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이틀 앞두고 전사한 27세 국군 용사, 유해로 발굴돼 가족 품으로

고 함상섭 하사,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서 전사… 지난해 11월 유해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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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단 이근원 단장이 유가족 대표인 아들 함재운씨에게 고 함상섭 하사의 유품,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 등이 동봉된 호국의 얼 함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국유단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 단장 이근원)은 지난해 11월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 일대에서 발굴한 부분 유해를 국군 제7사단 소속의 고(故) 함상섭 하사로 확인하고 유가족에게 이를 알렸다.

 

이번 신원확인의 단서는 유해와 함께 발굴된 인식표에 새겨진 고인의 이름이었다. 국유단은 이를 바탕으로 병적부를 열람한 후 행정관서를 찾아가 유가족 소재 확인을 요청했다. 


관공서 협조로 유해 수습 마지막 날인 11월 25일 친손자를, 3일 뒤인 28일 아들을 찾아 유전자 시료를 확보했다. 국유단은 유해와 유족 유전자 비교 분석으로 부자, 조부-손자 관계를 확인했다.


고 함 하사는 올해 여섯 번째로 신원을 확인한 사례다.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에서 집단으로 발굴된 유해 19구(인식표 7개) 중 고 정인학 일등중사에 이어 두 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사례이기도 하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신원을 확인해 가족에게 돌아간 국군 전사자는 254명이 됐다.

 

국유단은 “고인의 유해는 유해발굴을 경험했던 한 대대장의 제보와 국유단의 전문 조사·발굴팀의 노력 덕분에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제7사단 예하 대대장인 정준혁 중령은 지난해 10월 작전지역 지형 정찰 중 지표면에 있는 방탄헬멧과 수통을 발견하고 국유단에 유해소재 제보를 했다. 정 중령은 같은해 전반기에 유해발굴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제보를 받은 국유단은 전문 조사·발굴팀을 파견해 해당 지점의 땅을 팠고 이 과정에서 유해발굴기록병이 최초로 유해를 식별했다. 발굴팀장은 함께 발견된 M1 소총 등 유품 출토 상황을 고려해 구획을 확장해서 발굴을 진행한 결과 추가로 유해 7구를 더 발굴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20m 떨어진 곳에서 유해 11구를 추가로 발굴했다.


고인의 유해는 두개골을 기준으로 연속성이 확인되지만, 하체 부분은 단절된 부분 유해다. 당시 유해는 해부학적으로 엎드린 모습이었는데, 다른 유해와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고인이 전사한 뒤 급박한 전황 속에서 집단 매장됐다가 미처 수습하지 못한 채 그대로 시간이 흘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 함상섭 하사는 1953년 1월에 입대해 국군 제7사단에 배치됐다. 1953년 7월 ‘적근산-삼현지구 전투(1953년 7월 15~23일)’에 참전해 고지전을 치르며 정전을 이틀 앞두고 전사했다. 

 

고인은 1925년 10월 강원도 횡성군에서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1949년 강원도 영월군 출신의 한 여성과 혼인해 1949년에 아들을, 1952년에는 딸을 낳았다.


이번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5월 14일 수요일 인천광역시 연수구 보훈회관에서 열렸다.

 

유가족 대표인 아들 함재운씨(76세)는 “유해를 찾아준 국가와 국방부에 감사하다. 아버지를 하루빨리 현충원에 모시고 싶다”고 밝혔다.

 

글=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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