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인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전기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2차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시작했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수장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천재 물리학자로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었다는 죄책감으로 전쟁이 끝난 후 군축 및 반전평화운동에 나선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인터스텔라>, <인셉션> 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영화화했다.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개봉 첫날 55만명을 동원해 박스오피스를 초토화시켰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핵무기는 꼭 필요한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원자폭탄은 일본의 결사항전으로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태평양전쟁을 끝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원폭이 없었다면 일본이고 미국이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전쟁이 끝난 후 핵무기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맨해튼 프로젝트의 기지(로스알라모스)를 폐쇄해야 한다는 입장을 미국 대통령에게 밝혔지만, 소련과 경쟁에 돌입한 미국정부는 “일단 핵무기가 개발된 이상 핵 억지력만이 평화를 가져온다”며 오펜하이머의 제안을 무시했다. 이후 오펜하이머는 매커시즘의 광풍이 불던 미국사회에서 좌파로 몰려 고초를 겪었다. 오펜하이머의 제안대로 미국이 핵무기를 더 이상 연구하거나 만들지 않았다면, 또는 전세계 국가들이 핵무기 기술을 투명하게 공유했다면 어땠을까. 기술이 유출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소련이 핵무기로 세계 주도권을 잡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핵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명제는 맞을 수도 있지만 계속 핵무기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두 번째 의문은 "일본은 원폭 피해자인가"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개봉될 가능성이 낮다고 한다. 원폭 피해자들로서는 원폭 개발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을 피해자로 봐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영화에서는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야 했던 이유가 상세하게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꼭 그런 무시무시한 살상무기를 사용해야 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는 군국주의 정치인들이 국민의 피해는 아랑곳하지않고 1억 총옥쇄(대의를 위해 1억 인구가 함께 죽어야 한다는 뜻), 카미카제(자살특공대) 등 비인간적인 행위를 국민에게 강요하며 끝까지 버텼다. 심지어 일본 정부는 히로시마에서 일어난 원폭피해도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항전을 계속해 나가사키까지 원폭이 투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실제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가 쓴 일본의 명작 만화 <맨발의 겐>은 원폭의 참혹한 실상을 지나칠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하면서도 ‘피해자 코스프레’는 하지 않는다. 일본국민을 끔찍한 무기의 피해자로 만든 것은 미국이 아닌 일본의 군국주의 정치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강조한다.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자와 핵무기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감독의 전작인 <인터스텔라>나 <테넷>처럼 청소년도 즐길 수 있는 과학영화가 아니라 성인을 위한 철학적인 영화다. 북핵의 위협과 일본과의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인으로서는 꼭 한 번 보고 생각해 볼 만하다. 전쟁과 핵무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3시간에 걸친 영화가 지루할 수 있어 약간의 예습은 필요하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