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사랑 받은 비결은 ‘3無3有’
3無
⊙ 성별·연령·지역 제한이 없다
⊙ 체면과 겉치레가 없다
⊙ 특정 주인공이 없다
3有
⊙ 흥겨움이 있다
⊙ 인간미가 있다
⊙ 가족이 있다
3無
⊙ 성별·연령·지역 제한이 없다
⊙ 체면과 겉치레가 없다
⊙ 특정 주인공이 없다
3有
⊙ 흥겨움이 있다
⊙ 인간미가 있다
⊙ 가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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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노래자랑의 녹화 모습. 전국노래자랑 시작을 알리는 음악은 ‘비둘기집’의 김기웅 작곡가가 만들었다.
노래를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필자이지만 장수 프로그램 KBS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했다. 예심 과정은 어떤지, 방송 시작 30년이 되도록 사그라들지 않는 전국노래자랑의 매력은 무엇인지, 전국노래자랑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방송제작 과정 등 전국노래자랑에 대한 궁금증을 파헤치기 위해서였다.
“1차 예심 시작할게요. 먼저 상록구 일동에서 접수한 분들 나오세요. 일렬로 줄 서세요.”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 평일이지만 전국노래자랑 예심이 열리는 달맞이 극장은 노래자랑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내가 몇 시간 전부터 왔는데 왜 못 들어가!” “전 참가자 가족이에요! 들여보내 주세요!”
예심에 참여한 사람만 500여 명. 구경하는 사람 수는 참가자보다 훨씬 많아 극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주최 측은 입장을 못한 사람들을 위해 대형 모니터로 예심 장면을 ‘중계’했다.
오후 1시부터 시작한 예심은 3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노래와 춤을 연습하거나 예심 모습을 지켜보면서 순서를 기다렸다. 필자는 예심 현장을 스케치하고, 참가자들 인터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동에서 접수한 분들 나오세요… 본오 1동, 본오 2동… 미리 줄 서 계세요. 월피동, 성포동….”
1차 예심에서 고배
이제 몇 사람만 기다리면 필자의 차례다. 필자의 앞에 있던 사람이 무대에 올라 “태진아의 동반자 부르겠습니다” 하고는 구성진 목소리로 “당신은 나의 동반자~” 노랠 뽑았다. 예심을 맡은 이 프로그램의 방송작가 鄭翰郁(정한욱)씨가 “감정 넣으세요! 감정” 하고 소리쳤다.
참가자가 감정을 섞어 “영원한 나의 동반자~”를 뽑았으나 영 시원치 않았는지 정 작가는 다시 “감정!” 하고 외쳤다.
“내 생애 최고의 선물~ 당신과 만남이었어~.”
정 작가가 “합격! 2차 예심 신청서 받아 가세요”라고 하자 참가자는 손뼉을 치며 “꺄아아악” 하고 기쁨의 함성을 외쳤다.
이제 필자의 차례다. 청테이프로 표시된 선 앞에 서니 설렘도 잠시. 무대에 서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팔다리가 오싹해졌다.
‘가사가 생각 안 나면? 아는 사람이 나를 보고 있으면? 목소리가 안 나오면? 긴장해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몇 초 동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뒹굴었다.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라도 많은 청중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래하세요.”
심사위원이 말했다.
침을 꼴깍 삼켰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머리 전체에 울렸다. 마이크를 들었다. 손잡이가 땀으로 촉촉해졌다.
“자… 자… 장윤정의 ‘짠짠짠’입니다.”
힘껏 외치고는 “짠짠짠하게 하지 말아요~” 하며 노래를 뽑았다.
눈동자를 굴려 심사위원석을 흘끗 바라봤다. 심사위원 3명 모두 안경을 썼는데, 조명 빛에 안경알이 반사돼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노래는 계속됐다.
“말없이 그냥 가세요~ 짠짠짠 이제 울지 않아요~ 잘 가요 안녕 내 사랑 짠짜~.”
“잘 가요, 안녕히 가세요. 수고하셨습니다.”
탈락이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쏜살같이 무대를 빠져나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전국노래자랑 첫 도전은 1분도 안돼 끝났다. 심장이 아직도 쿵쿵 뛰었다. 1차 통과는 기대도 안 했지만 막상 떨어지니 머쓱했다. 잘 익은 사과처럼 얼굴이 벌개졌지만 기분은 유쾌했다. 마을 잔치에 참가해 한바탕 웃고 신나게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온 느낌이었다.
지자체들, 너도나도 녹화 신청
1980년 첫 방송을 시작한 KBS ‘전국노래자랑’이 올해로 29년, 한국 나이로 30세를 맞았다. 매주 전국을 돌며 예심을 거쳐 선발된 일반인이 노래 경연을 하는 방식으로 꾸며지는 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은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진행자 宋海(송해)씨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장기를 선보이고, 자기 고장 자랑을 하는 등 함께 어울린다.
전국노래자랑은 녹화할 도시를 정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라 유치 신청이 쇄도한다. 제작진은 신청 지역을 대상으로 녹화한 적이 없거나, 녹화 경험이 있더라도 시간이 오래 지난 곳을 우선적으로 선정한다. 문화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지역, 문화 혜택을 덜 받는 지역을 안배하고, 각 道(도)별 균형까지 고려해 녹화 지역을 정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외에서 녹화를 하지만 겨울에는 실내 녹화를 하기 때문에 체육관이나 문화회관 같은 큰 시설이 있는지의 여부도 선정기준에 포함된다. 지자체에서 노래자랑 신청이 쏟아지는 시기는 4월과 5월, 9월과 10월이다. 지자체 행사와 축제를 많이 개최하는 때이고,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라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한다.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다른 행사와 연계해서 하는 경우도 많다. 지역축제의 전야제 또는 피날레를 목적으로 노래자랑을 신청하는 것이다. 경북 경산市(시)의 경우 3월 7일 경산실내체육관 및 육상경기장 준공 기념식의 일환으로 전국노래자랑을 유치했다.
녹화지가 결정되면 제작진은 사전답사를 한다. 녹화하기에 적합한지, 방송장비가 들어갈 수 있는지 등을 점검한다. 장소가 낙점되면 담당 프로듀서, 작가, 악단장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현지로 먼저 출발, 예심을 진행한다. 두 차례의 예심을 거쳐 15팀 내외의 아마추어 출연자를 선발한다. 예심이 끝난 밤부터 녹화 전날까지 방송을 준비한다.
방송 진행표(큐시트)와 방송 대본이 만들어지고, 라이브 밴드에 맞게 노래를 편곡한다. 지방 녹화의 경우 예심 다음날 진행자 송해씨와 심사위원 등 모든 제작진이 현장으로 내려간다. 서울 및 수도권에서 녹화가 이뤄질 경우에는 녹화 당일 내려가기도 한다. 음향시설 및 장비는 녹화 전날 설치가 완료된다.
전국노래자랑에는 방송을 총괄하는 1명의 책임 프로듀서와, 3명의 현장 PD가 있다. 3명의 PD들은 한 주씩 돌아가며 방송을 맡는데, 보통 수요일이나 토요일에 녹화한다. 신청 지역이 많다 보니 일주일에 두 지역에서 녹화하는 일도 있다. 權寧泰(권영태) 책임 프로듀서의 말이다.
“사회자 송해 선생은 25년째, 김인협 악단장의 경우 올해 29년째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고 계시고, 다른 악단 단원들도 최소 10년 이상 일해 왔어요. 담당 작가도 18년째 하고 있는 등 전국노래자랑에는 오래 근무한 분들이 참 많아요. 전국노래자랑은 30년 가까이 이어져 온 프로그램이라서 스태프별로 분업이 잘돼 있어요. 자기 일만 하면 한 편의 프로그램이 ‘뚝딱’ 만들어집니다. 쉽게 말하면 프로 선수들인 셈이죠.”
전국노래자랑은 일요일 낮(12시10분)에 방송되는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12~17%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TNS 미디어 코리아가 대전광역시를 대상으로 시청률 조사를 한 결과 최근 6개월 동안 60대 이상 시청률이 무려 25.8%로 조사됐다. 이 수치는 매주 일요일 시청률 상위 10위권 내에 드는 것으로서,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현재 공중파 TV 3사에서 방영되는 가요 프로그램 중에서는 시청률 1위다. 권영태 책임 PD의 설명이다.
가요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
“타 방송국에서 죽어도 못 따라오는 프로가 바로 전국노래자랑과 가요무대예요. 특히 전국노래자랑의 경우 예전에 MBC와 SBS에서 여러 차례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실패했습니다.”
권 PD는 전국노래자랑을 ‘일식집 회가 아닌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活魚(활어)’라고 비유했다.
“제가 그동안 여러 프로그램을 연출해 봤지만 전국노래자랑은 타 프로에 비해 살아있다는 감정, 생생한 느낌이 들어요. 약간은 투박하고, 허름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인간 냄새가 나고, 人情(인정)이 있습니다.”
PD들은 프로그램을 맡으면 자기 색깔을 내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권 PD는 전국노래자랑은 노래자랑만의 색깔이 워낙 강해서 PD의 개성이나 색깔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청자들은 한 사람이 30년 동안 노래자랑을 만든 것처럼 볼 수도 있어요. 연출자 색깔을 내기는 어려운 프로그램이지만,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그 모습이 전국노래자랑이란 프로의 인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도 안산시편 초대가수였던 玄哲(현철)씨의 말이다.
“전국노래자랑은 가족처럼 대화도 하고, 노래도 신명 나게 같이할 수도 있는 등 기쁨을 나누기 좋은 프로그램이에요. 아무데나 걸터앉아 막걸리 한 잔 얻어 먹는 분위기의 인간미가 넘쳐나는 프로고, 무대와 객석이 혼연일체가 되기 때문에 장수 프로로 남는다고 생각해요.”
초대가수였던 裵一湖(배일호)씨는 “전국노래자랑은 ‘쌀밥’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처럼 언제나 한결같고 정감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배씨는 “이 프로그램은 일반인이 함께 만드는 프로”라며 “매주 장소와 출연자가 바뀌는 점이 항상 신선함을 준다”고 했다.
金榮宣(김영선) PD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국노래자랑은 변하지 않았어요. 연륜도 있고, PD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입니다. 서민적이고, 경험과 추억을 쌓고, 지역 구경도 하는 정말 매력 있는 프로그램이죠.”
28년 전 AD로 전국노래자랑과 인연을 맺은 김 PD는 “전국노래자랑은 타 프로그램에 비해 예산이 적고, 광고를 판매하지도 않는다”면서 “참가자들에게 출연료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프로그램에 나오고 싶어서 안달”이라고 했다.
경북 경산시 예심에서 만난 張烈勳(장열훈·76)씨는 “전국노래자랑 한 번 나가는 것 자체가 일생일대 영광”이라고 했다. 서울 송파구의 경우 예심 참가 인원이 1300여 명이나 됐다고 한다.
노래자랑 참가 위해 학교 옥상에서 맹연습
다시 경기도 안산의 예심 현장으로 돌아간다. 이날 예심에는 안산과 인근 도시에서 온 시민 500여 명이 참가했다. 심사위원 정한욱 작가는 예심에 참여한 출연진과 일일이 대화를 나눈다.
“윤수일의 아파트입니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반짝이 의상은 따로 준비하셨어요?
“오늘을 위해 특별히 입었습니다!”
―근데, 수고하셨어요.
“(마이크를 든 채 혼잣말로) 아휴~ 난 내가 떨어질 줄 알았어.”
―마이크는 두고 가세요(관중 웃음).”
“엄정화의 페스티벌입니다. 이제는 웃는 거야 스마일 어게인~ 힘든 일 모두 잊어 버려~.”
―힘드시죠?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고생 소방차입니다! 어젯밤에 난 네가 미워졌어~ 어젯밤에 난 네가 싫어졌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나 혼자 가슴 아팠어!”
―탈락시키는 저도 가슴이 아파요. 수고하셨습니다.
‘6인조 여고생 소방차’는 노래자랑 참가를 위해 학교 건물 옥상에서 연습했다고 한다.
“고 3 되기 전에 좋은 추억 만들고 싶어서 왔어요. 노래자랑 나간다고 하니까 담임 선생님이 보충학습도 빼주시던걸요?”
이하나(18·시흥고)양의 말에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하는 사연은 다양했다. 추억을 만들기 위해, 가족을 위해, 어릴 적 못 다한 꿈을 위해, 아이를 위해 그리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 등 전국노래자랑은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였다. 노래자랑에 참여하고 시청하는 사람 모두가 주인공인 감동의 드라마였다.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른 金必燮(김필섭·74·시흥시)씨는 “노인정에서 배운 춤을 추면 돋보일 것 같다”면서 의욕을 보였다. 金智恩(김지은·9·안산 중앙초 2년)양은 “엄마랑 매주 노래자랑을 시청한다”며 “노래자랑 하면 송해 아저씨, 실로폰, 악단”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58년 개띠 안산의 바니걸스’ 로 소개한 洪順禮(홍순례·서울 동작구), 洪順和(홍순화·시화) 자매의 말이다.
“소녀 때 가수 지망생이었어요. 인기상 타려고 옷도 맞춰 입고 왔는데 떨어져서 아쉬워요. 하지만 떨어져도 재밌어요. 자신의 끼를 남에게 발산하니까 좋네요.”
참가자 모두가 주인공
회사 몰래 예심에 참여했다는 權泰完(권태완·32)씨는 “합격해서 회사 사람 놀래려 했는데 그냥 조용히 돌아가야겠네요”라며 멋쩍어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국노래자랑만큼 편안하고 푸근한 프로그램은 없는 것 같아요. 송해 선생님의 넉넉한 이미지가 프로그램 성격과 맞아요. 매주 출연자도 바뀌니 무궁무진하죠.”
전국노래자랑에서는 일반인도 주인공이 될 수 있어 좋다는 퇴직 공무원 金産鎬(김산호·62·성포동)씨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무반주에다 청중들이 몰려 있어 노래를 부르기가 힘들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權玉蘭(권옥란·39·부곡동)씨는 “예심에 떨어졌다고 해서 낙심하지 않는다”며 “아이들에게 엄마가 무언가에 도전하고 잘 해낼 수 있다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오후 1시부터 시작한 안산시 1차 예심은 5시40분이 돼서야 끝났다. 총 62팀이 2차 예심에 올랐다. 6시에 시작하는 2차 예심을 통과해야 송해 선생과 함께 전국노래자랑 녹화무대에 설 수 있다.
예심을 치르느라 참가자들도 긴장되고 피곤했지만 약 5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예심을 본 심사위원도 지쳐 보였다. 심사에 참여한 김영선 PD는 “제가 힘들 게 있나요. 노래 순서 기다리는 출연자가 힘들죠”라고 했다. 지방 출장도 잦고, 참가자 심사로 체력 소모가 큰 제작진이지만 애청자들 덕분에 힘을 얻는다고 한다.
2차 예심은 1차 예심과 달리 관중석이 아닌 심사위원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 때는 1차 예심과 달리 반주가 따라붙는다. 1팀당 들이는 심사 시간도 더 길다. 노래 실력은 기본이며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장기 및 개인기 또는 사연’이 평가대상으로 추가된다. 예심에서 부른 곡 대신 다른 곡을 불러야 할 때도 있다.
“안녕하세요~ 안산 시민이라면 개나 소나 다 아는 ‘정소나’입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가창력은 좋은데 노래 분위기가 우울해요. 밝은 노래로 부를 줄 아는 거 있어요? 참가신청서에 성대모사를 장기로 쓰셨네요.
“네, 강아지 흉내내기를 잘합니다.”
―강아지요? 해보실래요?
“왈왈(관중 웃음).”
2차 예심을 통과하여 본선에 진출한 鄭素娜(정소나·서울대 조소과 3)씨는 “마야의 ‘진달래꽃’을 불렀는데 노래가 어두워 전국노래자랑 분위기와 맞지 않다고 체리필터의 ‘해야’로 바꿨다”고 말했다.
다음 출연자가 나섰다.
“마음은 예쁘게~ 표정은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하면서 잊지 말아야 하죠.”
참가자의 눈빛만 봐도 감이 와
―몸 동작이 작아요, 무대 넓게 쓰세요.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어머니, 첫째 딸, 둘째 딸, 셋째 딸, 며느리입니다.”
―노래자랑 참가 이유는?
“올해 어머니 칠순인데 기념으로 가족끼리 나왔습니다.”
―교복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제 딸, 딸의 친구, 친구의 딸…(관중 웃음).”
예심 위원 겸 이 프로그램의 작가인 정한욱씨의 말이다.
“일단 노래가 기본이죠. 우리 프로그램은 라이브 악단으로 반주하기 때문에 음악을 어느 정도 맞춰 줘야 돼요. 장기가 있으면 더 좋지요.”
전국노래자랑에서만 18년째 작가로 일하고 있다는 정씨는 참가자 눈빛만 봐도 감이 온다고 했다.
“걸음걸이, 얼굴 표정, 눈빛만 봐도 느낌이 와요. 당당하지 못한 사람은 안돼요. 나올 때부터 자신감 넘치고 표정 좋으면 뽑히더라고요. 심사할 때 노래 부르는 사람만 보이는 게 아니라 줄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와요.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반드시 됩니다. 안 보는 것 같지만 우리는 객석도 봐요. 모르는 척하지만 다 듣고 보고 있죠.”
오후 6시부터 시작한 2차 예심은 저녁 8시 반이 돼서야 끝났다. 15분 뒤에 전국노래자랑 녹화무대에 설 본선진출 16팀이 발표됐다.
“2차 예심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훌륭하고 실력 있으신 거예요. 떨어졌다고 아쉬워 마시고요. 합격하신 분들은 자리에 남아서 오리엔테이션 받고 가세요. 자~ 발표할게요.”
참가자 이름이 하나 둘씩 불릴 때마다 환호성과 탄식이 곳곳에서 들렸다. 4명의 아이들과 함께 2차 예심에 참가한 宋仁玉(송인옥·안산시 초지동)씨의 얼굴에는 탈락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지만 노래자랑에 나갔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해 보였다. 송인옥씨의 말이다.
“친정 어머니가 난소암 말기신데 전국노래자랑 애청자세요. 어느 날 어머니가 제게 ‘너는 왜 전국노래자랑 같은 데 못 나가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의 투병생활에 힘이 되어 드리고자 도전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예심 기다리느라 배고팠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며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다.
어머니와 딸, 며느리 팀도 출연
李準熙(이준희·고잔초 교사)씨는 “아내가 최종 합격했다”며 싱글벙글이었다. “장모님도 전국노래자랑 출신이세요. 아내가 대를 이은 거죠. 우리 딸도 연습시켜서 노래자랑에 내보낼래요”라며 딸을 안아 올렸다. 횟집을 운영하는 본선 진출자 薛基五(설기오·사2동)씨는 “녹화하는 날 가게 문을 닫고, 가족 직원들을 모두 부르겠다”며 들떠 있었다.
10대 소녀 그룹 카라의 노래를 부른 어머니와 세 딸, 며느리로 구성된 팀은 “본선진출에 성공했다”며 축제 분위기였다. 尹敬重(윤경중·70)씨는 “당뇨 때문에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아픈 줄도 모르고 노래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둘째 딸 白慈榮(백자영·인천시)씨는 “교복 자율화 때문에 교복을 못 입었는데 노래자랑 준비하면서 교복을 입었어요. 감회가 새롭네요. 어머니 칠순을 뜻 깊게 보낸 것 같아요. 이처럼 좋은 추억을 언제 만들어 보겠어요”라고 말했다.
전국노래자랑에 나간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를 묻자 며느리 李賢貞(이현정·부곡동)씨는 “자식들이 우리보다 더 좋아하고 부모를 대단하게 본다”면서 “아이들 일기장에 쓸 내용도 많아지고, 가족끼리 친해질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일본 NHK에는 ‘노도지망(のど自慢·노래자랑)’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방송 시간대, 지방을 순회하며 진행하는 점, 일반인들이 출연해 노래대결을 한다는 점과 실로폰으로 합격 여부를 가리는 방식이 전국노래자랑과 비슷하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나와서 노래대결을 한다는 방식은 같지만 노도지망은 노래 위주로 심사하고 주로 실내에서 제작한다. 반면에 전국노래자랑은 재미와 추임새가 노래 실력만큼 비중 있게 평가되고, 겨울 이외에는 야외무대에서 녹화한다.
권영태 전국노래자랑 책임 PD의 말이다.
“전국노래자랑 예심을 봐서 아시겠지만, 근엄하거나 지위 있는 분들도 예심 통과 하려고 춤도 춰요. ‘TV 출연에 환장했나’ 싶을 정도로 철저히 망가지는 겁니다. 능청스럽게 하는 사람도 많지요. 전국노래자랑은 가수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노래를 통해 ‘즐거움’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에요. 노래만 잘 부르는 사람이 전국노래자랑 나오면 오히려 떨어질 확률이 큽니다. 노래를 잘하지만 재미 부분이 부족하잖아요. 우리 프로그램은 노래만 잘 부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장기가 있거나 개인기, 춤, 말주변도 보거든요.”
전국노래자랑의 특색은 전국을 찾아다니며 방송을 하는데 있다. 전국노래자랑을 시청하다 보면 한국 지리 공부가 저절로 될 정도다.
지방에서 녹화를 할 경우, 제작진은 미리 현장에 내려가 방송준비를 한다. 노래자랑 악단에서 베이스 기타를 맡는 辛在東(신재동)씨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쌀과 라면, 밥솥을 갖고 출장을 다녔다. 김치, 고추장, 참기름을 갖고 다니며 비빔국수도 해 먹었다”고 했다. 정한욱 작가의 말이다.
“우리는 유랑극단이라니까요. 예전에는 한 달씩 출장 다니기도 했어요. 버스에 취사도구를 싣고 다녔죠. 아침에 라면 쫘~악 끓여서 ‘식사하세요’ 이랬죠. 마음씨 좋은 여관집 아줌마가 김치를 주시면 정말 달게 먹었어요. 시간 나면 낚시도 하고. 약주도 하고 그러죠.”
전국노래자랑 제작진의 지방녹화 풍경이 궁금했다. 마침 경북 경산시편을 위해 사회자 송해 선생을 비롯한 제작진이 녹화 전날 내려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산시 예심에서 탈락한 아픔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필자는 전국노래자랑 작가에게 “동행하고 싶다”고 했다.
정한욱 작가는 모이는 장소를 알려주며 “오전 10시까지 오라”고 했다. 정 작가는 “버스가 더 일찍 떠날 수 있으니 미리 도착해 있으라”고 말했다. 버스가 더 일찍 떠난다는 말이 모호하게 들렸지만 늦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평소 시간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감기 걸린 사회자 송해 선생
3월 6일 오전 9시경, 광화문에서 전철을 타고 여의도역을 향해 가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李明敎(이명교) 무대감독이었다.
“지금 어디세요? 언제 도착해요? 5분 뒤에 떠날 건데요.”
“네? 벌써요? 10시까지라면서요?”
“우리 제작진은 일찍 모이거든요. 기자님 빼고 다 왔으니까 빨리 오세요.”
시계를 보니 9시25분이다. 무작정 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탔다. 휴대전화가 또 울렸다. 역시 이명교 무대감독이었다.
“어디예요? 어른들 기다리시잖아요.”
“아! 버스 보이네요. 다 왔어요.”
9시40분에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자 송해 선생을 비롯한 제작진의 시선이 쏟아졌다. 필자 때문에 버스 출발시간이 10분 지연된 것이다. 정한욱 작가가 말한 ‘10시까지 오되 더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말뜻을 그제서야 알아챘다. 연륜 있는 스태프가 많다 보니 약속시간을 더 철저히 지키는 분위기인 것 같았다. 송해 선생은 계속 기침을 했다.
“선생님, 감기 걸리셨어요?”
“응. 목이 아파서 술을 못 마셔요.”
송 선생은 술을 못 마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15년째 악단에서 테너 색소폰을 맡고 있는 崔在勳(최재훈)씨가 희한한 사실을 ‘폭로’했다.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노래자랑 제작진은 나이순대로 주량이 세요. 송해 선생님이 1위, 그 다음이 김인협 악단장님이죠.” 송 선생은 ‘다른 건 젊은이한테 져도 술은 안 진다’고 말했다.
경북 경산시에 도착, 영남대 근처 숙소에 짐을 풀었다. 송해 선생은 사우나를 하러 간다고 했다. 사우나를 마친 후 대본 등을 보며 내일 녹화준비를 할 예정이란다.
필자는 짐 정리를 한 후 녹화장소인 경산실내체육관을 방문했다. 오는 5월 경북도민체육대회를 위해 만들어진 경산실내체육관은 5000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전국노래자랑 경북 경산시편 녹화 날이 밝았다. 6시40분에 숙소 앞에서 아침을 먹고 8시30분에 경산실내체육관으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숙소 근처 쇠고기국밥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식당 텔레비전을 통해 일기예보가 나오자 정한욱 작가가 말했다.
“다음주 경남 고성편부터는 야외녹화라 날씨 뉴스를 유심히 봐요. 예전에 영덕군 녹화 갔을 때 폭우가 쏟아졌어요. 관중들에게 ‘비오는데 계속 있으시겠어요?’라고 물으니 수천 명이 ‘네!’ 이러는 거예요.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노래말 개사는 허용 안돼
녹화장소에 도착했다. 9시가 채 안됐는데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노래자랑을 앞에서 보려고 8시에 왔다는 鄭福姬(정복희·64·진량읍)씨는 “전국노래자랑과 진행자의 이웃사촌처럼 부담 없고 수수한 이미지 때문에 좋아한다”고 했다.
녹화는 오후 1시부터지만, 출연자들은 오전 10시까지 와서 노래연습을 하고 작가와 진행자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10시가 다 되어 가자 녹화무대에 오를 출연자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정한욱 작가가 리허설을 진행했다.
“자기소개 크게 하고~ 자기소개 하면 음악이 나옵니다. 무대 신나게 돌아다니셔도 돼요. 음악 나오면 앞으로 나가서 객석의 환호를 이끌어내세요. 땡 안 맞으시면 좋겠지만, 실로폰 소리 나오면 들어가세요. 지금부터 자기소개부터 연습해 보겠습니다. 노래는 1절만 하구요, 전주는 시간관계상 짧게 합니다. 지금부터 연습합니다. 다 자기 자리 가시고. 첫 번째 출연자 나오세요~ 뛰어 나오세요. 차렷 인사!”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총 16팀 30여 출연자들의 노래 연습이 끝났다. 아마추어지만 다들 수준급의 가창력과 끼를 선보였다. 의무경찰 6명도 경찰복을 입고 출전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 삽살개 보존협회 삽살개 훈련사 김하얀씨는 “경북 경산시의 명물인 삽살개를 홍보하러 노래자랑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진짜 삽살개도 등장하니 기대하시라”고 했다.
2008 경산 대추아가씨 선발대회 입상자들도 팀을 이루어 출전했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부른다는 朴恩正(박은정·眞)씨는 “서울 대전 대구 ‘경산’으로 부르려 했는데 改辭(개사)는 금지라고 해서 아쉬웠다”며 “대추, 대추과자, 대추빵을 들고 송해 선생님께 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역 특산물도 무대에 등장해 출연자와 진행자가 서슴없이 어울리는 장이 바로 전국노래자랑이었다.
송해 선생은 출연자들과 일일이 만나 방송이 어떻게 진행되고 인터뷰는 어떤 내용으로 할지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가 예전에 탔다는 전국노래자랑 메달을 2개나 걸고 온 金大根(김대근·와촌면)씨를 만났다. 아버지가 김씨에게 무슨 말씀을 했는지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부지가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더. ‘내 대를 이어도오~’.”
출연자들은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송해 선생이 출연자들의 긴장을 풀어줬다.
“이웃이 모여 어울린다는 마음을 가지세요. 노래 잘해야지~ 고민하지 말고, 마음이 놓인 상태에서 하세요. 아까 말했지만 ‘내 평생 한 번 또 다시 나올지 안 나올지 약속을 못하잖아. 그러니까 가지고 있는 내 것을 발산시키라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점심 잘 드시고. 걱정 너무 하지 마시고. 아~무 걱정 하지 마세요.”
진행자와 출연자들의 사전연습이 끝났다. 송해 선생은 식사를 마친 후 대본과 방송 진행표를 다시 한번 꼼꼼히 봤다. 메모도 하고 읊조리기도 하는 등 털털한 방송 이미지와는 다르게 녹화 준비할 때만큼은 꼼꼼하고 빈틈 없었다.
내 인생 최고의 무대를 위해
녹화 시작 5분 전. 5000여 석 규모의 경산실내체육관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경산시 새마을문화과 丁海石(정해석)씨는 “체육관 밖에 200인치 텔레비전을 두 개나 설치했다. 실내체육관 안과 밖의 인파를 다 합치면 1만5000명 정도”라고 말했다. 정한욱 작가가 녹화 시작 직전에 안내방송을 했다.
“관중 분들 무대 올라오지 마시고, 카메라 앞에 왔다갔다 하면서 가리지 마세요. 전국노래자랑 시작할 때 현수막 갖고 온 분 모두 들어서 흔드세요. 자기 팀 나올 때 그때그때 흔들어 주세요. 좋아하는 초대가수 노래 끝나고 ‘앙코르’ 부르면 한 곡 더 들을 수 있습니다. 싫으면 안 해도 되구요.”
‘청춘을 돌려다오! 이병호 아버님 파이팅!’, ‘와촌의 장동건’, ‘영남대학교 F4, 꽃보다 동현’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보였다. 복도에 돗자리를 깔고 구경하는 사람,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온 사람 등 체육관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李祐勝(이우승·81)씨는 “노래자랑을 보려고 휠체어까지 타고 왔다”며 “전국노래자랑이 고향에서 열려 기쁘다”고 말했다.
오후 1시가 되자 송해 선생이 무대에 올랐다. 사람들의 함성에 체육관 지붕이 떠나갈 듯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여러분 안녕하세요’ 하면 ‘안녕하세요’ 하셔야 해요. 가끔씩 ‘네’라고 하는 분 있는데 같이 인사해 주세요.”
재치 있는 멘트에 관중이 까르르 웃는다. 전국노래자랑의 시작을 알리는 실로폰이 울렸다. 송해 선생이 ‘전국~’을 말하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자랑~’을 외쳤다. ‘온 국민의 점심시간 CM송’이란 별명이 있는 전국노래자랑 오프닝 음악이 연주됐다.
“전국에 계신 노래자랑 가족 여러분, 해외 동포, 해외 근로자 여러분, 大海(대해)를 누비는 외항선원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의 뜻과 염원으로 새롭게 준공된 실내체육관을 찾아와 주신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제가 아침 저녁 일교차 땜에 목감기가 걸렸습니다. 감기 걸렸어도 열심히 할 테니 잘 봐주세요!”
송해 선생의 능숙한 진행으로 전국노래자랑이 시작됐다. 이윽고 첫 출연자 박지현씨의 무대다. 박씨는 ‘찰랑찰랑’의 반주가 시작되자 코트를 벗어 던지고 다소곳한 이미지와 다르게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객석은 온통 웃음바다가 됐다.
이윽고 영남외국어대 태권도 시범단이 노래와 공중 목판 격파 장기를 보여줬다. 이때 權慧敏(권혜민·영남외대 태권도학과)양은 목판 격파를 첫 시도에서 실패하고 두 번째에 성공했다.
“다들 즐거워하니까 나도 기뻐”
그녀는 “처음 시도 때 목판 격파에 실패했어요. 송해 선생님이 ‘이렇게 헛방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거죠?’라고 넘어가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덕분에 긴장이 풀려 2번째 도전에선 성공한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를 부른 尹賢美(윤현미)씨는 ‘땡’을 맞았다. 윤씨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쏜살같이 무대를 내려갔다. 송해 선생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나한테 한눈팔다 그런 겨? 괜찮아요”라며 다독였다.
경산시편 최고령 출연자 李炳昊(이병호·80)씨는 ‘짝사랑’을 부르다가 박자를 놓쳤다. 송해 선생은 “사람들 많아서 정신이 없으시죠? 아유~ 박수 한번 쳐주세요. 나이 드시면 더 떨리게 마련이죠”라며 다시 기회를 주었다.
노래를 마친 이씨는 “본선 가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 카더이, 노래자랑 경산 다시 올 때쯤이면 내 아마 귀신 돼 있을 거요”라며 “부끄럽더라도 다들 즐거워 하니까니 내도 기뻐요”라고 쑥스러워했다.
경산 대추아가씨들 차례가 왔다. 노래를 마친 경산 대추아가씨들은 바구니에 대추를 담아 송해 선생과 악단에게 나누어 주었다. 송해 선생은 “조용하다가도 먹을 거 나오면 서슬이 시퍼래져”라고 말했다. 김인협 악단장은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맛있게 대추를 다 먹었다.
박은정씨가 “이거 드시고 딩동댕 쳐 주셔야 됩니다”라고 말하자 송 선생은 심사위원석을 가리키며 “딩동댕은 저기서 치는 거야”라고 했다.
대추아가씨들이 황급하게 심사위원들에게 대추를 올렸다. 송 선생은 또 훈수했다.
“대추 너무 많이 드리지 마, 근력 너무 세지면 실로폰 소리 안 나.”
이를 지켜본 관중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전국노래자랑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판소리 한마당 같았다. 경산시편 초대가수로 나온 李涌(이용)씨의 소감이다.
“전국노래자랑은 아마추어의 숨은 끼를 발산하는 장소예요. 다른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박수를 받는다는 마음을 갖는데, 여기서 노래를 부르면 노래자랑 참여자들에게 제가 박수를 쳐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제가 보조역할이고 일반인 출연자가 주인공입니다.”
버스안 ‘쫑파티’
송해 선생은 특별손님 두 분을 소개했다.
“부산에서 두 분 오셨고, 빨간 옷 입은 분은 익산에서 오셨어요. 이분들은 왕팬이야 왕팬! 우리들 율동 반장님들이십니다.”
송해 선생이 소개한 ‘왕팬’들을 현장에서 만났다. 이들은 관중석 맨 앞 ‘명당자리’에서 노래가 나올 때마다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이다. 전북 익산시에서 무궁화 열차를 타고 왔다는 李炳喆(이병철·72)씨는 “지역 관광도 하고 흥겨워서 5년째 매주 전국노래자랑을 따라다닌다”면서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전국노래자랑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해 선생이 ‘부산 갈매기’란 별명까지 지어 줬다는 동갑내기 高吉相(고길상·부산 진구)씨와 金鐘根(김종근·부산 금정구)씨는 “전국노래자랑 녹화장에 오면 스트레스도 풀고, 기분 나쁜 일도 잊어버리는 등 모든 게 좋다”고 했다. 자식들의 반응은 어떤지를 묻자 두 사람은 “또 가시나 보나 하지 뭐 있어. 허허”라고 말했다.
녹화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쫑파티가 열렸다. 지방녹화를 끝내고 귀경하는 버스 안에서 종종 파티를 한다고 했다. 서태룡 PD가 안주거리를 사러 가자 김인협 악단장이 말했다.
“안주 따질 게 뭐 있어? 소금만 있으면 되지. 난 소금만 있어도 잘 마셔.”
누군가 “그럼 단장님은 안주 드시지 마세요”라고 하자 김 단장은 “말이 그렇다는 거여”라고 하여 사람들이 한바탕 웃었다. 안주도 맛동산, 새우깡, 보름달빵 등 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답게 ‘장수식품’으로만 먹는 것 같았다. 제작진은 종이컵에 소주나 맥주를 따르며 기분 좋게 들이켰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 폭탄주가 돌기도 했다.
녹화가 무사히 잘 끝나 고조된 분위기였다. 정한욱 작가의 말이다.
“녹화 끝나고도 술 마시지만 녹화 전날에도 과음하는 경우가 있어요. 사람들이 녹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해요. 그런데 다음날 말~끔하게 나와요. 만화 ‘떠돌이 까치’의 주인공 버금가는 정신력이죠. 우리는 유랑극단이라니까요. 한 판 끝나고 한 잔 마시고, 짐 싸들고 또 마시고.”
정과 흥이 있는 무대
서태룡 PD는 “전국노래자랑은 예능국 PD들 사이에서도 꼭 맡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이라며 “정년 1년을 앞두고 전국노래자랑 PD를 맡게 돼서 정말 영광”이라고 했다. 송해 선생은 감기 때문에 술 못 먹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빈 술병들이 늘어났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술을 마시니 취기가 오래 갔다.
제작진은 휴게소에 들러 우동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뜨끈한 우동국물로 ‘해장’하는 분위기였다. 송해 선생을 알아본 휴게소 직원이 호두과자 큰 봉지 두 개를 제작진에게 선물했다. 송해 선생만 따라다니면 굶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귀경하는 버스 안에서 전국노래자랑 식구들은 휴게소에서 받은 호두과자와 ‘경산 대추아가씨’들로부터 받은 대추과자를 나눠 먹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캄캄한 밤이었다. 또 만날 기약을 하고 헤어졌다.
전국노래자랑이 30년 넘게 사랑 받는 이유를 ‘情(정)’과 ‘興(흥)’으로 비유하고 싶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우리 민족의 성향이 노래자랑으로 재현된 것이다.
전국노래자랑에는 3가지가 없고, 3가지가 있다. 전국노래자랑에는 제한이 없다. 성별, 연령, 지역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전국노래자랑에는 체면과 겉치레가 없다. 무대 위에서 격식을 차리지 않고 망가져도 된다. 전국노래자랑에는 주인공이 없다. 특정 인물이 주인공이 아닌,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듣고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다.
전국노래자랑에는 흥겨움이 있다. 노래와 춤이 있다. 세대와 세월을 넘어 누구나 흥겨움에 취한다. 전국노래자랑에는 인간미가 있다. 각기 사연을 안고 무대에 오른 출연자와 이를 발현해 주는 진행자, 구경꾼들 사이에 인간미가 흐른다. 전국노래자랑에는 가족이 있다. 제작진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성원하고 좋아하는 사람 모두 가족과 같다.⊙
▣ 전국노래자랑 참여하려면
각 동사무소나 공공기관에 참가신청서를 접수하면 누구나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할 수 있다.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 나이, 성별, 직업, 국적 제한 없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안산시 편에서 만난 한국생활 3개월째의 수야띠(여·GM대우 근무)씨는 “인도네시아에도 노래자랑 프로그램이 있지만 한국이 더 신나 보여 참가했다”고 했다.
참가신청서에는 간단한 인적사항과 부를 노래 3곡을 적고, 장기 및 사연이 있으면 추가로 기입한다. 신청곡 3곡 중 예심 때 부를 노래는 본인이 정하지만 가창력 검증을 위해 심사단이 나머지 곡을 부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참가자들은 무반주로 관객을 향해 노래를 부른다. 예심 신청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의 모든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악단장, PD, 작가로 구성된 심사단은 1차 예심 참가자들의 노래 몇 소절을 들은 즉시 합격 여부를 알려준다. 합격이면 “합격입니다. 2차 예심 신청서 받아가세요”, 불합격일 경우 “수고하셨습니다”란 말을 듣게 된다. 실로폰 소리는 본 방송 녹화 때만 나온다. ‘딩동댕’이 아닌 ‘땡’ 소리도 본선 진출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 아닌 영광이라 할 수 있다.
[인터뷰] 金寅協 전국노래자랑 악단장
“송해 선생과는 눈빛으로 말하는 사이”
金寅協(김인협) 악단장은 전국노래자랑과 29년간 인연을 맺었다. TBC 동양방송 악단에 있다가 1980년 언론통폐합 이듬해 KBS로 옮겨와 1981년 가을 개편 때부터 전국노래자랑 지휘와 연주를 맡았다. 초창기 전국노래자랑 촬영을 위해 악단에서 악기를 싣고 이동하려면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초창기 사고가 많았습니다. 옛날에는 진공관 앰프가 많았는데 차량에 싣고 가 꺼내 놓으면 진공관이 부서져 있었어요. 차량 뒤쪽 화물칸에 악기를 싣고 가다 문이 열린 틈으로 악기가 사라진 적도 많았습니다. 급히 학교 밴드부에서 빌려 썼지요.”
전국노래자랑은 아마추어 출연자를 상대로 반주하기 때문에 악단의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악단은 사람이 바뀌면 가장 지장이 많다”면서 “‘김인협 악단’ 멤버들은 呼兄呼弟(호형호제) 하면서 지금껏 호흡을 맞춰왔다”고 했다.
김 악단장은 “사회자 송해 선생님은 TBC 있을 때부터 같이 일했기 때문에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한다”고 했다. 그는 송해씨와 TBC 공개방송 ‘가로수를 누비며’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는 “송해 선생님은 ‘가로수를 누비며’ 진행자로 라디오방송과 일주일에 한 번 雲峴宮(운현궁)에서 공개방송을 진행하며 ‘운전기사 노래자랑’을 시작했다”면서 “그뒤 전국노래자랑의 다섯 번째 진행자가 되셨고, 오늘의 전국노래자랑으로 키워내셨다”고 했다.
[인터뷰] 鄭翰郁 전국노래자랑 작가
“나는 作家가 아니라 雜家”
鄭翰郁(정한욱) 작가는 스스로를 ‘作家(작가)’가 아닌 ‘雜家(잡가)’라고 했다. 전국노래자랑을 위해 그는 18년 동안 대본은 물론, 예선 심사, 출연자 음악지도, 현장 진행까지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작가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길 기회가 없었느냐’고 묻자, “다른 프로 PD들이 ‘정 작가 좀 빌려가겠다’고 할 때마다 송해 선생님과 PD가 반대해서 성사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교육방송(EBS) 기획제작부 AD로 일하다 1992년 KBS 측의 요청으로 전국노래자랑 작가로 전업, 18년째 ‘전국노래자랑 전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부모님 대를 이어 나온다는 출연자를 보면 전국노래자랑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껏 200자 원고지에 손으로 원고를 쓴다. 송해씨가 ‘손 글씨’를 원하기 때문. 그는 방송 한 편에 40매 정도의 원고를 작성한다. 예전에는 50~70매 정도를 썼다고 한다. 요즘에는 인터뷰 상황과 중요 대사만 쓰고, 나머지는 송해씨가 ‘애드립’으로 진행한다. 긴장한 출연자를 파악해 농담도 건네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송해씨의 노하우라고 한다.
정씨는 “1995년 30시간 비행 끝에 파라과이 교포위문공연을 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李美子(이미자)의 ‘서울이여 안녕’이란 노래를 부르는 아주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함께 울었다”고 했다.
“1차 예심 시작할게요. 먼저 상록구 일동에서 접수한 분들 나오세요. 일렬로 줄 서세요.”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 평일이지만 전국노래자랑 예심이 열리는 달맞이 극장은 노래자랑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내가 몇 시간 전부터 왔는데 왜 못 들어가!” “전 참가자 가족이에요! 들여보내 주세요!”
예심에 참여한 사람만 500여 명. 구경하는 사람 수는 참가자보다 훨씬 많아 극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주최 측은 입장을 못한 사람들을 위해 대형 모니터로 예심 장면을 ‘중계’했다.
오후 1시부터 시작한 예심은 3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노래와 춤을 연습하거나 예심 모습을 지켜보면서 순서를 기다렸다. 필자는 예심 현장을 스케치하고, 참가자들 인터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동에서 접수한 분들 나오세요… 본오 1동, 본오 2동… 미리 줄 서 계세요. 월피동, 성포동….”
1차 예심에서 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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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동댕동’,‘땡’을 알리는 전국노래자랑 마스코트인 실로폰. |
참가자가 감정을 섞어 “영원한 나의 동반자~”를 뽑았으나 영 시원치 않았는지 정 작가는 다시 “감정!” 하고 외쳤다.
“내 생애 최고의 선물~ 당신과 만남이었어~.”
정 작가가 “합격! 2차 예심 신청서 받아 가세요”라고 하자 참가자는 손뼉을 치며 “꺄아아악” 하고 기쁨의 함성을 외쳤다.
이제 필자의 차례다. 청테이프로 표시된 선 앞에 서니 설렘도 잠시. 무대에 서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팔다리가 오싹해졌다.
‘가사가 생각 안 나면? 아는 사람이 나를 보고 있으면? 목소리가 안 나오면? 긴장해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몇 초 동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뒹굴었다.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라도 많은 청중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래하세요.”
심사위원이 말했다.
침을 꼴깍 삼켰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머리 전체에 울렸다. 마이크를 들었다. 손잡이가 땀으로 촉촉해졌다.
“자… 자… 장윤정의 ‘짠짠짠’입니다.”
힘껏 외치고는 “짠짠짠하게 하지 말아요~” 하며 노래를 뽑았다.
눈동자를 굴려 심사위원석을 흘끗 바라봤다. 심사위원 3명 모두 안경을 썼는데, 조명 빛에 안경알이 반사돼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노래는 계속됐다.
“말없이 그냥 가세요~ 짠짠짠 이제 울지 않아요~ 잘 가요 안녕 내 사랑 짠짜~.”
“잘 가요, 안녕히 가세요. 수고하셨습니다.”
탈락이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쏜살같이 무대를 빠져나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전국노래자랑 첫 도전은 1분도 안돼 끝났다. 심장이 아직도 쿵쿵 뛰었다. 1차 통과는 기대도 안 했지만 막상 떨어지니 머쓱했다. 잘 익은 사과처럼 얼굴이 벌개졌지만 기분은 유쾌했다. 마을 잔치에 참가해 한바탕 웃고 신나게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온 느낌이었다.
지자체들, 너도나도 녹화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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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선 진출자들에게 녹화 진행 방법을 설명하는 송해 진행자. 왼쪽은 정한욱 작가다. |
전국노래자랑은 녹화할 도시를 정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라 유치 신청이 쇄도한다. 제작진은 신청 지역을 대상으로 녹화한 적이 없거나, 녹화 경험이 있더라도 시간이 오래 지난 곳을 우선적으로 선정한다. 문화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지역, 문화 혜택을 덜 받는 지역을 안배하고, 각 道(도)별 균형까지 고려해 녹화 지역을 정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외에서 녹화를 하지만 겨울에는 실내 녹화를 하기 때문에 체육관이나 문화회관 같은 큰 시설이 있는지의 여부도 선정기준에 포함된다. 지자체에서 노래자랑 신청이 쏟아지는 시기는 4월과 5월, 9월과 10월이다. 지자체 행사와 축제를 많이 개최하는 때이고,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라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한다.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다른 행사와 연계해서 하는 경우도 많다. 지역축제의 전야제 또는 피날레를 목적으로 노래자랑을 신청하는 것이다. 경북 경산市(시)의 경우 3월 7일 경산실내체육관 및 육상경기장 준공 기념식의 일환으로 전국노래자랑을 유치했다.
녹화지가 결정되면 제작진은 사전답사를 한다. 녹화하기에 적합한지, 방송장비가 들어갈 수 있는지 등을 점검한다. 장소가 낙점되면 담당 프로듀서, 작가, 악단장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현지로 먼저 출발, 예심을 진행한다. 두 차례의 예심을 거쳐 15팀 내외의 아마추어 출연자를 선발한다. 예심이 끝난 밤부터 녹화 전날까지 방송을 준비한다.
방송 진행표(큐시트)와 방송 대본이 만들어지고, 라이브 밴드에 맞게 노래를 편곡한다. 지방 녹화의 경우 예심 다음날 진행자 송해씨와 심사위원 등 모든 제작진이 현장으로 내려간다. 서울 및 수도권에서 녹화가 이뤄질 경우에는 녹화 당일 내려가기도 한다. 음향시설 및 장비는 녹화 전날 설치가 완료된다.
전국노래자랑에는 방송을 총괄하는 1명의 책임 프로듀서와, 3명의 현장 PD가 있다. 3명의 PD들은 한 주씩 돌아가며 방송을 맡는데, 보통 수요일이나 토요일에 녹화한다. 신청 지역이 많다 보니 일주일에 두 지역에서 녹화하는 일도 있다. 權寧泰(권영태) 책임 프로듀서의 말이다.
“사회자 송해 선생은 25년째, 김인협 악단장의 경우 올해 29년째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고 계시고, 다른 악단 단원들도 최소 10년 이상 일해 왔어요. 담당 작가도 18년째 하고 있는 등 전국노래자랑에는 오래 근무한 분들이 참 많아요. 전국노래자랑은 30년 가까이 이어져 온 프로그램이라서 스태프별로 분업이 잘돼 있어요. 자기 일만 하면 한 편의 프로그램이 ‘뚝딱’ 만들어집니다. 쉽게 말하면 프로 선수들인 셈이죠.”
전국노래자랑은 일요일 낮(12시10분)에 방송되는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12~17%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TNS 미디어 코리아가 대전광역시를 대상으로 시청률 조사를 한 결과 최근 6개월 동안 60대 이상 시청률이 무려 25.8%로 조사됐다. 이 수치는 매주 일요일 시청률 상위 10위권 내에 드는 것으로서,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현재 공중파 TV 3사에서 방영되는 가요 프로그램 중에서는 시청률 1위다. 권영태 책임 PD의 설명이다.
가요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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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노래자랑은 아직도 손으로 쓴 대본을 사용한다. |
권 PD는 전국노래자랑을 ‘일식집 회가 아닌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活魚(활어)’라고 비유했다.
“제가 그동안 여러 프로그램을 연출해 봤지만 전국노래자랑은 타 프로에 비해 살아있다는 감정, 생생한 느낌이 들어요. 약간은 투박하고, 허름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인간 냄새가 나고, 人情(인정)이 있습니다.”
PD들은 프로그램을 맡으면 자기 색깔을 내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권 PD는 전국노래자랑은 노래자랑만의 색깔이 워낙 강해서 PD의 개성이나 색깔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청자들은 한 사람이 30년 동안 노래자랑을 만든 것처럼 볼 수도 있어요. 연출자 색깔을 내기는 어려운 프로그램이지만,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그 모습이 전국노래자랑이란 프로의 인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도 안산시편 초대가수였던 玄哲(현철)씨의 말이다.
“전국노래자랑은 가족처럼 대화도 하고, 노래도 신명 나게 같이할 수도 있는 등 기쁨을 나누기 좋은 프로그램이에요. 아무데나 걸터앉아 막걸리 한 잔 얻어 먹는 분위기의 인간미가 넘쳐나는 프로고, 무대와 객석이 혼연일체가 되기 때문에 장수 프로로 남는다고 생각해요.”
초대가수였던 裵一湖(배일호)씨는 “전국노래자랑은 ‘쌀밥’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처럼 언제나 한결같고 정감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배씨는 “이 프로그램은 일반인이 함께 만드는 프로”라며 “매주 장소와 출연자가 바뀌는 점이 항상 신선함을 준다”고 했다.
金榮宣(김영선) PD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국노래자랑은 변하지 않았어요. 연륜도 있고, PD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입니다. 서민적이고, 경험과 추억을 쌓고, 지역 구경도 하는 정말 매력 있는 프로그램이죠.”
28년 전 AD로 전국노래자랑과 인연을 맺은 김 PD는 “전국노래자랑은 타 프로그램에 비해 예산이 적고, 광고를 판매하지도 않는다”면서 “참가자들에게 출연료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프로그램에 나오고 싶어서 안달”이라고 했다.
경북 경산시 예심에서 만난 張烈勳(장열훈·76)씨는 “전국노래자랑 한 번 나가는 것 자체가 일생일대 영광”이라고 했다. 서울 송파구의 경우 예심 참가 인원이 1300여 명이나 됐다고 한다.
노래자랑 참가 위해 학교 옥상에서 맹연습
다시 경기도 안산의 예심 현장으로 돌아간다. 이날 예심에는 안산과 인근 도시에서 온 시민 500여 명이 참가했다. 심사위원 정한욱 작가는 예심에 참여한 출연진과 일일이 대화를 나눈다.
“윤수일의 아파트입니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반짝이 의상은 따로 준비하셨어요?
“오늘을 위해 특별히 입었습니다!”
―근데, 수고하셨어요.
“(마이크를 든 채 혼잣말로) 아휴~ 난 내가 떨어질 줄 알았어.”
―마이크는 두고 가세요(관중 웃음).”
“엄정화의 페스티벌입니다. 이제는 웃는 거야 스마일 어게인~ 힘든 일 모두 잊어 버려~.”
―힘드시죠?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고생 소방차입니다! 어젯밤에 난 네가 미워졌어~ 어젯밤에 난 네가 싫어졌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나 혼자 가슴 아팠어!”
―탈락시키는 저도 가슴이 아파요. 수고하셨습니다.
‘6인조 여고생 소방차’는 노래자랑 참가를 위해 학교 건물 옥상에서 연습했다고 한다.
“고 3 되기 전에 좋은 추억 만들고 싶어서 왔어요. 노래자랑 나간다고 하니까 담임 선생님이 보충학습도 빼주시던걸요?”
이하나(18·시흥고)양의 말에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하는 사연은 다양했다. 추억을 만들기 위해, 가족을 위해, 어릴 적 못 다한 꿈을 위해, 아이를 위해 그리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 등 전국노래자랑은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였다. 노래자랑에 참여하고 시청하는 사람 모두가 주인공인 감동의 드라마였다.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른 金必燮(김필섭·74·시흥시)씨는 “노인정에서 배운 춤을 추면 돋보일 것 같다”면서 의욕을 보였다. 金智恩(김지은·9·안산 중앙초 2년)양은 “엄마랑 매주 노래자랑을 시청한다”며 “노래자랑 하면 송해 아저씨, 실로폰, 악단”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58년 개띠 안산의 바니걸스’ 로 소개한 洪順禮(홍순례·서울 동작구), 洪順和(홍순화·시화) 자매의 말이다.
“소녀 때 가수 지망생이었어요. 인기상 타려고 옷도 맞춰 입고 왔는데 떨어져서 아쉬워요. 하지만 떨어져도 재밌어요. 자신의 끼를 남에게 발산하니까 좋네요.”
참가자 모두가 주인공
회사 몰래 예심에 참여했다는 權泰完(권태완·32)씨는 “합격해서 회사 사람 놀래려 했는데 그냥 조용히 돌아가야겠네요”라며 멋쩍어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국노래자랑만큼 편안하고 푸근한 프로그램은 없는 것 같아요. 송해 선생님의 넉넉한 이미지가 프로그램 성격과 맞아요. 매주 출연자도 바뀌니 무궁무진하죠.”
전국노래자랑에서는 일반인도 주인공이 될 수 있어 좋다는 퇴직 공무원 金産鎬(김산호·62·성포동)씨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무반주에다 청중들이 몰려 있어 노래를 부르기가 힘들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權玉蘭(권옥란·39·부곡동)씨는 “예심에 떨어졌다고 해서 낙심하지 않는다”며 “아이들에게 엄마가 무언가에 도전하고 잘 해낼 수 있다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오후 1시부터 시작한 안산시 1차 예심은 5시40분이 돼서야 끝났다. 총 62팀이 2차 예심에 올랐다. 6시에 시작하는 2차 예심을 통과해야 송해 선생과 함께 전국노래자랑 녹화무대에 설 수 있다.
예심을 치르느라 참가자들도 긴장되고 피곤했지만 약 5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예심을 본 심사위원도 지쳐 보였다. 심사에 참여한 김영선 PD는 “제가 힘들 게 있나요. 노래 순서 기다리는 출연자가 힘들죠”라고 했다. 지방 출장도 잦고, 참가자 심사로 체력 소모가 큰 제작진이지만 애청자들 덕분에 힘을 얻는다고 한다.
2차 예심은 1차 예심과 달리 관중석이 아닌 심사위원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 때는 1차 예심과 달리 반주가 따라붙는다. 1팀당 들이는 심사 시간도 더 길다. 노래 실력은 기본이며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장기 및 개인기 또는 사연’이 평가대상으로 추가된다. 예심에서 부른 곡 대신 다른 곡을 불러야 할 때도 있다.
“안녕하세요~ 안산 시민이라면 개나 소나 다 아는 ‘정소나’입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가창력은 좋은데 노래 분위기가 우울해요. 밝은 노래로 부를 줄 아는 거 있어요? 참가신청서에 성대모사를 장기로 쓰셨네요.
“네, 강아지 흉내내기를 잘합니다.”
―강아지요? 해보실래요?
“왈왈(관중 웃음).”
2차 예심을 통과하여 본선에 진출한 鄭素娜(정소나·서울대 조소과 3)씨는 “마야의 ‘진달래꽃’을 불렀는데 노래가 어두워 전국노래자랑 분위기와 맞지 않다고 체리필터의 ‘해야’로 바꿨다”고 말했다.
다음 출연자가 나섰다.
“마음은 예쁘게~ 표정은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하면서 잊지 말아야 하죠.”
참가자의 눈빛만 봐도 감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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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전국노래자랑 악단의 모습(맨 왼쪽이 김인협 단장). |
“어머니, 첫째 딸, 둘째 딸, 셋째 딸, 며느리입니다.”
―노래자랑 참가 이유는?
“올해 어머니 칠순인데 기념으로 가족끼리 나왔습니다.”
―교복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제 딸, 딸의 친구, 친구의 딸…(관중 웃음).”
예심 위원 겸 이 프로그램의 작가인 정한욱씨의 말이다.
“일단 노래가 기본이죠. 우리 프로그램은 라이브 악단으로 반주하기 때문에 음악을 어느 정도 맞춰 줘야 돼요. 장기가 있으면 더 좋지요.”
전국노래자랑에서만 18년째 작가로 일하고 있다는 정씨는 참가자 눈빛만 봐도 감이 온다고 했다.
“걸음걸이, 얼굴 표정, 눈빛만 봐도 느낌이 와요. 당당하지 못한 사람은 안돼요. 나올 때부터 자신감 넘치고 표정 좋으면 뽑히더라고요. 심사할 때 노래 부르는 사람만 보이는 게 아니라 줄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와요.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반드시 됩니다. 안 보는 것 같지만 우리는 객석도 봐요. 모르는 척하지만 다 듣고 보고 있죠.”
오후 6시부터 시작한 2차 예심은 저녁 8시 반이 돼서야 끝났다. 15분 뒤에 전국노래자랑 녹화무대에 설 본선진출 16팀이 발표됐다.
“2차 예심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훌륭하고 실력 있으신 거예요. 떨어졌다고 아쉬워 마시고요. 합격하신 분들은 자리에 남아서 오리엔테이션 받고 가세요. 자~ 발표할게요.”
참가자 이름이 하나 둘씩 불릴 때마다 환호성과 탄식이 곳곳에서 들렸다. 4명의 아이들과 함께 2차 예심에 참가한 宋仁玉(송인옥·안산시 초지동)씨의 얼굴에는 탈락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지만 노래자랑에 나갔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해 보였다. 송인옥씨의 말이다.
“친정 어머니가 난소암 말기신데 전국노래자랑 애청자세요. 어느 날 어머니가 제게 ‘너는 왜 전국노래자랑 같은 데 못 나가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의 투병생활에 힘이 되어 드리고자 도전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예심 기다리느라 배고팠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며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다.
어머니와 딸, 며느리 팀도 출연
李準熙(이준희·고잔초 교사)씨는 “아내가 최종 합격했다”며 싱글벙글이었다. “장모님도 전국노래자랑 출신이세요. 아내가 대를 이은 거죠. 우리 딸도 연습시켜서 노래자랑에 내보낼래요”라며 딸을 안아 올렸다. 횟집을 운영하는 본선 진출자 薛基五(설기오·사2동)씨는 “녹화하는 날 가게 문을 닫고, 가족 직원들을 모두 부르겠다”며 들떠 있었다.
10대 소녀 그룹 카라의 노래를 부른 어머니와 세 딸, 며느리로 구성된 팀은 “본선진출에 성공했다”며 축제 분위기였다. 尹敬重(윤경중·70)씨는 “당뇨 때문에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아픈 줄도 모르고 노래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둘째 딸 白慈榮(백자영·인천시)씨는 “교복 자율화 때문에 교복을 못 입었는데 노래자랑 준비하면서 교복을 입었어요. 감회가 새롭네요. 어머니 칠순을 뜻 깊게 보낸 것 같아요. 이처럼 좋은 추억을 언제 만들어 보겠어요”라고 말했다.
전국노래자랑에 나간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를 묻자 며느리 李賢貞(이현정·부곡동)씨는 “자식들이 우리보다 더 좋아하고 부모를 대단하게 본다”면서 “아이들 일기장에 쓸 내용도 많아지고, 가족끼리 친해질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일본 NHK에는 ‘노도지망(のど自慢·노래자랑)’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방송 시간대, 지방을 순회하며 진행하는 점, 일반인들이 출연해 노래대결을 한다는 점과 실로폰으로 합격 여부를 가리는 방식이 전국노래자랑과 비슷하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나와서 노래대결을 한다는 방식은 같지만 노도지망은 노래 위주로 심사하고 주로 실내에서 제작한다. 반면에 전국노래자랑은 재미와 추임새가 노래 실력만큼 비중 있게 평가되고, 겨울 이외에는 야외무대에서 녹화한다.
권영태 전국노래자랑 책임 PD의 말이다.
“전국노래자랑 예심을 봐서 아시겠지만, 근엄하거나 지위 있는 분들도 예심 통과 하려고 춤도 춰요. ‘TV 출연에 환장했나’ 싶을 정도로 철저히 망가지는 겁니다. 능청스럽게 하는 사람도 많지요. 전국노래자랑은 가수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노래를 통해 ‘즐거움’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에요. 노래만 잘 부르는 사람이 전국노래자랑 나오면 오히려 떨어질 확률이 큽니다. 노래를 잘하지만 재미 부분이 부족하잖아요. 우리 프로그램은 노래만 잘 부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장기가 있거나 개인기, 춤, 말주변도 보거든요.”
전국노래자랑의 특색은 전국을 찾아다니며 방송을 하는데 있다. 전국노래자랑을 시청하다 보면 한국 지리 공부가 저절로 될 정도다.
지방에서 녹화를 할 경우, 제작진은 미리 현장에 내려가 방송준비를 한다. 노래자랑 악단에서 베이스 기타를 맡는 辛在東(신재동)씨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쌀과 라면, 밥솥을 갖고 출장을 다녔다. 김치, 고추장, 참기름을 갖고 다니며 비빔국수도 해 먹었다”고 했다. 정한욱 작가의 말이다.
“우리는 유랑극단이라니까요. 예전에는 한 달씩 출장 다니기도 했어요. 버스에 취사도구를 싣고 다녔죠. 아침에 라면 쫘~악 끓여서 ‘식사하세요’ 이랬죠. 마음씨 좋은 여관집 아줌마가 김치를 주시면 정말 달게 먹었어요. 시간 나면 낚시도 하고. 약주도 하고 그러죠.”
전국노래자랑 제작진의 지방녹화 풍경이 궁금했다. 마침 경북 경산시편을 위해 사회자 송해 선생을 비롯한 제작진이 녹화 전날 내려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산시 예심에서 탈락한 아픔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필자는 전국노래자랑 작가에게 “동행하고 싶다”고 했다.
정한욱 작가는 모이는 장소를 알려주며 “오전 10시까지 오라”고 했다. 정 작가는 “버스가 더 일찍 떠날 수 있으니 미리 도착해 있으라”고 말했다. 버스가 더 일찍 떠난다는 말이 모호하게 들렸지만 늦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평소 시간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감기 걸린 사회자 송해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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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해 진행자가 태권도 격파에 도전하기 위해 기합을 넣고 있다. |
“지금 어디세요? 언제 도착해요? 5분 뒤에 떠날 건데요.”
“네? 벌써요? 10시까지라면서요?”
“우리 제작진은 일찍 모이거든요. 기자님 빼고 다 왔으니까 빨리 오세요.”
시계를 보니 9시25분이다. 무작정 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탔다. 휴대전화가 또 울렸다. 역시 이명교 무대감독이었다.
“어디예요? 어른들 기다리시잖아요.”
“아! 버스 보이네요. 다 왔어요.”
9시40분에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자 송해 선생을 비롯한 제작진의 시선이 쏟아졌다. 필자 때문에 버스 출발시간이 10분 지연된 것이다. 정한욱 작가가 말한 ‘10시까지 오되 더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말뜻을 그제서야 알아챘다. 연륜 있는 스태프가 많다 보니 약속시간을 더 철저히 지키는 분위기인 것 같았다. 송해 선생은 계속 기침을 했다.
“선생님, 감기 걸리셨어요?”
“응. 목이 아파서 술을 못 마셔요.”
송 선생은 술을 못 마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15년째 악단에서 테너 색소폰을 맡고 있는 崔在勳(최재훈)씨가 희한한 사실을 ‘폭로’했다.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 노래자랑 제작진은 나이순대로 주량이 세요. 송해 선생님이 1위, 그 다음이 김인협 악단장님이죠.” 송 선생은 ‘다른 건 젊은이한테 져도 술은 안 진다’고 말했다.
경북 경산시에 도착, 영남대 근처 숙소에 짐을 풀었다. 송해 선생은 사우나를 하러 간다고 했다. 사우나를 마친 후 대본 등을 보며 내일 녹화준비를 할 예정이란다.
필자는 짐 정리를 한 후 녹화장소인 경산실내체육관을 방문했다. 오는 5월 경북도민체육대회를 위해 만들어진 경산실내체육관은 5000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전국노래자랑 경북 경산시편 녹화 날이 밝았다. 6시40분에 숙소 앞에서 아침을 먹고 8시30분에 경산실내체육관으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숙소 근처 쇠고기국밥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식당 텔레비전을 통해 일기예보가 나오자 정한욱 작가가 말했다.
“다음주 경남 고성편부터는 야외녹화라 날씨 뉴스를 유심히 봐요. 예전에 영덕군 녹화 갔을 때 폭우가 쏟아졌어요. 관중들에게 ‘비오는데 계속 있으시겠어요?’라고 물으니 수천 명이 ‘네!’ 이러는 거예요.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노래말 개사는 허용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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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전대구부산’을 부른 경산 대추아가씨들. 왼쪽부터 박은정, 고지은, 김효정씨. |
녹화는 오후 1시부터지만, 출연자들은 오전 10시까지 와서 노래연습을 하고 작가와 진행자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10시가 다 되어 가자 녹화무대에 오를 출연자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정한욱 작가가 리허설을 진행했다.
“자기소개 크게 하고~ 자기소개 하면 음악이 나옵니다. 무대 신나게 돌아다니셔도 돼요. 음악 나오면 앞으로 나가서 객석의 환호를 이끌어내세요. 땡 안 맞으시면 좋겠지만, 실로폰 소리 나오면 들어가세요. 지금부터 자기소개부터 연습해 보겠습니다. 노래는 1절만 하구요, 전주는 시간관계상 짧게 합니다. 지금부터 연습합니다. 다 자기 자리 가시고. 첫 번째 출연자 나오세요~ 뛰어 나오세요. 차렷 인사!”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총 16팀 30여 출연자들의 노래 연습이 끝났다. 아마추어지만 다들 수준급의 가창력과 끼를 선보였다. 의무경찰 6명도 경찰복을 입고 출전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 삽살개 보존협회 삽살개 훈련사 김하얀씨는 “경북 경산시의 명물인 삽살개를 홍보하러 노래자랑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진짜 삽살개도 등장하니 기대하시라”고 했다.
2008 경산 대추아가씨 선발대회 입상자들도 팀을 이루어 출전했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부른다는 朴恩正(박은정·眞)씨는 “서울 대전 대구 ‘경산’으로 부르려 했는데 改辭(개사)는 금지라고 해서 아쉬웠다”며 “대추, 대추과자, 대추빵을 들고 송해 선생님께 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역 특산물도 무대에 등장해 출연자와 진행자가 서슴없이 어울리는 장이 바로 전국노래자랑이었다.
송해 선생은 출연자들과 일일이 만나 방송이 어떻게 진행되고 인터뷰는 어떤 내용으로 할지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가 예전에 탔다는 전국노래자랑 메달을 2개나 걸고 온 金大根(김대근·와촌면)씨를 만났다. 아버지가 김씨에게 무슨 말씀을 했는지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부지가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더. ‘내 대를 이어도오~’.”
출연자들은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송해 선생이 출연자들의 긴장을 풀어줬다.
“이웃이 모여 어울린다는 마음을 가지세요. 노래 잘해야지~ 고민하지 말고, 마음이 놓인 상태에서 하세요. 아까 말했지만 ‘내 평생 한 번 또 다시 나올지 안 나올지 약속을 못하잖아. 그러니까 가지고 있는 내 것을 발산시키라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점심 잘 드시고. 걱정 너무 하지 마시고. 아~무 걱정 하지 마세요.”
진행자와 출연자들의 사전연습이 끝났다. 송해 선생은 식사를 마친 후 대본과 방송 진행표를 다시 한번 꼼꼼히 봤다. 메모도 하고 읊조리기도 하는 등 털털한 방송 이미지와는 다르게 녹화 준비할 때만큼은 꼼꼼하고 빈틈 없었다.
내 인생 최고의 무대를 위해
녹화 시작 5분 전. 5000여 석 규모의 경산실내체육관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경산시 새마을문화과 丁海石(정해석)씨는 “체육관 밖에 200인치 텔레비전을 두 개나 설치했다. 실내체육관 안과 밖의 인파를 다 합치면 1만5000명 정도”라고 말했다. 정한욱 작가가 녹화 시작 직전에 안내방송을 했다.
“관중 분들 무대 올라오지 마시고, 카메라 앞에 왔다갔다 하면서 가리지 마세요. 전국노래자랑 시작할 때 현수막 갖고 온 분 모두 들어서 흔드세요. 자기 팀 나올 때 그때그때 흔들어 주세요. 좋아하는 초대가수 노래 끝나고 ‘앙코르’ 부르면 한 곡 더 들을 수 있습니다. 싫으면 안 해도 되구요.”
‘청춘을 돌려다오! 이병호 아버님 파이팅!’, ‘와촌의 장동건’, ‘영남대학교 F4, 꽃보다 동현’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보였다. 복도에 돗자리를 깔고 구경하는 사람,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온 사람 등 체육관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李祐勝(이우승·81)씨는 “노래자랑을 보려고 휠체어까지 타고 왔다”며 “전국노래자랑이 고향에서 열려 기쁘다”고 말했다.
오후 1시가 되자 송해 선생이 무대에 올랐다. 사람들의 함성에 체육관 지붕이 떠나갈 듯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여러분 안녕하세요’ 하면 ‘안녕하세요’ 하셔야 해요. 가끔씩 ‘네’라고 하는 분 있는데 같이 인사해 주세요.”
재치 있는 멘트에 관중이 까르르 웃는다. 전국노래자랑의 시작을 알리는 실로폰이 울렸다. 송해 선생이 ‘전국~’을 말하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자랑~’을 외쳤다. ‘온 국민의 점심시간 CM송’이란 별명이 있는 전국노래자랑 오프닝 음악이 연주됐다.
“전국에 계신 노래자랑 가족 여러분, 해외 동포, 해외 근로자 여러분, 大海(대해)를 누비는 외항선원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의 뜻과 염원으로 새롭게 준공된 실내체육관을 찾아와 주신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제가 아침 저녁 일교차 땜에 목감기가 걸렸습니다. 감기 걸렸어도 열심히 할 테니 잘 봐주세요!”
송해 선생의 능숙한 진행으로 전국노래자랑이 시작됐다. 이윽고 첫 출연자 박지현씨의 무대다. 박씨는 ‘찰랑찰랑’의 반주가 시작되자 코트를 벗어 던지고 다소곳한 이미지와 다르게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객석은 온통 웃음바다가 됐다.
이윽고 영남외국어대 태권도 시범단이 노래와 공중 목판 격파 장기를 보여줬다. 이때 權慧敏(권혜민·영남외대 태권도학과)양은 목판 격파를 첫 시도에서 실패하고 두 번째에 성공했다.
“다들 즐거워하니까 나도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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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가 나올 때마다 흥겹게 춤을 추는 관객들. |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를 부른 尹賢美(윤현미)씨는 ‘땡’을 맞았다. 윤씨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쏜살같이 무대를 내려갔다. 송해 선생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나한테 한눈팔다 그런 겨? 괜찮아요”라며 다독였다.
경산시편 최고령 출연자 李炳昊(이병호·80)씨는 ‘짝사랑’을 부르다가 박자를 놓쳤다. 송해 선생은 “사람들 많아서 정신이 없으시죠? 아유~ 박수 한번 쳐주세요. 나이 드시면 더 떨리게 마련이죠”라며 다시 기회를 주었다.
노래를 마친 이씨는 “본선 가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 카더이, 노래자랑 경산 다시 올 때쯤이면 내 아마 귀신 돼 있을 거요”라며 “부끄럽더라도 다들 즐거워 하니까니 내도 기뻐요”라고 쑥스러워했다.
경산 대추아가씨들 차례가 왔다. 노래를 마친 경산 대추아가씨들은 바구니에 대추를 담아 송해 선생과 악단에게 나누어 주었다. 송해 선생은 “조용하다가도 먹을 거 나오면 서슬이 시퍼래져”라고 말했다. 김인협 악단장은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맛있게 대추를 다 먹었다.
박은정씨가 “이거 드시고 딩동댕 쳐 주셔야 됩니다”라고 말하자 송 선생은 심사위원석을 가리키며 “딩동댕은 저기서 치는 거야”라고 했다.
대추아가씨들이 황급하게 심사위원들에게 대추를 올렸다. 송 선생은 또 훈수했다.
“대추 너무 많이 드리지 마, 근력 너무 세지면 실로폰 소리 안 나.”
이를 지켜본 관중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전국노래자랑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판소리 한마당 같았다. 경산시편 초대가수로 나온 李涌(이용)씨의 소감이다.
“전국노래자랑은 아마추어의 숨은 끼를 발산하는 장소예요. 다른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박수를 받는다는 마음을 갖는데, 여기서 노래를 부르면 노래자랑 참여자들에게 제가 박수를 쳐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제가 보조역할이고 일반인 출연자가 주인공입니다.”
버스안 ‘쫑파티’
송해 선생은 특별손님 두 분을 소개했다.
“부산에서 두 분 오셨고, 빨간 옷 입은 분은 익산에서 오셨어요. 이분들은 왕팬이야 왕팬! 우리들 율동 반장님들이십니다.”
송해 선생이 소개한 ‘왕팬’들을 현장에서 만났다. 이들은 관중석 맨 앞 ‘명당자리’에서 노래가 나올 때마다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이다. 전북 익산시에서 무궁화 열차를 타고 왔다는 李炳喆(이병철·72)씨는 “지역 관광도 하고 흥겨워서 5년째 매주 전국노래자랑을 따라다닌다”면서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전국노래자랑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해 선생이 ‘부산 갈매기’란 별명까지 지어 줬다는 동갑내기 高吉相(고길상·부산 진구)씨와 金鐘根(김종근·부산 금정구)씨는 “전국노래자랑 녹화장에 오면 스트레스도 풀고, 기분 나쁜 일도 잊어버리는 등 모든 게 좋다”고 했다. 자식들의 반응은 어떤지를 묻자 두 사람은 “또 가시나 보나 하지 뭐 있어. 허허”라고 말했다.
녹화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쫑파티가 열렸다. 지방녹화를 끝내고 귀경하는 버스 안에서 종종 파티를 한다고 했다. 서태룡 PD가 안주거리를 사러 가자 김인협 악단장이 말했다.
“안주 따질 게 뭐 있어? 소금만 있으면 되지. 난 소금만 있어도 잘 마셔.”
누군가 “그럼 단장님은 안주 드시지 마세요”라고 하자 김 단장은 “말이 그렇다는 거여”라고 하여 사람들이 한바탕 웃었다. 안주도 맛동산, 새우깡, 보름달빵 등 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답게 ‘장수식품’으로만 먹는 것 같았다. 제작진은 종이컵에 소주나 맥주를 따르며 기분 좋게 들이켰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 폭탄주가 돌기도 했다.
녹화가 무사히 잘 끝나 고조된 분위기였다. 정한욱 작가의 말이다.
“녹화 끝나고도 술 마시지만 녹화 전날에도 과음하는 경우가 있어요. 사람들이 녹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해요. 그런데 다음날 말~끔하게 나와요. 만화 ‘떠돌이 까치’의 주인공 버금가는 정신력이죠. 우리는 유랑극단이라니까요. 한 판 끝나고 한 잔 마시고, 짐 싸들고 또 마시고.”
정과 흥이 있는 무대
서태룡 PD는 “전국노래자랑은 예능국 PD들 사이에서도 꼭 맡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이라며 “정년 1년을 앞두고 전국노래자랑 PD를 맡게 돼서 정말 영광”이라고 했다. 송해 선생은 감기 때문에 술 못 먹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빈 술병들이 늘어났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술을 마시니 취기가 오래 갔다.
제작진은 휴게소에 들러 우동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뜨끈한 우동국물로 ‘해장’하는 분위기였다. 송해 선생을 알아본 휴게소 직원이 호두과자 큰 봉지 두 개를 제작진에게 선물했다. 송해 선생만 따라다니면 굶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귀경하는 버스 안에서 전국노래자랑 식구들은 휴게소에서 받은 호두과자와 ‘경산 대추아가씨’들로부터 받은 대추과자를 나눠 먹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캄캄한 밤이었다. 또 만날 기약을 하고 헤어졌다.
전국노래자랑이 30년 넘게 사랑 받는 이유를 ‘情(정)’과 ‘興(흥)’으로 비유하고 싶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우리 민족의 성향이 노래자랑으로 재현된 것이다.
전국노래자랑에는 3가지가 없고, 3가지가 있다. 전국노래자랑에는 제한이 없다. 성별, 연령, 지역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전국노래자랑에는 체면과 겉치레가 없다. 무대 위에서 격식을 차리지 않고 망가져도 된다. 전국노래자랑에는 주인공이 없다. 특정 인물이 주인공이 아닌,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듣고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다.
전국노래자랑에는 흥겨움이 있다. 노래와 춤이 있다. 세대와 세월을 넘어 누구나 흥겨움에 취한다. 전국노래자랑에는 인간미가 있다. 각기 사연을 안고 무대에 오른 출연자와 이를 발현해 주는 진행자, 구경꾼들 사이에 인간미가 흐른다. 전국노래자랑에는 가족이 있다. 제작진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성원하고 좋아하는 사람 모두 가족과 같다.⊙
▣ 전국노래자랑 참여하려면
각 동사무소나 공공기관에 참가신청서를 접수하면 누구나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할 수 있다.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 나이, 성별, 직업, 국적 제한 없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안산시 편에서 만난 한국생활 3개월째의 수야띠(여·GM대우 근무)씨는 “인도네시아에도 노래자랑 프로그램이 있지만 한국이 더 신나 보여 참가했다”고 했다.
참가신청서에는 간단한 인적사항과 부를 노래 3곡을 적고, 장기 및 사연이 있으면 추가로 기입한다. 신청곡 3곡 중 예심 때 부를 노래는 본인이 정하지만 가창력 검증을 위해 심사단이 나머지 곡을 부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참가자들은 무반주로 관객을 향해 노래를 부른다. 예심 신청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의 모든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악단장, PD, 작가로 구성된 심사단은 1차 예심 참가자들의 노래 몇 소절을 들은 즉시 합격 여부를 알려준다. 합격이면 “합격입니다. 2차 예심 신청서 받아가세요”, 불합격일 경우 “수고하셨습니다”란 말을 듣게 된다. 실로폰 소리는 본 방송 녹화 때만 나온다. ‘딩동댕’이 아닌 ‘땡’ 소리도 본선 진출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 아닌 영광이라 할 수 있다.
[인터뷰] 金寅協 전국노래자랑 악단장
“송해 선생과는 눈빛으로 말하는 사이”
金寅協(김인협) 악단장은 전국노래자랑과 29년간 인연을 맺었다. TBC 동양방송 악단에 있다가 1980년 언론통폐합 이듬해 KBS로 옮겨와 1981년 가을 개편 때부터 전국노래자랑 지휘와 연주를 맡았다. 초창기 전국노래자랑 촬영을 위해 악단에서 악기를 싣고 이동하려면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초창기 사고가 많았습니다. 옛날에는 진공관 앰프가 많았는데 차량에 싣고 가 꺼내 놓으면 진공관이 부서져 있었어요. 차량 뒤쪽 화물칸에 악기를 싣고 가다 문이 열린 틈으로 악기가 사라진 적도 많았습니다. 급히 학교 밴드부에서 빌려 썼지요.”
전국노래자랑은 아마추어 출연자를 상대로 반주하기 때문에 악단의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악단은 사람이 바뀌면 가장 지장이 많다”면서 “‘김인협 악단’ 멤버들은 呼兄呼弟(호형호제) 하면서 지금껏 호흡을 맞춰왔다”고 했다.
김 악단장은 “사회자 송해 선생님은 TBC 있을 때부터 같이 일했기 때문에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한다”고 했다. 그는 송해씨와 TBC 공개방송 ‘가로수를 누비며’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는 “송해 선생님은 ‘가로수를 누비며’ 진행자로 라디오방송과 일주일에 한 번 雲峴宮(운현궁)에서 공개방송을 진행하며 ‘운전기사 노래자랑’을 시작했다”면서 “그뒤 전국노래자랑의 다섯 번째 진행자가 되셨고, 오늘의 전국노래자랑으로 키워내셨다”고 했다.
[인터뷰] 鄭翰郁 전국노래자랑 작가
“나는 作家가 아니라 雜家”
鄭翰郁(정한욱) 작가는 스스로를 ‘作家(작가)’가 아닌 ‘雜家(잡가)’라고 했다. 전국노래자랑을 위해 그는 18년 동안 대본은 물론, 예선 심사, 출연자 음악지도, 현장 진행까지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정 작가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길 기회가 없었느냐’고 묻자, “다른 프로 PD들이 ‘정 작가 좀 빌려가겠다’고 할 때마다 송해 선생님과 PD가 반대해서 성사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교육방송(EBS) 기획제작부 AD로 일하다 1992년 KBS 측의 요청으로 전국노래자랑 작가로 전업, 18년째 ‘전국노래자랑 전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부모님 대를 이어 나온다는 출연자를 보면 전국노래자랑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껏 200자 원고지에 손으로 원고를 쓴다. 송해씨가 ‘손 글씨’를 원하기 때문. 그는 방송 한 편에 40매 정도의 원고를 작성한다. 예전에는 50~70매 정도를 썼다고 한다. 요즘에는 인터뷰 상황과 중요 대사만 쓰고, 나머지는 송해씨가 ‘애드립’으로 진행한다. 긴장한 출연자를 파악해 농담도 건네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송해씨의 노하우라고 한다.
정씨는 “1995년 30시간 비행 끝에 파라과이 교포위문공연을 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李美子(이미자)의 ‘서울이여 안녕’이란 노래를 부르는 아주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함께 울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