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야권 통합신당 참여시 임팩트 떨어져, ‘안철수 新黨’으로 가야
⊙ 과거와 달리 大選 훨씬 전에 ‘제3세력’ 浮上
⊙ 박근혜 지지층의 46.2%, ‘박근혜 이탈층’의 79.2%, ‘박근혜 절대 반대층’의 73.3%가 제3세력 동의
⊙ 과거와 달리 大選 훨씬 전에 ‘제3세력’ 浮上
⊙ 박근혜 지지층의 46.2%, ‘박근혜 이탈층’의 79.2%, ‘박근혜 절대 반대층’의 73.3%가 제3세력 동의
-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월 금오공대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서 안철수 교수가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범(汎)야권의 무소속 박원순(朴元淳) 후보가 한나라당 나경원(羅卿瑗) 후보에게 압승했다. 벌써부터 내년 총선(總選)을 앞두고 안철수(安哲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등 시민세력 중심의 제3세력이나 제3정당 출현 등 정치권의 지각변동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다.
물론 보수진영의 제3세력 가능성도 엄존한다. 보수성향 시민단체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의 박세일(朴世逸) 이사장은 최근 “기존 정당이 환골탈태하지 못하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당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정당은 진보와 보수를 통합하는 국민통합형 정당,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정당, 종합적인 민생대책을 가진 정당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새로운 정당 발언은 ‘보수신당(保守新黨)’ 출현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제3세력 부상은 민심(民心)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안철수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제3의 신당이 출현할 경우 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높게 나오고 있다.
‘안철수 新黨’에 대한 기대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가 11월 4∼8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안철수 신당’이 내년 총선 전 창당해 후보를 낼 경우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을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신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자는 36.2%였고 한나라당 후보 지지자는 23.4%, 민주당 등 야권 후보 지지자는 16%였다.
이러한 여론의 흐름은 10·26 보선 직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화일보》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지난 10월 29~30일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안철수 원장을 중심으로 야권 인사가 결합해 제3의 신당이 출현한다면 지지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40.9%가 “지지하겠다”고 했다. 아직 실체도 없는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이렇게 높은 것은 기현상(奇現象)임에 틀림없다. 한나라당과 차별화하는 보수신당에 지지하겠다는 응답도 44.1%로 나왔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흘 뒤인 지난 10월 29일에 선호하는 정치세력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9.3%는 ‘안철수, 박원순 등이 참여한 제3세력’을 택했다. ‘박근혜 등 한나라당 세력’(40%)과는 엇비슷했다. 하지만 ‘손학규, 정동영 등 민주당 세력’(11.1%)을 크게 압도했다. 11월 11일에 발표된 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는 ‘안철수 신당’의 내년 총선 지지율이 36.2%로 한나라당(23.4%)과 야권(16%)을 제쳤다.
이는 기성 정당에 대한 불만과 불신,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의 박원순 시장이 승리하면서 신당에 대한 욕구가 강해져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더불어 야권 지지자들이 제1야당인 민주당을 더 이상 야권 대표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혁신과 통합’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문재인(文在寅)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제3의 정당을 만드는 것은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해도 야권의 분열밖에 안된다”며 “민주당을 흔들거나 민주당 내부에서 통합에 찬동하는 사람들만 합류하는, 즉 민주당을 분열시키는 통합은 결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참여정부 시절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돼 나온 것은 잘못된 방식이었다. 후유증이 지금도 남아 있다”며 “민주당이 당내 결의를 통해 통째로 참여하는 방안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라고 주장했다.
20~30대, ‘우릴 대변하는 정당 없다’
문 이사장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10·26 재보궐 선거 이후 신당 출현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상당히 높다. 따라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제3세력을 향한 도도한 물결은 거스르기 어렵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국민의 제3세력에 대한 기대와 욕구는 현실정치에 대한 혐오, 그리고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이 가져온 결과이다.
특임장관실이 20~30대를 상대로 정치의식을 조사한 결과, 84%가 ‘우릴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했다. 응답자들은 기성 정당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로 ‘정당제도의 실효성 의문’(38.5％), ‘정쟁(政爭)만 키운다’(29.1％), ‘우리의 이해와 무관하다’(27.7％)를 꼽았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후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이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가장 큰 이유로 “진보와 보수로 나눠져 이념논쟁에만 몰두하기 때문에”(32.1%)라고 응답했다. 그 다음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21.9%), “국민과 소통을 거부한 채 계파이익에만 몰두하기 때문에”(16.8%) 순으로 나타났다.
박세일 이사장은 한국의 정당정치가 국민들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는 이유로 “국가발전이나 민생안정이라는 공적(公的) 가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인 개개인이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사적(私的) 이해관계를 위해 존재하는 셈이기 때문이다”고 진단하고 있다.
정당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금처럼 총체적으로 거부된 적은 없었다. 이런 정치환경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제3의 세력이 어떤 발전과정을 거칠 것인지 주목된다. 왜냐하면 한국 정당정치 패러다임의 대(大)변혁을 가져올 수 있고, 동시에 내년 총선과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실시된 한국 총선과 대선(大選)에서는 항상 제3세력이 출현했다. 다시 말해, 한국 총선과 대선의 역사는 그야말로 제3세력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大選 때마다 ‘제3정당’ 출현
이런 제3세력 형성과 쇠퇴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특징 가운데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기존 여야(與野) 정당에서 잠재력이 있는 대권(大權) 후보들이 탈당(脫黨)해 새로운 당을 만들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3정당 또는 제3세력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1987년 대선, 1997년 대선, 2007년 대선에서는 DJ, 이인제(李仁濟), 이회창(李會昌)이 자신이 정치적 기반이었던 정당을 탈당해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다. 한편, 1992년 대선에서는 정당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는 대기업 총수인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회장이, 2002년에는 무소속의 정몽준(鄭夢準) 의원이 대선을 앞두고 독자적인 정당을 창당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둘째, 제3세력은 지향하는 가치(價値)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이런 새로운 제3세력은 기존 정당들과 똑같이 철저히 인물 중심으로 운용되어 사당화(私黨化)의 틀을 극복하지 못했다.
셋째, 이들 제3의 세력은 대선을 목전(目前)에 두고 급조되어 결과적으로 파괴력이 크지 못했다. 2002년을 제외한 4번의 대선에서 이들 제3세력 후보의 평균 득표율은 19.4%였다.
다만, 자신이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했지만 특정 후보의 득표를 잠식하면서 다른 경쟁후보의 승리에 도움을 주었다. 1997년 대선에서 신한국당을 탈당해 대선 직전 국민신당을 창당한 이인제 후보가 19.2%의 득표로 3위를 차지했다. 그는 영남에서 25.1% 득표함으로써 DJ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DJ와 이회창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는 1.6%포인트(약 39만 표)에 불과했다.
현재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제3의 세력은 과거와 같이 가치가 아니라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 핵심에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자리 잡고 있다.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안철수 바람’(安風)을 몰고 오면서 한국 정당정치의 지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차이점도 존재한다. 과거와는 달리 기존의 거대 여야 정당들이 국민들로부터 극도의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제3세력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5%가 무당파(無黨派)라고 응답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과거에는 여야 기성 정당에 3김과 같은 강력한 리더가 존재하고 지역에 바탕을 둔 지역패권(覇權) 정당체제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제3세력 운동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과거에는 국민들의 정당에 대한 극도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정치안정을 위해 제아무리 새롭다 하더라도 막판에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제3의 무소속 후보나 제3정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기존 정당의 프리미엄이 존재했고, 결과적으로 거대 여야 정당의 독과점(獨寡占) 체제가 구축되었다.
이런 정치적 관행에 철퇴를 가한 것이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이다. 야권통합 후보 경선에서 박원순 후보는 제1야당인 민주당 후보를 침몰시켰고, 본선(本選)에서는 거대 여당마저 물리쳤기 때문이다.
정당 獨寡占 체제 붕괴
서울시장 선거 전날 박근혜(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정당정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뿌리”라며 “흔들리지 않고 정당정치와 민주주의를 확실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라도 (나경원 후보가) 꼭 당선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집권당의 패배였다. 한마디로 10·26 서울시장 선거는 유권자들의 기존 정당에 대한 응징과 심판이었다.
지금은 여야 정당에 3김(金)과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가 없고,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양상을 보이며 동시에 기존 정당들의 조직을 무력화(無力化)시킬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로 기존의 정당 독과점 체제가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3의 정치세력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전개양상은 과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또한 과거에는 대선을 코앞에 두고 급조되어 1회성 정치 이벤트로 부각되어 정치적 효과가 미약했지만, 현재의 제3세력은 대선 훨씬 전부터 부상(浮上)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크게 다르다. 그만큼 제3세력의 활동공간이 넓혀질 수 있고, 시간과의 싸움에서도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리서치앤리서치(R&R)의 9월 30일 조사에 따르면, “선생님께서는 우리 사회가 기존 정당과는 다른 새로운 정당 또는 제3의 정치세력이 등장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63.0%가 ‘동의한다’(‘적극 동의’ 33.3%+‘대체로 동의’ 29.7%)라고 응답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30.0%였다.
‘안철수 新黨’은 민주당 대체
<표1>에서 보듯이, 제3세력에 대한 욕구는 20~40대, 화이트칼라 및 학생, 진보·중도층,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파층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20대의 경우 무려 78.9%가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에 동의하고 있다. 30대에서는 73.9%, 40대에서는 71.1%였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2040세대의 성난 민심은 결국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직업별로는 한국 선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화이트칼라층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에 대해 72.8%, 더욱이 학생층에서는 10명 중 8명 정도(77.3%)가 이런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민주당 지지층의 무려 81.5%가 제3의 세력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의 75.0%가 기존 정당체제의 변화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바람’에 제3세력을 자처하던 진보정당의 활동공간은 협소해졌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진보신당도 역시 위기이다. 실제로 이념적으로 중도(69.9%)보다는 진보층(75.8%)에서 제3세력 등장에 대한 욕구가 훨씬 강하다는 것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만약 ‘안철수 신당’이 뜬다면 이는 한나라당을 몰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향후 대선에서 안철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으로 크고 한국 정당은 인물을 중심으로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朴槿惠와 新黨
<표2>는 안철수 교수와 박근혜 전 대표 지지층과 제3의 정치세력 간의 관계를 분석한 것이다. 박근혜-안철수 양자 가상 대결구도에서 안철수 지지자의 압도적 다수(84.9%)는 제3의 정치세력 등장에 동의하고 있다.
위에 언급된 R&R 조사에 따르면, 안 교수를 지지하는 이유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 같은 기대감 때문에”라는 응답이 40.8%로 가장 높게 나왔다. 그 다음으로 ‘기존 정치인과는 다르기 때문에’(24.7%), ‘세대교체를 할 수 있기 때문에’(13.1%), ‘사회에 공익적인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9.6%),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립적이기 때문에’(9.5%) 순으로 나타났다. 안철수를 통해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기대와 갈망은 결국 안철수 지지층으로 하여금 제3의 신당에 대한 동의로 연결되고 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 지지층의 46.2%가 제3세력 등장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 수치는 한나라당 지지층의 47.1%가 제3세력 등장에 동의하고 있는 수치와 거의 비슷하다. 여기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과 결별해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한나라당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보수신당이 나와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과거에는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지만 지금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박근혜 이탈층’의 79.2%, ‘과거에도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지 않았고, 지금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박근혜 절대 반대층’의 73.3%가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안철수, 야권 통합신당 참여시 임팩트 떨어져
이런 조사결과들이 주는 정치적 함의는 제3세력의 추동력은 보수신당이 아니라 ‘안철수 신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안철수 교수가 현재 야권에서 추진하고 통합신당에 참여할 경우 정치적 임팩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야권통합추진기구인 ‘혁신과 통합’은 10월 6일 “시민의 바다에 정당의 배를 띄울 때 비로소 국민에게 신뢰받는 새로운 정당이 시작된다”며 시민이 주도하는 ‘혁신적 통합정당’ 건설을 제안했다. 문재인 혁신과 통합 대표는 “안철수 교수가 내년 4월 총선 이전에 야권 통합정당에 들어오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안 원장이 야권 통합에 참여하고 (내년에도) 지금의 지지도를 유지한다면 우리(야권) 쪽의 대표선수가 될 수 있고, 대선주자로 나설 수도 있다”며 “(그때면) 우리도 그것을 인정하고 도와야 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는 “민주당은 명백히 통합의 주체이자, 주도세력”이며 “제3의 정당을 만드는 건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한나라당의 헤게모니가 무너진 다음에 가능할지 몰라도 지금 상태에서 만들면 무리”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제3정당에 대한 이런 인식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좌파 주도의 야권 통합신당에 안 교수가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안 교수가 정치에 뛰어든다면 지금의 여야가 아닌, 제3의 정치세력을 통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이 있다. 안 교수의 향후 정치행보는 야권 신당을 통해서가 아니라 ‘안철수 신당’ 방식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안 교수가 진보·좌파적 색채가 강한 야권 통합신당에 참여할 경우, 안 교수의 핵심 지지층인 중도층과 무당층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안 교수가 보여준 것은 진보적 이념이 아니라 합리적인 태도였다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문재인 이사장 등 친노(親盧) 세력과 시민사회 인사들이 참여하는 ‘혁신과 통합’은 새로운 정치세력이라기보다는 과거 정치세력이다. 왜냐하면 이들 세력의 대부분은 노무현 참여정부 때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 등 정치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 직간접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현재 반(反)MB, 반한나라당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해도 본질적으로는 과거 갈등과 대립의 정치 한복판에 서 있었던 세력임에 틀림없다.
비록 안철수 교수는 공개적으로 ‘한나라당 응징’을 거론하고 “역사의 물결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탈(脫)이념, 탈정치를 외치며 과거 정치세력과 차별화하고 있다. ‘안철수 바람’이 분 이유는 분명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불신, 보수 대(對) 진보의 대립구도에 대한 피로감,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집약된다. 따라서 국민들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은 안 교수로 하여금 야권 통합신당에 무조건 참여하기가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李風·盧風·鄭風·安風
10·26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욕구는 분명 확인되었다. 과연 과거와 같이 제3의 정치세력화가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더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할 것이디.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 시점에서 제3 정치세력화의 가능성과 한계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표3>은 그동안 한국 대선에서 거세게 불었던 각종 바람들과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을 비교·분석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안풍의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동안 불었던 바람들은 대선이 있던 해에 나타났다. 이풍(李風·이회창 바람)은 대선 5개월 전,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은 9개월 전, 정풍(鄭風·정몽준 바람)은 5개월 전이었다.
하지만 안풍은 대선 해가 아닌 1년3개월 전에 불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또한 과거의 바람들은 정치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라면 안풍은 교수 출신의 비정치인이 주도했다는 점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이다.
안풍의 이런 특성은 그만큼 가변적(可變的)인 요인이 많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정치적 세력화 여부가 변수이기 때문이다.
1997년 이풍은 ‘3김 정치’ 청산을 기치로 한 대쪽 이미지가 주요 원인이었다. 반면, 2002년 노풍은 국민참여경선제라는 제도를 통해 형성되었다. 2002년 3월 광주에서 실시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점화되었다. 2002년 정풍은 월드컵 4강 진출을 계기로 급작스럽게 불어닥쳤다.
그런데 이풍과 정풍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 반면, 노풍은 끝까지 유지되면서 대권을 차지했다. 차이는 무엇일까.
이풍은 이회창 후보에 대한 검증이 불거지면서 아들 병역비리로 추락했다. 대쪽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면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정풍은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이 국민통합21이라는 신당을 창당하자마자 오히려 위력을 상실했다. 기존 정당과 거리를 둔 신선함이 장점이었는데 신당 창당으로 그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편, 노풍은 이회창 대세론 속에서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의 축(軸)을 만들면서 승리했다.
낡음과 새로움으로 대변되는 변화의 축, 20~30대 젊은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형성된 세대 축, 친미(親美)와 반미(反美)를 토대로 한 이념의 축, 기득권층과 서민을 대립시키는 계층의 축이 만들어지면서 노풍이 탄력을 받았다.
安風의 미래
안풍의 미래도 결국 다음의 3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첫째, 국정(國政)운영 능력과 도덕성을 포함한 개인 자질에 대한 혹독한 검증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이다.
둘째,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의 축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이다. 안풍은 이미 낡음과 새로움으로 대변되는 변화의 축, 2040세대와 5060세대 이상 연령층이 대립하는 세대의 축, 역사발전(민주) 대 역사퇴보(반민주)로 압축되는 역사의 축, 세상을 상식과 비상식으로 나누는 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2002년 노풍의 전개과정을 답습하는 것 같다. 이런 선거 프레임을 토대로 안 교수가 향후 제3의 정치세력으로 거듭날지가 관건이다.
셋째, 창당 없이 어떻게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느냐이다. 탈정치와 탈이념을 내건 안 교수가 정당을 창설하는 순간 과거 정풍과 같이 일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강력한 권력의지를 토대로 이런 도전들을 이겨낼 때만이 안철수 신당의 윤곽과 미래가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외신(外信)기자들과 만나 “나도 야권을 단합시키는 후보로 왔듯이 제3의 정당이 성공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기 때문에 안철수 교수가 제3의 정당으로 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재인 이사장도 안철수의 제3의 신당에 대해 “현실적이지 않다. 지금 지지도를 보이는 것처럼 지지받는 정당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야권을 분열시켜 약화시키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언뜻 보기에는 야권 통합신당이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는 정치환경과 유권자 재편성(voter realignment) 상황 속에서 과연 안철수가 통합신당에 참여할지 아니면 기성 정당을 뛰어넘는 제3의 길을 걸을지는 자못 궁금하다. 어느 길이 진정 한국 정당정치의 뒤틀리고 왜곡된 패러다임을 바꿔 국민에게 희망을 주며 변화와 개혁의 상징이 될지는 현 시점에서 누구도 자신 있게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오로지 어느 길이 시대정신에 맞는 것인지 지켜볼 뿐이다.⊙
물론 보수진영의 제3세력 가능성도 엄존한다. 보수성향 시민단체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의 박세일(朴世逸) 이사장은 최근 “기존 정당이 환골탈태하지 못하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당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정당은 진보와 보수를 통합하는 국민통합형 정당,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정당, 종합적인 민생대책을 가진 정당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새로운 정당 발언은 ‘보수신당(保守新黨)’ 출현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제3세력 부상은 민심(民心)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안철수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제3의 신당이 출현할 경우 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높게 나오고 있다.
‘안철수 新黨’에 대한 기대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가 11월 4∼8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안철수 신당’이 내년 총선 전 창당해 후보를 낼 경우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을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신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자는 36.2%였고 한나라당 후보 지지자는 23.4%, 민주당 등 야권 후보 지지자는 16%였다.
이러한 여론의 흐름은 10·26 보선 직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화일보》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지난 10월 29~30일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안철수 원장을 중심으로 야권 인사가 결합해 제3의 신당이 출현한다면 지지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40.9%가 “지지하겠다”고 했다. 아직 실체도 없는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이렇게 높은 것은 기현상(奇現象)임에 틀림없다. 한나라당과 차별화하는 보수신당에 지지하겠다는 응답도 44.1%로 나왔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흘 뒤인 지난 10월 29일에 선호하는 정치세력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9.3%는 ‘안철수, 박원순 등이 참여한 제3세력’을 택했다. ‘박근혜 등 한나라당 세력’(40%)과는 엇비슷했다. 하지만 ‘손학규, 정동영 등 민주당 세력’(11.1%)을 크게 압도했다. 11월 11일에 발표된 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는 ‘안철수 신당’의 내년 총선 지지율이 36.2%로 한나라당(23.4%)과 야권(16%)을 제쳤다.
이는 기성 정당에 대한 불만과 불신,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의 박원순 시장이 승리하면서 신당에 대한 욕구가 강해져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더불어 야권 지지자들이 제1야당인 민주당을 더 이상 야권 대표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혁신과 통합’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문재인(文在寅)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제3의 정당을 만드는 것은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해도 야권의 분열밖에 안된다”며 “민주당을 흔들거나 민주당 내부에서 통합에 찬동하는 사람들만 합류하는, 즉 민주당을 분열시키는 통합은 결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참여정부 시절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돼 나온 것은 잘못된 방식이었다. 후유증이 지금도 남아 있다”며 “민주당이 당내 결의를 통해 통째로 참여하는 방안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라고 주장했다.
20~30대, ‘우릴 대변하는 정당 없다’
문 이사장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10·26 재보궐 선거 이후 신당 출현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상당히 높다. 따라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제3세력을 향한 도도한 물결은 거스르기 어렵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국민의 제3세력에 대한 기대와 욕구는 현실정치에 대한 혐오, 그리고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이 가져온 결과이다.
특임장관실이 20~30대를 상대로 정치의식을 조사한 결과, 84%가 ‘우릴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했다. 응답자들은 기성 정당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로 ‘정당제도의 실효성 의문’(38.5％), ‘정쟁(政爭)만 키운다’(29.1％), ‘우리의 이해와 무관하다’(27.7％)를 꼽았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후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이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가장 큰 이유로 “진보와 보수로 나눠져 이념논쟁에만 몰두하기 때문에”(32.1%)라고 응답했다. 그 다음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21.9%), “국민과 소통을 거부한 채 계파이익에만 몰두하기 때문에”(16.8%) 순으로 나타났다.
박세일 이사장은 한국의 정당정치가 국민들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는 이유로 “국가발전이나 민생안정이라는 공적(公的) 가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인 개개인이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사적(私的) 이해관계를 위해 존재하는 셈이기 때문이다”고 진단하고 있다.
정당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금처럼 총체적으로 거부된 적은 없었다. 이런 정치환경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제3의 세력이 어떤 발전과정을 거칠 것인지 주목된다. 왜냐하면 한국 정당정치 패러다임의 대(大)변혁을 가져올 수 있고, 동시에 내년 총선과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실시된 한국 총선과 대선(大選)에서는 항상 제3세력이 출현했다. 다시 말해, 한국 총선과 대선의 역사는 그야말로 제3세력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大選 때마다 ‘제3정당’ 출현
이런 제3세력 형성과 쇠퇴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특징 가운데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기존 여야(與野) 정당에서 잠재력이 있는 대권(大權) 후보들이 탈당(脫黨)해 새로운 당을 만들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3정당 또는 제3세력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1987년 대선, 1997년 대선, 2007년 대선에서는 DJ, 이인제(李仁濟), 이회창(李會昌)이 자신이 정치적 기반이었던 정당을 탈당해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다. 한편, 1992년 대선에서는 정당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는 대기업 총수인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회장이, 2002년에는 무소속의 정몽준(鄭夢準) 의원이 대선을 앞두고 독자적인 정당을 창당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둘째, 제3세력은 지향하는 가치(價値)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이런 새로운 제3세력은 기존 정당들과 똑같이 철저히 인물 중심으로 운용되어 사당화(私黨化)의 틀을 극복하지 못했다.
셋째, 이들 제3의 세력은 대선을 목전(目前)에 두고 급조되어 결과적으로 파괴력이 크지 못했다. 2002년을 제외한 4번의 대선에서 이들 제3세력 후보의 평균 득표율은 19.4%였다.
다만, 자신이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했지만 특정 후보의 득표를 잠식하면서 다른 경쟁후보의 승리에 도움을 주었다. 1997년 대선에서 신한국당을 탈당해 대선 직전 국민신당을 창당한 이인제 후보가 19.2%의 득표로 3위를 차지했다. 그는 영남에서 25.1% 득표함으로써 DJ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DJ와 이회창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는 1.6%포인트(약 39만 표)에 불과했다.
현재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제3의 세력은 과거와 같이 가치가 아니라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 핵심에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자리 잡고 있다.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안철수 바람’(安風)을 몰고 오면서 한국 정당정치의 지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차이점도 존재한다. 과거와는 달리 기존의 거대 여야 정당들이 국민들로부터 극도의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제3세력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5%가 무당파(無黨派)라고 응답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과거에는 여야 기성 정당에 3김과 같은 강력한 리더가 존재하고 지역에 바탕을 둔 지역패권(覇權) 정당체제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제3세력 운동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과거에는 국민들의 정당에 대한 극도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정치안정을 위해 제아무리 새롭다 하더라도 막판에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제3의 무소속 후보나 제3정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기존 정당의 프리미엄이 존재했고, 결과적으로 거대 여야 정당의 독과점(獨寡占) 체제가 구축되었다.
이런 정치적 관행에 철퇴를 가한 것이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이다. 야권통합 후보 경선에서 박원순 후보는 제1야당인 민주당 후보를 침몰시켰고, 본선(本選)에서는 거대 여당마저 물리쳤기 때문이다.
정당 獨寡占 체제 붕괴
서울시장 선거 전날 박근혜(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정당정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뿌리”라며 “흔들리지 않고 정당정치와 민주주의를 확실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라도 (나경원 후보가) 꼭 당선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집권당의 패배였다. 한마디로 10·26 서울시장 선거는 유권자들의 기존 정당에 대한 응징과 심판이었다.
지금은 여야 정당에 3김(金)과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가 없고,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양상을 보이며 동시에 기존 정당들의 조직을 무력화(無力化)시킬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로 기존의 정당 독과점 체제가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3의 정치세력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전개양상은 과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또한 과거에는 대선을 코앞에 두고 급조되어 1회성 정치 이벤트로 부각되어 정치적 효과가 미약했지만, 현재의 제3세력은 대선 훨씬 전부터 부상(浮上)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크게 다르다. 그만큼 제3세력의 활동공간이 넓혀질 수 있고, 시간과의 싸움에서도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리서치앤리서치(R&R)의 9월 30일 조사에 따르면, “선생님께서는 우리 사회가 기존 정당과는 다른 새로운 정당 또는 제3의 정치세력이 등장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63.0%가 ‘동의한다’(‘적극 동의’ 33.3%+‘대체로 동의’ 29.7%)라고 응답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30.0%였다.
‘안철수 新黨’은 민주당 대체
<표1>에서 보듯이, 제3세력에 대한 욕구는 20~40대, 화이트칼라 및 학생, 진보·중도층,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파층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20대의 경우 무려 78.9%가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에 동의하고 있다. 30대에서는 73.9%, 40대에서는 71.1%였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2040세대의 성난 민심은 결국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직업별로는 한국 선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화이트칼라층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에 대해 72.8%, 더욱이 학생층에서는 10명 중 8명 정도(77.3%)가 이런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민주당 지지층의 무려 81.5%가 제3의 세력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의 75.0%가 기존 정당체제의 변화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바람’에 제3세력을 자처하던 진보정당의 활동공간은 협소해졌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진보신당도 역시 위기이다. 실제로 이념적으로 중도(69.9%)보다는 진보층(75.8%)에서 제3세력 등장에 대한 욕구가 훨씬 강하다는 것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만약 ‘안철수 신당’이 뜬다면 이는 한나라당을 몰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향후 대선에서 안철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으로 크고 한국 정당은 인물을 중심으로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朴槿惠와 新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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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장 선거 전 박근혜 전 대표는 나경원 후보 지지를 선언했지만, 결과는 집권당의 패배로 나타났다. |
위에 언급된 R&R 조사에 따르면, 안 교수를 지지하는 이유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 같은 기대감 때문에”라는 응답이 40.8%로 가장 높게 나왔다. 그 다음으로 ‘기존 정치인과는 다르기 때문에’(24.7%), ‘세대교체를 할 수 있기 때문에’(13.1%), ‘사회에 공익적인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9.6%),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립적이기 때문에’(9.5%) 순으로 나타났다. 안철수를 통해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기대와 갈망은 결국 안철수 지지층으로 하여금 제3의 신당에 대한 동의로 연결되고 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 지지층의 46.2%가 제3세력 등장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 수치는 한나라당 지지층의 47.1%가 제3세력 등장에 동의하고 있는 수치와 거의 비슷하다. 여기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과 결별해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한나라당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보수신당이 나와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과거에는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지만 지금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박근혜 이탈층’의 79.2%, ‘과거에도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지 않았고, 지금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박근혜 절대 반대층’의 73.3%가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안철수, 야권 통합신당 참여시 임팩트 떨어져
이런 조사결과들이 주는 정치적 함의는 제3세력의 추동력은 보수신당이 아니라 ‘안철수 신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안철수 교수가 현재 야권에서 추진하고 통합신당에 참여할 경우 정치적 임팩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야권통합추진기구인 ‘혁신과 통합’은 10월 6일 “시민의 바다에 정당의 배를 띄울 때 비로소 국민에게 신뢰받는 새로운 정당이 시작된다”며 시민이 주도하는 ‘혁신적 통합정당’ 건설을 제안했다. 문재인 혁신과 통합 대표는 “안철수 교수가 내년 4월 총선 이전에 야권 통합정당에 들어오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안 원장이 야권 통합에 참여하고 (내년에도) 지금의 지지도를 유지한다면 우리(야권) 쪽의 대표선수가 될 수 있고, 대선주자로 나설 수도 있다”며 “(그때면) 우리도 그것을 인정하고 도와야 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는 “민주당은 명백히 통합의 주체이자, 주도세력”이며 “제3의 정당을 만드는 건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한나라당의 헤게모니가 무너진 다음에 가능할지 몰라도 지금 상태에서 만들면 무리”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제3정당에 대한 이런 인식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좌파 주도의 야권 통합신당에 안 교수가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안 교수가 정치에 뛰어든다면 지금의 여야가 아닌, 제3의 정치세력을 통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이 있다. 안 교수의 향후 정치행보는 야권 신당을 통해서가 아니라 ‘안철수 신당’ 방식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안 교수가 진보·좌파적 색채가 강한 야권 통합신당에 참여할 경우, 안 교수의 핵심 지지층인 중도층과 무당층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안 교수가 보여준 것은 진보적 이념이 아니라 합리적인 태도였다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문재인 이사장 등 친노(親盧) 세력과 시민사회 인사들이 참여하는 ‘혁신과 통합’은 새로운 정치세력이라기보다는 과거 정치세력이다. 왜냐하면 이들 세력의 대부분은 노무현 참여정부 때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 등 정치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 직간접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현재 반(反)MB, 반한나라당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해도 본질적으로는 과거 갈등과 대립의 정치 한복판에 서 있었던 세력임에 틀림없다.
비록 안철수 교수는 공개적으로 ‘한나라당 응징’을 거론하고 “역사의 물결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탈(脫)이념, 탈정치를 외치며 과거 정치세력과 차별화하고 있다. ‘안철수 바람’이 분 이유는 분명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불신, 보수 대(對) 진보의 대립구도에 대한 피로감,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집약된다. 따라서 국민들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은 안 교수로 하여금 야권 통합신당에 무조건 참여하기가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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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30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통합과 혁신’ 상임대표들이 만났다. 왼쪽부터 이용선, 이해찬, 박시장, 문재인, 문성근. |
李風·盧風·鄭風·安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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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12월 18일 유세를 벌이는 노무현 후보.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축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다. |
<표3>은 그동안 한국 대선에서 거세게 불었던 각종 바람들과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을 비교·분석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안풍의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동안 불었던 바람들은 대선이 있던 해에 나타났다. 이풍(李風·이회창 바람)은 대선 5개월 전,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은 9개월 전, 정풍(鄭風·정몽준 바람)은 5개월 전이었다.
하지만 안풍은 대선 해가 아닌 1년3개월 전에 불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또한 과거의 바람들은 정치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라면 안풍은 교수 출신의 비정치인이 주도했다는 점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이다.
안풍의 이런 특성은 그만큼 가변적(可變的)인 요인이 많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정치적 세력화 여부가 변수이기 때문이다.
1997년 이풍은 ‘3김 정치’ 청산을 기치로 한 대쪽 이미지가 주요 원인이었다. 반면, 2002년 노풍은 국민참여경선제라는 제도를 통해 형성되었다. 2002년 3월 광주에서 실시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점화되었다. 2002년 정풍은 월드컵 4강 진출을 계기로 급작스럽게 불어닥쳤다.
그런데 이풍과 정풍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 반면, 노풍은 끝까지 유지되면서 대권을 차지했다. 차이는 무엇일까.
이풍은 이회창 후보에 대한 검증이 불거지면서 아들 병역비리로 추락했다. 대쪽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면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정풍은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이 국민통합21이라는 신당을 창당하자마자 오히려 위력을 상실했다. 기존 정당과 거리를 둔 신선함이 장점이었는데 신당 창당으로 그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편, 노풍은 이회창 대세론 속에서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의 축(軸)을 만들면서 승리했다.
낡음과 새로움으로 대변되는 변화의 축, 20~30대 젊은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형성된 세대 축, 친미(親美)와 반미(反美)를 토대로 한 이념의 축, 기득권층과 서민을 대립시키는 계층의 축이 만들어지면서 노풍이 탄력을 받았다.
安風의 미래
안풍의 미래도 결국 다음의 3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첫째, 국정(國政)운영 능력과 도덕성을 포함한 개인 자질에 대한 혹독한 검증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이다.
둘째,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의 축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이다. 안풍은 이미 낡음과 새로움으로 대변되는 변화의 축, 2040세대와 5060세대 이상 연령층이 대립하는 세대의 축, 역사발전(민주) 대 역사퇴보(반민주)로 압축되는 역사의 축, 세상을 상식과 비상식으로 나누는 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2002년 노풍의 전개과정을 답습하는 것 같다. 이런 선거 프레임을 토대로 안 교수가 향후 제3의 정치세력으로 거듭날지가 관건이다.
셋째, 창당 없이 어떻게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느냐이다. 탈정치와 탈이념을 내건 안 교수가 정당을 창설하는 순간 과거 정풍과 같이 일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강력한 권력의지를 토대로 이런 도전들을 이겨낼 때만이 안철수 신당의 윤곽과 미래가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외신(外信)기자들과 만나 “나도 야권을 단합시키는 후보로 왔듯이 제3의 정당이 성공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기 때문에 안철수 교수가 제3의 정당으로 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재인 이사장도 안철수의 제3의 신당에 대해 “현실적이지 않다. 지금 지지도를 보이는 것처럼 지지받는 정당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야권을 분열시켜 약화시키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언뜻 보기에는 야권 통합신당이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는 정치환경과 유권자 재편성(voter realignment) 상황 속에서 과연 안철수가 통합신당에 참여할지 아니면 기성 정당을 뛰어넘는 제3의 길을 걸을지는 자못 궁금하다. 어느 길이 진정 한국 정당정치의 뒤틀리고 왜곡된 패러다임을 바꿔 국민에게 희망을 주며 변화와 개혁의 상징이 될지는 현 시점에서 누구도 자신 있게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오로지 어느 길이 시대정신에 맞는 것인지 지켜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