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체계, 정부 혼자 개혁할 수 없어… 勞使 협상이 필수”
⊙ “직무와 성과 기반 임금체계로 개편하지 않으면 앞으로 위기 극복 어려워”
⊙ “지금 추세 이어지면 2040년부터 잠재성장률 0%대 추락”
⊙ 고령자 재취업, 정년 연장 문제는 연착륙에 초점 전망
權基燮
1969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美 뉴욕주립대 경영학 석사 / 청와대 선임행정관, 고용노동부 차관 역임. 現 경사노위 위원장
⊙ “직무와 성과 기반 임금체계로 개편하지 않으면 앞으로 위기 극복 어려워”
⊙ “지금 추세 이어지면 2040년부터 잠재성장률 0%대 추락”
⊙ 고령자 재취업, 정년 연장 문제는 연착륙에 초점 전망
權基燮
1969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美 뉴욕주립대 경영학 석사 / 청와대 선임행정관, 고용노동부 차관 역임. 現 경사노위 위원장
- 사진=조준우
12·3 비상계엄 이후 국정이 멈췄다. 노동 분야라고 다르지 않다. 노사(勞使) 관계는 국민 대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조금의 양보와 타협도 어렵다. 서로 감내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선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하고, 이를 동력으로 삼아야 각종 정책을 펼 수 있다. 아무리 설득력 있는 절충안을 제시해도 정부가 고도의 정치력과 지지율을 확보하지 않으면 개혁은커녕 정반대 방향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정부와 산하 조직들은 그 어느 때보다 난처하다. 특히 노사정(勞使政) 관계를 조율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대통령 소속이다. 노동계는 그간 윤석열 정부를 향해 ‘반(反)노동 정부다’ ‘노동조합 탄압한다’고 비판했다. 이를 정면 돌파하며 조금씩이나마 진전을 이뤘던 정부의 노동개혁에도 제동이 걸렸다.
당장 4월까지 고령자 계속고용, 정년 연장 문제 관련 노사정 타협을 마친다는 게 경사노위의 계획이다. 노동계는 여기에 불참하며 윤석열 정부 청산 선봉에 섰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이 나면 한국노총이 복귀할 것으로 경사노위는 기대하고 있다. 근로시간제도 개편, 임금체계 개편, 플랫폼 노동자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 환경, 인공지능 시대 대응 방안까지 복잡한 노동시장 현안들은 산적해 있다.
3월 4일, 서울 종로구 집무실에서 만난 권기섭(權基燮·55) 경사노위 위원장은 갑작스러운 계엄 사태로 인한 논의 중단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면서 노동계의 대화 복귀를 호소했다. 고용노동부 차관을 지낸 권 위원장은 제36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래 30년 가까이 노동부에서 재직했다.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 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더 이상 이번 정부의 국정 운영이 탄력을 받기 힘들 거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서도 권 위원장은 양보와 타협을 강조하며 정치와 별개로 노동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주길 바라고 있다. 권 위원장을 마주하자마자 다소 불편한 질문부터 건넸다.
“尹 정부 노동개혁, 아쉬운 점 있다”
― 이번 정부는 노동개혁 과정에서 노동계에 대한 유화책이나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초기부터 노사 법치주의를 가장 우선시했습니다. 사실 유화책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역대 정부가 대체적으로 사회적 대화 기구를 통해 노동개혁을 추진했던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 기구에 불참한 상황이 있습니다. 노정(勞政) 관계도 악화됐고요. 정부 주도의 노동개혁을 추진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었어요. 노사 당사자들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이 부분에 대한 여러 가지 노력은 많이 한 것으로 보이고요. 대표적으로, 노조 회계 투명성을 바로잡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 개선을 했죠. 다만, 법과 제도를 개선할 땐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나 실제 이해관계 당사자인 노사 간의 대화 노력이 다소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근로시간 주(週) 52시간 제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여러 가지로 힘들었던 면도 있었습니다. 여론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고요. 2023년 11월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 기구에 복귀하겠다는 선언을 했고, 2024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적 대화 기구를 통한 노동개혁으로 전환되는 찰나였는데 급작스럽게 이렇게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바람에….”
―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을 전반적으로 평가하자면요.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아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고, 1차 노동개혁은 노사의 불법행위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등 노사 관계에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건설 현장을 비롯해 몇몇 분야에서 체감이 되기도 했죠. 근로손실일수(노사분규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근로일수로 나타낸 지표)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고요. 파업도 줄고, 노사 관계도 안정화돼 가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1차 노동개혁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죠. 2차 노동개혁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디지털화, 저출산, 고령화, 기후위기 등 노동시장의 복합적 전환에 따른 구조개혁 및 노동법, 제도 현대화를 추진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경사노위를 가동시켰고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정치적 변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아쉬운 상황입니다. 노사 관계 법치주의를 확립한 것만으로도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노동시장 구조개혁 과제와 같은 것들도 사회적 대화로 마무리할 수 있으면 노동개혁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2차 노동개혁을 본격적으로 해야 할 시점에 중단이 된 상황이라서, 전체적으로 평가를 하자면 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한국노총만 바라보는데…
‘노동법 개정이 헌법 개정보다 어렵다’고들 한다. 노동개혁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정부가 주도해서 해결할 수 있으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겠지만, 노동개혁은 필연적으로 기득권 노사가 서로 양보를 해야 하는 문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노사정 주체들의 대화와 타협, 그리고 공론화를 통한 여론 형성이 필수적이라고 경사노위는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노동계를 꼭 개혁 대상으로 보면 안 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대화를 통해 타협을 이끌어낸다는 틀을 견지한 것이다.
경사노위는 기본적으로 노동계를 위한 기구다. 경사노위 측은 “민주노총은 아예 탈퇴했고, 한국노총은 불참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러한 행태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상치 못한 정치적 상황과 한국노총의 불참, 미온적인 태도로 가뜩이나 쉽지 않은 노사정 합의점 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불참한다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당연히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노동 이슈가 전반적으로 많이 정치화된 느낌이 들어요. 기업별로 노사 관계가 다르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사노위는 법, 제도, 관행, 그리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고착화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장(場)이 돼야 합니다. 정치적인 걸 떠나서 국가적인 이익과 공익을 위해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노동 이슈 자체가 굉장히 이념화·정치화된 측면이 있어요. 이런 이유로 노동계가 현재 불참을 하고 있는 것이라서 안타깝게 생각하고요. 물론, 정치적 불확실성이 먼저 해소돼서 노동계가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하지만 그걸 떠나서 ‘노동 문제가 정치적이지 않도록 사회적 대화 기구 운영을 위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한국노총만 바라보고 사회적 대화 기구를 이끌어야 되는 게 지금 상황입니다.”
“노조 책임 강화해야”
― 노사 관계는 필연적으로 갈등 관계라는 말이 있는데요.
“노사 관계는 트레이드 오프(trade off·어느 것을 얻으려면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관계)라는 인식이 퍼져 있어요. 경영자 쪽에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고, 노조 입장에선 기업의 경쟁력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자신들의 권익 보호에 소홀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또 원청 노사가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다 보면 하청 노사에는 불이익이 갈 수도 있어요. 이러한 영향에 의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이중구조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죠. 그리고 노조의 책임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근로시간 주 52시간 제도의 경우, 근로시간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노조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 경사노위는 무슨 역할을 하는 건가요.
“노조가 여러 가지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해요. 이러한 대화가 잘 되도록 판을 깔아주는 게 경사노위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노조의 책임성을 강화한다는 건, 노사가 합의를 통해 안전과 여러 부분에 대한 조율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마련한다는 거예요. 지금은 노사가 근로 조건에 대한 문제만 다루잖아요. 임금과 복지에만 집중하고 있고요.”
― 양보를 해야 하는 문제라서요?
“그렇죠. 지금은 힘으로 해결하는 측면이 있잖아요. 생산 중단을 빌미로 하는 등의 방식으로요. 양보와 타협을 했던 사례도 드물고 경험도 적습니다. 그래서 대화가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일정 부분 책임이 부여됩니다. 사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안 들어오는 이유도 그래요. 양보를 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니까요. 노사가 서로 양보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주고 논의를 하게 하려면 서로에 대한 불신과 선입견을 없애야 하는데, 이러한 대화 구조를 만들어야죠.”
“지금 노동시장 구조, 언제까지 버티겠나”
현안 얘기를 들어봤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25일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은행은 2024~2026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2% 수준으로 추정했지만 현재와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2040년부터 잠재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여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가 강화되면서 한국산 수입품에 대한 높은 보편 관세가 부과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 예전에도 크고 작은 경제 위기는 있어 왔지만, 지금처럼 국정까지 마비되면 더 심각한 상황이죠.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등이 있었고 노동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죠. 이로 인해 제도나 관행들도 많이 바뀌었고요. 그동안은 외부의 요건들에 의해 내부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외부적 요인뿐만 아니라 내부적 변수도 심각한 것 같아요. 외부적으로는 국제 무역 질서나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인데다가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인한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이죠. 그런데 이젠 우리 내부적으로도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시점이 왔습니다. 노동시장이 지금의 시스템으로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여러 가지 국정이 멈춘 거죠. 4분기 이상 0%대 성장률이 온 건 외환위기 이후보다도 안 좋은 상황이라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는데, 노사정 모두가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처우 그대로 정년 연장?
현재 노동 관련 이슈들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건 정년 연장 문제다. 경사노위에 따르면, 은퇴와 국민연금 개시 연령을 일치시키자는 데엔 대체로 노사정 모두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을 놓고 이견이 큰 상황이다. 국민연금 개시 연령까지 고용을 연장시키는 방법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60세 정년 이후 계속고용의 방식에 대해 노동계는 ‘65세까지 법적으로 정년 연장 보장’을 원한다. 법정 정년 이전에 비자발적 조기 퇴직을 금지하자는 것이다. 반면 사용자 측은 ‘재고용 중심의 고령자 고용 정책’을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60세 이상 고령자 재고용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이다.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서도 노사는 서로 다른 입장이다. 노동계는 60세 이후 임금 동결과 60세 이후 노사 합의로 별도의 인상률을 적용하자는 방안을 꺼냈다. 사용자 측은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개선해 일부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경우가 생기더라도, 근로자의 평균 임금 수준이나 임금총액이 저하되지 않는 등 합리성이 인정되는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선 취업규칙 변경 시 필요한 과반수 근로자의 ‘동의’ 규정을 ‘의견청취’만으로 가능하도록 완화해 달라는 입장이다.
― 정년 연장을 둘러싼 쟁점이 있는데, 어떤 상황입니까.
“은퇴하는 연령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일치시키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노동계는 법적으로 정년을 연장시켜서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일치시켜 달라 하는데요, 법적 정년 연장이라는 게 무슨 의미냐면, 근로 조건의 조정이나 예외가 없는 거죠. 최소한 근로 조건, 임금이나 복지 수준은 그대로 유지가 되면서 또 탈락자도 없이 강행 법규로 정년을 연장해 달라는 게 노동계의 뜻입니다. 반면 경영을 하는 사용자 입장에선 정년을 넘어가는 시기부터 기업의 초과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초과 비용을 상쇄시키는 문제를 꺼냅니다. 이쪽에선 또 정년 연장이나 고용 연장에 대한 선택권을 확보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기업, 사용자 측은 법적인 정년 연장보다 재고용과 임금체계 개편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둘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호봉제, 숙련공 길러내기 편했지만…
경사노위 측은 직무와 성과, 생산성과 합리성에 기초한 임금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해마다 저절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경사노위는 호봉제가 적용된 일자리들에 대해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아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은 임금체계 개편이 더욱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호봉제를 그대로 두고 정년을 65세까지 법으로 보장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 아닌가요.
“우리 사회가, 그리고 기업이 이걸 감내할 수 있는지에 대해 현실적인 문제를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고용을 연장하거나 정년을 연장하면서 근로 조건을 그대로 유지하는 거니까요.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나라가 일본이잖아요. 일본은 엄청나게 긴 시간을 두고 고령자에 대한 계속고용 정책을 폈어요. 그리고 결국 기업들에 선택권을 줬죠. 정년 연장을 하든, 정년 폐지를 하든, 재고용을 하든, 선택하라고요. 우리나라는 일본과 비슷하게 연공급(年功給·근속기간에 따라 임금 증액)제를 유지했어요.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호봉제나 연공급제가 덜한데도 국가가 나서서 법적 정년 연장을 하지 못했어요. 이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호봉제를 개선하지 않고 법적인 정년 연장을 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어요.”
― 저항감을 갖는 이들도 있을 텐데요.
“있죠. 사실 이런 거잖아요. 젊었을 때 일한 것을 노후에 보상받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제 와서 이걸 어떻게 깨냐고요. 지금이 돈을 제일 많이 써야 되는 나이일 텐데요. 그래서 임금체계라는 게, 정부가 개혁한다고 해서 개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미래 세대와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양보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60세 이후 고용 안정을 보장하되,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선 양보를 하는 식으로요.”
정년만 늘려선 부작용 우려 커
경사노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근로자 수 100~1000명이 넘는 기업들 가운데 55% 이상이 호봉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1000명이 넘는 기업들의 경우 67.9%가 호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대규모 노조가 있는 사업장과 금융, 공공부문에서 호봉제 활용 비율이 높다. 하지만 호봉제를 유지하면서 정년을 늘리기는 어렵다.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하도록 법제화가 이뤄졌다. 이때 정년 연장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정년을 연장할 경우 임금체계 개편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를 위한 논의는 없었고,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방안은 일정 연령부터 임금을 조정할 수 있는 ‘임금피크제’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소송 리스크로 돌아오고 있다고 경사노위는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은 2019년 53건, 2020년 71건, 2021년 107건, 2022년 111건, 2023년 213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경사노위는 “이러한 과거의 시행착오를 답습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 2013년 정년이 58세에서 60세로 늘었을 때 임금체계를 개편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임금체계 개편은 안 되고 정년만 늘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법 개정을 하면서 ‘임금체계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문구만 들어갔기 때문에 임금체계 개편이 잘 안 된 것도 사실입니다. 기업들에는 여전히 호봉제 시스템이 남아 있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물론 이제 성과급제가 점차 도입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까진 호봉제가 많이 남아 있죠. 그리고 법 개정을 하면서 기업들이 임금피크제만 도입했어요. 임금을 깎는 것만 고민하게 된 거죠. 그랬더니 노동계는 트라우마가 생긴 거예요. 강제로 정년 연장을 하면서 임금을 삭감했으니까요. 결국 노사 양쪽에 안 좋은 기억만 심어주게 된 거죠.”
― 받아들이는 게 다른 거죠.
“그렇죠, 다르니까요. 한쪽은 비용 문제만 생각하다 보니 임금피크제로 가버렸죠. 임금피크제는 사실 공공기관에서 제일 선호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노사 간에 트라우마가 생기고 신뢰가 훼손됐죠. 그리고 그때 아쉬웠던 건, 대화가 없었다는 거예요. 국회에서 여야가 곧바로 결정해 버린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이제 이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죠.”
경사노위는 노사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공익위원들이 낸 안(案)을 도출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직 공익위원안이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매주 논의를 거듭하며 신규 채용 규모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근로시간과 직무 조정 및 임금체계 개편 등을 고민하고 있다.
“연착륙에 지향점”
― 공익위원안의 방향과 관련해 어느 정도 얼개가 마련됐나요.
“사실 공익위원들끼리도 의견을 조율하는 게 엄청나게 힘든 작업입니다. 공익위원들 간에 생각이 다르기도 하고요. 지금 노사정 논의가 중단된 상황에서도 공익위원들이 매주 중재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원안(原案)이 만들어진 건 아니고, 제가 그 내용을 밝히는 것도 적절치 않습니다만, 공익위원들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있어요. 특히 고용 연장과 정년 연장의 경우,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와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신규 채용이나 청년 채용 기회를 박탈하지 않는 전제 조건 아래에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연공제나 호봉제는 앞으로의 노동시장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선해야 한다는 원칙도 갖고 있고요. 인사, 노무 관리에도 혁신이 필요합니다. 두루뭉술하게 볼 게 아니라, 자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공익위원들이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임금에 대한 부분뿐만 아니라, 고령자 재취업 시장을 개선해야 하는 문제도 있으니까요. 임금이 조정됐을 때 정부의 지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여러 가지 차원에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들이 있다고 봅니다. 공익위원들은 연착륙에 지향점을 두고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안(案)이 확정된 건 없습니다.”
“근로시간 연장, 정부 승인 방식으론 안 된다”

―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미조직근로자지원과’를 설치하는 등 노조 가입이 어려운 비정규직, 프리랜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지원부서를 만들었는데 경사노위에서 미조직 근로자 보호를 위해 논의하고 있는 사항이 있습니까.
“기업별 노사 관계의 한계가 이겁니다. 새로운 고용 형태에 대한 문제죠. 노조 조직률이 낮고요.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문제와 같이 미조직 근로자에 대한 보호를 하기도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노동시장 양극화를 다루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어요. 미래 세대,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 논의하기로 했는데 중단이 된 상황입니다. 아쉬웠죠. 그 안에서도 구체적으로 논의하려고 했던 건, 근로기준법상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사안들도 있어요. 배달 애플리케이션 등과 같이 디지털 플랫폼에서 일감을 찾는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업종별 위원회도 만들어서 논의하기로 얘기가 다 된 상황이었어요. 그것도 중단이 됐고요.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보호법’과도 연결된 의제였어요. 계획은 다 마련돼 있었지만 이게 중단이 돼서, 노동계가 대화에 복귀한다면 이러한 논의들을 재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일·주(日週) 단위가 아니라 월·연(月年) 단위로 근로시간을 관리해서 유연성을 확보하되, 장시간 근로와 과로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제일 좋은 방안은 초과근로시간 계산 단위를 확대하는 거죠. 지난번에 시도한 바 있습니다. 주 단위에서 월이나 연 단위로 바꾸자는 방안이 정부에서 논의된 적이 있죠. 하지만 노조의 반대와 여러 가지 벽에 부딪혔습니다. 제가 여러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느낀 게, 한국 노동법의 제일 큰 특징이 ‘획일화’되고 ‘강제화’돼 있다는 겁니다. 사실 주 40시간에 연장 근로 12시간을 주는, 우리나라의 주 52시간 시스템은 특이해요. 한국보다 근로시간을 적게 허용하는 나라들도 많아요. 총 50시간을 허용하는 나라도 있고, 48시간을 허용하는 나라도 있고, 미국처럼 제한이 없는 나라도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근로시간 제한의 예외를 어떻게 인정해 주느냐의 문제예요. 한국에서 근로시간 제한의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정부 승인을 얻어야 해요. ‘유연근로제’와 ‘특별연장근로제’가 있죠.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선진국처럼 노사가 합의해서 근로시간 제한의 예외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가야 해요. 물론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근로시간 총량 제한은 필요해요. 하지만 그 제한의 범위 내에선 노사가 합의해야 합니다. 삼성과 SK의 사정이 다르잖아요. 삼성은 R&D(연구개발) 분야에서의 근로시간 연장을 바라지만 SK는 다르죠. 반도체 업종 안에서도 기업마다 사정이 다릅니다.”
― 반도체 업계의 위기로 인해 주 52시간제 특례 적용이 화두인데, 더불어민주당은 특례 적용을 시사했다가 노동계의 반대로 번복한 바 있습니다.
“입법부가 이걸 가지고 맨날…. 힘들잖아요.”
― 그렇죠.
“지금 저희가 주 52시간제 가지고는 문제해결 능력이 너무 떨어지잖아요.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게 2019년, 벌써 6년이 흘렀죠. 아직도 이 문제 가지고 논란이 계속된다는 건….”⊙
그래서 지금 정부와 산하 조직들은 그 어느 때보다 난처하다. 특히 노사정(勞使政) 관계를 조율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대통령 소속이다. 노동계는 그간 윤석열 정부를 향해 ‘반(反)노동 정부다’ ‘노동조합 탄압한다’고 비판했다. 이를 정면 돌파하며 조금씩이나마 진전을 이뤘던 정부의 노동개혁에도 제동이 걸렸다.
당장 4월까지 고령자 계속고용, 정년 연장 문제 관련 노사정 타협을 마친다는 게 경사노위의 계획이다. 노동계는 여기에 불참하며 윤석열 정부 청산 선봉에 섰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이 나면 한국노총이 복귀할 것으로 경사노위는 기대하고 있다. 근로시간제도 개편, 임금체계 개편, 플랫폼 노동자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 환경, 인공지능 시대 대응 방안까지 복잡한 노동시장 현안들은 산적해 있다.
3월 4일, 서울 종로구 집무실에서 만난 권기섭(權基燮·55) 경사노위 위원장은 갑작스러운 계엄 사태로 인한 논의 중단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면서 노동계의 대화 복귀를 호소했다. 고용노동부 차관을 지낸 권 위원장은 제36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래 30년 가까이 노동부에서 재직했다.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 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더 이상 이번 정부의 국정 운영이 탄력을 받기 힘들 거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서도 권 위원장은 양보와 타협을 강조하며 정치와 별개로 노동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주길 바라고 있다. 권 위원장을 마주하자마자 다소 불편한 질문부터 건넸다.
“尹 정부 노동개혁, 아쉬운 점 있다”
― 이번 정부는 노동개혁 과정에서 노동계에 대한 유화책이나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초기부터 노사 법치주의를 가장 우선시했습니다. 사실 유화책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역대 정부가 대체적으로 사회적 대화 기구를 통해 노동개혁을 추진했던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 기구에 불참한 상황이 있습니다. 노정(勞政) 관계도 악화됐고요. 정부 주도의 노동개혁을 추진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었어요. 노사 당사자들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이 부분에 대한 여러 가지 노력은 많이 한 것으로 보이고요. 대표적으로, 노조 회계 투명성을 바로잡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 개선을 했죠. 다만, 법과 제도를 개선할 땐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나 실제 이해관계 당사자인 노사 간의 대화 노력이 다소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근로시간 주(週) 52시간 제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여러 가지로 힘들었던 면도 있었습니다. 여론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고요. 2023년 11월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 기구에 복귀하겠다는 선언을 했고, 2024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적 대화 기구를 통한 노동개혁으로 전환되는 찰나였는데 급작스럽게 이렇게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바람에….”
―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을 전반적으로 평가하자면요.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아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고, 1차 노동개혁은 노사의 불법행위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등 노사 관계에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건설 현장을 비롯해 몇몇 분야에서 체감이 되기도 했죠. 근로손실일수(노사분규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근로일수로 나타낸 지표)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고요. 파업도 줄고, 노사 관계도 안정화돼 가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1차 노동개혁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죠. 2차 노동개혁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디지털화, 저출산, 고령화, 기후위기 등 노동시장의 복합적 전환에 따른 구조개혁 및 노동법, 제도 현대화를 추진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경사노위를 가동시켰고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정치적 변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아쉬운 상황입니다. 노사 관계 법치주의를 확립한 것만으로도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노동시장 구조개혁 과제와 같은 것들도 사회적 대화로 마무리할 수 있으면 노동개혁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2차 노동개혁을 본격적으로 해야 할 시점에 중단이 된 상황이라서, 전체적으로 평가를 하자면 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한국노총만 바라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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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준우 |
경사노위는 기본적으로 노동계를 위한 기구다. 경사노위 측은 “민주노총은 아예 탈퇴했고, 한국노총은 불참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러한 행태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상치 못한 정치적 상황과 한국노총의 불참, 미온적인 태도로 가뜩이나 쉽지 않은 노사정 합의점 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불참한다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당연히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노동 이슈가 전반적으로 많이 정치화된 느낌이 들어요. 기업별로 노사 관계가 다르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사노위는 법, 제도, 관행, 그리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고착화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장(場)이 돼야 합니다. 정치적인 걸 떠나서 국가적인 이익과 공익을 위해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노동 이슈 자체가 굉장히 이념화·정치화된 측면이 있어요. 이런 이유로 노동계가 현재 불참을 하고 있는 것이라서 안타깝게 생각하고요. 물론, 정치적 불확실성이 먼저 해소돼서 노동계가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하지만 그걸 떠나서 ‘노동 문제가 정치적이지 않도록 사회적 대화 기구 운영을 위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한국노총만 바라보고 사회적 대화 기구를 이끌어야 되는 게 지금 상황입니다.”
“노조 책임 강화해야”
― 노사 관계는 필연적으로 갈등 관계라는 말이 있는데요.
“노사 관계는 트레이드 오프(trade off·어느 것을 얻으려면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관계)라는 인식이 퍼져 있어요. 경영자 쪽에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고, 노조 입장에선 기업의 경쟁력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자신들의 권익 보호에 소홀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또 원청 노사가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다 보면 하청 노사에는 불이익이 갈 수도 있어요. 이러한 영향에 의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이중구조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죠. 그리고 노조의 책임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근로시간 주 52시간 제도의 경우, 근로시간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노조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 경사노위는 무슨 역할을 하는 건가요.
“노조가 여러 가지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해요. 이러한 대화가 잘 되도록 판을 깔아주는 게 경사노위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노조의 책임성을 강화한다는 건, 노사가 합의를 통해 안전과 여러 부분에 대한 조율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마련한다는 거예요. 지금은 노사가 근로 조건에 대한 문제만 다루잖아요. 임금과 복지에만 집중하고 있고요.”
― 양보를 해야 하는 문제라서요?
“그렇죠. 지금은 힘으로 해결하는 측면이 있잖아요. 생산 중단을 빌미로 하는 등의 방식으로요. 양보와 타협을 했던 사례도 드물고 경험도 적습니다. 그래서 대화가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일정 부분 책임이 부여됩니다. 사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안 들어오는 이유도 그래요. 양보를 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니까요. 노사가 서로 양보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주고 논의를 하게 하려면 서로에 대한 불신과 선입견을 없애야 하는데, 이러한 대화 구조를 만들어야죠.”
“지금 노동시장 구조, 언제까지 버티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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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조합원들이 1월 1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린 정권 퇴진 촉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
― 예전에도 크고 작은 경제 위기는 있어 왔지만, 지금처럼 국정까지 마비되면 더 심각한 상황이죠.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등이 있었고 노동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죠. 이로 인해 제도나 관행들도 많이 바뀌었고요. 그동안은 외부의 요건들에 의해 내부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외부적 요인뿐만 아니라 내부적 변수도 심각한 것 같아요. 외부적으로는 국제 무역 질서나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인데다가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인한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이죠. 그런데 이젠 우리 내부적으로도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시점이 왔습니다. 노동시장이 지금의 시스템으로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여러 가지 국정이 멈춘 거죠. 4분기 이상 0%대 성장률이 온 건 외환위기 이후보다도 안 좋은 상황이라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는데, 노사정 모두가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처우 그대로 정년 연장?
현재 노동 관련 이슈들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건 정년 연장 문제다. 경사노위에 따르면, 은퇴와 국민연금 개시 연령을 일치시키자는 데엔 대체로 노사정 모두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을 놓고 이견이 큰 상황이다. 국민연금 개시 연령까지 고용을 연장시키는 방법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60세 정년 이후 계속고용의 방식에 대해 노동계는 ‘65세까지 법적으로 정년 연장 보장’을 원한다. 법정 정년 이전에 비자발적 조기 퇴직을 금지하자는 것이다. 반면 사용자 측은 ‘재고용 중심의 고령자 고용 정책’을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60세 이상 고령자 재고용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이다.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서도 노사는 서로 다른 입장이다. 노동계는 60세 이후 임금 동결과 60세 이후 노사 합의로 별도의 인상률을 적용하자는 방안을 꺼냈다. 사용자 측은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개선해 일부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경우가 생기더라도, 근로자의 평균 임금 수준이나 임금총액이 저하되지 않는 등 합리성이 인정되는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선 취업규칙 변경 시 필요한 과반수 근로자의 ‘동의’ 규정을 ‘의견청취’만으로 가능하도록 완화해 달라는 입장이다.
― 정년 연장을 둘러싼 쟁점이 있는데, 어떤 상황입니까.
“은퇴하는 연령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일치시키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노동계는 법적으로 정년을 연장시켜서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일치시켜 달라 하는데요, 법적 정년 연장이라는 게 무슨 의미냐면, 근로 조건의 조정이나 예외가 없는 거죠. 최소한 근로 조건, 임금이나 복지 수준은 그대로 유지가 되면서 또 탈락자도 없이 강행 법규로 정년을 연장해 달라는 게 노동계의 뜻입니다. 반면 경영을 하는 사용자 입장에선 정년을 넘어가는 시기부터 기업의 초과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초과 비용을 상쇄시키는 문제를 꺼냅니다. 이쪽에선 또 정년 연장이나 고용 연장에 대한 선택권을 확보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기업, 사용자 측은 법적인 정년 연장보다 재고용과 임금체계 개편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둘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호봉제, 숙련공 길러내기 편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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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이 지난해 8월 취임 인사 차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을 방문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 호봉제를 그대로 두고 정년을 65세까지 법으로 보장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 아닌가요.
“우리 사회가, 그리고 기업이 이걸 감내할 수 있는지에 대해 현실적인 문제를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고용을 연장하거나 정년을 연장하면서 근로 조건을 그대로 유지하는 거니까요.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나라가 일본이잖아요. 일본은 엄청나게 긴 시간을 두고 고령자에 대한 계속고용 정책을 폈어요. 그리고 결국 기업들에 선택권을 줬죠. 정년 연장을 하든, 정년 폐지를 하든, 재고용을 하든, 선택하라고요. 우리나라는 일본과 비슷하게 연공급(年功給·근속기간에 따라 임금 증액)제를 유지했어요.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호봉제나 연공급제가 덜한데도 국가가 나서서 법적 정년 연장을 하지 못했어요. 이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호봉제를 개선하지 않고 법적인 정년 연장을 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어요.”
― 저항감을 갖는 이들도 있을 텐데요.
“있죠. 사실 이런 거잖아요. 젊었을 때 일한 것을 노후에 보상받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제 와서 이걸 어떻게 깨냐고요. 지금이 돈을 제일 많이 써야 되는 나이일 텐데요. 그래서 임금체계라는 게, 정부가 개혁한다고 해서 개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미래 세대와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양보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60세 이후 고용 안정을 보장하되,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선 양보를 하는 식으로요.”
정년만 늘려선 부작용 우려 커
경사노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근로자 수 100~1000명이 넘는 기업들 가운데 55% 이상이 호봉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1000명이 넘는 기업들의 경우 67.9%가 호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대규모 노조가 있는 사업장과 금융, 공공부문에서 호봉제 활용 비율이 높다. 하지만 호봉제를 유지하면서 정년을 늘리기는 어렵다.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하도록 법제화가 이뤄졌다. 이때 정년 연장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정년을 연장할 경우 임금체계 개편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를 위한 논의는 없었고,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방안은 일정 연령부터 임금을 조정할 수 있는 ‘임금피크제’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소송 리스크로 돌아오고 있다고 경사노위는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은 2019년 53건, 2020년 71건, 2021년 107건, 2022년 111건, 2023년 213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경사노위는 “이러한 과거의 시행착오를 답습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 2013년 정년이 58세에서 60세로 늘었을 때 임금체계를 개편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임금체계 개편은 안 되고 정년만 늘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법 개정을 하면서 ‘임금체계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문구만 들어갔기 때문에 임금체계 개편이 잘 안 된 것도 사실입니다. 기업들에는 여전히 호봉제 시스템이 남아 있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물론 이제 성과급제가 점차 도입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까진 호봉제가 많이 남아 있죠. 그리고 법 개정을 하면서 기업들이 임금피크제만 도입했어요. 임금을 깎는 것만 고민하게 된 거죠. 그랬더니 노동계는 트라우마가 생긴 거예요. 강제로 정년 연장을 하면서 임금을 삭감했으니까요. 결국 노사 양쪽에 안 좋은 기억만 심어주게 된 거죠.”
― 받아들이는 게 다른 거죠.
“그렇죠, 다르니까요. 한쪽은 비용 문제만 생각하다 보니 임금피크제로 가버렸죠. 임금피크제는 사실 공공기관에서 제일 선호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노사 간에 트라우마가 생기고 신뢰가 훼손됐죠. 그리고 그때 아쉬웠던 건, 대화가 없었다는 거예요. 국회에서 여야가 곧바로 결정해 버린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이제 이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죠.”
경사노위는 노사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공익위원들이 낸 안(案)을 도출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직 공익위원안이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매주 논의를 거듭하며 신규 채용 규모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근로시간과 직무 조정 및 임금체계 개편 등을 고민하고 있다.
“연착륙에 지향점”
― 공익위원안의 방향과 관련해 어느 정도 얼개가 마련됐나요.
“사실 공익위원들끼리도 의견을 조율하는 게 엄청나게 힘든 작업입니다. 공익위원들 간에 생각이 다르기도 하고요. 지금 노사정 논의가 중단된 상황에서도 공익위원들이 매주 중재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원안(原案)이 만들어진 건 아니고, 제가 그 내용을 밝히는 것도 적절치 않습니다만, 공익위원들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있어요. 특히 고용 연장과 정년 연장의 경우,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와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신규 채용이나 청년 채용 기회를 박탈하지 않는 전제 조건 아래에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연공제나 호봉제는 앞으로의 노동시장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선해야 한다는 원칙도 갖고 있고요. 인사, 노무 관리에도 혁신이 필요합니다. 두루뭉술하게 볼 게 아니라, 자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공익위원들이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임금에 대한 부분뿐만 아니라, 고령자 재취업 시장을 개선해야 하는 문제도 있으니까요. 임금이 조정됐을 때 정부의 지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여러 가지 차원에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들이 있다고 봅니다. 공익위원들은 연착륙에 지향점을 두고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안(案)이 확정된 건 없습니다.”
“근로시간 연장, 정부 승인 방식으론 안 된다”

―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미조직근로자지원과’를 설치하는 등 노조 가입이 어려운 비정규직, 프리랜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지원부서를 만들었는데 경사노위에서 미조직 근로자 보호를 위해 논의하고 있는 사항이 있습니까.
“기업별 노사 관계의 한계가 이겁니다. 새로운 고용 형태에 대한 문제죠. 노조 조직률이 낮고요.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문제와 같이 미조직 근로자에 대한 보호를 하기도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노동시장 양극화를 다루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어요. 미래 세대,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 논의하기로 했는데 중단이 된 상황입니다. 아쉬웠죠. 그 안에서도 구체적으로 논의하려고 했던 건, 근로기준법상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사안들도 있어요. 배달 애플리케이션 등과 같이 디지털 플랫폼에서 일감을 찾는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업종별 위원회도 만들어서 논의하기로 얘기가 다 된 상황이었어요. 그것도 중단이 됐고요.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보호법’과도 연결된 의제였어요. 계획은 다 마련돼 있었지만 이게 중단이 돼서, 노동계가 대화에 복귀한다면 이러한 논의들을 재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일·주(日週) 단위가 아니라 월·연(月年) 단위로 근로시간을 관리해서 유연성을 확보하되, 장시간 근로와 과로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제일 좋은 방안은 초과근로시간 계산 단위를 확대하는 거죠. 지난번에 시도한 바 있습니다. 주 단위에서 월이나 연 단위로 바꾸자는 방안이 정부에서 논의된 적이 있죠. 하지만 노조의 반대와 여러 가지 벽에 부딪혔습니다. 제가 여러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느낀 게, 한국 노동법의 제일 큰 특징이 ‘획일화’되고 ‘강제화’돼 있다는 겁니다. 사실 주 40시간에 연장 근로 12시간을 주는, 우리나라의 주 52시간 시스템은 특이해요. 한국보다 근로시간을 적게 허용하는 나라들도 많아요. 총 50시간을 허용하는 나라도 있고, 48시간을 허용하는 나라도 있고, 미국처럼 제한이 없는 나라도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근로시간 제한의 예외를 어떻게 인정해 주느냐의 문제예요. 한국에서 근로시간 제한의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정부 승인을 얻어야 해요. ‘유연근로제’와 ‘특별연장근로제’가 있죠.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선진국처럼 노사가 합의해서 근로시간 제한의 예외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가야 해요. 물론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근로시간 총량 제한은 필요해요. 하지만 그 제한의 범위 내에선 노사가 합의해야 합니다. 삼성과 SK의 사정이 다르잖아요. 삼성은 R&D(연구개발) 분야에서의 근로시간 연장을 바라지만 SK는 다르죠. 반도체 업종 안에서도 기업마다 사정이 다릅니다.”
― 반도체 업계의 위기로 인해 주 52시간제 특례 적용이 화두인데, 더불어민주당은 특례 적용을 시사했다가 노동계의 반대로 번복한 바 있습니다.
“입법부가 이걸 가지고 맨날…. 힘들잖아요.”
― 그렇죠.
“지금 저희가 주 52시간제 가지고는 문제해결 능력이 너무 떨어지잖아요.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게 2019년, 벌써 6년이 흘렀죠. 아직도 이 문제 가지고 논란이 계속된다는 건….”⊙