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조선은 왜 國權을 잃었나? - 스스로 저지른 두 가지 외교실책 : 월간조선

서양 列强이 19세기 초부터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을 경쟁적으로 식민지 내지 半식민지로 만들었을 때 아시아에서 그 禍(화)를 면한 국가는 일본과 태국, 두 나라뿐이었다. 일본은 개국 당시 이미 상당한 국력을 갖추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일본을 개국시킨 미국이 아직 해외 식민지 획득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독립의 위협을 받지 않고 국정개혁(明治維新)에 성공해 곧 서양열강과 대등한 국제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외국세력의 식민지가 된 많은 아시아국가 중 유일하게 非유럽 세력인 일본에 합병당한 나라가 한국이다. 假定(가정)이지만 한국은 그때 독자적인 방어력을 가졌거나 외부의 지원국이 있었더라면 禍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선은 자체 역량이 없었을 뿐 아니라 중국마저 조선을 보호할 능력을 상실했다.

당시는 국제사회에서 완전한 정글의 법칙이 통하던 시대였다. 일본은 明治維新 이후 琉球(유구·現 오키나와)-대만-한국을 차례로 침략해 이 나라들을 자신의 판도에 편입시켰다. 일본은 한반도를 손에 넣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집요하게 행동했다. 세계 역사상 이웃 나라를 집어삼키기 위해 일본처럼 오랫동안 끈질기게 기회를 엿본 예는 흔하지 않다.

당시 일본의 지도자들은 아시아 대륙에 진출해 판도를 넓히는 것이 국가발전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했다. 대륙 진출을 위해서는 먼저 한반도를 손에 넣어야 했기 때문에 「조선 병합」은 明治維新 이전부터 일본의 최우선적인 對外정책의 하나가 되었다.

근대일본의 선구적인 팽창주의자인 이등박문(伊藤博文)의 스승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이미 1855년 「일본이 北으로는 조선과 만주를, 南으로는 유구·대만·필리핀, 그리고 인도까지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의 고비: 대원군의 鎖國과 甲申政變

조선의 지도자들은 제국주의의 침탈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 근대외교史는 조선국(1897년부터는 「대한제국」)이 단계적으로 일본에 먹혀 가는 亡國의 역사였다.

조선이 일본에 의해 開國(1876년)된 다음 일본에 병합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약 30년이다. 가톨릭교도를 대량으로 처형해 프랑스 함대가 쳐들어온 丙寅洋擾(병인양요·1866년)부터 따지면 그보다 10년이 더 많은 약 40년이다. 이 40년 동안 우리의 지도자들은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해서 결국 나라를 잃게 되었다.

그 후 10년 간격을 두고 운양號 사건(1875년), 甲申政變(갑신정변·1884년), 淸日전쟁(1894~1895년), 러日전쟁(1904~1905년) 등이 일어났다. 일본은 러日전쟁 승리 직후 乙巳보호조약(1905년)을 강제로 체결해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고, 5년 후에는 완전히 병합했다.

역사적인 중대 고비들은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경우와 불가항력의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상대적으로 행동의 자유가 있던 기간 중 우리 지도자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실책은 서양을 잘못 인식해 開國(개국)의 시기를 놓침으로써 일본이 조선개국을 先占(선점)하게 한 사실, 갑신정변에서 젊은 개혁세력들이 성급하게 쿠데타를 일으켜 실패함으로써 國政개혁에 실패하고 아울러 외세의 개입을 초래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860년대에 결정적 실책을 범한 지도자가 大院君(대원군)이다. 그는 국제정세에 어두워 조선과의 국교수립을 원하던 서양 여러 나라의 요청을 물리쳤다. 대원군은 「人材(인재) 등용」, 「서원 철폐」, 「재정 및 세제개혁」, 「국방 및 군제개혁」, 「풍속개량」 등 內政개혁에는 놀랄 만한 식견과 능력을 발휘했으나, 「中華的(중화적) 세계질서」라는 성리학적 思考(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결과 그는 국제정세에 대한 판단을 그르침으로써 미국과 프랑스의 修交(수교) 요구를 거부해 開國의 시기를 놓쳤다.

잃어버린 10년

淸나라에 軟禁되어 있을 때의 대원군.

대원군 治世(치세) 기간 중 맨 먼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한 나라는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1864~1865년 두 차례에 걸쳐 국경도시인 함경도의 경흥부와 회령에 관리를 보내 통상과 국경왕래의 자유를 요청했으나, 대원군은 이를 한마디로 거부했다.

이 무렵 대원군과 내왕이 있던 천주교도 南鍾三(남종삼)·洪鳳周(홍봉주) 등이 布敎(포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 『러시아의 南進(남진)을 막기 위해서는 영국·프랑스와 동맹하는 것이 좋으며, 이 두 나라와 동맹을 하려면 조선에 와 있는 프랑스 선교사의 힘을 빌리는 것이 방책』이라고 進言(진언)했다.

대원군은 처음에는 이 주장에 솔깃했으나 결국은 서양세력이 조선을 침략해 올 경우 국내의 천주교도들이 내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프랑스 선교사 9명을 비롯해 천주교도 8000여 명을 학살해 버렸다.

이 사건을 따지기 위해 1866년 10월 피에르 로즈 제독을 사령관으로 하는 프랑스 극동함대 소속 군함 7척과 전투원 2500명이 강화도로 쳐들어왔다. 대원군은 병사 5000명을 파견해 10여 일간의 항전 끝에 이를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丙寅洋擾(병인양요)이다.

1867년 6월에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號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 근처에서 약탈행위를 자행하다가 선원 20여 명이 군민들에게 살해당하고 선체가 불탄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통상·수교를 요구하기 위해 1871년 5월 아시아 함대 사령관 존 로저스 제독이 지휘하는 군함 6척을 경기도 남양 앞바다에 보내 미국 정부의 수교의사를 조선 정부에 전달했다.

조선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美軍은 강화도에 상륙해 조선軍과 교전을 벌이고 진지들을 점령했다가 철수했다. 이것이 辛未洋擾(신미양요)이다.

서양 군함들이 물러가자 기세등등해 진 대원군은 전국 도처에 「斥和碑(척화비)」를 세우고 鎖國(쇄국)정책을 강화했다. 조선은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1882년에 淸國의 권유로 미국과 修交했다. 만약 신미양요 당시 대원군이 그처럼 완고하게 쇄국정책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의 정세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 기간은 한국외교史에 있어서 최초의 「잃어버린 10년」이었다.

對外均勢정책의 등장

조선은 신미양요 4년 후인 1875년에 일본의 군함 운양號가 강화도를 침략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에 國交를 수립했다. 일본은 조선의 최초 수교국이 됨으로써 한반도에서 우월한 지위를 先占(선점)했다. 韓末 언론인이자 역사가이며 독립운동가인 朴殷植(박은식)은 대원군의 행동을 그의 「학식 부족」으로 돌렸다. 朴殷植은 「韓國痛史(한국통사)」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만약 그때 (미국 등과) 국교를 체결하고 정치·예술·교육·산업의 장점을 받아들여 백성들을 계몽하고 실력을 배양했더라면 조선은 자립할 수 있는 강국이 되었을 것이다. … 우리 文物과 武力이 이미 충분하다고 자만하여 완고 오만으로 시기를 놓치니 대원군의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함이 참으로 통탄스럽다>

조선이 1882년 5월 미국과의 修交조약을 체결한 것은 뒤늦게나마 高宗과 閔씨 정권이 그 무렵부터 「以夷制夷(이이제이)」와 「對外均勢政策(대외균세정책)」이라는 새로운 對外정책을 편 결과이다. 對外균세정책이란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세력균형정책이다.

미국의 초대 駐韓공사 푸트가 1883년 5월 서울에 부임해 오자 高宗은 「기뻐서 춤을 출」 정도로 좋아했다.

對美수교에는 淸나라의 요구가 큰 작용을 했다. 1880년 5월 金弘集(김홍집)을 正使(정사)로 하는 제2차 修信使(수신사) 일행 58명이 일본을 방문했다. 이때 金弘集은 駐日청국공사관 참찬관 黃遵憲(황준헌)으로부터 그가 쓴 「私擬朝鮮策略(사의 조선책략)」을 얻어 귀국했다.

이 책은 「조선의 안전을 위해 親淸(친청)·結日(결일)·聯美(연미)를 외교노선의 기본으로 삼아 南進하는 러시아 세력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장의 의도는 미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권유하는 데 있었다. 이 책은 또한 조선이 西學(천주교)을 받아들일 것을 권고했다.

러시아의 南進을 막기 위해 自國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을 느낀 淸나라로서는 더 이상의 조선에 대한 배타적인 영향력을 포기하고 조선이 국제무대에서 직접 세력균형정책을 쓸 것을 권고한 것이다.

조선의 對外균세정책은 1884년의 갑신정변을 전후해서부터 조선 정부로 하여금 淸나라의 압력이 심할 때는 일본으로, 일본의 압력이 심할 때는 러시아와 미국에 접근하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1883년 미국을 방문한 報聘使 일행. 앞줄 왼쪽부터 미국인 로얼, 洪英植, 閔泳翊, 徐光範.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兪吉濬.

壬午軍亂과 甲申政變

갑신정변의 주역들. 왼쪽부터 朴泳孝,徐光範,徐載弼,金玉均.

갑신정변은 守舊派(수구파)의 반란이라 할 壬午軍亂(임오군란)에 대한 개화당의 反작용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임오군란은 시대역행적인 대원군의 지원으로 사태가 악화되었는데 결국 외세의 간섭을 자초한 그의 책임이 크다.

임오군란 때 閔씨 정권은 淸軍의 지원으로 정권을 간신히 지탱했으나, 淸國은 이를 기화로 종래에 없던 內政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淸軍은 임오군란 진압 후 대원군을 중국으로 납치해 가서 보정부에 연금시켜 놓고, 서울에 파견했던 3000명의 병력을 철수시키지 않은 채 조선을 屬國(속국)으로 만들려 했다.

더욱 모욕적인 처사는 임오군란 진압 직후인 1882년 8월 「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라는 해괴망측한 협정을 조선 측에 강요해 체결한 점이다. 이 협정은 조선과 淸國 두 나라 간의 국제협정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외국이 아닌 淸國의 「屬邦(속방)」이므로 국가 간 조약이 아닌 「章程(장정)」이라는 용어를 쓰고 그 前文에 조선이 「屬邦」이라고 명기했다.

조선의 主權을 완전히 유린한 이 같은 淸國의 고압적인 자세는 駐日 청국공사관 참찬관 黃遵憲이 권유한 조선의 對外균세정책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閔씨 정권은 이같은 淸國의 횡포에 어쩔 도리 없이 순종만 했다. 갑신정변은 이런 상황에서 「국면을 한꺼번에 뒤집고 국정전반을 개혁하겠다」는 개화세력의 주도로 일어났다.

그러나 갑신정변의 실패는 또 다른 「잃어버린 10년」을 가져왔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 분수령이 된 淸日전쟁이 일어난 1894년까지 10년 동안 閔씨 守舊派 정권의 복귀와 淸나라의 간섭강화로 조선은 국제정세에 대응할 귀중한 기간을 허송하고 말았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개화당 정권이 추진하던 개혁정책은 물거품이 되었다. 高宗은 갑신정변 때문에 開化를 말하는 것 자체를 증오하게 되었다.

閔씨 정권은 개화파와 대원군 세력에 대해 철저한 정치적 보복을 일삼았다. 일본에 망명한 金玉均(김옥균) 등 개화당 요인들을 살해하고 국내의 殘黨(잔당)을 철저하게 색출해 처형했다.

袁世凱의 횡포

갑신정변 후 조선 조정을 좌지우지했던 袁世凱.

이 기간 동안 對外관계 역시 극도의 혼미상태에 빠졌다. 갑신정변에서 군사적 충돌을 일으켰던 淸日 양국은 이듬해인 1885년 3월 天津條約(천진조약)을 체결했다. 두 나라는 이 조약에서 조선에 주둔 중인 군대를 모두 철수하고, 「장차 조선에 변란이 일어나거나 중대사건이 발생해 淸日 양국 또는 1국이 파병을 필요로 할 때는 먼저 상대에게 문서로서 통고하고 그 사건이 평정되면 즉시 撤兵(철병)한다」고 합의했다.

淸日 양국이 이렇게 타협한 것은 淸國 측에서는 월남 문제를 둘러싸고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남양함대의 대부분이 파괴된 상황에서 일본과 대결하기를 꺼렸고, 일본 측으로서는 국내가 당파 간의 다툼으로 시끄러웠을 뿐 아니라 淸國과 무력으로 대결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淸國은 갑신정변 이후 조선에 대한 內政 간섭을 일층 강화했다. 淸의 실권자였던 북양 대신 李鴻章(이홍장)은 駐韓상무위원 진수당을 袁世凱(원세개)로 교체하면서 그의 직급을 파격적으로 높여 「駐箚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주차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라는 직명을 부여했다. 마치 조선총독과 같은 인상을 풍겼다.

실제로 그는 「袁總理(원총리)」 또는 「袁大人(원대인)」으로 불렸다. 26세의 젊은 袁世凱는 종주국의 황제특사를 자처해 조선에 와 있는 다른 외국 공사와는 전혀 달리 행동했다.

그는 외국 사절에게는 금지된 가마를 탄 채 국왕이 있는 데까지 갔으며, 국왕이 외국 사신을 접견할 때 다른 나라 공사는 모두 일어서서 알현했으나, 袁世凱만은 앉아 있는 無禮(무례)를 일삼았다. 그는 1887년 高宗이 미국과 유럽에 외교사절을 파견하자 조선 정부에 압력을 넣어 사절들을 돌아오게 하고, 『北京에 사신을 보내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袁世凱는 이 무렵 조선을 중국의 1개 省으로 병합할 것을 건의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마지막 10년

淸日 양국 사이에서 갖은 수모를 당하던 조선은 러시아로 눈을 돌렸다. 이 때문에 1884년 5월 러시아가 조선과 國交를 수립한 직후부터 끊임없이 韓·러 밀약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당시 소극적이던 러시아의 보호를 얻는데 실패하자 이번에는 미국에 접근했다.

조선 조정은 미국에 대해 ▲조선과 거리가 멀고 땅이 넓어 조선에 영토적인 야심이 없는 나라이고 ▲문명한 나라이며 세계에서 모범적인 문화를 가진 선진국이며 ▲부유한 나라여서 조선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빼앗아 가려 하지 않을 것이고 ▲종교지상주의 국가여서 도덕을 중시해 함부로 남의 나라를 공격하지 않을 것으로 인식했다.

이런 점에서 高宗이야말로 한국 역사상 최초의 親美主義 통치자인 셈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미국 접근은 淸國의 집요한 방해로 성공하지 못했다.

갑신정변 이후 10년 만에 일어난 淸日전쟁은 일본 측의 승리로 돌아가 일본은 한반도에서 우월권을 갖게 되었다. 한국근대사 40년 중 마지막 10년간(1895~ 1905)은 한반도에서의 일본의 우월적 지위확보로 우리에게는 선택의 폭이 사실상 없던 시기였다.

이 기간 중에 閔妃(명성황후)가 일본 측에 반항하다 그들에게 살해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高宗은 러시아공사관으로 망명 아닌 망명을 가는 俄館播遷(아관파천)이 일어났다. 당시 한반도에서 일본의 유일한 경쟁자는 러시아였으나, 러시아는 러日전쟁에서 패함으로써 일본은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갖게 되었다.

일본이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세력은 영국과 미국이었다. 그들은 러시아의 南進(남진)을 막기 위해 대한제국의 운명에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