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치사를 30여년간 이끌었던 양김시대의 주역 김대중과 김영삼. 사진은 1987년 7월9일 연세대생 이한열군 장례식에 참석한후 행진하는 모습. 사진=조선 DB
세대교체론이 이번엔 먹힐까? 국민의힘 당대표를 선출할 6.11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웅, 김은혜 의원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 등을 중심으로 세대교체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더불어민주당에선 퇴진론에 직면했던 86세대들이 오히려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꿰찼고 청와대와 정부 요직까지 맡는 등 여권 주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상황이다.
# 반세기전엔 ‘구상유취(口尙乳臭:입에서 젓 비린내 날 정도로 어리다는 뜻)’라고 했다. 김대중 ,김영삼,이철승이 1971년 대선을 앞두고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제1 야당 신민당의 후보경선에 뛰어들자 유진산 총재가 이들을 비웃으며 했던 말이다. 하지만 그는 세 사람의 기세에 밀렸고 김대중이 후보로 선출됐다. 세대교체론이 통했던 것은 신민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것을 계기로 쇄신 요구가 거셌던 상황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김영삼은 3년뒤 총재직을 맡게 됐다.
# 40대 기수론을 계기로 가시화된 양김(김대중 김영삼)시대는 유진산 시절과는 달랐다. 2003년 김대중 대통령 퇴임때까지 30여년간 지속됐을 정도로 견고했고 이들에게 맞서 세대교체론을 제기한다는 건 승산없는 도박일뿐이었다.
이기택도 그렇게 됐다. 1970-80년대 김대중(DJ) 김영삼(YS)과 함께 민주화 투쟁의 중심에 섰으며 차세대 리더로 꼽혔으나 그것때문에 양김으로 부터 끊임없이 견제를 받아야했고 결국 정치적으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YS가 1990년 3당합당으로 야권을 떠났고 DJ도 1992년 대선 패배후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그는 민주당 총재를 맡아 야권 제1 지도자로 부상했으나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DJ가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와 독자적인 창당(새정치국민회의)에 나서자 동교동계(DJ 정치계보)의 집단탈당이 이어지는 등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이기택은 반대세력을 추스려 통합민주당을 창당했으나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또 다시 DJ의 새정치국민회의와 YS의 신한국당으로 흩어지게 됐다.
이기택이 이처럼 DJ와 YS에게 밀리기만 했던 배경으론 세력화에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세대교체 주역으로 꼽혔지만 양김과 같은 지역적 지지기반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집권당인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도 대통령이었던 YS까지 겨냥한 “3 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시대 청산”을 역설하며 지지를 호소했으나 역풍에 휘말렸고 결국 낙선했다. 그는 대선출마에 앞서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로 활동할 때 대쪽 소신을 고수, 정권 비리 등을 놓고 대통령과 수시로 갈등을 빚으면서 YS세력인 민주계 인사들과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양측간 갈등은 대선정국으로 번졌다. 이 후보의 여론 지지율이 아들 병역비리의혹으로 급락하자 YS측 일부에서 후보교체론이 제기되기 시작했으며 민주계인 이인제 후보의 탈당.출마에도 이같은 기류가 영향을 미쳤다.
선거전 막판의 충돌은 더욱 격해졌다. 신한국당이 선거일을 2개월 앞두고 대선후보였던 DJ의 비자금의혹을 폭로, 지지율 반등을 노렸으나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자 민주계 대부분이 가세한 가운데 후보교체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던 것. 이 후보도 비자금의혹 수사가 유보된 것을 겨냥, “3김 정치의 부패구조를 깨기 위한 성전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하는 등 양측간 갈등은 한껏 고조됐다. 영남권을 중심으로 YS 지지 표심도 이 후보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회창 후보 역시 이들에게 맞설 지역적 지지기반을 다지지 못했던 게 대선 패배의 배경이 됐다. 황해도 출신인 그는 부친 고향이 충남 예산이란 점을 들어 충청권 연고를 주장했으나, 이 지역 맹주로 DJ를 지원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에게는 역부족이었다.
# 정치란 궁극적으로 제로섬 게임이 되기 마련이다. 정글같은 정치판에서 윈윈게임을 한다는 건 쉽지않다. 중진이 세대교체론에 밀리면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게 되고 보따리를 쌀 수도 있다. 그만큼 세대교체론을 관철시킨다는 게 정치 현실에선 어렵다.
선거와 맞물리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의 이번 세대교체론은 그러나 당내 쇄신을 바라는 여론과 맞물려 탄력을 받고 있다. 세대교체를 역설한 이 전 최고위원이 당대표 경선 출마자들중 여론조사 1위를 고수할 정도다. 당을 주도할 정도의 특정 계파가 없는데다 초선의원들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도 세대교체론에 유리하다.
하지만 당내 소장파들을 뭉치게 하는 구심력은 약할 것이란 점이 한계다. 갓 정치권에 진입한 초선 의원의 경우 총선 공천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내 중진 의원의 눈치도 봐야 한다. 경선 방식이 본선에선 ‘당원투표 70%, 여론조사 30%’로 정해진 것도 중진들과 경쟁하기에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소장파 후보들의 승산은 그만큼 낮을 수밖에 없다. 이들중 2명이상이 본선에 진출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세대교체론은 먹혀든 것으로 볼 수 있고 당쇄신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선은 드라마틱해지고 여론의 관심을 한껏 끌어올리게 된다. 본선에서 이들간 후보단일화까지 이뤄지면 제대로 일을 낼 수 있다. 소장파가 당선되는 대이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경선의 향배는 내년 대선과 관련,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 외부인사 영입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선정국의 중대 분수령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