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바라데이, “우라늄 채굴~방사능 폐기물 처리 관리하는 다국적 통제 시스템 만들자”
⊙ SHAPE, 퍼그워시와 같은 핵 비확산 운동 국제NGO로 발돋움
⊙ ‘재처리를 통한 효율적 에너지폐기와 재활용 권한’
姜圭炯
⊙ 1964년 서울 출생.
⊙ 연세대 사학과 졸업. 美오하이오대 역사학 박사.
⊙ 現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KBS교향악단 운영위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국회기후변화에너지대책포럼(FOCCEP) 국제협력위원장.
⊙ 저서: <21세기 첫 십년의 기록> <21세기에서 문화와 예술을 바라보다>.
⊙ SHAPE, 퍼그워시와 같은 핵 비확산 운동 국제NGO로 발돋움
⊙ ‘재처리를 통한 효율적 에너지폐기와 재활용 권한’
姜圭炯
⊙ 1964년 서울 출생.
⊙ 연세대 사학과 졸업. 美오하이오대 역사학 박사.
⊙ 現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KBS교향악단 운영위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국회기후변화에너지대책포럼(FOCCEP) 국제협력위원장.
⊙ 저서: <21세기 첫 십년의 기록> <21세기에서 문화와 예술을 바라보다>.
- 2010년 3월 12일 김영삼 전 대통령과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IAEA 사무총장이 ‘서울선언문’에 서명한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지난 20세기, 세계는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을 경험했다. 과학기술은 인류에게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준 동시에 핵(核)무기를 비롯한 가공할 파괴력을 제공하는 두 얼굴의 모습을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작된 핵무기 경쟁은 세계를 불안에 떨게 했다. 따라서 세계는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가공할 핵무기의 잔재를 털어내고 그 대신 원자력을 인류의 지속성장이 가능한 문명의 이기로 거듭 태어나게 해야 한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처음 제시한 핵무기 폐기의 이상(理想)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창한 ‘핵무기 없는 세계’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또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화석(化石) 에너지의 고갈과 지구온난화(溫暖化)라는 지구적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평화적인 원자력 산업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제 원자력 르네상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원자력은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이며,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源)이다. 원자력이 미래의 길임을 간파하고 우직하게 이 분야 연구와 운용에 힘을 쏟은 지도자들(이승만과 박정희)의 혜안, 과학자와 관료들의 노력이 합치돼 원자력시대가 꽃피우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기피산업으로 치부될 때 오히려 원전(原電)에 집중한 결과 얻은 건설과 운용능력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세계원자력정상회의 성황리 마쳐
중국은 2030년까지 원전 100기(基) 건설 계획을 세웠으며, 터키·인도·인도네시아 등도 원전을 고려하고 있다. 이에 한국은 2020년까지 터키·중국·요르단 등에서 총 10기의 원전을 수주할 계획이며, 2030년까지는 4000억 달러어치의 원전 수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형 원전’은 반도체·휴대폰·자동차·조선(造船)에 이은 수출 주력산업이 된다. 한국의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에서 보듯이 지금까지 원전의 사각(死角)지대였던 중동(中東)과 남미(南美) 그리고 동남아(東南亞) 등 이른바 제3세계권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세계 여러 나라가 원자력 기술을 보유하는 원자력 보편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 산업의 부흥은 한편으론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고준위(高準位) 폐기물(HLW·High Level Waste)이라는 문제를 파생시킨다. 이는 향후 세계평화와 환경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위협에 대한 전 지구적 인식과 함께 국제적인 현안 해결은 물론 예방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탈(脫)냉전시대에 핵무기는 구(舊)시대의 유물이 됐으며, 이제는 이란과 북한처럼 ‘실패한 국가들’이 협박수단으로 사용하거나 테러집단에 의해 이용될 가능성이 큰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
이에 국제협력으로 핵무기 확산(擴散)과 고준위 폐기물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전 세계 오피니언 리더, 원자력전문가, 핵 비확산전문가, 각국 정부의 원자력 관련 정책 고위급 실무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세계평화-환경을 위한 원자력정상회의(SHAPE-2010)가 3월 10~12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국회기후변화에너지대책포럼(FOCCEP)이 주도한 이 회의는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대회장,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공동대회장을 맡았고, 한국 퍼그워시(Pugwash· 버트란드 러셀과 아인슈타인 등이 공동으로 창설한 핵무기 없는 평화를 위한 세계 과학자 회의)의 지원을 받았다. 이 회의가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분야의 거물들을 불러모을 수 있었던 데는 대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은 황일순(黃一淳)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의 명성이 크게 작용했다(황 교수는 파이로 프로세싱 방식을 통해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음을 이론과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또 그는 파이로 프로세싱의 냉각제로 납-비스무트를 사용할 경우 지진에 취약하던 것을 개선하는 방안을 개발, 특허를 받았다).
엘바라데이, 多國공동 핵주기 체제 제안
이 회의는 원자력 산업 부흥의 그늘진 면을 해결하고자 세계의 원자력 정책에 영향력이 큰 원자력 분야 정상급 인사 150여 명이 모여 원자력 정책을 토론하고 의견을 집약하여 전 세계에 바람직한 원자력 정책을 제언하는 기회였다. 이 회의는 또한 원자력을 평화적으로만 이용하겠다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의지를 공인받는 자리였다. 특히 원자력을 발전산업으로 승화시켜 세계 굴지의 원자력 강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의 원자력 활용 모델이, 원자력을 군사적으로 오용하여 파국을 맞고 있는 북한과 대비되면서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장(場)이 됐다.
3일 동안 ‘핵무기 없는 원자력 르네상스의 준비’라는 주제로 모두 5번의 총회를 갖고 ‘핵무기 없는 세계’(Nuclear Weapon free World)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논의했다. 엘바라데이는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의 핵 비확산과 다국(多國) 공동 핵주기(核週期) 체제의 필요성’이라는 기조연설에서 “원자력의 혜택을 최대화하면서 핵무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전 원료인 우라늄 채굴부터 방사능 폐기물 처리까지 투명하게 관리하는 다국적 통제 시스템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다국적 통제 시스템은 핵주기 전 과정을 다국적 직원들이 공동 감시하고, 아시아·중동·유럽 등 지역별로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를 담당하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물론 “핵연료 공급은 IAEA 법규에 부합돼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총회Ⅰ<조장: 토머스 그래험 대사(전 미국 대통령 군축 & 비확산 특별 보좌관), 전성훈 박사(통일연구원)>에서는 프랑스의 국가안보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베르나르 노를랭(Norlain) 장군을 비롯 전술공군사령관들과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을 대표하는 5명의 원자력 전문가들이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주제로 토론하고 논의했다.
총회Ⅱ<좌장: 김경수 교수(명지대), 존 엔디콧 총장(우송대)>는 ‘미들 파워 이니셔티브(Middle Power Initiative)’ 의장을 맡고 있는 스웨덴의 설랜더 대사 등 6명의 핵군축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NPT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국제적인 핵 비확산 노력이 어려운 장벽에 부딪혀 있는 상황에서 한국을 비롯한 캐나다, 노르웨이 등과 같은 이른바 미들 파워 국가가 핵국가와 비핵국가의 중간적 입장에서 핵확산 금지를 주도할 경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총회Ⅲ<좌장: 프랜시스 마우트너-마르코프 박사(오스트리아 국제관계 센터 소장), 강규형>에서는 미국과 독일, 이스라엘 등 6명의 핵군축(軍縮) 전문가들이 자리를 같이하여 그동안 핵무기의 군사적 실효성을 점검하고 핵무기 없이도 다자간 안보협력을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총회Ⅳ<좌장: 이은철 교수(서울대), 버니 커크(오크 리지 국립 연구소)>에서는 핵비확산 인력양성이라는 주제로 핵 비확산 교육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세계가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함께 실천할 것을 결의했다.
총회Ⅴ<좌장: 닝 리 교수(중국 샤먼 대학), 황일순 교수(서울대)>에서는 다국 공동 핵주기 방안을 논의했다. 세계 각국은 고준위폐기물을 중·저준위폐기물로 변환하는 연구를 거듭했고, 특히 한국과 벨기에가 최고 수준의 앞선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분과에서는 세계 각국의 사용 후 연료를 중·저준위폐기물로 전환하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점검하고 국제적으로 개발·협력하는 방안을 구체화했다.
SHAPE, 핵 비확산운동 국제 NGO로 발돋움할 것
세계 원자력정상회의는 3월 12일 오후 5시 ‘핵무기 없는 세계’가 현실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역사적인 ‘서울선언’을 채택했다. 이제 핵발전과 핵무기는 병행(竝行)될 수 없는, 그래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옵션이다. SHAPE는 격년으로 회의를 개최할 계획인데, 2012년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2차 회의를 열 예정이다. SHAPE가 자리를 잡게 되면 퍼그워시와 같은 핵 비확산 운동 국제 NGO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폐막 이후 13일에는 참석자들이 두산중공업에 가서 원전 건설 능력을 견학하고, 이어 고리발전소에 가서 한국의 원전 운용능력을 눈으로 확인했다. 아울러 임시로 수조(水槽)에 담겨 있는 HLW의 저장공간이 얼마 안 남아 있는 것을 보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한국은 매년 700t 가량의 HLW를 배출하기에 2016년이면 저장 공간 포화상태에 이른다.
저장된 HLW도 컨테이너가 1000년 정도만 밀봉을 보장한다. 한국 같은 인구 고밀도 국가에서는 마땅한 폐기장을 찾기 어렵다.
물론 커다란 운석이 지구를 덮쳐 인류가 내일 당장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심정으로 우리 이후 세대를 대비해야 한다.
대안(代案)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하나는 중수소(重水素)와 삼중수소(三重水素)의 융합으로 에너지를 생성하는 핵융합기술인데 아직 상용화가 요원하다. 또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삼중수소를 만들려면 리튬이 필요한데 한정된 매장량을 갖고 있다는 난제가 놓여 있다.
다른 방식은 HLW를 재활용해서 고효율의 새로운 에너지를 얻음과 동시에 좀 더 안전한 중·저준위 폐기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친(親)환경적·지속적·경제적이며 매우 안전하다.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얻고 환경문제도 해결하는 방식이기에 미국, 유럽, 일본에서 20여 년 전부터 기술개발에 나섰다. 미국에서 HLW를 없앨 수 있는 습식(濕式)재처리 기술을 개발했으나 플루토늄을 추출하여 원자탄을 만들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다행히 국내 원자력학계가 원자탄 제조가 불가능한 건식(乾式)재활용기술을 통한 핵변환기술을 거의 완성하며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그것이 SHAPE의 첫 회의가 서울에서 열린 주된 요인이기도 했다.
폐기물 관리기간 1/1000으로 줄이는 파이로 프로세싱
HLW를 중·저준위 폐기물로 변환시켜 관리기간을 1000분의 1로 줄이고, 양(量)은 100분의 1로 줄이면서 다시 다량의 에너지를 뽑아내는 꿈의 기술(파이로 프로세싱·pyro processing)에서 현재 한국과 벨기에 등이 앞서 나가고 있다. 핵 확산을 억제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국제적 공조(共助)와 관리도 용이하다니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이처럼 절실한 기술일수록 기술력과 경제성은 물론 핵 비확산성에 대해서까지 국내외적으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석유 확보를 100%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외교적 취약성과 유가(油價)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원자력 기술을 육성하는 정책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미 한국은 핵에너지를 가장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국가이다. 이제는 현 수준을 뛰어넘는 접근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정운찬(鄭雲燦) 국무총리는 SHAPE 개막식 축사에서 평화적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처음으로 밝혔다.
벨기에는 이미 2020년 가동예정인 총 예산 9억6000만 유로의 가속기구 핵변환시스템인 미라(MYRRHA·안전한 납-비스무트 방식)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이 중 40%를 벨기에 정부가 지원하고, 나머지를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이 부담하며, 한국·중국·미국·러시아와의 협력도 추구하고 있다.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하미드 아브데러힘 벨기에원자력연구소 소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알제리계 벨기에인인 아브데러힘 박사는 2014년까지 국가 간 컨소시엄을 구축, 세부 설계와 인증을 끝내고 2018년엔 건설을 완료하겠다고 발표했다.
‘핵주권’ 용어 사용 바람직하지 않아
발표장에서 만난 아브데러힘 박사는 팔을 크게 다쳐 깁스를 하고 있었다. 그는 “미라 프로젝트가 승인된 순간 너무 기뻐 펄쩍펄쩍 뛰다가 다쳤다”고 웃으면서, 자신에 찬 목소리로 “미라 프로젝트가 미래를 주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기술이 현실화되면 사용 후 핵연료의 처리 및 저장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파이로 프로세싱을 배웠던 벨기에가 오히려 벨기에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선두에 나서는 모습이라 필자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방식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핵재처리 권한이 필수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핵주권(核主權)’은 핵무기 보유권이 아닌 재처리를 통한 효율적 에너지 폐기와 재활용 권한이다. 이제는 핵주권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모호한 단어 자체를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이런 기술은 한국과 벨기에가 독점(獨占)해서도 안 되고 독점할 수도 없다. 앞서 말했듯이 엘바라데이는 기조연설에서 “원자력 선진국과 공급국만이 아닌 다국적 공동 통제시스템으로 핵주기 전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핵확산을 막을 것”을 제창했다. 이 기술은 인류 전체의 공동자산으로 국제관리와 국제공조를 받아야 하며, 이 기술에서 나오는 이익은 적절히 분배해야 할 것이다. 핵심은 투명성이다. 핵무기 개발 의지가 없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세계의 원자력 관련 인력들은 인류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 서울에 모여 치열하게 토론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려는 노력을 경주했다. 세계원자력정상회의가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크게 기여하기를 기원한다. 국민들이 핵 비확산 체제의 확립과 평화적이고 친환경적인 원자력 기술의 개척에 더 큰 관심과 이해를 갖기를 기대하며, 이번 회의를 우리나라가 주도함으로써 원자력 수출국과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처음 제시한 핵무기 폐기의 이상(理想)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창한 ‘핵무기 없는 세계’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또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화석(化石) 에너지의 고갈과 지구온난화(溫暖化)라는 지구적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평화적인 원자력 산업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제 원자력 르네상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원자력은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이며,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源)이다. 원자력이 미래의 길임을 간파하고 우직하게 이 분야 연구와 운용에 힘을 쏟은 지도자들(이승만과 박정희)의 혜안, 과학자와 관료들의 노력이 합치돼 원자력시대가 꽃피우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기피산업으로 치부될 때 오히려 원전(原電)에 집중한 결과 얻은 건설과 운용능력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세계원자력정상회의 성황리 마쳐
중국은 2030년까지 원전 100기(基) 건설 계획을 세웠으며, 터키·인도·인도네시아 등도 원전을 고려하고 있다. 이에 한국은 2020년까지 터키·중국·요르단 등에서 총 10기의 원전을 수주할 계획이며, 2030년까지는 4000억 달러어치의 원전 수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형 원전’은 반도체·휴대폰·자동차·조선(造船)에 이은 수출 주력산업이 된다. 한국의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에서 보듯이 지금까지 원전의 사각(死角)지대였던 중동(中東)과 남미(南美) 그리고 동남아(東南亞) 등 이른바 제3세계권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세계 여러 나라가 원자력 기술을 보유하는 원자력 보편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 산업의 부흥은 한편으론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고준위(高準位) 폐기물(HLW·High Level Waste)이라는 문제를 파생시킨다. 이는 향후 세계평화와 환경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위협에 대한 전 지구적 인식과 함께 국제적인 현안 해결은 물론 예방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탈(脫)냉전시대에 핵무기는 구(舊)시대의 유물이 됐으며, 이제는 이란과 북한처럼 ‘실패한 국가들’이 협박수단으로 사용하거나 테러집단에 의해 이용될 가능성이 큰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
이에 국제협력으로 핵무기 확산(擴散)과 고준위 폐기물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전 세계 오피니언 리더, 원자력전문가, 핵 비확산전문가, 각국 정부의 원자력 관련 정책 고위급 실무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세계평화-환경을 위한 원자력정상회의(SHAPE-2010)가 3월 10~12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국회기후변화에너지대책포럼(FOCCEP)이 주도한 이 회의는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대회장,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공동대회장을 맡았고, 한국 퍼그워시(Pugwash· 버트란드 러셀과 아인슈타인 등이 공동으로 창설한 핵무기 없는 평화를 위한 세계 과학자 회의)의 지원을 받았다. 이 회의가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분야의 거물들을 불러모을 수 있었던 데는 대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은 황일순(黃一淳)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의 명성이 크게 작용했다(황 교수는 파이로 프로세싱 방식을 통해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음을 이론과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또 그는 파이로 프로세싱의 냉각제로 납-비스무트를 사용할 경우 지진에 취약하던 것을 개선하는 방안을 개발, 특허를 받았다).
엘바라데이, 多國공동 핵주기 체제 제안
이 회의는 원자력 산업 부흥의 그늘진 면을 해결하고자 세계의 원자력 정책에 영향력이 큰 원자력 분야 정상급 인사 150여 명이 모여 원자력 정책을 토론하고 의견을 집약하여 전 세계에 바람직한 원자력 정책을 제언하는 기회였다. 이 회의는 또한 원자력을 평화적으로만 이용하겠다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의지를 공인받는 자리였다. 특히 원자력을 발전산업으로 승화시켜 세계 굴지의 원자력 강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의 원자력 활용 모델이, 원자력을 군사적으로 오용하여 파국을 맞고 있는 북한과 대비되면서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장(場)이 됐다.
3일 동안 ‘핵무기 없는 원자력 르네상스의 준비’라는 주제로 모두 5번의 총회를 갖고 ‘핵무기 없는 세계’(Nuclear Weapon free World)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논의했다. 엘바라데이는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의 핵 비확산과 다국(多國) 공동 핵주기(核週期) 체제의 필요성’이라는 기조연설에서 “원자력의 혜택을 최대화하면서 핵무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전 원료인 우라늄 채굴부터 방사능 폐기물 처리까지 투명하게 관리하는 다국적 통제 시스템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다국적 통제 시스템은 핵주기 전 과정을 다국적 직원들이 공동 감시하고, 아시아·중동·유럽 등 지역별로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를 담당하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물론 “핵연료 공급은 IAEA 법규에 부합돼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총회Ⅰ<조장: 토머스 그래험 대사(전 미국 대통령 군축 & 비확산 특별 보좌관), 전성훈 박사(통일연구원)>에서는 프랑스의 국가안보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베르나르 노를랭(Norlain) 장군을 비롯 전술공군사령관들과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을 대표하는 5명의 원자력 전문가들이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주제로 토론하고 논의했다.
총회Ⅱ<좌장: 김경수 교수(명지대), 존 엔디콧 총장(우송대)>는 ‘미들 파워 이니셔티브(Middle Power Initiative)’ 의장을 맡고 있는 스웨덴의 설랜더 대사 등 6명의 핵군축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NPT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국제적인 핵 비확산 노력이 어려운 장벽에 부딪혀 있는 상황에서 한국을 비롯한 캐나다, 노르웨이 등과 같은 이른바 미들 파워 국가가 핵국가와 비핵국가의 중간적 입장에서 핵확산 금지를 주도할 경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총회Ⅲ<좌장: 프랜시스 마우트너-마르코프 박사(오스트리아 국제관계 센터 소장), 강규형>에서는 미국과 독일, 이스라엘 등 6명의 핵군축(軍縮) 전문가들이 자리를 같이하여 그동안 핵무기의 군사적 실효성을 점검하고 핵무기 없이도 다자간 안보협력을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총회Ⅳ<좌장: 이은철 교수(서울대), 버니 커크(오크 리지 국립 연구소)>에서는 핵비확산 인력양성이라는 주제로 핵 비확산 교육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세계가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함께 실천할 것을 결의했다.
총회Ⅴ<좌장: 닝 리 교수(중국 샤먼 대학), 황일순 교수(서울대)>에서는 다국 공동 핵주기 방안을 논의했다. 세계 각국은 고준위폐기물을 중·저준위폐기물로 변환하는 연구를 거듭했고, 특히 한국과 벨기에가 최고 수준의 앞선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분과에서는 세계 각국의 사용 후 연료를 중·저준위폐기물로 전환하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점검하고 국제적으로 개발·협력하는 방안을 구체화했다.
SHAPE, 핵 비확산운동 국제 NGO로 발돋움할 것
세계 원자력정상회의는 3월 12일 오후 5시 ‘핵무기 없는 세계’가 현실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역사적인 ‘서울선언’을 채택했다. 이제 핵발전과 핵무기는 병행(竝行)될 수 없는, 그래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옵션이다. SHAPE는 격년으로 회의를 개최할 계획인데, 2012년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2차 회의를 열 예정이다. SHAPE가 자리를 잡게 되면 퍼그워시와 같은 핵 비확산 운동 국제 NGO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폐막 이후 13일에는 참석자들이 두산중공업에 가서 원전 건설 능력을 견학하고, 이어 고리발전소에 가서 한국의 원전 운용능력을 눈으로 확인했다. 아울러 임시로 수조(水槽)에 담겨 있는 HLW의 저장공간이 얼마 안 남아 있는 것을 보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한국은 매년 700t 가량의 HLW를 배출하기에 2016년이면 저장 공간 포화상태에 이른다.
저장된 HLW도 컨테이너가 1000년 정도만 밀봉을 보장한다. 한국 같은 인구 고밀도 국가에서는 마땅한 폐기장을 찾기 어렵다.
물론 커다란 운석이 지구를 덮쳐 인류가 내일 당장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심정으로 우리 이후 세대를 대비해야 한다.
대안(代案)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하나는 중수소(重水素)와 삼중수소(三重水素)의 융합으로 에너지를 생성하는 핵융합기술인데 아직 상용화가 요원하다. 또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삼중수소를 만들려면 리튬이 필요한데 한정된 매장량을 갖고 있다는 난제가 놓여 있다.
다른 방식은 HLW를 재활용해서 고효율의 새로운 에너지를 얻음과 동시에 좀 더 안전한 중·저준위 폐기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친(親)환경적·지속적·경제적이며 매우 안전하다.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얻고 환경문제도 해결하는 방식이기에 미국, 유럽, 일본에서 20여 년 전부터 기술개발에 나섰다. 미국에서 HLW를 없앨 수 있는 습식(濕式)재처리 기술을 개발했으나 플루토늄을 추출하여 원자탄을 만들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다행히 국내 원자력학계가 원자탄 제조가 불가능한 건식(乾式)재활용기술을 통한 핵변환기술을 거의 완성하며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그것이 SHAPE의 첫 회의가 서울에서 열린 주된 요인이기도 했다.
폐기물 관리기간 1/1000으로 줄이는 파이로 프로세싱
HLW를 중·저준위 폐기물로 변환시켜 관리기간을 1000분의 1로 줄이고, 양(量)은 100분의 1로 줄이면서 다시 다량의 에너지를 뽑아내는 꿈의 기술(파이로 프로세싱·pyro processing)에서 현재 한국과 벨기에 등이 앞서 나가고 있다. 핵 확산을 억제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국제적 공조(共助)와 관리도 용이하다니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이처럼 절실한 기술일수록 기술력과 경제성은 물론 핵 비확산성에 대해서까지 국내외적으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석유 확보를 100%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외교적 취약성과 유가(油價)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원자력 기술을 육성하는 정책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미 한국은 핵에너지를 가장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국가이다. 이제는 현 수준을 뛰어넘는 접근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정운찬(鄭雲燦) 국무총리는 SHAPE 개막식 축사에서 평화적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처음으로 밝혔다.
벨기에는 이미 2020년 가동예정인 총 예산 9억6000만 유로의 가속기구 핵변환시스템인 미라(MYRRHA·안전한 납-비스무트 방식)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이 중 40%를 벨기에 정부가 지원하고, 나머지를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이 부담하며, 한국·중국·미국·러시아와의 협력도 추구하고 있다.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하미드 아브데러힘 벨기에원자력연구소 소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알제리계 벨기에인인 아브데러힘 박사는 2014년까지 국가 간 컨소시엄을 구축, 세부 설계와 인증을 끝내고 2018년엔 건설을 완료하겠다고 발표했다.
‘핵주권’ 용어 사용 바람직하지 않아
발표장에서 만난 아브데러힘 박사는 팔을 크게 다쳐 깁스를 하고 있었다. 그는 “미라 프로젝트가 승인된 순간 너무 기뻐 펄쩍펄쩍 뛰다가 다쳤다”고 웃으면서, 자신에 찬 목소리로 “미라 프로젝트가 미래를 주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기술이 현실화되면 사용 후 핵연료의 처리 및 저장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파이로 프로세싱을 배웠던 벨기에가 오히려 벨기에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선두에 나서는 모습이라 필자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방식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핵재처리 권한이 필수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핵주권(核主權)’은 핵무기 보유권이 아닌 재처리를 통한 효율적 에너지 폐기와 재활용 권한이다. 이제는 핵주권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모호한 단어 자체를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이런 기술은 한국과 벨기에가 독점(獨占)해서도 안 되고 독점할 수도 없다. 앞서 말했듯이 엘바라데이는 기조연설에서 “원자력 선진국과 공급국만이 아닌 다국적 공동 통제시스템으로 핵주기 전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핵확산을 막을 것”을 제창했다. 이 기술은 인류 전체의 공동자산으로 국제관리와 국제공조를 받아야 하며, 이 기술에서 나오는 이익은 적절히 분배해야 할 것이다. 핵심은 투명성이다. 핵무기 개발 의지가 없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세계의 원자력 관련 인력들은 인류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 서울에 모여 치열하게 토론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려는 노력을 경주했다. 세계원자력정상회의가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크게 기여하기를 기원한다. 국민들이 핵 비확산 체제의 확립과 평화적이고 친환경적인 원자력 기술의 개척에 더 큰 관심과 이해를 갖기를 기대하며, 이번 회의를 우리나라가 주도함으로써 원자력 수출국과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