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어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성장 동력은 외자 유치에 있다는 관점에서, 4회에 걸쳐 해외직접투자를 중심으로 중국(1), 싱가포르(2), 아일랜드(3), 한국(4)의 경제발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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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광동(廣東)성 선전시 시내에서 시민들이 덩샤오핑(鄧小平)과 도시의 전경이 그려진 간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간판 왼쪽 위에는 ‘당의 기본 노선을 유지하며 100년 동안 흔들리지 말자’고 적혀있다. |
중국은 2030년 이전에 미국을 추월하여 G1이 될 것 같다.⑴ 그 바탕에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이 자리한다. 덩샤오핑은 16∼22세까지 근공검학단(勤工儉學團)⑵의 일원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자본주의를 경험했고, 1926년 소련으로 옮겨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이런 배경 탓에 그는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라는 ‘중국적 사회주의’를 내세울 수 있었다.
덩샤오핑은 1970년대 어느 해 자유주의 거장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찾아가 ‘어떻게 해야 중국이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되겠느냐?’고 물어 ‘토지를 사유화하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덩샤오핑은 문화혁명 등 세 차례의 정치적 위기를 넘기고 권력을 잡자마자 “가난이 공산주의는 아니다”며 1978년부터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여 사회주의 국가 중국을 시장경제 국가로 바꿔놓았다.⑶ 그는 죽기 전 1990년대 초 ‘앞으로 50년 안에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덩샤오핑, 네 가지 정책을 추진하다
첫째, 덩샤오핑은 인재부터 구했다. 문화혁명으로 하방당했거나 감옥에 간 능력 있는 인재들을 불러 모았다. 이렇게 하여 개혁개방의 삼총사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덩샤오핑, 주룽지 전 총리, 롱이런이다. 개혁개방 비전을 제시한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의 설계사’로, 덩의 비전을 실천한 주룽지는 ‘개혁개방의 집행자’로, 개혁개방의 이념을 해외 화교 사회에 전파하여 외자를 유치한 롱이런은 ‘개혁개방의 전도사’로 불린다.
둘째, 인재를 모은 덩샤오핑은 곧바로 대내개혁을 단행했다. 덩은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개체호(個體戶)라는 자영업 개념을 도입하여 농민들의 이윤 동기를 자극했다. 농업부문에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한 이 정책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농업개혁이 추진된 1978년 이후 농업생산성이 껑충 뛰어오르자 이를 계기로 10년 후 덩은 시장경제 실험을 전 산업으로 확대했다. 중국은 1992년부터 굶어죽는 사람이 사라졌다.
셋째, 덩샤오핑은 대외개방을 추진하고 특구를 설치했다. 덩은 한 때 전쟁을 벌인 일본과 1978년 중일우호조약을 맺고, 1979년 1월 미국으로 날아가 국교를 수립하여 미국으로부터 관세최혜국(MFN; Most Favored Nation)의 지위를 얻어냈다. 이는 중국의 수출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어 개혁개방의 상징인 특구를 설치했다. 특구설치는 점 개방→선 개방→면 개방→전방위 개방 단계로 진행되었다. 덩은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남연해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개방하기 시작해 내륙 서부까지 완전히 개방하는 전략을 실시했다.
넷째, 덩샤오핑은 자본이 없는 중국에 외국자본을 유치할 계획을 세웠다. 개혁개방 전 외국자본은 주로 차관(借款)으로 액수도 적었으나 개혁개방 후에는 해외직접투자(FDI) 형태로 들어왔다. 개혁개방 초기에는 해외직접투자 유입(流入)의 주류가 주로 홍콩, 타이완 등의 화교자본이었는데 1990년대부터는 미국 등 서구 기업들의 자본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유입되는 해외직접투자의 약 3분의 1이 화교자본이라고 한다.
개혁개방 후 해외직접투자가 밀물처럼 몰려오다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의 경우 해외직접투자는 유출 아닌 유입이 중요하다. 해외직접투자는 주식시장에 투입되는 금융자본과는 달리 생산에 투입되는 자본으로, 소득 증가와 일자리 창출을 이끈다. 덩이 단행한 1978년 개혁개방 이후 해외직접투자는 밀물처럼 중국으로 유입되었다. 해외직접투자 연간 유입액과 저량(貯量; stock)을 보자.
<표 1> 중국의 해외직접투자 유입액과 저량, 1978∼2012 (단위: 미 1억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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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
1980 |
1985 |
1990 |
1995 |
2000 |
2005 |
2012 | |
|
연간 유입액 |
0 |
0.6 |
19.6 |
34.9 |
375.2 |
407.2 |
724.1 |
1210.8 |
|
저량 |
- |
10.7 |
60.6 |
206.9 |
1,011.0 |
1,933.5 |
2,721.0 |
8,328.8 |
자료: UNCTAT.
중국의 해외직접투자 연간 유입액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단행한 1978년 제로였는데 1980년에 겨우 6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표>에는 나타나 있지 않은데) 그 후 연간 유입액이 10억 달러를 넘어선 연도는 1984년, 100억 달러를 넘어선 연도는 1992년, 500억 달러를 넘어선 연도는 2002년, 1천억 달러를 넘어선 연도는 2010년이다.
중국의 해외직접투자 유입액 저량은, 유입액의 지속적인 증가에 힘입어 1980년 10억 달러를 넘어선 후 1995년 1,000억 달러, 2012년 8,300억 달러를 기록했다. 놀랍다.
해외직접투자 관련 중국의 현주소를 보자. IMD(국제경영개발원)는 <2013년 국가경쟁력>(National Competitiveness Yearbook)에서 여러 항목을 바탕으로 60개국의 경쟁력을 평가했는데 그 가운데 한 항목이 해외직접투자다. 중국 평가를 소개한다.
∙직접투자 유입: 2012년 중국 2,716.6억 달러⑷로 1위(미국 2,057.9억 달러로 2위)
∙직접투자 유입저량: 2011년 중국 7,118.0억 달러로 7위(미국 35,093.6억 달러로 1위)
∙직접투자 순유입⑸: 2012년 중국 1,704.5억 달러로 1위(미국 –1,767.7억 달러로 60위)
∙직접투자 순유입저량⑹: 2011년 중국 3,458.2억 달러로 2위(미국 –9906.0억 달러로 60위)
그러면 중국의 엄청난 해외직접투자 유입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몇 가지 주요 요인을 언급한다.
첫째, 덩샤오핑의 비전이다. 그는 “가난이 공산주의는 아니다”며 흑묘백묘(黑猫白猫)전략⑺을 내세워 사회주의 중국에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외자 유치에 전력투구한 것이다.
둘째, 사회주의 중국은 토지를 국가가 관리했는데, 중국 정부는 중국에 투자하려는 외국 기업들에 토지를 싼 값에 임대했다.
셋째, 외국 기업의 투자를 돕기 위해 일찌감치 한 곳에서 투자 절차를 모두 마무리 짓는 one-stop service 제도를 도입했다가 2005년부터는 샹하이를 중심으로 한 사람이 투자 절차를 모두 마무리 짓는 one-man service 제도까지 도입하여 외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철저하게 도왔다.
넷째, 개혁개방 초기에는 임금이 엄청나게 쌌다. 중국의 ‘값싼 토지와 낮은 임금’이 밀물처럼 몰려온 해외자본과 융합하여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해외직접투자 유입이 성장 동력이 되다
중국에 유입된 막대한 해외직접투자는 어떤 성과를 가져왔는가?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잠간 사이에 세계의 생산기지로 바뀌었다. 이 결과 중국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했고, 1인당 국민소득도 아직 낮기는 하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중국의 고도성장과 1인당 국민소득 증가는 해외직접투자 유입이 성장 동력임을 말해준다(<표 2>).
<표 2> 중국의 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 변화, 1978∼2012 (단위: %, 미 1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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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78-’80 |
’81-’85 |
’86-’90 |
’91-’95 |
’96-’00 |
’01-’05 |
’06-’01 |
’11-’12 |
|
연평균 성장률 |
9.0 |
10.8 |
7.9 |
12.3 |
8.6 |
9.8 |
11.2 |
8.5 |
|
연도 |
’80 |
’85 |
’90 |
’95 |
’00 |
’05 |
’10 |
’11 |
|
1인당 국민소득 |
314 |
297 |
348 |
600 |
949 |
1,744 |
4,519 |
5,535 |
자료: UN통계국과 OECD.
중국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자. 이는 1978∼2012년간 9.9%에 이른다. 이는 세계 역사상 첫째가는 고도성장이다. 이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앞에서 보았듯이, 중국은 덩샤오핑이 1978년 개혁개방을 단행했을 때만 해도 경제성장에 투입할 자본은 사실상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해외직접투자 유입액이 쌓이고 쌓여 2012년에는 무려 8,328.8억 달러에 달했다. 이 엄청난 해외자본이 1978년 이후 중국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을 보자. 중국은 그동안 실시해 온 산아정책 때문에 정확한 인구수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12년 약 13억4324만여 명으로 추산되어 세계 1위다. 중국은 세계적인 재벌도 많지만 농업 인구가 많아 1인당 국민소득은 낮은 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80년 314달러였는데 1990년에 348달러, 2000년에 949달러, 2011년에 5,535달러로 증가했다. 명목치이기는 하나 30여 년 동안 약 18배 증가했다. 다른 개발도상국들에 비해 매우 빠른 증가다. 중국이 앞으로도 고도성장을 지속하는 한 1인당 국민소득도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다.
중국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국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어떤 것일까? 필자는 이를 세 가지로 언급한다.
첫째, 지도자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덩샤오핑이 “가난이 공산주의는 아니다”라고 한 말은 박정희 대통령이 혁명공약 네 번째 조항에서 “절망과 기아에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정치지도자는 덩샤오핑처럼 비전을 갖고 외자유치가 성장 동력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우리도 중국처럼 해외교포를 해외직접투자자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169개국에 7백만여 명의 해외교포를 갖고 있는데 이들을 해외직접투자자로 끌어들인다면 한국경제는 성장 동력이 살아날 것이다.
셋째, 중국은 해외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투자 절차를 최소로 간소화하여 one-man service 제도까지 도입했다. 영국은 진즉 one-stop service를 통해 회사설립 절차를 마치는 데 3일, 호주는 2일 걸린다. 물론 이 두 나라에서 창업비용도 엄청나게 싸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도 서울에 'INVEST KOREA' 라는 사무실을 갖춰 해외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투자 절차가 중국, 영국, 호주 등처럼 간소화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각주
1) 박동운(2012), 『좋은 정책이 좋은 나라를 만든다』, FKI미디어, p.40.
2) 근공검학이란 근면하게 일하고 검약해서 공부한다는 뜻으로, 1차 대전 직후 노동력이 부족했던 프랑스와 서구문물을 배우려는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생긴 제도다.
3) 박동운(2008), 『CEO 정신을 발휘한 사람들』, 三英社.
4) IMD는 2012년 중국의 직접투자 유입이 2,716.6억 달러라고 발표했는데 IMD가 인용한 UNCTAT 자료는 1,210.8억 달러로 쓰여 있다. 중국의 직접투자 유입이 2010년에 1,000억 달러를 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IMD 자료가 잘못된 것 같다.
5) IMD는 순유입(유입-유출) 대신 순유출(유출-유입) 용어를 쓰고 있는데 필자는 순유입으로 바꿔 쓴다.
6) IMD는 순유입저량(유입저량-유출저량) 대신 순유출저량(유출저량-유입저량) 용어를 쓰고 있는데 필자는 순유입저량으로 바꿔 쓴다.
7)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1970년대 말부터 덩샤오핑이 추진한 중국의 경제정책을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