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출범하자마자 ‘일자리 창출’ 등 큼직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기대 반, 우려 반이다. 무언가 크게 바뀔 것 같은 느낌을 갖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갈 것 같은 느낌도 갖는다. 무릇 정치가는 국가 발전을 위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헌법에 명시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전’을 이야기한다.
최초로 헌법에 명시된 ‘박정희 헌법’의 세 가지 <경제 조항>
앞선 칼럼에서, ‘박정희 헌법’(헌법 제6호, 1962.12.26., 전부 개정)은 이전의 헌법을 ‘전부’ 개정하여 ‘경제’ 관련 세 가지 조항을 새롭게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들 세 가지 조항을 인용한다.
“제111조 ①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제113조 농지의 소작제도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금지된다.
제116조 국가는 대외무역을 육성하며 이를 규제·조정할 수 있다.”
이승만의 농지개혁, 박정희가 완결하다
여기서는 ‘제113조 농지의 소작제도 금지’를 이야기한다. 농지의 소작제도 금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인 농지개혁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해방이 되자 이승만 정부가 1949년 1월에 ‘농지개혁법’을 국무회의에 상정했고, 같은 해 6월에 법 제31호로 공포한 후에 1950년 3월에 최종 개정법안을 공포했다. 그러나 6・25동란으로 농지개혁은 일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954년에 끝날 예정이었던 농지개혁은 오래 동안 지연되다가 1969년 4월에야 박정희 정부에서 완결을 보게 되었다.1)
농지개혁의 핵심내용은 ‘농민이 농지를 소유케 하는 것’
이 농지개혁법의 핵심 내용은 농가가 소유하지 않는 농지, 농가가 직접 경작하지 않는 농지, 소유 상한을 초과하는 농지를 정부가 사들여 이를 직접 경작할 농가에게 분배・소유케 하는 것이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농지 분배가 1가구당 3정보(1정보는 약 3,000평)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3정보를 초과하는 농지는 정부가 사들이기로 한 ‘농지소유상한제’ 도입이었다. 농지개혁의 가장 큰 의의는 지주의 농지 소유를 농민의 소유로 전환시켰다는 데 있다. 이 결과 대한민국은 출범부터 부의 편재(偏在)를 막을 수 있었다.2)
‘소작제도 금지’는 농민 간의 공정 경쟁 유도
박정희 정부는 이승만 정부가 추진한 농지개혁의 중요성을 이해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박정희는 소작농의 서글픔을 이해했을 것으로 짐작된다.3) 그래서 농지개혁으로 농지 소유의 편재가 사라지고 소작제도가 사라진다면, 농민 간에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게 되리라는 것을 박정희는 믿었을 것이다. 이 또한 자유시장경제 철학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이승만 정부가 해방 후 농지개혁법을 도입하여 농지 소유의 집중을 억제한 결과 한국은 브라질이나 필리핀 같은 나라들에 비해 소득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되지 않았다. 여기에다 박정희 정부는 헌법에 ‘농지의 소작제도 금지’를 명시함으로써 농민들 간에 공정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필리핀과 비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필리핀은 아직도 국민의 50%가 소작농, 소득불평등이 심한 나라
필리핀은 300여 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이어 50여 년 동안 미국의 지배도 받아 일찌감치 개방된 나라다. 1962년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은 220달러로, 같은 해 87달러의 한국보다 2.5배나 많았다. 1970년 1인당 국민소득은 필리핀 213달러, 한국 291달러였다.
그러나 필리핀은 지금 소득불평등과 소득양극화가 세계에서 대표적으로 심한 나라의 하나다. 에 따르면, 2009년 지니계수가 한국은 0.316이고 필리핀은 0.44로, 필리핀이 한국보다 소득불평등이 훨씬 더 심하다. 또 최하위 10%의 소득점유율(D1)에 대한 최상위 10%의 소득점유율(D10) 크기(D10/D1)가 2009년 한국은 7.8이고 필리핀 14.1로, 필리핀이 한국보다 소득양극화가 훨씬 더 심하다.
필리핀은 아직도 노동 인구의 약 5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소득불평등이나 소득양극화가 심할 것 같지 않는데 왜 한국에 비해 훨씬 심할까? 그 이유는, 필리핀은 인구의 약 5%가 전체 국토의 약 95%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지금도 소작농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여기에다 소작인들은 소작으로 생산한 곡물의 반 정도를 지주에게 바쳐야 할 정도로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승만과 박정희, ‘소득불평등과 소득양극화’ 완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다
농지개혁을 최초로 헌법에 도입한 이승만과 소작제도 금지를 최초로 헌법에 도입한 박정희는 ‘소득불평등 완화’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한국이 세계에서 소득불평등이 양호한 나라가 되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각주
1) 배진영(2016), 「“옜다 땅이다 농지개혁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 남정욱·윤서인(2016), 『시간을 달리는 남자』, 백년동안, pp.155-216.
2) 박동운(2015), 『대한민국 가꾸기』, 선.
3) 경북 구미시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는 농가로서는 그 규모가 매우 초라하다는 느낌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