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선이 확정된 후 지지자들과 함께 환호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6·2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자의 환호와 패자의 탄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승자인 오세훈 후보가 ‘소통하고 겸손하겠다’며 자세를 낮춘 반면, 패자인 민주당 한명숙 후보 측은 사실상 승리라는 반응을 내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 이상까지 앞선 것으로 알려졌던 오 후보는 막상 투표함을 열어 보니 0.6%포인트(2만7000여표) 차로 근소하게 한 후보를 이긴 것으로 나타났다. 오 후보가 가슴을 쓸어내린 것은 당연하다. 지난 2000년 ‘한나라당 공천=당선’인 서울 강남지역에서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면서 정치판에 뛰어든 오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인기가 바닥을 치고 있을 때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일궈냈다. 선거에 나올 때마다 낙승을 거뒀던 오 후보지만 손쉬운 선거만 했다는 약점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선거 결과는 오 후보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법하다.
그런데 선거 다음날인 6월 3일부터 오 시장은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이 오 시장에게 여러 가지 꼬리표를 붙였다. ‘강남시장’, ‘강남특별시장’ 등이란 말을 붙인 것이다. 어떤 이는 ‘강남 3구 통합구청장’이라고 비꼬아댔다. ‘강남 때문에 서울시장이 됐다’는 것이 골자다.
‘강남시장’ 만들기 위해 개표 조작했다?
이즈음에 일부에서 밑도 끝도 없이 ‘강남괴담’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오세훈 후보와 한나라당을 음해하려는 세력들이 개표 순서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즉 “투표자 수가 다른 구(區)보다 많고 오세훈 후보의 지지율이 높은 강남지역(강남·서초·송파) 표를 늦게 개봉해서 마치 오 후보가 힘겹게 승리하는 것처럼 만든다. 이러면 오 후보가 강남지역 몰표를 받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시장에 당선되더라도 강남시장이라는 공격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실제 개표가 이뤄진 6월 2일 밤부터 6월 3일 새벽 사이 일부 방송과 인터넷은 후끈 달아 올랐다. 유권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한명숙 후보의 지지가 많았던 성동, 도봉 등 강북지역의 개표가 빠르게 진행됐지만 오세훈 후보의 지지가 많고 유권자 수가 많았던 서초, 강남, 송파, 강동 등 강남지역의 개표 속도는 좀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이런 탓에 한 후보는 6월 3일 새벽 3시 넘어서까지 근소하게나마 계속 앞서 나갔다. 괴담 내용처럼 강북 지역 개표가 빠르게 진행되고, 강남 지역 개표는 늦어졌다. 이것이 누군가의 ‘개입’에 의해 이뤄질 수 있을까.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에서 여당 후보로 당선되는 서울시장을 흠집 내기 위해 누군가 조작하는 것을 눈 뜨고 막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까.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얘기일까.
있지도 않은 개표분류기 고장설
괴담의 내용 가운데 하나는 강남의 개표분류기가 고장 나 개표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주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강남 개표소의 분류기가 표가 날 정도로 개표 속도를 늦출 만큼의 고장을 일으키지는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개표 지연은 생중계되는 TV에서도 확인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런 질문을 받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다른 곳에서 흔히 있는 정도의 투표용지 걸림 현상이 있었지만 이것 때문에 개표가 크게 늦어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현장에는 여당뿐 아니라 야당 검표위원도 눈에 불을 켜고 개표 과정을 지켜봤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였을까. 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1인8표제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개표는 대부분 체육관 등 구별로 공개된 한 곳에서 진행된다. 대통령 선거처럼 단 한 표만 행사하는 선거는 투표자 수가 개표 수지만 유권자 한 명이 8표를 행사한 이번 선거는 달랐다. 6·2선거에서 서울 투표자는 442만여 명이었지만 곱하기 8을 하면 무려 3536만 표를 세야 한다.
시민의 관심은 대부분 서울시장이나 교육감, 구청장이지만 개표방식이 관심의 순서대로 이뤄지진 않는다. 서울시장 선거뿐만 아니라 관심이 적은 교육의원, 지방 기초의회 비례대표 선거 등의 개표도 동시에 진행된다.
이렇다 보니 서울시장의 개표 결과가 다른 결과보다 빨리 나올 수가 없다. 강남구(23만여명)나 송파구(30만명)의 경우 투표자 수가 적은 금천구(10만여명) 같은 곳보다 100만 표 이상 더 개표해야 했고, 한꺼번에 섞인 이 표들을 분류하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개표 시간이 훨씬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 때문에 개표가 빨리 이뤄졌던 강북 지역에서 지지를 많이 받은 한명숙 후보가 앞서 나간 것으로 보도됐고, 오 후보의 표는 늦게 집계됐다.
1인8표제 지속되는 한 인구 많으면 개표 늦어져
선관위가 서울시장 선거 개표부터 먼저 할 수는 없을까. 선관위 관계자의 말이다.
“서울시민이 던진 3500만 표 중에 서울시장 선거에 던진 표가 440만 표 조금 넘습니다. 이 440만 표를 먼저 까기(개표) 위해서 그것만 우선 분류해 놓고, 다른 투표용지들을 한구석에 쌓아 놓는다면 보안상 문제가 되고, 다른 투표들은 개표가 한참 늦어지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사실은 선관위도 이런저런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관심도가 높은 개표를 먼저 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효율성과 보안상 문제 때문에 결국은 포기하고 서울시장 선거나 기초의원 선거 개표를 함께 진행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취재를 하면서 앞으로도 이런 식의 투·개표 방식이 지속된다면 강남특별시장, 혹은 반대로 강북특별시장으로 오인받을 후보가 계속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 대부분은 선거 당일 밤과 다음날 새벽까지 방송사들이 내보내는 개표방송과 인터넷으로 결과를 접한다. 개표방송은 개표 순서와 시간에 따라 결과가 집계된다. 몰표 때문에 어느 후보가 크게 앞서 나가기도 하고 반대의 현상도 나타난다. “그 때문에 개표 초반에는 앞서 갔지만, 막판 역전 성공”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시청자들에게는 스릴 만점의 재미까지 선사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릇된 정보를 생산할 수도 있다.
선관위 관계자도 이를 인정했다. “사실 동시 선거라는 취지를 고려하면 1인 8표가 맞지만 표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묻지 마 투표가 계속 나올 수 있어서 교육감·교육의원 선거는 따로 하자고 건의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개표해야 할 투표지가 많으면 개표가 이뤄지는 구청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개표 속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번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방법이 없는데요.”
서울 25개 구 가운데 한 후보는 17개, 오 시장은 8개 구에서 승리를 거뒀다. 한 후보가 승리한 17개 구에서의 득표율은 한 후보는 49%, 오 시장은 45%. 4%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강남지역에서는 오 시장이 약 65%, 한 후보가 약 35%를 득표했다. 4년 전 이 지역에서 강금실 후보와의 대결을 펼친 오 시장이 80% 가까운 몰표를 얻은 것에 비하면 상당한 차이다. 오 시장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억울하게 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 이상까지 앞선 것으로 알려졌던 오 후보는 막상 투표함을 열어 보니 0.6%포인트(2만7000여표) 차로 근소하게 한 후보를 이긴 것으로 나타났다. 오 후보가 가슴을 쓸어내린 것은 당연하다. 지난 2000년 ‘한나라당 공천=당선’인 서울 강남지역에서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면서 정치판에 뛰어든 오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인기가 바닥을 치고 있을 때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일궈냈다. 선거에 나올 때마다 낙승을 거뒀던 오 후보지만 손쉬운 선거만 했다는 약점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선거 결과는 오 후보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법하다.
그런데 선거 다음날인 6월 3일부터 오 시장은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이 오 시장에게 여러 가지 꼬리표를 붙였다. ‘강남시장’, ‘강남특별시장’ 등이란 말을 붙인 것이다. 어떤 이는 ‘강남 3구 통합구청장’이라고 비꼬아댔다. ‘강남 때문에 서울시장이 됐다’는 것이 골자다.
‘강남시장’ 만들기 위해 개표 조작했다?
이즈음에 일부에서 밑도 끝도 없이 ‘강남괴담’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오세훈 후보와 한나라당을 음해하려는 세력들이 개표 순서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즉 “투표자 수가 다른 구(區)보다 많고 오세훈 후보의 지지율이 높은 강남지역(강남·서초·송파) 표를 늦게 개봉해서 마치 오 후보가 힘겹게 승리하는 것처럼 만든다. 이러면 오 후보가 강남지역 몰표를 받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시장에 당선되더라도 강남시장이라는 공격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실제 개표가 이뤄진 6월 2일 밤부터 6월 3일 새벽 사이 일부 방송과 인터넷은 후끈 달아 올랐다. 유권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한명숙 후보의 지지가 많았던 성동, 도봉 등 강북지역의 개표가 빠르게 진행됐지만 오세훈 후보의 지지가 많고 유권자 수가 많았던 서초, 강남, 송파, 강동 등 강남지역의 개표 속도는 좀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이런 탓에 한 후보는 6월 3일 새벽 3시 넘어서까지 근소하게나마 계속 앞서 나갔다. 괴담 내용처럼 강북 지역 개표가 빠르게 진행되고, 강남 지역 개표는 늦어졌다. 이것이 누군가의 ‘개입’에 의해 이뤄질 수 있을까.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에서 여당 후보로 당선되는 서울시장을 흠집 내기 위해 누군가 조작하는 것을 눈 뜨고 막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까.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얘기일까.
있지도 않은 개표분류기 고장설
괴담의 내용 가운데 하나는 강남의 개표분류기가 고장 나 개표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주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강남 개표소의 분류기가 표가 날 정도로 개표 속도를 늦출 만큼의 고장을 일으키지는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개표 지연은 생중계되는 TV에서도 확인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런 질문을 받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다른 곳에서 흔히 있는 정도의 투표용지 걸림 현상이 있었지만 이것 때문에 개표가 크게 늦어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현장에는 여당뿐 아니라 야당 검표위원도 눈에 불을 켜고 개표 과정을 지켜봤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였을까. 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1인8표제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개표는 대부분 체육관 등 구별로 공개된 한 곳에서 진행된다. 대통령 선거처럼 단 한 표만 행사하는 선거는 투표자 수가 개표 수지만 유권자 한 명이 8표를 행사한 이번 선거는 달랐다. 6·2선거에서 서울 투표자는 442만여 명이었지만 곱하기 8을 하면 무려 3536만 표를 세야 한다.
시민의 관심은 대부분 서울시장이나 교육감, 구청장이지만 개표방식이 관심의 순서대로 이뤄지진 않는다. 서울시장 선거뿐만 아니라 관심이 적은 교육의원, 지방 기초의회 비례대표 선거 등의 개표도 동시에 진행된다.
이렇다 보니 서울시장의 개표 결과가 다른 결과보다 빨리 나올 수가 없다. 강남구(23만여명)나 송파구(30만명)의 경우 투표자 수가 적은 금천구(10만여명) 같은 곳보다 100만 표 이상 더 개표해야 했고, 한꺼번에 섞인 이 표들을 분류하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개표 시간이 훨씬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 때문에 개표가 빨리 이뤄졌던 강북 지역에서 지지를 많이 받은 한명숙 후보가 앞서 나간 것으로 보도됐고, 오 후보의 표는 늦게 집계됐다.
1인8표제 지속되는 한 인구 많으면 개표 늦어져
선관위가 서울시장 선거 개표부터 먼저 할 수는 없을까. 선관위 관계자의 말이다.
“서울시민이 던진 3500만 표 중에 서울시장 선거에 던진 표가 440만 표 조금 넘습니다. 이 440만 표를 먼저 까기(개표) 위해서 그것만 우선 분류해 놓고, 다른 투표용지들을 한구석에 쌓아 놓는다면 보안상 문제가 되고, 다른 투표들은 개표가 한참 늦어지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사실은 선관위도 이런저런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관심도가 높은 개표를 먼저 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효율성과 보안상 문제 때문에 결국은 포기하고 서울시장 선거나 기초의원 선거 개표를 함께 진행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취재를 하면서 앞으로도 이런 식의 투·개표 방식이 지속된다면 강남특별시장, 혹은 반대로 강북특별시장으로 오인받을 후보가 계속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 대부분은 선거 당일 밤과 다음날 새벽까지 방송사들이 내보내는 개표방송과 인터넷으로 결과를 접한다. 개표방송은 개표 순서와 시간에 따라 결과가 집계된다. 몰표 때문에 어느 후보가 크게 앞서 나가기도 하고 반대의 현상도 나타난다. “그 때문에 개표 초반에는 앞서 갔지만, 막판 역전 성공”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시청자들에게는 스릴 만점의 재미까지 선사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릇된 정보를 생산할 수도 있다.
선관위 관계자도 이를 인정했다. “사실 동시 선거라는 취지를 고려하면 1인 8표가 맞지만 표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묻지 마 투표가 계속 나올 수 있어서 교육감·교육의원 선거는 따로 하자고 건의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개표해야 할 투표지가 많으면 개표가 이뤄지는 구청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개표 속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번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방법이 없는데요.”
서울 25개 구 가운데 한 후보는 17개, 오 시장은 8개 구에서 승리를 거뒀다. 한 후보가 승리한 17개 구에서의 득표율은 한 후보는 49%, 오 시장은 45%. 4%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강남지역에서는 오 시장이 약 65%, 한 후보가 약 35%를 득표했다. 4년 전 이 지역에서 강금실 후보와의 대결을 펼친 오 시장이 80% 가까운 몰표를 얻은 것에 비하면 상당한 차이다. 오 시장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억울하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