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아이콘’ 이어령. 그가 삶을 마무리하며 천착했던 테마는 인공지능(AI)이었다. 2016년 알파고의 등장 이후 영면에 들기까지 저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AI에 대한 원고를 집필하는 데 몰두해왔다.

그 결과물 《너 어떻게 살래》가 ‘한국인이야기’ 시리즈 세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한국인의 ‘출생의 비밀’과 그 의미를 밝힌 《너 어디에서 왔니》, 젓가락에 담긴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 조명한 《너 누구니》에 이은 책이다.

《디지로그》가 던진 화두

선생이 《디지로그》를 쓴지 벌써 십오 년이 넘었다.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디지로그’라는 말 역시 대중들에게 널리 퍼졌으니 다른 나라에 비해 스타트가 빨랐던 게다. 하지만 우리가 어영부영하는 사이 하나씩 둘씩 우리를 앞지르는 나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진 말자. 디지로그를 만든 것도 한국인이고 디지로그를 이끄는 것도 한국인이 될 터이니.”

15년 전으로 돌아가 《디지로그》 책을 다시 펼쳐본다.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어이다. 이것은 기술 용어라기보다 좀 더 넓은 IT 전반의 문명 현상을 담고 있는 키워드이다. 즉,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 정보 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디지털과 비디지털의 이항대립 체계를 해체하거나 그 경계를 관통하는 통합개념으로 ‘디지로그’라는 말을 새롭게 구축한 것이었다.

인간과 기계의 공생관계

잠시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리 카스파로프라는 사람이 ‘딥블루’라는 컴퓨터와 체스를 뒀다. 결과는 완패. 그는 컴퓨터에 졌다고 낙담하기는커녕 이듬해 희랍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半人半魔) 켄타우로스의 이름을 딴 프로젝트를 만든다. 인간과 컴퓨터의 공생, 이 둘의 컬래버레이션을 만든 거다. 딥블루에 완패한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선생의 말이다.

“사람이 약한 것에 기계가 강하고 기계가 약한 것에 사람이 강하다는 것이 인간과 기계의 협업팀은 그랜드 마스터나 고성능 컴퓨터로만 구성된 팀을 쉴 새 없이 물리쳤다.

기계를 이용하여 기계를 넘어서는 공생작전의 새로운 미래 가능성을 보여준 게다.

인공지능과의 대결에서 중요한 것은 졌느냐 이겼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었을 때

2016년 3월 신문사가 선생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세 글자 말부터 꺼냈다, 알파고.

알파고, 그 녀석이 천하의 마왕 이세돌을 꺾었다는 거다. 세상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인간도 꼼짝없이 당했다는 거다. 기계가 사람보다 더 똑똑한 세상이 하루아침에 들이닥쳤다는 거다.

당시 인터넷의 실시간 검색 순위에 ‘알파고 포비아’라는 말이 AI라는 말과 함께 올랐다. 인류가 완패한 날, 세상이 뒤집힌 판국인데 뭔가 한마디 코멘트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기자는 한 말씀을 재촉했다.

선생은 《조선일보》 2016년 3월 10일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패배가 충격적이지만 본질은 인류의 승리란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알파고를 만든 사람도 인간이므로 인간과 인간의 대결이었을 뿐이다.”

선생의 이 한마디로 알파고 쇼크, 충격, 포비아는 다 정리가 되었다. 기계의 승리가 아닌 인류의 승리로.

인간을 돕는 켄타우로스와 《한국인이야기 – 너 어떻게 살래》

선생은 기계와 인간의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면 인간 편에서 도와주는 기계와의 공생만이 기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예를 1991년 영화 <터미네이터 2>에서 찾았다.

그 이전 시리즈에서는 미래에서 온 기계와 인간의 일원적 대립이었다면 이번에는 인간을 죽이려는 기계와 그 기계에 맞서 인간을 지키려는 로봇이 나온다. 인간은 그 로봇의 도움을 받아 훗날 인류의 지도자가 될 소년을 지켜낸다. 이것이 인간을 배반하는 로봇보다 인간 편에서 인간을 위해 싸워주는 켄타우로스의 이야기인 것이다.

사후 출간한 선생의 역작 《한국인이야기 – 너 어떻게 살래》는 아이들의 마음으로 접근해야만 인공지능 기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지론이 담겨 있다. 이를 위해 동서양의 고전은 물론 인터넷 댓글부터 문명론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동원한다. 그 전개가 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하며 도처에서 무릎을 치게 한다.

이 책은 AI 입문서이자 기계와 생명의 본질을 살피고 그 관계의 의미를 톺아보는 AI 인문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