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流국가와 보통국가의 가장 큰 차이는 法治이다.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등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시키는 데 성공한 나라들이다. 대부분의 一流국가는 게르만족이 세운 나라이다. 게르만족은 로마와 싸울 때 야만족으로 분류되었으나 法治 하나는 로마에 못지 않았다. 게르만족의 법치전통이 질서 속의 자유와 안정을 낳고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보장한 셈이다. 바이킹도 게르만족의 一派로서 가장 늦게 文明化되었는데 법치로써 일류국가를 만들었다.
미국의 南일리노이 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스웨덴의 역사'(著者 프랭클린 D. 스콧)는 약 700페이지나 된다. 내가 바이킹과 노르만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안 후배 외교관이 구해 준 것이다.
바이킹과 노르만(프랑스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의 후예)은 서기 800~1200년 사이의 약 400년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를 무대로 드라마틱하고 영웅적인 삶의 자취를 남긴 민족이다. 이 戰士(전사)집단의 활동 범위는 지금의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영국, 아일란드, 아이슬란드, 그린랜드, 캐나다, 러시아, 그리스, 터키(당시는 비잔틴 제국), 이스라엘, 카스피해, 지중해, 北海, 北대서양, 北아프리카, 스페인, 프랑스, 南이탈리아와 시실리에 걸쳤다. 콜럼부스보다 500년 먼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들이다.
오늘의 영국은 1066년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방에 있던 노르만(바이킹 출신의 정착민) 세력이 바다를 건너가 점령하여 세운 왕조의 후예이다. 비슷한 시기 南이탈리아와 시실리를 점령, 태양의 왕국을 건설, 당대 유럽에서 가장 번영하고 개방적인 나라를 만든 세력도 노르망디에서 원정 온 일단의 戰士들이었다. '러시아'라는 나라도 스웨덴 바이킹이 키에프에서 세운 공국이 母胎(모태)이다. '러시아'라는 말 자체가 바이킹의 '루스'라는 낱말에서 나왔다.
인류역사상 한 민족집단의 에너지가 이처럼 단기간에 대폭발한 예는 흔지 않다. 기원 전 4세기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대원정, 7~9세기 이슬람 세력의 팽창, 13세기 몽골 군단의 유라시아 대원정이 비슷한 예일 것이다.
당시 바이킹은 기독교를 믿지 않았다. 거창한 우주관과 용맹한 인생관을 지닌 原始(원시)종교를 따랐다. 바이킹 戰士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 덕목은 '남자의 美學', 그리고 명예였다. '스웨덴의 역사'는 바이킹의 인생관을 엿보게 하는, 돌에 새긴 詩를 소개한다.
가축들이 죽는다.
친척들도 죽는다.
너도 죽어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은
죽은 이들 하나 하나의 정정당당한 이름이다.
著者(저자)는 이 시에 담긴 바이킹의 윤리를 이렇게 요약하였다.
<그들은 영웅적 신념의 소유자들이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살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궁극적 결과물이 아니라 어떻게 이 운명적 게임을 감당하였는가였다. 고통은 참아내야 한다, 남을 위해서나 원칙을 위해서가 아니라 운명의 실천을 위하여, 미리 주어진 삶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하여. 폭력과 잔인한 행동도 예사로 했다. 이 또한 변명이 필요 없다. 운명이니까.
그들은 사회적 의무나 도덕적 금기 따위는 무시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안전과 경제적 利害得失(이해득실) 같은 것들은 경멸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나쁘고 옳다는 것에 대해선 확실한 기준이 있었다. 그것은 美學이었다. 그들이 한 일들이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할 정도의 이야기꺼리가 된다면 그것은 멋진 것, 그래서 옳은 것이 된다.>
著者는 이런 가치관을 '변명도, 거칠 것도 없는 거친 개인주의'라고 표현했다. 문명사회와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바이킹 사회가 인간관계를 규율하는 정교한 법적 장치를 고안한 것도 개인들이 가진 이런 야성적, 미학적 행동양식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런 인생관은 젊은이들의 모험을 장려하고, 여성들의 독립성을 보장하였다. 중세 유럽에서 바이킹 여성들만큼 독립성이 강하였던 나라는 없었다. 오늘날 스칸디나비아 나라의 모범적 남녀 평등도 이런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여성은 재산의 소유권을 가졌고, 집안과 농장의 실질적 운영권도 지녔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서구 여성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천년 전 바이킹 여성이 가졌다는 이야기이다.
바이킹과 노르만에 대한 중세 문명인들의 기록엔 공통점이 있다. 육체는 멋지게 발달하였고, 성격은 용감하며, 너그럽고도 잔인하며 교활하다. 법을 잘 지키고, 명예를 존중하며, 무엇보다도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 치졸, 치사, 비겁, 용렬, 옹졸이란 단어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이들이었다.
바이킹 언어에서 유래하는 영어 단어로 버서크(berserk)라는 형용사가 있다. '狂暴(광폭)한'이란 뜻이다. 명사형으로 berserker는 狂戰士(광전사)로 번역된다. 戰場(전쟁)에서 용맹무쌍한 싸움꾼을 일컫는다. 늑대처럼, 곰처럼, 미친 듯이, 그러나 신들린 듯 싸우는 戰士들이다. 미칠 정도로 신나게 싸우다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 이를 멋진 인생으로 여겼던 이들이 11세기를 前後하여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문명화되었고 지금은 사회복지 제도를 발전시켜 세계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나라를 만들었다. 세계사의 가장 위대한 逆轉劇(역전극) 중 하나이다.
남자의 美學이 실종된 곳이 요사이 한국이다. 막말, 떼쓰기, 폭로, 배신, 저질, 거짓말, 사기, 무례가 배운 층에서 더 기승을 부린다. 이순신의 절대고독, 박정희의 초인적 결단, 김유신의 장엄한 자주정신, 계백의 決戰(결전)의지, 이승만의 자존과 자유, 상삼문의 절개, 안중근의 仁義(인의) 같은 남자의 美學이 우리에게도 있긴 했었다. 요즈음 한국 정치와 언론의 추태는 계급투쟁적 저질 행동 양식에다가 한글專用으로 한국어가 망가지고 思考(사고)체계가 흐트러지고 행동이 그렇게 따라간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한글專用엔 미학이 없다. 깊은 생각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
바이킹처럼 戰士의 美學을 극한까지 추구한 집단이 일본의 무사들, 즉 사무라이이다.
일본 北海道의 노보리베츠 온천마을 근방엔 에토 시대의 취락을 再現한 민속촌이 있다. 登別伊達時代村(노보리베츠 다데 지다이 무라)이라고 한다. 그 안에 사무라이館이 있고 유키 료이치라는 사람이 썼다는 '武士道'(Spirit of Samurai)라는 글이 걸려 있다.
<인간의 투쟁본능은 보편적인 것이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다. 일본은 이 거친 투쟁본능에 제어장치를 붙여, 통제하려고 했다. 이를 武士道라고 한다. 이는 사회를 통제하고 또한 활력을 주었다. 그리고 투쟁본능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그 어떤 神聖한 것의 존재를 일본인에게 깨우쳤다. 봉건제도는 무너져도 그것을 지탱해준 武士道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를 體現한 이를 사무라이라고 한다.
武士道를 일본인의 독특한 관념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독특한 출생의 비밀에 있다. 무사도의 아버지는 禪이고 어머니는 유교이다. 禪은 불교에 있어서 명상이며, 深思默考에 의해 知의 영역을 넘어서서 절대의 영역을 지향하는 것이며, 유교는 祖先숭배신앙을 기초로 민족의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 규범이다.
따라서 상호모순된 개념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생긴 武士道를 體現한 인간, 즉 사무라이는 이 둘의 조합의 비율에 따라, 또 그 시대의 요청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나타난다. '사람의 人生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이며, 서두르지 말고 참는 것이 無事長久의 기본이다'라고 말한 도쿠가와는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이고, 강함을 추구하면서 결투에 생애를 걸고 상대를 죽여간 미야모토 무사시도 사무라이이다. 이 두 사람간에는 공통된 삶의 방식이 없어 對局에 위치하는 듯하다. 단 하나 있다고 한다면 艱難辛苦의 한가운데서 각각 神에 다가가 체감한 것, 이것이 사무라이 정신이다.>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등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시키는 데 성공한 나라들이다. 대부분의 一流국가는 게르만족이 세운 나라이다. 게르만족은 로마와 싸울 때 야만족으로 분류되었으나 法治 하나는 로마에 못지 않았다. 게르만족의 법치전통이 질서 속의 자유와 안정을 낳고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보장한 셈이다. 바이킹도 게르만족의 一派로서 가장 늦게 文明化되었는데 법치로써 일류국가를 만들었다.
미국의 南일리노이 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스웨덴의 역사'(著者 프랭클린 D. 스콧)는 약 700페이지나 된다. 내가 바이킹과 노르만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안 후배 외교관이 구해 준 것이다.
바이킹과 노르만(프랑스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의 후예)은 서기 800~1200년 사이의 약 400년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를 무대로 드라마틱하고 영웅적인 삶의 자취를 남긴 민족이다. 이 戰士(전사)집단의 활동 범위는 지금의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영국, 아일란드, 아이슬란드, 그린랜드, 캐나다, 러시아, 그리스, 터키(당시는 비잔틴 제국), 이스라엘, 카스피해, 지중해, 北海, 北대서양, 北아프리카, 스페인, 프랑스, 南이탈리아와 시실리에 걸쳤다. 콜럼부스보다 500년 먼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들이다.
오늘의 영국은 1066년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방에 있던 노르만(바이킹 출신의 정착민) 세력이 바다를 건너가 점령하여 세운 왕조의 후예이다. 비슷한 시기 南이탈리아와 시실리를 점령, 태양의 왕국을 건설, 당대 유럽에서 가장 번영하고 개방적인 나라를 만든 세력도 노르망디에서 원정 온 일단의 戰士들이었다. '러시아'라는 나라도 스웨덴 바이킹이 키에프에서 세운 공국이 母胎(모태)이다. '러시아'라는 말 자체가 바이킹의 '루스'라는 낱말에서 나왔다.
인류역사상 한 민족집단의 에너지가 이처럼 단기간에 대폭발한 예는 흔지 않다. 기원 전 4세기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대원정, 7~9세기 이슬람 세력의 팽창, 13세기 몽골 군단의 유라시아 대원정이 비슷한 예일 것이다.
당시 바이킹은 기독교를 믿지 않았다. 거창한 우주관과 용맹한 인생관을 지닌 原始(원시)종교를 따랐다. 바이킹 戰士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 덕목은 '남자의 美學', 그리고 명예였다. '스웨덴의 역사'는 바이킹의 인생관을 엿보게 하는, 돌에 새긴 詩를 소개한다.
가축들이 죽는다.
친척들도 죽는다.
너도 죽어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은
죽은 이들 하나 하나의 정정당당한 이름이다.
著者(저자)는 이 시에 담긴 바이킹의 윤리를 이렇게 요약하였다.
<그들은 영웅적 신념의 소유자들이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살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궁극적 결과물이 아니라 어떻게 이 운명적 게임을 감당하였는가였다. 고통은 참아내야 한다, 남을 위해서나 원칙을 위해서가 아니라 운명의 실천을 위하여, 미리 주어진 삶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하여. 폭력과 잔인한 행동도 예사로 했다. 이 또한 변명이 필요 없다. 운명이니까.
그들은 사회적 의무나 도덕적 금기 따위는 무시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안전과 경제적 利害得失(이해득실) 같은 것들은 경멸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나쁘고 옳다는 것에 대해선 확실한 기준이 있었다. 그것은 美學이었다. 그들이 한 일들이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할 정도의 이야기꺼리가 된다면 그것은 멋진 것, 그래서 옳은 것이 된다.>
著者는 이런 가치관을 '변명도, 거칠 것도 없는 거친 개인주의'라고 표현했다. 문명사회와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바이킹 사회가 인간관계를 규율하는 정교한 법적 장치를 고안한 것도 개인들이 가진 이런 야성적, 미학적 행동양식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런 인생관은 젊은이들의 모험을 장려하고, 여성들의 독립성을 보장하였다. 중세 유럽에서 바이킹 여성들만큼 독립성이 강하였던 나라는 없었다. 오늘날 스칸디나비아 나라의 모범적 남녀 평등도 이런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여성은 재산의 소유권을 가졌고, 집안과 농장의 실질적 운영권도 지녔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서구 여성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천년 전 바이킹 여성이 가졌다는 이야기이다.
바이킹과 노르만에 대한 중세 문명인들의 기록엔 공통점이 있다. 육체는 멋지게 발달하였고, 성격은 용감하며, 너그럽고도 잔인하며 교활하다. 법을 잘 지키고, 명예를 존중하며, 무엇보다도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 치졸, 치사, 비겁, 용렬, 옹졸이란 단어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이들이었다.
바이킹 언어에서 유래하는 영어 단어로 버서크(berserk)라는 형용사가 있다. '狂暴(광폭)한'이란 뜻이다. 명사형으로 berserker는 狂戰士(광전사)로 번역된다. 戰場(전쟁)에서 용맹무쌍한 싸움꾼을 일컫는다. 늑대처럼, 곰처럼, 미친 듯이, 그러나 신들린 듯 싸우는 戰士들이다. 미칠 정도로 신나게 싸우다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 이를 멋진 인생으로 여겼던 이들이 11세기를 前後하여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문명화되었고 지금은 사회복지 제도를 발전시켜 세계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나라를 만들었다. 세계사의 가장 위대한 逆轉劇(역전극) 중 하나이다.
남자의 美學이 실종된 곳이 요사이 한국이다. 막말, 떼쓰기, 폭로, 배신, 저질, 거짓말, 사기, 무례가 배운 층에서 더 기승을 부린다. 이순신의 절대고독, 박정희의 초인적 결단, 김유신의 장엄한 자주정신, 계백의 決戰(결전)의지, 이승만의 자존과 자유, 상삼문의 절개, 안중근의 仁義(인의) 같은 남자의 美學이 우리에게도 있긴 했었다. 요즈음 한국 정치와 언론의 추태는 계급투쟁적 저질 행동 양식에다가 한글專用으로 한국어가 망가지고 思考(사고)체계가 흐트러지고 행동이 그렇게 따라간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한글專用엔 미학이 없다. 깊은 생각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
바이킹처럼 戰士의 美學을 극한까지 추구한 집단이 일본의 무사들, 즉 사무라이이다.
일본 北海道의 노보리베츠 온천마을 근방엔 에토 시대의 취락을 再現한 민속촌이 있다. 登別伊達時代村(노보리베츠 다데 지다이 무라)이라고 한다. 그 안에 사무라이館이 있고 유키 료이치라는 사람이 썼다는 '武士道'(Spirit of Samurai)라는 글이 걸려 있다.
<인간의 투쟁본능은 보편적인 것이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다. 일본은 이 거친 투쟁본능에 제어장치를 붙여, 통제하려고 했다. 이를 武士道라고 한다. 이는 사회를 통제하고 또한 활력을 주었다. 그리고 투쟁본능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그 어떤 神聖한 것의 존재를 일본인에게 깨우쳤다. 봉건제도는 무너져도 그것을 지탱해준 武士道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를 體現한 이를 사무라이라고 한다.
武士道를 일본인의 독특한 관념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독특한 출생의 비밀에 있다. 무사도의 아버지는 禪이고 어머니는 유교이다. 禪은 불교에 있어서 명상이며, 深思默考에 의해 知의 영역을 넘어서서 절대의 영역을 지향하는 것이며, 유교는 祖先숭배신앙을 기초로 민족의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 규범이다.
따라서 상호모순된 개념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생긴 武士道를 體現한 인간, 즉 사무라이는 이 둘의 조합의 비율에 따라, 또 그 시대의 요청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나타난다. '사람의 人生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이며, 서두르지 말고 참는 것이 無事長久의 기본이다'라고 말한 도쿠가와는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이고, 강함을 추구하면서 결투에 생애를 걸고 상대를 죽여간 미야모토 무사시도 사무라이이다. 이 두 사람간에는 공통된 삶의 방식이 없어 對局에 위치하는 듯하다. 단 하나 있다고 한다면 艱難辛苦의 한가운데서 각각 神에 다가가 체감한 것, 이것이 사무라이 정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