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쿠리 인형과 로봇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07-04-24  18:57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만송사(萬松寺) 거리에 가자-’
나고야(名古屋)의 대표적인 번화가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절(寺)은 대체로 산속에 있지만 일본의 절은 도심에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가까워서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일본에는 불교 신자들이 많은 것일까?
아무튼 이 거리는 나고야 시민뿐만 아니라 도쿄, 오사카 등에도 이름이 나 있다. 레져, 외식, 쇼핑의 거리인 이곳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만송사 거리는 전쟁의 포화를 맞아 큰 재난을 겪었으며 ‘전후 도시계획, 교통망 재편, 오락 지향의 변천’ 등에 따라 번화가의 지존(?) 자리를 ‘사카에, 나고야 역 주변’등에 양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다시 분위기가 반전되어 만송사 거리에는 시민들과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다.

 

오다노부나가의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곳

 

“과거의 이름은 ‘우라몬마에죠(裏門前町)’이었으나, 1969년 지번 변경에 따라 오쓰(大須) 3町目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시미즈 시게오(淸水重雄, 63세, 기업인)씨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필자의 안내에 정성을 다했다.
‘만송사 통(通), 오쓰(大須)의 거리-’
때마침 주말인지라 거리에는 인파가 넘쳤고, 가게마다 사람들이 북적댔다. 일본에서 가장 경기가 좋다는 나고야(名古屋)는 말 그대로 활기찼다.

 

 

“이 만송사(萬松寺)에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織田信秀)의 묘소가 있습니다. 인기를 끌었던 NHK TV의 대하드라마가 이곳을 무대로 했던 이후부터 더욱 유명세를 탔습니다.”는 시미즈씨는 이 거리가 관광명소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했다. 자그마한 만송사의 옆에는 작은 신사(神社) 하나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일본인들도 절과 신사가 나란히 있는 것은 대단히 특이한 경우라고 했다. 필자와 일본 친구들은 반 지하의 절 내부로 들어갔다. 오다 노부나가의 부친인 오다 노부히데의 묘지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초라한 묘지는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 주는 듯 했다.
오다노부나가의 부친 노부히데의 장례식은 1552년, 이 만송사(萬松寺)에서 거행되었다. 절의 주지스님 및 승려 약 300 여명과 친족, 가신들이 장례식장에 모였다. 평소에 ‘난폭자’. ‘멍청이’로 평판을 받던 노부나가는 부친의 장례식장에도 늦게 나타났고, 또 향가루 한줌을 아버지의 위패(位牌)를 향해 던졌다.
이러한 불효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의 돌출행동은 평범한 것을 싫어했기 때문일 뿐 가슴속에는 천하통일을 위한 소망의 씨앗을 키우고 있었다.

 

<인생 50년/ 천하의 만물에 비한다면/ 꿈과 같구나.
한 번 생(生)을 얻어/ 멸하지 않을 자 누구 있으랴>

 

이 문언(文言)을 좋아했던 그는 전투에 나가기 전에 ‘코우와카마이’(幸若舞-무사에 관한 노래를 부르며 부채로 장단을 맞추어 추는 춤)를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인생 50년-’
노부나가는 그의 노랫말처럼 50년에서 1년이 모자란 49세의 나이로 풍운(風雲)의 생애를 마감했다.

 

인형(人形)이 차(茶)를 나른다.

 

카라쿠리 인형에 관한 기록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의 ‘기계 이야기’에 들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여름 가뭄이 들었을 때 논에 물을 대기 위한 ‘관개용 카라쿠리 인형’이었다. 우리말로는 꼭두각시 인형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논에 서있는 인형에게 그릇을 갖도록 해서 그 그릇에 물을 채워 주면 인형이 자동적으로 자신의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너도 나도 몰려들어 인형이 들고 있는 그릇에 물을 부어 ‘논의 물이 저절로 넘쳤다.’는 전설적인 얘기다. 요즘 말로는 창조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아무튼, 이 카라쿠리 인형은 에도시대(1662년)에 꽃을 피웠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차(茶) 나르는 인형이다. 주인이 태엽을 감아 인형의 손 위에 찻잔을 올려놓으면, 인형은 손님을 향해 다가간다. 손님이 찻잔을 들면 그 자리에 멈추고, 다 마신 후에 찻잔을 손 위에 올려놓으면 뒤로 돌아 주인에게 간다. 이 인형은 차실에서 놀듯이 설계되어 일본의 다다미 한 장(약 170 cm)을 왕복하도록 만들어 졌다. 인형이 사람을 돕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부친이 잠들어 있는 만송사(萬松寺) 앞에도 카라쿠리 인형극장이 있다. 키가 60-80cm 정도 되는 인형들이 등장한다. 마치 로봇이 움직이는 것처럼 동작 하나 하나가 완벽하다. 극중 인물은 나고야 지역의 3대 호걸로 불리워지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다. 일본이 전국시대(戰國時代)을 거쳐 천하가 평정되는 과정을 재미있게 소개하는 역사물이다. 쇼핑 나온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춰지지 않을 수 없다. 일회 공연 시간이 5분 정도인 이 극은 ‘낮 12시, 오후 3시, 6시, 밤 8시’ 하루에 네 차례 공연된다.

 

에도시대의 대다수 기술은 수입한 기술을 개량한 것이었다. 카라쿠리 인형도 유럽에서 수입된 자동인형의 모방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에도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9대째 이 인형을 만들고 있는 타마야 쇼오베(玉屋庄兵衛)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라쿠리 인형은 일본 로봇의 원천이다.’고 했다.
 “카라쿠리 인형은 도요타(豊田)를 비롯한 기계 공업의 효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는 시미즈(淸水) 씨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 졌다.

 

카라쿠리 인형은 로봇의 원천

 

일본 로봇 공업회(Robot)도 '카라쿠리 인형과 로봇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기구와 움직임에 있어서 유사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과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민속학적 지적재산에 기반 한 정보화 산업’이라는 말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섬세한 기술력을 눈여겨봐야 한다.

 

필자는 2005년 나고야 공대 이와타 아키라(岩田彰, 57세) 교수의 안내로 나고야 ‘아이치(愛地) 박람회’에 간 적이 있다. 청소 로봇, 경비 로봇, 화재 감시 로봇, 4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외국인 안내 로봇 등이  박람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로봇 전문가인 그는 ‘기술개발에는 산학 협동(産學協同)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저 출산, 고령화에 따라 노동 인구의 부족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로봇이 노동력 문제를 보완 해 줄 것입니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먼 미래의 얘기처럼 들렸으나, 이미 심각한 현실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머지않아 인간의 일자리가 점점 없어 질 것 같다.
 데카르트(1586~1650)는 ‘기계론’에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는 멀쩡한 시계와 고장 난 시계의 차이와 같다.”고 했다.
사람도 시계도 고장 나지 않으려면 평소에 관리를 잘 해야 한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많이 본 뉴스
  • 세계속 코이카'
  • 배진영의 '어제 오늘 내일'
  • 김태완 'Stand Up Daddy'
  • 권세진 ‘별별이슈’
  • 정혜연 ‘세상 속으로’
  • 박희석 ‘시시비비’
  • 이정현 ‘블루오션을 찾아서’
  • 박지현 ‘포켓 저널리즘’
  • 하주희 ‘블루칩’
  • 이경훈 현장으로’
  • 김광주의 뒤끝
  • 백재호의 레이더
  • 고기정의 特別靑春
  • 슬기로운 지방생활
  • 이상곤의 흐름
  • 서봉대의 되짚기
  • 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 취재본부는 지금’
  • 조갑제 기자의 최신정보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