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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나의 병영시절' 월간조선 기고문 全文

<월간조선> 2006년 11월호에 실린 이 대표의 카투사 시절 회고 "고참들에게 두들겨맞아"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카투사 복무 당시 휴가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카투사 복무 시절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우상호 민주당 의원이 '카투사는 원래 편한 보직'이라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더 화제다.

이낙연 대표는 1974년 2월 입대한 후 같은 해 4월부터 1976년 9월까지 카투사로 근무했다. 군 생활 대부분을 용산 미8군 수송중대에서 복무했다.  최근 카투사 예비역 모임인 ‘디시인사이드 카투사 갤러리’는 우상호 의원 발언과 관련해 성명문을 발표하고 "국방 의무를 수행 중인 수많은 장병과 수십만 예비역 카투사들의 명예와 위신을 깎아내렸다"며 "카투사 출신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무엇보다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우 의원의 발언에 대해 이 대표가 반드시 해명을 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아래는 <월간조선> 2006년 11월호에 실린 '기획특집:나의 병영시절' 중 이낙연 대표가 쓴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당시 기획특집에 글을 기고한 사람은 당시 직책 기준으로 손병두 서강大 총장, 권용철 강북삼성병원 건진팀장, 홍수환 前 세계 챔피언, 이낙연 민주당 국회의원, 손학규 前 경기도지사, 이용식 코미디언, 박상우 소설가, 이대영 중앙大 문예창작학과 교수,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심재혁 인터컨티넨탈호텔 사장,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이다. 전문(全文)은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0611100033#_enliple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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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몸뚱이로 만난 사람들
 
  李洛淵 민주당 국회의원
  용산 美8군 21 수송중대 근무. 병장 전역(1974. 2~ 1976. 9)
  1951년 전남 영광 출생. 광주제일高·서울大 법대 법학과 졸업. 동아일보 정치부 차장·東京특파원·논설위원, 제16代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국회 통일외교위원회 위원, 민주당 대변인, 민주당 기획조정위원회 위원장, 민주당 대통령선거기획단 부단장, 盧武鉉 당선자 대변인 등 역임.
 
 
  먹으려던 빵을 내게 준 B군
 
  
1974년 2월 육군에 입대한 나는 1976년 9월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어느 훈련병이나 마찬가지였겠지만, 나 역시 광주 31사단 훈련소에서 엄청나게 배가 고팠다. 휴식시간 PX에 가면 다른 훈련병의 입에 들어가는 빵까지 빼앗아 먹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PX에서 B군을 우연히 만났다. 고등학교·대학교 친구인 B군은 빵을 사들고 나오는 참이었다. B군의 입대는 나보다 2주일이나 빨랐다. 낯설고 고생스러운 훈련소에서 친한 친구를 만나니 반가움에 가슴이 다 떨렸다.
 
  B군은 『너 배고프지?』 하더니 자기가 먹으려고 샀던 빵을 모두 나에게 주고 가버렸다. 힘든 훈련을 나보다 2주일이나 더 받았으니, 배고픔을 따져 보면 B군이 훨씬 더 하고도 남았다. 『괜찮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B군은 나에게 빵을 안겨 주고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와 같은 하숙집에서 지냈던 B군은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어딘가로 사라졌다. 방학이 끝날 무렵 머리를 박박 깎고 승복을 입은 채로 돌아온 그는 스님으로 대학을 마쳤다. 배고픈 훈련병 시절 친구가 전해 준 그날의 따뜻한 우정은 늘 잊혀지지 않는다. 그 빵을 사양하지 못하고 받아 먹었던 미안한 마음과 함께….
 
  나는 훈련을 마치고 평택 카투사 교육대에 배치됐다. 그 교육대 구내식당은 권투선수 홍수환씨의 어머니가 운영하고 있었다. 1974년 7월 홍수환 선수가 아널드 테일러에게 15회 판정승을 거두고 WBA 밴텀급 챔피언이 됐다.
 
  『엄마, 나 챔피온 먹었어』 하던 홍선수의 외침이 유명해진 그 시합이다.
 
  그날 저녁 우리들은 두 번 행복했다. 홍수환 선수가 세계 챔피언이 된 게 기뻤고, 「집합」 걱정 없이 구내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며 TV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을 마친 후 배속된 곳은 용산 美8군 21 수송중대였다. 보직은 행정병 조수였다. 수송중대여서 운전면허를 따야 했다. 면회 온 친구들에게 『나 운전면허 땄다』고 자랑했던 기억이 새롭다.
 
 
  美軍 중대장의 통역과 오락시간 통역
 
부대 앞에서(왼쪽이 필자).
  행정병은 전화를 받는 일도, 문서를 만드는 일도 영어로 해야 했다. 중대원 조회 때 중대장(미군 W대위)의 통역이 내 임무였다. 미군과 함께 하는 오락시간의 통역도 내 몫이었다. 중대장 연설 통역은 그렇다치고, 짧은 영어 실력으로 오락 통역을 어떻게 해냈는지 지금도 신통하다.
 
  1975년 2월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있었다. 유신반대 여론을 누르기 위한 정권의 궁여지책이었다. 부대에서는 부재자 투표가 실시됐다. 『부재자 투표에서는 찬성이 100% 나와야 편하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부재자 투표는 한국군 파견대장이 관리했다. 파견대장 K소령은 평소에 나를 아껴 주었다. 투표소는 파견대장실이었다. 중대원들은 세 명씩 한꺼번에 파견대장실로 들어가 투표했다. 파견대장은 투표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순서에 따라 나를 포함한 세 명이 파견대장실로 들어갔다.
 
  파견대장은 두 명을 내보내고 나만 남겨 놓았다. 파견대장은 나에게 『네 마음대로 투표해라. 그 대신 네 투표용지는 나에게 맡겨라』 했다. 나는 파견대장의 말대로 했다.
 
  그 무렵 美8군 본부에 나의 고등학교 선배 S씨가 근무하고 있었다. 내가 일병이었을 때 그 선배는 이미 병장이었다. 개성이 강했던 S선배는 군대에 와서도 술을 즐겼다. 밤 12시가 가까워지면 나는 S선배의 전화를 받곤 했다.
 
  『여기 마포 굴레방다리 앞인데, 병장 모자 하나 가지고 와라』
 
  술 마시고 귀대하려는데 모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S선배의 엉뚱함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美8군 본부와 우리 부대는 식당을 함께 썼다. 식당에서 S선배와 곧잘 마주쳤다. S선배는 술 마신 다음 날 아침이면 우유를 유난히 많이 마셨다. 우유를 잔뜩 마시고는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토할 우유를 왜 마십니까?』 하고 묻자, S선배는 『토해도 뱃속에 남는 게 있다』고 했다.
 
  그렇게 짓궂던 S선배는 대학교수가 됐다.
 
 
  내가 고참들에게 얻어맞은 일들만 기억하는 Y군
 
  어느덧 내가 행정병 사수가 됐다. 나는 신참 대원들의 인사기록을 보고 Y군을 조수로 뽑았다. 대학 재학 중에 입대한 Y군은 용모가 준수하고 행동이 점잖았다.
 
  제대 후 20년 만에 Y군을 다시 만났다. 내가 일하는 신문사로 Y군이 전화를 했다. 우리는 광화문 부근 불고기 집에서 만나 소주를 마셨다. 자연스럽게 군대 시절 얘기가 나왔다. 내가 멋있게 행동했던 일이나, Y군을 도와주었던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Y군이 주로 기억하는 것은 내가 고참들에게 두들겨 맞은 일이었다.
 
  군대생활은 내게 뭘 남겨 주었을까? 고참들에게 매 맞은 아픈 기억뿐일까? 그렇지 않다. 2년 7개월에 걸친 군대생활은 나에게 소중한 경험과 기억, 그리고 알몸뚱이로 함께한 전우들을 남겨 주었다.●
  
 

입력 :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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