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名古屋) 사람들의 ‘서울 나들이’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07-05-0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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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식과 배타성이 일목요연(一目瞭然)하다」
「폐쇄적이어서 타 지역 사람에게는 외면(外面)한다」

 

일본 쥬니치(中日)신문이 펴낸 ‘나고야 전서(全書)’에 있는 말이다. 이 책은 전 주일미국대사와 문화 인류학자(江孝男)가 지적한 ‘나고야 인의 특성’을 인용, 기술했다.

 

 일본 내 타 지역 사람들도 나고야 인(人)들은 사귀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렇지만, 필자의 경우는 처음부터 이러한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나고야 인들이 너무나 친절하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고야 사람들은 한 번 친해지면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친구가 된다. 물론, 사람 관계란 저절로 좋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서로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필자와 10여 년 동안 대단히 좋은 관계가 형성된 나고야 지역 기업인들이 얼마 전 서울에 놀러왔다. 과거에 경주, 부여 등의 역사 탐방을 위하여 한국에 수차례 왔지만 이번에는 단체 여행이 아닌 개인적인 모임으로 주말여행을 왔다.


‘한국 가정을 방문하고 싶다.'

 

일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이다. 특히 여행 약속은 수개월 전부터 이루어진다. 우리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변경이 잦은 약속은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개인적인 약속이나 비즈니스 약속이나 같은 맥락이다. 개인의 약속이 발전하여 비즈니스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비즈니스만 매달리는 것도 그렇게 바람직스러운 일은 아니다.

 

필자는 이 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스케쥴을 짰다. 스케쥴은 두 세 차례의 현지답사를 거쳐서 완성 하였다. 공항 마중, 차량 준비, 이동 거리 체크, 관광지 선정, 식사 메뉴, 등 손이 모자랄 정도였지만 정성을 다해서 준비했다.

 

방한(訪韓) 인원은 11명이나 되었다. 간다(神田)씨, 시미즈(淸水)씨, 오오모리(大森)씨, 후나하시(舟橋)씨, 오츠보(大坪)씨, 이토(伊藤)씨, 사토(佐藤)씨 부부, 야마모토(山本)씨 부부,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아카키(赤木)씨 이다. 이들로부터 특별한 주문이 있었다. 도착 날의 저녁 식사를 필자의 집에서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로 유명한 이들의 주문을 받고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는 점에서 환영했다. 메뉴는 한국식으로 하기로 했다. 일본 친구는 간장과 ‘와사비(山葵)’는 일본에서 직접 들고 온다는 것이었다. 일본 사람 접대에 있어서 어설픈 일식(日食)은 아예 준비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특별했다. ‘와사비’ 까지 들고 온다고 하니 생선회 정도는 준비해야 했다.

 

아무튼, 필자의 집에서 벌어진 파티(?)는 그럴듯하게 진행되었다. 일본 사람들의 칭찬이 봇물을 이루었다. 필자부부는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국경을 초월한 만남, 정치색이 없는 대화,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우정으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급기야 한국식으로 술잔이 오고 갔다. 부인들의 걱정스러움 속에서도 ‘폭탄주’가 인기를 끌었다.

 

폭탄주가 술의 도수도 낮추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잇점이 있다는 필자의 궤변(?)에 공감을 하는 듯 했다. 자정을 훨씬 넘어 모두들 인근 호텔로 갔고, 사토(佐藤)씨와 야마모토(山本)씨 부부는 필자의 집에서 잤다. 한국 가정을 처음 방문한 이들은 너무나 기분이 좋다고 했다. 특히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야마모토(山本)씨는 감회가 깊다고 했다. “저의 출생지가 서울 중구입니다. 물론 갓난아기 때라서 기억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만, 그래도 남 다른 기분입니다..” 면서 지도를 펼쳐 이곳저곳을 물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도 필자의 집에서 하였다. 간밤에 술이 과했던 탓에 메뉴는 전복죽으로 하였다. 점잖기로 소문난 CKD社(반도체 관련회사)의 고문인 간다(神田) 씨가 “죽 좀 더 주세요” 하여 웃음바다가 되었다. 인원이 많아서 전복죽은 이미 바닥이 났었다. 

 


가는 곳 마다 벚꽃이 반기다

 

이들의 관광은 인천의 자유 공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였다. 이들 중 언론인인 이토 슌이치(伊藤俊一,53세)씨의 날카로운 질문이 있었다. ‘한국전쟁 때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한국의 영웅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근래 들어 왜 수난을 당했느냐?’, ‘지금 한국인은 반미(反美)냐?’ 는 것이었다. “글쎄요. 반미는 아니지만...” 필자의 답변이 나오려는 순간 누군가가 “야! 사쿠라가 만발했다.”는 함성을 지르는 바람에 그 다음의 답변은 벚꽃 속에 묻혀버렸다. 도심의 벚꽃은 이미 진 상태였지만 산등성이의 벚꽃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벚꽃 구경은 탄성의 연발이었다. 남산의 벚꽃은 나고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황사 때문에 시계(視界)가 좋지 않아 서울 타워에 오르는 것은 취소하고, 대신 차를 타고 남산을 한 바퀴 돌았다. 남산의 벚나무들은 터널을 이루고 있었고,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은 눈송이처럼 너울거리며 운치(韻致)를 자아냈다. 벚꽃의 원산지는 일본이 아니라 우리의 제주도라고 한다. 틀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꽃의 국적을 따져서 무엇 하랴?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청계천에서의 탄성(歎聲)

 

이번에 서울에 온 나고야 사람들 중에 고가도로에 덮힌 청계천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아니 이럴 수가?” 하면서 입을 딱 벌렸다. 너무나 변해 버린 청계천의 모습에 놀란 것이다. 도심 한 가운데를 흐르는 맑은 물소리는 수많은 인파와 함께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듯 했다. 자연을 그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 일까? 그들은 시민들에게 자연을 선사하는 사업은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아까울 것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청계천 길을 따라 한없이 걸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들이 마치 세월을 건너뛰는 것처럼 보였다. 이름 모를 풀들이 물속에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저 미미한 풀 한포기가
영원 속의 이 시간을 차지하여
무한 속의 이 공간을 차지하여
한 떨기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하기 그지없다.“ (구상의 풀꽃과 더불어)

 

때마침 거리의 악사가 청계천 길에서 퉁소를 불고 있었다. 구성진 가락이 사람들을 불러 세웠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후쿠오카의 오츠보 시게다카(大坪重隆, 66세) 씨다. 그는 악사에게 ‘칠갑산’ 연주를 부탁했고, 즉석에서 노래를 불렀다. 가사도 우리말로 완벽하게 외우고 있었다. “콩 밭 메는 아낙네야 /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일본 사람이 부르는 ‘칠갑산’ 에 박수를 보냈다. 오츠보(大坪)씨는 후쿠오카에 살면서도 나고야 인들의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는 열성파다.

 


우리의 전통 문화에 젖은 나고야 사람들

 

인사동의 분위기는 나고야 사람들의 기쁨을 더욱 고조 시켰다.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문화행사가 청량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통 찻집의 분위기와 한정식도 좋았지만, 문화 공연이 더욱 좋았다고 했다. 부채춤, 승무(僧舞), 무당 춤, 모두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나 판소리가 없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이들이 판소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는 충분히 알고 있다.  관광식당의 공연 프로그램의 질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다. 우리의 전통 문화 예술이 상업적으로만 흘러서는 안 된다. 관광객의 수준은 날로 높아지는 데 비해, 우리의 대응이 미흡 할 경우가 많다. 한류 확산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한류 현상을 상품 마케팅으로만 여기지 말고,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나고야 사람들 중에는 ‘사물놀이’를 보기 위해서 한국에 온 사람도 있다.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은 수준 높은 문화 컨텐츠 개발에 주력하는 것이다.

 

그들은 짧은 ‘서울 나들이’지만 만족 한다고 했다. 나고야에 돌아간 다음날 그들은 모두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전화를 바꿔가며 필자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했다. 그들은 이어서 서울 나들이에 대한 반성회(反省會)를 가진다고 했다. 서울에서 잘 못한 점이 무엇인지? 를 반성하여 다음 여행 때는 더욱 잘 하자는 의미란다. 그 말을 들은 필자도 반성을 하였다. 공교롭게도 감기가 걸려 안내에 소홀했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다음 기회에는 더욱 정성을 다하리라고 다짐을 하였다.

 

민간 교류도 국가 간의 교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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