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맨발이구나 마리아
괜찮다, 너는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산다는 게 모두 제 몸을 팔아 제 몸을 먹이는 일
아비도 오늘 몇 달 밀린 화대를 받았다
이 저녁도 무릎을 꿇고 컵라면 하나를 받쳐 드는 너에게
끝내 늙은 하나님 하나 도착하지 않고
예보도 없이 그저 눈발이나 흩뿌리는
그따위 하늘을 우러러
우리 아무것도 속죄하지 말자, 마리아
-시 <나도 매춘부다> 전문
최근 간행된 배주열 시인의 첫 시집 《나도 매춘부다》(도서출판 작가마을)에는 어떤 힘과 어떤 금기를 무너뜨리려는 분노 내지 저항감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시가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듯 하다.
예를 들어 시 <나도 매춘부다>에서 첫 행이 ‘오늘도 맨발이구나 마리아’라면서 4행에선 ‘아비도 오늘 몇 달 밀린 화대를 받았다’고 외친다. ‘끝내 늙은 하나님 하나 도착하지 않고’, ‘그따위 하늘을 우러러’, ‘우리는 아무 것도 속죄하지 말자’라고 한다.
신(神)의 침묵을 시인은 원망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원망하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독자들은 이 시의 행간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시 <사부곡(思父曲)>도 아버지가 어떤 절대자로 읽히기도 한다. 금기에 대한 도전 내지 부정으로 맞서는 시다.
엎드려 곡(哭) 하오니
부디 뒤돌아 보지 마소서
참 멀리도 끌고 온 당신의 빈 집 한 칸
접고 또 접어 불 위에 올립니다
다시는 이루지 마소서
어디든 기별 끊으소서
-시 <사부곡> 전문
죽음 이후의 화장(火葬) 장면이 연상되는데 ‘다시는 이루지 마소서/ 어디든 기별 끊으소서’라는 마지막 행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역설적으로 어떤 간절함, 연기(緣起)를 넘어서는 애절함이 느껴진다.
시 <새우깡을 먹으며>에서 ‘오늘은 새우를 몇 톤이나 가스실에 보냈는지// 마지막뉴스에도 언급이 없다’며 분노한다. 생명존중 내지 자본주의와 문명비판을 심리를 드러낸 것일까? ‘새우와 귀신고래를 한 세상에 풀어놓은 그 자식이 어떤 자식인지//썩을 놈!’이라고 분개한다. 귀신고래는 ‘고래밥’이라는 과자가 연상된다. 어떻게 보면 장난스런 발상이지만 시인은 정색을 하고 있다. 시종 그의 시들은 정색을 한다.
시인은 시적인 언어를 쓰지 않는다. 어쩌면 산문정신으로 명쾌한 남성적인 단어를 골라 쓴다. 시 정신에서도 결기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감동이 없는 것도 아니다. 금기 정신의 바탕에는 역사의식이 있으며 그 역사는 희망보다 절망, 슬픔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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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교도소
이 봄도 전향하지 않는
산 것들의
무덤가
당신의
소금 한 줌이 하얗습니다
-시 <냉이꽃> 전문
사랑한다 영자야
사랑했다 영자야
봉천동 굴다리 밑 누군가의 뼈저린 각골문을
찔끔찔끔 오줌을 흘리며 읽는다
-우리가 의義를 들어 여기에 이르렀음은 - 후략-
사랑했다 이 개씨끼들아
사랑한다 이 개씨기들아
이 봄도 녹두꽃마저 지면
차마 녹두꽃마저 지면
가자, 영자야 가서
우리 한 번만 더, 한 구덩이에 눕자
-시 <녹두꽃> 전문
동학농민운동의 주역이던 전봉준의 격문(우리가 의를 들어 여기게 이르렀음은…)을 인용하고 있다. ‘한 구덩이에 눕자’는 문장 속에 민중의 함성, 그 열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시 <엎드려 자는 구두>를 여러 번 읽는다. 다른 시들과 창작법이 다르다. ‘내 구두에 내 발이 없다’는 선언이 놀랍다. 모더니즘의 향기가 난다. ‘엎드려 자는’이 수식하는 ‘구두’를 ‘사람’으로 바꿔야 읽을 수 있다. 구두가 의인화 된 것이다. 벌어먹기 위해 끝없이 걸을 수밖에 없는 게 구두의, 인간의 일생이다. 마지막 연 ‘누구 내 텅 빈 발 한 켤레 좀 버려주세요/ 주름진 가죽에 둘둘 말아서’라는 표현이 슬프다.
내 구두에 내 발이 없다
내 발을 묶었던 자리에 언제부턴가 식탁이 놓여있다
선 채로 기다리던 식탁에
내 구두는 엎드려 묶여 있다
도착할 수 없는 식탁까지
끝없이 걸어온 구두
며칠 째인가요
괜찮을까요
괜찮아요
네네 괜찮아요 그냥 주세요
그리고 누구 내 텅 빈 발 한 켤레 좀 버려주세요
주름진 가죽에 둘둘 말아서
- 시 <엎드려 자는 구두>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