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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진 대구시장

“박근혜 전 대통령, TK 자존심 지켜 달라”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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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부겸 장관과의 대구시장 리턴매치, 대구 위해 좋은 일”
⊙ “대구는 변신 중 … 2020년쯤 대구산업의 기반이 ‘미래 신산업’으로 터닝”
 
  권영진(55) 시장은 역대 대구시장 가운데 유일하게 비관료 출신이다. 서울 국회의원과 서울 부시장을 지낸 이력으로 대구시장이 된 것은 봉건적 연고주의가 강한 지역사회로 볼 때 이변이었다. 관행과 관성, 그리고 행정관료에 익숙한 시민들의 결단이자 모험이었다.
 
  권 시장이 취임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대구가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배타적인 대구 주류사회에 ‘비비고 들어가기’보다 시민과의 직접 소통을 택했다. 현장소통 시장실, 시민원탁회의, 주민참여 예산제, 시민 정책제안 등 과거 대구에서 볼 수 없었던 행정 시스템을 도입했다. 차려놓은 밥상에 익숙한 시민들이 직접 밥상을 차리게 됐다고 할까.
 
  지난 9월 13일 대구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1년 전 만났을 때의 카랑카랑하던 목소리 톤이 굵고 낮게 들렸다. 왠지 내공이 느껴졌다.
 
  “대구 79곳에 ‘현장소통 시장실’을 마련해 현안 345건을 처리했어요. 2014년 9월부터 ‘시민원탁회의’를 10차례 열었습니다. 부문별로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넘쳐요. 주민이 원하는 사업을 공모해 예산을 배정하는 ‘주민참여 예산제’로 95억원(261개 사업)을 반영했고, 4000여 건의 시민정책을 시정(市政)에 반영하려 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어요.
 
  과거 대구는 ‘안 돼’라고 하는 부정적 인식과 무엇이든 해 주길 바라는 마음, 가진 것에 안주하는 생각 등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지금 대구는 많은 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 구체적으로 시민들의 ‘무엇’이 달라졌나요.
 
  “시민사회가 시정 주인으로 참여하고 봉사하기 시작했어요. 숫자로 설명할 테니 잘 들어 보세요. 제가 시장에 취임할 때 자원봉사 등록 인원이 52만명쯤 됐는데 실제 참여하는 시민은 12만6000명 정도였어요. 근데 작년 말 실적을 보니 26만명이 봉사에 참여하고 있더군요. 2배 이상 늘었어요.
 
  기부도 눈에 띄게 늘고 있어요. 대구 사람들, 드러내 놓고 기부하는 걸 저어(꺼려)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아너 소사이어티’(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개인 고액기부자 클럽) 회원 수가 굉장히 늘었고 소액기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서문시장에 큰 불이 났어요. 그때 성금을 모았는데 저는 30억원 정도 모으면 맥시멈이라고 봤는데 76억원이 들어왔어요.
 
  그리고 한쪽(의 모금)이 늘면 다른 쪽, 그러니까 이웃돕기 성금 모금액이나 적십자모금은 줄어야 되는데 나눔이나 기부를 온도로 표시하는 대구의 ‘사랑의 온도탑’이 전국에서 가장 뜨겁게 달라 올랐어요. 수온주가 100도를 넘어 전국 1위를 차지했어요.
 
  시민들이 공동체를 위해 나누고 봉사하는 마음이 확산되고 있어요. 저도 놀라고 있지만 이게 ‘대구의 희망’이라고 봅니다.”
 
 
  호남 홀대론과 TK의 미래
 
권영진 시장이 지난 5월 26일 대구 수성대학교에서 열린 ‘시정공감 현장소통시장실’에 참석해 학생, 시민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탄핵과 갑작스런 정권교체로 대통령의 고향 대구는 하루아침에 야도(野都)가 돼 버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예산 증액을 요청할 ‘핫라인’이 있었는데 통로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과거 대구 지역구 12석 모두를 1당이 독식했으나 지금은 자유한국당 7석(곽상도 김상훈 정종섭 곽대혼 추경호 정태옥 윤재옥), 민주당 2석(김부겸 홍의락), 바른정당 2석(유승민 주호영), 대한애국당 1석(조원진)으로 흩어져 버렸다. 대구 정당사에 이만한 정치적 다양성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야당 단체장이 되고 보니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아요.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호남 홀대론을 두고 다투는 모습을 보니 한편으론 씁쓸하고 한편으론 부러웠어요. 사실 대구·경북은 인사·예산에서 홀대를 넘어 ‘배제’의 상황인데 이건 쟁점이 안 되고 호남의 줄어든 SOC 예산이 이슈가 되니 답답합니다.
 
  그동안 대구·경북은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우리와 정서가 가까운 사람을 뽑아 주면 그 사람들이 지역경제도 발전시켜 주고 예산도 따 주리라 기대했는데, 지난 20년간 대구·경북이 발전을 했나요? 오히려 더 퇴보하고 말았어요. 경제가 위축되고, 24년째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꼴찌이며, 제대로 된 기업 하나 없고, 일자리가 없어 청년은 떠나고, 대구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이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야도로 돌아와, 대구·경북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대통령이, 중앙정부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해요. 스스로 목표와 전략, 그리고 시민의 에너지를 모아 그 바탕 위에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목숨 걸고 뛰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권영진 시장이 대구 칠성시장을 찾아 상인들의 애로를 청취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 3년간 시내 79곳에 ‘현장소통 시장실’을 마련해 현안 345건을 처리했고 ‘시민원탁회의’를 10차례 열었다.
  권영진 시장은 지난 3년 동안 대구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면서 미래형자동차, 의료, 물, 로봇과 IoT, 에너지 산업을 ‘5대 신성장 동력’으로 선정, 집중 육성해 왔다. 대구 출신 기자의 기억으로 이런 신산업은 10년 전만 해도 대구에 없었다. 대구에 섬유와 기계산업을 제외하고 이만한 잠재력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런 5대 미래산업의 기반이 대구에 있었던가요.
 
  “기반이 다 있어요. 우리 스스로 잠재력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미래에 대해 신뢰가 약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산업과 기업은 좋은 여건만 만들어 주면 오게 돼 있어요. 지난 8월 31일 현대중공업 그룹의 지주사인 ‘현대로보틱스’가 중국에 진출하려다 대구로 오게 됐어요. ‘쿠카’라는 세계 4위 로봇기업이 대구에 연구소를 내고 생산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왜 대구에 오게 됐냐고요? 이미 대구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대구 북구 노원로 77)을 유치할 정도로 로봇 클러스터가 마련돼 있어요. 산업용 로봇에서 일본 1위, 세계 2위 기업인 일본 야스카와(安川)전기가 성서5차 산업단지에 와서 ‘6축 로봇’을 만들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어요. 이런 잠재력이 있기에 대구에 기업들이 옵니다. 대구가 로봇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았어요.
 
  대구의 물 산업을 보세요. 과거 대구가 섬유산업에 매달릴 때 금호강(琴湖江)은 오·폐수로 죽음의 강이 됐었어요. 그런 물 위기를 대구가 몇 번이나 겪었잖아요. 대구 사람들은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4조원 이상을 투입, 오염된 강을 생태하천 복원율 1위 강으로 바꾸면서 물 관리와 물 재처리 노하우를 갖게 됐어요. 향후 대구에 국가 물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할 예정인데 내년이면 1단계 공사가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공사를 끝내기도 전에 롯데케미칼 등 16개 물 기업이 입주하고 있어요.”
 
  권 시장은 “3년이란 세월은 너무 짧았다. 기업 유치한다고 공장이 돌고 일자리가 바로 생기지 않는다. 공장을 짓고, 설비를 들여오고, 사람을 뽑으려면 3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153개 기업, 2조원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2020년이 돼야 본격 가동이 될 수 있어요. 그때쯤 대구산업의 기반이 ‘미래 신산업’으로 터닝하는, ‘골든크로스’가 일어나리라 기대합니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대구의 생각은 …
 
지난 7월 24일 권영진 시장이 ‘폭염대응 현장점검’차 경로당을 방문,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지난 3년간의 성과에 대해 몇 점을 주고 싶으세요.
 
  “어려운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데 만족이란 게 있나요? 시간도 부족했고 ….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변화와 혁신을 위한 씨앗을 뿌렸고 싹은 틔웠다고 평가하고 싶어요. 점수로 환산하기는 …, 점수야 밖에서 매기는 거지 시험 친 당사자가 매기는 건 ….”
 
  이 대목에서 탄핵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권 시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대구정서는 세대별로 많이 다르다. 생각의 다양성이 정치적 다양성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은 우선 안타까움이고, 둘째는 배신감이에요. 그러나 대구·경북이 과거에 연연하거나 발목이 잡히면 미래로 못 나갑니다. 과거의 섭섭함, 안타까움, 배신감, 분노는 지난 시대의 일로 떨쳐내고 미래로 나가야 합니다.”
 
  권 시장은 “고통스럽지만 이제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생각하면 인간적으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그분으로 인해 우리 대구·경북도, 보수도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가혹한 요구일는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TK의 자존심을 지켜 주는 의연한 장수의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주군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충성스런 충신 하나 없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재판정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사실관계를 다투고 법리 논쟁을 하는 것, 이 또한 안타깝고 불행한 일입니다. TK 정서로 보면 장수의 자세가 아닙니다.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죄가 없다. 잘못이 있으면 나를 처벌하라’고 하는 것이 장수의 기개가 아닌가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당과 보수가 궤멸 직전에 있어요. 출당이냐 아니냐며 갈등하고 분열할 조짐입니다. ‘모든 잘못은 내가 안고 가겠다. 자유한국당이여, 이 땅의 보수여, 나를 밟고 다시 일어서라’고 하는 것이 그도 살고 대한민국 보수도 살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정당도 사는 길 아닌가요? 박근혜 전 대통령께 이런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인가요?”
 
  마지막으로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김부겸 행안부 장관과의 재대결 가능성을 물어보았다.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권 시장의 득표율은 55.95%, 김 장관은 40.33%였다. 선거를 총지휘해야 하는 행안부 장관이 출마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저와 김부겸 장관이 대구를 위해 리턴매치하는 게 좋다, 이런 생각입니다. 김 장관 입장에서 국회의원이 된 지 2년도 안 돼 다시 시장 하겠다고 의원직, 장관직을 버리는 게 양심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지만 리턴매치가 되면 온 국민이, 대구 시민이 주목하지 않겠어요? 누가 이기든 지든 둘 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시민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져 좋고요. 리턴매치, 대구를 위해 남는 장사 아닌가요?”⊙

입력 : 20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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