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새 대표에 '老將' 손학규... 保革 갈등 접고 中道 새 길 열까

2일 국회 의원회관서 전당대회 개최... 최고위원에 하태경, 이준석, 권은희, 김수민
  •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 업데이트 2018-09-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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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1947년 경기 시흥 Δ경기 중·고등학교 Δ서울대 정치학 학사 Δ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박사 Δ반유신민주화운동·청계천빈민운동 Δ수도권 특수지역선교위원회 빈민선교 간사 Δ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운동 간사 Δ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Δ인하대·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Δ4선 의원(제14·15·16·18대) Δ제33대 보건복지부 장관 Δ제31대 경기도지사 Δ100일 민심대장정 Δ대통합민주신당 대표 Δ통합민주당 대표 Δ민주당 대표 Δ국민의당 상임고문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전국청년위원장 선출대회에서 손학규 신임 당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바른미래당 새 당 대표에 손학규 상임고문이 선출됐다. 손 대표는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 대표, 최고위원 선출대회에서 하태경, 이준석, 권은희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득표율은 손 대표가 27.02%로 1위에 올라 당 대표가 됐고, 이어 하태경 후보가 22.86%, 이준석 후보가 19.34%로 각각 2, 3위에 올라 최고위원이 됐다. 12.13%를 거둔 정운천 후보, 11.81%인 김영환 후보는 지도부에 속하지 못했다. 권은희 후보는 6.85%를 얻어 순위권에서 밀려났지만 여성 몫으로 최고위원이 됐다. 전국청년위원장 선거에 단독 출마, 당선된 김수민 후보는 당연직 최고위원을 겸하게 됐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지도부는 대부분 바른정당 출신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작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당으로 정계에 복귀한 손 대표를 제외하면 하태경, 이준석, 권은희 최고위원 모두 바른정당 출신이다. 하태경, 이준석 최고위원의 경우 손 대표와의 득표차도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이번 전당대회에는 총 선거인 수 35만 9935명 중 4만 5298만 명이 참여, 12.59%의 투표율을 보였다. 당일 투표 외에도 사전에 진행한 당원 온라인/ARS 투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했다.

손 대표는 이날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지역주의 정치체제로 만들어진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제도를 바꾸고, 국민 모두의 이해와 요구를 담고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포함한 정치개혁을 이루겠다"고 했다. 이어 "고통받는 국민 앞에서 그래도 우리는 '우리 길을 가겠다'는 대통령, 청와대, 여당의 갑질을 막지 못하면 국민과 민생이 죽는다"며 "무능과 독선의 제왕적 대통령, 그리고 갑질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저를 바치겠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1987년 체제를 넘어서, 제7공화국 건설에 나서겠다"며 "대통령이 개헌의 주체가 돼서는 안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연장이 돼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회가 주도하고 국민이 승인하는 개헌 프로세스를 크고 작은 모든 정파 지도자들과 함께 논의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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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전국청년위원장 선출대회에서 새 당 대표로 선출된 손학규 후보가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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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전국청년위원장 선출대회에서 손학규 신임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철 비대위원장, 김수민 전국청년위원장, 권은희, 하태경 최고위원, 손학규 신임 당 대표, 이준석 최고위원, 김관영 원내대표. 사진=뉴시스

손 대표는 보수-진보로 갈린 거대 양당의 기득권 체제를 허물고, 바른미래당이 중도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이끌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한국 정치에는 여의도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큰 곰 두 마리가 있다"며 "대통령의 인기에 영합해 눈치만 보고 거수기와 앵무새 노릇에 앞장서는 민주당, 아직도 반성은커녕 틈만 나면 막말과 시비만 하는 자유한국당, 바로 이 두 수구적 거대 양당이 한국의 의회 정치를 망치고 있다"고 일갈했다.

손 대표가 자칭 중도개혁정당을 표방하는 바른미래당의 당권을 잡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손 대표는 보수정당인 민주자유당-한나라당, 진보정당인 민주당 양쪽을 오가며 정치활동을 이어왔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며 개혁정치를 주장해 온 그가 거대 양당이 아닌 중도정당의 수장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 철새'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보수와 진보를 넘나든 그의 정치적 도전과 용퇴는 끊임없었다. 4선 의원에 복지부 장관, 경기지사를 시작으로 두 번이나 민주당 대표가 됐다. 17대, 18대, 19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당내 경선에도 세 번 나섰다. 18대 대선 국면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4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의 만덕산 토굴로 들어갔던 그는 작년 국민의당으로 돌아와 대선을 꿈꿨다. 손 대표는 당내 경선을 앞둔 2017년 <월간중앙> 3월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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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전국청년위원장 선출대회에서 새 당 대표로 선출된 손학규 후보가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내가) 정당(당적)을 자꾸 바꿨다지만 바꾸지 않은 것이 있다. 나는 소신을 바꾸지 않았다. 만일 내가 정당을 바꾸지 않았다면 소신과 이념을 바꿨을 것이다. 내 소신과 이념을 계속 유지한 상태에서는 새누리당에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정치적 배신이 아니라 소신과 정책을 제대로 지킨 것이었다. 민주당 당적을 버린 것은 새로운 정치를 위한 일이었다. 민주당의 기득권·패권 세력은 지금 손학규에게 맞지 않다. 그래서 새로운 개혁 세력을 찾아나선 것이다.

(...) 한나라당 탈당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한나라당에서도 해보고, 민주당에서도 해보고, 국회의원·도지사·장관에 젊어서는 민주화운동도 했다. 도지사 시절에는 세계적 기업을 경기도에 유치해 일자리를 만들었다. ‘다양한 경험이 손학규 당신의 역량 평가에 도움될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중도와 중도보수층에서 그런 능력을 평가한다면 나 손학규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손 대표는 1947년 경기도 시흥(현 서울 금천구)에서 태어나 교사인 부친의 슬하에서 자랐다. 그가 4세 되던 해 교장으로 승진했던 부친이 작고한 후, 손 대표를 포함 7명의 형제는 홀어머니를 모시며 자랐다. 1962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3학년 때 대학생들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시위에 나섰다. 1965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들어가서도 끊임없이 관련 시위에 나갔다. 시인 김지하 등 집회에 참가한 선배들과 함께 문리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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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6일 오전 국회 대통합민주신당 대표실에서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이 손학규 대표를 예방,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보낸 난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학 2학년 때는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 규탄 시위에 참가했다가 무기 정학에 처해졌다. 그 와중에도 데모를 이어가 두 번이나 무기 정학을 받았다. 학교를 떠나 강원도 함백 탄광에 가서 광부 노동자들과 함께 일했다. 복학 후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함께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의 상징이 됐다.

군 제대 후 소설가 황석영과 구로공단에 자취방을 얻어 노동운동에도 투신했다. 진보 성향의 기독교 단체와 협업해 빈민 선교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에 충격을 받은 손 대표는 청계천에서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노동운동을 하다 1년간 징역을 살았다.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권하에서 노동운동을 지속한 손 대표는 2년간 경찰의 추적을 피해 원주의 사과 과수원, 서울의 철공소 등에 위장취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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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민심 대장정' 길에 오른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2006년 7월 28일 오전 강원도 삼척시 경동주식회사의 황조본갱에 들어가기 전 안전등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영국 옥스퍼드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직선제 개헌이 선포된 1987년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인권 운동을 이어갔다. 1988년부터 3년 동안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0년부터 4년 동안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했다. 당시 같은 진보적 정치학자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과 인연을 맺었다.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 민자당 출신으로 14대 총선 보궐선거에서 경기도 광명시를 지역구로 삼아 금배지를 달았다. 이후 신한국당 출신으로 15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 1996년 11월 제33대 보건복지부 장관이 됐다. 그의 나이 만 49세, 당시로서는 역대 최연소 복지부 장관이었다.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에 성공했다. 2년 뒤 민선 3기 경기도지사로 일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 그해 8월 진보정당들이 규합한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해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정동영 후보에게 패했다.

이듬해 1월 같은 당 대표로 선출된 손 대표는 분리돼 있던 민주당과 합당, '통합민주당'을 창당해 그해 18대 총선을 지휘했지만 한나라당에 참패해 물러났다. 강원도 춘천에서 한동안 칩거 중이던 손 대표는 2010년 정계에 복귀, 보편적 복지 노선을 주장하며 민주당 대표가 됐다. 이듬해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 경기 성남 분당구를 지역구로 삼아 4선 의원이 됐다. 2012년 18대 대선 출마를 위해 당내 경선에 나섰지만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패해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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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손학규. 사진=조선DB
2013년 10월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에 불출마한 뒤, 2014년 6대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지휘했다. 그해 7월 수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했지만 당시 김용남 새누리당 후보에 패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군 만덕산 자락의 토굴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2년 뒤 개헌을 통한 정치개혁과 '제7공화국' 건설을 주창하며 정계에 복귀했다. 그해 10월 20일 강진군 토담집을 나서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2년 동안 이곳 만덕산 기슭에서 잘 지냈고, 이제는 만덕산이 내려가라 합니다. 내려가야죠." 손 대표는 이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 자신의 지지 기반인 '국민주권개혁회의'를 이끌며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난항을 겪을 때 거국중립내각의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손 대표는 작년 2월 국민의당에 입당, 19대 대선 출마를 목표로 당내 경선에 나섰으나 안철수 후보에게 패해 상임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손 대표에게는 '징크스'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가 정치적 중대 결단을 내릴 때마다 큰 사건이 터져 묻혀버린다는 의미에서다. 2006년 전국 100일 민심 대장정을 마치고 상경, 국민들에게 성과를 보고할 당시에는 북한의 첫 번째 핵 실험 사건이 가로막았다. 민주당 대표 시절, 최초로 시청 앞 광장에 텐트를 설치해 농성에 들어갈 때는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다. 2016년 정계 복귀, 개헌 추진을 선언할 때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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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백리향에서 한나라당 대선 예비 후보자들과 강재섭 대표최고위원이 상임고문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인사말에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손학규 전 경기지사, 박근혜 전 대표, 강재섭 대표최고위원, 이명박 전 서울시장. 사진=뉴시스

그럼에도 손 대표는 굴하지 않고 정치적 재기를 꾸준히 모색했다. 작년 3월 2일 jt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손학규는 기자들과 대중에게 인기가 없는 것 같다'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 같은 저평가 우량주에 투자하면 '대박'이다." 손학규호(號) 바른미래당이 '대박 정치'를 구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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