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05년 한국경제 돌파구는 없는가? - 앤디 시에의 2005년 한국경제 전망 : 월간조선

2005년 乙酉年(을유년)의 한국경제號는 수많은 암초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다. 2004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미국 달러화의 약세로 그동안 한국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으로 작동해 온 수출 환경이 급속도로 나빠지는데다, 꽁꽁 얼어붙은 소비 심리도 당분간 회복될 가능성이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고공 행진을 거듭하는 국제 油價와 후진적인 勞使 관계, 사회 곳곳에 만연한 反기업 정서,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시하는 정부의 정책 등이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한국경제는 먹구름에 싸여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視界 제로(zero)」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돌파구」는 무엇일까.

지난 12월6일 아시아 최고의 금융기관들이 밀집해 있는, 홍콩 시내 중심가인 中環(중환·센트럴)의 「스리 익스체인지(Three Exchange)」 빌딩 30층에서 앤디 시에(Andy Xie·謝國忠·44) 모건 스탠리 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만났다.

그는 한국경제의 미래를 얘기할 수 있는 최적임자 중의 한 명이다.

중국 上海(상해)에서 태어나 미국 매사추세츠 工大(MIT)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그는 세계은행과 싱가포르 맥쿼리 은행을 거쳐 1997년부터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의 홍콩 亞太 본부에서 활동 중이다.

앤디 시에 박사는 세계경제포럼(WEF)과 중국 CCTV 등이 2003년 선정한 「10명의 중국경제 미래 리더」의 한 명으로 뽑혔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기관투자가」誌의 「최고의 이코노미스트」로 4년 연속 선정됐다.

국제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국·중국 등 東北亞 경제에 관한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생생한 한국경제 동향 파악을 위해 1998년부터 매년 서너 번씩 한국을 찾고 있는 「현장 重視型」 이코노미스트이다. 2004년에는 한국을 네 번 방문했다. 지난 11월 말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 연구소, 외국계 금융기관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고 돌아왔다.

─최근 한국을 가본 느낌은 어떤가.

『최근 들어 한국인들이 자신감을 크게 잃었고, 냉소적이랄까 비관주의 같은 질병이 퍼져 있는 것 같다. IMF 경제위기 때만 해도 한국인들은 이겨내겠다는 파이팅이 넘쳤는데 지금은 그런 의욕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내수 침체, 수출 악화, 환율 절상의 3重苦

앤디 시에 박사는 인터뷰를 위해 여러 경제지표를 담은 서류철을 책상 위에 올려 놓으며 『2005년 한국은 1998년 이후 가장 어려운 한 해를 맞을 것』이라고 했다.

─2005년 한국경제가 그렇게 힘들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全세계적으로 경기 하강 현상이 뚜렷해지는 게 일차적 이유입니다. 세계 각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2004년의 4.6%에서 2005년에는 3.6%로 떨어질 것입니다. 특히 세계경제의 양대 축인 미국의 달러화 弱勢가 계속되고 중국경제도 긴축정책 지속으로 감속 성장이 한층 본격화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과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2004년 각각 2.2%와 3%에서 2005년에는 1.6%와 1.5%대로 각각 떨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은 이에 따른 수출 악화와 가계 부채에 따른 내수 침체 지속, 미국 달러화 약세에 따른 추가적인 환율 절상 가능성 같은 3重苦에 처해 고통이 가중될 것입니다』

─2005년 한국경제에 긍정적인 측면은 없을까요.

『유일한 긍정적인 측면은 정부가 GDP(국내총생산)의 1%에 해당하는 범위에서 세금을 소폭 줄였다는 점입니다. 이런 조치가 건설 경기 진작 등에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그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봐요. 또 하나 굳이 들자면 원화가치 상승으로 스태그플레이션(만성적인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경기 부진 속에 물가상승 현상) 우려가 많이 줄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석유·가스 등 각종 에너지 요금 인상이 잇따르고 있어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수출 환경, 환율 절상, 내수 부진 등 세 가지 변수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무엇입니까.

『환율이라고 봅니다. 특히 제2기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새 경제팀 진용이 어떻게 될지가 큰 관건입니다. 재무장관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국가경제회의 의장 등이 모두 바뀔 전망입니다. 그러나 누가 임명되든 조지 부시 대통령은 사회보장, 세금 감면, 건강 등 매우 어려운 4大 국내 경제개혁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데다 막대한 재정·무역 적자로 말미암아 「弱달러 정책」을 계속 추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 한국은 최소한 10% 이상 원화 환율이 절상돼 수출 전선에 결정타를 입을 수 있습니다』

2005년 한국 성장률 3.8%로 추정

─일각에서는 헤지펀드(투기성 대규모 금융자본)들이 換차익을 노려 대거 한국 시장에 들어올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한국 원화의 强勢 현상이 더 심화돼 경제가 더 어려워질 텐데요.

『그렇습니다. 미국 정부의 환율정책 못지않게 미국 정부의 정책 향방에 따라 헤지펀드들이 한국 외환 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현재 헤지펀드들은 全세계에 1조 달러 정도의 자산을 운용 중인데, 그린스펀 FRB 의장 같은 이의 말 한마디에 따라 수십억~수백억 달러의 뭉칫돈을 光速度로 옮기고 있는 만큼 한국에 큰 위협요인이 될 수 있지요』

─한국 정부는 이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헤지펀드들은 한국 원화를 IMF 외환위기 이전 수준이던 1달러당 800원 수준으로까지 낮추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이들의 공격이 가시화되면 일본 엔화도 1달러당 90엔 수준으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일본은 경제 규모가 커 헤지펀드들의 공격에 어느 정도 자력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한국은 경제 규모가 적어 외환시장 개입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 등과 환율 절상에 대해 공동보조를 취하는 게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중국, 미국 등의 2005년도 GDP 성장률은 어떻게 예상합니까.

『한국은 3.8% 정도로 보고 있지요. 중국경제는 2004년 9.5%대에서 2005년에 7.8%대로, 미국경제는 4.4%에서 3.7%로 각각 감소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위안(元)화 절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弱달러 현상의 반사 이익을 봐 중국 투자 붐을 당분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시장의 기술적 주기로 본다면 현재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달러화가 2005년 하반기에는 강세로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强달러가 되고 중국이 내부 금융개혁 등을 적절하게 단행하지 않는다면 중국경제는 다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며, 硬착륙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내수 회복 당분간 힘들다

─한국에서 내수 경제는 언제쯤 어떻게 회복될 걸로 봅니까.

『당분간은 힘들 것입니다. 최소한 1~2년은 더 걸릴 것으로 봅니다. 내수 경제 회복을 위한 방법은 세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가계부채가 감소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물론 최소 1~2년 또는 더 이상이 걸릴 수도 있지요.

두 번째는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개혁이지요. 노사 관계나 금융선진화, 국내외 기업들에 대한 진입 장벽 제거 같은 그동안 미뤄 왔던 진정한 개혁을 통해 성장률을 높여 가계 부채에 짓눌린 경제 침체를 돌파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減稅정책을 본격화하고 도시 재개발 추진 등으로 성장의 동력을 삼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겠지요. 아직까지 한국 정부의 재정 상태가 양호한 만큼 시도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한국경제의 위기 탈출을 위한 해법으로 단기적으로는 세금 감면을 통한 소비 및 투자 분위기 고취를, 장기적으로는 경제 전반의 효율성 提高를 각각 제시했다. 그는 지난 10월 초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유연성 提高에 초점을 맞춘 경제적 효율성 증가에 성공했다면 한국은 이미 1인당 소득 2만 달러에 진작 도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앤디 시에 박사는 『한국 정부가 최근 3년 동안 진정한 경제개혁은 하지 않은 채 신용카드 발행이나 금리인하 같은 수요(소비) 진작을 통한 손쉬운 경제성장에 매달려 스스로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때마침 한국 정부는 「한국형 뉴딜(New Deal)정책」 등을 통해 경제 회생을 꾀하고 있는데.

『뉴딜式 투자를 통한 경기 부양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서울 수도권의 과밀 집중 문제를 풀고, 지방의 균형발전까지 이룰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단순히 도로나 건물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1가구 집 두 채 소유」는 禁忌視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 돼요. 경제 회생을 위해서는 「1가구 2주택 보유」를 포함해 많은 정책적 변화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 정부는 국민연금까지 경기 진작에 동원하겠다는 입장인데.

『한국 정부의 부채가 아직 적고 재정 상황도 건실한 만큼 아이디어 자체는 시도해 볼 만하다고 봅니다. 운용과정에서 투명성 확보도 매우 중요하지요. 하나 염려러운 것은, 10여 년 전 일본도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재정 지출을 통한 대대적인 건설 노력 등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다지 생산적인 결과를 낳지 못했고 오히려 長期 경기 침체를 가져왔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정부는 무작정 경기 부양을 위한 뉴딜보다는 효과와 생산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부처 간에 긴밀한 정책 협조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生存 전략

─급팽창하는 중국경제가 한국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시각이 한국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13억 명의 거대 시장에 연평균 10%에 육박하는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에 한국인들은 두려움까지 느끼고 있는데, 한국경제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요.

『해답은 이미 한국인들이 갖고 있고 보여 주고 있지 않나요. 삼성이나 LG, 현대차 같은 대기업들을 보세요. 기술력(테크놀로지)과 브랜드 파워에 기반을 둔 삼성과 LG, 제품 생산과 판매에서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한 포스코, 매우 짧은 시간에 제품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현대자동차 사례 등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중국에서 많은 돈을 벌며 성공을 거두고 있지 않습니까. 결론적으로 중국의 도전이나 경쟁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필요불가결한 성공 포인트는 「업그레이드」라고 봐요.

중국경제의 도전과 이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한국경제를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활용하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분명 밝아질 것입니다. 그런 치열한 국제경쟁이나 도전이 없었다면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한국에서 탄생할 수 없었을 겁니다』

─통계를 보면 하루 평균 15개 정도의 한국 기업들이 중국으로 진출한다고 합니다. 주로 중소기업들의 이런 「소나기식 묻지마 투자」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상당수가 몇 년 안에 중국에서 철수하는 「逆엑소더스」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사실 중소기업들은 중국에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생산단가를 낮추겠다는 생각일 뿐 우월한 기술력이나 탁월한 경영능력 같은 특별한 우위를 갖고 있지 못해요.

하지만 중국에는 모든 나라가 잇따라 진출하다 보니 「가격 전쟁」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경쟁 격화로 제품 가격은 인하 전쟁이 벌어지는 반면, 인건비는 치솟아 한국 중소기업으로선 점점 이점이 사라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대기업들은 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중국에 진출하는 중소기업들은 앞으로 걱정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중국이나 중국경제에 대해 한국인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경향도 있어 보입니다.

『한국인들은 지금까지 많은 것을 이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극적인 생각은 금물입니다. 과거 대신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방어적인 태도는 바람직한 전략이 아닙니다. 공격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중국의 거센 도전에 대해서도 한국경제를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각오로 개별 기업이나 정부가 노력과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대다수 한국 기업들이 삼성·LG 등처럼 업그레이드에 성공한다면 소득 향상은 물론 한국경제의 對중국 우위는 계속될 것입니다』

앤디 시에 박사는 『중국경제의 눈부신 발전 속도는 인정하지만 숨겨져 있는 여러 어려움이 많아 지레 겁을 먹는, 이른바 「對중국 공포증(恐中症)」은 한국인들에게 「마이너스」가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고향인 上海를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건물과 도로, 시설이 생기는 데 대해 경탄을 금할 수 없지만, 上海가 홍콩 수준을 따라잡으려면 최소 20년은 걸릴 겁니다. 홍콩에 비해 上海의 각종 금융·경제 인프라와 법치 수준 등이 아직도 너무 뒤떨어져 있고 개선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中國 지도자의 유연성

─하지만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배울 점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가장 돋보이는 것은 중국 지도자들의 유연성이라고 봅니다. 중국 정치국원들이 국가적 슬로건으로 삼고 있는 구호는 「위쉬쥐진(與時俱進·여시구진·시대와 함께 전진한다)」는 것입니다. 「시대 발전에 맞춰 전진해 간다」는 뜻이지요.

1949년 공산혁명으로 건국했지만 과거의 경직된 공산독재 관료체제를 내던지고 사회 전체적으로 유연성을 높이자는 데 지도층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지요. 중국경제가 최근 잘 나가는 것도 과거의 경직성을 떨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韓美 간의 정치적·안보적 동맹관계가 흔들린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런 韓美관계 약화가 한국경제에 얼마만 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봅니까.

『韓美관계의 경제적 파장이 과거만큼 그렇게 크다고는 보지 않아요. 잘 알다시피 한국 제품의 미국 시장內 점유율은 몇년 동안 계속 정체 상태입니다. 한국이 팽창을 주도하는 시장은 중국이나 인도, 南美 등 이른바 성장시장입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중국이나 인도 공략에 상당한 성공을 이루고 있지요.

이것은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化 측면에서 미국, 일본 일변도에서 벗어나 「전략적 변환」에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韓美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나 韓美관계 개선은 물론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지만 결정적인 요인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경제 再도약을 위한 열쇠는 국내 시장 부활에 있다고 봐요. 그러러면 정부 정책의 변화, 국민적 합의, 의식 혁신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에는 문제가 없고 자신감 상실이 가장 큰 어려움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데 동의하십니까.

『경제에서 심리적 요인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최근 한국인들의 자신감 부족은 바닥난 「대차대조표」를 그대로 반영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한국인들의 가계 부채가 큰 요인이고, 또 하나는 한국 기업들이 국내에서 투자를 하지 않고 대거 중국으로 옮겨가는 추세입니다. 한국에는 점점 일자리가 줄고 중국에 추월당한다는 위기의식이랄까, 불안감이 자신감 상실을 더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對北 경협은 돌파구 못 돼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사업을 포함한 南北한 경제협력 사업에 상당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데, 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에 북한과 경협 사업이 돌파구랄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북한경제가 한국에 도움이 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봐요.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인프라가 너무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중국만 해도 경제성장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거의 20년이 걸렸어요. 한국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려면 低임금의 북한 근로자들을 대거 남한으로 데려오는 방법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이런 북한 근로자 수입에 대해 행복해할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후진적인 한국의 勞使관계는 한국行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가로막는 주범인 동시에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2005년에도 이런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데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1980년대 초 영국과 미국의 사례로부터 교훈을 얻었으면 해요. 영국의 경우, 악명 높은 석탄·철광 노조가 6개월 넘게 파업했지만 마거릿 대처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강력 대처함으로써 정부가 결국 승리를 거두었지 않습니까.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도 1982년 무렵 미국 항공관제사들의 파업에 대해 정면대처해 해고함으로써 과거의 경직된 勞使관계를 유연한 구조로 탈바꿈시키는 물꼬를 텄습니다.

이와 같은 획기적인 전환점이나 드라마틱한 사건이 없다면 한국에서도 勞使관계의 선진화나 눈에 띄는 변화는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다고 봐요. 그렇지 않다면 고통스런 파업의 피해 등을 겪은 다음 국민들이 대화를 통한 민주적 절차로 노사 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선택할 수는 없다

─勞使관계나 분배 강조 등을 보면 현재 한국 정부의 경제 정책은 상당부분 左派적인 측면이 강해 보이는데요.

『현재 한국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는 분명 투자보다는 세금 감면 등에 치중하고 있어 보입니다. 다시 말해 소득 증대보다는 평등한 분배에 더 신경을 쓰는 게 보입니다. 성장보다 분배를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단기적으로는 좌파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입니다. 한국인들이 이를 수용한다면 문제가 없지요. 연평균 3.5% GDP 성장에 평등한 소득 분배에 주력할 것인지, 아니면 6% 이상 성장에 소득 불균형을 감수할 것인지 한국인들이 선택을 해야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경제에서 두 가지를 모두 취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트레이드 오프」관계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앤디 시에 박사는 2004년 6월 말 「표류하는 경제, 들끓는 사회」라는 제목의 한국 경제 보고서를 통해 한국 사회의 강한 사회주의적 편향을 꼬집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한국 사회의 젊은 세대들이 경제 성장보다는 소득 분배로 기울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 사회는 격렬한 경쟁과 소득 불균형으로 특징지어지는 2만 달러 사회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1만 달러에 계속 머무르면서 소득 균형에 주력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岐路(기로)에 서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이 2005년에도 계속 이런 고통스런 학습과정을 경험할 것으로 봅니까.

『2004년과 2005년은 그런 시간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한국경제는 예전에는 「투자」에 주력하고, 노동조합 활동도 기율이 분명하고 제한됐지만 지금은 좀더 多元的인 사회가 됐잖아요. 더 이상 단일 논리로 지배하는 사회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서로의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인정하고 관용하며, 무엇보다 「시장의 힘」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민들은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눈여겨봤으면 해요. 미국은 최근 25년 동안 국민경제 규모가 두 배 이상 늘었지만 최하위 25% 계층의 실질 임금은 거의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이런 극심한 임금 격차를 인정하고 국민들이 수용하고 있어요.

일본도 다른 의미에서 反面敎師입니다. 도요타니 소니 같은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을 정부가 부실 기업 연명을 위한 지원에 쏟아부은 것이지요. 한국도 그런 길을 택할 수 있으며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삼성이나 LG, 현대차 등이 벌어들인 돈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부실 기업에 지원한다면 한국은 성장률 하락과 만성 경제 정체라는 代價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한국경제의 앞날을 기본적으로 낙관합니까, 또는 비관하는 편인가요.

『2005년 한국경제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장래를 낙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인들은 매우 뛰어난 유연성을 발휘해 왔기 때문이지요.

한국경제에 대한 건강한 토론과 학습을 통해 한국민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적응과 변신을 위해 함께 뛰겠다는 각오로 무장하고 실천에 옮길 때 한국경제는 다시 일어날 걸로 확신합니다』

─하지만 정부나 기업, 소비자 모두 한국경제 회복을 위한 처방전을 내놓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양상인데요.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정부를 비롯한 한국의 경제주체들이 다양한 「복수 전략」을 가졌으면 해요. 높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금융서비스나 관광산업 활성화나 중소기업들의 틈새 시장 공략 등이 한 예입니다. 의외로 많은 기회가 널려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되겠지요. 특히 정부는 침착하게 한국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포괄적인 전략 방안」을 구상해 실천에 옮기길 주문합니다』

앤디 시에의 제안

앤디 시에 박사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의 하나로 국내외 저명 인사들로 구성된 한시적인 「공동 위원회」 구성 같은 색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與·野黨이나 정부와 勞使, 시민단체, 언론 간의 소모적인 갈등과 실천력 부족을 타파하기 위한 포괄적인 해결 방안으로, 전문가들이 합의하는 공동 처방전을 활용해 한국경제의 돌파구를 찾자는 복안인 셈이다.

─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면 효과적일까요.

『예컨대 한국 정부는 노벨상 등을 받은 국제적인 저명 학자와 한국 경제 전문가 등 10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향후 20년동안 한국에 번영과 안정적인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목적을 갖고, 3개월 동안 한시적인 활동을 통해 실천 가능한 10개의 단순 명쾌한 「실행 방안」을 추출한 다음 全국민이 군말하지 않고 흔쾌히 실천에 나서는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1~2년 동안만 실천에 매진한다면 분명 한국경제는 달라질 것입니다』

─정치인들도 경제 분야에서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들은 본능적으로 지역구민들의 표심을 따라다닌다고 봐요. 全세계에 공통된 현상이지요. 따라서 그들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인들이 한국경제의 미래상에 대해 솔직한 토론을 통해 정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2005년 한 해 동안에만 3%대의 低성장을 한다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低성장에 소득 평형이냐 또는 高성장에 소득 불균형을 선택할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高성장에 평등한 소득 분배를 원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국민적 대화나 토론 등을 통해 명확하게 깨달아야 해요. 이런 역할은 정치권보다는 언론이 맡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2005년은 이런 문제를 논의하는 결정적인 전환기가 될 것입니다. 한국경제 회생을 위한 건강한 토론을 통해 미래에 대한 국민적 합의 창출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2004년 한국경제는 60점

─한국경제의 성장 가능성은 솔직히 어느 정도라고 진단하십니까.

『한국인들은 적어도 앞으로 6년 정도는 매년 5~6% 정도의 GDP 성장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과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여러 이유로 3~4%대의 낮은 성장을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2004년 한국경제의 성적을 점수로 매긴다면 얼마나 줄 수 있을까요.

『100점 만점에 60점 정도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생으로 치면 낙제를 면하고 겨우 통과한 정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나마 한국의 실업률이 비교적 안정됐고 勞使관계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가능한 점수입니다. 만약 勞使관계가 더 악화됐더라면 한국경제는 낙제점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만약 한국경제가 2005년에 환율을 비롯한 동시다발적인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낙제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며 『환율 문제는 미국 정부의 정책과 의지에 좌지우지되며, 한국의 통제권 밖에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국내 경제의 체질 강화와 산업 고도화와 효율성 향상을 겨냥한 고통스런 경제 개혁 작업이 수반되지 않는 상태에서 신용카드 남발이나 금리인하 같은 손쉬운 수요 진작책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땜질式」으로 순간순간 대충 넘어가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장」인 셈이다.

한국 정부 태도 이중적

그는 『한국 정부의 신뢰하기 힘든 二重적인 태도와 외국인들에 대한 배타적인 한국민의 정서도 넘어서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그럴듯한 말과 달리 외국인들을 위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요. 일례로 SK(주) 주주로 있는 외국인들은 이 회사 경영과 관련해 아무 발언권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포함한 여러 사건들은 결국 외국인들을 실망시키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최근 몇 달 동안 한국 시장을 많이 이탈한 것도 이런 실망감과 부분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경제를 가로막는 큰 장애물 중 하나로 「反외국인 감정」이 자주 지적되고 있는데.

『反외국인 감정은 한국경제에 분명 매우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요. 산업활동에서 高부가가치 창출은 국내가 아닌 국가 간 경제활동에서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한국민들의 경제 수준 향상은 국제화 정도에 많이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실제 세계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기껏 1~2%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한국이 세계를 바꿀 수는 없어요. 그러면 선택은 한국이 세계의 흐름에 대해 적응하고 유연하게 변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국제사회에 적응을 거부한다면 한국은 북한과 같은 고립과 폐쇄, 경제적 피폐를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경제가 살아나려면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적응, 수용이 필수적입니다. 로마 제국이나 영국, 미국 등 세계사적으로 성공한 나라는 모두 변화된 환경에 선도적으로 적응했고 사회 구조가 하나같이 매우 유연했어요. 반대로 러시아나 인도 등은 경직된 관료통제로 외부 세계에 대한 적응을 거부하고 유연성이 결핍된 체제였지요』

그는 지난 11월 금융감독위원회가 외국인들의 국내 금융기관 임원 취임에 제한을 두는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매우 실망스런 일』이라며, 『한국경제의 세계화가 절박한 마당에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퇴행적 조치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앞으로 한국경제를 이끌 차세대 成長 엔진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휴대폰, 컴퓨터, 조선, 자동차, 온라인 게임 등 이미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는 산업의 핵심 역량을 더 강화해 업그레이드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특히 제품 품질이나 기술 향상 못지않게 「글로벌 톱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여기에다 금융, 관광산업과 아시아 전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는 韓流 열풍 같은 한국 특유의 각종 無形(무형) 재산도 적극 활용할 만하다고 봐요』

냉소와 비관은 금물

─한국 정부나 기업인, 국민들에게 마지막으로 권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인들은 더 이상 지나친 비관론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비관주의에 빠져 있는 대신 해법을 서로 얘기하면서 건설적인 방향으로 미래를 얘기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고 하는 냉소적인 자세는 건설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왜 나쁘고 왜 경제가 풀리지 않는지」를 놓고 머리를 맞대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에 대한 각 경제주체들의 태도랄까, 시선이 근본적으로 냉소와 비관이 아닌, 긍정적인 애정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정부와 언론도 어렵다고만 얘기하고 서로 남의 탓을 할 게 아니라 긍정적인 해법을 마련하는 데 서로 발벗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