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 신뢰도, 33개 직업群 중 꼴찌
⊙ 언론의 무차별적 비판이 정치 혐오 증폭시켜
⊙ 정치인에 대한 ‘인격살인’이 부패방지에 무슨 도움이 되나?
金孝在
⊙ 1952년생.
⊙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고려대 언론대학원 석사.
⊙ 조선일보 논설위원ㆍ한나라당 대표비서실장 역임. 18대 국회의원.
⊙ 언론의 무차별적 비판이 정치 혐오 증폭시켜
⊙ 정치인에 대한 ‘인격살인’이 부패방지에 무슨 도움이 되나?
金孝在
⊙ 1952년생.
⊙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고려대 언론대학원 석사.
⊙ 조선일보 논설위원ㆍ한나라당 대표비서실장 역임. 18대 국회의원.
- 현실과 동떨어진 묘사로 정치인을 희화화(戱畵化)하고 있는 TV 드라마 <대물>의 한 장면.
여성 대통령 얘기를 주제로 하는 <대물(大物)>이란 TV드라마가 인기라고 한다. 그 첫 회를 봤다. 직업이 정치인인지라 여성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다기에 도대체 연속극에 나오는 정치인은 어떻게 그려지는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지 않은 것이 훨씬 나을 뻔했다.
그 드라마 첫 회엔 세 가지 부류의 국회의원이 등장했다.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한결같이 ‘인간 말종’이자 쓰레기 철면피이고 더럽기가 구더기만도 못하다는 점이다.
첫 번째 국회의원은 이렇게 묘사된다. 대학생 또래인 국회의원 아들과 곰탕집 아들이 싸움을 해서 국회의원 아들이 얻어터졌다. 둘 모두 경찰서에 끌려갔다. 곰탕집 아들은 ‘때렸으니’ 가해자, 국회의원 아들은 ‘얻어터졌으니’ 피해자로 설정됐다. 이때 국회의원인 아버지가 경찰서장과 함께 경찰서에 나타나서는 누가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가해자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래서 졸업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난리를 친다.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곰탕집 사장님, 국회의원에게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그러자 국회의원이 “그렇다면 내 구두를 혓바닥으로 핥으라”고 한다. 구더기만도 못한 인간이다.
이런 국회의원이 있을까?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 아닌 다른 직업군 어느 직업의 사람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기는 한 것일까?
자기 아버지가 국회의원에게 이렇게 인격 살인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그 음식점 주인 아들은 다음 날 ‘복수를 하려면, 국회의원을 밟아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버지에게 묻고 아버지 대신 종업원이 ‘검사가 되어 혼내주라’고 한다. 이 아들은 이날부터 머리 싸매고 고시 공부를 해서 검사가 된다.
그 아들의 첫 번째 수사 대상이 호스트 바에 출입하는 국회의원의 마누라이다. 검사는 호스트 바의 남성 호스트로 위장하는 함정 수사 끝에 남성 호스트를 돈 주고 사려던 국회의원 부인을 검찰청으로 끌고 온다.
비현실적인 설정 난무
이 사실을 알게 된 국회의원, 자신이 소속된 정당 대표에게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빈다. 그러자 당 대표라는 사람이 보인 첫 반응이 이렇다.
“대변인, 언론을 막아. 막지 못하면 당신 사표 낼 줄 알아.” 언성은 하늘을 찌를 듯 높다. 마누라 간수하지 못한 국회의원은 당 대표에게 무릎을 꿇고 빈다. 용서해 달라고. 이게 2010년 대한민국 방송사 PD가 보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상이다. 자기 지역구민에게 아들의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구두를 혓바닥으로 핥으라고 하는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 부인은 춤바람에 호스트 바에 출입하고, 그런 부인의 잘못을 알고는 당 대표 앞에 서슴없이 무릎을 꿇고 용서해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비굴하기 짝이 없는 인간. 당 소속 의원의 잘못을 알게 되자 다른 생각 없이 언론부터 막으라고 호통치는 당 대표.
〈대물〉이란 드라마는 그 이후에도 국회의원은 ‘악(惡)’, 검사는 이를 물리치는 선(善)이란 이분법으로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자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대물〉을 방영하는 같은 SBS에서 주말에 방영되고 있는 〈웃어요 엄마〉란 드라마에도 국회의원이 등장한다고 해서 인터넷을 통해 찾아봤다.
이 드라마는 정치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나라 ‘엄마’의 자기희생에 관한 드라마라고 한다.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기획의도를 이렇게 적어놓았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다양한 모습을 사실성 있게, 누구나 공감되게 그려 보이는 것이 기획의도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여기에도 국회의원이 등장한다. 상황은 이렇다. 김장철이다. 동네 김장 담그기 봉사활동이 한창이다. 그런데 정작 처음부터 와서 같이 일해야 할 국회의원 ‘사모님’은 오지 않고 국회의원 보좌관 부인이 대신 와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뒤늦게 나타난 국회의원 부인이란 사람.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왔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차림이다. 보좌관 부인에게 짜증이 가득한 표정에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이 젓갈 냄새가 뭐야. 난 비위가 약해서 이런 냄새 못 맡는데 꼭 같이 해야 돼? 기념사진 한 장 찍고 그냥 가면 안 돼?”
보좌관 부인의 난처한 표정. 곁에서 동네 아줌마가 이 말을 들었다. 당연히 목소리가 높아질 밖에.
“당신, 일하러 왔어요. 사진 찍으러 왔어요?”
국회의원 부인은 불쾌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보좌관 부인이 나서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할게요.”
동네 아줌마의 분노가 폭발한다.
“국회의원 부인이면 이래도 되는 거야? 보좌관 부인을 자기 집 가정부 부리듯 해. 왜 (잘못은 국회의원 마누라가 하고) 당신(국회의원 보좌관 부인)이 사과해?”
언성이 높아지더니 급기야 김장 양념이 국회의원 부인 옷에 튀고 화가 난 국회의원 부인은 동네 아줌마를 밀쳐 그 아줌마가 양념을 버무려 둔 커다란 고무 대야에 엉덩이를 처박고 주저앉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것이 방송사 PD가 보는 2010년 대한민국 국회의원상이다. (참고로 이 연속극에는 딸의 드라마 출연을 청탁하기 위해 PD 집에 가서 아이를 돌봐주고 청소까지 해주는 ‘엄마’도 등장하는 데 그 PD는 그런 엄마를 집에서 내쫓는다. 말하자면 국회의원 부인은 보좌관 부인을 인격적으로 마구 부리는 더러운 인간이고 PD는 청탁을 과감하게 거절하는 직업인이다.)
그 동네 아줌마 말마따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국회의원 부인이 보좌관 부인을 자기 집 가정부 부리듯 하고 동네 아줌마와 싸운다고? 다음번에 낙선하려고 작심하지 않고서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비난과 조롱은 일상다반사
방송사 PD들만 정치인을 이렇게 인간 쓰레기로 보나? 아닌 듯하다.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엔 거의 대부분 자동차에 타고 있다. 여의도에서 지역구인 성북구 쪽으로 움직이거나 저녁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이다. 이 시간엔 라디오 방송들이 그날의 뉴스를 정리해 주거나 시사 이슈를 주제로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주로 KBS를 듣는 편이다. 10월 초 어느 날 이런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김 기자와 이 기자〉. KBS의 김원장 기자와 초청자인 인터넷 언론사 이데일리의 이진우 기자가 진행하는 대담 프로그램이었다.
마침 국회에선 2010년 국정감사가 진행 중이었고, 김황식 총리 지명자에 대한 청문회도 열리고 있었다. 이날의 초청자인 이 기자란 사람은 시민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할 경우 쌓이는 마일리지가 다른 곳에 사용하기 어려워 그대로 사장(死藏)되는 경우가 많다는 뉴스를 갖고 나와 김 기자와 함께 그 문제점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이동통신 회사들이 국정감사를 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제공한 자료라고 했다. 두 사람은 그러면서 이렇게 말을 풀어나갔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의원들한테 이통사(移通社)들이 제출한 자료입니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사실은… 저 친구들 모여서 뭐 하나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고 답답할 때도 있지만 국정감사 전후가 되면 그동안 기자들이 못 찾아냈던 자료들을 국회의원이 내라 이렇게 해서 알려지는 경우가 꽤 많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럴 때 참 국회의원이 유용하다고 표현하면 국회의원들이 좀 기분 나쁘실 거고…”(이 기자)
“밥값을 한다…”(김 기자)
“네 맞습니다.”(이 기자)
얘기의 바닥에 ‘비하’와 ‘조롱’이 흐른다. 국회의원에게 얻었을 것이 틀림없는 자료를 갖고 나와 방송을 하면서 그 자료를 제공한 국회의원을 마음껏 비웃고 조롱한다. 그래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필자는 신문기자 25년을 한 뒤 3년 전 국회의원이 되었다. 주로 사회부 기자를 한 덕분에 국회의원을 비롯한 대한민국 공직자들의 이런저런 비리를 취재하고 이들이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지면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아왔지만 단 한번도 그들을 인간 말종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치판에 들어와 보니 사람들은 국회의원을 인간 말종으로 보고 있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국회의원을 일은 하지 않으면서 온갖 비리나 저지르고 동네에선 패악질이나 하는 사람으로 알게 되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왜 그런가. 이유는 있다.
신뢰도 꼴찌인 정치인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 스스로의 책임일 것이다. 온갖 비리의 온상 노릇을 해왔다.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재벌들로부터 수천억 원을 걷어 ‘상당액’을 개인적으로 감춰두었다가 들통났다. 그러고는 “내 전 재산은 29만원뿐”이라고 버틴다. 굴곡의 현대사에서 정변이 있을 때마다 ‘구(舊)시대 정치인들’은 청산 대상이었다. 5ㆍ16 군사 쿠데타 이후, 12ㆍ12 군사 쿠데타 이후, 어김없이 구정치인들의 권력을 이용한 치부 행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일부 과장은 없지 않겠지만 눈에 보이는 ‘재산’까지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 정치인이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정치인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수치로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주간지 <시사저널>이 우리 국민들의 각종 직업군에 대한 신뢰도조사를 했다.
전국 16개 광역시도 인구 비례에 따라 추출한 표본 1000명에게 33개 직업군을 예시하고 “개별 직업군을 얼마나 신뢰하십니까”라고 물은 결과 꼴찌가 정치인이었다.
가장 신뢰하는 직업군은 소방관으로 조사대상 10명 가운데 9명 이상(92.9%) 소방관을 매우 신뢰하거나 대체로 신뢰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어서 간호사(89.9%), 환경미화원(89.2%), 직업운동선수(82.1%)였다.
정치인은 응답자 10명 가운데 9명가량(88.3%)이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33개 직업군 가운데 부동산중개업자에 이어 최하위이다. 최하위도 그저 순위만 최하위가 아니다. 신뢰도에서 다른 직업군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이다. 31위인 보험업자의 신뢰도(신뢰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가 36.6%, 꼴찌에서 둘째인 부동산중개업자(28.2%)의 절반도 안되는 11.7%인 것이다. 한마디로 정치인 스스로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당신들은 믿을 수 없다”고 응답했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비교적 신뢰를 받는 10위 이내 상위권에는 소방관, 간호사, 환경미화원, 직업운동선수, 의사에 이어 한의사, 교사, 은행원, 이-미용사, 프로그래머가 자리를 차지했다. 11위부터 20위 사이의 중위권에는 신부, 문화예술인, 대학교수, 판사, 전화 안내원, 텔레마케터, 운전원, 방송인, 승려, 회계사, 경찰관 순이었다. 하위인 21위부터 30위 사이엔 검사, 세무사, 공무원, 시민단체 활동가, 목사, 변호사, 기업인, 기자, 연예인, 증권업 종사자가 자리했다.
한국에서만 정치인이 직업 신뢰도 꼴찌인 것은 아니다. 전(全)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이 전 세계 21개국 2만2000명을 대상으로 비슷한 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 가운데 정치인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16%로 가장 낮았다고 한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호주판에서 정치인은 40개 직업군에서 자동차 세일즈맨, 텔레마케터 종사자와 함께 동률 38위를 차지해 신뢰도가 성매매자보다 낮았다고 한다.
“파리와 정치인의 공통점은?”
정치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 같은 불신은 정치인들이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언론의 무차별적인 정치 비판도 정치 혐오증 증폭에 한 몫을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부패 사건이 언론에 비판의 소재를 제공하고 언론이 이를 증폭시키면 국민들은 정치인들을 혐오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이 가장 손쉽고 뒤끝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은 언론계의 오랜 정설(定說)이기도 하다. 가령 신뢰도 하위권의 어떤 직업군 어떤 사람의 ‘거짓말로 인한 시민의 피해’ 같은 것들을 비판하게 되면 그 직업군 협회 같은 단체로부터 한두 사람의 잘못을 일반화해 모욕한 것은 잘못이란 항의에 시달리게 되고 심지어 불매운동 같은 협박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경우는 다르다. 어지간하면 항의하지 않는다. 항의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언론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한 상태로 정치를 계속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는 것이 언론과 정치인의 관계에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미덕이다. 정치인에 대해서는 아무리 도에 넘친 비판을 해도 누구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술자리 농담까지 나왔겠는가. “파리와 정치인의 공통점은?” 정답은 “신문에 맞아 죽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이다.
지역구민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지역구민 가운데 누군가 정치인을 향해 참기 어려운 모욕을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정치인이 이 사람에게 큰소리를 내거나 항의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누가 잘못하고 잘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역구민과 ‘다투는 정치인’이란 오명을 뒤집어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필자가 아는 한 그런 국회의원은 없다.
그러니 국회의원 부인이 행사장에 늦게 나타나고, 늦게 와서는 사진만 찍고 휑하니 가버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참석해야 할 행사가 많아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 경우에도 충분히 설명되는 사유를 들어 양해를 구하고 떠나는 것이 요즈음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그 가족의 행동원칙이다.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는 국회의원은 없을 것이다. 다음번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부패와는 다른 문제이다. 인격에 관한 문제이고 국회의원과 그 가족의 품위에 관한 문제이다.
정치인에 대한 ‘인격 살인’
부패와 관련해서도 요즈음 국회의원 가운데 과거와 같이 이권에 개입하고 부정한 돈을 마구 챙기는 국회의원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2010년 대한민국 국회에는 등록기자 기준으로 499명의 기자가 출입하고 있다. 지역구에 있는 기자와는 별도이다. 등록기자 외의 기자까지 합하면 훨씬 많은 기자가 국회를 감시하고 있다.
국회의원 숫자가 299명이니 국회의원 한 사람당 1명 이상의 ‘감시자’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의정활동을 감시하는 약 2명의 기자, 그리고 지역구 활동을 감시하는 별도의 언론. 그런 상황에서 지역구민에게 자기 구두를 혀로 핥으라고 하고, 부인은 봉사현장에 나타나 지역구민과 다투고 가면서 보좌관 부인을 아랫사람 다루듯 한다? 그렇게 하고도 다음번 당선을 바란다면 그 사람이 바로 정신나간 인간 말종 아니겠는가.
드라마를 만드는 PD들이나 작가들의 입장에서 ‘아무리 비판해도 항의하지 않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이니 생각나는 대로 ‘밟아버리기 쉽고’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직업군이니 마음껏 비판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작가나 PD들이 국회의원을 마음껏 비웃고 비판하는 쾌감을 위해 이런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청자들의 정치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대신 표현해 그들의 만족을 대리하기 위해 그러는 것인가? 그렇다면 부패를 막기 위한 다른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방식의 인격 살인으로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정치인 당사자들이 “나는 이런 생각으로 행동했는데 국민들의 눈에는 저렇게 비치고 있구나” 하는 정도의 공감대는 있어야 당사자들의 의식이나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현실 정치인들이 전혀 공감할 수도 없고, 그런 일이 있을 법하다는 그 어떤 유사점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을 설정해 놓고 상갓집 개 옆구리 걷어차듯 지나가다 심심하면 걷어차서야 당사자들로부터는 반감을 살 뿐이고 시청자들에게는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정치 혐오증을 증폭시킬 뿐이다.
정치인은 ‘상갓집 개’가 아니다
사실을 근거로 하는 기사와 달리 드라마는 허구를 토대로 하는 만큼 어느 정도의 과장은 허용되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최근 TV 드라마에 비친 정치인에 관한 묘사는 그 정도를 넘어섰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TV 드라마와 언론이 정치인에 대한 비판의 정도를 넘어 잘못된 사실을 토대로 정치 혐오증을 키운다면 그것은 당사자에 대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길게 보아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치인은 아무나 지나가다 발로 걷어차도 괜찮은 ‘상갓집 개’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각 지역구에서 최소한 수만 표 이상을 획득해 당선된 선출직 공직자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인간 쓰레기이고 하는 행동이 인간 말종이라면 그들을 선출한 우리 국민들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그 드라마 첫 회엔 세 가지 부류의 국회의원이 등장했다.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한결같이 ‘인간 말종’이자 쓰레기 철면피이고 더럽기가 구더기만도 못하다는 점이다.
첫 번째 국회의원은 이렇게 묘사된다. 대학생 또래인 국회의원 아들과 곰탕집 아들이 싸움을 해서 국회의원 아들이 얻어터졌다. 둘 모두 경찰서에 끌려갔다. 곰탕집 아들은 ‘때렸으니’ 가해자, 국회의원 아들은 ‘얻어터졌으니’ 피해자로 설정됐다. 이때 국회의원인 아버지가 경찰서장과 함께 경찰서에 나타나서는 누가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가해자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래서 졸업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난리를 친다.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곰탕집 사장님, 국회의원에게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그러자 국회의원이 “그렇다면 내 구두를 혓바닥으로 핥으라”고 한다. 구더기만도 못한 인간이다.
이런 국회의원이 있을까?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 아닌 다른 직업군 어느 직업의 사람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기는 한 것일까?
자기 아버지가 국회의원에게 이렇게 인격 살인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그 음식점 주인 아들은 다음 날 ‘복수를 하려면, 국회의원을 밟아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버지에게 묻고 아버지 대신 종업원이 ‘검사가 되어 혼내주라’고 한다. 이 아들은 이날부터 머리 싸매고 고시 공부를 해서 검사가 된다.
그 아들의 첫 번째 수사 대상이 호스트 바에 출입하는 국회의원의 마누라이다. 검사는 호스트 바의 남성 호스트로 위장하는 함정 수사 끝에 남성 호스트를 돈 주고 사려던 국회의원 부인을 검찰청으로 끌고 온다.
비현실적인 설정 난무
이 사실을 알게 된 국회의원, 자신이 소속된 정당 대표에게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빈다. 그러자 당 대표라는 사람이 보인 첫 반응이 이렇다.
“대변인, 언론을 막아. 막지 못하면 당신 사표 낼 줄 알아.” 언성은 하늘을 찌를 듯 높다. 마누라 간수하지 못한 국회의원은 당 대표에게 무릎을 꿇고 빈다. 용서해 달라고. 이게 2010년 대한민국 방송사 PD가 보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상이다. 자기 지역구민에게 아들의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구두를 혓바닥으로 핥으라고 하는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 부인은 춤바람에 호스트 바에 출입하고, 그런 부인의 잘못을 알고는 당 대표 앞에 서슴없이 무릎을 꿇고 용서해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비굴하기 짝이 없는 인간. 당 소속 의원의 잘못을 알게 되자 다른 생각 없이 언론부터 막으라고 호통치는 당 대표.
〈대물〉이란 드라마는 그 이후에도 국회의원은 ‘악(惡)’, 검사는 이를 물리치는 선(善)이란 이분법으로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자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대물〉을 방영하는 같은 SBS에서 주말에 방영되고 있는 〈웃어요 엄마〉란 드라마에도 국회의원이 등장한다고 해서 인터넷을 통해 찾아봤다.
이 드라마는 정치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나라 ‘엄마’의 자기희생에 관한 드라마라고 한다.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기획의도를 이렇게 적어놓았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다양한 모습을 사실성 있게, 누구나 공감되게 그려 보이는 것이 기획의도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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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원들이 유권자 위에 군림하는 TV드라마 속의 상황은 국회의원들이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사진은 지난 2008년 총선 당시 선거 유세 중인 필자. |
“이 젓갈 냄새가 뭐야. 난 비위가 약해서 이런 냄새 못 맡는데 꼭 같이 해야 돼? 기념사진 한 장 찍고 그냥 가면 안 돼?”
보좌관 부인의 난처한 표정. 곁에서 동네 아줌마가 이 말을 들었다. 당연히 목소리가 높아질 밖에.
“당신, 일하러 왔어요. 사진 찍으러 왔어요?”
국회의원 부인은 불쾌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보좌관 부인이 나서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할게요.”
동네 아줌마의 분노가 폭발한다.
“국회의원 부인이면 이래도 되는 거야? 보좌관 부인을 자기 집 가정부 부리듯 해. 왜 (잘못은 국회의원 마누라가 하고) 당신(국회의원 보좌관 부인)이 사과해?”
언성이 높아지더니 급기야 김장 양념이 국회의원 부인 옷에 튀고 화가 난 국회의원 부인은 동네 아줌마를 밀쳐 그 아줌마가 양념을 버무려 둔 커다란 고무 대야에 엉덩이를 처박고 주저앉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것이 방송사 PD가 보는 2010년 대한민국 국회의원상이다. (참고로 이 연속극에는 딸의 드라마 출연을 청탁하기 위해 PD 집에 가서 아이를 돌봐주고 청소까지 해주는 ‘엄마’도 등장하는 데 그 PD는 그런 엄마를 집에서 내쫓는다. 말하자면 국회의원 부인은 보좌관 부인을 인격적으로 마구 부리는 더러운 인간이고 PD는 청탁을 과감하게 거절하는 직업인이다.)
그 동네 아줌마 말마따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국회의원 부인이 보좌관 부인을 자기 집 가정부 부리듯 하고 동네 아줌마와 싸운다고? 다음번에 낙선하려고 작심하지 않고서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비난과 조롱은 일상다반사
방송사 PD들만 정치인을 이렇게 인간 쓰레기로 보나? 아닌 듯하다.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엔 거의 대부분 자동차에 타고 있다. 여의도에서 지역구인 성북구 쪽으로 움직이거나 저녁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이다. 이 시간엔 라디오 방송들이 그날의 뉴스를 정리해 주거나 시사 이슈를 주제로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주로 KBS를 듣는 편이다. 10월 초 어느 날 이런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김 기자와 이 기자〉. KBS의 김원장 기자와 초청자인 인터넷 언론사 이데일리의 이진우 기자가 진행하는 대담 프로그램이었다.
마침 국회에선 2010년 국정감사가 진행 중이었고, 김황식 총리 지명자에 대한 청문회도 열리고 있었다. 이날의 초청자인 이 기자란 사람은 시민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할 경우 쌓이는 마일리지가 다른 곳에 사용하기 어려워 그대로 사장(死藏)되는 경우가 많다는 뉴스를 갖고 나와 김 기자와 함께 그 문제점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이동통신 회사들이 국정감사를 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제공한 자료라고 했다. 두 사람은 그러면서 이렇게 말을 풀어나갔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의원들한테 이통사(移通社)들이 제출한 자료입니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사실은… 저 친구들 모여서 뭐 하나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고 답답할 때도 있지만 국정감사 전후가 되면 그동안 기자들이 못 찾아냈던 자료들을 국회의원이 내라 이렇게 해서 알려지는 경우가 꽤 많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럴 때 참 국회의원이 유용하다고 표현하면 국회의원들이 좀 기분 나쁘실 거고…”(이 기자)
“밥값을 한다…”(김 기자)
“네 맞습니다.”(이 기자)
얘기의 바닥에 ‘비하’와 ‘조롱’이 흐른다. 국회의원에게 얻었을 것이 틀림없는 자료를 갖고 나와 방송을 하면서 그 자료를 제공한 국회의원을 마음껏 비웃고 조롱한다. 그래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필자는 신문기자 25년을 한 뒤 3년 전 국회의원이 되었다. 주로 사회부 기자를 한 덕분에 국회의원을 비롯한 대한민국 공직자들의 이런저런 비리를 취재하고 이들이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지면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아왔지만 단 한번도 그들을 인간 말종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치판에 들어와 보니 사람들은 국회의원을 인간 말종으로 보고 있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국회의원을 일은 하지 않으면서 온갖 비리나 저지르고 동네에선 패악질이나 하는 사람으로 알게 되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왜 그런가. 이유는 있다.
신뢰도 꼴찌인 정치인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 스스로의 책임일 것이다. 온갖 비리의 온상 노릇을 해왔다.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재벌들로부터 수천억 원을 걷어 ‘상당액’을 개인적으로 감춰두었다가 들통났다. 그러고는 “내 전 재산은 29만원뿐”이라고 버틴다. 굴곡의 현대사에서 정변이 있을 때마다 ‘구(舊)시대 정치인들’은 청산 대상이었다. 5ㆍ16 군사 쿠데타 이후, 12ㆍ12 군사 쿠데타 이후, 어김없이 구정치인들의 권력을 이용한 치부 행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일부 과장은 없지 않겠지만 눈에 보이는 ‘재산’까지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 정치인이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정치인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수치로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주간지 <시사저널>이 우리 국민들의 각종 직업군에 대한 신뢰도조사를 했다.
전국 16개 광역시도 인구 비례에 따라 추출한 표본 1000명에게 33개 직업군을 예시하고 “개별 직업군을 얼마나 신뢰하십니까”라고 물은 결과 꼴찌가 정치인이었다.
가장 신뢰하는 직업군은 소방관으로 조사대상 10명 가운데 9명 이상(92.9%) 소방관을 매우 신뢰하거나 대체로 신뢰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어서 간호사(89.9%), 환경미화원(89.2%), 직업운동선수(82.1%)였다.
정치인은 응답자 10명 가운데 9명가량(88.3%)이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33개 직업군 가운데 부동산중개업자에 이어 최하위이다. 최하위도 그저 순위만 최하위가 아니다. 신뢰도에서 다른 직업군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이다. 31위인 보험업자의 신뢰도(신뢰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가 36.6%, 꼴찌에서 둘째인 부동산중개업자(28.2%)의 절반도 안되는 11.7%인 것이다. 한마디로 정치인 스스로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당신들은 믿을 수 없다”고 응답했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비교적 신뢰를 받는 10위 이내 상위권에는 소방관, 간호사, 환경미화원, 직업운동선수, 의사에 이어 한의사, 교사, 은행원, 이-미용사, 프로그래머가 자리를 차지했다. 11위부터 20위 사이의 중위권에는 신부, 문화예술인, 대학교수, 판사, 전화 안내원, 텔레마케터, 운전원, 방송인, 승려, 회계사, 경찰관 순이었다. 하위인 21위부터 30위 사이엔 검사, 세무사, 공무원, 시민단체 활동가, 목사, 변호사, 기업인, 기자, 연예인, 증권업 종사자가 자리했다.
한국에서만 정치인이 직업 신뢰도 꼴찌인 것은 아니다. 전(全)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이 전 세계 21개국 2만2000명을 대상으로 비슷한 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 가운데 정치인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16%로 가장 낮았다고 한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호주판에서 정치인은 40개 직업군에서 자동차 세일즈맨, 텔레마케터 종사자와 함께 동률 38위를 차지해 신뢰도가 성매매자보다 낮았다고 한다.
“파리와 정치인의 공통점은?”
정치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 같은 불신은 정치인들이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언론의 무차별적인 정치 비판도 정치 혐오증 증폭에 한 몫을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부패 사건이 언론에 비판의 소재를 제공하고 언론이 이를 증폭시키면 국민들은 정치인들을 혐오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이 가장 손쉽고 뒤끝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은 언론계의 오랜 정설(定說)이기도 하다. 가령 신뢰도 하위권의 어떤 직업군 어떤 사람의 ‘거짓말로 인한 시민의 피해’ 같은 것들을 비판하게 되면 그 직업군 협회 같은 단체로부터 한두 사람의 잘못을 일반화해 모욕한 것은 잘못이란 항의에 시달리게 되고 심지어 불매운동 같은 협박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경우는 다르다. 어지간하면 항의하지 않는다. 항의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언론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한 상태로 정치를 계속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는 것이 언론과 정치인의 관계에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미덕이다. 정치인에 대해서는 아무리 도에 넘친 비판을 해도 누구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술자리 농담까지 나왔겠는가. “파리와 정치인의 공통점은?” 정답은 “신문에 맞아 죽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이다.
지역구민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지역구민 가운데 누군가 정치인을 향해 참기 어려운 모욕을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정치인이 이 사람에게 큰소리를 내거나 항의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누가 잘못하고 잘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역구민과 ‘다투는 정치인’이란 오명을 뒤집어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필자가 아는 한 그런 국회의원은 없다.
그러니 국회의원 부인이 행사장에 늦게 나타나고, 늦게 와서는 사진만 찍고 휑하니 가버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참석해야 할 행사가 많아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 경우에도 충분히 설명되는 사유를 들어 양해를 구하고 떠나는 것이 요즈음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그 가족의 행동원칙이다.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는 국회의원은 없을 것이다. 다음번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부패와는 다른 문제이다. 인격에 관한 문제이고 국회의원과 그 가족의 품위에 관한 문제이다.
정치인에 대한 ‘인격 살인’
부패와 관련해서도 요즈음 국회의원 가운데 과거와 같이 이권에 개입하고 부정한 돈을 마구 챙기는 국회의원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2010년 대한민국 국회에는 등록기자 기준으로 499명의 기자가 출입하고 있다. 지역구에 있는 기자와는 별도이다. 등록기자 외의 기자까지 합하면 훨씬 많은 기자가 국회를 감시하고 있다.
국회의원 숫자가 299명이니 국회의원 한 사람당 1명 이상의 ‘감시자’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의정활동을 감시하는 약 2명의 기자, 그리고 지역구 활동을 감시하는 별도의 언론. 그런 상황에서 지역구민에게 자기 구두를 혀로 핥으라고 하고, 부인은 봉사현장에 나타나 지역구민과 다투고 가면서 보좌관 부인을 아랫사람 다루듯 한다? 그렇게 하고도 다음번 당선을 바란다면 그 사람이 바로 정신나간 인간 말종 아니겠는가.
드라마를 만드는 PD들이나 작가들의 입장에서 ‘아무리 비판해도 항의하지 않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이니 생각나는 대로 ‘밟아버리기 쉽고’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직업군이니 마음껏 비판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작가나 PD들이 국회의원을 마음껏 비웃고 비판하는 쾌감을 위해 이런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청자들의 정치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대신 표현해 그들의 만족을 대리하기 위해 그러는 것인가? 그렇다면 부패를 막기 위한 다른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방식의 인격 살인으로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정치인 당사자들이 “나는 이런 생각으로 행동했는데 국민들의 눈에는 저렇게 비치고 있구나” 하는 정도의 공감대는 있어야 당사자들의 의식이나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현실 정치인들이 전혀 공감할 수도 없고, 그런 일이 있을 법하다는 그 어떤 유사점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을 설정해 놓고 상갓집 개 옆구리 걷어차듯 지나가다 심심하면 걷어차서야 당사자들로부터는 반감을 살 뿐이고 시청자들에게는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정치 혐오증을 증폭시킬 뿐이다.
정치인은 ‘상갓집 개’가 아니다
사실을 근거로 하는 기사와 달리 드라마는 허구를 토대로 하는 만큼 어느 정도의 과장은 허용되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최근 TV 드라마에 비친 정치인에 관한 묘사는 그 정도를 넘어섰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TV 드라마와 언론이 정치인에 대한 비판의 정도를 넘어 잘못된 사실을 토대로 정치 혐오증을 키운다면 그것은 당사자에 대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길게 보아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치인은 아무나 지나가다 발로 걷어차도 괜찮은 ‘상갓집 개’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각 지역구에서 최소한 수만 표 이상을 획득해 당선된 선출직 공직자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인간 쓰레기이고 하는 행동이 인간 말종이라면 그들을 선출한 우리 국민들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이인범
(201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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