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동국대 국어교육학과 4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다. 대다수 미스코리아 참가자들은 필자와 비슷한 나이였다. 화장을 짙게 하고, ‘사자갈기’라 불리는 파마 머리 때문에 원숙해 보였을 뿐 그녀들은 중간고사 걱정을 하는 여느 대학생과 다름없었다.
⊙ 미스코리아 출신들, 연예계·학계·의료계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여 맹활약
⊙ 2000년대 지원자 평균 연령은 22세, 키 171.75cm, 체중 51.32kg
⊙ “미스코리아 심사 時 知的 요소 평가하는 비중 늘려야”
⊙ 미스코리아 출신들, 연예계·학계·의료계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여 맹활약
⊙ 2000년대 지원자 평균 연령은 22세, 키 171.75cm, 체중 51.32kg
⊙ “미스코리아 심사 時 知的 요소 평가하는 비중 늘려야”
지난 5월 8일 저녁 7시 대전 엑스포아트홀 특설무대. 2009 미스코리아 대전·충남지역 본선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지역 본선대회가 있기 전 서류와 면접심사 등을 거쳐 올라온 24명이 참가했다. 약 세 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본선대회에서 참가자들은 팀별로 인터뷰, 패션쇼 등을 진행했다.
행사는 밤 10시 무렵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절정에 다다랐다. 진행자 金炳燦(김병찬) 아나운서가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진선미 결과 발표만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대전·충남을 대표해 미스코리아 전국대회에 나갈 주인공은 누가 될까요?”
무대 위에 선 참가자들과 이들을 바라보는 가족들 모두 바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김병찬씨가 참가자 네 명을 호출했다.
“기호 1번, 15번, 32번, 36번 후보는 앞으로 나와 주세요.”
최후에 남은 4후보 중 세 명은 미스코리아 眞(진)·善(선)·美(미), 나머지 한 명은 주최사賞(상)을 받게 된다. 진선미 안에 들어야 오는 7월 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미스코리아 전국대회에 지역대표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김병찬씨가 수상자 한 명을 호명했다.
“미스 한국일보입니다. 참가번호 15번 김은지!”
김은지(22)씨는 간발의 차로 3위 내에 못 들었지만 상을 받는다는 사실에 만족해 하며 활짝 웃었다.
긴장의 순간들
다시 김병찬씨의 말이 이어졌다.
“자 이제 최종 세 분이 남았군요. 이 세 분 중에서 진선미가 결정됩니다. 먼저 미부터 발표합니다. 참가번호 1번 조혜민!”
조혜민(23)씨는 긴장이 탁 풀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씨는 꽃다발과 트로피를 안고 무대 뒤로 물러났다. 이제 무대에는 32번 유수정(21) 후보와 36번 한여울(23) 후보가 남았다. 두 후보는 손을 꼭 붙잡았다. 두 사람은 활짝 웃고 있었지만 웃음 속에 긴장감이 흘렀다.
공동 진행자 박희정씨가 잠시 뜸을 들였다.
“진을 먼저 부르겠습니다. 나머지 한 명은 자동으로 선이 됩니다. 발표하겠습니다. 2009 대전·충남 미스코리아의 진은 삼십~.”
두 사람 모두 번호가 30번대였다. 진행자의 말이 이어졌다.
“떨리셨죠? 이번에는 진짜 발표하겠습니다. 2009 대전·충남 미스코리아 진! 참가번호 32번 유수정!”
최종 당선자가 발표되자 천장에서 축하 리본과 금빛 종이들이 흩날렸다. 마지막까지 결과를 기다리던 두 후보는 부둥켜 안고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었다. 대회가 끝나자 가족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참가자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4월 18일 미스경북 선발대회를 시작으로 2009 미스코리아 대회가 시작됐다. 대전지역 본선은 지역 선발대회 중 네 번째로 열렸다. 현재 국내 14개 지역, 해외 2개 국가(미국·일본)에서 예선이 진행되고 있다. 본선은 7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외부에서 보는 이미지와 너무 달라”
올해 53회를 맞는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 자격은 만 18~25세 사이 고졸 학력 이상의 한국 국적 여성이다. 현주소, 본적, 학교, 직장 소재지 중 연고가 있는 곳에서 출전할 수 있으며 신원 확인을 위한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위와 같은 조건을 충족해 지역 예선 접수를 하면 지역별 심사를 거친다. 대개 서류심사, 신체검사, 장기자랑, 외모 심사(메이크업·노메이크업), 면접(자기소개·시사·교양·외국어)을 본다.
전국대회 본선은 서울에서 열리며, 약 3주간의 합숙과 본선대회 점수를 합산해 진선미와 협찬사상 수상자를 가린다. 전국 ‘진’에 뽑힌 사람은 미스 유니버스, ‘선’은 미스 인터내셔널, ‘미’는 미스 월드라는 국제 미인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197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진선미 외 貞(정)·淑(숙)·賢(현) 그리고 미스 한국일보까지 7명을 뽑았다. 현재는 진·선·미 외에 미스 한국일보, 협찬사 수상자 등 7~8명의 미스코리아가 선발된다.
미스 대전·충남 선발대회가 끝난 직후 대회 현장에서 ‘진’에 당선된 유수정씨를 만났다. 유씨는 미스코리아 왕관과 띠, 트로피가 어색한 듯 어깨를 들썩였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준비하면서 무엇이 가장 어려웠느냐”고 묻자 그녀는 “운동과 음식 조절”이라고 했다.
유수정씨는 목원대 영문과 재학생이다. “학생인데 미스코리아 대회 준비를 학업과 병행하기 어렵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말이다.
“미스코리아 합숙 기간과 학교 수업이 겹쳤어요. 교수님께 공문을 드리며 말씀 드렸죠. 교수님이 좋은 결과 얻고 오라고 격려해 주시더라고요.”
1년 전부터 미스코리아를 꿈꿨다는 그녀는 두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지역 본선이 열린 오늘이 어버이날이라고 알려주자 유씨는 “미스코리아 나간다고 부모님이 내게 도움을 많이 주셨는데 나는 제대로 해드린 것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무대 위에서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선’ 한여울씨도 만났다. “최후의 2인 자리까지 올랐는데 1등을 못해 아쉽지 않으냐”고 했더니 “시원 섭섭하다”며 다소 솔직하게 답했다. 이화여대 무용과 4학년 1학기를 마친 한여울씨는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휴학을 했다고 한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20대 때 꼭 도전하고 싶었어요. 휴학생이라 마침 시간이 맞아 참여했죠. 대회를 준비하면서 워킹, 스피치, 포즈 연습 등 여러 가지를 배웠어요. 좋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제 인생에 잊지 못할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사실 ‘미스코리아 대회’ 하면 외모만 보는 대회라 생각했는데 심사 요소가 다양했어요. 외부에서 보는 이미지와 너무 달라 저도 놀랐어요.”
온 가족이 총출동해 응원
전국대회에 내보낼 지역대표를 뽑기 위한 지역 예선은 4~5월에 열리는데 이 시기는 대학생들의 학기 중인데다 중간고사 기간과도 겹친다. 거의 모든 참가자가 대학생 신분이라 미스코리아 대회 준비를 하려면 학업과 겹칠 수밖에 없다.
미스코리아 전국대회 진출자의 경우 대회 전 합숙훈련을 약 3주간 거쳐야 한다. 합숙기간도 심사에 들어간다. 이 때문인지 미스코리아 대회를 위해 휴학하는 도전자들이 많았다. 대전·충남 지역 대회에서 협찬사상인 미스 에스캐럿상을 받은 최수정(20)씨는 공문을 내고 한 달간 학교를 빠졌다. 최씨의 말이다.
“교수님들께서 미스코리아 대회 같은 대외 경험을 긍정적으로 보셨어요. 제 전공이 스튜어디스학과이거든요. 대회 참가를 위해 스피치, 워킹, 영어 등을 공부하는데 이런 과목들은 스튜어디스 시험준비 과정과 동일해요.”
특별상 포토제닉상과 후원사상인 행남자기상을 받은 홍수지(21)씨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위해 이번 학기를 휴학했다. 그녀는 “젊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도전하고 싶은 대회라 생각했고 기왕 도전하는 것이라면 제대로 준비하고 싶었다”고 했다.
곁에 있던 아버지 洪成杓(홍성표·50)씨에게 딸이 미스코리아 나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을 물었다.
“딸이 휴학계 제출하고 미스코리아 준비한다고 해서 얼떨떨했죠. 그래도 딸이 목표를 갖고 도전하려는 모습이 가상하더라고요. 이번 미스코리아 대회를 위해 열심히 준비한 과정이 앞으로 인생을 사는 데 교훈이 됐으면 좋겠어요.”
필자가 미스코리아의 세계 취재를 위해 여러 지역 대회를 다니며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부모가 딸보다 더 좋아한다’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학교 선후배까지 총동원한 응원팀, 현수막까지 만들어서 응원하러 온 가족 등 미스코리아 대회를 지역 축제이자 집안의 특별한 행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지난 4월 30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2009 미스경남 선발대회를 다녀왔다. 올해 당선자 시상과 고별행진을 하러 참석한 2007년 경남 ‘선’으로 뽑힌 崔芝晛(최지현·25)씨의 아버지는 ‘안티 미스코리아’다. 뷰티 사업가가 꿈인 최씨는 아버지가 반대할 것 같아 몰래 출전한 끝에 입상했다.
“아버지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여성을 외모로만 평가하려 하고, 여성성을 상품화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특히 수영복 심사를 싫어하셨죠. 그런데 제가 겪은 미스코리아 대회는 외모만 보지 않고 말솜씨, 교양과 같은 내면적 부분도 비중 있게 평가했어요. 수영복 심사는 미스코리아 심사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미스경남 선발대회 참가자 金男恩(김남은·22)씨는 “미스코리아의 3대 평가 요소를 知德體(지덕체)라고 할 때 수영복은 體(체)를 평가하기 위한 한 요소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실력만큼 외모도 뛰어나야”
지난 4월 23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미스전북 선발대회는 타 지역 대회와 달리 참가자들의 자기소개와 인터뷰 시간이 길었다. 미스코리아 선발과정이 지역마다 조금씩 다름을 느꼈다. 참가자들의 답변이 다양했다.
“철학자 플라톤은 ‘여자의 아름다움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 문제를 풀어 드리고 싶습니다.”(참가번호 1번 김유진)
“비단 같은 우리 고장에 저의 꽃 같은 외모로 금상첨화하는 전북의 홍보대사가 되고 싶습니다.”(3번 채민석)
미스전북 대회에서는 무용과 춤을 장기로 선보인 참가자들이 많았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참가번호는 참가자들이 직접 추첨으로 뽑는다. 1번이나 끝 번호가 되기를 서로 싫어해 도입한 제도다. 진행자가 동료의 장기자랑을 어떻게 보았는지 옆 후보에게 물었다. 정혜진씨의 말이다.
“미인은 정면을 응시하는 것이 기본이라 생각해서 동료의 춤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동료에겐 죄송합니다.”
좌중이 한바탕 웃었다. 실제로 미스코리아 대회 내내 참가자들은 정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높은 구두에 풍성하게 올린 파마 머리를 한 채 두세 시간 서 있는 후보들을 보니 미스코리아는 미모뿐만 아니라 체력이 필수임을 느꼈다.
지난 4월 25일 서강대에서 ‘이프 페스티벌’이 열렸다. ‘사단법인 문화미래 이프’에서 주최하는 이프 페스티벌의 前身(전신)은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다. 1999년에 시작된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는 2004년에 막을 내리고 현재 이프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주최 측은 “미스코리아에 대한 주제에서 벗어나 여성의 비정규직·양육권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했다.
안티 미스코리아대회 사회를 맡았던 영화감독 변영주씨는 “미스코리아 대회와 출전자들의 문제보다 여성의 외모로만 뽑는 기준이 잘못됐다”며 “이프 페스티벌과 같은 행사가 많이 생겨서 한국 사회의 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앞당길 것”이라고 했다.
이프 페스티벌 자원봉사자인 李相圭(이상규·美 트리니티대 신방과 졸)씨는 “한국은 확실히 미국보다 외모에 민감하다”며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실력만큼 외모도 뛰어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자원봉사자 文秀眞(문수진·성신여대 법대 4년 휴학 중)씨는 “키 크고 날씬한 신체 사이즈 대신 인성과 품성이 미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며 “미스코리아 대회가 제시하는 미의 기준을 한국 여성이 모두 동의하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사회적 책임
올해 전북과 대전·충남 미스코리아 지역대회를 진행한 김병찬 아나운서는 “후보자들을 인터뷰할 때 상투적인 질문 대신 후보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1990년대 미스코리아 대회 진행을 여러 번 했다. 김 아나운서의 말이다.
“과거와 많이 달라졌어요. 요즘 미스코리아들은 옛날과 비교했을 때 꾸밈도 없어졌고, 식견도 높아졌어요. 자신감도 대단하고요. 미스코리아 대회가 美的(미적)인 대회로 비치지 않기 위해 知的(지적)·교양적 측면을 더 부각하면 좋겠어요. 그러면 외모만 보는 대회라는 인식도 씻어 주고, 참가자들의 내적인 미를 이끌어 주어 미스코리아 대회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텔리전스(intelligence)상 같은 것을 신설하는 것도 대안이지요.”
김병찬 아나운서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미스코리아는 미적·지적으로 검증된 사람인데 당선된 후의 행로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미의 사절단인 만큼 미스코리아 그 이상의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작년 미스서울 지역대회 심사위원을 맡은 成演美(성연미·47) 봄온 아나운서 아카데미 원장은 “미스코리아로서 소명과 사명의식이 있는지, 미스코리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지를 평가 항목으로 삼았다”고 했다.
성 원장은 미스코리아 면접 때 “미스코리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가, 미스코리아가 되어 어떤 일을 하고 싶나”를 질문했다고 한다. 미스코리아는 젊은 여성들에 대한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 소신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성연미 원장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미스코리아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 50% 이상이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외적인 부분이라고 응답했고, 현대 여성 리더로서 지적 이미지 보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표1 참조). ‘미스코리아의 어색한 부분은 무엇인가’란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 중 50%가 발성과 발음이 가장 어색하다고 응답했다. 시대적 이미지에 맞지 않는 헤어스타일, 어색하고 경직된 미소가 뒤를 이었다(표1 참조).
미스코리아 합숙제도와 진선미 제도를 도입한 鄭鴻澤(정홍택·73) 현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이사장은 “미스코리아 대회가 외모만 본다는 비판이 있는데, 겉으로 보는 미 말고 내면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이사장의 말이다.
“심사위원에 따라 미인을 보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처럼 일반인들도 심사에 참여시켜 보완해야 합니다. 아울러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한국의 미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미스 유니버스는 지성을, 미스 인터내셔널은 끼와 재능을 주로 평가합니다. 미스코리아의 진선미를 가릴 때 국제미인대회의 콘셉트에 맞게 선발해야죠.”
선발 기준을 차별화해야
얼굴학 서적 <미인>의 저자이자 얼굴학자인 趙鏞珍(조용진·59) 한서대 교수는 “우리나라 미인대회는 특색이 없다”고 했다.
“미스코리아, 수퍼모델, 미스 춘향, 각 지역 미인대회의 차이점이 무엇이죠? 미스코리아 대회 나갔다 떨어지면 수퍼모델 나가고, 인삼 아가씨 선발대회에서 본 사람이 미스 춘향 나가는 사례를 볼 수 있어요. 각 미인대회가 추구하는 취지와 미인상이 달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미에 대한 정체성이 없는 것 같아요. 각종 미인대회가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대회가 추구하는 미의 기준과 선발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조 교수는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미인이 미스코리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스코리아란 국제대회에 내보낼 것을 염두하고 뽑기 때문에 국제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외국 미인과 다를 바 없는 미인보다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미스코리아로서 경쟁력이 있습니다.”
조 교수는 미스코리아의 등수 명칭인 ‘진선미’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미스코리아 대회가 단순히 미모만을 겨루는 것이라면 ‘진’보다 ‘미’가 상위 등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이 1등이잖아요. ‘미’란 감각적 쾌감, ‘선’은 실용성, ‘진’은 정신을 의미해요.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미와 실용적인 선 위에 정신적인 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미스코리아 대회와 유사한 ‘수퍼모델 선발대회’는 큰 키와 마른 몸매, 개성 있는 얼굴을 비중 있게 본다. 이 대회 참가자들의 2000년대 평균 키는 175.54cm이다. 고전적 미인상을 선호하는 미스코리아대회 2000년대 참가자 평균 키는 171.75cm이다.
미스코리아 출신 중 연예계에 진출하는 사람이 많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통해 무대 경험을 쌓고, 미모와 재능을 검증받았다는 경력은 연예계 진출에 유리하다. 미스코리아 입상자란 수식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지만 자신을 대중에게 알리고, 각인시키는 데 미스코리아 경력은 돋보인다.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은 미스코리아 대회를 다니며 눈에 띄는 출전자들에게 연예계 입문을 제의하기도 한다.
롯데제과 모델이었던 1987년 전국 진 장윤정은 미스 유니버스대회에서 2위를 했다. 최근 방영됐던 MBC 드라마 ‘내조의 여왕’의 김남주는 1992년 경기 진 출신이다. 같은 대회 전국 미를 차지한 사람은 드라마 ‘첫사랑’의 이승연이었다. 이승연은 이듬해 미스월드 선발대회에 참가해 톱 10에 올랐다.
이밖에 같은 해 미스코리아 출신 연예인들도 많다. 1988년 전국대회 때 김성령이 진, 김혜리가 선을 차지했다. SBS ‘조강지처클럽’ 드라마로 10년 만에 복귀한 오현경은 1989년 미스코리아 전국 진을 수상했다. 1989년 선은 고현정이었다. 1991년 대회의 전국 진은 ‘사랑의 스튜디오’를 진행한 이영현, 선은 영화배우 염정아다.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김서형은 1992년 강원 진, 같은 드라마에 나온 홍여진은 1979년 전국 선이자 미스코리아 친목단체 녹원회 부회장을 지냈다. 1994년 대회 수상자 중 SBS 아나운서였던 한성주가 전국 진, 탤런트 성현아와 김예분은 미였다. 배우 권민중은 1996년 미스 한국일보, 모델 함소원은 1997년 미스 태평양 출신이다.
기자 된 미스코리아도
2000년대 미스코리아 대회에서도 연예인이 많이 탄생됐다. 2000년 전국 진 김사랑, 미 손태영 그리고 당시 박미선이란 본명으로 출전해 미스 한주여행사로 뽑힌 박시연과 경기 미 윤정희가 있다. 손태영은 같은 해 미스 인터내셔널에 출전해 포토제닉상과 2위를 수상했다.
아시아나항공 모델로 활동했던 이보영은 2002년 대전충남 진이었다. 2003년 전국 진 최윤영, 2006년 전국 진 이하늬 등이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하늬는 미스 유니버스에서 4위를 차지했다.
자매끼리 미스코리아에 입상한 경우도 있다. ‘열림음악회’를 진행한 전직 KBS 아나운서이자 최원석 前(전) 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장은영은 1992년 전국 선, 언니 장혜영은 1987년 미스 르망이었다. 방송인 설수진은 1996년 전국 선, 동생 설수현은 1999년 전국 미를 수상했다.
탤런트 권상우와 결혼한 손태영은 2000년 전국 미 출신이고, 그의 언니 손혜임은 1999년 미스 한국일보 출신이다.
연예인이 된 미스코리아 출신이 많지만 아나운서로 자리매김하는 입상자도 늘어나고 있다.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의 첫 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1992년 전국 선 장은영이다. 장은영은 1994년 KBS 공채 20기 아나운서로 입사해 ‘열린음악회’ 사회를 보며 입지를 굳혔다.
1994년 전국 진 출신 한성주는 1996년 SBS 공채 6기 아나운서에 합격했다. 서현진은 2001년 전국 선 출신으로 2004년 MBC에 합격해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다. 2005년 전국 진 김주희는 SBS 13기 공채 아나운서로 선발됐다. 2006년 서울 미 이윤아는 이듬해 SBS 15기 공채 아나운서로 뽑혔다. 2001년 경남 진 이미선은 YTN에서 스포츠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기자가 된 미스코리아도 있다. 2001년 미스코리아 대구 진 김가림(본명 김지은)은 2003년 KBS 대구방송총국 기자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
연예계나 방송계 외 학계와 의료계 같은 전문직종에 진출한 미스코리아 출신들도 있다. 1993년 미스코리아 전국 진 弓善榮(궁선영·37)씨는 동국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컬럼비아대 영양대학원 진학을 앞둔 금나나(26)씨는 2002년 전국 진이었다. 금씨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하면서 해외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한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최초로 하버드대에 합격한 그녀의 최종 꿈은 의사다. 한국사학진흥재단 홍보대사로 임명된 금나나씨는 “졸업을 앞두고 지원한 메디컬 스쿨에 합격하진 못했지만 영양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의학에 대한 꿈을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아미케어 김소형한의원’의 金昭亨(김소형·40) 원장은 1993년 미스서울 출신이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건강 코너 출연 당시 ‘미스코리아 출신 한의사’란 수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김씨는 “당선된 지 십수 년이 흘렀는데도 ‘미스코리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을 보면 미스코리아 대회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다”며 “미스코리아 출신이란 이유로 한의사 본연의 모습이 희석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미스코리아 출신 친목단체인 綠園會(녹원회)의 최영옥 회장(1984년 전국 眞·46)은 “녹원회 회원이 360명 정도 되지만 실제 활동하는 인원은 60~70명”이라며 “한 달에 2회씩 정기적으로 모여 유아원과 양로원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한다”고 했다. “미스코리아들이 당선 후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물음에 최 회장은 “과거에 당선된 분들은 주로 가정 주부지만, 최근에 당선되는 사람들은 자기 직업을 갖고 사회 활동하는 사람이 많다”고 답했다.
필자는 지역대회를 취재하면서 미스코리아 대회의 막이 내린 대기실 풍경을 잊을 수 없다. 상을 못 받은 일부 참가자들은 무대 뒤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상을 받은 참가자도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등 희비가 엇갈린 울음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미스전북 선발대회에 참가했던 이아람(24)씨는 “미스코리아 당선 욕심보다는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나왔다”며 “프로필 사진도 증명사진으로 내고,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집안일이 있다고 하고 몰래 대회에 나왔다”고 소감을 말했다.
무대 뒷이야기
전북 미를 수상한 최소담(18)씨는 “진이 안돼서 아쉽지만 멋진 경험이었다”면서 “미스코리아 대회와 관련해 심사위원들에게 돈을 써야 한다, 진선미는 이미 정해져 있다, 미용실 원장에게 돈을 바쳐야 한다는 등 온갖 얘기들을 들었지만 내가 당선된 걸 보니 모두 루머일 뿐”이라며 웃었다.
최소담씨 옆에 있던 아버지 崔圭泰(최규태·46)씨에게 “대회에 출전하는 딸을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원피스 한 벌 사준 것이 전부”라며 웃었다. 최소담씨는 “이제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서 내일부터 등교 준비를 해야 한다”며 청바지와 티셔츠로 갈아 입고 나왔다. 노란색 스니커즈까지 신으니 최씨는 영락없는 대학교 1학년생이었다.
최소담씨 가족이 택시를 잡고 떠나자 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린 전라북도교육문화회관에는 필자 혼자 남았다. ‘그렇게 화려했던 미스코리아 대회였는데 끝난 지 한 시간도 안돼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다니’라는 생각에 허무함이 밀려 왔다.
아름다움이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했고, 현대 철학자 흄은 “사물의 미는 그것을 응시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했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보는 시선도, 한국 대표 미인에 대한 기준도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동국대 국어교육학과 4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다. 대다수 미스코리아 참가자들은 필자와 비슷한 나이였다. 화장을 짙게 하고, ‘사자갈기’라 불리는 파마 머리 때문에 원숙해 보였을 뿐 그녀들은 중간고사 걱정을 하는 여느 대학생과 다름없었다.
참가자 중에는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 자체에 의미를 둔 친구도 있었고, 반드시 입상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강한 친구도 있었다. 최종 목표는 달랐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필자는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지역대회가 열리는 지방을 여러 차례 오갔다. 한 참가자는 필자에게 “늦은 밤까지 취재하느라 고생한다”며 응원해 주기도 했다. 미스코리아 대회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사회에서 서로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목표를 향해 노력한 2009년의 봄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
[인터뷰] 2006 미스코리아 眞· 2007 미스 유니버스 4위 이하늬씨
한글 프린팅, 옥비녀로 눈길 끌어
“미스코리아 대회 때 자신을 10초 안에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저는 그때 판소리 한 소절을 부른 후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입니다. 저를 통해 대한민국은 새로운 문화 코드가 됩니다’라고 말했어요.”
2006 미스코리아 서울 진과 전국 진, 이듬해 미스 유니버스 4위를 차지한 이하늬(26)씨의 말이다. 이씨는 “한국적인 문화 코드로 접근한 것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고 평했다. 그녀는 20년 이상 국악을 공부했지만 한국적 미가 최고라는 확신을 갖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미스코리아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다른 나라의 대표들과 차별화가 안된다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대회 당시 한글 프린트가 된 청바지를 입었고, 액세서리도 옥비녀 같은 전통 장식을 했습니다. 모두 하이 패션(high-fashion)이라며 감탄했어요.”
이하늬씨는 “미스코리아가 가져야 할 당위성은 단순한 미가 아니라 세계에 한국을 인정받게 만드는 데 있다”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수준에 올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하늬씨는 미스코리아의 사회적 역할도 강조했다. 후원하는 어린이를 만나기 위해 필리핀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지역에서 ‘미스코리아가 봉사를 위해 여기까지 왔다’며 한국에 대해 호의적 인식을 가졌다는 사례를 들었다.
“지체장애 어린이와 함께하는 童心(동심)테스트, 체력테스트 등을 거치면서 미스코리아 대회가 외모만 보는 대회가 아님을 느꼈어요. 미스코리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좋게 하려면 미스코리아가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 통계로 본 미스코리아
고학력자 많아지고, 체격도 좋아져
미스코리아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당선자들의 나이와 신체 정보를 토대로 통계 자료를 냈다. 1950~70년대 자료는 없어 1980~2000년대 당선자들 기준으로 집계했다.
1980년대 미스코리아 63명의 평균 나이는 20.93세, 키는 168.9cm, 몸무게는 50.61kg이었다. 가슴-허리-엉덩이 사이즈는 33.89-22.59-34.4인치였다. 1990년대 미스코리아 78명의 경우 평균 나이 20.85세, 키 170.41cm, 몸무게 52.05kg, 신체 사이즈는 33.63-23.73-34.7인치였다. 2000년대 미스코리아 57명의 평균 나이는 22세, 키 171.75cm, 51.32kg, 신체 사이즈는 34.5-23.97-35.26인치로 조사됐다.
시대가 흐를수록 당선자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체격이 좋아진 모습이 발견된다. 2000년대 들어 당선자 나이가 많아진 이유로 고학력자와 미스코리아 대회를 장기간에 걸쳐 준비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에 비해 2000년대 미스코리아들의 키와 몸무게, 신체 사이즈가 모두 늘어났다.
초창기 미스코리아 대회 사회와 심사를 맡았던 정홍택 한국저작권협의회 이사장은 “1960년대만 해도 과학적 미인을 미스코리아로 선발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1960년대만 해도 허리 몇, 다리 길이 몇, 얼굴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를 심사했어요. 그런데 몸매가 34-24-34가 표준이냐 35-23-35가 표준이냐 하는 문제로 등수를 매기기 힘들더라고요. 1970년대부터는 몸매도 중요하지만 얼굴을 비중 있게 보는 쪽으로 바뀌었고, 1980년대 이후부터는 몸매와 얼굴을 종합적으로 심사를 했어요. 현재는 지성미를 많이 보는 추세예요. 외국어 실력도 갈수록 중요하죠. 과거 미스코리아 대회 때는 참가자들이 한복을 입었는데 요즘은 드레스를 입습니다. 대회 풍경과 미의 기준이 서구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미스코리아’이니만큼 한국 미인의 기준은 무엇인지 연구하는 것은 꾸준한 숙제이며 방법론적인 문제라 생각합니다.”
1950년대 미스코리아 심사 기준은 ‘소박하고 평화로운 여성’이었다. 최근은 ‘당당하고 자기 표현력이 뛰어난 여성’을 높게 평가한다.
▣ 미스코리아, 이것이 궁금하다
미스코리아 수영복이 파란색인 이유는?
미스코리아대회의 긴 역사만큼 대회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도 많다. 미스코리아대회 관계자들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미스코리아 대회 이모저모를 정리했다.
―지역마다 미스코리아 대회 규모와 형식이 다른 이유는.
“주최사가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대회 진행 모습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미스서울 대회는 한국일보 본사에서, 그 외 지역 대회는 한국일보 지사 또는 지역신문에서 맡는다. 축제 형식으로 대회를 크게 여는 지역도 있고, 미스서울 대회처럼 관계자만 입장해 간소하게 치르는 경우도 있다. 대회 진행 모양만 다를 뿐 입상 규정과 심사 기준은 같다.”
―미스코리아 수영복은 왜 파란색인가.
“미스코리아 대회를 공중파에 중계할 당시 컬러TV 화질이 떨어져 파란색 외에 다른 색깔의 수영복은 TV 화면에 번지거나 영상처리가 좋지 않았다. 파란색은 화면상으로 매우 안정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파란색 수영복을 입게 됐고, 텔레비전 품질이 좋아진 현재에도 전통이 됐다.”
―미스서울 출신이 미스코리아 진에 자주 당선되는 이유는.
“미스서울이라고 미스코리아 선발할 때 특혜를 주는 것은 아니다. 미스서울 출신 중 미스코리아 진으로서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 많아 자주 당선된 것이라 추측되며 미스서울이 아니어도 미스코리아 진에 선발되는 경우는 많다.”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려면 미용실과 옷값 비용이 많이 든다는데.
“미스코리아 대회를 돈이 안 드는 대회로 만드는 중이다. 참가자들 대상으로 메이크업과 머리, 드레스를 지원하고 있고, 본선대회를 앞둔 합숙 경비도 주최사가 부담한다. 일부 제기되는 미스코리아 대회와 특정 미용실의 커넥션은 있을 수 없으며 심사도 매우 엄격히 한다.”
―‘미스’ 코리아 대회인데 결혼한 여성이 참가한 적은 없나.
“정확한 연도를 밝힐 수 없지만 1970년대에 결혼 경험이 있는 참가자의 당선이 취소된 일이 있었다. 주민등록등본 같은 신원증빙서류를 자세히 보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예전 남편이란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뒤에야 알았다. 그 일 이후 신원을 꼼꼼히 확인한다.”
―‘사자갈기’ 머리를 한 참가자가 많은데 헤어 스타일 규정이 따로 있나.
“미스코리아 당선자 중 ‘사자갈기’ 머리를 한 사람이 많아 유행하는 것 같다. 부풀린 헤어 스타일의 볼륨감은 로맨틱하고 우아한 이미지로 비치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역대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된 50명의 헤어스타일은 사자갈기 업스타일 50%, 웨이브 44%, 기타 6%로 조사된 적이 있다.”
행사는 밤 10시 무렵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절정에 다다랐다. 진행자 金炳燦(김병찬) 아나운서가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진선미 결과 발표만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대전·충남을 대표해 미스코리아 전국대회에 나갈 주인공은 누가 될까요?”
무대 위에 선 참가자들과 이들을 바라보는 가족들 모두 바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김병찬씨가 참가자 네 명을 호출했다.
“기호 1번, 15번, 32번, 36번 후보는 앞으로 나와 주세요.”
최후에 남은 4후보 중 세 명은 미스코리아 眞(진)·善(선)·美(미), 나머지 한 명은 주최사賞(상)을 받게 된다. 진선미 안에 들어야 오는 7월 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미스코리아 전국대회에 지역대표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김병찬씨가 수상자 한 명을 호명했다.
“미스 한국일보입니다. 참가번호 15번 김은지!”
김은지(22)씨는 간발의 차로 3위 내에 못 들었지만 상을 받는다는 사실에 만족해 하며 활짝 웃었다.
긴장의 순간들
다시 김병찬씨의 말이 이어졌다.
“자 이제 최종 세 분이 남았군요. 이 세 분 중에서 진선미가 결정됩니다. 먼저 미부터 발표합니다. 참가번호 1번 조혜민!”
조혜민(23)씨는 긴장이 탁 풀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씨는 꽃다발과 트로피를 안고 무대 뒤로 물러났다. 이제 무대에는 32번 유수정(21) 후보와 36번 한여울(23) 후보가 남았다. 두 후보는 손을 꼭 붙잡았다. 두 사람은 활짝 웃고 있었지만 웃음 속에 긴장감이 흘렀다.
공동 진행자 박희정씨가 잠시 뜸을 들였다.
“진을 먼저 부르겠습니다. 나머지 한 명은 자동으로 선이 됩니다. 발표하겠습니다. 2009 대전·충남 미스코리아의 진은 삼십~.”
두 사람 모두 번호가 30번대였다. 진행자의 말이 이어졌다.
“떨리셨죠? 이번에는 진짜 발표하겠습니다. 2009 대전·충남 미스코리아 진! 참가번호 32번 유수정!”
최종 당선자가 발표되자 천장에서 축하 리본과 금빛 종이들이 흩날렸다. 마지막까지 결과를 기다리던 두 후보는 부둥켜 안고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었다. 대회가 끝나자 가족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참가자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4월 18일 미스경북 선발대회를 시작으로 2009 미스코리아 대회가 시작됐다. 대전지역 본선은 지역 선발대회 중 네 번째로 열렸다. 현재 국내 14개 지역, 해외 2개 국가(미국·일본)에서 예선이 진행되고 있다. 본선은 7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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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 대전·충남 眞 발표하기 직전의 모습. 두 후보의 표정이 초조해 보인다. |
“외부에서 보는 이미지와 너무 달라”
올해 53회를 맞는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 자격은 만 18~25세 사이 고졸 학력 이상의 한국 국적 여성이다. 현주소, 본적, 학교, 직장 소재지 중 연고가 있는 곳에서 출전할 수 있으며 신원 확인을 위한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위와 같은 조건을 충족해 지역 예선 접수를 하면 지역별 심사를 거친다. 대개 서류심사, 신체검사, 장기자랑, 외모 심사(메이크업·노메이크업), 면접(자기소개·시사·교양·외국어)을 본다.
전국대회 본선은 서울에서 열리며, 약 3주간의 합숙과 본선대회 점수를 합산해 진선미와 협찬사상 수상자를 가린다. 전국 ‘진’에 뽑힌 사람은 미스 유니버스, ‘선’은 미스 인터내셔널, ‘미’는 미스 월드라는 국제 미인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197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진선미 외 貞(정)·淑(숙)·賢(현) 그리고 미스 한국일보까지 7명을 뽑았다. 현재는 진·선·미 외에 미스 한국일보, 협찬사 수상자 등 7~8명의 미스코리아가 선발된다.
미스 대전·충남 선발대회가 끝난 직후 대회 현장에서 ‘진’에 당선된 유수정씨를 만났다. 유씨는 미스코리아 왕관과 띠, 트로피가 어색한 듯 어깨를 들썩였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준비하면서 무엇이 가장 어려웠느냐”고 묻자 그녀는 “운동과 음식 조절”이라고 했다.
유수정씨는 목원대 영문과 재학생이다. “학생인데 미스코리아 대회 준비를 학업과 병행하기 어렵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말이다.
“미스코리아 합숙 기간과 학교 수업이 겹쳤어요. 교수님께 공문을 드리며 말씀 드렸죠. 교수님이 좋은 결과 얻고 오라고 격려해 주시더라고요.”
1년 전부터 미스코리아를 꿈꿨다는 그녀는 두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지역 본선이 열린 오늘이 어버이날이라고 알려주자 유씨는 “미스코리아 나간다고 부모님이 내게 도움을 많이 주셨는데 나는 제대로 해드린 것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무대 위에서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선’ 한여울씨도 만났다. “최후의 2인 자리까지 올랐는데 1등을 못해 아쉽지 않으냐”고 했더니 “시원 섭섭하다”며 다소 솔직하게 답했다. 이화여대 무용과 4학년 1학기를 마친 한여울씨는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휴학을 했다고 한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20대 때 꼭 도전하고 싶었어요. 휴학생이라 마침 시간이 맞아 참여했죠. 대회를 준비하면서 워킹, 스피치, 포즈 연습 등 여러 가지를 배웠어요. 좋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제 인생에 잊지 못할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사실 ‘미스코리아 대회’ 하면 외모만 보는 대회라 생각했는데 심사 요소가 다양했어요. 외부에서 보는 이미지와 너무 달라 저도 놀랐어요.”
온 가족이 총출동해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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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년 5월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1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모습. 이때는 참가자들이 한복을 입었다. |
미스코리아 전국대회 진출자의 경우 대회 전 합숙훈련을 약 3주간 거쳐야 한다. 합숙기간도 심사에 들어간다. 이 때문인지 미스코리아 대회를 위해 휴학하는 도전자들이 많았다. 대전·충남 지역 대회에서 협찬사상인 미스 에스캐럿상을 받은 최수정(20)씨는 공문을 내고 한 달간 학교를 빠졌다. 최씨의 말이다.
“교수님들께서 미스코리아 대회 같은 대외 경험을 긍정적으로 보셨어요. 제 전공이 스튜어디스학과이거든요. 대회 참가를 위해 스피치, 워킹, 영어 등을 공부하는데 이런 과목들은 스튜어디스 시험준비 과정과 동일해요.”
특별상 포토제닉상과 후원사상인 행남자기상을 받은 홍수지(21)씨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위해 이번 학기를 휴학했다. 그녀는 “젊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도전하고 싶은 대회라 생각했고 기왕 도전하는 것이라면 제대로 준비하고 싶었다”고 했다.
곁에 있던 아버지 洪成杓(홍성표·50)씨에게 딸이 미스코리아 나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을 물었다.
“딸이 휴학계 제출하고 미스코리아 준비한다고 해서 얼떨떨했죠. 그래도 딸이 목표를 갖고 도전하려는 모습이 가상하더라고요. 이번 미스코리아 대회를 위해 열심히 준비한 과정이 앞으로 인생을 사는 데 교훈이 됐으면 좋겠어요.”
필자가 미스코리아의 세계 취재를 위해 여러 지역 대회를 다니며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부모가 딸보다 더 좋아한다’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학교 선후배까지 총동원한 응원팀, 현수막까지 만들어서 응원하러 온 가족 등 미스코리아 대회를 지역 축제이자 집안의 특별한 행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지난 4월 30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2009 미스경남 선발대회를 다녀왔다. 올해 당선자 시상과 고별행진을 하러 참석한 2007년 경남 ‘선’으로 뽑힌 崔芝晛(최지현·25)씨의 아버지는 ‘안티 미스코리아’다. 뷰티 사업가가 꿈인 최씨는 아버지가 반대할 것 같아 몰래 출전한 끝에 입상했다.
“아버지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여성을 외모로만 평가하려 하고, 여성성을 상품화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특히 수영복 심사를 싫어하셨죠. 그런데 제가 겪은 미스코리아 대회는 외모만 보지 않고 말솜씨, 교양과 같은 내면적 부분도 비중 있게 평가했어요. 수영복 심사는 미스코리아 심사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미스경남 선발대회 참가자 金男恩(김남은·22)씨는 “미스코리아의 3대 평가 요소를 知德體(지덕체)라고 할 때 수영복은 體(체)를 평가하기 위한 한 요소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실력만큼 외모도 뛰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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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 미스코리아 당선자가 오픈카를 타고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
“철학자 플라톤은 ‘여자의 아름다움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 문제를 풀어 드리고 싶습니다.”(참가번호 1번 김유진)
“비단 같은 우리 고장에 저의 꽃 같은 외모로 금상첨화하는 전북의 홍보대사가 되고 싶습니다.”(3번 채민석)
미스전북 대회에서는 무용과 춤을 장기로 선보인 참가자들이 많았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참가번호는 참가자들이 직접 추첨으로 뽑는다. 1번이나 끝 번호가 되기를 서로 싫어해 도입한 제도다. 진행자가 동료의 장기자랑을 어떻게 보았는지 옆 후보에게 물었다. 정혜진씨의 말이다.
“미인은 정면을 응시하는 것이 기본이라 생각해서 동료의 춤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동료에겐 죄송합니다.”
좌중이 한바탕 웃었다. 실제로 미스코리아 대회 내내 참가자들은 정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높은 구두에 풍성하게 올린 파마 머리를 한 채 두세 시간 서 있는 후보들을 보니 미스코리아는 미모뿐만 아니라 체력이 필수임을 느꼈다.
지난 4월 25일 서강대에서 ‘이프 페스티벌’이 열렸다. ‘사단법인 문화미래 이프’에서 주최하는 이프 페스티벌의 前身(전신)은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다. 1999년에 시작된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는 2004년에 막을 내리고 현재 이프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주최 측은 “미스코리아에 대한 주제에서 벗어나 여성의 비정규직·양육권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했다.
안티 미스코리아대회 사회를 맡았던 영화감독 변영주씨는 “미스코리아 대회와 출전자들의 문제보다 여성의 외모로만 뽑는 기준이 잘못됐다”며 “이프 페스티벌과 같은 행사가 많이 생겨서 한국 사회의 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앞당길 것”이라고 했다.
이프 페스티벌 자원봉사자인 李相圭(이상규·美 트리니티대 신방과 졸)씨는 “한국은 확실히 미국보다 외모에 민감하다”며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실력만큼 외모도 뛰어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자원봉사자 文秀眞(문수진·성신여대 법대 4년 휴학 중)씨는 “키 크고 날씬한 신체 사이즈 대신 인성과 품성이 미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며 “미스코리아 대회가 제시하는 미의 기준을 한국 여성이 모두 동의하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사회적 책임
올해 전북과 대전·충남 미스코리아 지역대회를 진행한 김병찬 아나운서는 “후보자들을 인터뷰할 때 상투적인 질문 대신 후보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1990년대 미스코리아 대회 진행을 여러 번 했다. 김 아나운서의 말이다.“과거와 많이 달라졌어요. 요즘 미스코리아들은 옛날과 비교했을 때 꾸밈도 없어졌고, 식견도 높아졌어요. 자신감도 대단하고요. 미스코리아 대회가 美的(미적)인 대회로 비치지 않기 위해 知的(지적)·교양적 측면을 더 부각하면 좋겠어요. 그러면 외모만 보는 대회라는 인식도 씻어 주고, 참가자들의 내적인 미를 이끌어 주어 미스코리아 대회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텔리전스(intelligence)상 같은 것을 신설하는 것도 대안이지요.”
김병찬 아나운서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미스코리아는 미적·지적으로 검증된 사람인데 당선된 후의 행로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미의 사절단인 만큼 미스코리아 그 이상의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작년 미스서울 지역대회 심사위원을 맡은 成演美(성연미·47) 봄온 아나운서 아카데미 원장은 “미스코리아로서 소명과 사명의식이 있는지, 미스코리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지를 평가 항목으로 삼았다”고 했다.
성 원장은 미스코리아 면접 때 “미스코리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가, 미스코리아가 되어 어떤 일을 하고 싶나”를 질문했다고 한다. 미스코리아는 젊은 여성들에 대한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 소신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성연미 원장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미스코리아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 50% 이상이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외적인 부분이라고 응답했고, 현대 여성 리더로서 지적 이미지 보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표1 참조). ‘미스코리아의 어색한 부분은 무엇인가’란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 중 50%가 발성과 발음이 가장 어색하다고 응답했다. 시대적 이미지에 맞지 않는 헤어스타일, 어색하고 경직된 미소가 뒤를 이었다(표1 참조).
미스코리아 합숙제도와 진선미 제도를 도입한 鄭鴻澤(정홍택·73) 현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이사장은 “미스코리아 대회가 외모만 본다는 비판이 있는데, 겉으로 보는 미 말고 내면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이사장의 말이다.
“심사위원에 따라 미인을 보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처럼 일반인들도 심사에 참여시켜 보완해야 합니다. 아울러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한국의 미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미스 유니버스는 지성을, 미스 인터내셔널은 끼와 재능을 주로 평가합니다. 미스코리아의 진선미를 가릴 때 국제미인대회의 콘셉트에 맞게 선발해야죠.”
선발 기준을 차별화해야
얼굴학 서적 <미인>의 저자이자 얼굴학자인 趙鏞珍(조용진·59) 한서대 교수는 “우리나라 미인대회는 특색이 없다”고 했다.
“미스코리아, 수퍼모델, 미스 춘향, 각 지역 미인대회의 차이점이 무엇이죠? 미스코리아 대회 나갔다 떨어지면 수퍼모델 나가고, 인삼 아가씨 선발대회에서 본 사람이 미스 춘향 나가는 사례를 볼 수 있어요. 각 미인대회가 추구하는 취지와 미인상이 달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미에 대한 정체성이 없는 것 같아요. 각종 미인대회가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대회가 추구하는 미의 기준과 선발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조 교수는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미인이 미스코리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스코리아란 국제대회에 내보낼 것을 염두하고 뽑기 때문에 국제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외국 미인과 다를 바 없는 미인보다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미스코리아로서 경쟁력이 있습니다.”
조 교수는 미스코리아의 등수 명칭인 ‘진선미’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미스코리아 대회가 단순히 미모만을 겨루는 것이라면 ‘진’보다 ‘미’가 상위 등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이 1등이잖아요. ‘미’란 감각적 쾌감, ‘선’은 실용성, ‘진’은 정신을 의미해요.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미와 실용적인 선 위에 정신적인 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미스코리아 대회와 유사한 ‘수퍼모델 선발대회’는 큰 키와 마른 몸매, 개성 있는 얼굴을 비중 있게 본다. 이 대회 참가자들의 2000년대 평균 키는 175.54cm이다. 고전적 미인상을 선호하는 미스코리아대회 2000년대 참가자 평균 키는 171.75cm이다.
미스코리아 출신 중 연예계에 진출하는 사람이 많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통해 무대 경험을 쌓고, 미모와 재능을 검증받았다는 경력은 연예계 진출에 유리하다. 미스코리아 입상자란 수식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지만 자신을 대중에게 알리고, 각인시키는 데 미스코리아 경력은 돋보인다.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은 미스코리아 대회를 다니며 눈에 띄는 출전자들에게 연예계 입문을 제의하기도 한다.
롯데제과 모델이었던 1987년 전국 진 장윤정은 미스 유니버스대회에서 2위를 했다. 최근 방영됐던 MBC 드라마 ‘내조의 여왕’의 김남주는 1992년 경기 진 출신이다. 같은 대회 전국 미를 차지한 사람은 드라마 ‘첫사랑’의 이승연이었다. 이승연은 이듬해 미스월드 선발대회에 참가해 톱 10에 올랐다.
이밖에 같은 해 미스코리아 출신 연예인들도 많다. 1988년 전국대회 때 김성령이 진, 김혜리가 선을 차지했다. SBS ‘조강지처클럽’ 드라마로 10년 만에 복귀한 오현경은 1989년 미스코리아 전국 진을 수상했다. 1989년 선은 고현정이었다. 1991년 대회의 전국 진은 ‘사랑의 스튜디오’를 진행한 이영현, 선은 영화배우 염정아다.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김서형은 1992년 강원 진, 같은 드라마에 나온 홍여진은 1979년 전국 선이자 미스코리아 친목단체 녹원회 부회장을 지냈다. 1994년 대회 수상자 중 SBS 아나운서였던 한성주가 전국 진, 탤런트 성현아와 김예분은 미였다. 배우 권민중은 1996년 미스 한국일보, 모델 함소원은 1997년 미스 태평양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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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 중에 미스코리아 출신이 많다. 왼쪽부터 김남주(1992년 경기 眞), 오현경(1989년 전국 眞), 고현정(1989년 전국善). |
기자 된 미스코리아도
2000년대 미스코리아 대회에서도 연예인이 많이 탄생됐다. 2000년 전국 진 김사랑, 미 손태영 그리고 당시 박미선이란 본명으로 출전해 미스 한주여행사로 뽑힌 박시연과 경기 미 윤정희가 있다. 손태영은 같은 해 미스 인터내셔널에 출전해 포토제닉상과 2위를 수상했다.
아시아나항공 모델로 활동했던 이보영은 2002년 대전충남 진이었다. 2003년 전국 진 최윤영, 2006년 전국 진 이하늬 등이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하늬는 미스 유니버스에서 4위를 차지했다.
자매끼리 미스코리아에 입상한 경우도 있다. ‘열림음악회’를 진행한 전직 KBS 아나운서이자 최원석 前(전) 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장은영은 1992년 전국 선, 언니 장혜영은 1987년 미스 르망이었다. 방송인 설수진은 1996년 전국 선, 동생 설수현은 1999년 전국 미를 수상했다.
탤런트 권상우와 결혼한 손태영은 2000년 전국 미 출신이고, 그의 언니 손혜임은 1999년 미스 한국일보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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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미스코리아 대회에서도 연예인이 많이 배출됐다. 왼쪽부터 김사랑(전국 眞), 손태영(전국 美), 박시연(미스 한주여행사). |
1994년 전국 진 출신 한성주는 1996년 SBS 공채 6기 아나운서에 합격했다. 서현진은 2001년 전국 선 출신으로 2004년 MBC에 합격해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다. 2005년 전국 진 김주희는 SBS 13기 공채 아나운서로 선발됐다. 2006년 서울 미 이윤아는 이듬해 SBS 15기 공채 아나운서로 뽑혔다. 2001년 경남 진 이미선은 YTN에서 스포츠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기자가 된 미스코리아도 있다. 2001년 미스코리아 대구 진 김가림(본명 김지은)은 2003년 KBS 대구방송총국 기자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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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운서가 된 미스코리아도 있다. 왼쪽부터 장은영(前 KBS), 한성주(SBS) 그리고 서현진(MBC). |
‘아미케어 김소형한의원’의 金昭亨(김소형·40) 원장은 1993년 미스서울 출신이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건강 코너 출연 당시 ‘미스코리아 출신 한의사’란 수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김씨는 “당선된 지 십수 년이 흘렀는데도 ‘미스코리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을 보면 미스코리아 대회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다”며 “미스코리아 출신이란 이유로 한의사 본연의 모습이 희석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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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궁선영, 금나나, 김소형. 이들은 방송계 대신 학계와 의료계로 진출했다. |
필자는 지역대회를 취재하면서 미스코리아 대회의 막이 내린 대기실 풍경을 잊을 수 없다. 상을 못 받은 일부 참가자들은 무대 뒤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상을 받은 참가자도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등 희비가 엇갈린 울음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미스전북 선발대회에 참가했던 이아람(24)씨는 “미스코리아 당선 욕심보다는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나왔다”며 “프로필 사진도 증명사진으로 내고,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집안일이 있다고 하고 몰래 대회에 나왔다”고 소감을 말했다.
무대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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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코리아 대기실 모습. |
최소담씨 옆에 있던 아버지 崔圭泰(최규태·46)씨에게 “대회에 출전하는 딸을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원피스 한 벌 사준 것이 전부”라며 웃었다. 최소담씨는 “이제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서 내일부터 등교 준비를 해야 한다”며 청바지와 티셔츠로 갈아 입고 나왔다. 노란색 스니커즈까지 신으니 최씨는 영락없는 대학교 1학년생이었다.
최소담씨 가족이 택시를 잡고 떠나자 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린 전라북도교육문화회관에는 필자 혼자 남았다. ‘그렇게 화려했던 미스코리아 대회였는데 끝난 지 한 시간도 안돼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다니’라는 생각에 허무함이 밀려 왔다.
아름다움이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했고, 현대 철학자 흄은 “사물의 미는 그것을 응시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했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보는 시선도, 한국 대표 미인에 대한 기준도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동국대 국어교육학과 4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다. 대다수 미스코리아 참가자들은 필자와 비슷한 나이였다. 화장을 짙게 하고, ‘사자갈기’라 불리는 파마 머리 때문에 원숙해 보였을 뿐 그녀들은 중간고사 걱정을 하는 여느 대학생과 다름없었다.
참가자 중에는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 자체에 의미를 둔 친구도 있었고, 반드시 입상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강한 친구도 있었다. 최종 목표는 달랐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필자는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지역대회가 열리는 지방을 여러 차례 오갔다. 한 참가자는 필자에게 “늦은 밤까지 취재하느라 고생한다”며 응원해 주기도 했다. 미스코리아 대회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사회에서 서로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목표를 향해 노력한 2009년의 봄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
[인터뷰] 2006 미스코리아 眞· 2007 미스 유니버스 4위 이하늬씨
한글 프린팅, 옥비녀로 눈길 끌어
“미스코리아 대회 때 자신을 10초 안에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저는 그때 판소리 한 소절을 부른 후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입니다. 저를 통해 대한민국은 새로운 문화 코드가 됩니다’라고 말했어요.”2006 미스코리아 서울 진과 전국 진, 이듬해 미스 유니버스 4위를 차지한 이하늬(26)씨의 말이다. 이씨는 “한국적인 문화 코드로 접근한 것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고 평했다. 그녀는 20년 이상 국악을 공부했지만 한국적 미가 최고라는 확신을 갖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미스코리아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다른 나라의 대표들과 차별화가 안된다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대회 당시 한글 프린트가 된 청바지를 입었고, 액세서리도 옥비녀 같은 전통 장식을 했습니다. 모두 하이 패션(high-fashion)이라며 감탄했어요.”
이하늬씨는 “미스코리아가 가져야 할 당위성은 단순한 미가 아니라 세계에 한국을 인정받게 만드는 데 있다”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수준에 올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하늬씨는 미스코리아의 사회적 역할도 강조했다. 후원하는 어린이를 만나기 위해 필리핀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지역에서 ‘미스코리아가 봉사를 위해 여기까지 왔다’며 한국에 대해 호의적 인식을 가졌다는 사례를 들었다.
“지체장애 어린이와 함께하는 童心(동심)테스트, 체력테스트 등을 거치면서 미스코리아 대회가 외모만 보는 대회가 아님을 느꼈어요. 미스코리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좋게 하려면 미스코리아가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 통계로 본 미스코리아
고학력자 많아지고, 체격도 좋아져
미스코리아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당선자들의 나이와 신체 정보를 토대로 통계 자료를 냈다. 1950~70년대 자료는 없어 1980~2000년대 당선자들 기준으로 집계했다.
1980년대 미스코리아 63명의 평균 나이는 20.93세, 키는 168.9cm, 몸무게는 50.61kg이었다. 가슴-허리-엉덩이 사이즈는 33.89-22.59-34.4인치였다. 1990년대 미스코리아 78명의 경우 평균 나이 20.85세, 키 170.41cm, 몸무게 52.05kg, 신체 사이즈는 33.63-23.73-34.7인치였다. 2000년대 미스코리아 57명의 평균 나이는 22세, 키 171.75cm, 51.32kg, 신체 사이즈는 34.5-23.97-35.26인치로 조사됐다.
시대가 흐를수록 당선자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체격이 좋아진 모습이 발견된다. 2000년대 들어 당선자 나이가 많아진 이유로 고학력자와 미스코리아 대회를 장기간에 걸쳐 준비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에 비해 2000년대 미스코리아들의 키와 몸무게, 신체 사이즈가 모두 늘어났다.
초창기 미스코리아 대회 사회와 심사를 맡았던 정홍택 한국저작권협의회 이사장은 “1960년대만 해도 과학적 미인을 미스코리아로 선발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1960년대만 해도 허리 몇, 다리 길이 몇, 얼굴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를 심사했어요. 그런데 몸매가 34-24-34가 표준이냐 35-23-35가 표준이냐 하는 문제로 등수를 매기기 힘들더라고요. 1970년대부터는 몸매도 중요하지만 얼굴을 비중 있게 보는 쪽으로 바뀌었고, 1980년대 이후부터는 몸매와 얼굴을 종합적으로 심사를 했어요. 현재는 지성미를 많이 보는 추세예요. 외국어 실력도 갈수록 중요하죠. 과거 미스코리아 대회 때는 참가자들이 한복을 입었는데 요즘은 드레스를 입습니다. 대회 풍경과 미의 기준이 서구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미스코리아’이니만큼 한국 미인의 기준은 무엇인지 연구하는 것은 꾸준한 숙제이며 방법론적인 문제라 생각합니다.”
1950년대 미스코리아 심사 기준은 ‘소박하고 평화로운 여성’이었다. 최근은 ‘당당하고 자기 표현력이 뛰어난 여성’을 높게 평가한다.
▣ 미스코리아, 이것이 궁금하다
미스코리아 수영복이 파란색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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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영복 심사를 받기 위해 참가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
―지역마다 미스코리아 대회 규모와 형식이 다른 이유는.
“주최사가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대회 진행 모습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미스서울 대회는 한국일보 본사에서, 그 외 지역 대회는 한국일보 지사 또는 지역신문에서 맡는다. 축제 형식으로 대회를 크게 여는 지역도 있고, 미스서울 대회처럼 관계자만 입장해 간소하게 치르는 경우도 있다. 대회 진행 모양만 다를 뿐 입상 규정과 심사 기준은 같다.”
―미스코리아 수영복은 왜 파란색인가.
“미스코리아 대회를 공중파에 중계할 당시 컬러TV 화질이 떨어져 파란색 외에 다른 색깔의 수영복은 TV 화면에 번지거나 영상처리가 좋지 않았다. 파란색은 화면상으로 매우 안정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파란색 수영복을 입게 됐고, 텔레비전 품질이 좋아진 현재에도 전통이 됐다.”
―미스서울 출신이 미스코리아 진에 자주 당선되는 이유는.
“미스서울이라고 미스코리아 선발할 때 특혜를 주는 것은 아니다. 미스서울 출신 중 미스코리아 진으로서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 많아 자주 당선된 것이라 추측되며 미스서울이 아니어도 미스코리아 진에 선발되는 경우는 많다.”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려면 미용실과 옷값 비용이 많이 든다는데.
“미스코리아 대회를 돈이 안 드는 대회로 만드는 중이다. 참가자들 대상으로 메이크업과 머리, 드레스를 지원하고 있고, 본선대회를 앞둔 합숙 경비도 주최사가 부담한다. 일부 제기되는 미스코리아 대회와 특정 미용실의 커넥션은 있을 수 없으며 심사도 매우 엄격히 한다.”
―‘미스’ 코리아 대회인데 결혼한 여성이 참가한 적은 없나.
“정확한 연도를 밝힐 수 없지만 1970년대에 결혼 경험이 있는 참가자의 당선이 취소된 일이 있었다. 주민등록등본 같은 신원증빙서류를 자세히 보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예전 남편이란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뒤에야 알았다. 그 일 이후 신원을 꼼꼼히 확인한다.”
―‘사자갈기’ 머리를 한 참가자가 많은데 헤어 스타일 규정이 따로 있나.
“미스코리아 당선자 중 ‘사자갈기’ 머리를 한 사람이 많아 유행하는 것 같다. 부풀린 헤어 스타일의 볼륨감은 로맨틱하고 우아한 이미지로 비치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역대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된 50명의 헤어스타일은 사자갈기 업스타일 50%, 웨이브 44%, 기타 6%로 조사된 적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