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이근원 단장(왼쪽)이 유가족에게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6·25전쟁에 참전해 21세로 산화한 호국 영웅이 유해 발굴 16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단장 이근원)은 2009년 강원 인제군 기린면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를 국군 제8사단 소속 고(故) 박용수 일병 유해로 확인했다.
국유단은 유해 발굴 후 유가족을 찾고자 노력했다. 2022년 3월 유가족 유전자 시료를 채취한 뒤 유전자 감식과 분석 과정을 거쳐 발굴된 지 16년 만인 2024년 12월 유가족을 찾게 됐다.
2000년 4월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한 후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한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돼 가족에게 돌아간 국군 전사자는 총 246명이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되기까지는 국군 장병이 참여한 유해 발굴과 함께 큰형을 반드시 찾겠다는 막냇동생 고(故) 박광수 씨의 참여 덕분이다.
국유단은 전사(戰史) 연구를 통해 6·25전쟁 당시 국군 제8사단이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에서 양양군 현북면 진교리에 이르는 26km 구간에서 전투를 벌인 것을 확인하고, 2009년 기린면 일대에서 유해 발굴을 해 고인의 부분 유해(넙다리뼈)를 발굴했다.
막냇동생 고 박광수씨가 큰형을 찾고자 시료 채취에 참여했으며 유전자 재분석을 통해 지난달 가족 관계를 확인했다. 박광수씨는 월남전에 참전한 후 경찰로 23년간 근무하며 생전에 큰형을 찾았지만, 지난해 작고해 큰형의 귀환을 보지는 못 했다.
고인은 6·25전쟁 직전에 국군 제8사단에 입대해 전쟁 발발 직후 벌어진 ‘양양-강릉전투’에서 전사했다. 이 전투는 1950년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강릉을 사수하기 위해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에서 양양군 현북면 진교리에 이르는 구간을 방어하는 전투다.
고 박용수 일병은 1928년 9월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6남 3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1949년 7월 아내와 결혼을 한 후 신혼 생활을 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6·25를 맞았다. 임신 중인 아내와 첫째 딸을 두고 입대했다.
고인의 아내인 고(故) 정영남씨는 남편이 전사한 이후에도 유복자 딸을 데리고 시부모를 모시고 살다가 29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번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 요청에 따라 22일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다.
고인의 딸 박동옥(73세)씨는 1974년에 독일로 파견된 간호사로 파독 광부와 결혼해 현재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박씨는 “어머니는 아버지가 어딘가 살아 계실 거란 믿음을 버리지 않으셨는데, 그나마 유해를 찾았으니, 아버지를 서울 현충원에 안장된 어머니와 함께 막내 삼촌이 계신 영천호국원에 함께 모시고 싶다. 아버지의 유해가 돌아와 벅찬 감격과 함께 눈물이 난다”고 했다.
고인의 막냇동생 고(故) 박광수씨의 아내인 이상숙(73세)씨는 “남편이 생전 형님을 찾아야 한다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제라도 남편이 있는 영천호국원에 함께 모실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했다.
이번 행사는 경북 영천의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습니다.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 발굴 경과 등을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 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6·25 전사자의 신원 확인에는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 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할 수 있다. 제공한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 신원이 확인되면 포상금 1000만원이 지급된다.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지만, 거동 불편하거나 생계 등으로 방문이 어려운 유가족은 국유단 대표번호 1577-5625(오! 6·25)로 연락하면 국유단 측에서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한다.
글=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