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고야(名古屋)에는 도쿠가와(德川) 미술관이 있다. 이 미술관은 1935년에 개관되었다. 이곳에는 많은 유물들이 있는데, 대부분 에도시대(1603~1867)에 선택받은 막부(幕府)중의 하나인 오와리(尾張) 도쿠가와 후세들에게 전해져 내려온 것들이다. 10,000여점이 넘는 예술품, 가구, 방패, 의류 등의 물품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유물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나고야 성(城)을 돌면서 역사탐방을 하던 필자와 나고야 친구들은 모두 도쿠가와 미술관으로 갔다. 언제나 밝은 표정인 오오모리 미키히코(大森幹彦, 59세, 기업인)씨가 뒤늦게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미술관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던 동안 방문객이 대단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기모노’를 단정하게 차려 입은 여인들이 많았다. 일본에는 공휴일에 교외로 나가는 것보다 시내 근처의 미술관이나 박물관 아니면 유명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나고야의 명물, 도쿠가와 미술관
도쿠가와 미술관은 폭 넓고, 질(質) 높은 유물이 있는 것은 물론, 그 보존 상태에 있어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있는 12세기의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삽화 두루마리를 비롯하여 국보로 지정된 9개의 유품, 중요 미술품으로 지정된 45점이 자랑거리로 회자 되고 있다.
이 미술관의 제1전시실은 무사의 상징인 무구, 검, 방패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방패의 문양은 그들이 다이묘(大名)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제2전시실은 다이묘(大名)의 차실이다. 차(茶)의 격식은 에도(江戶) 사무라이(侍)의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기도 하였다. 제3전시실은 다이묘 저택의 서원이다. 제4전시실은 ‘노(能)’ 무대의 다이묘 후원, 제5전시실은 생활 용품과 가구들, 제 6전시실은 앞에서 언급한 ‘겐지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겐지 이야기’는 일본의 미술품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원본은 보호 차원에서 극히 단기간만 전시하고 통상 복제품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특별 전시관인 7,8,9전시실은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의 기획전을 수시로 열고 있다.
소혜왕후의 내훈(內訓)을 만나다
때마침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인쇄술 발달에 관한 기록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이 워낙 넓어서 꼼꼼히 보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대충 훑어 보고 자리를 뜬다. 필자도 전시실 내부의 탁한 공기 보다는 신선한 봄바람이 좋았던 탓에 밖으로 나가 일본 친구들과 함께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의 속삼임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오츠보 시게다카(大坪重隆, 66세, 회사 대표)씨가 필자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전시실 내에 오래된 한글 책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의아해 하며 그를 따라 전시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 ! 소혜(昭惠)왕후의 내훈(內訓)이 어찌해서 여기에........”
〈 내훈 4책 중 1권〉이라는 전시 제목과 함께 다음과 같은 설명이 쓰여 있었다.
〈1455년 주조(鑄造)된 을해(乙亥)활자를 사용하여 인쇄된 조선의 고 활자본(古 活字本).
「내훈」은 궁중에서 일하는 여성을 위하여 심득(心得)을 설명한 교훈서로서 한자와 한글을 병용하고 있다. 1475년에 조선왕조 9대 성종(1457-94)의 어머니인 소혜왕후(昭惠王后, 1437-1504)에 의해서 저술 되었다. 권두(卷頭)에 날인된 빨간 도장 ‘선사지기(宣賜之記)’는 왕실로 부터 하사(下賜)된 선사본(宣賜本)에 필히 날인되는 것으로서, 기록에 의하면 이 책은 1573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당시의 대학교수)에 하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혜왕후가 누구인가?
세조의 며느리며 성종의 어머니이자 연산군의 할머니인 소혜왕후(인수대비)는 아버지 한확(韓確)으로부터 유교적인 학문을 배워 언행에 있어서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왕손의 양육에 있어서도 작은 실수나 허물도 용서하지 않고 훈계하여 세조로부터 폭빈(暴嬪)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였다고 한다.
소혜왕후는 내훈의 머리말에서 “천지의 영(靈)을 타고나 5상(常)의 덕을 머금고 태어난 사람들이 옥과 돌, 난초와 쑥 같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수신(修身)의 도(道)를 바르게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혜왕후는 또 나라의 정치가 잘되고 못됨은 남자에게만 달린 것이 아니라 부녀자에게도 크게 관계가 있으므로 바른 도리를 알게 할 부녀자 교육을 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은 인간이 생명을 받을 때는 모두 평등한데 우열의 차이가 나는 것은 성현의 가르침을 배웠느냐, 못 배웠느냐에 달린 것이라 했다. 불평등한 교육을 받고 있는 부녀자들에게 교육을 강화하여 남자들과 대등한 자리로 끌어 올리려는 소혜왕후의 선견지명과 노력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식사예절이 중요하다
도쿠가와 미술관도 내부 전시실에서의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취재력(?)을 발휘하여 일본인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전시 매너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을 것이지만,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전시대에 펼쳐 있는 내훈(內訓)은 식사예절에 대한 것이었다.
〈.......기장밥을 먹을 때는 젓가락으로 먹지 말라. 남의 집에서는 주인 앞에서 국에 간을 맞추지 말고, 이를 쑤시지 말며. 젓국을 들어 마시지 말라. 만일 손님이 면전에서 국에 간을 맞추면 주인은 즉시 국의 간이 잘못되었음을 사과하라. 또 손님이 젓국을 마시거든 주인은 젓갈의 맛이 싱거운 점을 사과하라. 부드러운 고기는 이로 잘라 먹고, 마른 고기는 손으로 찢어서 먹는다. 불고기는 한 입에 냉큼 먹으면 안 된다.〉
오늘날은 사람을 집에 초대하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모두 밖에서 해결하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차려 접대하는 일이란 참으로 정성이 따르는 것이다. 손님의 입맛까지 헤아려야 한다는 소혜왕후는 여러 경우를 세세하게 고려하여 매뉴얼식의 책을 남겼다. 모든 일을 매뉴얼대로 실천하는 일본 사람들이 좋아할 책이다.
소혜왕후의 내훈(內訓) 1장 첫머리에 말에 대한 내용이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교훈이다.
〈 마음에 감추어져 있음이 정(情)이며 입 밖에 내뱉음이 말이 되는 것이다. 말이란 인간의 갖은 영욕에 관계가 되는 중요한 것이며, 인간관계를 친밀하게 하고 소원(疏遠)하게 할 수도 있는 중요한 한마디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 살 수가 없다.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적인 삶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너를 잘 지켜야 하고 행동을 바로 해야 하며, 특히 말조심을 해야 한다. 오늘날 말실수로 인하여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들도 소혜왕후의 내훈(內訓)을 읽고 깨달음을 얻어야 할 일이다. 이 책이 부녀자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시회생활에 있어서 여행도 필요한 것인가 보다. 나고야의 도쿠가와 미술관에서 소혜왕후의 내훈(內訓)을 접하고, 또 하나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