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기- ‘저렇게 훌륭한 의술도 하나님의 은혜다!’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 업데이트 2016-07-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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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병, 특히 암입니다. 필자도 악성 림프종에 걸려 5개월 남짓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조선pub> 운영진이 필자에게 투병기 집필을 권했고, 필자가 이를 받아들여 이 글이 발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필자의 종교 관련 이야기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 림프종 암을 선고받다

『캔서입니까?』 내가 혈액종양과 의사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의사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대답했다.

2012년 12월 초로 기억된다. 테니스를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우연히 왼쪽 목을 만져보니 두 개의 몽우리가 손끝에 잡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다음 달에 종합검진을 받을 때 별도로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종합검진 때 그만 깜빡 잊고 말았다. 2월에 동네 내과의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몽우리를 만져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고 삽니다.” 
 
한 달 후. 몽우리가 커졌다는 느낌이 들어 다시 동네 내과를 찾았다. 의사가 두 말 없이 소견서를 써주어 S병원의 이비인후과로 갔다. 검사 일주일 후 이비인후과 의사가 검사 결과를 설명했다.   
 
“부분마취로 침으로 검사한 결과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전신마취로 조직검사를 해야겠습니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말에는 고취되었지만 전신마취와 조직검사라는 말에는 놀라 의사에게 통사정하여 집으로 왔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다. 7월 초에 또 우연히 목을 만져보니 몽우리가 한 개 더 늘었다. S병원 이비인후과로 달려갔다. 의사가 일 주일 후 전신마취로 조직검사를 하겠다고 예약 날짜를 잡았다. 검사 1주일 후 초조한 마음으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이비인후과 의사는 이제부터는 자기 소관이 아니니 혈액종양과로 빨리 가라고 내게 말했다.

혈액종양과 의사는 내 병이 악성림프종이라고 말했다. 의사는 의학 용어를 사용하여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골수에 전이(轉移)되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 주에 골수검사를 하자는 의사의 말을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2. 내 죽음을 보다

악성 림프종이라는 암 선고를 받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이제 죽게 되었구나'. 슬픈 생각이 솟구쳤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잠시뿐. 감사기도가 터져 나왔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누구나 가야 할 길을 제게도 보여주셨으니 저도 그 길을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동안 저 같이 보잘 것 없는 놈에게 남부럽지 않는 건강 주시고, 능력 주시고, 좋은 직업 주시고, 좋은 아내 주시고, 재물 주시고, 좋은 아들딸과 며느리 주시고, 무엇보다도 하나님 알게 해주시어 … .”

진료실을 나왔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그들의 말은 이제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들이다. 긴 병동을 걷는 동안 감사기도가 계속 터져 나왔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흔 세 살이 될 때까지 건강 지켜주시고, 하는 일 다 잘 되게 도와주시고, 능력 주시고, 좋은 가정 주시고… .”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걱정이 가슴을 짓눌렀다. 집에 왔다. 아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나?
 
“결과 어떻게 나왔어요?” 
“악성은 아니어서 괜찮다고 하던데.” 적당히 둘러댔다.

다음날. 아내는 외출하고 나만 홀로 남았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감사기도는 그치지 않았다. 찬송가를 부르고 싶었다.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찬송가를 부르니 기쁨이 북받쳤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생각나지 않는 가사를 들춰 3절까지 수없이 불렀다. 3절.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 잖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자. 무엇부터 시작할까? 회개다. 하나님 앞에 내가 지은 죄를 모두 털어놓고 떠나자. 지은 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이런 식으로 회개해서는 안 되는데 …. 회개는 마지막 절박한 시간에 하기로 유보했다.
 
다음은? 이 세상에서 미련이 남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 꼭 하나가 남는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한적한 곳으로 모실 생각이었는데 그걸 못했다. 내가 떠나기 전에 꼭 마무리 해야지.
 
친구들? 걱정할 것 없다. 이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갈 테니까. 나의 친구들은 나 없는 세상에서 오늘도 내일도 아무렇지 않게 잘들 살아갈 것이다. 그들은 가끔 이런 얘기를 하겠지―“동운이가 살아 있었으면 좋을 텐데.” 그러고 나서 그들의 기억 속에서 나는 차츰 사라져 갈 것이다. 나 없이도 세상은 계속 돌아가기 마련이다.
 
친척? 이제 와서 내가 친척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아무것도 없다. 평소에 잘 했어야 했는데. 참으로 고마운 친척들이다.
 
가족? 그렇다. 소중한 가족을 남겨둔 채 나만 떠나야 한다니! 아버지 하나님, 도와주세요. 사랑하는 딸 주은이와 아들 유진이 그리고 며느리 보라를 두고 어떻게 저만 떠나야 합니까? 손자 손녀 유모차 한번 밀어보지 못하고 어떻게 제가 떠나야 합니까? 아버지 하나님, 도와주세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한참 후 정신이 들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결혼은 안 했지만 뉴욕에서 조명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딸은 저 없이도 자립할 수 있습니다. 남에게 뒤지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도 얼마나 똑똑합니까? 어디에 내놔도 남에게 뒤지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아들딸, 며느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 44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 그런 아내를 두고 나만 먼저 떠나야 한다니!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저는 아내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졌습니다. 이제 나이 들어 아내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하는데 저만 먼저 떠나다니요! 아내가 치매라도 걸려 행여나 길에서 헤매기라도 한다면 어찌 합니까! 안 됩니다. 제가 더 살아 있어야 합니다. 아내의 팔을 부축하며 세상을 더 걸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아내를 두고 떠날 수 없어요. 제게 보여주신, 누구나 가야 하는 그 길을 저는 가지 않을래요. 도와주세요.
 
7월 29일에 골수 검사를 받으려면 6일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밖으로 나가 한적한 길을 걸었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길을 걷다가도 찬송가 301장을 부르고 또 불렀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의 크신 은혜’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부르고 또 불렀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러다가 아내에게 어떻게 말할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와 아내는 믿음이 좋은 친구들 덕분에 1980년부터 매달(최근 몇 년 동안에는 두 달에 한번) 일곱 부부 동반 성경모임을 가져왔다. 무려 34년 동안이나. 그 가운데 장로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는 2006년에 의대 교수를 정년퇴임한 후 음성 꽃동네에서 내과의사로 봉사해오고 있다. 그의 전공이 혈액암이어서 그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2013년 7월 하순경. 그날은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중부고속도로가 무너지는 바람에 버스로 1시간 40분에 갈 수 있는 거리가 무려 3시간 40분이나 걸렸다.
 
“넓게 전이된 것 같지는 않네.” 나를 침상에 눕혀놓고 여기저기 진단한 후 의사 친구가 한 말이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아내에게 말 좀 해주게.” 나는 간절한 마음이었는데, 그 때문에 먼 거리를 갔는데,  의사 친구는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렇다고 조를 수도 없었다. 돌아올 버스가 15분 후에 떠나기 때문에 부랴부랴 돌아왔다. 의사 친구의 진단은 내게 위로가 되었다.
 
며칠 후 운전 중이었다. 휴대폰이 울렸지만 받을 수 없었다. 전화벨이 옆 자리 아내의 휴대폰으로 옮겨갔다.  
 
“골수 검사 예약 전환데 ….” 아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내가 알아차렸다. 후유, 내 가슴이 뻥 뚫렸다. 이젠 살았다. 아내에게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골수검사 예약 날짜에 아내와 함께 혈핵종양과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내 병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아내가 내 병을 알게 된 터라 의사의 설명이 빠짐없이 귀에 들어왔다. 의사는 골수검사를 통해 전이 여부를 진단한 후에 처방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그날 골수검사를 받았다. 일주일 후 의사가 골수 검사 결과를 설명했다.
 
“골수에 전이되지는 않았습니다.” 

3. ‘저렇게 훌륭한 의술도 하나님의 은혜다!’

의사는 3주 단위로 여섯 차례에 걸쳐 치료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치료 방법을 설명하기 전에 의사는 내 몸에 자리 잡고 있는 암 세포 지도를 보여줬다. 암세포 덩어리는 맨 처음 발견된 목 왼쪽 몽우리에서 시작하여 왼쪽 어깨와 허벅지를 타고 줄지어 있고, 폐 한 가운데를 비롯해 오른쪽 팔과 다리에도 몇 군데 퍼져 있었다.
 
의사는 치료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의사의 설명을 놓칠세라 메모도 하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저렇게 훌륭한 의술도 하나님의 은혜다! 그렇다. 저렇게 훌륭한 의술은 틀림없이 내 병을 낫게 해줄 것이다. 그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불안과 염려가 한순간에 싹 사그라졌다.
 
나는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바로 그 순간부터 투병 기간 내내, 그리고 치료가 종결되어 투병기를 쓰는 이 시간까지 나는 내 병으로 인해 단 한순간도 불안해하거나 염려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는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주의해야 할 몇 가지 내용을 알려줬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감기에 걸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감기에 걸리면 면역력이 약해져 치료가 지연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암에 좋다는 각종 민간요법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었다. 민간요법을 따르다보면 오히려 간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의사는 또 치료 기간 중 환자가 일반적으로 겪게 될 두 가지 어려움을 알려줬다. 하나는 환자들이 ‘왜 나냐?’ 하면서 자신에게 분노하고, 또 하나는 환자들이 세상으로부터의 단절로 심한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4. 큰 어려움 없이 치료를 마치다
 
2013년 7월 초부터 치료를 위한 여러 가지 조사에 들어갔다. 드디어 8월 5일 주사를 맞고 약을 복용하는 화학요법 첫 치료가 시작되었다. 병원에서 6시간여 동안 네 가지 주사를 맞고, 그 사이 세 차례 어마어마하게 쓴 맛이 나는 약을 복용했다. 그 후 퇴원하여 집에서 5일간 약을 복용한다. 이런 식으로 3주 단위 여섯 차례에 걸쳐 치료를 받게 된다.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믿음의 교회 가족들, 친척들, 모임이 결성된 친구들, 나에게 전화로 안부를 물어온 지인 등을 대여섯 그룹으로 나눠 첫 치료에 들어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은 의술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확신하게 된 다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말끔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첫 치료를 마치고 밤 10시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부터 나흘 동안 하루 세끼 약을 복용하고, 부작용이 없도록 조심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3주 후에 똑같은 치료가 되풀이 된다.
 
아내는 건강상태 기록부, 영양식단 기록부 등을 손수 만들어 놓고, 내 치료를 위해 전력투구했다. 아내는 수요일 그림 공부 하나만 스케쥴에 남겼다. 아내는 일지를 써가며 밤낮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내 몸에 열이 있는 것은 아닌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내는 내가 열이 38도를 넘기만 하면 병원으로 달려갈 태세였다. 그러한 아내를 보고 얼마 후 별명을 하나 달아주었다―‘지극정성.’
 
첫 번째 약 복용이 닷새에 걸쳐 모두 끝났다. 그로부터 사나흘 뒤에 무력감과 고통이 따른다는 의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힘이 빠지고, 체중이 확 줄고, 내장이 온통 독한 약 기운으로 진통을 겪는 듯했다. 힘이 빠질 때는 그냥 잠을 청했다. 그러나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 후 사나흘 지나니 몸이 평상시 상태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남은 일 주일 동안 기운을 회복해야 2차 치료에 들어갈 수 있다. 결코 감기에 걸려서는 안 된다. 면역력이 극도로 약한 상태에서 감기에 걸리면 치료 기간이 연장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내의 싫지 않은 잔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3차 치료도 마쳤다. 치료 과정에서 사실상 큰 어려움은 별로 느끼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는 의사의 치료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40년 동안 계속해온 테니스 덕분에 체력이 든든하게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어떻든 치료 과정에서 나는 단 한 끼를 제외하고 밥맛을 잃어본 적이 없다. 암 환자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1차 치료에 들어간 지 며칠 지나 <조선pub>으로부터 칼럼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조선pub>은 <조선닷컴>의 신생 사이트로, 2013년 10월부터 문을 열 계획이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살아 있을지 모르는 처지라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사나흘 뒤 <조선pub>의 청탁이 생각났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죽음 같은 것은 잊고 있던 터라 청탁에 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걸어 수락했다. 그러고 나서 가벼운 글들을 꾸려보았다. 글을 보냈다. 인터넷상에서 내 글들이 뜨기 시작했다. 나는 『가격규제는 국민을 괴롭힌다』라는 책 원고를 거의 마무리한 상태라 <조선pub>은 내게 지루함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쓴 칼럼이 치료 기간 5개월여 동안에 19편에 이른다.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이 겪게 된다고 의사가 알려준 두 가지 어려움―‘왜 나냐?’와 ‘세상으로부터의 단절로 느끼는 외로움’―은 나와는 사실상 무관한 것이었다. 나는 의사의 치료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어 걱정이 없었고, 가족과 교우들, 친척들, 다정한 친구들의 기도와 격려, 특히 기도할 줄 모른다는 친구가 나를 위해 기도했다는 격려는 큰 위로가 되었고, <조선pub> 칼럼 쓰느라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 나는 즐거운 기분으로 치료를 받은 것이다.

3주 단위 세 번째 치료를 마치고 씨티, 페트 등 필요한 사진들을 찍었다. 이를 근거로 의사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선명했던 암세포 자리가 이제는 희미한 흔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의사는 치료 결과가 좋다고 말했다.
 
“교회 가족들에게 보고를 하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표현할 방법은 없을까요?” 내가 물었다. 의사는 잠간 생각에 잠겼다가 허리춤 양쪽에 두 손을 가져다가 떠받치며 말했다. 
“90%는 치료가 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날 나는 대여섯 그룹에게 치료 결과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90% 치료’는 언급하지 않았다. 천기누설(天機漏泄)이 될까봐.

네 번째 치료 과정은 힘이 들었다. 약 복용 후 삼일 동안 몸에서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꼬꾸라진 채 잠에 빠졌다. 의사는 5, 6차 치료가 더 힘들 거라고 했지만 4차가 가장 힘들었다.

여섯 번째 치료를 마친 후 치료 결과를 점검하는 날. 나는 아침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3차 치료 결과가 좋았으니 6차 치료 결과도 좋을 것으로 기대는 되었지만 마음은 걱정으로 가득 찼다. 행여 치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의사 만날 시간이 어쩌면 그렇게도 길게만 느껴지는지!
 
드디어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섰다.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나와 아내는 의사의 입만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 떨어질까? 의사는 씨티, 페트사진 등을 근거로 설명을 하다가 이렇게 마무리했다.
 
『의학 용어로 complete response입니다.』 ‘치료 종결’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암을 낫게 해주시어 감사합니다.
 
완치 판정은 재발 여부를 살펴 5년 후에 날 것이나 치료가 끝났다는 의사의 말은 내 몸에 날개를 달아 나를 파란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게 하는 힘이 되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날은 2013년 12월 17일. 치료를 시작해서 종결까지 5개월 남짓 걸린 셈이다.
 
집에 돌아와 대여섯 그룹에게 기쁜 마음으로 6차 치료 결과를 메시지로 보냈다.
치료 종결 한 달 후에 가진 검진 결과 다음 검진은 3개월 후에 갖는다고 의사가 말했다. 대여섯 그룹에게 이 결과도 메시지로 보냈다.

앞에서 치료 과정을 믿음의 가족, 친척, 지인들에게 메시지로 보냈다는 이야기를 언급한 바 있다. 훌륭한 의술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에 메시지를 보낼 용기를 갖게 되었다고도 밝혔다. 다음은 6차 치료에 들어갈 때 보낸 메시지 내용이다.

“오늘 마지막 6차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5차 치료는 거의 힘들지 않았습니다. 의술도 하나님의 은혜라 믿고 한순간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위한 기도와 격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기도의 힘을 믿습니다. 또 연락드리지요. 박동운 드림.”

메시지를 보내면 보내자마자 즉각 많은 회신이 왔다. 나의 투병을 격려하는 내용들이었다. 내게 큰 위로가 되는 내용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들딸과 며느리가 내게 준 행복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치료가 끝났다고 뉴욕에 사는 딸에게 전화했을 때 딸이 던진 첫 마디―"아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슴 짜릿한 감동이었다. 4년 전에 결혼한 아들 부부는 매주일 집에 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꼼꼼히 살펴보고, 집안 구석구석에 손소독제를 놓아두고, 심지어 항균 효과가 좋다는 옻나무 수저와 젓가락까지 갖춰 주었다. 아내의 헌신적인 간호와 딸의 반응과 아들부부의 사려 깊은 사랑은 한 마디로, 행복 그 자체였다.

5. ‘하나님, 저는 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투병 기간 중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자신의 죽음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20살 때 어머니를, 미국 유학간 지 두 달만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30대에 사랑하는 제자를 땅에 묻었고, 40대에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고, 재작년에 믿음 좋은 장모를 여의었고, 50대부터 지금까지 친척과 친구, 선배와 후배, 동료 교수들의 죽음을 애도(哀悼)하기 위해 구두가 닳도록 조문을 다녔는데도 막상 내 자신의 죽음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참으로 바보 같은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투병을 마친 후 나는 달라졌다. 나는 암 선고를 받고 나서 골수 검사를 받기까지 약 한 주일 동안에 내 자신의 죽음을 보았고, 그 죽음 앞에서 세상에서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나는 하루에도 똑같은 기도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곤 한다.

“아버지 하나님. 저는 지금 한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정된 삶이 오늘 하루일지, 한 주일일지, 또는 아흔 살까지의 긴 시간일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하루가 하나님이 제게 새롭게 주신 한정된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정말이지 최고로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이 얼마나 케케묵은 표현인가! 목사님들은 한 차례 설교에서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되풀이하는가? 그런데도 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자고 하다니!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내 경우 이 같은 노력은 반나절도 가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나는 내 자신을 낮추고, 욕심 부리지 않고, 걱정을 버리고, 남을 칭찬하고,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베풀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자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러나 내 노력은 반나절도 가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다르다. 죽음을 경험한 후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내 한정된 삶이 오늘 하루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노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 몸에 배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낮추고, 욕심 부리지 않고, 걱정을 버리고, 남을 칭찬하고,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베풀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려는 삶이 전혀 힘들지 않다. 내 마음은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 평온하고, 욕심에서 벗어나 텅 비어 있고, 남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아내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내가 죽음을 경험한 후에 오늘 하루가 내 한정된 삶의 전부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최고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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