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수뇌부가 기소 후 5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아 문재인정권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 실태를 보여줬다. 이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 중 대다수에게도 무죄가 내려진 상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판사 이종민·임정택·민소영)는 26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남용 등 검찰이 적시한 혐의만 47개에 달하지만 모두 무죄로 판결난 것이다. 1심 법원은 양 전 대법관을 비롯한 이들에게 "사법행정권이 없기 때문에 직무상 권한 남용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019년 2월 기소 이후 290여번의 재판을 거쳐 열린 이날 선고공판에서 선고에만 4시간 27분이 소요됐다. 앞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관들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공무상기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 등 혐의를 적용했고, 핵심은 직권남용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이나 정부정책을 비판한 판사들의 의견 표명을 억압하고 문책성 인사조치를 단행했으며, 특히 2013~2017년 이른바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을 작성해 검토하거나 법원 내부 게시판에 비판글을 올린 이들을 중심으로 희망지에서 배제하는 등 문책성 인사를 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인사권자인 양 전 대법원장이 직권의 행사 및 남용을 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직권남용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기 위해선 넓게 직권의 행사 및 남용이 있어야 하고 이로 인해 상대방이 의무 없는 일을 하는 등의 범죄 구성요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재판부는 이런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밖에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한 혐의인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의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 ▲대내외적 비판세력 탄압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 및 집행 등도 증명되지 않았다며 재판부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오면서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 14명 중 무죄가 선고된 이들은 11명으로 늘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이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이면서 2월 5일 1심 선고를 앞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판결에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성근·신광렬·조의연·성창호·유해용·이태종 법관은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과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 역시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