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민태원 선생은 청춘예찬에서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고 했다.
필자는 얼마 전 일본의 후쿠오카에서 '심장의 고동'이 아닌 '민중의 고동' 소리를 접했다.
민중이란 무엇인가.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국민을 말한다. 그들은 피지배 계급의 일반 대중이다.
필자는 거리에서 펄럭이는 전시회의 깃발을 따라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을 찾았다. '민중의 고동-한국미술의 리얼리즘 1945-2005'의 주제가 달린 이 전시회는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놀라운 작품들이 가득했다.
일본에 최초로 소개되는 한국의 민중미술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의 학예과장인 구로다 라이지(黑田雷兒, 46세)씨는 "이번의 전시회는 한국의 국립현대 미술관과 니가다 현립 만다이지마 미술관,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미야코 노조 시립미술관, 니시노미야시 오타니 메모리얼 미술관, 후추시 미술관이 공동으로 개최합니다"고 했다. 그는 또, "1980년대의 한국미술을 상징하는 '민중미술' 작품들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지난 해 10월-11월 니가다현립 미술관에서 성공적인 전시회를 마친 이 작품들은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2007. 12. 2-2008. 1. 22)에서 두 번째로 선보이고 있었다.
주최자 측은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한국의 현대미술이라고 하면 1970년대 추상화 계통의 모노크롬 회화가 주로 소개되어 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각종 탄압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이어져온 리얼리즘 미술의 흐름을 정리하는 한편, 현재에도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 미술의 주류에서 활약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도 같이 전시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소개되지 못했던 한국 현대미술의 또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고 했다.
실제로 민중미술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등장한 저항적인 사회흐름을 표현한 미술의 한 장르다. 이러한 한국의 민중미술에 대해서 일본사람들의 관심이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하루에 약 200명 정도가 이 전시회를 찾는다고 했다. 그러나 관람객들은 "이정도인지 몰랐다. 참으로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민족미술 건설을 향해서-한국현대미술 또 하나의 흐름
제1코너는 8·15 해방과 6·25 동란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김만술의 '해방'이라는 조각품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작품은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2년 후에 제작된 것이었다.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을 획득한 한국민의 저력과 인내를 표현한 것으로, 한국현대사 중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인체를 포박한 포승을 잘라내고, 넘치는 감동과 의지가 극명하게 표현된 사람의 얼굴표정은 해방 후 조국의 미래를 위해 매진하려는 굳은 다짐과 의지를 엿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철희의 '학살', 이수억의 '폐허의 서울', 서석주의 '판자촌', 김두한의 '야전병원', 박고석의 '범일동 풍경'이 그 당시의 어려웠고 처절했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임응식의 사진작인 '구직'은 실직자에게 드리워진 먹구름 같은 어두움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가슴에 '구직'이라고 쓴 커다란 명패를 달고 있는 모습에서 예나 지금이나 실직자의 서러운 얼굴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최의순의 '수난자의 두상', 임세택의 '서울 1975', 김경인의 '문맹 36-21', 홍성담의 '라면을 먹는 사람들'도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80년대 민중미술의 선구자로서 전설적인 인물로 일컬어지고 있는 오윤의 판화가 제법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인물, 기마전, 해골좌상, 탈춤과 조각 작품인 여인 두상, 여인과 호랑이 등의 작품에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주최 측은 오윤의 '탈춤'은 기하학적인 형태로서 볼륨감이 있는 입체를 평면으로 재현하여 구상과 추상의 중간 형태를 취한 것으로, 세잔느로 부터의 영향과 아프리카 조각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더해 기하학적인 화면분할과 재현적인 형상을 결합한 뛰어난 작품이라고 했다.
민중미술의 여명기-'현실과 발언' 그리고 그 주변
1980년 민창기, 오윤, 임상옥 등이 '현실과 발언'이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모노크롬 회화 등 모더니즘 미술을 유미주의적이고 형식적이라고 비판한 이들은, 미술을 사회와 정치 그리고 도시문명과 관련시켜 총체적인 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위치를 설정하였다. 그들은 농촌과 도시의 계층적 모순과 대량 소비사회, 환경파괴 등의 현실묘사를 구사하게 되었다.
강요배의 '맥잡기'는 민화처럼 보이는 소박한 표현방식으로 장식적 색채를 사용하였다. 권순철의 '얼굴 시리즈'는 '산 시리즈', '혼 시리즈'와 함께 70년대 초부터 시작된 대표적인 연작 시리즈다. 그의 '얼굴 시리즈'는 보편적인 한국인의 모습과 정신을 표현했다. 김경인의 '이중고 81-1', 김용태의 '행복의 모습', 김정헌의 '풍요한 생활을 창조하는-럭키모노륨, 노원희의 '큰길', 민창기의 '영화를 보고 만족하는 K씨', 신학철의 '신기루', 심정수의 '구도자', 안성금의 '오한'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코너에도 오윤의 판화가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오윤의 피로, 할머니, 봄의 소리, 새벽, 춤2, 검가(劍歌), 아버지, 낮도깨비, 대지, 마케팅V: 지옥도, 원귀도 등이 눈길을 끌었다. 이 원귀도는 한국전쟁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으며, 한국현대사의 비극과 민중의 한(恨)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했다.
민중미술운동의 성숙과 변화 -소집단 활동과 정치 운동화
민중미술의 전개 중에서 미술을 시민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게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1983년 홍성담, 최열 등의 주도로 광주에 개설된 '광주 시민 미술학교'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한다. 많은 시민과 노동자가 판화를 배우고, 대중에의 미술 보급이 광범위하게 펼쳐졌다. 이 전시에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작품은 김영수의 '고문'이었다. 가면을 쓴 한 남성이 여성을 묶어놓고 성고문을 하는 작품 앞에서 필자도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김경인의 '그린힐 화재에서 스물두명의 딸들이 죽다'는 1988년 3월 경기도 안성에 있는 그린힐 봉제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숙소에서 잠자던 28명 중 22명의 여성근로자가 사망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화재가 났지만 문을 밖에서 잠구어 아침에 경비원이 문을 열어 줄 때 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당시의 열악한 환경을 말해 주고 있었다.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화마와 싸우며 절규하던 여성 근로자들의 처참한 모습이 그 때의 상황을 말해 주고 있었다.
화가 황주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림은 의식 또는 무의식의 심부(深部)로부터 길어 올리는 '추억의 두레박'인 것 같다. 화려하든 어둡고 우울하던 간에 그곳에는 자기애와 인간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뒤섞여 있다"고 했다.
필자는 '추억의 두레박'이 너무나 어둡고 우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전시 작품 하나하나에 빠져 들었다. 일본 관람객들에게 너무나 진한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