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재섭은 구직운동하러 나온 것 같고, 손학규는 자신을 던졌다”
⊙ “조폭들도 최소한의 상도의가 있는데, 한나라당엔 그것도 없다”
⊙ “손학규가 무능하고 배은망덕한 한나라당보다 나을 것”
田麗玉
⊙ 52세.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학 석사. 이화여대 정치학 박사과정 중.
⊙ KBS기자, 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대변인ㆍ최고위원ㆍ국제위원장ㆍ전략기획본부장 역임.
⊙ 저서: 《일본은 없다》 《간절히 두려움 없이》 《대한민국은 있다》 《폭풍전야》 등.
⊙ “조폭들도 최소한의 상도의가 있는데, 한나라당엔 그것도 없다”
⊙ “손학규가 무능하고 배은망덕한 한나라당보다 나을 것”
田麗玉
⊙ 52세.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학 석사. 이화여대 정치학 박사과정 중.
⊙ KBS기자, 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대변인ㆍ최고위원ㆍ국제위원장ㆍ전략기획본부장 역임.
⊙ 저서: 《일본은 없다》 《간절히 두려움 없이》 《대한민국은 있다》 《폭풍전야》 등.
-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들이 새로 결성한 ‘새로운 한나라’ 의원들이 지난 5월 8일 의원회관에 모여 당 비상대책위원회 결성의 문제점과 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강원도 홍천과 횡성이 지역구인 황영철(黃永哲) 의원. 그는 이광재(李光宰) 전 강원지사가 지난 6·2지방선거 때 당선되자마자 뇌물수수 혐의로 직무정지되자 이렇게 말했다. “이광재 강원지사 당선자는 도민(道民)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지사직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일 도지사 선거가 다시 치러진다면 200억원 정도 되는 강원도 재정이 쓰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한나라당에 소속된 의원이다. 놀랍게도!
그의 바람과는 달리 도지사 선거는 다시 치러졌다. 이번에 한나라당은 역시 놀랍게도 엄기영(嚴基永) 전(前) MBC사장을 강원도지사 후보로 내세웠다. 온 나라를 쓰나미처럼 휩쓴 광우병(狂牛病) 파동 때 그는 MBC사장이었다.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미쳤다고 해야 옳다.
엄기영씨는 입당(入黨)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그에 대해 단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한나라?” “변절했냐?”고 물어대는 좌파들에게 처량한 어조로 말했다. “강원도를 더 잘살게 만들기 위해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고…. 가난한 친정식구 먹여 살리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팔려 가는 처녀의 모양새였다. 이 정도면 싸구려 용병(傭兵)이라고 해도 아깝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나라당 안에서 이 ‘기막힌 공천’에 대해 어느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말했다. 나의 홈피에 ‘어이없는 엄기영의 공천’을 비판하자 의총(議總)에서 황영철 의원은 분노한 척, 그러나 웃어 가면서 말했다.
“만일 엄기영 후보가 우리한테 오지 않고 민주당에 가면 어떡합니까? 우리는 무조건 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모셔온 후보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고….”
그는 나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난 그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탄핵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이런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분명 정당(政黨)이다. 정당은 종교집단과 같다. 끼리끼리 동일한 가치(價値)와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이념의 결사체(結社體)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저쪽으로 갈까봐 우리 쪽으로 끌어왔다”는 이 군색한 변(辯)은 나이트클럽 운영권을 갖고 쌈박질을 하는 조폭(組暴)들도 하지 않는 말이다. 조폭들 사이에도 나름대로 최소한의 상도의(商道義)가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에는 최소한의 정치도의조차 없다.
나는 엄기영 후보가 절대로 당선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러 이유를 들 수 있었지만 그는 한나라당을 위해 싸울 의지도 애정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엄밀한 의미의 ‘무소속(無所屬)’이란 없다. 무소속은 ‘1인(人) 정당’이라고 해야 옳다. 선거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치열한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정신무장이 최고이다. 호찌민(胡志明)이 베트콩들에게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바로 엘리트 정치장교를 통한 이른바 ‘의식화(意識化)’였다. 엄기영 후보는 가슴도 없었지만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가치ㆍ정신에 무지했다. 그는 ‘영혼이 없는 후보’였다.
한나라당의 4·27 재·보궐 선거 참패에 대해 한 신문은 이렇게 사설을 썼다.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나라 당료나 의원들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중략) 한나라당의 진정한 문제는 그것을 알고도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광란의 도가니였던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MBC사장을 했던 엄기영씨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는 것부터가 그랬다. 그럴 바에야 한나라당을 찍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른 후보들도 옛 민정당의 부활처럼 느껴졌다.”
분당乙, 지금까지 가 본 선거 가운데 가장 암담한 선거
분당을(乙)선거는 어떤가? 한마디로 서글펐다. 내가 지금까지 가 본 선거 가운데 가장 암담한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한나라당에 시선을 주지도 않았다. ‘노무현 탄핵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분당은 한나라당이 질 수밖에 없는 사연이 켜켜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한나라당에 분당이 천당(天堂)이던 때가 있었나’ 싶었다. “나이 들고 부유한 층이 죽전과 판교로 나가서”라고 군색한 이유를 대는 정당이라면, “제발 투표율 좀 낮아라” 하고 주문을 거는 정당이라면 저주를 받아도 마땅하지 않은가?
게다가 분당에는 조직이랄 것이 없었다. 당료(黨僚)들의 말에 의하면 한나라당 의원으로 내리 3선(選)을 한 임태희(任太熙) 전 의원(현 대통령실장)은 이른바 지역사무소를, 즉 옛날식의 지구당조차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이 개인의원의 소신일 수도 있으나 그만큼 분당이 ‘천당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흔히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는 지옥구, 전국구(全國區)는 천국구(天國區)’라는 말을 한다. 그런 점에서 분당은 ‘천국구 같은 지역구’였던 셈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강재섭(姜在涉) 후보였다. 민정당 시절부터 대구에서 내리 당선된 그는 ‘TK식 선거’를 했다. 치열한 수도권에서 담금질된 손학규(孫鶴圭) 후보가 사생결단을 하듯 새벽 4시반부터 밤 12시까지 선거구를 누비는 몸때우기를 그는 당해 내지를 못했다. 게다가 분당의 적잖은 유권자들은 강재섭 후보를 ‘올드 보이(Old Boy)’로 여겼고 손학규 후보는 ‘영 보이(Young Boy)’로 생각했다. 나이는 손학규 후보가 2살이나 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 분당시민은 내게 말했다.
“강재섭 후보는 이지 고잉(Easy Going)의 인생 같아요. 민정당 때부터 줄곧 잘먹고 잘살아 온 웰빙(Well Being) 의원이잖아요. 손학규 후보는 탈당(脫黨)했지만 그이는 부딪치면서, 고민하면서, 기다리며 정치를 했어요. 그리고 지난 번 수원 보궐선거 때 자기가 안 나가고 대신 선거운동 처절하게 해 주고…. 그런데 강재섭 후보는 한나라당이면 다 된다는 분당에 나오겠다고 그러고….
강재섭 후보는 구직(求職)을 하러 나오는 것 같고요. 손학규 후보는 뭔가 우리 정치를 변화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던지는 거죠. 사지(死地)에 뛰어든 거잖아요.”
할 말 없었다. 그는 “살려고 나온 강재섭은 싫어서, 죽기를 각오하고 나온 손학규를 선택했다”면서 “난생 처음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한나라당을 거부한 김태호
김해을 선거는 어떠한가? 참으로 암담했다. 김태호(金台鎬) 후보는 한나라당의 공천(公薦)을 받았지만 한나라당을 거부했다. 한나라당의 안상수(安商守) 대표는 김해 근처에 얼씬도 못하고 창원에서 재ㆍ보궐선거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 구차스럽기 짝이 없었다.
김해을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긴 것이 아니었다.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 묘소에 가서 넙죽 절을 할 수 있는 김태호 후보의 폭넓기 그지없는 정치적 유연성, 도(道)의원부터 시작해서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노련하고 노회한 선거전문가로서 기량이 한껏 발휘된 선거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아니라 김태호에게 배지를 달아 준 이는 유시민(柳時敏) 국민참여당 대표다. 즉 김태호의 승리가 아니라 유시민의 욕심이 부른 패배였다고 보아야 옳다.
김해는 예로부터 외지인이 와서 정착해 ‘김해토박이가 되었다. 여러모로 토박이들의 마음에 차지 않는 이봉수(李鳳洙) 후보를 고집하는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참당은 서로 할퀴고 물어뜯고 온갖 질펀한 싸움을 해댔다.
선거 날, 김해토박이들은 투표장에 가지를 않았다. 민주당은 유시민의 몽니가 괘씸해서 괘씸죄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하나마나의 선거운동을 했다. 국참당은 ‘따논 당상인 승리에 취해서 원내(院內)진입의 달콤한 꿈을 꾸느라 잠을 설쳤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 아닌가. 마치 한나라당의 친이(親李)와 친박(親朴)의 싸움을 보는 듯하다. 한나라당에 많은 국민이 염증을 느끼는 것은 바로 친이와 친박의 분파와 분열의 찌질이 싸움이었다. 도련님과 공주들이 모인 한나라당, 몸싸움도 제대로 못해서 민주당 보좌관들에게 멱살이나 잡히는 나약한 것들이 대체 무슨 기운이 저리도 펄펄 나서 잘 싸운단 말인가. 분명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해먹겠다’고 싸우는 것을 이 대한민국 정치 9단의 국민이 모를 리가 없다.
“뭐 하나 야무지게 해내는 것을 못 봤어요”
한나라당의 참담한 패배가 알려진 다음날은 더 소름끼쳤다.
“‘정말 잘됐다’고 우리 식구 모두 손뼉 쳤어요. 530만 표나 몰아주고 170석도 넘게 밀어줬는데 아무것도 못하는 한나라당 꼴도 보기 싫었어요.”
“도대체 한나라당은 뭘 하는 정당인지 모르겠어요. 존재할 필요가 있나요. 그렇게 민주당에, 민노당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질질 끌려다니는 꼴 정나미 떨어졌다니까요.”
“참, 세상에 이렇게 이상한 당은 태어나서 첨 봐요. 도대체 표를 줄 사람들을 외면하고 표 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꼬리를 흔드는 바보 같은 강아지 정당 아닙니까?”
“뭐 하나 야무지게 솜씨 있게 해내는 것을 못 봤어요. 야당이 퍼주기 복지에 포퓰리즘으로 널을 뛰니까 같이 못 뛰어서 난리 아닙니까. 포퓰리즘도 이왕이면 ‘원조(元祖) 포퓰리즘’당을 찍지 누가 짝퉁 한나라당을 찍겠어요?”
이렇게 시니컬하게 꼬고 꼬아 분노를 나타낸 이들은 모두가 열렬한 전(前) 한나라당 지지자였다.
보수우파(保守右派)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돌아선 것이었다. 이 나라를 만들고 지키고 여기까지 오게 한 보수우파들의 염원을 한나라당은 박살내고 만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보수우파는 늘 주류(主流)였고 중심이었고 척추였다. 한나라당은 보수우파의 척추에 힘입어 피와 살을 얻은 정당이다.
헌정회(憲政會) 최고령 회원인 99세의 송방용(宋邦鏞) 전 의원은 한나라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이 정당이오? 다들 공천과 장관자리 생각뿐인데….”
송방용 의원은 덧붙여 말한다.
“한나라당은 ‘나라가 이렇게 돼서는 안 되겠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의해 유지되어 온 거지, 한나라당 의원들이 잘해서 유지된 것은 아니다.”
과연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한나라당의 미니어처 같은 자유선진당처럼 되지 않을까?
成人이 되기를 거부하는 少壯派
4·2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한나라당은 뒤집어졌다. “내 탓이요”라는 말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는 당인지라 “네 탓이요” 논쟁으로 당은 날이 새고 졌다. ‘개혁’이란 이름 대신 ‘쇄신’으로 옷을 갈아입은 이른바 소장파(少壯派)는 무리지어 안상수 대표와 청와대를 겨냥했다. 늘 그러하듯이….
그러나 먼저 할 일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한나라당이 서민정책을 도외시했다”고 하는데 나의 삶은 서민들과 함께했는가. 그들과 같은 옷을 입고 그들과 같은 음식을 들었는가. 이런 것들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에는 나이와 관계없이 늘 ‘소장파’라는 브랜드로 연명하는 의원들이 있다. 나이 50이 훌쩍 넘어서도 소장파이면서 늘 ‘젊은 기수(旗手)론’을 들고 나온다. 그들은 정치성인(成人)을 거부하는 영원한 ‘소년급제(少年及第)’ 정치인으로 남고 싶어하는 특성을 지닌 듯하다.
그동안 한나라당 소장파의 업적은 주로 ‘넘어뜨리기’였다. 최병렬(崔秉烈) 대표 몰아내기(그는 소장파와 매우 달큰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그를 쳐낸 것 역시 소장파였다), 17대 공천 혁명 주도….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당시 공천심사위원의 증언에 따르면 소장파 몇 명이 공천심사위원회 회의장에 쳐들어와 몇몇 나이 들고 보수성향인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한 공천심사위원이 “좋다. 그러면 너희도 똑같이 배제해도 좋으냐”고 묻자 즉시 “아니요~” 하며 나갔다는 이야기이다. 그들 자신이 바로 기득권자였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당시 개혁에 대한 대가(代價)로 자신의 강남지역구를 포기한 것은 오세훈(吳世勳) 의원 한 사람이었다. 어쨌든 모든 소장파가 출연한 개혁드라마는 어설펐다.
포퓰리즘 따라하는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이번 한나라당 원내대표 선거 결과는 소장파와 떨어져 나온 친이, 그리고 친박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소장파와 황우여(黃祐呂) 원내대표는 말한다.
“몸싸움 절대로 안한다. 한미(韓美) FTA는 미국이 먼저 국회에서 비준해라. 그러면 우리도 하겠다.”
몸싸움을 하고 싶어하는 의원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다수결(多數決)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국회에서 나라살림을 위해 부득이하게 예산을 통과시키려다 보니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몸싸움은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는 우리 정치문화의 현실에서 가장 괴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일리시한 정치도 좋지만 국익(國益)을 위해 필요하다면 악역(惡役)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정치인이기도 하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一聲)으로 “부자 감세(減稅)를 철회해 10조원의 재원(財源)을 마련해 서민을 돕겠다”고 했다.
이것은 도대체 어느 당의 원내대표인가. 민주당과 민노당의 원내대표 같다. ‘무상(無償)의료, 무상급식, 무상보육-민주당이 합니다’의 종결자가 바로 한나라당의 원내대표라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 어찌 나뿐일까?
이주영(李柱榮) 정책위의장의 인터뷰도 그에 못지않다. “10조원의 복지예산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감세를 철회할 경우 소득세 5000억원, 법인세 3조2000억원을 더해 3조7000억원의 재원이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잉여금(歲計剩餘金)에서 국가부채를 상환하고 남는 자금은 1조~2조원 정도로 추산되니 총 5조원이 된다. 나머지는 다른 예산을 절감하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백번 양보해도 확보(?)된 재원은 3조7000억원이라는 것인데 나머지 6조3000억원은 여기저기서 변통하면 된다는 이야기이다. 억(億)도 ‘억!’ 소리 나는 판에 조(兆) 단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통 큰 정책의장’이다.
지난 총선에서 나와 동네 TV로 토론을 했던 야당후보는 “지하철역을 여기도 저기도 다 만들겠다”고 했다. 내가 “역 하나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느냐. 그 돈은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었을 때 그 야당후보는 “역 만드는 데 얼마가 들지 모르지만 여기저기서 예산 끌어오면 된다”고 했다. 지금 이주영 정책위의장이 꼭 그 짝이다.
이념의 고귀함을 모르는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앞으로도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 ‘존재할 필요가 있는 정당인가’를 심각하게 묻게 된다.
내년 총선 전망은 어둡다. 지금 한나라당 의원들은 저마다 살겠다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구호 아래 ‘구(區)의원’ 역할, ‘도(道)의원’ 역할에 매진하고 있다.
“관료들이 영혼이 없다”고 누가 이야기했는가. 지금 영혼이 없는 자는 바로 한나라당의 의원들이다. 자유와 책임, 시장경제라는 한나라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버리고 ‘짝퉁 포퓰리즘’을 향해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것이 오늘의 한나라당의 모습이다.
지난 노무현 정권하에서도 대여(對與)투쟁이 아니라 내전(內戰)에만 몰두했던 이들이 다시 쇄신과 개혁이라는 이름을 걸고 내전에 돌입했다. 《로마인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가 부강해지니 내부의 갈등과 싸움이 시작됐다”고 말한 것처럼, 한나라당은 ‘내일의 권력은 나의 것’이라는 생각 아래 막장드라마를 수도 없이 연출했다.
행복도시 수정안 폐기나 동남권 신공항 문제까지 한나라당 의원들의 결정은 ‘국익’이 아니라 ‘다시 한번 배지를!’이다. 당을 위해 몸을 던지고 치열한 가치와 노선투쟁을 하는 정당 본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것이 오늘의 한나라당이다.
4·27 재·보궐선거를 전후해 “분당에서 지면 분당(分黨)된다”는 이야기가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있었다. 한나라당이 4·27 재·보궐선거에서 패한 것은 한나라당이 정두언(鄭斗彦) 의원이 이야기한 대로 ‘수구꼴통이어서’가 아니다. ‘자유와 책임, 그리고 시장경제’라는 영혼을 지니지 못한 한나라당의 의원들 때문이다. 영혼의 중요성, 이념의 고귀함, 이데올로기의 힘을 모르고 그저 ‘표의 향방’만을 초점 없는 눈동자로 쫓은 한나라당 의원들 때문이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나마 그동안 한나라당이란 둥지 아래 ‘알리바이 증명’을 의원들이 하고 다닌 것은 한나라당에 뜯어먹을 것이 있다고 계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한나라당의 지지율도 민주당에 역전(逆轉)당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렇다면 타이타닉호에서 탈출이 줄을 이을 수도 있다.
“손학규는 한나라당에 있었으니 노무현 같지는 않겠구나”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1당이 되지 못한다면 ‘정권 재창출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총선과 대선 사이는 불과 7~8개월 남짓이다. 유권자의 기본 정서인 이른바 ‘균형과 견제의 추’를 들이대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
많은 국민은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민주당에 갖다 바치면 보수정당의 집권은 영원히 물 건너갈 것”이라고 염려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무수한 신호가 잡힌다.
손학규와 유시민은 치고받으며 서로의 판을 키우고 있다. 문재인(文在寅)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마음을 고쳐먹고, 조국(曺國) 서울대 교수는 학교 강의보다 트위터에서 온갖 연예계 가십까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세일즈하고 있다.
지난 10년 좌파정권 아래서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한나라당을 지지했으나 이제는 정(情)을 뗀 나의 지인(知人)은 이야기한다.
“손학규 후보가 어느 정도 지지율이 오르면 폭풍 성장을 할 수 있죠. 그리고 그때는 한나라당 전력(前歷)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 저 사람, 한나라당에 있었으니 노무현 같지는 않겠구나’라고 생각하겠죠. 무능하고 배은망덕한 한나라당보다는 낫겠죠, 그 선택이?”
무서운 일이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도지사 선거는 다시 치러졌다. 이번에 한나라당은 역시 놀랍게도 엄기영(嚴基永) 전(前) MBC사장을 강원도지사 후보로 내세웠다. 온 나라를 쓰나미처럼 휩쓴 광우병(狂牛病) 파동 때 그는 MBC사장이었다.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미쳤다고 해야 옳다. 엄기영씨는 입당(入黨)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그에 대해 단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한나라?” “변절했냐?”고 물어대는 좌파들에게 처량한 어조로 말했다. “강원도를 더 잘살게 만들기 위해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고…. 가난한 친정식구 먹여 살리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팔려 가는 처녀의 모양새였다. 이 정도면 싸구려 용병(傭兵)이라고 해도 아깝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나라당 안에서 이 ‘기막힌 공천’에 대해 어느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말했다. 나의 홈피에 ‘어이없는 엄기영의 공천’을 비판하자 의총(議總)에서 황영철 의원은 분노한 척, 그러나 웃어 가면서 말했다.
“만일 엄기영 후보가 우리한테 오지 않고 민주당에 가면 어떡합니까? 우리는 무조건 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모셔온 후보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고….”
그는 나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난 그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탄핵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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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기영 전 MBC사장의 유세 모습. |
나는 엄기영 후보가 절대로 당선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러 이유를 들 수 있었지만 그는 한나라당을 위해 싸울 의지도 애정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엄밀한 의미의 ‘무소속(無所屬)’이란 없다. 무소속은 ‘1인(人) 정당’이라고 해야 옳다. 선거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치열한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정신무장이 최고이다. 호찌민(胡志明)이 베트콩들에게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바로 엘리트 정치장교를 통한 이른바 ‘의식화(意識化)’였다. 엄기영 후보는 가슴도 없었지만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가치ㆍ정신에 무지했다. 그는 ‘영혼이 없는 후보’였다.
한나라당의 4·27 재·보궐 선거 참패에 대해 한 신문은 이렇게 사설을 썼다.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나라 당료나 의원들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중략) 한나라당의 진정한 문제는 그것을 알고도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광란의 도가니였던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MBC사장을 했던 엄기영씨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는 것부터가 그랬다. 그럴 바에야 한나라당을 찍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른 후보들도 옛 민정당의 부활처럼 느껴졌다.”
분당乙, 지금까지 가 본 선거 가운데 가장 암담한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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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ㆍ27 재ㆍ보궐선거에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왼쪽)는 구직운동을 하는 듯했고, 손학규 후보(오른쪽)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임했다. |
분당은 한나라당이 질 수밖에 없는 사연이 켜켜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한나라당에 분당이 천당(天堂)이던 때가 있었나’ 싶었다. “나이 들고 부유한 층이 죽전과 판교로 나가서”라고 군색한 이유를 대는 정당이라면, “제발 투표율 좀 낮아라” 하고 주문을 거는 정당이라면 저주를 받아도 마땅하지 않은가?
게다가 분당에는 조직이랄 것이 없었다. 당료(黨僚)들의 말에 의하면 한나라당 의원으로 내리 3선(選)을 한 임태희(任太熙) 전 의원(현 대통령실장)은 이른바 지역사무소를, 즉 옛날식의 지구당조차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이 개인의원의 소신일 수도 있으나 그만큼 분당이 ‘천당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흔히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는 지옥구, 전국구(全國區)는 천국구(天國區)’라는 말을 한다. 그런 점에서 분당은 ‘천국구 같은 지역구’였던 셈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강재섭(姜在涉) 후보였다. 민정당 시절부터 대구에서 내리 당선된 그는 ‘TK식 선거’를 했다. 치열한 수도권에서 담금질된 손학규(孫鶴圭) 후보가 사생결단을 하듯 새벽 4시반부터 밤 12시까지 선거구를 누비는 몸때우기를 그는 당해 내지를 못했다. 게다가 분당의 적잖은 유권자들은 강재섭 후보를 ‘올드 보이(Old Boy)’로 여겼고 손학규 후보는 ‘영 보이(Young Boy)’로 생각했다. 나이는 손학규 후보가 2살이나 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 분당시민은 내게 말했다.
“강재섭 후보는 이지 고잉(Easy Going)의 인생 같아요. 민정당 때부터 줄곧 잘먹고 잘살아 온 웰빙(Well Being) 의원이잖아요. 손학규 후보는 탈당(脫黨)했지만 그이는 부딪치면서, 고민하면서, 기다리며 정치를 했어요. 그리고 지난 번 수원 보궐선거 때 자기가 안 나가고 대신 선거운동 처절하게 해 주고…. 그런데 강재섭 후보는 한나라당이면 다 된다는 분당에 나오겠다고 그러고….
강재섭 후보는 구직(求職)을 하러 나오는 것 같고요. 손학규 후보는 뭔가 우리 정치를 변화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던지는 거죠. 사지(死地)에 뛰어든 거잖아요.”
할 말 없었다. 그는 “살려고 나온 강재섭은 싫어서, 죽기를 각오하고 나온 손학규를 선택했다”면서 “난생 처음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한나라당을 거부한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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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8일 김해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뒤 당선인사를 나온 한나라당 김태호(오른쪽) 당선자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
김해을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긴 것이 아니었다.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 묘소에 가서 넙죽 절을 할 수 있는 김태호 후보의 폭넓기 그지없는 정치적 유연성, 도(道)의원부터 시작해서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노련하고 노회한 선거전문가로서 기량이 한껏 발휘된 선거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아니라 김태호에게 배지를 달아 준 이는 유시민(柳時敏) 국민참여당 대표다. 즉 김태호의 승리가 아니라 유시민의 욕심이 부른 패배였다고 보아야 옳다.
김해는 예로부터 외지인이 와서 정착해 ‘김해토박이가 되었다. 여러모로 토박이들의 마음에 차지 않는 이봉수(李鳳洙) 후보를 고집하는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참당은 서로 할퀴고 물어뜯고 온갖 질펀한 싸움을 해댔다.
선거 날, 김해토박이들은 투표장에 가지를 않았다. 민주당은 유시민의 몽니가 괘씸해서 괘씸죄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하나마나의 선거운동을 했다. 국참당은 ‘따논 당상인 승리에 취해서 원내(院內)진입의 달콤한 꿈을 꾸느라 잠을 설쳤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 아닌가. 마치 한나라당의 친이(親李)와 친박(親朴)의 싸움을 보는 듯하다. 한나라당에 많은 국민이 염증을 느끼는 것은 바로 친이와 친박의 분파와 분열의 찌질이 싸움이었다. 도련님과 공주들이 모인 한나라당, 몸싸움도 제대로 못해서 민주당 보좌관들에게 멱살이나 잡히는 나약한 것들이 대체 무슨 기운이 저리도 펄펄 나서 잘 싸운단 말인가. 분명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해먹겠다’고 싸우는 것을 이 대한민국 정치 9단의 국민이 모를 리가 없다.
“뭐 하나 야무지게 해내는 것을 못 봤어요”
한나라당의 참담한 패배가 알려진 다음날은 더 소름끼쳤다.
“‘정말 잘됐다’고 우리 식구 모두 손뼉 쳤어요. 530만 표나 몰아주고 170석도 넘게 밀어줬는데 아무것도 못하는 한나라당 꼴도 보기 싫었어요.”
“도대체 한나라당은 뭘 하는 정당인지 모르겠어요. 존재할 필요가 있나요. 그렇게 민주당에, 민노당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질질 끌려다니는 꼴 정나미 떨어졌다니까요.”
“참, 세상에 이렇게 이상한 당은 태어나서 첨 봐요. 도대체 표를 줄 사람들을 외면하고 표 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꼬리를 흔드는 바보 같은 강아지 정당 아닙니까?”
“뭐 하나 야무지게 솜씨 있게 해내는 것을 못 봤어요. 야당이 퍼주기 복지에 포퓰리즘으로 널을 뛰니까 같이 못 뛰어서 난리 아닙니까. 포퓰리즘도 이왕이면 ‘원조(元祖) 포퓰리즘’당을 찍지 누가 짝퉁 한나라당을 찍겠어요?”
이렇게 시니컬하게 꼬고 꼬아 분노를 나타낸 이들은 모두가 열렬한 전(前) 한나라당 지지자였다.
보수우파(保守右派)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돌아선 것이었다. 이 나라를 만들고 지키고 여기까지 오게 한 보수우파들의 염원을 한나라당은 박살내고 만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보수우파는 늘 주류(主流)였고 중심이었고 척추였다. 한나라당은 보수우파의 척추에 힘입어 피와 살을 얻은 정당이다.
헌정회(憲政會) 최고령 회원인 99세의 송방용(宋邦鏞) 전 의원은 한나라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이 정당이오? 다들 공천과 장관자리 생각뿐인데….”
송방용 의원은 덧붙여 말한다.
“한나라당은 ‘나라가 이렇게 돼서는 안 되겠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의해 유지되어 온 거지, 한나라당 의원들이 잘해서 유지된 것은 아니다.”
과연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한나라당의 미니어처 같은 자유선진당처럼 되지 않을까?
成人이 되기를 거부하는 少壯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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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여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가운데)와 이주영 정책위의장(오른쪽)이 지난 5월 8일 취임 후 첫 민생탐방 일정으로 나경원 최고위원(왼쪽) 등과 함께 서울 약수동의 독거노인들을 방문했다. |
그러나 먼저 할 일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한나라당이 서민정책을 도외시했다”고 하는데 나의 삶은 서민들과 함께했는가. 그들과 같은 옷을 입고 그들과 같은 음식을 들었는가. 이런 것들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에는 나이와 관계없이 늘 ‘소장파’라는 브랜드로 연명하는 의원들이 있다. 나이 50이 훌쩍 넘어서도 소장파이면서 늘 ‘젊은 기수(旗手)론’을 들고 나온다. 그들은 정치성인(成人)을 거부하는 영원한 ‘소년급제(少年及第)’ 정치인으로 남고 싶어하는 특성을 지닌 듯하다.
그동안 한나라당 소장파의 업적은 주로 ‘넘어뜨리기’였다. 최병렬(崔秉烈) 대표 몰아내기(그는 소장파와 매우 달큰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그를 쳐낸 것 역시 소장파였다), 17대 공천 혁명 주도….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당시 공천심사위원의 증언에 따르면 소장파 몇 명이 공천심사위원회 회의장에 쳐들어와 몇몇 나이 들고 보수성향인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한 공천심사위원이 “좋다. 그러면 너희도 똑같이 배제해도 좋으냐”고 묻자 즉시 “아니요~” 하며 나갔다는 이야기이다. 그들 자신이 바로 기득권자였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당시 개혁에 대한 대가(代價)로 자신의 강남지역구를 포기한 것은 오세훈(吳世勳) 의원 한 사람이었다. 어쨌든 모든 소장파가 출연한 개혁드라마는 어설펐다.
포퓰리즘 따라하는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이번 한나라당 원내대표 선거 결과는 소장파와 떨어져 나온 친이, 그리고 친박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소장파와 황우여(黃祐呂) 원내대표는 말한다.
“몸싸움 절대로 안한다. 한미(韓美) FTA는 미국이 먼저 국회에서 비준해라. 그러면 우리도 하겠다.”
몸싸움을 하고 싶어하는 의원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다수결(多數決)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국회에서 나라살림을 위해 부득이하게 예산을 통과시키려다 보니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몸싸움은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는 우리 정치문화의 현실에서 가장 괴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일리시한 정치도 좋지만 국익(國益)을 위해 필요하다면 악역(惡役)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정치인이기도 하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一聲)으로 “부자 감세(減稅)를 철회해 10조원의 재원(財源)을 마련해 서민을 돕겠다”고 했다.
이것은 도대체 어느 당의 원내대표인가. 민주당과 민노당의 원내대표 같다. ‘무상(無償)의료, 무상급식, 무상보육-민주당이 합니다’의 종결자가 바로 한나라당의 원내대표라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 어찌 나뿐일까?
이주영(李柱榮) 정책위의장의 인터뷰도 그에 못지않다. “10조원의 복지예산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감세를 철회할 경우 소득세 5000억원, 법인세 3조2000억원을 더해 3조7000억원의 재원이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잉여금(歲計剩餘金)에서 국가부채를 상환하고 남는 자금은 1조~2조원 정도로 추산되니 총 5조원이 된다. 나머지는 다른 예산을 절감하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백번 양보해도 확보(?)된 재원은 3조7000억원이라는 것인데 나머지 6조3000억원은 여기저기서 변통하면 된다는 이야기이다. 억(億)도 ‘억!’ 소리 나는 판에 조(兆) 단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통 큰 정책의장’이다.
지난 총선에서 나와 동네 TV로 토론을 했던 야당후보는 “지하철역을 여기도 저기도 다 만들겠다”고 했다. 내가 “역 하나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느냐. 그 돈은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었을 때 그 야당후보는 “역 만드는 데 얼마가 들지 모르지만 여기저기서 예산 끌어오면 된다”고 했다. 지금 이주영 정책위의장이 꼭 그 짝이다.
이념의 고귀함을 모르는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앞으로도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 ‘존재할 필요가 있는 정당인가’를 심각하게 묻게 된다.
내년 총선 전망은 어둡다. 지금 한나라당 의원들은 저마다 살겠다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구호 아래 ‘구(區)의원’ 역할, ‘도(道)의원’ 역할에 매진하고 있다.
“관료들이 영혼이 없다”고 누가 이야기했는가. 지금 영혼이 없는 자는 바로 한나라당의 의원들이다. 자유와 책임, 시장경제라는 한나라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버리고 ‘짝퉁 포퓰리즘’을 향해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것이 오늘의 한나라당의 모습이다.
지난 노무현 정권하에서도 대여(對與)투쟁이 아니라 내전(內戰)에만 몰두했던 이들이 다시 쇄신과 개혁이라는 이름을 걸고 내전에 돌입했다. 《로마인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가 부강해지니 내부의 갈등과 싸움이 시작됐다”고 말한 것처럼, 한나라당은 ‘내일의 권력은 나의 것’이라는 생각 아래 막장드라마를 수도 없이 연출했다.
행복도시 수정안 폐기나 동남권 신공항 문제까지 한나라당 의원들의 결정은 ‘국익’이 아니라 ‘다시 한번 배지를!’이다. 당을 위해 몸을 던지고 치열한 가치와 노선투쟁을 하는 정당 본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것이 오늘의 한나라당이다.
4·27 재·보궐선거를 전후해 “분당에서 지면 분당(分黨)된다”는 이야기가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있었다. 한나라당이 4·27 재·보궐선거에서 패한 것은 한나라당이 정두언(鄭斗彦) 의원이 이야기한 대로 ‘수구꼴통이어서’가 아니다. ‘자유와 책임, 그리고 시장경제’라는 영혼을 지니지 못한 한나라당의 의원들 때문이다. 영혼의 중요성, 이념의 고귀함, 이데올로기의 힘을 모르고 그저 ‘표의 향방’만을 초점 없는 눈동자로 쫓은 한나라당 의원들 때문이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나마 그동안 한나라당이란 둥지 아래 ‘알리바이 증명’을 의원들이 하고 다닌 것은 한나라당에 뜯어먹을 것이 있다고 계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한나라당의 지지율도 민주당에 역전(逆轉)당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렇다면 타이타닉호에서 탈출이 줄을 이을 수도 있다.
“손학규는 한나라당에 있었으니 노무현 같지는 않겠구나”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1당이 되지 못한다면 ‘정권 재창출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총선과 대선 사이는 불과 7~8개월 남짓이다. 유권자의 기본 정서인 이른바 ‘균형과 견제의 추’를 들이대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
많은 국민은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민주당에 갖다 바치면 보수정당의 집권은 영원히 물 건너갈 것”이라고 염려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무수한 신호가 잡힌다.
손학규와 유시민은 치고받으며 서로의 판을 키우고 있다. 문재인(文在寅)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마음을 고쳐먹고, 조국(曺國) 서울대 교수는 학교 강의보다 트위터에서 온갖 연예계 가십까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세일즈하고 있다.
지난 10년 좌파정권 아래서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한나라당을 지지했으나 이제는 정(情)을 뗀 나의 지인(知人)은 이야기한다.
“손학규 후보가 어느 정도 지지율이 오르면 폭풍 성장을 할 수 있죠. 그리고 그때는 한나라당 전력(前歷)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 저 사람, 한나라당에 있었으니 노무현 같지는 않겠구나’라고 생각하겠죠. 무능하고 배은망덕한 한나라당보다는 낫겠죠, 그 선택이?”
무서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