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베넷 박사의 경고

  •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bemil@chosun.com
  • 업데이트 2017-03-0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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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개봉된 '더 록'(The Rock)은 화학무기를 쓰겠다고 위협하며 정부에 돈을 요구하는 미군 반란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FBI 전문가의 활약을 그렸다. 니컬러스 케이지와 숀 코너리가 열연한 이 영화에서 반란군의 화학무기는 샌프란시스코 시민 전체를 몰살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이게 바로 북한이 김정남 암살에 사용한 VX다.

▶흔히 독가스로 불리는 화학무기는 '가난한 자의 핵무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핵무기에 비해 적은 돈과 시설, 인력을 갖고도 핵무기에 버금가는 위력의 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는 지금까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단 두 차례만 사용됐지만 화학무기는 1차 대전 때 본격 사용된 이래 대량살상무기로 종종 등장해왔다. 히틀러가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에서 학살할 때, 1988년 사담 후세인이 쿠르드족을 학살하는 데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만물상] 베넷 박사의 경고
 
▶북한의 화학무기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핵무기에 묻혀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랜드연구소 브루스 베넷 박사가 한·미 양국 군 수뇌부를 찾아다니며 북 화학무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덕분에 북 화학무기 실태에 대한 한·미 정보 당국의 전면적인 재평가가 이뤄져 북 화학무기 보유량이 2500~5000t이나 될 만큼 어마어마하다는 게 밝혀졌다.

▶당시 재평가 결과 북한이 갖고 있는 스커드·노동미사일 탄두의 상당량이 화학탄이고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사정포 포탄에도 화학탄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560㎏의 화학 탄두를 단 스커드미사일이 서울 도심에 떨어지면 최대 12만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화학무기 1000t이 효과적으로 사용되면 4000만명을 살상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한의 핵 공격뿐 아니라 화학무기 공격에도 핵무기로 보복할 것이라고 천명해야 했다.

▶화학무기는 핵무기와 달리 전면전뿐 아니라 테러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다. 1995년 일본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처럼 북한 공작원이 출퇴근 시간 서울 한 지하철 역에 독물질을 놓고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엊그제 한 방송은 최전방 지역 대피소에 유효 기간이 훨씬 지난 방독면들이 보관돼 있는 모습을 보도했다. 지하철 역의 방독면들 사정은 어떤지 궁금하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방독면을 꺼내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도 의문이다. 깡패 범죄 집단을 이웃하고 살아야 한다면 '최악'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세계적인 군사 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박사.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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