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천의 주말, 방에 틀어박혀 시집을 펴든다.

김중호 시인의 첫 시집 《이별할 때 손을 흔드는 이유》(모악)를 읽는다.

삶을 풀어내는 일상의 변주들로 가득하다. 진지하고 탐색적이며 선량하다. 자신의 깨달음을 독자에게 알리는 충고의 말투다. 교훈적이고 사변적이다.

읽기 쉽게 행갈이를 해서인지, 상당히 정색하고 말하지만 전혀 무겁거나 무섭지 않다. 시의 한 행이 짧은 이유는 그가 시의 리듬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잦은 행갈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발성법일 테지만 시를 노래처럼 부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여운을 길게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들이

무얼 먹다

다

먹지 않고

무리 지어 날아가지

다음 새가

오기 때문이지

새들이

개울가

목을 축이다

곧

무리지어

그 자리를 파하지

다음 새가

오기 때문이지

새들은

밤새

울다

새벽잠을 청하지

다음 새가

지저귀기

때문이지

머무름은

늘

잠깐이어야 함을 아는 것이지

다음 새가

오고 있기 때문이지

-김중호의 ‘다음 새가 오기 때문이지’ 전문

바퀴는 닳는다

우리는 그걸 모른다

바퀴는

조금씩 조금씩 이별을 준비한다

우리는 그걸 모른다

가끔 의례적으로 바퀴를 살피지만

이별까지는 눈치채지 못한다

바퀴는 닳아간다

…(중략)…

이별은 온다

조금씩 조금씩 온다

우리는 그걸 몰라도

이별은 안다

잊지 말라

우리가

만나는 순간

이별은 시작되고 있음을

-김중호 ‘이별은 조금씩 온다’ 부분

시인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선으로 내닫거나 한꺼번에 쏟아내지 않는다. 우회하여 조금씩 조금씩 다가서며 털어놓는다. 그런 걸음은 반박하기 힘든 깊이를 느끼게 한다. 나선형 원추처럼 똬리를 틀어 생의 어느 가운데 지점을 포착하려 한다.

시를 읽으며 시인이 무엇보다 인생을 폭넓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이 작은 시집에 시인의 인생경험 전체를 털어 넣으려 했거나 그런 작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거미줄에 무언가 걸려들었다

작은 진동이 있었다

그러나 거미는

바로 다가서지 않는다

거미는 기다린다

그가 차분해질 때까지

그가 지금 이 순간을 이해할 때까지

그 또한 모를 리 없으리라

이 거미줄 속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이게 마지막이라는 걸

퍼덕거림은 점차 작은 떨림으로 남고

거미는 다가서기 전

마지막 위로의 말을 전한다

설워 말라

우리 모두는 한때 거미였지 않느냐

이젠 진동마저 없다

거미는 그때 움직이기 시작한다

슬퍼 말라

우리 모두는

거미로 와서 결국 먹이로 간다

깊이 이해 바란다

-김중호의 ‘거미’ 전문

그의 시편을 읽으며 문득,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가 쓴 시 ‘바스의 아내 이야기’에 나오는 한 문장이 생각났다.

< 충고는 명령이 아닙니다

conseiling is nat comandement >

시인은 자신이 경험한 생의 진면목을 독자에게 ‘충고’하듯 들려준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절대 ‘명령’이 아니다. 그저 세상의 인식에 대한 나름의 범례를 들려주려 한다. 그 범례를 읽고 범례의 본질을 발견하고 왜 시로 활자화됐는지를 독자가 느끼기를 권한다. 이 범례에는 시인의 진심어린 ‘충고’가 담겨 있다. 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듯한 ‘충고’가 불편하지 않다. 소중하다.

사진=조선일보DB

나는 순두부를 좋아한다

씹을 게 없기 때문이다

인생을 곱씹으며 따로 궁리하지 않아도

좋기 때문이다

씹는 재주보다

삼키는 재주가 편한 것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순두부 또한 어떠한가

모든 두부 중 가장 씹을 게 없는 것이

말 그대로 순두부이다

조금은 뜨겁다 싶어도 꿀꺽 삼키면

그만인 걸

거기에 무슨 시비가 있을까

무슨 잘잘못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순두부를 좋아한다

도무지

씹을 생각도 없고

씹히지도 않는

그 매력이 마냥 좋은 것이다

나는 옳고 그름을 놓은 지 오래되었다

-김중호의 ‘순두부’ 전문

시인은 순두부를 먹으며 마지막 행에 가서야 본심을 털어놓는다. ‘옳고 그름을 내려놔라’는 것이다. 명령하듯 시시비비를 따지거나 묻지 않고 조근조근 속내를 드러내는 말투다. 상당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다.

대신 내면의 솔직한 쑥덕거림, 치명적인 부끄러움, 기만적인 것은 대한 분노, 용서, 집착과 와장창 쓰러짐과 같은 날것 그대로의 감성과 욕망을 찾아보기 어렵다. ‘수평선 너머를 지긋이 바라보는 정신의 경지’(시인 천병석)에 올랐기 때문일까.

표제시 ‘이별할 때 손을 흔드는 이유’를 읽어 보았다. 10연이나 되지만 한 행이 무척 짧다. 행갈이를 하지 않았더라도 의미파악이 어렵지 않다. 산문으로 이어 쓰면 그대로 아포리즘(aphorism)이 된다. ‘삶의 윤리적 패러다임을 잠언처럼 표현하는’ 시쓰기인 것이다.

사람들은

만날 때

악수를 한다

두 손을

꽉 잡으며

뭔가를 붙잡으려 한다

서로에게서

뭔가를

얻으려 한다

그렇지만

정작

만나고 보면

붙잡을 것이

별로 없음을

안다

붙잡으려고 하면

더욱

멀어진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람들은

이별에 즈음하여

빈손으로

손을 마구 흔들어준다

한 깨달음이

왔기 때문이다

얻으려고

붙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도리어

빈손이 되어간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은

이별할 때

빈손을

마구

흔들어주는 것이다

집착은

결국

이렇게

빈손으로 가야만 하는 걸

비로소 아는 것이다

-김중호의 ‘이별할 때…’ 전문

김중호 시인

차근차근 살펴보면 시를 귀납적 추론 방식으로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별적인 사실이나 현상에서 공통점을 찾아내어, 그것을 전제로 일반적 원리를 이끌어 내는 방식 말이다.

그런 시의 과정이 상당히 아름답다. 그래서 독자가 감동한다. 시의 의미망을 부풀게 하는 작업에 시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삶을 노래하는 다양한 변주에 시인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독특하고 새로운 발성을 지닌 시인의 등장에 박수를 보낸다.

사랑초

겨울 내내 나와 함께 했다

저리 연약한 놈이 죽지 않고

잎을 내고 줄기를 늘이고 그랬다

그렇지만

잎도 줄기도 참 많이 죽었다

사랑해주지 않으니 죽었고

때가 되니 죽었고

참

무던히 죽었다

사랑은 떠나는 것이었다

감히 내 곁을 떠나가는 것이었다

내 사랑 적지는 않거늘

틈만 나면 시들어가고

그래도 잎과 줄기가 남았다

사랑초는 말한다

떠나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떠나면

또 다른 사랑이 올 수 있다고

그래서

사랑초라고

오늘도 어김없이 사랑은 간다

그렇지만

어김없이 또 한 싹이 난다

사랑은 가고 오는 것인가

왜 그가 사랑초라 불리는지

왜 그가

나무가 아니라 풀로 존재하는지 알 만하다

-김중호의 ‘사랑초’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