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는 지고 ‘블루’는 번진다…코스타리카 대선이 보여준 중남미 우클릭

코스타리카 대선 결과, 우파 여당 후보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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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 집권우파 국민주권당 대선 후보인 라우라 페르난데스가 1일 수도 산호세에서 열린 개표 행사에서 환호하고 있다. 결선 없이 당선을 확정지은 페르난데스는 코스타리카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 된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중남미 정치 지형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오른쪽으로 기울고 있다. 혁신과 복지를 앞세운 이른바 ‘핑크 타이드(Pink Tide)’의 열기가 식는 자리에는 ‘치안·질서·안정’을 강조하는 ‘블루 타이드(Blue Tide)’가 스며들고 있다. 급진적 구호보다 “일상을 지켜달라”는 유권자의 요구가 표심을 움직이는 분위기다.


그 최근 사례가 바로 코스타리카 대통령선거다.


2월 1일(현지시간) 치러진 코스타리카 대선에서 우파 여당인 국민주권당(PPSO) 소속 라우라 페르난데스 후보는 48.94%를 득표해 33.02%에 그친 국민해방당 알바로 라모스를 큰 격차로 따돌렸다. 코스타리카는 1차 투표에서 40% 이상을 얻으면 결선 없이 당선이 확정된다. 페르난데스는 단숨에 승부를 끝냈다. 취임일은 5월 8일이다.


형식적으로는 ‘정권 교체’다. 그러나 실질은 다르다. 현직 로드리고 차베스 로블레스 정부와 정책 노선이 거의 겹친다. 친시장, 재정 건전성, 강경 치안, 반(反)포퓰리즘. 인물은 바뀌었지만 방향은 그대로다. 정치학 용어로 하면 ‘교체형 연속정부’에 가깝다.


유권자의 선택은 명확했다. “실험하지 말고 안정적으로 가라”는 주문이다.


‘좌클릭 피로감’이 만든 블루 타이드 흐름은 코스타리카만의 현상이 아니다. 최근 1~2년 사이 중남미 대선은 공통된 단어를 반복한다. 범죄, 마약, 불법이민, 물가 상승. 유권자는 복지 확대보다 ‘질서 회복’을 먼저 요구한다.


대표적 장면은 칠레다. 지난해 12월 결선에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후보는 58.16%, 좌파 후보 자넷 하라는 41.84%에 그쳤다. 좌파 가브리엘 보리치 정부 4년 만의 정권 교체다. 카스트는 치안 강화와 불법이민 통제를 전면에 내걸었다. 유권자는 ‘개혁’보다 ‘통제’를 택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하비에르 밀레이가 등장해 ‘작은 정부’와 급진적 시장주의를 밀어붙이고 있다. 국영기업 축소, 보조금 삭감, 재정 긴축. ‘하드 블루’에 가깝다.


물론 역류도 있다. 멕시코, 우루과이 등은 여전히 중도·좌파 정부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큰 흐름만 보면, 중남미의 저울추는 점점 보수 쪽으로 이동 중이다.


코스타리카가 더 중요한 이유


흥미로운 점은, 코스타리카가 칠레처럼 ‘드라마틱한 전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상징적이다.


칠레가 ‘색깔을 바꾼’ 나라라면, 코스타리카는 ‘색깔을 굳힌’ 나라다. 급격한 이념 투쟁 대신, 조용한 보수적 합의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런 선택은 대개 오래 간다.


정권이 교체됐는데도 시장과 치안 노선이 그대로 유지되는 구조. 이는 블루 타이드가 일시적 분노나 항의가 아니라, 생활 속 체감 불안이 만든 구조적 이동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중남미의 유권자는 “이념보다 안전, 변화보다 안정”을 선택했다. 코스타리카 대선은 그 목소리를 가장 차분하고 분명하게 증명한 선거였다.

 

핑크의 시대가 저물고, 블루가 일상으로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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