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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2월 10일 전남 목포시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일대에서 열린 제1회 김대중 마라톤대회에서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앞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계 복귀를 선언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당 지도부 교체를 놓고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 이는 25년 전 김대중(DJ)과 이기택(KT)의 갈등을 연상시킬 정도로 닮아 있다.
안철수계는 손학규 대표 측에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 안 전 대표의 제안을 끝내 수용하지 않을 경우 탈당을 불사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동섭 원내대표 권한대행은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마지막 결단이 필요한 때"라며 "정치 인생에서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잘 고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손 대표를 압박했다.
이 권한대행은 ▲ 비대위 전환 ▲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새 지도부 선출 ▲ 손 대표 재신임 전당원 투표 등 안 전 대표가 해왔던 제안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모두 손 대표가 알고 있고 고민해본 제안이라고 생각한다"며 "당의 진로를 당원에게 묻자는 제안을 회피·거절할 명분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손 대표의 퇴진을 요구한 셈이다. 손 대표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안철수계가 신당 창당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안(安)-손(孫) 두 사람의 갈등은 25년 전, DJ와 KT가 벌였던 갈등과 그 모양새가 비슷하다. DJ와 KT는 199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권 문제로 갈등을 벌인 뒤 결별, 독자노선을 걸은 바 있다.
1992년 대선에서 패해 영국에 가 있던 DJ가 귀국한 뒤 치러진 첫 선거가 1995년 지방선거였다. 당시 DJ는 표면 상 정계은퇴를 선언한 상태였지만, 야당인 민주당의 대주주(大株主)로서 공천 문제에 깊숙이 간여하고 있었다. 그 시기 DJ를 따르던 동교동계 의원들은 KT를 ‘DJ를 대신한’ 민주당의 ‘위탁 관리자’쯤으로 낮춰 봤다.
DJ는 조순 서울시장 후보는 물론, 경기도지사 후보 공천에도 개입했는데, KT와의 갈등을 노출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경기도지사 후보 공천 문제였다. KT는 경기도지사 후보로 장경우를 내세웠지만, DJ는 구(舊) 민정계 출신의 이종찬을 점찍어두고 있었다. DJ는 KT와 장경우를 각각 집으로 초대해 설득했지만, KT는 “생각해 보겠다”면서도 끝까지 경기지사로 장경우를 밀었다. 결국 장경우 후보는 패하고 말았다.
선거 후 DJ는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편다. 정계 복귀를 저울질 하며 신당 창당 구상을 본격화 것이다. DJ 자서전 《삼인》의 한 대목을 보자.
<…당 대표(이기택·KT)가 경기도지사 선거 등 지방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민주적 공당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체질 개선을 단행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 정당으로 탈바꿈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요청을 당 지도부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나는 참다운 야당의 존립을 위해서는 새로운 집을 지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1995년 7월 12일 저녁, DJ와 그의 측근인 동교동계 17명의 의원들은 DJ 집으로 모였다. 권노갑·김원기·한광옥·신순범·김근태 부총재, 김상현·정대철·이종찬·이용희 고문, 김태식 사무총장, 신기하 원내총무, 김병오 정책위의장, 김영배·안동선·임채정·박상천 의원과 이해찬 서울시 부시장이었다.
이날 모인 의원들은 동교동계 중에서도 민주당을 떠나 새로운 둥지를 짓자는 ‘신당창당파’가 대다수였다. 이날 김상현을 비롯한 김원기, 정대철, 김근태 등이 이기택을 당에서 축출하고 전당대회를 새로 열자는 중재안을 내놓았지만, KT에 대한 불신과 회의론이 깊은 DJ는 결국 갈라서기로 마음을 굳힌다.
7월 13일, DJ는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적인 정계 복귀와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그는 “정치 재개는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됐다. 그러나 이에 대해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DJ는 또 “지금 이기택 총재의 민주당은 당권만 생각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나눠먹기 정당’이 됐다”고 비판했다.
KT는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DJ를 비난했다. 김원기를 비롯한 조세형, 김근태 등 민주당 내 중재파는 ‘이기택도 물러나고, 김대중도 창당 작업을 멈추라’고 호소했지만, 두 사람의 갈등의 골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았다.
그해 9월 5일 DJ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총재로 취임했다. 조세형, 이종찬, 정대철, 김영배, 김근태, 김상현, 권노갑, 한광옥, 신순범 등이 그를 따랐다. KT가 이끌던 민주당에서 탈당한 의원들을 비롯해 국민회의에 참여한 현직 의원만 53명에 달했다. 국민회의는 단숨에 제1야당 지위에 올라선 반면, KT의 민주당은 쪼그라들고 말았다.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국민회의는 당초 목표했던 100석에 훨씬 못 미치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역구와 전국구(비례대표)를 모두 합쳐 79석을 얻는데 그친 것이다. DJ는 배수진을 치는 차원에서 전국구 14번에 배정됐지만, 13번까지만 당선돼 원내 입성에도 실패했다.
정계복귀 이후 정치권에 무사 안착하기 위해 손학규 대표를 압박하는 듯한 안철수 전 대표. 정계복귀를 위해 KT를 흔들어 자신의 계파 의원들을 빼낸 뒤 신당을 창당한 DJ.
차이가 있다면 DJ는 민주당 내에 확고한 자기 세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독자적인 신당을 꾸리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반면 안 전 대표를 따르는 두터운 원내 지지 기반이 현재 바른미래당 내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안 전 대표가 손 대표를 배제한 채 당내 주도권을 쥐려는 ‘대도박’이 성공할지 관심이 쏠린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