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예수/정호승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 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 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 끝으로 걸어간다.
3
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서울의 들길은 보이지 않고, 밤마다 잿더미에 주저앉아서 겉옷만 찢으며 우는 자여. 총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리더니, 사랑과 믿음의 깊이 사이로 첫눈이 내리더니, 서울에서 잡힌 돌 하나, 그 어디 던질 데가 없도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운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눈내리는 서울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잠시 머리 둘 곳이 없나니,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술잔을 들고 어둠 속으로 이 세상 칼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으로 칼끝에 쓰러진 그대들은 눈 그친 서울 밤의 눈길을 걸어가라.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4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 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5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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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浩承의 시는 어딘지 따뜻하고 슬프다. 심하게 말해, 작품 전체에 슬픔을 假裝(가장)하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인간과 인생의 究竟적 추구를 꾀했던 생명파와 그의 문학적 스승이었던 조병화, 서정주와 닮아있다. 또 세상에 대한 視線으로 치면, 윤동주에서 느끼는 따스함과 비견되면서도 전혀 종교적이지 않고, 김수영의 意識을 따라가고자 하나 냉소 보다는 긍정이 묻어난다.
예컨대 ‘결국 가난이 없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마더 데레사」)’ ‘목마를 때 언제나 소금을 주고/배부를 때 언제나 빵을 주는(「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랑」)’ 세상이라고 외치면서도 ‘이 가을 어딘가에 기쁨이 있다고(「이 가을 어딘가에」)’ 믿어 의심치 않는 시인이 바로 정호승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민중의 전통적 감성에 깊이 몸담고 있는 시인(정다비)’이란 평가는 어느 정도 정확하다. 다만 소시민적 열정, 공동체적 관심만으로 그의 감성을 평가해선 안된다. 그의 창조적 감수성과 발랄함을 잊어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세대를 초월, 사랑받는 것도 전통적 감성(슬픔)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지만, 슬픔에 대한 ‘자극’을 넘어 ‘초극’하려는 적극적 삶의 의지 혹은 희망이 독자층을 20대까지 낮춘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조병화의 시는 쉽게 읽히면서도 삶의 비의를 깊게 드러낸다. 지금 내 시가 어렵지 않고 쉽게 읽힐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일상의 언어로 쓰여 지는 면이 있다면 그건 조병화 선생의 영향이 크다. 특히 조병화 선생의 초기시에는 전쟁과 죽음과 이별이 있었던 1950년대의 슬픔의 정서가 잘 드러나 있는데, 내 첫 시집의 제목이 『슬픔이 기쁨에게』인 것 또한 조병화 선생이 일찍이 드러낸 슬픔의 정서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선생은 삶의 비극성을 낭만적으로 노래했다면, 나는 그 비극성을 현실에 바탕에 두고 노래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서울의 예수』는 1982년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1979년)』에 이어 3년만에 나왔다. 첫 시집이 경희대 국문과 교수였던 조병화 선생에게 영향을 받았다면, 또 1976년 김명인, 김창완, 이동순 등과 함께 한 반시(反詩) 동인 활동의 결과물이라면, 단연코 『서울의 예수』는 서정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다.
정호승에 있어 서정주는 각별하다. 서정주의 시가 민담과 전설, 설화를 내포하거나 그와 관련된 한국적 敍事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정호승의 시적 형상화 방법과 소재 역시 서정주의 범주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시 도처에 깔려있는 혹독한 현실의 분위기는 김수영에 영향 받은 것이리라.)
정호승의 시를 따라가 보면, 지난 봄 감자 눈 속에 몰래 숨어 감자꽃처럼 피어나던 병사(「감자」)를 만나게 되고, 문둥이가 된 누이와 술집 작부가 된 유관순, 무악재 개나리를 헤치며 오는 어머니(「유관순」)를 만난다. 그리고 흰 성기를 단 미군에게 몸을 빼앗긴 어머니(「옥중서신」), 북한 어부의 딸과 남한 어부의 아들이 알몸을 처음 껴안고 첫눈과 함께 오고 있는 모습(「옥중서신」)도 보게 되는 것이다. 서울의 예수도 서사적 구조를 지닌다. 그가 그려낸 서울의 예수는 겨울비에 젖어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울고, 절망의 끝으로 걸어가는 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꾸이 먼저 잠드는, 밤마다 잿더미에 주저앉아서 겉옷만 찢으며 우는 者다. 그러면서 예수는 이렇게 외친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운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눈 내리는 서울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잠시 머리 둘 곳이 없나니,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술잔을 들고 어둠 속으로 이 세상 칼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으로 칼끝에 쓰러진 그대들은 눈 그친 서울 밤의 눈길을 걸어가라.···(中略)>
사실 군 시절, 정호승은 항상 서정주와 함께 있었다. 군 복무시절, 그는 軍宗室에서 근무하며 서정주와 만났다. 군인교회 막사에서 서정주 시집 『동천』,『서정주 시선』과 『신라초(新羅抄)』를 읽고 또 읽었다. 서정주를 肉化한 뒤 그는 시를 다시 쓰게 됐고 결국 일찍이 서정주가 탐익한 新羅의 감수성을 새롭게 재연한 「첨성대」로 신춘문예 당선의 영예까지 안았다. 1972년의 일이다.
<나는 군종실에 근무하게 되었고 병장이 되자 내무반 생활에서 벗어나 군인교회에서 혼자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매트리스 한 장을 깔고 솜이 삐져나온 이불을 덮고 잠들기 전까지 나는 시를 쓰고 읽는 일에 매달렸다. 당시 7백원이었던 병장 첫 봉급을 받고 춘천 시내로 나가 산 책 또한 서정주 시집 『동천(冬天)』이었다.
나는 『동천』을 읽고 또 읽으면서 서정주를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 우리 시에 있어서의 전통적 정서와 가락을 내 나름대로 발견하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동천』 이전의 작품들도 읽고 싶어 문우 박해석에게 편지를 보냈다. 서정주 시집을 있는 대로 좀 보내달라고. 박해석이 어디서 구했는지 『서정주 시선』과 『신라초(新羅抄)』를 보내주었다. 나는 반드시 돌려준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우선 그 시집과 비슷한 크기의 노트 한 권을 사서 시집을 베끼기 시작했다. 만년필로 또박또박 정자로 한자도 빼놓지 않고 정성껏 베껴 썼다. 심지어 판권까지도 썼다. 판권의 조판 모양까지도 흉내 내어 그대로 정리했다. (군인교회의 시멘트 바닥에서 잠 안 자고 베긴 서정주 시집은 지금도 내 책꽂이 한 귀퉁이에 꽂혀 말이 없다.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내 손으로 내가 직접 쓴, 이 세상에 단 한 권밖에 없는 ‘서정주 시집’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1972년 겨울에 나는 군대에서 시 ‘첨성대’를 써서 이듬해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中略·월간조선 2005년 8월호)>
절망이 드리운 「서울의 예수」는 몇 년 뒤인 1986년 장선우 감독에 의해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 ‘서울 황제’로 만들어진다. 장선우 감독의 첫 데뷔작이자, 기성 상업영화 자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찍은 한국 최초의 독립영화였다. 서울의 예수가 등장하고 서울 변두리의 궁핍한 삶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다소 풍자적인 작품이지만 메시지는 정호승의 시와 닿아 있었다.
초라한 행색의 예수(김명곤 扮)가 껌팔이 소년(안용남 扮)을 만나 엄마와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길을 떠난다는 얘기다. 자칭 예수는 타락한 서울을 구할 메시아가 다시 오는데 이번에는 여자(오수미 扮)의 몸으로 온다며 그녀를 찾아 헤맨다는 줄거리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향을 받아 서울의 허름한 뒷골목 풍경이 나오고, 가난한 이웃들의 절박함이 현실풍자의 모습으로 재연됐다.
하지만 작품성이 기대에 못 미쳤고, 현실풍자라는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해 여기저기 필름이 가위로 잘리고, 급기야 제목마저 ‘서울예수’에서 ‘서울황제’로 바뀌는 수모를 겪다가 제대로 된 평가 없이 은막 뒤로 사라져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