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장편 『마당깊은 집(문학과 지성刊)』은 김원일(사진 왼쪽)이 47세 되던 1988년에 나왔다. 작가에게 가장 상업적 성공을 안긴 작품이자 불어·독어·스페인어·일어로 번역될 만큼 반향이 컸다. 경상도 방언의 맛을 얼마나 살렸는지는 모르지만, 한국 문학의 위상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김원일을 좋아하는 文友들이 대구시 중구 장관동 약전골목에 발품을 팔아 답사한 뒤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을 찾아가는 발걸음』이란 단행본을 내놓기도 했다. 책을 엮는데 참여한 이 가운데는 방송작가 박진숙도 있다. 박진숙이 누군가. 드라마 후남이(김희애 扮)와 귀남이(최수종 扮)의 MBC 드라마 <아들과 딸>을 쓴 잘 나가는 작가다. 경북 김천이 고향인 그는 <마당깊은 집>을 작품화 해 백상예술대상 TV 극본상을 타기도 했다.

 

   <마당깊은 집>은 한국전쟁 이후 경남 진영에서 대구로 올라온 작가의 자전적 가족사 이야기이자, 대구 종로통의 중국인 소학교와 마주 보는 골목에서 겪은 피난민의 고단한 생활상을 '길남이'라는 소년의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김원일은 한 인터뷰에서 “작품 속 공간 중 3분의 2가 사실 그대로이며 어머니에 대한 묘사는 진실”이라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직업적인 공산주의자였고 혈육을 버리고 사상을 택한 사람이었다. 김원일의 소설이 분단문제에 유독 집착하는 이유도 자신의 뿌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의 한 방편이다. 그에게 있어 아버지는 권한을 안기기는커녕 태어날 때부터 長男이란 책임감만 던져준 존재다. 김원일 소설의 한결같은 뼈대는 <왜 사상은 혈육보다 중요할까> 이다. 다시말해 <왜 아버지는 가족을, 아니 나를 버렸을까>였다. 그는 그 물음을 분단문학으로 전이시켰고,  <우리 시대에 혈육과 사상만한  절박한 현실은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혈육과 사상을 바라보는 그 시선은 눈물겹고 따스하다. “어린 나에게 너무나 큰 수수께끼를 남기고 죽어버린 아버지의 일생을 더듬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사시나무처럼 떨었다”고 그는 말했다.

 

  김원일은 어머니의 혹독한 매질을 당하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법이란 없었다. 남자가 집안의 長子가 된다는 것은 바로 부존재한 아버지를 껴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다짐한다. <아버지 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자신을 학대하고 스스로를 채찍질 하며 일에 매달렸다. 소설가로 어느정도 입신한 뒤에도 그는 출판사(국민서관)에 출·퇴근하며 직장을 거르지 않았고 야근에 시달리며 소설을 썼다. 그는 소설만 써선 먹고 살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 18년간(68~86년) 출판사 일을 했고 토요일도 오후 6시까지 근무하며 억척스럽게 살았다. 그의 말이다.

"...내가 빨리 늙고 싶다고 마음을 새기기는, 1954년 대구로 올라와 가족과 함께 살며 일터로 향하기 위해 새벽별을 보고 나섰을 때부터였다. 세상의 냉대, 추위, 주림, 어머니의 학대, 노란 얼굴로 늘 불안에 질린 어린 동생들의 침묵, 조울증에 시달린 정서 불안증····.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늙은이가 되면 아무도 내게 돈 벌어오라고 일 시키지 않겠고, 벌레처럼 누구로부터도 관심 대상이 되지 않겠지. 나는 이를 앙다물고 늘 그 생각만 했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흘러 어느덧 나도 바람대로 애 늙은이가 됐다.(『연』서문. 1985년, 나남)"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역할을 했어야 했다.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분노와 절망을 쏟아내는 대상이자, 아버지의 화신이었다. 김원일은 그런 아버지를 무의식적으로도 닮기 싫었다. “어머니는 눈이 크다. 그래서 겁이 많다. 나는 어머니의 눈을 닮았다. 그래서 겁도 많다”고 외친다. 어머니는 지서에 가면 얼굴에 온통 피멍이 들어 돌아왔으며(어머니의 가슴에는 커다란 흉터자국이 잇는데, 남편의 행방을 추달 받으며 고문당한 흔적이었다) 그날 밤이면 자식들은 안방에 둘러다놓고 아버지와 순사 욕에 하루밤을 꼬박 세운다. 어머니는 長子에게 모든 화풀이를 쏟아낸다. “빨갱이 운동해서 이러게 처자식을 고생시키는 ‘애비귀신’은 닮지말라”고.

 

  김원일의 동생이자 소설가인 김원우(사진 아래)는 어머니의 형에 대한 매질을 <참으로 이상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로 회상했다. 그의 말이다.

  "유독 형님에게만 어머니는 닦달질을, 그것도 거의 초죽음이 되도록 퍼우어 댔다. 별것도 아닌 꼬투리를 잡아 형님에게 매타작을 퍼붓기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을 지경이었고, 누구도 믿기지 않겠지만 가죽 허리띠로 어쩌자는 것인지 당신의 맏자식 목을 조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요컨대 사람이 되라는, 남편복 없는 년이 자식복이나 있겠냐면서 과부 에미를 뭘로 아느냐는 그런 폭력 행사는 형님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걸핏하면 벌어졌다. 그런 생지옥을 보면서도 나는 눈물만 글썽거릴 뿐 어머니 팔에 매달리며 말리지도 못했고 말릴 수도 없었다.(『김원일 깊이읽기』, 문학과 지성사, 2002) "

  하지만 김원일에게 있어 어머니는, 한국 가족사의 비극이다. 비극은 쓸어안아야 한다. 그는 아버지의 不在와 가난, 멸시와 서름, 어머니의 매질을 묵묵히 응시하며 받아들였다. 좌절하지 않았고(도덕적 성실함) 아팠던 삶을 묵묵히 예술로 승화했다. 예술적 승화는 바로 그가 겪은 長子되기 삶과 다름없었다. 家長이란 집안의 큰 나무와 같아서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가족을 자신의 그늘아래 지켜야 하는 법이다. 그는 나무가 되어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이겨내고, 목격했다. 어느덧 아버지가 없는 가정의 애늙은이가 아니라 <늘푸른 소나무(1993년작, 문학과 지성사)> 같은 가장으로 우리에게 우뚝 서있다.

  『마당 깊은 집』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

  “나는 마당 깊은 집의 그 깊은 안마당을 다른 흙으로 돋구어 올리는 것을 목격했다. 내 대구생활의 첫 일년이 저렇게 묻히고 마는구나 하고 나는 슬픔이 가득찬 마음으로 그 묻히는 땅을 보았다. 곧 이층 양옥집이 초라한 내 삶의 족적을 딛듯 그 땅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

1990년 정월부터 8부작으로 방송된 미니시리즈 <마당 깊은 집>은 큰 인기를 끌었다. 어머니 역으로 扮한 고두심(사진 오른쪽)은 한국방송연기자 대상을 받았다. 이 드라마는 특별한 사건이나 치열한 심리적 묘사를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한국전쟁 당시의 피난민의 군상을 흑백사진처럼 담백하게 그렸다. 극적 반전이나 화려한 스케일 없이도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으로 손꼽힌다. 드라마 프로듀서 장수봉이 <마당깊은 집>을 제작하겠다고 하자 만류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피웠다.

  “그때 이 드라마를 기획할 당시엔 반대도 없지 않았어요. 뚜렷한 줄거리나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반적으로 작품의 주조가 어둡고 재미없다는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된다고 보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이렇게 얘기하면 결과론이라고 할지 모르나 당시의 방만한 사회적으로 분위기에서 오히려 반성의 기회를 줄 수도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장수봉의 고집은 원작과 함께 한국 드라마사에 족적을 남겼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많이 본 뉴스
  • 세계속 코이카'
  • 배진영의 '어제 오늘 내일'
  • 김태완 'Stand Up Daddy'
  • 권세진 ‘별별이슈’
  • 정혜연 ‘세상 속으로’
  • 박희석 ‘시시비비’
  • 이정현 ‘블루오션을 찾아서’
  • 박지현 ‘포켓 저널리즘’
  • 하주희 ‘블루칩’
  • 이경훈 현장으로’
  • 김광주의 뒤끝
  • 백재호의 레이더
  • 고기정의 特別靑春
  • 슬기로운 지방생활
  • 이상곤의 흐름
  • 서봉대의 되짚기
  • 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 취재본부는 지금’
  • 조갑제 기자의 최신정보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