세 사람의 경우를 통해 세 가지 조건을 꼽고 있다.
“첫째,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비주류가 참신한 느낌을 주고 기대를 갖게 한다.
둘째, 신화(神話) 그것도 어린 시절의 가난이라는 신화면 더욱 좋다. 그것은 대응성의 문제, 이른바 공감의 문제다. 지쳐 있는 대중의 입장에서는 저런 사람이면 우리의 처지를 잘 이해해 줄 것 같은 믿음을 준다.
셋째는 사회발전에 무엇인가 기여했던 측면이 있어야 한다. 대선에서 주요 계층인 40~50대들에 그것은 바로 민주화 경력이라고 할 수 있다.”
김두관 지사는 기억력이 좋고 친화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김 지사가 남해군수 취임 직후 한 번 만난 적이 있던 부산의 일간지 기자가 최근 김 지사를 만나 겪었던 에피소드 한 토막. 그 기자가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김 지사는 “아니, 그때(17년 전) 인터뷰하셨잖아요”라며 첫 만남의 기억을 더듬어 살갑게 대해주더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금은 수줍음을 타는 성격인 데 반해, 김 지사는 외향적인 성격이라 한 번 만난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이끌어낸다.
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대선 수업을 받아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달에 몇 차례씩 상경, 교수 및 각계 전문가들과 조용한 만남을 계속하면서 공력을 가다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적인 매력이나 전설과 같은 삶의 궤적에 비해 김두관의 비전이 무엇인지, 국가경영의 청사진은 어떤 건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부산과 경남이 기반으로 호남과 연결하여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주자의 한 사람으로 여겨질 뿐이다. 더욱이 이번 총선을 통해 부산·울산·경남이 아직도 여전히 새누리당의 아성이라는 것이 확인됐기에 김두관 지사의 부담도 결코 적지 않다.
‘부동의 야권 대선주자 1위’ 文在寅
문재인 상임고문은 민주통합당 내에서는 부동의 대선주자 1순위다.
사람들이 문 고문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을 때부터다.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자살 소식에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엄청난 혼란과 유언비어가 나돌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TV 앞에 나타난 인물이 문재인이다. 절제된 자세로 균형을 잃지 않는 문재인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안도감과 함께 문 고문 개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해 출간한 자서전 《운명》을 통해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운명 같은 30년 동행을 담담하게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며 사실상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문 고문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상당히 후한 편이다.
한국교통대 임동욱(林東郁) 교수(행정학)는 “이번 총선에서 일정 수준의 돌풍을 일으켰어야 했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문재인 고문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한다. “우선 참신하다. 그리고 스타일이 좋다. 또한 노무현에 대한 향수(서민적, 탈권위주의)를 폭풍으로 만들 수 있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할 줄 안다. 집권경험이 있고 이기는 방법을 안다. 게다가 대통령 개인보다는 대통령 팀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며 호남에 뿌리를 둔 영남후보로서 파괴력이 있다고 말한다. 부산·경남에 뿌리를 둔 안철수 교수나 김두관 지사보다는 오히려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민심의 변화는 야속하리만큼 정확하다. 문 고문은 연초에 예능프로에 나와서 공수부대 시절의 실력을 발휘하며 기왓장을 격파하고 잘 다듬어진 복근을 보여준 뒤로 안철수 교수를 제치고 여론조사 다자(多者)대결 구도에서 부동의 야권후보 1위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낙동강 벨트’지휘자로서의 초라한 성적 때문에 당장 주가가 급락했다. 여론조사는 물론이고 문 고문과 가까운 지인이 운영한다는 업체의 주식, 이른바 테마주의 주가도 폭락했다.
이철희(李哲熙)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이번 총선은 문재인 고문의 한계를 보여준 선거다. 부산·경남에서 문재인 고문의 상징성과 득표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대선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수도권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총선은 문 고문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 박근혜의 철벽 방어에 막혀 부산에서 2석을 얻는 데 그치고 말았지만 득표율로는 야권연대가 39.3%를 얻음으로써 문재인의 활약이 간단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19대 국회는 역량 검증 무대
더 중요한 사실은 문 고문의 역동적 통합력이다.
지난해 후반 ‘안철수 바람’이 정치권을 강타하며 여야 할 것 없이 모두가 지리멸렬할 때 문재인은 야권통합의 카드를 내밀었다. 구 민주당과 노무현 계열의 혁신과 통합 그리고 진보성향 시민사회단체까지를 아우르는 민주통합당 출범의 산파역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여론조사 조작 파문에도 불구하고 완강하게 퇴진을 거부할 때 급거 상경하여 와해위기의 야권연대를 복원하는 정치력도 보여주었다.
5월 30일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그는 본격적으로 중앙무대에서 활약하게 된다. 중앙정치의 역량을 검증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결정적 취약점은 권력의지가 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좋게 말하면 사람이 착하고 좋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평생을 노무현의 그림자로 살아왔던 그의 천성일지도 모른다. 정치는, 특히 대통령 도전자는 목숨을 걸 수 있을 정도의 강한 권력의지가 있어야 한다.
위기의 孫鶴圭
손학규 전 대표는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삭풍과 눈보라 휘몰아치는 들판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야당투사의 이미지와는 전혀 걸맞지 않다.
경기고와 서울대 동기동창인 고 조영래 변호사(법대), 고 김근태 의원(상대), 그리고 손학규 전 대표(문리대) 세 사람은 1960년대 후반 운동권을 이끌던 삼총사다. 대학 졸업 후 조영래가 인권변호사로 김근태가 민주화운동가로 변신했을 때 손학규는 영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1988년 귀국한 뒤 대학교수로 강단에 섰다. 1993년 보궐선거에서 경기도 광명에 민자당 후보로 출마, 당선된 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여당 대변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2002년부터 4년간 한나라당 소속의 경기도지사도 역임했다.
손 전 대표가 ‘정신적 고향’인 야권으로 돌아온 것은 2007년이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 불만을 품고 한나라당을 뛰쳐나왔다. 그러고 당시 인물난에 허덕이던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에 참여했다.
정동영 후보에게 자리를 빼앗겼으나 대신 당의 공동대표 자리를 차지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은 그해 10월 당 대표를 새로 선출했는데, 여기서 손 전 대표는 박지원 의원 등 호남의 지원 아래 당권을 차지했다. 작년 12월 민주통합당을 발족시키는 데도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 공천과정에서는 철저하게 소외되었고 측근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세력이 많이 약화됐다.
또다시 불쏘시개로 끝날 수도
그는 말 그대로 스타일리스트다. 경기도지사 퇴임 후 민생투어, 100일 민심대장정을 한다면서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채 봉놋방에서 잠을 자곤 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서울 종로)하자 강원도로 가 닭을 치며 살았다.
‘작은 은거는 시정(市井)에서, 큰 은거는 조정(朝廷)에서’라는 격언이 있다. 손 전 대표는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풀리지 않으면 뛰쳐나가 숨는 경향이 있다.
그와 함께 일해 봤던 인사들의 증언도 상반된다. 보건복지부 장관 때를 기억하는 공무원들은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준다. 반면 경기도지사 때를 기억하는 공무원들의 평가는 박하다.
손 전 대표가 상한가를 쳤던 것은 작년 4월 경기도 분당을 보선에서 승리했을 때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한나라당 텃밭을 점령했으니 곧바로 ‘손학규 대망론’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안철수 신드롬이 정치권을 강타할 무렵부터 손학규 대망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2007년에 이어 또다시 불쏘시개 역할로 끝나고 말 위기에 처했다.
손 전 대표의 강점은 수도권 출신으로 큰 적이 없다는 것이다. 최대의 약점은 변신(變身)이다. 운동권 출신으로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훌쩍 영국으로 떠났던 것과 귀국 후 여당에 들어간 것은 두고두고 약점으로 남는다. 또 2007년 한나라당 탈당 역시 그에게는 아픈 흔적이다.
나이도 역시 그렇다. 1947년생으로 65세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권주자 중 유일하게 1940년대생이다.
‘노무현의 嫡統’ 李海瓚
이해찬 전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처음으로 신설된 세종특별자치시의 초대 국회의원으로 배지를 달았다.
많은 전문가는 이해찬 전 총리를 주목하고 있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가장 확실하게 승계하고 있는 적통(嫡統)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역대 가장 막강한 총리로(DJP공동정부 당시 김종필 총리를 제외하고는) 국정운영의 경험과 경륜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야권에서는 보기 드문 기획통이자 전략가라는 점이다.
이번 민주통합당의 출범에 있어서도 그가 그랜드디자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초부터 야권통합정당 출범을 통한 정권교체 구상을 밝히고 실천으로 옮겨나갔다. 9월에는 야권통합기구인 ‘혁신과 통합’을 창설하여 민주당과 대등한 위치에서 통합협상을 진행했고, 결국 올해 1월 15일 민주통합당을 탄생시켰다.
이해찬 전 총리는 1952년생으로 박근혜 의원과 60세 동갑이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다니던 그는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투옥되어 1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이후 실업자가 된 이해찬은 1978년 모교인 서울대 정문 옆에 광장서적을 열고 돌베개출판사도 열었다. 말이 출판사지 당시 불온서적으로 금기시됐던 책들을 번역하고 복사해서 은밀하게 팔았다.
그 당시 서울대 재학생들에게 이해찬은 훌륭한 선배로, 운동권 학생들의 당찬 멘토로 여겨졌다. 그때 만나서 이후 평생을 거의 함께해 온 대표적인 재학생이 바로 경제학과의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이해찬의 운명도 바뀌었다.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이해찬은 복학생협의회 대표로 운동권을 좌지우지했다. 심재철(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총학생회장으로 밀어올리고 유시민을 중앙대의원회의 의장에 앉혔다.
하지만 서울의 봄은 너무나 짧았다. 5월 17일 신군부가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 이해찬은 또다시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킹’인가, ‘킹 메이커’인가
19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등원한 이후 서울 관악을에서 내리 5선을 했고,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장관, 국무총리를 거쳤다. 그리고 이번에 6선에 도전하여 다시 여의도로 돌아왔다.
그는 본인이 킹(대통령)이 될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하지만 킹메이커의 역할은 흔쾌히 자임하고 나선다. 그렇다고 그가 킹이 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와 정동영, 손학규와 3파전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이해찬은 유시민과 한명숙 두 후보를 중도 사퇴시키고 자신을 지지하게 만드는 정치력을 보여주었다. ‘당권은 한명숙, 대권은 문재인’의 기치 아래 야권통합을 이루어냈고 상왕(上王)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한명숙 대표 체제가 붕괴되고 문재인 고문이 약세로 돌아선 마당에 이해찬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가 주목된다.
丁世均과 鄭東泳
정세균 전 대표와 정동영 전 장관은 호남, 특히 전북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정세균 전 대표는 지역구인 전북 무주·진안·장수에서 내리 4선을 하다가 이번 총선에서는 서울 종로에서 당선됐다.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에서 전국을 아우르는 정치인으로 격이 올라간 것이다.
그는 온건한 합리주의자로 정평이 나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운동권이면서도 쌍용그룹에 입사하여 상무까지 오르며 전문경영인의 길을 걸은 덕분이다.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이다. 당시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의 기획조정위원장을 맡으면서 탁월한 기획력과 합리적인 조정능력 그리고 원만한 대인관계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아 행정 경험도 쌓았다. 이후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거쳐 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그에게 이번 서울 종로에서의 성공은 국회의원 한번을 더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정동영 전 장관은 그야말로 풍운아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김대중 총재가 선택한 전문직 젊은 피 3인의 한 사람으로, 법조계의 천정배, 신기남과 함께 방송계를 대표해 여의도에 입성했다.
정 전 장관이 세인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면전에서 권노갑 고문의 퇴진을 요구하면서다. 구태 정치를 청산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는 칭송도 있었으나, 그토록 뒤를 봐주었던 사람을 배신했다는 낙인도 찍혔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장관과 열린우리당 의장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07년 노 대통령과 결별하며 열린우리당을 와해시킨 탓에 친노 진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받고 있다. 2007년 대선 패배 후 2008년 총선 낙선(서울 동작), 2009년 무소속(전주 보선) 당선, 2012년 낙선(서울 강남을)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안철수는 과연 대안인가
지난해 가을 ‘안철수 바람’이 정치권 전체를 강타했다. 기성 정치권에 실망하고 돌아섰던 중도 유권자들이 대거 안철수 바람에 합류했다.
그가 5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면서도 5% 남짓의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선뜻 양보할 때 국민들은 감동을 받았다. 메시아가 출현한 듯한 착각에 빠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작년 12월 그는 “강남에 출마하거나 신당을 만들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폭발하기 직전에 김을 스스로 빼는 소리였다. 그러면서도 결코 정치권 언저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적절한 시점에 절제된 한두 마디를 던져놓고는 또 주변을 맴돈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안철수의 주가는 또다시 급등했다. 박근혜, 한명숙, 문재인 공히 앞다투어 “안철수 원장과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러브콜을 보냈다.
총선 과정에서 그는 잠시 접었던 강연정치를 재개했다. 그는 강연에서 “정당이 아닌 인물을 보고 뽑아라. 나는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겠다”고 했다. 총선 이후 정치활동을 위한 사전포석이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이러한 안철수 원장의 행보에 대한 야권진영의 거부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안 원장의 무임승차에 대해 거부감이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우리가 어려울 때 당신은 무엇을 했나. 수수방관하지 않았나. 대선에 도전하려면 어느 진영이든 가서 그 진영을 바꾸든 아니면 함께하든 해야 한다. 그냥 꽃가마에 타보겠다는 마음이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낫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죠.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일종의 피로감이라고 할까요.”
안철수 원장의 가능성을 여전히 높게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동아대 임석준(林錫俊) 교수(정치학)는 “국민들은 ‘힐링’(치유)을 바라는 사람이 많다. 박근혜는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박정희)와 치유하는 어머니의 이미지(육영수)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안철수 역시 각종 힐링 프로그램을 통해 뜬 인물이다. 큰 싸움이 될 것이다”며 ‘박근혜 대 안철수’의 경쟁을 예측하기도 했다.
소통 능력에 한계
안철수 원장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자신만의 세상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도 있다. 국가경영에 참여해 본 경험도 없고 대규모 조직을 관리해 본 적도 없다. 의사로 컴퓨터 백신바이러스 개발자로 부정적이고 편협한 사고의 패러다임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감성적 호소가 아니라 이성적인 대국민 설득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비서관과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한 김현동(金顯東) 박사는 “안철수는 새로운 정부구성, 정강정책에서 거의 파천황(破天荒)적인 것을 내놓는 것으로 기성정치권과 차별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취약점은 새로운 가치관과 역사관을 대중에게 잘 알아듣게 설득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고 했다. 정치의 본령은 대중을 설득하고 소통하는 능력이다.
지금 안철수 원장은 많은 꿈을 꾸고 또 나가고 싶어할 것이다. 아직까지 확신이 안 서기 때문에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관망하는 입장으로 보인다. 결국 안 원장은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정국의 흐름을 관찰하면서 100% 자신이 섰을 때 움직일 것이다.
민주통합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도 우선 자신들의 체제정비가 우선이다. 야권의 입장에서는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데 ‘2단계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1단계에서는 자기 진영에서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고, 그 후보와 진영 밖의 유력한 주자 간 후보단일화를 통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이를 통해 정권을 되찾으려는 전략이다.
한번도 검증 거친 적 없어
안철수 원장에게 선택의 폭이 예전만 같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함으로써 박근혜가 대선주자의 자리를 내줄 리 만무하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안철수 국무총리’의 과거 DJP식 연대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안 원장의 세력이 너무 없다. 국무총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과거 자민련을 장악하고 있던 김종필(金鍾泌) 총리와 같이 권력분점을 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안철수 원장은 본인이 명시적으로 밝힌 바는 없으나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그런 그가 국무총리로 권력분점을 하자는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원장에게 남은 선택지는 조속한 시일 내에 정치결사체를 만들어 독자행보를 통해 완주하거나 중도에 기성 정당과 합종연횡(合縱連衡)을 도모하는 방법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관망하면서 마지막 순간 어떤 변수가 생겼을 때 후보단일화를 통해 대선에 나서는 방법이 있다.
그럴 경우라도 그의 약점 역시 한 둘이 아니다. 경륜이 없고 황야(荒野)에 노출된 적이 없다. 그는 어떤 검증도 거치지 않았다. 때문에 실수 한 방에 완전히 몰락할 가능성도 있다. 아데나워가 언급했던 불굴의 ‘용기’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그가 즐겨쓰는 선문답(禪問答)형 대화법은 정치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비전을 갖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비전을 실천해 가려는지 알고 싶어하는 유권자들에게 피로감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이미 그런 단계에 접어든 느낌이다.
야권, 단일화 이벤트 이어질 듯
이 중에서 누가 야권 후보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을까.
당 밖에 있는 안 원장은 앞에서 언급한 이러저러한 이유로 일단 제외해 보자. 그렇다면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탄생할 ‘스타’에 주목해야 한다.
총선이 끝났으므로 언론매체 등은 연이어 대선후보 지지율을 보도할 것이다. 현재로선 야권 주자 중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문재인 고문이 앞서 있다.
그러나 레이스가 시작되면 달라질지도 모른다. 1997년 신한국당 경선 때 이인제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며 단숨에 이회창 후보의 경쟁자로 떠오른 사례가 재현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럴 경우에도 역시 여권의 박근혜에 맞설 경쟁력이 제1의 판단 요소가 될 것은 뻔하다.
또 지금까지 전혀 드러나 있지 않았던 약점이 돌출될 가능성도 있다. 장관과 국회의원 등을 여러 차례 지낸 손학규·이해찬씨는 어느 정도 검증이 돼 문제가 생길 소지가 적지만, 문재인·김두관씨는 철저히 검증을 받은 인물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많은 전문가가 부산·경남 출신의 문재인, 김두관을 1순위로 꼽았고, 뒤를 이어 이해찬·손학규를 들었다. 이들의 강점과 약점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이 과정에서 호남 유권자들의 표심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2002년 광주 경선에서 전세를 뒤집은 노무현 후보의 예를 연상하면 된다.
호남 유권자들은 야당의 경선 레이스를 지켜보며 박근혜의 대항마를 찾으려 할 것이다. 초반에는 갈려 있는 표심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며 몰아주기로 나타날 것이다. 문재인, 김두관 등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이 새누리당의 아성인 부산·경남을 허물고 호남의 지지를 받아낼 경우 박근혜와 접전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권에는 안철수 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의 외곽 지원세력도 갖고 있어 좋은 대선 환경을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당내 주자(走者)가 미흡하다면 안철수 원장에 대한 압력도 가중될 것이다. 안 원장 본인이 직접 나서 야권 단일 후보에 도전하거나 적어도 야권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지지를 하도록 하는 압박이 커질 것이다. 그가 진영 논리를 거부했지만, 실제 그는 여권보다는 야권에 친한 사람이 훨씬 많다.
종합해 보면 올해 야권 대선후보가 탄생하는 과정은 정치 이벤트의 연속이 될 개연성이 높다.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가 됐다고 해서 12월 대선에 나선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총선과 같이 통합진보당과의 단일화를 시도할 수도 있고, 후보 선출 후 안철수 원장과 같은 외부인사와 단일화를 기획할 수도 있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인가.⊙
반면 지난 1월 15일에 창당한 제1야당 민주통합당은 큰 혼란에 빠졌다. 액면으로는 당선인이 4년 전인 18대 총선 당시 81명에서 이번에 127명으로 57%나 늘었으나, 기대가 컸던 만큼 허탈감도 크다.
불과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두고 민주통합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요즘 유행하는 말마따나 ‘그렇지, (현재 주자로는) 안 되겠지? 사람 불러야 되겠지’라는 볼멘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진다.
안철수(安哲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조기에 등판시켜야 한다는 구원 요청이 있는가 하면, 이번 총선 과정을 통해 보여준 안 원장의 애매모호한 행보를 떨떠름하게 여기는 시각도 엄존한다.
야권 일각에서는 크게 보면 이번 총선이 절묘한 무승부니 그리 기죽을 일이 아니라며, 정체성이 같은 야권 내부에서 대통령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4·11 총선은 사실상 무승부
총선의 막은 내려졌다.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서는 먼저 총선 과정을 복기(復棋)해 보는 것이 제대로 된 수순이다. 선거 결과를 보면, 새누리당에 과반을 준 국민의 선택이 절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진영의 후보자들이 얻은 표수를 계산해 보면 그 절묘한 선택의 속살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역구 후보자들의 득표수를 보면 보수 진영의 새누리당(43.3%)과 자유선진당(2.2%)이 45.5%를 얻어 진보 진영의 민주통합당(37.9%)과 통합진보당(6%)의 43.9%에 1.6%포인트 앞서고 있을 뿐이다.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정당투표를 보면 보수 진영이 48.24%인 반면 진보 진영은 48.53%로 진보 진영이 오히려 0.29%포인트 앞선다. 유권자들은 어느 누구의 손도 번쩍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당초 과반 의석을 호언장담했던 민주통합당의 실책은 크게 4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구도를 잘못 잡은 것이다. 통합진보당과 선거연대를 함으로써 지나치게 좌경화 인상을 주었다.
선거는 자기 진영을 공고히 한 가운데 중도계층을 파고들어야 하는데, 중원을 포기한 채 한미FTA 폐기,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중단 등 통합진보당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중도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둘째, 정권심판이라는 네거티브 전략에만 매달렸다.
물론 선거는 현 정권을 심판하는 성격이 우선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야권은 과거에 대한 증오와 분노만 있었지, 하다못해 보랏빛 꿈이라도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21세기 우리 수준은 자유당 시절 야당의 단골메뉴인 ‘못 살겠다 갈아보자’의 구호가 먹힐 정도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총선에 곧이어 대선이 있는 해인 데도 말이다.
셋째, 리더십의 부재다. 친노(親盧)세력인 ‘혁신과 통합’ 그리고 좌파성향의 시민사회단체가 대거 합류해 몸집을 키운 민주당은 그야말로 ‘한 지붕 세 가족’의 모습이다. 웬만한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아닌 다음에야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다.
공천 파열음이 특히 심했다. 선거운동 개시일을 목전에 두고 사무총장을 경질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선거 중반에 나꼼수 멤버 김용민 후보(서울 노원구갑)의 막말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국민적 지탄 대상이 됐는데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넷째, 이슈를 선점하고 관리하는 데 실패했다.
총선과 대선에서 이기면 ‘다 갈아엎겠다’면서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국 대통령에게 한미FTA 중단을 촉구하는 편지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바로 여권의 역공이 들어왔다. 말 바꾸기 세력으로 몰린 것이다.
이에 궁색해진 처지를 모면하기 위해 통합진보당과 연대를 성사시켰다. 그러자 이정희 후보 측의 ‘나이를 속여서 답변하라’는 여론조사 조작 사실이 드러났다.
그 다음 선거운동 개시일에 맞춰 2619건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제기했으나, 바로 이틀 후에 그중 80%인 2200여 건이 노무현 정부 시절 이루어졌다는 되치기를 당했다. 어젠다의 설정부터 관리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
위의 4가지 전략적 실책 외에 외부 환경도 야권을 도와주지 않았다. 3월 말 서울에서 열린 2012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북한은 광명성3호 로켓 발사계획을 밝혔다. 국제사회는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우리 내부에서도 ‘침묵하는 다수’의 안보불안 심리에 불을 지폈다. ‘김정은발(發) 북풍(北風)’이 보수층과 보수적 중도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지나간 모든 것은 序幕에 불과
‘지나간 모든 것은 서막(序幕)에 불과하다(What’s past is prelude).’ 셰익스피어의 <폭풍>(Tempest)에 나오는 명대사다. 그렇다. 4·11 총선은 12월 대선을 향한 출발점에 불과할 뿐이다. 총선을 통해 확인한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보수 대 진보’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는 구조라는 사실이다. 예선에서 이겼다고 환호할 일도, 졌다고 좌절할 일도 아니다. 이제 동등한 조건 아래 출발점에 서서 스타트를 알리는 총성을 들었을 뿐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근저에는 기득권층에 대한 적대감이 흐르고 있다. 현실에 불만을 가진 사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IMF 환란위기 이전에는 그래도 국가가 사회가 회사가 나와 내 자식과 나의 노후를 책임져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바로 그런 믿음이 보수 진영이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그러나 환란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신자유주의, 탐욕적인 국제금융자본주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극심한 ‘사회 양극화’를 초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세계적인 외환위기는 빈곤의 악순환 구조를 고착화시켜 놓고 말았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사문(死文)이 된 지 오래다.
암울한 현실에 좌절한 사람들, 내일의 꿈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이 사회가 나를 위해 그 무엇도 해줄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혁명을 꿈꾼다. 차라리 세상이 뒤집히기를 바란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데 비해 사회안전망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들이 조기 퇴출의 아픔을 겪고 있지만 재취업은 언감생심이고, 그나마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하는 군자가 없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이들 또한 자연스럽게 혁명의 깃발 밑으로 모이게 마련이다.
소통의 정치인에 대한 기대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린다. 메시아가 나타나 새로운 복음(福音)을 설파해 주기를 기대한다.
현실 정치에서 복음은 시대정신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한두 마디로 꿰어 민초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이는 소통이다. 지난해 초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시작으로 안철수 교수의 청춘콘서트 그리고 10·26 서울시장 보선을 전후로 폭발했던 ‘안철수 신드롬’ 모두가 바로 이 같은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야권은 총선 후폭풍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어떻게 하면 경쟁력 있는 후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몸부림이다.
앞으로 민주통합당 내에서는 김두관(金斗官) 경남지사, 문재인(文在寅) 상임고문, 손학규(孫鶴圭) 전 대표, 이해찬(李海瓚) 전 국무총리 그리고 정세균(丁世均) 전 대표 등(가나다 순)이 대선레이스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서울 강남에서 낙선했으나 지난 대선에 후보로 출마했던 정동영(鄭東泳) 전 장관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을 노리고 있다. 당 밖의 인물로는 안철수 교수가 단연 돋보인다. 이들이 가깝게는 추석 전인 9월 말까지, 늦어도 10월 말까지는 치열하게 경쟁을 벌일 것이다.
일본의 노정객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는 시대를 초월해 정치리더에게 요구되는 조건을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통찰력, 사태의 추이를 예측하고 자신이 내린 판단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고, 어떻게 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둘째는 설득력이다. 문자 그대로 조직 안팎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셋째는 결합력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통합력이다. 뛰어난 인재와 정보 그리고 자금을 모아 결합시키는 능력이다.
끝으로 인간적 매력이다. 이는 협력해 주는 사람들을 움직여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키는 힘이다.
이 네 가지 외에 하나의 덕목을 추가한다면 독일의 아데나워 수상이 강조했던 ‘용기’다. 이런 관점에서 야권의 잠룡(潛龍)들을 관찰해 보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리틀 노무현’ 金斗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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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16일 민주통합당에 입당한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한명숙 대표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
우선 상품성이 좋다는 것이다. 나이도 딱이다. 1959년생이니 53세다. 패기도 있고 경륜도 있어 보인다(참고로 박정희 46세, 전두환 49세, 노태우 56세, 노무현 57세에 취임). 전문대를 졸업한 후 야간에 대학을 다녔다. 고향에서 마을 이장부터 시작해 두 차례 민선 군수를 거쳐 행정자치부장관에도 올랐다. 이후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도전해 여권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문재인 상임고문을 ‘노무현의 그림자’라고 한다. 반면 김두관 지사를 일러 ‘리틀 노무현’이라고 한다. 문 고문이 노무현의 운명을 따라가는 순종적인 자세를 보이는 반면, 김 지사는 인생의 행적은 노무현과 비슷하나 노무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노력한다. 김 지사 본인도 “참여정부의 지분을 2% 정도 갖고 있을 뿐”이라며 자신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늘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두관 지사는 올해 1월 28일에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광주지역위원회’ 초청을 받아 무등산에 함께 올랐다. 이날 김 지사는 “4월 총선에서 지역 패권주의를 극복하고 민주통합당이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시·도민의 염원을 응원하면서 함께할 것”이라며 대권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리고 보름 후 김 지사는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하지만 총선 결과 경남에서 민주통합당이 1석에 머무르면서 김 지사의 주가도 조금 내려앉는 분위기다.
국가경영 청사진은 미지수
대권을 거머쥐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명지대 신율(申律) 교수(정치학)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세 사람의 경우를 통해 세 가지 조건을 꼽고 있다.
“첫째,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비주류가 참신한 느낌을 주고 기대를 갖게 한다.
둘째, 신화(神話) 그것도 어린 시절의 가난이라는 신화면 더욱 좋다. 그것은 대응성의 문제, 이른바 공감의 문제다. 지쳐 있는 대중의 입장에서는 저런 사람이면 우리의 처지를 잘 이해해 줄 것 같은 믿음을 준다.
셋째는 사회발전에 무엇인가 기여했던 측면이 있어야 한다. 대선에서 주요 계층인 40~50대들에 그것은 바로 민주화 경력이라고 할 수 있다.”
김두관 지사는 기억력이 좋고 친화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김 지사가 남해군수 취임 직후 한 번 만난 적이 있던 부산의 일간지 기자가 최근 김 지사를 만나 겪었던 에피소드 한 토막. 그 기자가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김 지사는 “아니, 그때(17년 전) 인터뷰하셨잖아요”라며 첫 만남의 기억을 더듬어 살갑게 대해주더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금은 수줍음을 타는 성격인 데 반해, 김 지사는 외향적인 성격이라 한 번 만난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이끌어낸다.
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대선 수업을 받아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달에 몇 차례씩 상경, 교수 및 각계 전문가들과 조용한 만남을 계속하면서 공력을 가다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적인 매력이나 전설과 같은 삶의 궤적에 비해 김두관의 비전이 무엇인지, 국가경영의 청사진은 어떤 건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부산과 경남이 기반으로 호남과 연결하여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주자의 한 사람으로 여겨질 뿐이다. 더욱이 이번 총선을 통해 부산·울산·경남이 아직도 여전히 새누리당의 아성이라는 것이 확인됐기에 김두관 지사의 부담도 결코 적지 않다.
‘부동의 야권 대선주자 1위’ 文在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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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11 총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운데)가 2012년 4월 9일 ‘나꼼수’멤버들과 함께 민주당 장향숙 후보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주진우 시사인 기자, 문 고문,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
사람들이 문 고문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을 때부터다.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자살 소식에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엄청난 혼란과 유언비어가 나돌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TV 앞에 나타난 인물이 문재인이다. 절제된 자세로 균형을 잃지 않는 문재인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안도감과 함께 문 고문 개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해 출간한 자서전 《운명》을 통해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운명 같은 30년 동행을 담담하게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며 사실상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문 고문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상당히 후한 편이다.
한국교통대 임동욱(林東郁) 교수(행정학)는 “이번 총선에서 일정 수준의 돌풍을 일으켰어야 했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문재인 고문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한다. “우선 참신하다. 그리고 스타일이 좋다. 또한 노무현에 대한 향수(서민적, 탈권위주의)를 폭풍으로 만들 수 있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할 줄 안다. 집권경험이 있고 이기는 방법을 안다. 게다가 대통령 개인보다는 대통령 팀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며 호남에 뿌리를 둔 영남후보로서 파괴력이 있다고 말한다. 부산·경남에 뿌리를 둔 안철수 교수나 김두관 지사보다는 오히려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민심의 변화는 야속하리만큼 정확하다. 문 고문은 연초에 예능프로에 나와서 공수부대 시절의 실력을 발휘하며 기왓장을 격파하고 잘 다듬어진 복근을 보여준 뒤로 안철수 교수를 제치고 여론조사 다자(多者)대결 구도에서 부동의 야권후보 1위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낙동강 벨트’지휘자로서의 초라한 성적 때문에 당장 주가가 급락했다. 여론조사는 물론이고 문 고문과 가까운 지인이 운영한다는 업체의 주식, 이른바 테마주의 주가도 폭락했다.
이철희(李哲熙)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이번 총선은 문재인 고문의 한계를 보여준 선거다. 부산·경남에서 문재인 고문의 상징성과 득표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대선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수도권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총선은 문 고문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 박근혜의 철벽 방어에 막혀 부산에서 2석을 얻는 데 그치고 말았지만 득표율로는 야권연대가 39.3%를 얻음으로써 문재인의 활약이 간단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19대 국회는 역량 검증 무대
더 중요한 사실은 문 고문의 역동적 통합력이다.
지난해 후반 ‘안철수 바람’이 정치권을 강타하며 여야 할 것 없이 모두가 지리멸렬할 때 문재인은 야권통합의 카드를 내밀었다. 구 민주당과 노무현 계열의 혁신과 통합 그리고 진보성향 시민사회단체까지를 아우르는 민주통합당 출범의 산파역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여론조사 조작 파문에도 불구하고 완강하게 퇴진을 거부할 때 급거 상경하여 와해위기의 야권연대를 복원하는 정치력도 보여주었다.
5월 30일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그는 본격적으로 중앙무대에서 활약하게 된다. 중앙정치의 역량을 검증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결정적 취약점은 권력의지가 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좋게 말하면 사람이 착하고 좋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평생을 노무현의 그림자로 살아왔던 그의 천성일지도 모른다. 정치는, 특히 대통령 도전자는 목숨을 걸 수 있을 정도의 강한 권력의지가 있어야 한다.
위기의 孫鶴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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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4·27 재보궐선거 당시 손학규 후보가 유세를 하고 있다. |
경기고와 서울대 동기동창인 고 조영래 변호사(법대), 고 김근태 의원(상대), 그리고 손학규 전 대표(문리대) 세 사람은 1960년대 후반 운동권을 이끌던 삼총사다. 대학 졸업 후 조영래가 인권변호사로 김근태가 민주화운동가로 변신했을 때 손학규는 영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1988년 귀국한 뒤 대학교수로 강단에 섰다. 1993년 보궐선거에서 경기도 광명에 민자당 후보로 출마, 당선된 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여당 대변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2002년부터 4년간 한나라당 소속의 경기도지사도 역임했다.
손 전 대표가 ‘정신적 고향’인 야권으로 돌아온 것은 2007년이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 불만을 품고 한나라당을 뛰쳐나왔다. 그러고 당시 인물난에 허덕이던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에 참여했다.
정동영 후보에게 자리를 빼앗겼으나 대신 당의 공동대표 자리를 차지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은 그해 10월 당 대표를 새로 선출했는데, 여기서 손 전 대표는 박지원 의원 등 호남의 지원 아래 당권을 차지했다. 작년 12월 민주통합당을 발족시키는 데도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 공천과정에서는 철저하게 소외되었고 측근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세력이 많이 약화됐다.
또다시 불쏘시개로 끝날 수도
그는 말 그대로 스타일리스트다. 경기도지사 퇴임 후 민생투어, 100일 민심대장정을 한다면서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채 봉놋방에서 잠을 자곤 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서울 종로)하자 강원도로 가 닭을 치며 살았다.
‘작은 은거는 시정(市井)에서, 큰 은거는 조정(朝廷)에서’라는 격언이 있다. 손 전 대표는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풀리지 않으면 뛰쳐나가 숨는 경향이 있다.
그와 함께 일해 봤던 인사들의 증언도 상반된다. 보건복지부 장관 때를 기억하는 공무원들은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준다. 반면 경기도지사 때를 기억하는 공무원들의 평가는 박하다.
손 전 대표가 상한가를 쳤던 것은 작년 4월 경기도 분당을 보선에서 승리했을 때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한나라당 텃밭을 점령했으니 곧바로 ‘손학규 대망론’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안철수 신드롬이 정치권을 강타할 무렵부터 손학규 대망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2007년에 이어 또다시 불쏘시개 역할로 끝나고 말 위기에 처했다.
손 전 대표의 강점은 수도권 출신으로 큰 적이 없다는 것이다. 최대의 약점은 변신(變身)이다. 운동권 출신으로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훌쩍 영국으로 떠났던 것과 귀국 후 여당에 들어간 것은 두고두고 약점으로 남는다. 또 2007년 한나라당 탈당 역시 그에게는 아픈 흔적이다.
나이도 역시 그렇다. 1947년생으로 65세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권주자 중 유일하게 1940년대생이다.
‘노무현의 嫡統’ 李海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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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8월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지식관리토론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 이 전 총리는 가장 막강했던 총리로 꼽힌다. |
많은 전문가는 이해찬 전 총리를 주목하고 있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가장 확실하게 승계하고 있는 적통(嫡統)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역대 가장 막강한 총리로(DJP공동정부 당시 김종필 총리를 제외하고는) 국정운영의 경험과 경륜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야권에서는 보기 드문 기획통이자 전략가라는 점이다.
이번 민주통합당의 출범에 있어서도 그가 그랜드디자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초부터 야권통합정당 출범을 통한 정권교체 구상을 밝히고 실천으로 옮겨나갔다. 9월에는 야권통합기구인 ‘혁신과 통합’을 창설하여 민주당과 대등한 위치에서 통합협상을 진행했고, 결국 올해 1월 15일 민주통합당을 탄생시켰다.
이해찬 전 총리는 1952년생으로 박근혜 의원과 60세 동갑이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다니던 그는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투옥되어 1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이후 실업자가 된 이해찬은 1978년 모교인 서울대 정문 옆에 광장서적을 열고 돌베개출판사도 열었다. 말이 출판사지 당시 불온서적으로 금기시됐던 책들을 번역하고 복사해서 은밀하게 팔았다.
그 당시 서울대 재학생들에게 이해찬은 훌륭한 선배로, 운동권 학생들의 당찬 멘토로 여겨졌다. 그때 만나서 이후 평생을 거의 함께해 온 대표적인 재학생이 바로 경제학과의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이해찬의 운명도 바뀌었다.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이해찬은 복학생협의회 대표로 운동권을 좌지우지했다. 심재철(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총학생회장으로 밀어올리고 유시민을 중앙대의원회의 의장에 앉혔다.
하지만 서울의 봄은 너무나 짧았다. 5월 17일 신군부가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 이해찬은 또다시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킹’인가, ‘킹 메이커’인가
19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등원한 이후 서울 관악을에서 내리 5선을 했고,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장관, 국무총리를 거쳤다. 그리고 이번에 6선에 도전하여 다시 여의도로 돌아왔다.
그는 본인이 킹(대통령)이 될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하지만 킹메이커의 역할은 흔쾌히 자임하고 나선다. 그렇다고 그가 킹이 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와 정동영, 손학규와 3파전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이해찬은 유시민과 한명숙 두 후보를 중도 사퇴시키고 자신을 지지하게 만드는 정치력을 보여주었다. ‘당권은 한명숙, 대권은 문재인’의 기치 아래 야권통합을 이루어냈고 상왕(上王)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한명숙 대표 체제가 붕괴되고 문재인 고문이 약세로 돌아선 마당에 이해찬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가 주목된다.
丁世均과 鄭東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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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4월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정동영 의원이 새만금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후 서울로 향하는 KTX 열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정세균 전 대표는 지역구인 전북 무주·진안·장수에서 내리 4선을 하다가 이번 총선에서는 서울 종로에서 당선됐다.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에서 전국을 아우르는 정치인으로 격이 올라간 것이다.
그는 온건한 합리주의자로 정평이 나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운동권이면서도 쌍용그룹에 입사하여 상무까지 오르며 전문경영인의 길을 걸은 덕분이다.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이다. 당시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의 기획조정위원장을 맡으면서 탁월한 기획력과 합리적인 조정능력 그리고 원만한 대인관계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아 행정 경험도 쌓았다. 이후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거쳐 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그에게 이번 서울 종로에서의 성공은 국회의원 한번을 더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정동영 전 장관은 그야말로 풍운아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김대중 총재가 선택한 전문직 젊은 피 3인의 한 사람으로, 법조계의 천정배, 신기남과 함께 방송계를 대표해 여의도에 입성했다.
정 전 장관이 세인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면전에서 권노갑 고문의 퇴진을 요구하면서다. 구태 정치를 청산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는 칭송도 있었으나, 그토록 뒤를 봐주었던 사람을 배신했다는 낙인도 찍혔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장관과 열린우리당 의장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07년 노 대통령과 결별하며 열린우리당을 와해시킨 탓에 친노 진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받고 있다. 2007년 대선 패배 후 2008년 총선 낙선(서울 동작), 2009년 무소속(전주 보선) 당선, 2012년 낙선(서울 강남을)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안철수는 과연 대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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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하면서 안철수 원장의 선택의 폭은 예전 같지 않다. |
그가 5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면서도 5% 남짓의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선뜻 양보할 때 국민들은 감동을 받았다. 메시아가 출현한 듯한 착각에 빠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작년 12월 그는 “강남에 출마하거나 신당을 만들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폭발하기 직전에 김을 스스로 빼는 소리였다. 그러면서도 결코 정치권 언저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적절한 시점에 절제된 한두 마디를 던져놓고는 또 주변을 맴돈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안철수의 주가는 또다시 급등했다. 박근혜, 한명숙, 문재인 공히 앞다투어 “안철수 원장과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러브콜을 보냈다.
총선 과정에서 그는 잠시 접었던 강연정치를 재개했다. 그는 강연에서 “정당이 아닌 인물을 보고 뽑아라. 나는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겠다”고 했다. 총선 이후 정치활동을 위한 사전포석이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이러한 안철수 원장의 행보에 대한 야권진영의 거부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안 원장의 무임승차에 대해 거부감이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우리가 어려울 때 당신은 무엇을 했나. 수수방관하지 않았나. 대선에 도전하려면 어느 진영이든 가서 그 진영을 바꾸든 아니면 함께하든 해야 한다. 그냥 꽃가마에 타보겠다는 마음이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낫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죠.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일종의 피로감이라고 할까요.”
안철수 원장의 가능성을 여전히 높게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동아대 임석준(林錫俊) 교수(정치학)는 “국민들은 ‘힐링’(치유)을 바라는 사람이 많다. 박근혜는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박정희)와 치유하는 어머니의 이미지(육영수)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안철수 역시 각종 힐링 프로그램을 통해 뜬 인물이다. 큰 싸움이 될 것이다”며 ‘박근혜 대 안철수’의 경쟁을 예측하기도 했다.
소통 능력에 한계
안철수 원장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자신만의 세상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도 있다. 국가경영에 참여해 본 경험도 없고 대규모 조직을 관리해 본 적도 없다. 의사로 컴퓨터 백신바이러스 개발자로 부정적이고 편협한 사고의 패러다임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감성적 호소가 아니라 이성적인 대국민 설득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비서관과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한 김현동(金顯東) 박사는 “안철수는 새로운 정부구성, 정강정책에서 거의 파천황(破天荒)적인 것을 내놓는 것으로 기성정치권과 차별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취약점은 새로운 가치관과 역사관을 대중에게 잘 알아듣게 설득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고 했다. 정치의 본령은 대중을 설득하고 소통하는 능력이다.
지금 안철수 원장은 많은 꿈을 꾸고 또 나가고 싶어할 것이다. 아직까지 확신이 안 서기 때문에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관망하는 입장으로 보인다. 결국 안 원장은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정국의 흐름을 관찰하면서 100% 자신이 섰을 때 움직일 것이다.
민주통합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도 우선 자신들의 체제정비가 우선이다. 야권의 입장에서는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데 ‘2단계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1단계에서는 자기 진영에서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고, 그 후보와 진영 밖의 유력한 주자 간 후보단일화를 통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이를 통해 정권을 되찾으려는 전략이다.
한번도 검증 거친 적 없어
안철수 원장에게 선택의 폭이 예전만 같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함으로써 박근혜가 대선주자의 자리를 내줄 리 만무하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안철수 국무총리’의 과거 DJP식 연대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안 원장의 세력이 너무 없다. 국무총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과거 자민련을 장악하고 있던 김종필(金鍾泌) 총리와 같이 권력분점을 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안철수 원장은 본인이 명시적으로 밝힌 바는 없으나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그런 그가 국무총리로 권력분점을 하자는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원장에게 남은 선택지는 조속한 시일 내에 정치결사체를 만들어 독자행보를 통해 완주하거나 중도에 기성 정당과 합종연횡(合縱連衡)을 도모하는 방법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관망하면서 마지막 순간 어떤 변수가 생겼을 때 후보단일화를 통해 대선에 나서는 방법이 있다.
그럴 경우라도 그의 약점 역시 한 둘이 아니다. 경륜이 없고 황야(荒野)에 노출된 적이 없다. 그는 어떤 검증도 거치지 않았다. 때문에 실수 한 방에 완전히 몰락할 가능성도 있다. 아데나워가 언급했던 불굴의 ‘용기’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그가 즐겨쓰는 선문답(禪問答)형 대화법은 정치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비전을 갖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비전을 실천해 가려는지 알고 싶어하는 유권자들에게 피로감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이미 그런 단계에 접어든 느낌이다.
야권, 단일화 이벤트 이어질 듯
이 중에서 누가 야권 후보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을까.
당 밖에 있는 안 원장은 앞에서 언급한 이러저러한 이유로 일단 제외해 보자. 그렇다면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탄생할 ‘스타’에 주목해야 한다.
총선이 끝났으므로 언론매체 등은 연이어 대선후보 지지율을 보도할 것이다. 현재로선 야권 주자 중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문재인 고문이 앞서 있다.
그러나 레이스가 시작되면 달라질지도 모른다. 1997년 신한국당 경선 때 이인제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며 단숨에 이회창 후보의 경쟁자로 떠오른 사례가 재현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럴 경우에도 역시 여권의 박근혜에 맞설 경쟁력이 제1의 판단 요소가 될 것은 뻔하다.
또 지금까지 전혀 드러나 있지 않았던 약점이 돌출될 가능성도 있다. 장관과 국회의원 등을 여러 차례 지낸 손학규·이해찬씨는 어느 정도 검증이 돼 문제가 생길 소지가 적지만, 문재인·김두관씨는 철저히 검증을 받은 인물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많은 전문가가 부산·경남 출신의 문재인, 김두관을 1순위로 꼽았고, 뒤를 이어 이해찬·손학규를 들었다. 이들의 강점과 약점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이 과정에서 호남 유권자들의 표심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2002년 광주 경선에서 전세를 뒤집은 노무현 후보의 예를 연상하면 된다.
호남 유권자들은 야당의 경선 레이스를 지켜보며 박근혜의 대항마를 찾으려 할 것이다. 초반에는 갈려 있는 표심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며 몰아주기로 나타날 것이다. 문재인, 김두관 등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이 새누리당의 아성인 부산·경남을 허물고 호남의 지지를 받아낼 경우 박근혜와 접전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권에는 안철수 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의 외곽 지원세력도 갖고 있어 좋은 대선 환경을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당내 주자(走者)가 미흡하다면 안철수 원장에 대한 압력도 가중될 것이다. 안 원장 본인이 직접 나서 야권 단일 후보에 도전하거나 적어도 야권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지지를 하도록 하는 압박이 커질 것이다. 그가 진영 논리를 거부했지만, 실제 그는 여권보다는 야권에 친한 사람이 훨씬 많다.
종합해 보면 올해 야권 대선후보가 탄생하는 과정은 정치 이벤트의 연속이 될 개연성이 높다.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가 됐다고 해서 12월 대선에 나선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총선과 같이 통합진보당과의 단일화를 시도할 수도 있고, 후보 선출 후 안철수 원장과 같은 외부인사와 단일화를 기획할 수도 있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