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와 요부코(呼子) 이야기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07-06-0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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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상승으로 바다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동해안의 명태가 사라지고 서해안에서는 난대성 어종인 멸치와 오징어가 많이 잡히고 있다. 특히 오징어는 2001년부터 전체 어획량의 58%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 어종으로 자리 잡았다.' 문화일보가 ‘바다의 날(5월 31일)’에 보도한 내용이다.

 

“바다. 한 잔의 소주와 같은 바다였다.”

 

강릉 출신의 소설가 ‘마르시아스 심(본명, 심상대)’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동해 바다가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한 잔의 소주를 연상케 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항구 도시 묵호의 애환(哀歡)과 소주, 그리고 오징어에 얽힌 서민들의 생활상을 실감나게 그려내었다.

 

〈 뱃사람들은 수협 공판장 담 아래에 산짜꾸틀을 깔고 앉아 물이 삔 오징어를 화덕에 올려놓고 술을 마셔댔다. 오징어가 다 구워지기도 전에 그들은 성급하게 취했고, 십구공탄 불꽃 위에서 오징어가 다 구워졌을 때 그들은 이미 지쳐 있었다. 〉

 

어찌 이 뿐이랴.


단체 여행객들이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비행기 출발 전부터 왁자지껄 뒷좌석의 동료들에게 “자- 갑니다”하면서 원반처럼 던지는 것도 빨간 오징어다.
또, 차가 막힌다 싶으면 고속도로, 일반 도로를 막론하고 목숨 걸고 뛰어 나오는 행상들의 손에서도 오징어가 너울거린다. 이처럼 오징어는 한국의 서민들이 즐겨 찾는 으뜸 기호품이다. 

 

오징어는 여러 종류가 있다. 참 오징어, 무늬 오징어, 화살 꼴뚜기, 창 꼴뚜기, 귀 꼴뚜기 등이다. 또, 몸속에 석회질의 갑라(甲羅)가 들어 있는 종류는 갑오징어라고 하고, 우리의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피둥어 꼴뚜기를 일반적으로 오징어라고 부른다.

 

오징어의 산지 요부코(呼子)

 

임진왜란 당시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라고 소개한 바 있는 일본 규슈의 요부코(呼子) 항이 오징어의 산지(産地)다. 우리나라의 묵호(동해시)보다 훨씬 작은 항구 마을이다. 그러나 이곳의 오징어는 일본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 있다.
일본의 3대 아침시장(朝市) 중의 하나인 이곳은 아침 7시 30분부터 오전 11시까지 문을 연다. 1월1일 설날 만 빼고는 연중무휴다. 바다에서 바로 나온 신선한 해산물이 즐비해서 일본인들은 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면서 ‘보행자 천국’이라고 한다. 이 작은 항구에 인근 지역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생선을 사간다.
그리고 이 항구에는 오징어 전문 식당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식당들이 많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자리 잡기가 어렵다. 어떤 집은 예약을 사절한다면서 “오셔서 차례를 기다리세요”한다. 기다리는 일에 익숙한 일본인들은 줄을 서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 지역의 해산물은 대체로 활어(活魚)다. 오징어도 마찬가지로 살아 있다. 우리나라의 동해안 오징어 보다 투명하고, 쫄깃쫄깃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것 일까?’ 이곳의 오징어 회는 가지런하게 누워서 눈만 껌벅거린다. 몸통의 회를 다 먹을 즈음이면 머리와 다리는 소금구이나 튀김 요리가 되어 나온다. 버리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리고 이곳의 또 하나의 명물은 오징어 만두다. ‘슈마이’라고 하는 오징어 만두는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도 딱 맞는다. 언젠가 필자는 개인적인 모임의 단체를 이끌고 이곳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부부동반의 모임이었다. 오징어 만두를 추가로 시켜 주지 않았다는 원성(怨聲)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만큼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오징어 하나로 많은 종류의 식단(食單)을 만들어 내는 일본인의 테크닉도 보통은 아니다.

 

‘시간의 질긴 근육이다’

 

〈 어느 집 빨랫줄에나 한 축이 넘거나 두 축에서 조금 빠지는 오징어가 만국기처럼 열려 있  었고......건조장 바닥에서 떨고 있던 개, 양동이로 머리를 후려치며 싸우던 공동수도의 아낙네들 〉

 

〈 아랫도리를 드러낸 아이들은 오징어 다리를 물고 뛰어 다녔다 〉

 

 묵호의 모습이 이곳에서는 연상되지 않는다. 삶 자체가 백화점 진열장처럼 잘 정돈되어 있는 항구 마을이기 때문이다. 오징어를 말리는 기계가 빙글빙글 돌아가지만, 분위기가 너무나 조용해서 때로는 공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억누르고 누른 것이 마른 오징어다.
 핏기 싹 가신 것이 마른 오징어다.
 냅다, 불 위에 눕는 것이 마른 오징어다..........

 

 잘게 씹어 삼키며
 무수한 가닥으로 너를 찢어발기지만
 너는, 시간의 질긴 근육이었다.“

 

문인수 시인의 ‘오징어’란 시(詩)다. 오징어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고달프기만 하다

 

〈 바다를 향해 곧게 뻗어나간 곶의 끝에는 여전히 그 여관이 있었다. 횟집과 여관을 겸한 그 건물을 바라보며 나는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진한 숫내를 맡았다 〉는 묵호의 내음처럼  이곳에도 슬픈 과거가 있다.
“이곳 요부코(呼子)란 이름이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는 설도 있지만, 유곽(遊廓)의 기생들이 선착장에 나가 고기잡이배의 ‘남정네들을 불러 온다’는 설도 유력합니다.” 가라쓰 관광회사 이노모토 츠카네(井本 束, 57세)씨의 말이다. 어찌했던 ‘남자를 부른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오징어와 소주, 항구와 여관, 여자와 뱃사람........ 어촌의 삶은 예사롭지 않는 사연들이 많다.

 

‘줄다리기 마쓰리’의 마을

 

이곳은 전통적으로 내려 오는 ‘마쓰리’가 있다. 바로 줄다리기 축제다.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하여 동쪽 진영(加藤淸正)과 서쪽 진영(福島正則)으로 나누어 군선(軍船)을 매는 밧줄을 사용하여 줄다리기를 시작한 것이 전통이 되어 오늘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본래는 단오절에 이 축제를 하였으나 오늘날은 6월 첫째 토요일은 어린이 줄다리기, 그 다음날 일요일에는 어른들이 줄다리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 축제는 마을 주민이 언덕조(岡組)와 해변조(浜組)로 나뉘어 시합을 벌린다. 직경 12센치, 길이 400미터의 대형 줄다리기 시합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참가 할 수 있다. 그런데 승리하는 팀에 내려지는 상품이 시시하다. 언덕조가 승리하면 그 해의 농작물이 풍년이 들고 해변조가 이기면 풍어(豊漁)가 든다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허무맹랑한 상품이지만, 그들은 뚜렷한 목표를 걸고 진검승부를 펼친다. 우리나라의 줄다리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긴 편의 줄을 썰어서 논의 거름으로 쓰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그것을 배에 싣고 다니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에는 대체로 비슷한 삶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이래저래 산다는 것은 끝없는 경쟁의 연속이다.

 

〈 야아, 돌아왔군! 돌아왔어! 여보게 조심하게나. 산다는 것이 호랑이 아가리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네. 부디 산다는 것을 조심하게나. 〉

 

소설 속의 이야기가 구구절절 옳은 것 같다.
우리는 지금도 호랑이 아가리 보다 더 무서운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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