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명에 가까운 특검 측 증인 신문이 있었지만 뇌물죄의 핵심 고리인 삼성의 경영권 승계 관련 청탁을 입증할 만한 명확한 증언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 박재홍 전 승마국가대표 감독 등 특검조사 때 정유라 승마 지원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했던 증인들은 줄줄이 재판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 특검이 부정청탁 증거로 내놓은 대통령 말씀자료… “인터넷에 올라온 언론보도 참고”
(말씀자료 작성한 윤인대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 재판부, 특검의 히든카드 ‘안종범 업무수첩’ 직접 아닌 간접증거로 채택…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삼성 합병 지시하신 적 없다”(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특혜 의혹 사실상 해소
⊙ 순환출자 고리 해소 위한 처분 주식 수 감면 의혹 증언, 증거 없어… 500만 주 덜 판다고,
그룹 지배력이나 순환출자 고리 강화에 별다른 도움 안 돼
⊙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문제 해결 청탁?… “청와대가 이 문제에 관심이
너무 없어 오히려 서운”(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청탁을 들어준 대가로 최순실에게 금품(뇌물)을 줬다는
특검의 주장에 증인 줄줄이 증언 번복
⊙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204억원)이 뇌물이라면 과거 정권 요청으로 각종 재단에
기금 출연한 대기업과 정권 관계자도 모두 처벌받아야
⊙ 특검이 부정청탁 증거로 내놓은 대통령 말씀자료… “인터넷에 올라온 언론보도 참고”
(말씀자료 작성한 윤인대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 재판부, 특검의 히든카드 ‘안종범 업무수첩’ 직접 아닌 간접증거로 채택…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삼성 합병 지시하신 적 없다”(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특혜 의혹 사실상 해소
⊙ 순환출자 고리 해소 위한 처분 주식 수 감면 의혹 증언, 증거 없어… 500만 주 덜 판다고,
그룹 지배력이나 순환출자 고리 강화에 별다른 도움 안 돼
⊙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문제 해결 청탁?… “청와대가 이 문제에 관심이
너무 없어 오히려 서운”(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청탁을 들어준 대가로 최순실에게 금품(뇌물)을 줬다는
특검의 주장에 증인 줄줄이 증언 번복
⊙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204억원)이 뇌물이라면 과거 정권 요청으로 각종 재단에
기금 출연한 대기업과 정권 관계자도 모두 처벌받아야
오히려 한국거래소가 요청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청탁을 들어주기 위해 한국거래소에 압력을 행사, 삼성의 바이오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코스피(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특혜를 줬다고 주장한다. 원래 코스피 상장을 위해서는 3년 이상 흑자가 조건이다. 하지만 한국거래소가 2015년 11월 시가 총액 2000억원 이상이면 적자 기업도 상장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바꾸었다. 이게 이 부회장을 위한 특혜란 것이다.
애당초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나스닥 상장을 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2011년 설립 이후 매년 세계 최대 바이오 전시·콘퍼런스 행사인 ‘바이오 인터내셔널’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등에 참가해 글로벌 고객과 잠재 투자자에게 사업 현황과 중장기 비전을 설명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한국거래소는 2015년 11월 상장 규정 변경 발표 후 코스피·코스닥 상장 유치를 위해 우리 회사를 수차례 방문했다”며 “이후 상장 검토 과정에 거래소의 지속적인 권유와 여론, 국민의 기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2016년 4월 이사회에서 최종적으로 코스피 상장 추진을 결정했다”고 했다.
2월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국내 시장 상장 요건이 이익 요건에 함몰돼 우수한 기업이 해외에 나가는 사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거래소 요청으로 상장 규정을 바꾼 것”이라고 했다.
한국거래소 측도 “지난해(2016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나스닥 상장을 검토한다는 얘기가 돌면서 오히려 우리 쪽에서 한국 대표기업이 외국에 상장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삼성 쪽에 수차례 국내 증시 상장을 요청했다”며 “당시 유가증권시장본부(코스피)와 코스닥본부가 서로 유치 경쟁을 벌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6년 11월 코스피 시장에 상장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그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기대 이상의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 투자 비중이 높았던 이들 회사는 올해 들어 흑자 전환에 성공하고 미국·인도·유럽 시장 등에 진출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바이오시밀러 등 바이오 의약품의 위탁생산업체(CMO·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말 3공장이 완공되면 스위스 제약회사 론자, 독일의 베링거 등을 제치고 CMO 기업 중 세계 최대 생산 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의약품 시장은 연평균 8.7%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데, 특히 CMO는 연평균 15.0%로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어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이 본격 상업 생산에 들어가는 2020년엔 삼성바이오로직스 한 회사만으로도 2조원 이상의 매출이 기대된다”고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은 “한국 대표기업이 외국에 상장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하에 삼성 쪽에 수차례 국내 증시 상장을 요청했다”는 한국거래소의 주장이 힘을 얻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증인들의 진술 번복 이어져
특검은 삼성이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청탁을 들어준 대가로 최순실에게 금품(뇌물)을 줬다고 본다. 특검 수사로 삼성이 최순실·정유라 모녀를 위해 2015년 8~9월 220억원 규모의 지원 계약을 맺고 실제 78억원을 송금한 내용은 확인돼 있다. 삼성은 최씨 조카 장시호씨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원 넘게 지원했고, 미르·K스포츠 재단에도 204억원을 출연했다.
지원금 78억원에 대해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한화로부터 승마협회를 넘겨받았으면 적어도 한화만큼은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역정을 냈고, 이에 놀라 올림픽을 대비해 승마 유망주 여러 명을 지원한 금액”이라는 입장이다. 합병 문제가 없었어도 대통령이 이렇게 압박하면 똑같이 지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특검은 삼성이 승마 유망주 육성 사업에 지원한 것이 아니라, 정유라 개인을 지원한 것으로 판단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눈여겨볼 점이 있다. 바로 관련자들의 진술 번복이다.
최순실 측근이자 정유라 후견인이었던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최순실이 말의 소유권이 ‘삼성’으로 기재된 것을 보고 화가 나 ‘삼성도 내가 합치도록 도와줬는데, 은혜도 모르는 놈들이다’라고 혼자 말하는 것을 독일에서 목격했다”는 핵심 증언을 번복, 특검을 당황케 했다. 이러한 그의 진술은 정유라 승마 지원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였다. 5월 31일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박 전 전무는 “(최씨로부터) 합친다는 말을 못 들었다”며 “합병 사실은 이 사건(국정농단) 터진 다음에 알았다”고 했다.
그는 삼성이 승마 유망주 여러 명을 지원하려 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삼성은 (정유라 이외에 다른) 선수를 선발하려고 했습니다. 계약서에 나온 내용대로 진행하려 했는데 최순실씨가 중간에 욕심을 부리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최씨도 계약을 체결할 당시만 해도 여러 명을 지원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돈도 마음대로 쓰는 것 같고 그랬습니다.”
박재홍 전 승마국가대표 감독 역시 특검에서의 진술을 부인하며 삼성에 힘을 실어주는 증언을 했다. 특검 조사 때 “삼성이 정유라 이외에 마장마술이나 장애물 등 다른 분야의 승마선수를 지원하려고 한 이유”를 묻는 말에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순실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까우니까, 무엇인가를 부탁했거나 부탁하려고 정유라에게 특혜 지원을 했던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던 박 전 감독은 5월 12일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서는 “그렇게 생각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박 전 감독의 증언이 조서의 주요 내용과 크게 상반되자 재판을 심리하는 김진동 부장판사가 직접 질의를 하기도 했다. 그는 재판장의 질문에도 “(참고인 진술 당시 어떤 취지로 진술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는 “독일 출국 당시, 삼성은 국내 승마선수 훈련 지원을 위해 진정성을 갖고 있었다”며 “개인적인 생각은, 삼성에서 (국내 승마선수 훈련 지원을 위해) 분명히 (자금을) 지원했을 것 같은데 (최순실이 정유라와 종목이 다른) 장애물(선수 훈련 지원) 쪽에 쓰는 게 아깝고 자기 돈처럼 생각해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삼성이 승마선수 독일 전지훈련 지원을 위해 코어 스포츠에 자금을 지원했지만, 최순실이 이를 자기 마음대로 전용하면서, 삼성의 지원금이 본래 목적대로 쓰이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다.
5월 2일 재판 증인으로 참석한 전직 승마국가대표 선수도 진술을 바꿨다. 그는 특검 조사에서 정유라 지원 배후에 이 부회장이 있다는 취지로 답했지만 이날 법정에서는 “개인적으로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 것이고, 그랬을 것이라고 (단정)한 게 아니다”고 했다. 그는 “삼성은 지원을 다 같이 하려고 했는데, 여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너무 단편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6월 20일 재판에서 특검이 뇌물로 지목한 승마 지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삼성이 최순실에게 소유권을 넘겨줬다고 특검이 주장한 말 ‘라우싱’이 지난 6월 19일 한국으로 들어왔다며 관련 자료를 제출한 것이다. 변호인단은 “삼성전자가 독일의 말 중개상 ‘헬그스트란드’와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말 소유권을 되돌려 받았다”며 “특검은 삼성이 말을 최씨에게 증여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이 부회장이 장시호 존재 미리 알았다는 증거 없어
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원 지원에 대해 특검은 이 부회장이 장시호(동계스포츠영재센터 운영)가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의 조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경우 뇌물죄가 적용된다는 추론을 폈다. 그러나 특검이 진행한 서증(書證)조사를 통해서도 이 부회장이나 삼성의 임원들이 장시호의 존재를 미리 알았음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나온 것이 없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동계영재센터는 철저하게 유명 메달리스트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며 “그 배후에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라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이 부회장을 비롯한 피고인들은 알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변호인단은 “영재센터 관계자들조차 장시호와 최순실의 연결고리를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특검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204억원도 뇌물로 보는 것은 극단적이라는 지적이다. 만약 이 금액이 뇌물이라면 과거 정권의 요청으로 각종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모든 대기업과 정권 관계자들은 모두 뇌물죄 처벌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사회공헌활동 차원에서 지원한 걸 모두 뇌물이라고 본다는 건 극단적 논리에 불과하다”며 “이 논리대로라면 노무현 정권 시절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기금, 이명박 정권 시절 미소금융재단 기금도 모두 뇌물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출연한 돈을 삼성만 뇌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이 국가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이니까 이 부회장을 배려해야 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위법 행위는 똑같이 처벌받아야 한다. 최근의 대중 정서나 대기업에 대한 국민 일부의 반감을 의식해 법리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혐의로 인신 구속부터 하려 드는 것도 옳지 않다. 이런 경우 피의자 쪽에도 방어할 기회와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재판을 통해 법관이 유무죄 판단을 내려야 한다. 3개월가량 진행한 이 부회장 재판을 되짚어 보니, 특검이 삼성에 뇌물 공여 혐의를 적용한다는 결론부터 내려놓고 그것에 맞추려고 수사를 진행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