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전 정부서 남긴 문서 없다고 한 청와대… 2개월 뒤 민정, 정무수석실 등에서 2000개 넘는
문서 발견했다 밝혀
⊙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우리 문서가 아니라는 주장 하겠다”(조대환 박근혜 청와대 마지막 민정수석)
⊙ “청와대 나오기 직전까지도 캐비닛에는 아무 문서도 없었다”(민정비서관실 문건 관리자)
⊙ “의심이 가는 인물이 있긴 하지만 정황만 있고, 증거가 없어 말하기 어렵다” (박근혜 청와대 관계자들)
⊙ 제2의 고영태 태블릿 PC 사건 되나?
문서 발견했다 밝혀
⊙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우리 문서가 아니라는 주장 하겠다”(조대환 박근혜 청와대 마지막 민정수석)
⊙ “청와대 나오기 직전까지도 캐비닛에는 아무 문서도 없었다”(민정비서관실 문건 관리자)
⊙ “의심이 가는 인물이 있긴 하지만 정황만 있고, 증거가 없어 말하기 어렵다” (박근혜 청와대 관계자들)
⊙ 제2의 고영태 태블릿 PC 사건 되나?
조대환 전 민정수석의 허탈한 웃음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민정수석을 지낸 조대환 전 수석은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7월 31일과 8월 13일 두 번의 전화통화를 통해 그의 입장을 들었다.
― 문건이 발견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직자가 떠날 때 인수인계할 것은 하고, 폐기할 것은 폐기하는 게 기본자세 아닙니까. 저도 개인적으로 상황을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법(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했습니다. 저도 여러 번 강조했고요.”
― 문건이 남아 있지 않다는 보고를 받았는지요.
“물론입니다. 저도 체크를 하고, (남은 문서가 없다는) 보고도 받았습니다.”
― 억울하실 텐데 왜 공식적으로 부인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남기지 않았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사실 삼성 승계 문건을 만든 이영상 전 행정관은 자신이 만든 건 맞지만, 이후에는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에서는 문건이 발견된 캐비닛 사진을 찍어 특검에 제출했는데, 그 사진에 나온 캐비닛이 우리가 쓰던 게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해야지, 억울하다고 부인부터 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 이영상 전 행정관이 현 정권에 자료를 제공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제가 물어봤을 때 민정수석실을 떠날 당시 다 폐기했다고 했습니다. 이 전 행정관 후임자도, 그런 문건을 인수인계 받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이영상 검사는 검찰 내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인재”라며 “그럴(줄서기 위해 자료를 제공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 한 언론매체 보도를 보니 조 전 수석께서 의도적으로 흘렸을 가능성도 제기하던데요.
“허허허.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참…. 답답하네요.”
7월 15일 《헤럴드경제》 보도를 보면 경북 청송 출신인 조 전 수석은 퇴임 직후인 5월 11일 청와대에서 고향까지 약 800리(약 330km) 길을 도보로 낙향했다. 그는 이와 관련 “옛 선비들이 걸었던 길을 걸으면서 그간의 생활과 공직 경험을 정리하고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을 겸해서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사는 “조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 파면 후 올곧은 ‘선비정신’에 대해 생각했다”며 “법조인 출신인 그가 헌재 판결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정권에 도움이 되고자 의도적으로 핵심 문건을 남겨놨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누군가 미리 문건을 확보해 몰래 캐비닛에 넣었나?
문건이 발견됐다는 곳에서 일했던 박근혜 정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남긴 문건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의 치부가 될 수 있는 문건 다수가 발견됐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근무자들의 주장이 맞다면 실체의 윤곽은 드러난다. 결국 박근혜 정부 청와대 근무자들이 나오기 직전(5월 9일)까지 확인했을 때 없던 문서가 캐비닛에서 발견되려면 그 이후 누군가 몰래 캐비닛에 문건을 넣거나,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전제가 성립하려면 본인 밥그릇을 위한 의도적 내부 고발이든,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든 이 누군가는 미리 문건을 확보했어야 한다. 정무수석실이나 국정상황실 문건 확보는 수월한 편이다. 복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정수석실 문건은 다르다. 민정수석실은 ‘정윤회 비선 실세’ 문건 유출 사건 이후 검색대를 설치하고, ‘특수용지’만 사용했다. 특수용지를 지니고 검색대를 통과하면 경고음이 울렸다. 특수용지는 복사와 사진 촬영도 안 된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근무자들에 따르면 검색대는 2015년 9월에서 10월 사이 설치됐다.
“우병우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임명(2015년 1월 23일)된 직후 검색대 설치 안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올렸다. 몇 달 후에 (설치하기로) 결정이 났다. 결정이 난 후 검색대를 설치하는 데에도 시간이 소요됐다. 2015년 9월 즈음 설치가 된 것으로 기억한다.”
이 시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5년 9월 전 생산한 문건은 복사가 가능하지만, 그 이후 문건은 몰래 빼돌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청와대는 “민정비서관실 캐비닛에서 2014년 6월부터 2015년 6월까지의 수석비서관 회의 자료를 포함해 전임 청와대(2013년 3월~2015년 6월)에서 만든 장관 후보자 인사 자료, 국민연금 의결권 등에 대한 각종 회의 및 검토 자료를 입수했다”고 했다.
시기상 검색대 설치 전 만들어진 자료를 찾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근무자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내부 고발을 의심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있다. 첫 번째는 아무리 복사가 가능하다 해도, 보안이 철저한 민정수석실 문건을 어떻게 확보했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핵심 요직에 있던 관계자의 말이다.
“제가 파악하기에는 민정수석실에 파견을 나와 근무하던 검사들이 검찰로 복귀할 때 본인이 만든 문서들을 파기하지 않고 캐비닛에 넣어둔 채로 돌아갔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복사할 수 있었죠. 박관천 경정 사례를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대충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긴 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우병우 수석은 자신이 전 분야에 힘을 쓰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민정수석실에 파견 나오는 공무원 수가 과거 정권과 비교했을 때 많았죠. 이전 정권에서는 파견을 오지 않았던 산업통상자원부, 안전행정부에서도 올 정도였으니까요. 그중에는 보안 의식이 떨어지거나 자신의 입신만을 위해 일했던 분들도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 산업통상자원부, 안전행정부에서는 왜 파견을 나온 겁니까.
“산자부는 대기업 쪽 일을, 안행부는 공무원 인사 관련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우 전 수석이 대기업과 공무원 인사 관련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했던 것이죠.”
취재 중에 만났거나 통화를 한 박근혜 정부 청와대 근무자 중에는 “대충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지만, 정황만 있고 증거는 없어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 이가 많았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근무자의 이야기다.
“문재인 정부가 무리하게 문건을 공개한 목적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입니다. 지난 8월 7일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삼성그룹 일가 자택 관리사무소에 7명의 수사관을 투입해 ‘업무상 횡령 및 조세범처벌법위반’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습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과거 사직동팀(종로구 사직동 안가에서 은밀히 작업을 했다고 해서 ‘사직동팀’으로 불림)으로 민정수석실 지휘를 받습니다. 청와대가 얼마나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례입니다. 이 부회장의 유죄가 인정되면 박 전 대통령의 유죄가 불가피해집니다. 죄가 있으면 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이게 본인들이 보수 정권 10년간 외쳐왔던 정치보복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의심이 드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두 번째 의문은 한두 사람이 빼돌릴 만한 문건의 양이 아니란 점이다. 이에 박근혜 정부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자필 문건 일부는 제공됐을 가능성이 크고, 나머지 문건은 ‘출처가 불분명한(청와대에서 만든 것이 아닌) 문건과, 우리가 인수인계를 위해 만든 인수인계 자료’를 합쳐 발견 문건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근거가 있는 이야기냐고 묻자 그는 “들은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민감한 문제고, 팩트 체크를 못 했기 때문에 ‘확실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의심은 할 만하다”고 했다.
현 정부에서 컴퓨터 파일이나 서버를 복원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컴퓨터 서버에 있는 파일은 문서화된 만큼 자필 메모가 있을 수는 없다.⊙
글=최우석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