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부분에 첨부된 <올바른 말투>는 ‘올바른 말투’에 관한 필자의 견해를 정리한 것이다. ‘올바른 말투’가 훼손되어가는 것을 보고 필자는 ‘올바른 말투’를 대학에서 20년 넘게 과외로 가르쳤다. 에피소드 1∼6은 ‘올바른 말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필자는 ‘올바른 말투’ 논쟁을 제안한다.
에피소드 1
사회적으로 유익한 활동을 하는 분이 최근 몇 차례 메일을 보내왔다. 만나본 적이 없는데도 그 분은 “◦◦◦ 원장입니다”라는 제하로 메일을 보내왔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원장 ◦◦◦라고 쓰세요”라고 메일을 보냈다. 바로 회신이 왔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몰라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어 송구합니다”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 때문에 이 글을 쓴다. ‘◦◦◦ 원장님’의 질문에 대한 답은 뒷부분에 첨부된 <올바른 말투>가 해줄 것이다.
에피소드 2
‘생일의 존댓말은 생신이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아들에게 보낸 문자다.
아빠가 투병을 마치고 만 73회 생일을 맞았다며 아들이 식사기도를 자청하고 나섰다. 기도 때면 요리조리 피해오던 아들이 자진해서 기도를 하겠다니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아들의 기도― 『아버지 하나님. … 아버지 생일을 맞아 ….』
그날 오후. 아들의 기도가 마음에 걸렸다. 생일의 존댓말은 생신인데 …. 아들에게 알려줄까 말까 꽤나 망설였다. 가까스로 결심하고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들과 통화할 기회가 생겼다. 대화가 끝날 무렵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생일의 존댓말은 생신이다.』
『알아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여서 ….』
아뿔싸. 내가 그렇게 가르쳤지! 하나님 앞에서는 아버지를 ‘아버님’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하물며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생일’을 ‘생신’으로 써야 되겠는가!
에피소드 3
퇴임 전 일이다. 조교가 들어왔다. 그와 얼굴을 맞대고 의자에 앉았다.
『교수님. 최 교수가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 녀석 봐라. ‘최 교수가 … 했어요’라니! ‘최 교수님이 … 하셨어요’라고 해야지. 그 자리에서 고쳐줬다. 내가 분명히 잘 가르쳤는데 잘 못 이해한 것 같다. 최 교수가 나보다 나이가 30년쯤 어리다고 해도 최 교수와 나는 동급이기 때문에 제자인 조교는 내 앞에서 최 교수를 ‘존칭을 써서’ 나와 동급으로 대해야 한다.
에피소드 4
타 대학에 특강 갔다가 일어난 일. 본 강의에 앞서 몇 분 동안의 설명을 위해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올바른 말투> 프린트 용지를 그 대학 교수인 내 제자에게 한 장 내밀었다. 그걸 읽고 나서 제자가 내게 친근감 있는 어조로 쏘아붙였다.
『교수들 대부분 자기를 소개할 때 ‘◦◦◦ 교수’라고 말하는데요!』
『몰라서 그래.』 나도 친근감 있는 어조로 쏘아붙였다. 『서로 아는 사이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자신을 밝힐 때 겸손의 표시로 직함을 이름 앞에 붙여야 해. 영어는 그 반대고.』 그러고 나서 큰 목소리로 마무리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신년 휘호(揮毫)에서 ‘◦◦◦ 대통령’이라고 쓴 걸 봤어? ‘대통령 ◦◦◦’이라고 쓰지. 만일 ‘◦◦◦ 대통령’이라고 쓰면 상식 없다고 나가라고 할 거야. 대통령은 ‘대통령 ◦◦◦’이라고 쓰는데 교수는 ‘◦◦◦ 교수’라고 써도 된다는 말인가!』
에피소드 5
후배 교수가 공지사항을 알리면서 영어로 쓴 메일을 보내왔는데 끝에다 다음과 같이 썼다―“ …. Professor Choi.”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가까스로 메일을 보냈다―“최 교수님. 남이 최 교수님을 영어로 부를 때는 존경의 뜻으로 ‘Professor Choi’라고 부르지만 자신이 쓸 때는 ‘Choi, Professor’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우리말과는 반대지요. 우리말에서는 남이 부를 때는 존경의 뜻으로 ‘최 교수님’ 하지만 자신을 말 할 때는 ‘교수 ◦◦◦’라고 말해야 하지요.” 바로 회신이 왔다. 영어식 표현을 아는데 깜빡 실수했다고, 앞으로는 실수하지 않겠다고.
에피소드 6
이화여대 특강 때. 강의에 앞서, <올바른 말투> 프린트를 나눠주고 몇 분 동안 설명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여러분들은 결혼해서 남편에 관한 전화를 받을 때 ‘그이는 집에 계시지 않는데요’라고 말하지 마세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초등학생들처럼 한 목소리로 강의실이 떠나갈 듯이 “예” 하는 것이었다.
<올바른 말투>
“새 주소로 잡지를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서울시 세종로 1번지 청와대 ….”(김윤옥)
“주소가 청와대라구요? 그럼 비서실에서 전화를 하신거구요.”(출판사)
“그게 아니라 … 제 남편이 이번에 대통령이 된 이명박인데요.”(김윤옥)
청와대 입주 후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평소 받아오던 잡지의 배달 주소를 바꾸려고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을 때 오간 대화다(조선일보 2008. 3. 12).
김윤옥 여사의 말투의 핵심은 ‘대통령 이명박’으로 요약된다. 이는 우리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를 바로 잡아준다. 김윤옥 여사는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해도 될 것을 ‘대통령 이명박’이라고 했다. 남에게 가족을 이야기할 때는 존칭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데 김윤옥 여사는 그렇게 한 것이다. 이제 ‘올바른 말투’와 관련된 예를 든다.
<예 1>: 2007년 8월 어느 날 예술의 전당에서 국악페스티벌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하여 11개국 외국 대사가 참석했다. 사회를 맡은 50대의 한 한국정신문화원 교수가 자신을 소개했다―“저는 사회를 맡은 한국정신문화원 ◦◦◦ 교수입니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사회를 맡은 그 교수는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저는 사회를 맡은 한국정신문화원 교수 ◦◦◦입니다.” 직명은 남이 부를 때는 존경의 뜻으로 이름 다음에 붙이지만 자신이 부를 때는 겸손의 뜻으로 이름 앞에 붙여야 한다. 김윤옥 여사는 남편의 경우에도 ‘이명박 대통령’ 대신 ‘대통령 이명박’이라고 말했다.
<예 2>: 올바른 말투를 사용하지 않는 직업이 주로 목사, 교수, 정치가 등이 아닌가 생각된다. 많은 경우 목사들은 자신이 쓴 글이나 공식석상에서 자신을 ‘◦◦◦ 목사’라고 서슴없이 표현한다. TV에서 교수들은 적잖게 자신을 ‘◦◦◦ 교수’라고 소개한다. 내가 아는 한 교수는 자동응답기에다 자신의 목소리로 아예 이렇게 녹음해 두었다―“저는 ◦◦◦ 교수입니다.” 내가 아는 한 국회의원은 항상 자신을 가리켜 ‘◦◦◦ 국회의원’이라고 말하고, 자기 아버지를 지칭할 때는 ‘어른께서 …’라고 말한다.
<예 3>: 남에게 자신의 가족을 말할 때는 존칭을 써서는 안 된다. 한 젊은 목사는 “제가 어렸을 때 제 아버님께서 …” 하고 설교를 시작했다. 귀에 좀 거슬리다 싶어 주의를 기울이다 보니 그 목사는 그 설교에서 무려 11번이나 “아버님께서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목사는 ‘아버님께서’라는 말에서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즉,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한 나머지 ‘아버님’과 ‘께서’를 함께 쓴 것이다. 가족 이름에 붙이는 ‘님’은 남이 존경의 뜻으로 붙여주는 것이지 내가 공석에서 남에게 말할 때는 ‘아버지’의 경우에도 겸손의 뜻으로 ‘님’을 붙이지 않는 것이 옳다. 이 목사는 또 ‘께서’도 써서는 안 된다. 이 경우 이 목사는 ‘님’과 ‘께서’를 빼고 ‘나의 아버지는 … 하셨다’로 써야 한다.
<예 4>: 내 친구 부인은 내가 전화할 때마다 “그 이는 집에 계시지 않는데요”라고 말한다. 이런 경우 겸손의 뜻으로 “제 남편은 집에 없는데요”라고 말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