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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CEO
  1. 리더십·전략

난국(難局)의 시대, 다시 읽는 정주영

전도근 著 《신화를 만든 정주영 리더십》(북오션, 2010)으로 읽는 그의 성공 전략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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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선DB
정치사회적으로 복잡다단했던 한 해가 가고 있다. 현실정치는 여전히 갈등 국면이고, 내년도 경제 상황 또한 중공업 및 제조업 부진과 저성장 기조로 인해 도약이 쉽지 않다.
 
작금의 날씨만큼 추운 것이 리더십 부재다. 국가 통치, 기업 경영, 대인 관계, 이상 실현, 자아 성취 등 집단으로나 개인으로나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시대가 왔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통섭과 융합의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고 진단한다. 혁신의 회로를 읽지 못하면 인공지능에도 밀릴 수 있다고 경고까지 한다.
 
이럴 때 다시 찾는 것이 거인의 발자국이다. 선인의 성공 궤적을 더듬어가며 급변하는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교훈과 활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은 그동안 쌓아올린 '경제중흥' 업적으로 보아 한 분야의 거인이라 칭할 만하다.
 
난국의 시대를 돌파해 가는 도전 정신을 되새기고 새해의 긍정 동력을 충전한다는 의미에서 정주영 리더십을 다시 살펴보면 어떨까. 저자 전도근의 책 《신화를 만든 정주영 리더십》(북오션, 2010)에서 역대 성공사례로 보는 그의 핵심 리더십을 발췌, 정리했다.
 
1.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져라
 
〈정주영의 '하면 된다'는 세계 고속도로 건설 역사상 최단기간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정주영은 경부고속도로 시공 후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바닥에 등을 붙이고 자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자동차에서 잠깐씩 새우잠을 자는 것이 고작이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너무한 일이었지만 그들의 게으름을 막기 위해 일부러 자동차를 타고 공사장 주변을 뱅뱅 돌기도 했다.
 
고속도로에 대한 열의는 박정희 대통령도 못지않았다. 고속도로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으면 시도 때도 없이 밤중이든 새벽이든 그를 찾아왔다. 밥을 먹을 때도, 막걸리를 나눠 마실 때도 그 둘의 관심사는 오직 나라의 경제를 살리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착공한 지 290일 만인 1970년 7월에 역사적인 경부고속도로 개통이 시작됐다. 290일 만의 고속도로 건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정주영은 빨리하기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했으며 일을 완수하기 위해 잠도 자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을 '하면 되는 일'로 바꾸었다.〉
 
2. 도전하고 다시 도전하라
 
〈정주영이 인천 부두에서 막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노동자 합숙소에는 빈대가 늘 우글거렸다. 고단한 몸을 누일라치면 빈대가 극성을 부렸다.
 
정주영과 몇몇 노동자들은 빈대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커다란 식탁 위에 올라가 잠을 청하기도 했지만, 빈대들은 탁자 다리를 타고 와서 악착같이 피를 빨았다.
 
정주영이 한 가지 꾀를 냈다. 탁자 다리를 물이 가득한 양푼 네 개에 담가놓고 그 위에 올라가 잠을 잔 것이다. 그날 하루는 오랜만에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틀 밤을 못 넘겼다. 빈대는 다시 그의 몸을 물었다.
 
정주영은 불을 켜고 자세히 살펴봤다. 빈대들은 양푼에 담긴 탁자 다리로 기어오른 게 아니라 아예 벽을 타고 우회했다. 천장으로 올라간 다음 공중낙하를 시도한 것이다.
 
정주영은 깨달았다. "빈대도 저렇게 전심전력으로 연구하고 노력해 제 뜻을 이루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빈대만도 못한 인간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정주영의 '빈대철학'이다. 그 후 정주영은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빈대철학'을 되새기며 이를 악물었다고 한다.〉
 
3. 근검절약을 실천하라
 
〈"집도 없으면서 텔레비전은 왜 있어? 라디오 하나만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것은 다 아니까 집 장만할 때까지는 참아. 회사에서 작업복에서부터 수건, 심지어 속옷까지 다 주니까 옷 사는 데 돈 쓰지 말고 저축을 해. 양복은 한 벌만 사서 처가에 갈 때만 입고!"
 
그는 국내 최고의 재벌기업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근검절약의 기본사상을 몸소 실천했으며, 평생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았기에 성공의 중요한 요인으로 신용을 꼽았다.
 
이러한 그의 정신은 국민 경제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현대의 성장이 바로 국가의 부를 축적하고 국민들이 잘사는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주영은 열아홉 살에 객지로 나와 막노동을 했던 시절부터 누구보다 무섭게 절약하는 청년이었다. 장작값을 아끼기 위해 아무리 추워도 저녁 한때만 불을 지폈고, 배가 부른 것도 아닌데 연기로 날려버리는 돈이 아까워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전차값이 아까워 일찍 일어나 걸어서 출근을 했고, 구두를 오래 신으려고 굽에 징을 박아서 신기도 했다. 옷은 춘추복 한 벌로 만족했고, 그마저도 겨울에는 양복 안에 내의를 입고 지냈다. 한마디로 천하에 지독한 구두쇠였다.
 
하지만 정주영이 젊었던 시절에는 누구나 가난했고 그렇게 아끼지 않고서는 밥을 먹고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집을 장만하고 수만 명의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된 이후에도 그의 근검정신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정주영의 자린고비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 경제가 다시 한 번 도약하는 계기를 갖길 바란다.〉
 
정리=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자료=《신화를 만든 정주영 리더십》 본문 내용 中
 

입력 : 2017.12.24

조회 : 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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