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교수 생활의 후회...‘왜 운동권 학생들을 끝까지 설득하지 않았을까?’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 업데이트 2017-02-13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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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로 현직에 있을 때 운동권 학생과 얼킨 이야기
1997년5월31일 한총련 대학생 1만2천명이 서울 대학로와 종로 일대에서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아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사진은 아래 내용과는 관계 없음).
30년 동안 교수를 하면서 후회스러운 일이 딱 하나 있다. ‘왜 운동권 학생들을 끝까지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물론 학생들이 들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애써서 설득해도 성과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정년퇴임한 지 꼭 10년 되는 시점에서, 대선을 앞둔 정치판에 운동권 논리가 부활하는 것을 보면서 후회스러운 과거를 되새긴다. 다음 글은 운동권 논리가 캠퍼스를 지배하고 있던 1990년대 초에 쓴 것이다.
 
작년 4월 하순, 어느 늦은 오후였다. 자가용 십부제 운행에 해당된 나는 서문 쪽 버스정류장을 향해 캠퍼스를 가로 질러 가고 있었다. 잘 익은 봄 향기가 캠퍼스 가득히 넘쳐흐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소리’가 꽝하고 울려 퍼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서문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양학연구소 입구에 이르렀을 때였다.
 
네 명의 학생들이 서문 앞 큰길가에서 길 건너편의 전경들을 향해 뭐라고 열심히 외쳐대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4, 5월이면 으례 등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일 거라고 생각하며 서문 쪽을 향해 계속 언덕길을 내려갔다. 얼마 후 네 명의 학생들은 구호를 외치다 말고 갑자기 돌아서서 언덕길을 올라오기 시작했다. 먼발치서 보아도 그들의 모습은 의기양양했다. 그들은 제각기 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봄 향기에 흠뻑 취한 채 몽둥이를 들고 있는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저것은 협화음인가 불협화음인가’를 내 자신에게 열심히 묻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 중 한 명은 내가 가르치고 있는 4학년 H군이 아닌가! 지금쯤 책을 들고 있어야 할 4학년 학생이 몽둥이를 들고 있다니!
 
나는 H군이 나를 알아볼까 봐 한사코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채 학생들 사이로 언덕길을 내려갔다. 마치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것 같은 민망함이 나를 무척 가슴 조이게 만들었다. 나는 끝내 뒤돌아 볼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행여나 H군도 나처럼 뒤돌아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저것은 누구의 책임인가?’를 마음속으로 열심히 되뇌면서 나는 계속 길을 갔다.
 
내가 H군과 눈이 마주칠까 봐 염려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가 나를 보고 수줍어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H군은 4년 전 서울 캠퍼스 전체 수석으로 합격한 학생이다. 그는 1학년 때 교수와 급우들의 기대 속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한 그가 전국의 대학 캠퍼스를 휩쓴 대학민주화 물결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캠퍼스를 지날 때마다 마주치곤 하던 크고 작은 집회에서 그가 어김없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곤 했다. 어쩌다가 학생들 사이에서 구호를 외치던 그와 눈이 마주치게 되면 그는 매우 수줍어하며 어색해 했다. 내가 고개를 한사코 한쪽으로 돌렸던 이유도 손에 몽둥이를 든 채 언덕길을 올라오다가 눈이 마주치면 그가 어색해 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나는 그의 성적을 열람할 기회가 있었다. 1학년을 제외하고 결코 좋은 편이 못되었다. 그는 내게서 네 과목을 수강했는데 모두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다. 그가 내가 가르치는 과목을 마칠 때까지 어떤 식으로 충고해줄까 생각하곤 했다. 아버지를 연구실로 부를까도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그가 내 강의를 마지막으로 듣던 학기가 끝날 무렵 드디어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 내 연구실에 한번 들르겠나?” 그는 대답은 분명히 했지만 두 차례에 걸친 조심스러운 제의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공손히 인사만 할 뿐이었다.
 
내가 그와 눈이 마주칠까 봐 한사코 외면했던 또 다른 이유는 4학년인데도 손에 책 대신 몽둥이를 들고 있는 것에 대한 나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제자들의 연애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제자들의 취직을 위해 저돌적으로 대들어 도와준 적도 있다. 그러나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학생을 단 한 번이라도 끝까지 설득하여 문제를 해결해준 적은 없다. 아니, 비판적인 학생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해 본 적도 사실은 별로 없다. 교내 집회가 금기시(禁忌視)되던 시절, 정부 차원의 권유에 못 이겨 소위 ‘문제 학생’과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눈 적은 많다. 그때마다 학생들의 장래를 염려해주는 어휘들을 열심히 사용했지만 학생들은 그 같은 어휘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는 H군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H군의 문제를 놓고 그와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네 과목을 가르치는 동안 나는 한 역량 있는 제자를 너무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들만 가르쳤을 뿐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손에 책을 들고 있어야 할 시기에 몽둥이를 들고 있는 그에게, 나는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가 강의를 통해 학생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은 실제로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학생 자신이 문제 해결에 참여할 의사가 없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교수는 항상 변명만 늘어놓고 있어야만 하는가?
 
세상은 지금 무섭게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교수는 강의를 통해서 학생들에게 세상의 빠른 변화를 인식시켜 줌으로써 학생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H군은 다행히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가 대학원에서 몽둥이 대신 책을 얼마나 힘차게 움켜잡을 것인가는 역시 그의 의사에 달려 있다. 어떻든 나는 그에게 세상의 빠른 변화를 알리기 위해 레스터 더로우(Lester Thurow)가 최근에 펴낸 『세계경제 전쟁』(Head to Head)을 반드시 읽힐 것이다.
 
나는 최근 동료 교수의 아들 결혼식에서 H군을 만났다. 정년 후 H군 생각이 이따금 떠오르곤 했지만 성격 탓에 H군 생각을 만남으로 연결시키지는 않았다. 그는 공기업 중견 간부로 잘 지내고 있다. 집에 오는 길에 나는 H군 생각에 골몰했다. 그가 좀 더 일찍 몽둥이를 팽개쳤더라면, 그는 현재의 공기업보다 훨씬 더 나은 일터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운동권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부 정치가들이 운동권 논리만 팽개친다면 대한민국은 참으로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아쉬움으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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